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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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를 제공받았지만 건강을 잃어버린 유토피아
방사능 오염으로 끝나버린 두 도시 이야기
대선 후보들의 엇갈리는 원전 정책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원자력 제로’를 목표로, 신규 원전 건설계획 백지화, 노후원전 수명연장 중단, 월성1호기 폐쇄, 신고리5ㆍ6호기 공사 중단 등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또한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낮추고, LNG는 20퍼센트에서 37퍼센트, 신재생 에너지는 5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 대선 후보로 뽑힌 여야 대선후보의 원전 정책은 엇갈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말하는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탈원전 정책이 포퓰리즘이라면서 ‘탈원전 폐기’를 외치고 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 플루토늄 유토피아를 꿈꾸다
원자력은 인간에게 전력, 국가 안보를 위한 핵무기 재료 등 여러 가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이 만만찮다.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질병,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따른 엄청난 후유증은 원자력이 정말 저렴하고 안전한 평화적 기술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플루토피아-핵 재난의 지구사》는 원자력 재난의 비교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찬핵과 반핵의 이분법을 넘어 원자력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효용(국가 안보를 위한 핵무기, 전력, 플루토피아 시민의 경우 엄청난 복지)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개인화되고 비용(저선량 피폭으로 인한 질병과 고통)은 사회화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도와준다.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를 통해 체르노빌 참사의 환경적이고 의학적인 영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저자 케이트 브라운Kate Brown(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과학기술사회 프로그램 교수)은 ‘플루토늄plutonium’과 ‘장소topia’ 또는 ‘이상향Utopia’의 합성어 ‘플루토피아Plutopia’를 만들어 냉전기 미ㆍ소 양국의 지도자들이 “엄청난 규모의 핵탄두와 그 중핵인 플루토늄 구球를 비축하기 위해”(5쪽) 어떻게 비용을 최소화했는지, 어떻게 비판에 반박했는지, 어떻게 핵가족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웠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핀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플루토피아》는 엘리스 홀리상(미국역사학자기구), 알버트 베버리지상(미국역사협회), 조지 퍼킨스 마시상(미국환경사학회), 웨인 부키니치 도서상(슬라브동유럽유라시아연구협회), 슬라브/동구/유라시아연구 분야 최고도서 부문 헬트상(슬라브여성학협회), 로버트 애던상(서양사협회) 등 세계 역사학계의 권위 있는 상 6개를 수상하고 “지난 25년 동안 핵 역사 부문의 연구와 글쓰기에서 최고의 저작”(로드니 칼리슬Rodney Carlisle)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오늘날 원자력 시설을 관리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며 주의와 투명성을 요구”(《네이처Nature》)하는 환경사 분야의 명저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작가정보
Kate Brown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과학기술사회 프로그램Program i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교수로 재직 중인 역사학자다. 핵역사, 재난사, 변경사 등을 주제로 환경사와 냉전사 관련 강의와 연구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무것도 아닌 곳의 전기: 종족적 변경에서 소비에트의 중심지로A Biography of No Place: From Ethnic Borderland to Soviet Heartland》(2004)와 《디스토피아에서 보내온 편지: 아직 잊히지 않은 장소들의 역사Dispatches from Dystopia: Histories of Places Not Yet Forgotten》(2015)가 있고, Manual for Survival: A Chernobyl Guide to the Future(2019)는 두 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2020)로 국역됐다. 《플루토피아》는 미국 역사학계가 수여하는 상 여섯 개를 수상하며 환경사 분야의 명저로 등극했다.
Donghyun Woo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University of California-Los Angeles)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과학기술사, 환경사, 외교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북한과 소련의 관계사를 재구성하는 박사학위논문을 쓰고 있다. 근현대사에서 코리언과 사회주의의 만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역서로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2020)가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총서 36권 《해방 직후 한반도 북부 공업 상황에 대한 소련 민정청의 조사 보고》를 공역했다. 언젠가 아내 우타뉴샤Tanusha Woo와 함께 산타모니카 해변의 롤러코스터를 다시 타는 꿈을 가지고 있다.
