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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이영석의 코로나 시대 성찰 일기
이영석 저자(글)
푸른역사 · 2020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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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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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원로 서양사학자가 짚어낸 ‘코로나 사태’
절망의 끝에서 내일의 희망을 보다
역사가 밥이 되지는 않는다. 역사가가 ‘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의식은 필요하고, 우리는 역사가에게 물어야 한다. 역사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 되고, 역사가는, 모두들 눈앞에 닥친 일에 골몰할 때 탄광의 카나리아나 잠수함의 토끼처럼 멀리 크게 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기승을 부릴 때 원로 서양사학자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이 책이 가치 있는 까닭이다. 페이스북에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글이고, 멋진 문장은 없지만 귀 기울일 만한 성찰이 그득하기에 그렇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영석

서양사학자(영국사). 광주대 명예교수. 근래 출간한 저서로 《공장의 역사》, 《지식인과 사회》,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 《영국사 깊이 읽기》, 《삶으로서의 역사》,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 등이 있고, 번역서로 《영국민중사》, 《역사학을 위한 변론》, 《옥스퍼드 유럽 현대사》,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등이 있다.

목차

  • 책머리에

    1부 서재에서 치러낸 코로나 위기

    01 한 시대가 저무는가!
    책과 근대의 종언-페이스북에 긴 글을 올리는 까닭은
    팬데믹의 위기 이후를 기대하며
    세계사의 새로운 변곡점이 도래하는가
    02 역사와 나, 그 끈끈한 인연
    인연의 끈은 희미해도 언젠가 이어진다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나를 키운 것은 부채의식과 죄책감
    03 서재에서 치러낸 코로나 위기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인다
    각주 작업을 하다가 얻은 잡학 상식
    《전염》 번역 원고를 탈고하고 나서
    번역 뒷이야기-지적 탐색의 계보학
    갑자기 로이 포터를 떠올리다
    04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코로나가 준 기대 밖의 ‘선물’
    봄날은 온다
    재난과 관련된 글쓰기
    05 서양과 문명에 관한 단상
    근대 개념어 서양
    문명civilization과 문화

    2부 대유행병,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01 그래도 세계는 조금씩 전진한다
    우한 사태와 175년 전 보아 비스타 사건
    19세기 콜레라, 국제협력의 물꼬를 트다
    WHO의 전신, 국제공중보건기구 이야기
    02 높아지는 국경, 그리고 개인의 역할
    국민국가와 개인숭배에 관하여
    아놀드 토인비와 일본제국의 검역제도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
    03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기차를 타고 펴져 나간 페스트
    세계화와 페스트 그리고 황화론
    근대 문명과 우역牛疫의 습격
    04 종말론적 환상이 빚어낸 풍경
    영국 내란과 천년왕국의 환상
    퀘이커파에 대한 단상
    05 팬데믹시대, 국가와 지도자의 역할
    팬데믹Pandemic 상황에서 영국 의료의 실태
    윌리엄 글래드스턴에 대한 회상
    의료보험이 박정희시대의 유산?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의 독학 풍경

    3부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

    01 위태로운 ‘인류세’, 위협받는 ‘세계화’
    근대 문명의 두 얼굴을 다시 생각한다
    어둠을 비추는 희미한 빛
    ‘거리의 소멸’에 대한 회상
    02 ‘느림의 문명’을 기다리며
    석탄의 역설
    탈산업화시대, ‘느림의 문명’을 기다리며
    콜센터 유감
    03 새로운 ‘모델’이 절실하다
    ‘예방주사’가 된 사스SARS 경험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을 생각한다
    드레이튼의 ‘신대학’ 모델에서 배운다
    04 ‘우리’만 구원받는 종말론이라니
    ‘때’가 오기를 기다리던 유년의 기억
    두 종교인을 보며
    05 흔들리는 G2,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신종 바이러스 폐렴의 정치학
    세계사의 변곡점과 앵글로 아메리카니즘의 조락
    미국은 과연 ‘자유의 제국’인가
    중국은 ‘세계’인가
    코로나 위기와 서구의 실패에 관하여
    06 우주선 ‘지구호’가 보내온 경고인가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 1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 2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관하여
    문명의 패턴을 바꿔라

책 속으로

팬데믹 위기가 지나간 후에 나는 한국 사회가 새로운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능동성을 보여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남을 바라보고 남을 뒤쫓고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새로운 모델과 새로운 전범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22쪽).

