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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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무례한 시절을 견디는 모두를 위한
쇤부르크 씨의 농담 같은 진지한 어른 수업
“출근길 비 맞고 있는 강아지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어른으로 늙고 싶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고고하면서도 상냥한 어른의 모습을 복원하고자 기사도라는 전통적 개념을 복원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음 27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인류 정신사를 일별하는 저자 특유의 입담에 넘어가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갑주와 단단한 내면을 가진 어른이라는 존재가 모든 낡은 것을 잔소리로 치부하는 오늘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Alexander von Schönburg
인간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리석고 오만한 시도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생의 비겁함까지 직시할 수 있는 ‘전통적’인 어른이 되고자 일상을 축적하는 글쟁이로 소개한다. 1969년에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베를린판 편집자와 《쥐트도이체 자이퉁》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빌트》에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들 가운데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폰 쇤부르크 씨의 쓸데없는 것들의 사전》 등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번역가.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연극, 영화, 미디어학 및 독문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 《슈뢰딩거의 고양이》,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선택의 즐거움》,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등이 있다.
목차
- 들어가는 글: 어른들이 사라진 시대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
00 나는 왜 오래된 덕목을 27가지로 정리했는가?
01 신중함: 용기는 한 번 더 깊게 생각하는 것이다
02 유머: 삶 앞에 겸손한 사람만이 웃을 줄 안다
03 열린 마음: 우리는 모두 고향 밖에서는 이방인이다
04 자족: 사치는 휘두르는 것이지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05 격식: 매너가 그의 역사를 증명한다
06 겸손: 최고의 오만함은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07 충실: 사랑은 호르몬의 화학작용이 끝난 다음부터 시작된다
08 정조: 솔직하게 순진하지 말고 정직하게 순수하라
09 동정심: 공감은 내가 당신과 같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10 인내: 육식동물의 무기는 송곳니가 아니라 참을성이다
11 정의: 정의는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가가는 것이다
12 스포츠맨십: 경쟁을 두려워하면 패배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13 권위: 모든 팀에는 주장이 필요하다
14 데코룸: 규칙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먼저 규칙에 통달하라
15 친절: 작은 친절이 우리가 서 있는 지옥을 잊게 만든다
16 인자함: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는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비롯된다
17 솔직함: 인간은 솔직함을 좋아하지만 얼마만큼 솔직해져야 하는지는 모른다
18 관후함: 흉내 낼 수 없는 기품은 오직 너그러움에서만 나온다
19 절제: 나를 지배했던 우상과 결별할 때 자유가 시작된다
20 신중함: 어른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존재다
21 쿨함: 사춘기에서 벗어났으면 태연함과 무심함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22 부지런함: 우리는 너무 부지런하기 때문에 게으름에 빠진다
23 극기: 스스로를 대세에 가두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직접 결정하라
24 용기: 전장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포탄이 떨어지는 바로 앞이다
25 관용: 내가 싸우는 적이 나를 증명한다
26 자부심: 나에 대한 긍지는 나에 대해 고민해본 경험에서 나온다
27 감사함: 행복은 구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만 감사하라
나가는 글: 권위가 아닌 품위로, 어른으로의 권유
참고문헌
책 속으로
아서 왕이 마법사 그로머 경에게 “왓 위민 원트”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일 년 안에 찾지 못하면 죽게 되는 저주를 받았다. 모험 끝에 아서 왕은 마녀 라그넬의 소원을 들어주고 답을 얻는다. 마녀의 소원은 원탁의 기사 중 가장 잘생겼다는 가웨인과 맺어지는 것이었고, 수수께끼의 정답은 ‘sovereynte’, 바로 자기결정권이었다. 약속대로 아서 왕은 수수께끼를 풀었고, 라그넬은 가웨인과 결혼한다. 그리고 개구리 왕자 민담과는 정반대로, 가웨인이 라그넬에게 키스하자 저주가 풀리면서 흉측한 마녀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미인으로 변했다. 다만 라그넬은 저주가 절반만 풀렸다고 하면서 가웨인에게 이렇게 다시 물었다. “낮과 밤 가운데 언제 이 모습으로 있을지를 결정해주세요.”