목차
- 한국어판 서문
서론
제1부 서부 핵변경의 감금된 공간
01_마티아스 씨 워싱턴으로 가다
02_달아나는 노동
03_“노동력 부족”
04_나라 지키기
05_플루토늄이 지은 도시
06_노동 그리고 플루토늄을 떠맡게 된 여자들
07_위험들
08_먹이 사슬
09_파리와 생쥐와 사람들
제2부 소비에트 노동계급 원자原子와 미국의 반응
10_잡지 체포
11_굴라그와 폭탄
12_원자 시대의 청동기
13_비밀 지키기
14_베리야의 방문
15_임무를 보고하기
16_재난의 제국
17_아메리카의 영구전쟁경제를 추구하는 “소수의 좋은 사람들”
18_스탈린의 로켓 엔진: 플루토늄 인민에게 보상하기
19_미국 중심부의 빅브라더
20_이웃들
21_보드카 사회
제3부 플루토늄 재난
22_위험 사회 관리하기
23_걸어 다니는 부상자
24_두 차례의 부검
25_왈루케 경사지: 위해危害로의 길
26_테차강은 고요히 흐른다
27_재정착
28_면책 지대
29_사회주의 소비자들의 공화국
30_열린사회 사용법
31_1957년 키시팀의 트림
32_체제 지대 너머의 카라볼카
33_은밀한 부위
34_“게부터 캐비아까지, 우리는 모든 걸 가졌었다”
제4부 플루토늄 장막 해체하기
35_투자 증권이 된 플루토늄
36_돌아온 체르노빌
37_1984
38_버림받은 자
39_아픈 사람들
40_전신 작업복의 카산드라
41_핵의 글라스노스트
42_모두가 왕의 부하들
43_미래들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문서고와 약어
주석
찾아보기
책 속으로
이 책은 미국과 소비에트의 지도자들이 엄청난 규모의 핵탄두와 그 중핵인 플루토늄 구球를 비축하기 위해 근로 대중, 특히 사회에서 소외된 구성원들(죄수들, 병사들, 종족적 및 인종적 소수자들)을 어떻게 희생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그 모든 비용을 치르면서도 미국과 소비에트 사회 및 풍경이 어떻게 핵무기의 생산에 맞게 재조정되었는지를 기록한다(5쪽).
이 책은 공포와 모방, 그리고 맹렬한 플루토늄의 생산으로 단합된 두 공동체의 수용에 관한 이야기다. 워싱턴주 동부의 리치랜드Richland와 러시아 우랄 남부의 오죠르스크Ozersk(“호수 골짜기Lakedale”를 의미한다)는 냉전의 적수였으나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 도시였다. 핵무기 복합체는 탄두와 미사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생산했다. 핵무기 복합체는 새로운 핵가족의 안식처가 된, 수상 경력이 있는 모델 주택단지에서 행복한 유년기의 기억들, 저렴한 주택, 그리고 우수한 학교들을 만들어냈다(17쪽).
나는 노동자들을 플루토늄 생산과 관련된 위험과 희생에 동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미국과 소비에트의 원자력 지도자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플루토피아plutopia다. 플루토피아 특유의 접근이 제한된, 열망으로 가득한 공동체들은 전후戰後 미국과 소비에트 사회의 욕구 대부분을 충족시켰다. 플루토피아의 질서정연한 번영은 대다수 목격자들이 그들 주변에 쌓여 있는 방사성 폐기물을 간과하게 만들었다(20쪽).
