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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자(글) · 곽형덕 번역
섬앤섬 · 2016년 0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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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상세 이미지

수상내역/미디어추천

아쿠타가와가 1921년 3월 하순부터 7월 상순까지 중국을 여행한 후 연재해 펴낸『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소설가가 아니고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독특한 관찰과 여행자가 아니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시정의 풍경 또한 다채롭게 기록돼 있다. 격변하는 역사의 대전환기에 중원 곳곳의 명승지와 거리의 풍광을 포착해냈다.

작가정보

저자(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892년 도쿄에서 태어나 다이쇼 시대에 활약한,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재학생 시절 동기들과 함께 창간한 잡지 《신사조》에 〈코〉를 발표해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으며 단번에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동서양의 역사와 고전에서 가져온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인간의 모순된 심리, 예술을 향한 열망 등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다. 초기에는 〈라쇼몬〉, 〈마죽〉 등 인간 내면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그려낸 작품이 많고, 중기는 〈지옥변〉, 〈희작삼매〉 등 자신이 추구한 예술지상주의가 드러나는 작품이 많다. 만년에는 〈어느 바보의 일생〉, 〈톱니바퀴〉, 〈갓파〉, 〈암중문답〉, 〈점귀부〉 등 주로 자기 고백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삶에 대한 회의, 발광에 대한 불안, 잦은 발병 등으로 결국 서른다섯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후, 친구이자 문예춘추 대표였던 기쿠치 간이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하였고, 지금까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매년 신인 작가에게 수여되고 있다.

번역 곽형덕

일본어문학 연구자 및 번역자로 명지대 일어일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지원사업 ‘포스트제국의 문화권력과 동아시아’ 연구에 일반연구원으로 참여 중이다. 저서로 『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2017)이 있고, 편역서로는 『대동아문학자대회 회의록』(2019), 『오키나와문학 선집』(2020)이 있다. 번역서로는 『무지개 새』(메도루마 슌, 2019), 『돼지의 보복』(마타요시 에이키, 2019), 『지평선』(김시종, 2018), 『한국문학의 동아시아적 지평』(오무라 마스오, 2017),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2016), 『김사량, 작품과 연구』(1-5, 2008-2016) 등이 있다.

목차

  • 추천사 6
    자서自序 15

    제1부 상해를 거닐며 남기다 上海遊記
    해상19 / 첫 번째 일별 上 22/ 첫 번째 일별 中 25 / 첫 번째 일별 下 28 / 병원 31 / 성안 上 34 / 성안 中 37 / 성안 下 40 / 극장의 무대 上 43 / 극장의 무대 下 46/ 장병린 51 / 서양 54 / 정효서 58/ 죄악 62 / 남국의 미인 上 66/ 남국의 미인 中 69 / 남국의 미인 下 73 / 이인걸 78 / 일본인 81 / 서가회 85/ 마지막 일별 90

    제2부 강남을 떠돌며 남기다 江南遊記
    머리말 95 / 기차 안 98 / 기차 안 ?앞의 글 이어받음 100/ 항주의 하룻밤 上102 / 항주의 하룻밤 中 106/ 항주의 하룻밤 下110 / 서호 一 113 / 서호 二 118/ 서호 三 122 / 서호 四126 / 서호 五 130 / 서호 六 134/ 영은사 138 / 소주 성안 上 142/ 소주 성안 中 146 / 소주 성안 下150 / 천평과 영암 上 154 / 천평과 영암 中 158/ 천평과 영암 下 162 / 한산사와 호구 166 / 소주의 물 170/ 객잔과 주잔 174 / 대운하 177 / 옛 양주 上 181 / 옛 양주 中 184/ 옛 양주 下 187 / 금산사 191/ 남경 上 195 / 남경 中199 / 남경 下 203

