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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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왜 우리는 오래전 교육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까? 왜 우리는 아이가 행복해하지 않는 교육을 강요할까? 스펜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다방면에서 활약한 이력에 걸맞게 인간과 사회 모두 번영할 수 있는 교육의 길을 제시한다. 교육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발판이자, 해법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을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제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작가정보

저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는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다. 교육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정치철학, 인류학, 생물학 등에 관심을 가졌고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한 종합적 철학 체계를 세웠으며, 사회유기체설을 주창하고 사회 발전을 진화론으로 설명했다. 다윈의 아이디어로 알려진 적자생존론을 다윈보다 앞서 주창한 학자이기도 하다. 1848년 [이코노미스트Economist]의 부편집장 출신인 그는 이후 1853년부터 본격적인 저술 활동에 돌입했다. 1860년부터 36년간에 걸쳐 집필했으며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아우르는 《종합 철학 체계The Synthetic Philosophy》 등이 대표작이다.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당시 교육제도에 의문을 가졌던 그는 교육제도에 대한 해결책을 이 책에 담았다. 페스탈로치의 실용주의 교육 철학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쓸모없는 지식을 강요하는 교육과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책은 미래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지식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고민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명저로 꼽히지만 아쉽게도 한국에 번역돼 소개된 바는 없다.
번역 유지훈
역자 유지훈은 《베껴쓰기로 시작하는 영작문》 등 유명 어학서의 저자이자 수많은 책을 번역한 전문번역가다. 정치, 종교, 신학, 미래학, 자기계발, 경제경영, IT에 이르기까지 관심 분야가 넓은 출판 기획자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왜 세계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가》, 《성공의 심리학》, 《좋은 사람 콤플렉스》 외 다수가 있다.
목차
- 초판본 서문 ㆍ5
Chapter 1 가장 중요한 지식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ㆍ11
‘커리큘럼’을 재구성하다 ㆍ17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교육 ㆍ42
왜 과학을 가르쳐야 하는가? ㆍ57
가장 중요한 지식 ㆍ77
Chapter 2 지(知): 앎의 본질에 관하여
교육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ㆍ83
페스탈로치에 대한 고찰 ㆍ101
개념에서 실용으로 ㆍ114
진화하는 교육 ㆍ138
Chapter 3 덕(德): 도덕적 교육에 관하여
교육제도의 병폐에 대하여 ㆍ147
왜 도덕교육은 실패하는가? ㆍ152
반사작용으로서의 교육 ㆍ160
체벌의 진짜 문제 ㆍ165
생각의 전환 ㆍ177
Chapter 4 체(體): 체육의 필요성에 관하여
살찌지 않는 아이들 ㆍ203
사료로 전락된 식단 ㆍ209
금욕주의의 거짓된 매력 ㆍ227
숙녀다운 여성은 운동하지 않는다? ㆍ235
위험한 교육법 ㆍ241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야 할 때 ㆍ261
책 속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는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원대한 과제이므로 결국은 교육이 가르쳐야 할 바다. 완성된 삶을 준비하는 일은 교육이 감당해야 한다. 그렇기에 합리적인 교육과정을 위한 방안은 이 같은 기능을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21페이지)
책으로 습득하는 지식이 교육이라는 짧은 생각을 가진 부모는 일찌감치 어린 자녀의 손에 입문서를 쥐어 주어 크나큰 피해를 초래해 왔다. 책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직접적 수단이 없을 때 간접적으로나마 지식을 얻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들은 몸소 체득한 사실 대신 간접적으로 습득한 사실을 전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책은 스스로 볼 수 없는 지식을 타인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수단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47페이지)
여기서 현행 교육제도의 폐단이 확연히 눈에 띈다. 화초를 가꾸지도 않으면서 꽃을 얻어 보겠다는 심사랄까. 품격에 안달하지만 본질은 망각한 격이다. 현 교육제도는 자기 보존을 위한 지식은 전수하지 않고, 생계를 잇는 데 필요한 지식은 매우 기본적인 원리만 제공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지식은 스스로 습득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실정이다. (59페이지)
단순히 기억을 훈련한다는 점만 따지자면 과학교육이 언어교육보다 더 나은 점은 없을 것이다(둘 다 비슷하다). 그러나 과학으로 함양되는 기억력의 종류는 월등히 방대하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살펴보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개념이 서로 연결되어 대부분 ‘우연한’ 사실에 대응되는 반면, 과학은 머릿속에 자리 잡은 개념이 서로 연결되었다가 대부분 ‘필요한’ 사실에 대응된다. (70페이지)
다른 콘텐츠와 결부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고립된 규칙은 번번이 망각되지만, 규칙이 단편적으로 밝힌 원리는 이해력과 만나면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된다. 규칙을 배운 아이는 이를 벗어나면 헤매지만, 원리를 배운 아이는 새로운 문제도 곧잘 풀어낼 수 있다. (89~90페이지)