냉전 기간 동안 선전가와 전문가들은 미국과 소련을 비교하면서 한쪽 혹은 다른 쪽의 부당함이나 과오를 덮어주곤 했다. 대신 나는 플루토늄 공동체를 서로 나란히 배치하여, 플루토늄이 어떻게 냉전의 분열을 가로질러 플루토늄 공동체의 삶을 묶었는지 보여준다. 나는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도시들이 정치 이념과 민족 문화를 초월하고 핵 안보, 원자력 첩보, 방사능 위험에서 파생된 공통의 특징을 공유했다고 주장한다(27~8쪽).
《플루토피아》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원자력 르네상스”에 관해 논의하는 동안에도 핵 보유국의 많은 시민들이 아직 직면하지 않았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유산에 관한 책이다. 고립된 군사 지대에서 일어난 핵 재난은 은폐하기 쉽다. 이는 체르노빌과 오늘날 후쿠시마가 자주 회자되는 단어인 반편, 핸퍼드와 마야크에서 일어나 플루토늄 재난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방사성이 강한 두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이 핵 과거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고무되었으면 한다(30~1쪽).
마티아스는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공장 부지를 워싱턴의 핸퍼드로 결정했다. 이곳이 그가 찾던 특징들, 즉 컬럼비아강Columbia River의 풍부하고 깨끗한 용수 공급, 확실한 전력 공급원, 높은 비율의 정부 소유 토지, 그리고 확실한 실패의 기운을 보유했기 때문이다(40쪽).
노동력 부족은 현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속되었다. …… 노동자 유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풍경이었다(46쪽).
버벤저 경찰서장은 캠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무언가 우울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거의 교도소에 있는 것 같았지요. 철조망이 쳐져 있고 ……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외로움과 우울함 그 자체였고, 그들은 술을 지독하리만치 마셔댔습니다.” 황량함의 결과로 노동자들은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갔다(56쪽).
핸퍼드 사업의 울타리들은 프로젝트를 내부적으로 나누어 각각의 생산 구역 및 집결 구역을 분리했다. 울타리들은 핸퍼드 캠프를 둘러싼 장벽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캠프 내부에는 더 많은 울타리들이 여성과 남성을, 백인과 흑인을, 막사의 독신 노동자와 이동식 주택 주차 구역에 사는 가족을 분리시켰다. …… 차별적 관행은 노동력 부족을 유발하여 공장 건설을 지연시켰다(68쪽).
듀폰 경영진은 계급과 인종의 (보이지 않는) 구역을 풍경에 넣어 도표로 작성하고 군사 보안과 함께 재정적인 보안을 제공함으로써, 리치랜드가 고등 유형의 백인 남성 노동자들을 위한 폐쇄적 원자력 구역이 라는 인상을 만들지 않고, 다른 맨해튼 프로젝트 시설에서처럼 경비 초소와 신분증과 울타리 없이 여러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90쪽).
듀폰 채용 담당자들은 21세에서 40세 사이의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 중 “건강하고 성격이 좋고 기민하고 총명한” 여성을 찾고 있었다. …… 듀폰 경영자들은 공장 제품의 위험성을 직원들에게 공개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그로브스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95쪽).
방사성 무기에 관한 해밀턴의 탐구는 또한 대량살상이 이뤄지는 전쟁의 한가운데 자리한 맨해튼 프로젝트 의학 프로그램의 본질에 대해 알려준다. 죽음과 파괴에 대한 냉정한 평가, 적국 대중이 “24시간 내에 메스꺼워하고 구토하고 무력화되는” 것에 관한 상상의 과잉, 맨해튼 프로젝트 공장 인근의 미국인들에게도 똑같은 각본대로 전개될 것이라는 상상의 결핍이 바로 그것이다(113쪽).
1945년 초에 이르러 맨해튼 프로젝트 지도자들은 최초 몇 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사성 동위원소에 피폭되어 손상되는 한도와 그러한 동위원소가 체내로 유입되는 경로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반감기가 긴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과 그것들이 일단 토양과 살아 있는 생명체 내부에 들어가면 감지하거나 제거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그러한 동위원소들이 일단 체내로 들어갔을 경우, 방사능이 세포를 파괴하고 암을 유발하며 면역체계, 소화계, 순환계에 문제를 일으키고 노화와 사망을 가속화하는데 이는 모두 무작위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알게 되었다(128쪽).