팍스-아메리카나의 기치가 올라간 것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명백하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은 수에즈 위기 때였다. 그 후 영국은 스스로 제국 해체의 길로 들어섰고, 미국은 나토를 통한 서방 지배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확대함과 동시에 동유럽 사회주의권을 봉쇄함으로써 패권국가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25쪽).

코로나 위기에 중국은 1당 지배와 감시체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총력전을 펼친 끝에 그 위기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 미국은 무능한 연방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미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에 빠져 있다. 이 위기가 깊어질수록 호전적인 정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이른바 ‘사회 문제의 대외수출’이다(26쪽).

적어도 19세기 초까지 중국 경제와 문명은 전 세계의 중심축이었다. 유럽은 세계사에서 주변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부상과 등장은 유라시아 대륙 중심의 문명사에서 잠깐의 일탈을 지낸 후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긴 변화와 여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27쪽).

수에즈 위기와 현재의 위기를 비교하면, 공통점도 있지만 전혀 다른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 중국과 미국은 대화를 단절하고 각기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 또한 코로나 위기로 자국 문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다. 유엔은 전혀 제 기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변곡점을 맞아 국가 간 중재와 대화의 복원이 다시 중요해졌다(27쪽).

지식인이 지배 권력에 포섭되지 않는 영원한 경계인으로서 진지함과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쾨니히스베르크에서만 산 칸트처럼 마음은 비록 중심부를 향해 있었지만 몸은 주변부에서 떠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38쪽)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돌이킬 수 없는 세계화 추세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은 진보적인 사회운동도 아니고 전염병이다. 세계화 추세와 함께 일상적인 경제활동은 국경과 국민경제를 넘어서지만, 전염병은 다시 희미해진 국경을 되살린다(46쪽).

글쓰기는 유희라기보다는 의무이고, 글을 쓸 때는 항상 엄숙하며 마음도 무겁다. …… 아마 그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동력은 스스로를 연구노동자로 자처하고 비록 힘든 육체노동을 하지는 않지만 좁게는 그들처럼 항상 근면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리고 넓게는 이 보잘것없는 연구노동의 결과가 그래도 이 사회의 인문 진화에 조금쯤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나왔을 것이다(54쪽).

일본 정부는 이 크루즈선의 코로나 확진자를 자국 통계에 반영하지 않는다. 항공모함 루즈벨트호도 선내 감염으로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어 미국으로 귀환했다고 한다. 전염병을 정복했다고 공언해온 21세기에 19세기 중엽 에클레어호가 겪었던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겉으로만 보면 꼭 그런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86쪽).

프랑스가 유럽의 표준화를 이끌어낸 후 이를 다시 세계의 표준화로 확장하는 것, 나는 유럽중심주의의 실체가 바로 19세기 후반의 이 표준화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사람들은 바로 이 시기에 이 표준화된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90쪽).

19세기 초 이 미술관, 박물관 열광의 시대가 곧바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개인숭배시대로 연결되었다고 본다. 자율적 주체인 국민의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인 것은 단순한 전시품보다는 살아 있는 개인들이었다. …… 문학과 음악과 미술과 그 밖의 다양한 문예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일가를 이룬 개인에 대한 숭배가 가속되었고, 국가권력은 이를 조장했으며, 그들은 근대 국가의 국민 형성에 긴요한 존재가 되었다(97쪽).