남들에게 보이는 낮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가 만족하면 그만인 밤을 고를 것인가. 이를테면 저 질문은 인생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기도 하다. 가웨인은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낮과 밤 중에 언제 진짜 모습을 드러낼지는 당신이 선택해주세요.” 그러자 남은 절반의 저주가 모두 풀리면서 라그넬은 구원을 받았다. _‘어른들이 사라진 시대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유머는 지성의 표현이다. 구석구석 꿰뚫고 있는 주제에 관해서만 우리는 진정 위트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웃는 99퍼센트의 상황은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거나 당황한 경우다. 하지만 나머지 마법 같은 1퍼센트의 순간, 자기도 모르게 웃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바로 우리가 무언가를 깊게 이해한 순간이다. 유머는 높은 수준의 깨달음을 전제로 한다. 달리 말하면 똑똑한 사람만이 유머러스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유머는 오만과 대척점에 놓여 있기도 하다. 유머 감각이 탁월하면서 자신을 특별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모순이다. 유머를 갖춘 이는 본인을 그다지 진지하게 여기지 않으며, 누구보다도 자신에게서 부조리한 면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하거나 만사를 미리 계획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유머와는 동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삶 앞에서 겸손한 사람만이 웃을 줄 안다’ 중에서
모두가 다양성을 떠들어대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모든 것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주민들이 ‘통합의 노력을 하고 서구적 생활양식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일 때에야 칭찬을 건넨다. 친구의 딸이 무슬림 학생과 친해졌는데 어느 날 친구는 그 학생의 엄마로부터 조심스러운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부탁인즉슨 따님이 먹는 햄 샌드위치 냄새를 자신의 딸이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친구는 도시락에서 돼지고기를 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 소녀는 친구의 딸과 멀어졌다. 그의 집은 ‘슈바인하임(돼지 우리)’ 거리에 자리한데다, 집에서는 ‘뷔르스트헨’(작은 소시지)이란 이름의 애완견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웃음을 참지 못했지만 나는 그 무슬림 가족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빨리 이질성을 벗어던져야 하는 대상으로 이주민을 대하는 독일의 동화 개념은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가 표준화된 거대한 통합의 수프 속에서 형체 없이 녹아 사라지는 풍경을 추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_‘우리는 모두 고향 밖에서는 이방인이다’ 중에서
절제한다는 것은 본래 ‘원한다면 얼마든지 달리 행동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요구하지 않는 것’의 동의어로 ‘절제’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원래의 뜻을 왜곡하는 셈이다. 요구가 없는 사람은 요구할 권리도 없는 것이고, 요구할 권리가 없으면 그 같은 권리를 내세울 수도 없다. 자발적인 단념에 속하는 절제는 원대하고 강하고 영웅적인 것으로, 주인된 위치에서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있다. 즉 오만, 이기심, 탐욕 등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말하며 굴종이나 굴복과는 무관하다. 절제는 우월하고 유리한 입장에서 실천할 때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좀스럽고 자기만족적으로 행동하는 이가 스스로 절제한다고 우긴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뿐이다._‘사치는 휘두르는 것이지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중에서
공감능력이 타인의 욕구를 더 세심하게 고려하는 능력을 뜻한다면 오바마의 주장에는 전혀 문제될 부분들이 없다. 하지만 오바마가 연설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감정이입능력’에 더 가까운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언이 주창한 공감피로 현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공감 번아웃’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선택을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오바마와 리프킨이 열정적으로 호소한 공감이 가진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공감의 대상이 임의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오바마의 비유 대신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바로 라틴어 ‘카리타스’다. 세상을 모두 품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이웃에게 다정하자는 것이다. _‘공감은 내가 당신과 같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중에서