    제3부 장강을 거슬러 오르며 남기다 長江遊記
    머리말 209 / 무호蕪湖 210 / 소강 214 / 여산 上 218 / 여산 下 222

    제4부 북경에서 北京日記抄
    옹화궁 227/ 고홍명 선생 230 / 십찰해 233 / 호접몽 236 / 명승 242

    제5부 소소한 단상들 雜信一束 247

    작품 해설과 옮긴이의 말 255

추천사

  • 독자는 작가 아쿠타가와의 중국에 대한 동경과 건강상의 이유를 원인으로 하는 좌절, 식민주의로부터 이탈할 수 없는 특파원 아쿠타가와의 언설 전략이라고 하는 두 가지 층위를 주의 깊게 살펴가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나아가 말하자면 작가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을 둘러싼 이러한 저간의 정황을 간과한다면 이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 《중국기행支那遊記》의 다층적인 깊이와 매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910년대부터 20년대에 걸쳐서 활약한 단편소설 작가이지만, 살아 있을 당시에도 아시아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어 실력이 출중한 독자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 그 정도로 많았던 것은 당시 일본이 식민지를 만든 결과라 하겠습니다. 다만 아쿠타가와가 1927년에 자살했을 때, 그 형이상학적인 죽음을 모방한 청년은 일본 만이 아니라 조선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아쿠타가와가 그 정도로 강력한 언설言說 생산력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 그가 구사한 언어를 시대 속에 다시 놓고 진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이 책은 아쿠타가와의 눈에 비친 1921년 중국 사회의 단면과 그가 마주친 단편 단편 일상의 세부가, 생생한 빛깔이 입혀진 소설가의 필치로 기술돼 있다. 그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시대의 격렬한 변화로 인해 현재의 독자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게 보일 수 있는 경치도 적지 않다. 또한 소설가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신기한 관찰과, 여행자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을 시정의 풍경도 많이 기록돼 있다. 격변하는 역사적 대전환기에 중국 각지의 명승지와 거리 풍광의 순간 순간을 포착해 언어로 펼쳐놓은 아쿠타가와의 글은 잃어버린 옛 풍모와 역사적 변천을 알려주는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 냉철한 관념론자로 알려진 아쿠타가와가 때로는 일본의 극우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강한 ‘양이정신攘夷精神’에 휩싸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1930년대 이후 일본 지식인들의 행동을 예후豫後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아쿠타가와의 중국기행은 단순히 1920년대의 중국의 실상만이 아니라, 그들이 중국을 경유해서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귀중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과거 중국에서 아쿠타가와는 중국을 멸시하는 내용의 기행문을 쓴 작가로 여겨져 부정돼 왔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쿠타가와가 《중국기행》에서 1920년대 초기 중국을 사실적으로 명확히 파악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높아지고 있다. 《중국기행》을 중국에서 처음으로 완역한 것으로 알려진 진생보陳生保 교수는 중국어 번역본 ‘해설’에서 아쿠타가와가 당시 중국과 중국인이 겪고 있던 고난을 적확한 기록으로 남겨준 것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쿠타가와는 중국을 사랑해 중국 인민이 겪고 있던 고난에 동정하면서 기행문을 썼다고 평가했다. 진생보 씨의 평가에는 아쿠타가와를 다시 발견한 것에 대한 기쁨이 생동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일본 근대문학을 상징하는 작가 아쿠타가와가 기록한 1백 년 전 중국의 생생한 풍경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요절한 천재작가,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 문학상’의 주인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유일의 해외기행문 [중국기행] 국내 최초 번역 소개


이 책은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눈에 비친 1921년 중국 사회의 단면과 그가 마주친 단편 단편 일상의 세부가, 작가 특유의 빛깔이 입혀진 소설적 필치로 생생하게 기술돼 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시대의 격렬한 변화로 인해 현재의 독자에게는 오히려 낯설어서 신선하게 보일 수 있는 경치가 적지 않다. 그리고 소설가가 아니고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독특한 관찰과, 여행자가 아니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시정의 풍경 또한 다채롭게 기록돼 있다. 격변하는 역사의 대전환기에 중원 곳곳의 명승지와 거리의 풍광을 포착해 특유의 언어로 펼쳐 놓는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은 잃어버린 이 세계의 옛 풍모와 역사의 변천을 알려주는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삶을 마감함으로써 당대 세상을 충격에 빠트렸던 작가 아쿠타가와
지금으로부터 꼭 95년 전인 1921년 3월 23일, 꿈에 그리던 중국에 첫 발을 내딛는다.


괴테가 작가로서 새 출발을 다짐하며 늘 동경하던 고전의 고향 로마를 찾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듯 아쿠타가와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갈망하던 동양 고전의 무대 중국 여행을 전업작가의 길목에서 마침내 결행한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 일이다. 이 책은 촉망받는 젊은 작가의 간절한 소망의 결실임과 동시에 꿈꾸던 이상향의 퇴락한 잔영, 밀려드는 새로운 시대의 격랑에 대한 관찰기이자 증언록이며, 이후 변모하는 작품들의 한 근원이기도 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근대 일본인 작가 가운데서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애독된 작가 중 한명이다. 그것은 그가 아시아에 공통된 전통적인 문화 교양을 지니고 구미歐美 문학과 깊이 있게 접촉함으로써 현대문예의 소양은 물론 세계적인 시야를 확보한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창작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등의 문제는 아쿠타가와가 전 생애에 걸쳐 추구하고 전개했던 문학의 주제였으며, 일찌감치 유명 작가가 된 젊은 시절부터 그는 동서의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문화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고전 한시와 한문소설의 주 무대인 서안, 소주, 항주, 서호, 여산, 장강 등지를 찾아 여행하는 동시에 당대 중국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알기 위해 북경, 상해 등지의 중국의 신구新舊 지식인들과 함께 대담하고 고뇌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서구 열강의 욕망 앞에 속수무책으로 해체되는 중국의 현실 속에서 같은 동양인으로서 비애와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중국인들에게 비난과 배척의 대상이 되고 있는, 괴물 ‘모모타로’로 변해가는 일본의 모습 앞에 갈등하기도 한다.