1945년 봄까지 마티아스, 그린왈트, 그리고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배정된 다른 임원들과 기업 관리자들은 많은 일을 해냈다. 2년 동안 그들은 몇몇 공장과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산업용 원자로를 건설했다. 그들은 소도시 세 개를 허물고 그 자리에 두 개의 새로운 도시와 노동캠프를 지었다. 더 큰 도시인 핸퍼드 캠프는 1945년 중반까지 이미 불도저로 철거되었다. 그들은 연방 재원의 지원을 받는 새로운 종류의 백인 핵가족 공동체인 리치랜드를 설립했다. 리치랜드는 연방 재원에 의해 보조되고, 계획경제와 세심하게 통제된 접근권을 가진 기업 변호사들에 의해 관리되었다. 그들은 또한 우려스럽지만 비밀스러운 연구를 생성하는 의료 및 환경 감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편 공공 부문에서는 공중 보건 및 대민 홍보 프로그램이 불안해하는 노동자들을 성공적으로 진정시켰다(139~40쪽).
극소량의 우라늄, 소수의 과학자, 제한된 자금만으로 소비에트 폭탄은 헛된 꿈이었다. 오직 미국처럼 지구적 산업 통제력을 보유하고 있고, 노동력과 원료가 풍부하고, 자국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나라만이 핵무기 제조를 생각할 수 있었다. 자급자족 경제에 갇혀 있고 경화가 부족하고 추축국 군대에 둘러싸인 소비에트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전후 핵강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소비에트 지도자들의 열망이 깊어진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159쪽).
사실 소비에트 지도자들은 전후 잔해 속에서 핵무기 복합체를 지을 능력이 없었다. 황폐화라는 측면에서 추축국은 소비에트 경제를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 굴라그는 자유로운 소비에트 기업체들보다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굴라그에 노동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 굴라그는 수백만 명의 육체노동자뿐만 아니라 특수 화이트칼라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물리학자, 화학자, 기술자 및 설계자 등 국가의 지적 자본을 가진 보고이기도 했다. 스탈린과 베리야가 원자로, 화학처리공장, 실험실을 건설하기 위해 굴라그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합리적인 모습이었다(167~8쪽).
누가 소비에트 폭탄을 만들 것인지 결정한 후, 반니코프와 베리야는 어디에서 그것을 만들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 정찰대는 희박한 인구, 자유롭게 흐르는 강들, 정부의 상당한 존재감으로 인해 우랄에 매혹되었다. …… 바로 이곳이 정찰대가 모스크바에 보고한 장소였다. 이것이 바로 소비에트 원자의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는 모습이었다(169~70쪽).
이 최초의 소비에트 플루토늄 정착지는 리치랜드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기본 계획도, 믿을 수 없는 죄수와 병사를 국가 기밀을 위임받은 강직하고 훈련된 직원과 분리시키려는 계획도 없었다. …… 당대의 증언에 따르면, 플루토늄 현장은 보안상의 재난이었다. 요컨대 굴라그는 소비에트 핵개발 계획을 불복종, 폭력, 절도, 비효율성을 지닌 초라하고 전염성 있는 무질서로 낙인찍었다(187쪽).
당 회의를 엿보면 봉쇄된 체제 지대, 민감하지 않은 작업에서 죄수와 유형수들의 분리, 잠금장치가 설치된 사무실과 실험실, 노동자들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작업이 1948년 초에는 환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이 왔다 갔다 했다. 직원들은 급여를 받기 위해 비밀 실험실 밖에 줄을 섰고, 노동자들은 친구 및 가족과의 전화통화에서 엿들은 비밀을 누설했다. …… 의심스러운 죄수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작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1947년 여름에만 16만 명의 기결수들이 도착했다. 금지된 범주의 죄수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민감한 산업 현장에서 작업을 계속했다(202~3쪽).