‘시대와의 불화’에 깃든 예술지상주의, 예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또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다는 새로운 도덕률이 19세기 유럽에서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으로, 그리고 식민지 조선으로 그대로 수입되었고 또 그것이 특히 한국에서 장기지속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 이 경우 가치전도 현상이 나타난다. …… 문화예술인으로 인정을 받고 자신을 내세우려면 이 ‘시대와의 불화’를 자신의 상표로 내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바로 그 구조화된 정신현상이다(97쪽).

한국 기독교에서 특히 이 환상은 무척 강하다. 포스트모던시대에도 사라질 줄 모른다. 나는 한국 보수 기독교단의 망탈리테를 이중구조로 파악한다. 하나는 기복신앙, 그러니까 이 땅에서 은총을 받아 잘 살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미친 세상이 뒤엎어지고 나와 동료들만이 예수 재림이건 휴거건 어쨌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환상이다. 이런 종교적 심성은 한국 신흥종교 일반에 나타나는 개벽사상과 거의 일치한다(115쪽).

종교적 종말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인류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종말론이 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무엇인가를 당장 시도하지 않으면 물리적 세계인 이 지구가 ‘종말’을 고하리라는 ‘종말론’이다(116쪽).

글래드스턴은 부유한 가문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버리지 않았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그들이 고귀한 인격을 가지고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의 이상주의는 때로는 현실 정치와 맞지 않았고, 그 때문에 여러 번 정치적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 때문에 자신의 원칙을 굽힌 적이 없었다(132쪽).

한국인이 …… 국가 주도의 방역 조치들에 적극 호응하는 것은 서구 언론이 바라보는 것처럼, 이전 권위주의시대에 익숙한 관행 때문이 아니다. …… 감시체제로 회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정부의 다양한 방역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것이다(134쪽).

새로운 지질시대는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로 불린다. 이 이름은 자연의 새로운 변화 원인이 자연이 아닌 인간에게서 나왔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인류세’라는 이름 자체가 미래의 비극을 암시한다(145쪽).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빨리빨리’ 문화는 압축적 산업화뿐 아니라 …… 극심한 경쟁문화, 언론 방송의 선동과 선정주의, 독재정권의 대중조작과 동원문화 등, 이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 전체가 조급하게 성과만을 기대하는 분위기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들어 ‘빨리빨리 문화’도 상당히 변하고 있다. 졸속한 전시행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상시적으로 나타난다. 느림을 추구하는 새로운 경향도 나타난다. 빠름과 느림, 어느 한쪽을 강조할 수 없다. 우리 삶에 이 두 가지 측면이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근대 이후의 문명이 가리키는 방향축은 분명 ‘느림의 문명’이 아닐까 싶다(159쪽).

서구 중심의 세계화가 중대한 변곡점에 이르고 있음을 절감한다. 변곡점을 지났을 때 새로운 변화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서구에 대한 동아시아와 다른 세계의 도전이 더욱더 강렬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서구 중심적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서구 중심적 세계 표준과 척도를 재검토하려는 요구가 분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183쪽).

자기 나름의 식견과 세계관과 철학을 가진 사람, 그리고 이전보다 더 공공선에 투철한 사람이 정치 일선에 등장해야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살펴보아도 그런 사람은 갈수록 보이지 않는다. 대의제 민주주의가위기에 직면했다는 말이 들린 지는 오래다(184쪽).

1980년대 이후 질주해온 세계화 추세가 팬데믹 앞에 무력하게 움직임을 멈췄다. 모든 나라들이 국경을 걸어 잠그고, 20세기 초까지도 전근대의 표징이라 여겼던 ‘격리’를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공간의 정지만이 아니라 시간도 잠시 정지했다(197쪽).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이 모든 사물과 생명체와 다양한 종들이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섭리일지도 모르고, 또는 광대한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우연히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세계를 관통하는 원리였던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탐욕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지구에 대한 우리의 착취와 오염과 파괴를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자연의 경고와 복수에 직면해 우리의 삶의 방식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198쪽)

우리는 이익을 갈망하면서, 이 세상 사물에 푹 빠져 있었고, 속도에 취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부르심에도 멈추어 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전쟁과 지구의 불의에 직면해서도 깨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과 심하게 아픈 지구의 외침도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픈 세상에서 언제나 건강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우리의 길을 흔들림 없이 계속 걸어갔습니다(199쪽).