우리는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능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아이에게서 떼어 놓은 것도 모자라, 아이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개념을 강요하여 지식에 대한 싫증을 키우고 있다. 또한 아이가 자율적으로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려 하니 위협과 체벌이라는 무력을 써서 지식을 주입시키고, 정작 관심 있는 지식의 학습은 막고 소화할 수 없는 지식을 꾸역꾸역 채우기도 하였다. (110페이지)
아이에게 뭔가를 일일이 들려주고 보여 주는 것은 관찰하는 요령을 일러 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관찰한 지식을 단지 수용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자기교육의 효과를 약화시키는 작태에 불과하다. 또한 성취감에서 비롯되는 쾌감을 빼앗고, 매력적인 지식을 정형화된 수업으로 주입하는가 하면, 실물교육을 두고 흔히 느끼는 무관심과 혐오증을 조장하기도 한다. (120~121페이지)
교육을 자기교육과정으로 만들고, 유쾌한 교육과정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학교를 졸업해도 교육을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학업이 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면 부모와 교사의 강요에서 벗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학업이 즐겁다면 누가 감시하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지 않겠는가? (142~143페이지)
그릇된 행동에서 자연스레 비롯되는 불편한 결과를 감내한 아이라면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는 불평을 늘어놓을 리 만무하다. 인위적 체벌을 당한 아이라면 모를까. 어른도 그럴 것이다. 예컨대, 옷이 어떻게 되든 산울타리를 헤집어 놓거나 진흙탕에서 뒹구는 사내아이가 있다고 치자. 이때 매를 든다거나 취침을 강요한다면 아이는 푸대접을 받았다며 억울해할 것이다. 때문에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이 받은 상처만 되뇔 공산이 크다. 그러나 잘못을 될 수 있는 한 확실히 바로잡는다면 어떨까? (온몸에 묻은 진흙을 닦아 낸다거나 찢어진 옷을 꿰매는 등의 행동을 통해서 말이다.) 불편한 결과를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172페이지)
출판사 서평
통찰의 눈으로 교육을 재해석하다
19세기 대표 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교육론’을 다룬 국내 첫 번역서
우리는 아이가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이는 왜 배우면서도 행복해하지 않을까? 기억하고 있던 것도 금세 까먹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다가도 손을 놓아버릴까? 아무리 잘못을 일러줘도 그것을 고치지 않을까? 우리는 학교라는 틀에 갇혀 그 이상의 교육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이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듯, 학교만의 문제 또한 아니다. 단순히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교육이 아니기에 우리는 배움 그 이상의 것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이 교육을 놓고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다. 1800년대 후반 남다른 시각으로 미래의 교육 현실까지 꿰뚫어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이다. 영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허버트 스펜서는 생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학자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과학부터 심리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방대한 영역에서 활약했던 그는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그 논의가 이 책《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담겨 있다.
허버트 스펜서는 당시의 교육 문제가 겉모습에만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즉,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교육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교육이 품위가 없고 무지몽매하다는 증거로 다양한 지식의 상대적 가치가 논의된 적이 없다는 점을 든다. 그는 관습이나 선호 혹은 선입견이라는 울타리 안에 교육이 갇혀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정작 배워야 할 지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기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지식을 공부해야 한다. 스펜서는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척도는 인간의 복리(福利)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교육의 지향점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문제로 규정하였다. 이를 기준으로 스펜서는 삶에서 비중이 큰 것부터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개인의 안전에 관한 것이 우선이며, 여가에 관한 것이 가장 나중에 적용된다. 또한 자녀보다는 자기를 위한 교육, 국가보다는 가정을 위한 교육을 중요시했다.
이처럼 생활에 이로운 교육을 중시했던 스펜서에게 당시의 교육과정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는 생존을 위한 교육으로서 ‘생리학’을, 삶에 보탬이 되는 교육으로서 ‘과학’을 강조한다. 물리학, 수학 등 과학 분야야말로 합리적인 지식의 토대가 되며 생계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한편, 모든 교육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걸음마를 떼고 스스로 말을 배워 가듯이 교육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배워 가야 한다.