노동자들은 규제와 공포를 참고 견뎠다.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갇혀 있었기 때문이지만, 작업에 대한 보상으로 더 나
출판사 서평
새로운 냉전 이야기
냉전은 대결만으로 점철되었을까
관습적으로 냉전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진영 간의 대결로 설명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ㆍ소 동맹관계가 해체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국가들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정권 사이에 냉전 구도가 발생했고,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면서 강화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대결만으로 점철되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미ㆍ소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만든 플루토늄 도시는 거의 모든 부분 동일했다. 미국과 소련의 플루토늄 생산 공장 근처 지역사회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바로 워싱턴의 리치랜드Richland와 우랄의 오죠르스크Ozersk이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은 군사ㆍ복지 부문에서 경쟁하면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공장 주변에 이상향에 가까운 복지 도시 ‘플루토피아Plutopia’를 지었다. 플루토피아 주민들은 조국을 위해 플루토늄을 만들면서 풍요(소비자적 권리)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건강(생물학적 권리)과 자치(정치적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일상적/저준위 원자력 재난의 연대기
원자력 시설에서의 끔찍한 사고와 인근으로의 방사성 물질 유출,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와 감시의 부재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반면 저준위 방사성 물질의 유출과 그것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었을 경우 발생하는 재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책은 이 같은 일상적/저준위 원자력 재난의 연대기를 비교사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저자는 플루토피아 내부의 시민/인민들이 복지 유토피아를 누리는 대가로 자신들의 시민적ㆍ정치적ㆍ생물학적 권리를 “자발적으로” 내놓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힌다. 미국과 소련의 플루토피아 주민들은 지역 자치와 선거, 국가적 행정 제도상의 편입, 구조적으로 피폭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정부 주택 보조금, 풍부한 재화의 구입, 우수한 치안, 자녀 교육 혜택 등의 편익과 맞바꿨다.
이러한 목소리는 냉전기와 탈냉전기에 이르기까지 국가 안보의 수사修辭를 통한 지역 내 원자력 시설의 유지 강화(리치랜드)와 외부인들의 접근과 거주를 차단하는 폐쇄 도시closed city 선호(오죠르스크)로 나타났다. 그러한 풍경 안에서 원자력 시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 큰 피해를 영원히 받게 되었다. 하지만 배상이나 지원보다는 오히려 그들에 대한 편견과 무시만이 강화됐다.
성별화된, 계급화된, 인종화된 노동
책의 전반부에 특히 잘 드러나듯, 플루토피아의 역사는 성별화된gendered 노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을 막론하고 방사성 용액을 증류하고 채집하는 일의 최전선에는 플루토피아에 거주했던 여자 노동자들이 존재했다. 미국의 거대 기업 중 하나인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소비에트의 원자력 산업 공히 조금 더 피폭의 가능성이 높은 일에 여성을 배치했다. 그러한 노동의 보이지 않는 분업은 젠더에 더해 계급적으로 그리고 인종적으로도 진행되었다.
