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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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연 없는 음식은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는 ‘생선’에 주목하며 그와 엮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로 풀어낸다. 바다를 사이에 둔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저자는 한일 어업사를 딱딱한 이론으로 다루기보다 넙치양식장, 자갈치 시장, 일본 교토, 생존한 일제강점기 어부 등을 만난 인터뷰를 함께 수록해 독자들에게 그간 여타의 역사서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작가정보
저자 다케쿠니 도모야스(竹?友康)는 1949년 효고현에서 태어났으며, 1972년에 교토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현재는 가와이학원의 오사카 분교에서 현대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꼼꼼한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 검색을 무기로,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역사를 더듬어가는 저작을 펴내고 있다. 저서로 《리틀 도쿄 이야기》(1978), 《현대문과 격투를 벌이다》(1995), 《한일 역사 기행-진해의 벚꽃》(1999), 《한국 온천 이야기-한일 목욕문화의 교류를 찾아서》(2004)가 있다.
역자 오근영은 일본어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하룻밤에 읽는 신약성서》를 비롯한 여러 권의 ‘하룻밤 시리즈’와 《이상한 나라의 토토》, 《르네상스의 미인들》, 《슈산보이》, 《반걸음만 앞서 가라》,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 《명탐견 마사의 사건 일지》, 《어머니》, 《생명의 릴레이》, 《휴먼》 등이 있다.
목차
- 책머리에 ㆍ 부산항 국제여객 부두에서 8
제1장 ㆍ 한일 생선 교류의 현재 ─ 수산물 거래 현장을 가다
부산 남항과 부산공동어시장 23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 ─ 한국 수산물 수출입 현황 27
조기와 명태 31
한일 수산물 교류 35
한일 수산물 무역 현장을 가다 41
넙치 양식장에서 44
한국 양식사를 살펴본다 49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한일 수산물 무역 52
제2장 ㆍ 먹장어구이의 생활문화사 ─ 그 기원을 찾아
자갈치시장의 먹장어구이 61
먹장어라는 물고기 66
먹장어구이의 기원을 찾아서 68
니가타에서의 먹장어 조사 70
니가타와 조선을 잇는 ‘선’ 74
부산에서 이루어진 먹장어 이용 연구 76
먹장어구이의 보급 81
피혁 공장을 찾아서 85
자갈치시장 88
부산과 곰장어 92
제3장 ㆍ 임시 수도 부산 피난민의 생활 기록 ─ 한국전쟁 와중에
굳세어라 금순아 99
한국전쟁 ‘1?4후퇴’ 101
흥남 철수 104
판잣집 107
영도다리 115
국제시장 118
배달되지 않은 편지 ─ 북쪽 사람들의 육성 122
어느 실향민 2세의 이야기 ─ 피난민의 생활 기록 125
월남 ─ 평안북도 용천에서 서울까지 127
부산 영도에 정착 ─ ‘요코’ 공장의 일 131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한다 133
실향민 2세로서 139
통일에 대한 생각 143
제4장 ㆍ 명태와 북어 ─ 한국 재래 수산업의 과거와 현재
명태 ─ 한국에서 사랑받아온 생선 149
민간신앙 속의 북어 ─ 그 영험한 힘은 어디에서 올까 156
명태 어업, 자망 작업과 주낙 작업 163
덕장 ─ 북어 제조 공정 173
강원도 속초 ─ 명태잡이와 아바이마을 177
거진항에서 설악산 황태 덕장으로 186
제5장 ㆍ 식민지와 학문 ─ 어류학자 정문기와 우치다 게이타로
정문기, 조선산 어류 연구로의 길 197
시부사와 게이조와의 만남 201
시부사와 게이조와 조선인 유학생 207
조선 농촌 조사 ─ 유학생 강정택 209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과 우치다 게이타로 216
식민지성의 잔재 ─ 정문기의 문제 224
우치다가 말하지 않은 사실 233
유리판에 갇힌 물고기 243
제6장 ㆍ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무엇을 남겼는가 ─ 명태잡이를 둘러싸고
명태 관련 산업 ─ 객주의 지배 체제 254
일본 어업자가 주도한 명태 기선저인망 어업 259
‘조선인어민의 몰락’론을 검토한다 268
개발이란 무엇이었는가 274
제7장 ㆍ 갯장어의 여행 ─ 남해에서 교토로
교토시 중앙도매시장 ─ 기온 축제에서의 갯장어 289
수산업이 왕성한 통영 297
갯장어잡이 현장으로 ─ 경상남도 고성 299
일본 어업자의 조선 이주 303
조선의 오카야마촌 306
활어 운반선 310
공수되는 갯장어 316
마지막 장 ㆍ 해협을 건너는 바람을 타고 ─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해협 도시 시모노세키 323