‘서양 다시 보기’가 필요하고 또 그런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드러난 서구 주요 국가들의 무기력은 근대 국민국가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이들 나라의 실상으로 그대로 드러냈다. 근대 국민국가는 자기 규율적 개인에 기초를 둔 정치적 기제로 알려졌다. 자유, 자율, 공공성 또는 공적 참여는 근대 국민국가의 토대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구의 실패는 그들이 오랫동안 누려온 자

출판사 서평

무릎을 치게 하는 풍성한 읽을거리
알차다. 우리가 흔히 쓰는 개념들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했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다. 영어권에서 1580년대 등장한 ‘근대modern’란 말이 원래 ‘바로 지금’이란 라틴어에서 나왔으며 셰익스피어는 가끔 ‘널리 퍼진’이란 뜻으로 사용했단다(16쪽). 오리엔트란 말은 르네상스 이후 알파벳문화권 바깥의, 서아시아를 가리켰고(68쪽), 서양은 중국에서 사해四海 가운데 한 해양을 뜻하는 말이었다든가(68쪽) 요즘 다양하게 쓰이는 하이브리드hybrid(혼종)는 길들인 암퇘지와 야생 수퇘지 사이에서 난 새끼란 뜻이었다(76쪽)는 이야기가 그런 예다. 과학science의 원래 의미(144쪽)나 이제는 필수품이 된 마스크의 기원(196쪽) 등도 흥미롭다.

내리치는 죽비 같은 비판
예리하다. “샤론의 꽃이 무궁화라고 말하는 목사나,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을 공산주의에 대한 징벌이라고 떠들어대는 목사나, 이스라엘 기를 흔드는 자나, 전국 지방을 구약의 12지파로 나눠 때만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다 비슷한 과대망상증 환자 아닌가. 칸트의 언명대로, 우리는 아직 계몽된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148쪽) 이런 지적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 아닌가. 미국이 과연 ‘자유의 제국’인지 물으면서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그 자신의 무분별한 모험주의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미국이 호전적이고 절박한 방식으로 제국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 세계에서 국제정치 및 경제 지형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188쪽)라고 꼬집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새겨들을 웅숭깊은 성찰
넓고 깊다. 인간과 자연에 관해 넓고 깊게 사유하는 덕분이다. 언택트noncontact니 뭐니 해서 눈에 보이는 변화만 좇는 게 아니라 ‘사회문제의 대외 수출’(26쪽), ‘서양의 실패’에 따른 ‘서양 다시 보기’의 필요성(201쪽)을 역설하는 데서 보듯 큰 흐름을 짚는다. 인류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종말론을 일러주는 대목이 특히 와 닿는다. ‘믿는 자’만이 구원받는 종교적 종말론 대신 당장 모든 사물과 생명체와 다양한 종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당장 탐욕과 착취, 오염과 파괴를 줄이는 데 나서지 않으면 물리적 세계인 이 지구가 ‘종말’을 고하리라는 대목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천생 학자의 진솔한 고백
울림이 크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기에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군데군데 나오지만 솔직하기에 오히려 공감을 자아낸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관건을 산업화라 보고 앞서 산업화를 겪은 영국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서양사를 도피처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고초를 겪은 친구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연구에 전념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토로한다(34쪽). 한국의 서양사학자 중에 가장 많은 저술을 냈다는 지은이의 이 같은 아픔과 내면을 알게 되면 울컥하는 심정이 된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동안 마크 해리슨의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의 번역에 몰입하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감상을 접하면 “역사의 최전선에 사는 한반도 지식인의 모범”이라는 누군가의 평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56121718
발행(출시)일자 2020년 08월 10일
쪽수 208쪽
크기
136 * 201 * 21 mm / 322 g
총권수 1권

