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한국 근대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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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2)
작가정보
목차
- 머리말
5장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
6장 삼국간섭과 을미사변
7장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수립
8장 독립협회의 활동
9장 의화단의 난과 러시아의 만주 점령
10장 영일 동맹과 러일 협상
11장 러일전쟁과 일본의 대한제국 점령
12장 포츠머스 조약과 을사보호조약
13장 대한제국의 멸망
14장 국권상실과 독립운동
책 속으로
갑신정변 이후 1894년 청일전쟁 발발까지 10년간은 청이 조선을 ‘감국’한 시기였고, 이 시기에 원세개는 사실상 ‘조선총독’이었다. 그는 정치에서만이 아니라 경제부문에서도 통제를 강화하여 조선의 육상 전신선을 청에서 관리하게 했고, 조선과 일본 사이에 부설된 해저전선도 통제하고자 했다. 또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차관 공여를 막았다.
이 기간에 일본은 두 가지 이유로 조선을 지배하는 청을 견제하지 않았다. 첫째는 일본이 청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본이 청의 역량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장, p. 16)
19세기 후반에 한국은 근대화라는 과제를 안게 되는 동시에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직면했다. 외래 자본주의의 경제적 침탈은 한국의 정상적 경제성장을 막았을 뿐 아니라 결국 한국이 주권을 상실하는 데 주된 원인이 됐다. 조선은 1876년에 쇄국정책을 포기한 뒤로 30년도 안 되는 동안에 산업화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자원의 대부분을 외세에 빼앗겼다. 그중에서도 광산이권 부분의 침탈로 인한 손실이 막대하여 민족자본의 원천을 고갈시켰다. 조선은 아관파천으로 일본의 침략을 견제했으나 새로이 강화된 러시아의 경제적 침략에 시달렸다. (8장, p. 202)
1902년 1월 30일 영일 동맹이 체결됐다. 이 동맹의 유효기간은 5년이었다. 영국보다 일본에 유리한 영일 동맹이 체결된 것은 이토가 러시아와 협상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말하자면 양다리를 걸친 셈이었는데, 이것이 효과를 내주었다.
영일 동맹은 여전히 최대의 해군국가이자 상업국가인 영국과 신흥지역의 강국인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에 공동으로 대응하게 된 것을 의미했다. 이때 영국은 가장 절실한 해군력의 협조를 일본을 통해 확보했으며, 일본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동의는 아니지만 한반도에서의 권익을 보장받았다. 이로써 일본은 만주와 한국 문제를 놓고 러시아에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10장, p. 260~261)
조선의 주권 수호에 열성적이던 미국 공사 알렌은 조선 위정자들의 부패와 무능에 지쳐서 끝내는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포기했다. 알렌은 이재황에 대해 “이 나라의 커다란 해충이 돼있고, 저주의 대상이 돼있으며…로마가 불타는 동안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네로 황제처럼 무희들과 놀고 있다”고 썼다. 1904년 1월 4일 알렌은 “만일 우리가 감정적인 이유로 이 ‘제국’의 독립을 지원하려 한다면 큰 과오를 저지르는 게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치할 능력이 없다. 한국은 일본에 속해야 한다. 독립이라는 허구를 일본에 대해 더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내용의 견해를 국무성의 록힐에게 보냈다. (11장, p. 287)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강탈한 이후에도 일본의 대한제국 식민지화는 한국 민중의 저항으로 순조롭지 못했다. 일제는 한민족의 격심한 민족적 저항에 부닥쳐서 4년에 걸쳐 군사작전을 벌여야 했다. 평화적으로 합병이 이루어진 듯한 모양을 갖추기 위해 일본은 이 전쟁을 비밀로 했고, 그 군사작전 기록인 ‘조선폭도토벌지(朝鮮暴徒討伐誌)’도 비밀로 취급했다. 공식 기록에는 전쟁으로 취급되지 않았지만 틀림없는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조선 왕조가 국가 수호를 위한 전쟁이라고 선포하지 않아 민중 차원의 전쟁이 됐다. 조선 왕조의 이러한 태도는 후일 한국의 독립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13장, p. 391)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세계사와 유리된 종래의 한국 근대사 기술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틀 속에서 한국 근대사를 다룬 책이다. 1권은 19세기의 동아시아 정세를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갑신정변을 거쳐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1885년)까지, 2권은 그 뒤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일본의 한국 합병(1910년)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비슷한 시기에 서양의 압력을 받아 개항했다. 아편전쟁과 애로 호 사건을 계기로 청이 먼저 개항했고, 이어 일본과 조선이 개항했다. 그 뒤로 일본은 빠르게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한국과 중국은 근대화가 지연되어 서양 열강에 의한 침탈, 국권 상실의 굴욕, 그에 따른 고통을 겪었다. 이 책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전개된 그러한 근대 동아시아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 기간의 한국사는 다음과 같이 전개됐다.