논쟁이 없으면 우리는 냉담한 바보가 된다. 볼츠는 놀이터를 가리켜 현대인이 모험을 경험할 수 있는 최후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놀이터에서조차 남과 경쟁하을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교사들은 아이들 모두가 잘했으며 모두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만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주파수가 맞는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지옥을 견디는 관용과 나 또한 타인에게 지옥일 수 있다는 성찰이다. 그러한 덕목은 오직 싸움을 통해서만 길러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더욱 열렬하게 싸워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져야 한다. 그래야 타인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_‘경쟁을 두려워하면 패배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중에서
디지털에서 린치를 가하는 무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곳에서 희생자를 찾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소셜미디어라는 공간에서 비방이 대규모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가짜뉴스 역시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정말 끔찍한 문제는 위와 아래가 뒤집히며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의 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은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했다. “우리는 일종의 진리부(《1984》에 등장하는 정부기관)에 해당하는 방송국을 설치해야 한다. 방송국의 임무는 유명한 사람이든 보통사람이든, 악독한 범죄자든 무고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온종일 그에 대한 최대한 많은 비방과 거짓을 퍼뜨리는 것이다. 그와 같은 테러를 당한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미디어를 경멸하게 될 것이다.” _‘어른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존재다’ 중에서
슈뢰더 총리를 목격한 누나는 나를 끌고 곧바로 그쪽으로 향하더니 최대한 격식을 차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총리는 누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로부터 등을 돌려 가버렸다. 나 혼자였다면 민망함에 얼음장처럼 굳어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누나는 머리 장식을 몇 차례 만지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리를 옮겼다. 아이러니한 점은 다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생채기를 참고 견디는 사람일수록 상처를 덜 받는다는 사실이다.
상처를 감수한다는 것은 굳이 늘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꺼이 상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를테면 거부당할지언정 ‘너를 사랑해’라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부를 받아들일 용기,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인정할 용기야말로 가장 큰 도전일지도 모른다. 사실 만인의 연인은 만인의 ‘또라이’기도 하다. _‘전장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포탄이 떨어지는 바로 앞이다’ 중에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닥터 루스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는 늘 의식적으로 불행한 일과 좋은 일을 나란히 소개하고자 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에서 크게 다쳐 입원한 시절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그를 품에 안고 신선한 공기와 밝은 햇살이있는 야외로 데려가준 헌신적인 청년에 대한 묘사가 함께 등장한다. 1970년대 초 뉴욕에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벌려고 힘들게 일하던 시절을 소개할 때는 워킹맘으로서 얼마나 힘들고 우울한 경험이었는지를 숨기지 않았지만, 딸 미리엄과 함께한 행복도 같이 떠올렸다. 그는 삶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슬픔 옆에 감사함을 갖다 둘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삶의 비참한 면을 감추고 ‘긍정적 사고’만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의 대변자는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는 누구나 삶에는 여러 면이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불쾌한 경험을 삭제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삶의 가장 앞에, 또 한가운데에 기쁨이 자리하기를 원한다면 슬픈 감정까지 포함한 나만의 감정을 인정하세요. 슬픔을 억누르면 기쁨도 잃게 됩니다.” _‘행복은 구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만 감사하라’ 중에서
출판사 서평
언제부터 클래식은
올드로 희화화되었는가?
안동 선비 이만도는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곡기를 끊는 방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시기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자결했다. “나라에 목숨을 버려야 하는 의리는 딱히 없다. 그러나 망국을 책임지는 선비 하나 나오지 않는다면 그 또한 부끄럽고 미안한 일일 것이다.”
오늘날 ‘선비’라고 하면 한가로운 책벌레나 완고한 원리주의자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실제 선비는 삶의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노력했으며, 실제 삶이 그에 따르지 못하면 최소한 부끄러워했었다.