Klover 리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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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 중 10점
분명 몇 해 전에도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로부터 공격당했다. 뉴스에서 연일 바이러스 소식만을 접했고, 모든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혹 자신의 삶을 침범하지 않을지 전전긍긍했다. 경험으로부터 많은 걸 배우기 마련이라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 또한 옳았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은 순식간에 지난날을 잊었다. 이렇게까지 오랜 기간 코로나19가 지속될 줄은 몰랐다.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말을 따르면서도 벗어 던질 날이 머지않아 도래하리라고 기대했다. 비정상이 일상을 잠식해 들어갔고, 지금은 섣부른 생각 따윈 하지 않고자 노력 중이다. 시중에 바이러스에 관한 책이 꽤 많이 등장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나오지도 않았을 터이고, 사람들이 좀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법한 분야다. 시류의 반영인 셈인데,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관심이 갔다. 나는 지금 대체 어떠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다양한 책 중 하나를 골라잡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누가 만든 용어인지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집 밖으로 가급적 나오지 말고, 사람 많은 곳은 최대한 멀리하고. 들을 땐 쉽지만 실천까지 쉬운 건 아니다. 하루 종일 집 안에 있길 즐기는 사람조차도 선택 아닌 강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일말의 효과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세상은 잠시 멎었다. 우리처럼 높다란 아파트가 지배적 거주 형태가 아닌 서구 사회에서는 야생에서나 볼 법한 동물들이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까지 내려와 이색 광경이 연출될 걸 보면 인간의 멈춤이 여타 다른 종의 생명체에겐 축복을 선사한 것도 같다. 여러모로 낯선 시대의 출현이다. 
생이 그리 길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이와 같은 일이 처음일 수밖에 없다. 영국사 등을 연구한 저자는 역사 속에서 비슷한 사례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그 일은 이웃 일본에서 벌어진 것과 매우 흡사했다. 자국의 통계치에 포함시키길 거부한 것은 물론이요, 철저한 통제를 운운하며 상륙 허가조차 내어주지 않았던 비정함은 이미 1840년대 영국에서도 발생했다. 포르투갈령 비스타 섬에서 황열병의 공격을 받아 다수의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에클레어호의 승선자들은 선상에 머물며 제 운을 시험해야만 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 크루즈선 탑승자들이 여행객들이라면 에클레어호 탑승자들은 선원이었다는 거 정도다. 격리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었다. 그게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사고와 정반대로 세상은 흘러왔다. 열차의 발명으로 사람들은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과거 같았으면 어느 한 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힘을 발휘했을 바이러스들도 자연스레 열차에 몸을 싣고 신세계로 향했다. 자본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행해진 신대륙 탐사 역시 인류에겐 비극을 선사했다.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의 공격에 속수무책 무너지며 사람들이 체득한 건 낯섦에 대한 공포였다. 저자는 이와 같은 과정에서 각국이 행사한 힘을 주목했다. 서서히 체계를 갖추어 가던 국민국가는 적절하게 통제력을 발휘함으로써 비극적인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다. 국가의 성장과 더불어 자유와 민주 등 개개인이 누려야 마땅한 가치에 대한 인식 또한 성장했는지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국가 단위의, 더 나아가 국제 단위의 사고가 보편화되는데 전염병이 어느 정도 기여 아닌 기여를 한 것만은 사실이지 싶었다. 
얼마 전 중국이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했다. 소수의 해외 유입을 제외하고 자국 내 확진자 발생이 없다는 그 말을 난 신뢰하지 않는다. 초반에 그들은 정보를 통제하느라 바쁜 나머지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외면했다. 그 나라의 지도자는 감염증의 확산을 방조했으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코로나19에 맞서 승리를 거둔 영웅인양 군림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건 비단 그만이 아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공격함으로써 내부의 단결을 다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이미 효과적임이 입증된 그와 같은 전략이 세상이 멈춘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도 누군가에게 의해 어김없이 구사되리라는 건 뻔한 일이다.
이번에도 위기는 곧 기회일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주는 고통이 너무 커서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틈틈이 물어야 할 거 같다. 지구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은 저절로 찾아오는 게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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