한일 수산물 무역의 또 한 현장인 시모노세키항에서 327
활어차 2,000킬로미터의 여행 331
A씨와 다닌 영도 336
여행의 끝에서 ─ 동삼동 패총 유적으로 340
바다를 향한 기원 348
후기를 대신해서 357
참고문헌 359
색인 365
책 속으로
놀라웠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어패류가 일본과 한국 사이를 날마다 왕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에 부산에서 먹은 ‘곰장어구이’라는 음식은 부산 명물이라고 하기에 막연히 한국 ‘물고기’라고만 생각했다. 오사카에 있는 해산물 선술집에서 먹은 그 넙치회도, 그때는 생각도 못했지만 한국에서 활어차로 운반해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먹고 있는 생선이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여 내 입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지금까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어패류를 잡는 사람, 거래하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들이 우리 부엌 또는 음식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고기’와 함께 있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14쪽)
그런데 필자는 ‘곰장어구이’라는 요리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철판이나 알루미늄 포일 위에서 ‘볶는’ 조리법을 가리켜 ‘구이’라는 말을 붙이는 데에 의문을 가졌다. 구이는 보통 ‘갈비구이’, ‘생선구이’처럼 식재료를 불에 구워 조리하는 데 붙이는 말이다. 곰장어구이처럼 알루미늄 포일에 볶는 조리법은 분명 ‘볶음’이다. 부산 명물 요리 가운데 ‘낙지볶음’이 있다. 먹장어구이 같은 경우 낙지볶음처럼 조리하는데, 먹장어인 경우에만 어째서 ‘구이’라고 할까. 《13년 시험 보고》에 쓰인 문구에서 이 의문도 풀 수 있었다. 먹장어 요리는 처음에 양념에 잰 먹장어 살을 꼬치구이로 하거나 석쇠에 굽는 ‘구이’ 요리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살에서 나오는 지방분을 좋은 맛으로 살리고자 현재처럼 철판이나 알루미늄 포일 위에다 볶는 요리법이 보급되었다. 그리고 남은 국물로 맛있는 볶음밥도 만들게 되었고, 요리가 다양해졌다. 단지 이름만은 옛날 이름 그대로 곰장어구이로 남은 것이다. 그런 먹장어 요리의 ‘역사’를 상상해본다. (82~83쪽)
명태 관련 산업에서는 북어 20마리를 ‘1쾌’로 하고, 100쾌를 ‘1타’라고 한다. 따라서 1타는 북어 2,000마리가 된다. 덕장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덕장 한 층에 15타(3만 마리)를 건다고 한다(〈정씨 논문〉). 요즘은 슈퍼마켓에서 한 마리씩도 팔지만 예전에는 시장에서 북어를 살 때 1쾌 단위로 샀고, 또 상인이 북어를 거래할 때에는 ‘타’가 기준 단위였다. 참고로 ‘타(?)’에는 ‘말(馬)’ 자가 들어가 있듯이 ‘말 한 마리가 짊어질 만큼의 무게’를 가리킨다. 조선 시대 때에는 함경도에서 서울까지 말 등에 북어를 싣고 운반했던 것이다. 수송 수단이 말이었을 무렵 ‘타’라는 단위는 유통업자들 사이에서 말을 몇 마리 준비하면 되는지 같은 운송 방법과 운송비를 즉시 산출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함께 갖춘 지표였을 것이다. (175~176쪽)
일본인들은 자신이 먹으려고도 아니고, 신께 바치려고도 아니라 단지 조선인에게 팔려고 명태를 잡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명태를 단순한 상품으로 보고 어획량을 최대화함이, 다른 말로 하면 어업의 자본주의화를 발전시켜가는 것이 일본인이 참여한 기선저인망 어업을 통한 남획의 ‘본질’이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남획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앞에 제시했던 〈표 8〉을 보면 〈정씨 논문〉이 발표된 1936년 이후에도 어획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정문기 씨의 걱정이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기우로 끝났음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저 좋아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그 어획량은 새로운 어장 개척과 맞물려 1942년에는 1920년의 3.2배 이상이나 되었다. 그사이 조선인의 인구는 약 1.36배 증가했고, 명태 어획량의 약 20퍼센트가 중국 동북 지방(만주) 방면으로 수출되는 것을 빼고도 조선은 북어 소비가 매우 큰 곳이다. 이는 명태 관련 산업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대량으로 생산해서 대량으로 소비하는’ 자본주의 개발 원리(이데올로기)가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통해 조선에까지 들어왔음을 뜻한다. (277~278쪽)