독자들은 책 전반에 걸쳐 계급적 약자인 비백인, 즉 미국의 경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미국 선주민인 인디언들, 소련의 경우 비슬라브계 소비에트인이나 우랄 지역의 무슬림 선주민들, 그리고 미국과 소련 모두에서 죄수 노동력이 플루토피아를 위해 노동하고 봉사하면서도 복지를 누리지 못하고 피폭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미국 안의 소련, 소련 안의 미국
연구 방법론상의 신기원 개척
이 책은 어느 한 차원의 방법론에 국한되지 않고, 비교사, 도시사, 환경사, 냉전사 등 역사학의 각종 세부 방법론을 절묘하게 배합하며 창의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역사 연구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특히 인간 행위자(설계가, 계획가, 정책결정자 등)가 구획한 인위적인 공간들과 그 사이에 놓인 장벽, 철조망, 관문 등이 얼마나 쉽게 비인간 행위자들(방사성 입자, 피폭된 풀을 먹은 가축의 고기, 공기와 물의 대류 등)에 의해 무시되고 지켜지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방법론은 피폭의 범위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편 저선량 피폭의 주된 피해자가 대개 사회적 최약자이자 플루토피아 근처에 사는 “아랫바람사람들”과 “하류사람들”임을 보여주면서 사회사, 재난사, 핵 역사의 통찰도 제공한다. 아울러 폐쇄 도시에 출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법을 통해 그 도시 주민들, 주변 거주민들과 진행한 인터뷰는 문서보관소 자료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역사상을 보충해주며 때때로는 강화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플루토피아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조지아, 아이다호 및 뉴멕시코 등지에서, 소련의 경우 우랄, 카자흐스탄, 시베리아, 유럽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재현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지구상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는(재처리하는) 공장이 있는 곳 근처 플루토피아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 또한 제공한다.
민중의 과학
이 책의 백미는 시민/인민이 수행하는 자체적 연구의 타당성을 문서보관소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개 “과학의 언어”를 구사하는 과학자들은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게 여러 전술들을 구사하며 보수적으로 학술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나오는 원자력 재난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한 구조적인 힘에 맞서, 책에 등장하는 여러 행위자들은 미국과 소련을 막론하고 자신과 가족, 친구, 주변인들의 건강 영향(저선량 피폭)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수행하고 기록하고 이를 공개하고 정당한 배상을 받으려고 했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과학의 언어”를 쉽사리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민중의 과학을 수행하는 이들이 막대한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원자력 시대의 “선구자들”의 행동은 원자력 재난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영감과 용기, 지지를 건네주고, 원자력 시설을 운영하는 정부와 전문직 계층을 상대로 한 더 많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위험과 오염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2021년 4월, 일본 정부의 원전 오염수(처리수) 해양 방류 공식 결정이 있었다. 2023년부터 100만 톤 이상의 오염수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바다로 방출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출할 경우 환경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경미하다”는 내용의 평가를 내놓으면서 그러한 정부의 결정을 뒷받침한다.
이 결정은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 시설이 운영되는 한 생겨날 수 있는 재난(가장 대표적으로 체르노빌, 후쿠시마)과 그 영향이 우리와 얼마나 가깝게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아울러 이 책은 그러한 자연 환경으로의 방사성 물질 방류 결정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축소화/안심시키기가 이미 1940년대부터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시작됐고, 방류의 참혹한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원자력 유산이 가진 진실이 알려져야 한다
문서고를 뒤져 과거 기밀로 분류된 문서들을 폭로하고 해당 도시에 살았던 거주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바람을 피력한다. “미래의 언젠가 지구 도처에 존재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핵 생산 현장 근처에서 이러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것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바라건대 여러 나라가 원자력에서 (아울러 핵무기에서) 탈피하여 그것들의 유산이 가진 진실이 알려졌으면 한다.”(11쪽) 저자의 바람이 원전 오염수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기밀주의에도 가 닿기를 바라본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무기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중국, 일본)의 재무장이라는 관습적인 서사 앞에, 또 “깨끗한” 에너지원이라는 원자력의 서사 앞에 사회적 부의 재분배나 인권, 노동, 탄소 절감을 통한 기후 변화 대응 등과 같은 첨예한 각종 사안들이 좀처럼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냉전적” 분위기에서 저자의 통찰은 원자력이라는 최첨단 고위험 기술의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해준다.
기본정보
ISBN | 97911561220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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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29일 | ||
쪽수 | 784쪽 | ||
크기 |
152 * 224
* 43
mm
/ 1106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Plutopia/Brown, Kate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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