“이인걸 씨가 말했다. 지금 중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공화共和에 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복벽復?에 있지도 않다. 저반의 정치 혁명이 중국 개조에 무력한 것은 과거에 이미 증명됐으며, 현재가 또한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들吾人이 노력해야 함은 사회혁명 단 한 길뿐이라는 것. 이것은 문화운동을 선전하는 ‘젊은 중국’ 사상가가 큰 소리로 외치는 주장이다. 이인걸 씨는 또 말했다. 사회혁명을 가져오려면 프로파간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술한다. 또한 각성하는 중국의 사인士人은 새로운 지식에 냉담할 수 없다. 아니, 지식에 굶주려 있다. 그렇지만 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서적과 잡지가 부족한 것을 어찌하는가. 나는 이 씨에게 단언했다. 지금 시급한 일은 저술에 있다고. 어쩌면 이인걸 씨가 말한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대 중국에는 민의가 없다. 민의가 없으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그 성공을 말할 수 있는가. 이인걸 씨가 다시 말한다. 종자種子는 가지고 있으나 만 리가 다만 황무지. 노력하더라도 힘이 모자라는 것을 통탄한다. 우리들의 육체가 그 노력에 견딜지 말지, 근심 없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다, 하고 말하고 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러한 이인걸 씨를 동정한다. 이인걸 씨는 또한 말했다. 최근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은행단의 세력이라고. 그 배후 세력을 묻지 않고, 북경정부가 중국은행단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는 경향이 있음은 부정하기 힘든 사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의 포화를 집중해야 할 표적을, 그 은행단으로 정하면 된다. 나는 말했다. 나는 중국의 예술에 실망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소설, 회화 둘 다 아직 논할 정도가 못 된다. 그렇지만 중국의 현재 상황을 보자니, 이 땅에 예술이 흥륭하는 것을 기약하는 것, 그 기약이 오히려 그릇됨과 같다. 그에게 물었다. 프로파간다 수단 외에 예술을 고려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가 하고. 이인걸 씨가 답했다. 없음에 가깝다.
내 비망록은 여기까지이다. 하지만 이인걸 씨가 말하는 것은 자못 시원시원했다. 함께 간 무라타 군이 “이 사내는 머리가 비상하군.” 하고 감탄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인걸 씨는 유학 중에 내 소설을 한두 작품 읽었다고 한다. 이것도 확실히 이인걸 씨에 대한 호의를 더하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 같은 군자인君子人이라도, 소설가라는 자는 이렇게 허영을 구하는 마음이 크다.” ?본문 중 ‘이인걸’ 편

한편 서호의 풍광, 상해나 북경, 소주, 항주의 음식과 주루의 기생들, 경극 무대의 뒷모습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1920년대 중국의 일상의 삶이 작가의 묘사 속에 생생히 살아남으로써 독자들은 시간 여행과 공간 여행을 동시에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대단히 탄복해서 긴 상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면서도 유심히 이 미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식탁 위에 요리가 하나하나 놓이듯 미인들도 속속 들어왔다. 도저히 애춘에게만 감탄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다음에 들어온 시홍時鴻이라는 기녀를 바라봤다.
시홍은 애춘만큼 미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느낌이 강한, 어딘가 전원의 향기를 띤 개성 있는 얼굴이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해서 묶은 끈이 분홍빛이라는 점 말고는 애춘과 다르지 않았다. 옷은 보랏빛 단자緞子에 은과 남을 섞어 짠 오부 정도의 가선이 붙어 있는데, 여순 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기녀는 강서 출신이어서 옷차림이 특별히 시류를 좇지 않고 고풍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연지나 백분도 맨얼굴이 자랑인 애춘愛春보다 훨씬 농염한 자태를 뽐냈다. 나는 그 손목시계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왼쪽 가슴의 나비 장신구, 알이 굵은 진주로 된 목걸이, 오른쪽 손에 보석이 박힌 반지 두 개를 보면서 제아무리 날리는 신바시新橋의 게이샤라 할지라도 이 정도로 찬연하게 몸치장을 한 여인은 없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본문 중 ‘남국의 미인’ 편
“카페 파리지엔에서 나오자 넓은 길에 어느새 사람의 왕래가 거의 끊겼다. 시계를 꺼내 보자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상해 거리는 의외로 일찍 잠이 들었는데, 다만 그 가공할 인력거꾼만은 아직도 몇 명인가 남아 서성대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면 꼭 무어라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낮 동안 무라타 군에게 ?뿌야오不要’라는 중요한 중국어를 배워두었는데 이 ‘뿌야오’는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 뒤로 나는 인력거꾼만 보면 바로 악마를 쫓는 주문이라도 외듯이 ‘뿌야오, 뿌야오’를 연발했다. 이것이 내 입 밖으로 나온 기념할 만한 최초의 중국어였다.” ?본문 중 ‘첫 번째 일별’ 편