강수환 씨 이야기에 따르면 한일 국교가 회복되기 전(1965년 이전)에는 한국에서 갯장어를 잡는 행위도, 먹는 일도 지금에 비하면 흔하지 않았지만 일본으로 수출이 재개되면서 동시에 어획량도 늘어 갯장어 요리는 그 지역을 중심으로 여름 보양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보양식으로 먹는 탕, 회, 샤부샤부, 구이, 죽 등 요리 종류도 다양해졌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부터 갯장어는 서울 방면에도 출하되기 시작해서 어획량도 한때 늘었지만, 최근에는 남획 등으로 남해 연안의 어획량이 1,000톤대로 줄어들어 치어 어획 규제가 실시되고 있다. 일본으로의 수출량도 줄고 있다고 하니까 한국 갯장어 어업의 앞날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302쪽)
바다 하나를 끼고서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주우며, 같은 바다에 기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또한 다툼도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사건도 삼키면서 수천 년에 걸쳐 바다를 매개로 형성된 ‘네트워크’가 분명 있었다. ‘조선’도, ‘일본’도 없었던 시대다. 그 왕래를 구태여 ‘한일 교류’ 같은 현재의 사고 틀에 끼워 맞춰볼 필요도 없다. 과거(역사)는 현재에 봉사하기 위해 있지 않고, 현재의 우리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논리’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앞에 스스로를 겸허하게 세우고 과거와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다. 말없는 과거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일 때 과거는 흔들림 없는 ‘생의 광맥’으로 통했던 저 패총의 지층 같은 두께를 갖고 우리의 ‘1센티미터’ 현재에 다양한 의문을 던져올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의 바다에 선을 그은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344~345쪽)
출판사 서평
명태와 갯장어로 엮인 한국과 일본,
음식문화와 수산업으로 엮인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다!
일본인은 대게는 자국산을 최고로 여기지만 갯장어만큼은 예외다. 장어덮밥으로 유명한 일본의 고도 교토의 수산시장에서 여수산 갯장어(はも)는 최고가에 팔린다. 또 우리 식탁에 오르는 도미와 가리비, 멍게 중에서 상당량은 일본에서 양식된 것을 수입한 것이다.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 - 일본 저널리스트가 탐구한 한일 생선 교류의 역사》에서 저자 다케쿠니 도모야스는 생선으로 엮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로 풀어낸다.
일본과 한국을 잇는 길,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2006년 승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한 이래 해마다 승객이 늘어나고 있는 부산-시모노세키 페리에는,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생선도 활어차에 실려 매일 운반된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는 갯장어, 붕장어, 넙치, 피조개, 새조개, 바지락 등이 실려가고,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는 먹장어, 가리비, 멍게, 해삼 등이 실려온다.
이들 수산물 중에서 일본인인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먹장어다. 일본에서는 먹장어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에서 잡히는 먹장어는 대부분 한국으로 들어온다. 현재 자갈치시장 하면 알루미늄 포일을 깔고 구워주는 먹장어구이(꼼장어구이)가 떠오르지만, 거기서 팔리는 먹장어의 상당량은 일본산이다.
일본에서 잡힌 먹장어가 한국으로 오는 대신 한국에서 잡힌 갯장어는 일본으로 간다. 현재 갯장어는 경남 고성, 사량도, 사천, 여수 등 남해에서 잡혀 대부분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운반된다. 교토 중앙시장에서 연간 거래되는 갯장어의 약 4분의 1 이상이 한국산이며, 한국산은 기름지고 뼈가 연하다 하여 고급으로 친다. 조선 시대에는 갯장어의 생김새가 흉물스럽다 하여 거의 먹지 않았다. 이런 갯장어가 1909년부터 활어로 일본으로 실려가기 시작했다. 당시는 1883년 조선과 일본 사이의 ‘무역규칙’에 의해 일본의 어선이 조선의 앞바다에서 마구잡이로 생선을 잡아들이던 시기였다.