이와 같이 한 문화권의 준거로 자리하며 자신이 적을 둔 사회를 짊어지고자 했던 어른과 그 바탕이 되는 정신체계는 이름만 각각 다를 뿐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존재해왔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는 앞서 소개한 선비가 그러한 역할을 맡아왔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푸트와, 서구 문화권에서는 기사도나 신사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어른을 상징하는 태도들은 동과 서를 가리지 않고 진작 세상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할 구태로 의미가 변화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자기계발서들과 강연들에서는 자아실현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낯익은 것과의 단절과 전해져 내려온 것들의 파괴를 꼽기도 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전통적인 ‘어른’의 모습을 조금씩 잃어갔고 대신 ‘꼰대’라는 멸칭이 이를 대체하게 되었으며, 옛 지혜들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쉰내 나는 잔소리로 치부되었다. 익숙한 것을 무너뜨리는 데에서 혁신이 시작된다는 실리콘밸리 테크 올리가르히들의 주장이 어느덧 지금을 상징하는 구호가 된 것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이러한 시절의 분위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최적화’하기 위해 보다 개인에 집중하며 낡은 것들을 모두 청소해나갔는데 왜 우리는 점점 더 불안하고 불행해지는 것일까?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갈등이 일상이 된
미성숙한 사람들의 세상
이러한 시도의 배경에는 저자가 내린 두 가지 시대진단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현대 사회가 개인을 과도하게 찬양하는 한편 한 사회의 기준이 되는 보편적 가치와 그것을 바탕으로 운용되는 질서를 부정함으로써 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들을 일종의 병리로 매도하는 이른바 ‘쿨함’과 ‘병맛’에 대한 유행이다. 이에 따라 ‘클래식’을 ‘올드’한 것으로 폄훼하고, 혼돈과 천박함을 솔직함이나 진보적인 태도로 포장하며 태연함과 냉담함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한 배경으로 쇤부르크는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포기당하는 것을 권유하는 오늘날 교육의 지향을 꼽는다. 볼츠는 놀이터를 가리켜 현대인이 모험을 경험할 수 있는 최후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놀이터에서조차 남과 경쟁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게 되었고, 대신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 모두가 잘하고 있으며 모두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만 가르치고 또 응원한다.
그 결과 오늘날 성인들은 타인이라는 지옥을 견디는 관용과 나 또한 타인에게 지옥일 수 있다는 성찰을 경험하는 대신 주파수가 맞는 이들끼리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쏠림현상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또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만든 세상은 갈등이 두려워 싸움을 피하는 대신 서로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더불어 살아야 하는 타인을 일찌감치 포기한 채 자기폐쇄적인 영역으로 침잠해 각자도생하는 ‘죽은 어른들의 사회’가 되었다.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시민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그래서 저자는 오히려 오늘날 제대로 된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상대를 직시하며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는 가짜 어른들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며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충돌은 회피한 채 그저 귀와 눈을 막고 상대를 차단하며 자신의 주장만 외치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가 주목한 덕목이 이미 오래전 낡은 것으로 치부된 기사도다. 여기서 기사도란 전근대적 계급의식으로서가 아니라 현대인이 잃어버린 깊고 넓은 어른의 멋을 가리킨다.
그 옛날 고결한 기사처럼,
권위가 아니라 품위를 가진 어른
기사도caballarius는 13세기 무렵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던 이들인 기사를 통제하기 위해 체계화된 일련의 행동 규범이다. 폭력이나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전범을 제시하며 권유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기사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규범에서 나아가 인생에 대한 미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사도의 핵심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삶에서 조금의 구질구질함도 용납하지 않는 고결함이었다. 요컨대 기사도는 연재 중인 작품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작가처럼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자 하는 각오이자 멋에 대한 집착이기도 했다.