개항을 전후하여 개화파와 쇄국파의 갈등이 가열되더니 결국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몰락한다. 이때 청이 조선에 강력한 내정간섭을 함으로써 조선은 근대화가 지체되고 주권마저 위협받게 된다. 내정의 문란이 극심해지자 1894년 농민들이 거국적으로 봉기한다. 이를 진압할 능력이 없는 조선 조정은 청에 파병을 요청한다. 이에 일본도 톈진조약에 따라 출병하여 청일전쟁을 일으켜 일거에 중국 세력을 조선에서 축출한다. 러시아 주도의 삼국간섭으로 조선에서 세력이 약화된 일본은 을미사변(민비 시해)을 일으켜 세력회복을 도모하지만 아관파천으로 오히려 세력이 더 약화된다.
열강 간 세력균형이 이루어져 자주독립 노선을 추구할 수 있게 된 조선은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하고 독립협회의 주도 아래 근대화와 자주화를 꾀한다. 그러나 왕조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고종과 민중의 권리를 신장시키려는 독립협회의 노선이 충돌했고, 결국 독립협회는 강제로 해산된다. 이즈음 중국에서는 의화단의 난으로 청이 열강의 반식민지가 되고, 만주는 러시아가 점령한다. 이에 만주를 놓고 러시아와 갈등하던 일본이 영일동맹을 배경으로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는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 강탈당한 대한제국은 헤이그 특사 파견 등 비밀외교로 주권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으나 1910년 합병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지은이는 이와 같은 한국 근대사를 사료를 직접 인용하면서 가급적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서술했다. 동양과 서양의 상호영향이 한국 근대사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리고 한국 근대사의 각 사건이 동아시아 전체의 근대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부각시켰다. 이런 방식의 기술을 통해 한국 근대사에서 과도한 자기 민족 중심주의를 걷어내고자 했다고 지은이는 밝혔다. 사료를 많이 인용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당대의 분위기를 스스로 느낌으로써 한국 근대사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 일찍 근대화하여 국력을 키운 일본의 대륙침략 야욕이라는 외부적 요인만에 의한 것이었던가? 그렇지는 않다. 한국 스스로가 일본의 식민주의 만행을 불러들인 측면도 있다. 특히 조선 왕실과 지배계층이 무능하고 부패하여 국권을 지킬 수 없게 된 점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필요하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가혹한 수탈행위를 자행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 내부의 책임도 분명히 가리고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근대사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은이가 지적한 대로 한국인들은 1948년 건국 이후 불리한 조건과 환경을 극복하고 경제성장과 민주화, 국력신장과 문화발전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을 이루면서, 근대에 겪은 외세에 의한 침탈과 그로 인한 피해에 기인한 트라우마 증세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러나 교과서든 일반 교양서든 우리의 역사책에 기술된 근대사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은 방금 말한 트라우마 증세를 떨쳐버리고 성숙한 역사관을 갖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도의 하나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기본정보
ISBN | 9788997751051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08월 20일 |
쪽수 | 442쪽 |
크기 |
153 * 225
* 30
mm
/ 64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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