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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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총서 (11)
작가정보
목차
- 어느 날
사랑의 단상/ 받아쓰기/ 첫눈을 기다리며/ 멍때리기 대회/ 성탄절/
11월의 書/ 4층에 대한 다이어리/ 걱정 말아요 그대/ 국화 옆에서/
두통삼매경/ 생각에 관한 생각/ 사랑이라는 밥의 은유/
사과를 먹고도 사과하지 않는 계절/ 부딪치다/
문득
쉬! 문인수다/ 고추잠자리와 이하석의 환한 밤/ 불가능의 이성복/
박정남과 나팔꽃과 어둠/ 시가 장옥관에게서 피어날 적에/
이별 한 말 곱장리로 꾸어 온 시인 이기철/ 적극적이고 극적인 변희수의 언어/
뛰는 밴드 위에 나는 POLYP/
그윽하게
오마주 -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자화상 - 고독한 어느 타화상의 한때/ 클리셰 - 하지만,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
백일몽 - 먼 시간을 돌아 온 베누스 푸티카/ 토르소 - 불완전이라는 생각의 완전/
레퀴엠 - 그러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
책 속으로
사랑의 단상
종종 사랑에 관해 질문하거나 받을 때가 있지요.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간편하고 납작하게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눈이 멀고 숨이 멎으면 사랑의 잔혹은 사랑의 매혹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사랑의 복잡성과 만만치 않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에는 등을 돌려버리는데요. 어디 사랑에 관한 직무만 그러할까요. 사랑 안에 서식하는 ‘유치’와 ‘찬란’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잘 번식하기 위해 불완전하기로 결심한 개체 같습니다.
어느 날 사랑이 찾아와 내 곁에 앉아 말하지요. ‘네가 왜 웃는지 혹은 우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왔다’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사랑의 불완전, 사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그녀)의 사랑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싶은, 그러니까 사랑은 사랑이라는 언어의 욕망, 단 한 번도 실현된 적 없고 실현한 적 없으므로 사랑은 순순히 욕망의 자리에 놓이게 되지요.
언어를 ‘살갗’이라고 하며 바르트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고 합니다. 열 없는 이마에 따뜻한 손을 얹으면 이마는 문득 펄펄 끓어야 하고, 세상의 입들은 모두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하여 ‘많이 아파?’라는 말은 그 대답을 위해 스스로 만든 ‘꾀병’에 걸려야 합니다. 말만으로도 온몸이 아파옵니다. 그러나 괜찮아요. 이 아픔은 ‘사랑이 내미는 호의’라서, 온몸이 아픈 데도 불구하고 아픈 몸은 새의 날개처럼 즐겁기만 합니다.
사랑을 내 말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혹은 이 만짐을 이야기하며 관계를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고 하죠. 그래서 사랑의 기쁨은 ‘영원’이나 ‘통속’을 소환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영원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려고 하지요. 따라서 서로에게 충족된 연인들은 글을 쓸 필요도 없고, 전달하거나 재생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몸이 앞서 기울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사랑은 생각의 가지를, 생각의 날개를, 생각의 뿌리를 갖게 합니다. 나를 보다 수다스러운 나로 바꾸어 놓지요. 그러나 사랑의 언어는 허약하고. 절절하여 사랑의 언어 속에서 당신을 읽으며 나를 잃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유감없이 발설함으로써 그 사람의 영혼을 만지고, 만진 손으로 자신의 영혼을 만지려는 이중의 접촉을 시도한다죠. 따라서 사랑의 언어는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며 거대한 심연의 바닥을 종횡무진합니다.
대체로 사랑의 푼크툼에 빠진 이들은 시시콜콜해집니다. “사랑해.”, “뭐 하고 있어?”, “밥 먹었어?” 시시콜콜한 유희를 반복하지요. 그들만의 방언을 만들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세계의 극점에는 모든 것이 ‘감각화’된 채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 거울이 등장합니다. 말랑말랑한 감각은 망각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중의 거울이 되지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만 더 사랑의 배반을, 고통을, 고독을 긍정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머리말]
죽음에게 맡겨졌던 소임,
그녀를 삶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
하지만
그녀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詩에서는
라이너 쿤체, 「젊은 젤마 메어바움-아이징어 시인을 위한 묘비명」에서
글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외국시 구절을 슬쩍슬쩍 들여놓습니다. 한국시를 인용하면 작가의 눈치를 봐야 하지만, 외국시는 들통이 나도 작가가 멀리 있으니 쉽게 따지려 들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멋 부린 문장을 보고, 참 잘 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지난한 과정들은 가질 수 없는 ‘글의 힘’을 부여받기 위함도 있지만, 독자를 유혹하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가지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고, 소름 돋고, 토막토막 난, 배반을, 탕! 한 발의 총성을, 백일몽 속에서 듣기 위함도 있습니다.
도무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슬쩍슬쩍 들여놓은 구절로 인해 제 글쓰기는 더불어 아팠고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각각의 ‘부’가 서로 다른 ‘결’을 가졌지만 시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오지 못한 죽음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출판사 서평
임창아 시인의 첫 산문집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가 출간됐다. 학이사의 산문 기획시리즈 첫 작품으로 출간된 작가의 언어에는 속도감이 있다. 특히 잡음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이 읽는 이에게 청량감을 준다. 그래서 작가의 글은 매력적이다. 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여자처럼,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며 슬픔과 당당히 마주한다.
산문집은 각각 ‘어느 날’, ‘문득’, ‘그윽하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어느 날’에서는 한 단어에 꽂히면 그녀만의 특별한 공간이 탄생한다. 시인이니까 시적인 산문을 쓰고 싶다고 했다. 산문이라고 보기엔 시에 가깝고, 시라고 보기엔 산문에 가까워서 산문시나 시산문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2부 ‘문득’에서는 그녀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들에 대한 단상이 실렸다. 연필심 끝에 침을 묻혀 그윽한 마음으로 꾹꾹 눌러쓴 지극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시론도 아니고 시인론도 아니고, 시론이면서 시인론이기도 한 글을 쓰면서 행복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그들에게 온전히 빠져있었다고 한다. 3부 ‘그윽하게’에서는 세음절로 된 제목과 그에 따른 각각의 부제가 친근하게 시적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고독한 어느 타화상의 한때’ ‘하지만,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 ‘불완전이라는 생각의 완전’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감성과 지성이 교직되어 있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58542306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5월 01일 | ||
쪽수 | 192쪽 | ||
크기 |
126 * 200
* 22
mm
/ 281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산문의 거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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