저자가 이러한 기사도에 주목한 까닭은 그것이 고대와 근대, 그리스와 기독교적인 정신이 어우러진 오늘날 서구문화에서 설정한 이상적 태도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쇤부르크는 있는 힘껏 시련을 통과함으로써(성인식) 스스로를 증명했던 강인한 고대인과 이기주의를 넘어 약자와 소수자에 주목하는 자기희생적 종교적 인간을 결합시킨 기사도가 삶에 대한 진지함을 잃어버린 오늘날 복원해야 하는 가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관후함부터 긍지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27가지로 정리된 기사도의 덕목들을 하나하나 재해석하며 우리가 잊고 있거나 또는 과소평가하고 있던 전통적 가치들을 일깨우고, 이를 일상에서 실천해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서 어른이 될 것을 권유하고자 했다.
이렇게 소개하면 무겁고 진지한 글일 것이라고 우려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특유의 필력으로 자신의 박람강기를 일상의 에피소드들에 녹여 유쾌하게 풀어낸다. 나아가 “친구 연인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었다면 친구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할까?”나 “혼자 있는 줄 알고 CF송을 부르며 춤을 추고 있는 동료와 마주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와 같이 우리가 한 번쯤 고민했던 별 것 아니면서도 은근하게 신경 쓰였던 딜레마들을 유머러스한 문답 형식으로 중간 중간 끼워 넣음으로써 환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각 챕터의 마지막에는 해당 덕목에 대한 아포리즘을 제시해 글의 결을 더욱 산뜻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제목에 ‘진지한 농담’이 들어가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어른의 깊이
따분한 일상에서 축적되는 어른의 넓이
하루하루 살아내며 축적되는 성찰을 가리켜 우리는 철학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세월의 더께처럼 삶에 내려앉은 사유를 인생의 태도로 다듬은 이들을 가리켜 어른이라고 한다. 그렇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이테처럼 단단하게 몸에 새겨져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품격이라고 한다. 나아가 그 몸에 스며든 태도의 미학이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에게 받아들여지면 질서가 되고, 질서가 당대로 끝나지 않고 시간을 뛰어넘어 후대로 전해져 내려가면 전통이 된다.
이 책의 원제 “Die Kunst des lässigen Anstands”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귀족처럼 예의를 지킬 수 있는 품격의 기술” 정도가 될 것이다. 다만 ‘격식 없는 품위’라는 모순적인 표현을 저자의 의도에 맞게 다듬자면 ‘숨기려 해도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기품’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즉 굳이 케케묵은 기사도의 전통을 27가지로 나열하는 이 책의 목적은 꾸며내고 구걸해서 자신의 품위를 세우고자 하는 기술을 소개하고자 함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주름살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어른스러움과 그 격에 대한 권유에 있다. 또 모든 오래된 것들이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에 맞선 교양인의 소심한 저항이기도 하다.
기사도든 선비든 모든 문화권에서 이상으로 제시하는 덕목이 추구하는 경지는 ‘높은 인간’의 자세, 즉 어른스러움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어른스러움이란 남들보다 우월한 지성이나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뚝심을 바탕으로 삼은 단단함이 아니라 그 반대로 가진 것도 변변치 못하고 매순간 휘둘리는 처지일 때, 모든 것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어떤 교양이자 긍지다. 나아가 바쁜 출근길,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비 맞고 있는 길고양이에게 슬쩍 우산을 씌워주는 여유이자 기품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 싶지만 살아온 날이 쌓일수록 무수히 타협하며 삶에서 비겁해질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생의 비겁함을 인정할 줄 아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며 지켜낼 수 있는 최선의 품격이란 이러한 스스로의 비겁함과 모자람에 절망하거나 회피하는 것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서 있는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전통으로 지키고자 노력하는 자세 자체일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진담인 듯 농담처럼 권유하는 어른의 품격이자 여유일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55401927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9월 10일 | ||
쪽수 | 456쪽 | ||
크기 |
142 * 218
* 32
mm
/ 730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Die Kunst des laessigen Anstands/Schoenburg, Alexander v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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