그러나 교육은 여전히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가 무언가에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는 과정은 그 어떤 교육법보다 효과적이지만, 어른들은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음식을 떠먹이듯 지식을 전달한다. 심지어 그러한 지식은 어렵고 복잡하다. 마치 그림을 그리기 전에 점과 선의 정의를 가르치는 격이다. 아이는 당장이라도 어딘가에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어른은 지식을 전달하느라 아이의 의사를 가로막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는 재미가 없으니 배움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흥미를 잃어버리니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의 무지를 아이 탓으로 돌리지만, 실제로 아이의 무지는 어른의 무지 때문에 일어난다.
어른의 무지 중 다른 하나는 아이를 훈육하기에 앞서 자신 먼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어른들이 잘못된 훈육법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잘못했다고 해서 윽박을 지르거나 짜증을 내는 부모나 교사는 과연 아이의 훈육을 위해서 그리했을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정작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는 어른은 마치 나라를 다스리는 왕처럼 군림하며 아이를 자신이 지배해야 할 백성으로만 보는 격이다.
스펜서는 무엇보다 도덕교육은 자연적 ‘벌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가 개입하지 않고, 잘못의 결과를 통해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잘못을 하면 잔소리를 하거나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간에 효과적일 뿐 부모의 관심이 사라지면 아이는 잘못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매일 늑장을 부려 친구들을 기다리게 하는 아이라면, 얼른 나갈 준비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말고 그것의 자연적 결과, 즉 약속에 늦어 친구들과 놀지 못하는 것으로 벌칙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 벌칙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 잘못을 줄이게 되고, 부모와의 관계 또한 손상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식으로 어른이 대신 벌칙을 받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머릿속에 지식을 넣느라 바빠 체력을 단련하지 못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스펜서는 숙녀다운 여성을 강요하며 여학생에게 체육을 금지하던 당시 교육 관행을 지적한다. 그는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훌륭한 정신을 갖출 수 있음을 알았다. 또한 당시부터 실시되었던 10시간이 넘어가는 수업시간을 경고한다. 스펜서는 공부를 강요하며 운동을 막는 수업과정을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체조 같이 온 몸을 쓰지도 않을뿐더러 재미도 없는 수업을 도입한 교육의 모순을 지적한다.
한편 스펜서는 잘못된 식단을 경계한다. 당시에는 고기를 지양하는 채식주의가 유행하였는데, 스펜서는 그것이 오히려 아이의 몸을 부실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지나치게 절제된 식단이 오히려 과식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소식으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아이는 무방비한 상태에서 입에 계속 무언가를 집어넣고 말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식단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 아이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교육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19세기 교육과정의 병폐를 안고 살아간다. 아이는 여전히 불행하고, 부모는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교육은 유행하는 사상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하기에 좁은 시각으로 살펴서도 안 된다.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막막한가? 그렇다면 이제 스펜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책속으로 추가
한 식구의 아이들 사이에서 혹독한 냉전이 벌어진다는 것은 어른에게서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다는 증거이며, 직접적으로는 어른이 본보기를 잘못 보인 탓도 있고, 체벌을 당하고 꾸지람을 들은 뒤에 느끼는 간접적인 보복심리 때문일 수도 있다. (184페이지)
교육 분야에서 거론되는 최악의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부모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사법제도의 일관성이 없으면 범죄가 증가하듯, 가정 또한 벌칙을 망설이거나 벌칙에 일관성이 없을 때 비행이 늘어난다. 아이를 매번 다그치지만, 그에 걸맞은 대책이 없는 엄마는 벌칙을 성급히 세웠다가 나중에 이를 후회하거나, 잘못을 엄하게 꾸짖다가도 기분이 좋아지면 눈감아 주는 식으로 자신과 아이의 불행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셈이다. (194페이지)
아이의 과잉교육이 위험하다는 점은 의식하면서도 청소년의 과잉교육을 두고는 이를 거의 의식하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부모라면 조숙한 아기가 겪어야 할 부작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게 마련이다. 또한 너무 일찍부터 아이의 머리를 자극하려는 사람에 대한 비난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조기교육은 결과를 아는 만큼 두려움도 커지게 되어 있다. (248페이지)
기본정보
ISBN | 9788998156589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6월 20일 | ||
쪽수 | 264쪽 | ||
크기 |
152 * 225
* 20
mm
/ 501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Education: intellectual, moral, and physical(1860)/Herbert Spencer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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