부산 자갈치시장의 명물 요리 먹장어구이는 일본산 먹장어로 만들고, 교토의 명물 요리 하모 오토시는 한국산 갯장어로 만든다. 그러나 하모 오토시가 일본의 대표적인 고급 요리인데 반해 먹장어구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민 요리이고, 그 배경에는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일본에서는 먹지 않는 먹장어가 한국에서 대표적인 서민 요리가 된 연유를 찾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기록을 꼼꼼히 살폈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먹장어가 식용이 아니었다. 먹지 않았기에 잡지도 않았던 생선이다. 먹장어 어업은 식민지 수탈의 산물이다. 부산에 먹장어 가죽 공장이 들어섰고 가죽은 일본으로 나갔다.
식민지의 가난한 민중은 그러고 남은 먹장어 고기를 먹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경상남도 수산시험장의 보고에는 부산부, 울산군 부근 하급 음식점에서 먹장어 요리를 내는 곳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모여든 가난한 피난민들이 먹장어구이를 자갈치시장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 신포에서 후쿠오카로
저자가 주목한 또 다른 생선은 명태다. 명태의 일본어 정식 명칭은 ‘스케토다라(スケトウダラ)’이지만 일본인들이 흔히 친숙하게 부르는 이름은 ‘멘타이(めんたい)’로, 한국어 이름 ‘명태(明太)’를 그대로 가져간 것이다.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먹을거리의 하나로 꼽히는 ‘멘타이코(명란젓)’가 한국의 영향을 받은 음식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한국인에게 명태는 일본인이 기원의 의미로 사용하는 도미와 서민들이 흔히 먹는 전갱이나 고등어를 합친 생선과 같다고 보았다. 저자는 제사상과 고사상 위의 북어를 올려놓고, 새 건물을 지으면 상량식 때 북어를 매다는 모습과 ‘북어 껍질 쪼그라들 듯’ ‘북어 값 받으러 왔는가’ 같은 속담을 소개하고, 생태, 동태, 코다리, 북어 등으로 변신하는 명태를 따라 속초와 양양의 덕장을 취재한다.
저자는 18세기 말부터의 한국 어업사를 짚어보며 명태잡이에 얽힌 한국과 일본의 교류 혹은 악연을 살펴보기도 했다. 동해안의 명태잡이는 황해안의 조기잡이, 남해안의 대구잡이와 함께 조선 재래 3대 어업이었다. 조선시대부터 명태를 가장 많이 잡았던 곳이 함경남도다. 서유구(1764~1844)가 지은 《난호어목지(蘭湖漁牧誌)》에는 명태를 함경도에서 잡아 1월에서 3월 사이에 말려서 북어로 만들어 집하지인 원산으로 운반한다고 했다. 《한국수산지》(1909)에 따르면 함경남도의 어항 신포 근해에는 성어기를 맞이하여 어선 1,500척에서 1,600척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19세기 말까지 조선인의 독무대였던 명태잡이에 새로운 어업 기술과 자본을 가진 일본인이 뛰어든다. 저자는 명태잡이의 주도권이 일방적으로 일본인에게 넘어갔을 것이라는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1930년대까지 일본인의 명태 어획량이 전체의 28퍼센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명태잡이에 미친 일본의 영향이 훨씬 나중에, 보다 치명적인 형태로 드러났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필수적인 생선인 명태를, 이제는 러시아와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것이다. 기후 변화와 분단, 남획 등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의 어업 행위, 보다 넓게는 ‘개발 논리’에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먹기 위해서도, 신께 바치기 위해서도 아닌, 조선인에게 팔기 위해서 명태를 잡았다. 이러한 어업의 자본주의화야말로 남획의 뿌리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람을 놓치지 않는 취재와 연구
저자는 한일 양국의 수산업 교류 현황을 꼼꼼한 통계를 통해 짚어보았고, 권말의 참고도서 중 한국어로 된 저서와 논문의 수가 53편에 달할 정도로 한국 수산업의 역사와 문화를 철저하게 연구했다. 그러나 저자의 작업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일본의 교토, 니가타, 시모노세키를 비롯하여 자갈치시장, 기장의 넙치양식장, 경남 고성, 강원의 속초와 양양을 다니며 현재 한국과 일본의 수산업 종사자는 물론, 생존해 있는 일제 강점기의 어부까지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이 책이 한국의 어업사를 연구하려는 이들은 물론, 생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에도 충분한 까닭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98439125 |
---|---|
발행(출시)일자 | 2014년 12월 10일 |
쪽수 | 368쪽 |
크기 |
142 * 215
* 16
mm
/ 48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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