불당을 뒤로하고 통과하자 이번에는 군중들 속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남자 둘이 각기 칼과 창을 들고 시합을 하고 있었다. 퍼렇게 날이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붉은 영纓이 달린 창이나, 갈고랑이처럼 앞이 휘어진 칼이 번쩍이며 햇볕을 반사하고, 불꽃을 튀기며 맞부딪쳐 싸우는 것은 굉장한 볼거리였다. 그 중 변발을 한 몸집이 큰 남자가 상대 공격에 창을 떨어뜨리고 칼끝을 피하고 또 피하다 순간적으로 상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상대방은 두 자루의 칼을 쥔 채, 뒤로 자빠지면서 넘어졌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구경꾼들이 기쁜 듯이 와아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병대충설영病大蟲薛永이나 타호장리충打虎將李忠이라는 호걸은 이런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다. 돌계단 위에서 그들의 격투를 보면서 마치 수호전 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본문 중 ‘소주 성안 中’ 편

하지만 가까스로 도착해서 보니 산바람이 소리를 내는 소나무 사이, 잇닿은 바위산의 눈 아래 계곡에 검고 붉은 무수한 지붕이 늘어서 있는 장면은 생각보다 상쾌한 전망이었다. 나는 길가에 앉아 주머니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일본 산 ‘시키시마’에 불을 붙였다. 레이스를 내린 창문도 보였다. 화초를 심은 화분이 놓인 발코니도 보였다. 푸른 잔디를 구획한 테니스 코트도 보였다. 백락의 향로봉은 잠시 잊은 채 피서지 고령이 여름 한철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임을 체감했다. 나는 다케우치 씨 일행이 휘휘 앞서간 이후에도 궐련을 입에 문 채 희미하게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 집들의 창문을 내려다봤다. 언젠가 도쿄에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본문 중 ‘여산廬山 下’ 편

장사長沙 길가에서 사형이 이뤄지는 거리. 장티푸스나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거리, 물소리가 들려오는 거리, 밤이 되어도 포석 위에 아직 뜨거움이 남아 있는 거리, 닭조차 나를 위협하듯이 “아쿠타가와!” 하고 승리의 함성을 울리는 거리…….

남만철도南滿鐵道
수수 뿌리를 기어가는 한 마리의 지네

옮긴이의 해설
……아쿠타가와가 당시 아시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살펴볼 때, 그가 1921년 3월 하순부터 7월 상순까지 중국을 여행한 후 연재해 펴낸 《중국기행支那遊記》은 빼놓을 수 없는 텍스트이다. 이 기행문에는 한문학을 낳은 시대의 중국에 대한 환상을 지닌 아쿠타가와가 1920년대 중국의 현실과 접촉한 후, 그 아득한 간극을 신랄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는 1921년 당시 중국인들의 속악한 태도나 비위생적인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 등에서 두드러진다. 이를 두고 아쿠타가와가 중국을 멸시했다거나 식민주의 시각을 지니고 중국을 대했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지난 해 봄 필자가 상해에서 만났던 중국인 연구자는 아쿠타가와의 중국인에 대한 이같은 묘사에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반면, 아쿠타가와가 1920년대 중국이 처한 입장에 오히려 애정을 갖고 정확하게 기록했다고 해석하는 연구 경향 또한 존재한다. 이처럼 아쿠타가와의 중국관에 대한 해석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텍스트에 드러난 다양한 층위의 중국 인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런 점에서 어느 부분을 취해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방향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미디어의 기획과 작가의 의도가 착종된 지점이 이 텍스트에 산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쿠타가와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중국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일본인에 속한 자신을 상대화해서 바라봤다. 환상과 현실, 찬미와 경멸 사이에 놓인 분열된 중국 인식은 근대 이후 일본인이 아시아에서 새롭게 획득한 ‘우월’한 위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쿠타가와의 중국행은 자신의 분열된 중국인식을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자에 개입한 근대 일본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원서(번역서)명/저자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97454198
발행(출시)일자 2016년 03월 18일
쪽수 268쪽
크기
140 * 210 * 16 mm / 418 g
총권수 1권
원서(번역서)명/저자명 芥川龍之介の支那遊記/芥川龍之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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