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들이 이해하는 서양 생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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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초/중/고 추천도서 > 청소년 권장도서 > 2007년 선정
이 책은 몇천 년 동안 내려온 서양인들의 음식문화, 주거문화, 오락과 놀이, 그리고 성생활까지 그들의 낮과 밤을 살펴보고 있다. 각 페이지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 중세인과 르네상스인들의 삶들이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역사란 결코 정치나 경제와 같은 공적인 제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의 집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복래
김복래는 한국외국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의 파리 제1대학교와 제4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안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프랑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프랑스 문화예술,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 『종교로 본 서양문화』, 『재미있는 파리 역사 산책』, 『프랑스사』, 『프랑스 왕과 왕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조각난 역사』가 있다.
목차
- 책을 펴내며
서문
1 신화와 태양을 사랑한 고대 그리스인
짧게 쓰는 고대 그리스사
1장 의식주생활
화려한 연회를 자주 열다: 호메로스 시대와 페리클레스 시대
고기요리는 남성들의 몫이었다: 가부장제가 식생활에 끼친 영향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의상을 입다
자유 여신상의 모자의 유래: 그리스 복식의 주변사
귀족 의복과 서민 의복: 복식의 이원화
공공장소가 발전하다: 아고라, 신전, 김나지움, 극장
조잡한 주택 시설과 소비경제의 시작
2장 가족생활
"지혜의 여신은 아버지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가부장사회
같은 가정신을 모시지 않으면 한 가족이 될 수 없다: 종교제도로서의 가정
사유제와 노예제를 유지시킨 가정: 경제제도로서의 가정
"독신은 조상신을 거역하는 행위다": 결혼식과 결혼생활
고대 그리스인의 성생활: 축첩, 매춘, 동성애
이혼은 남성의 권리다: 이혼제도
고대 그리스식: "남녀칠세부동석"
"국가가 모든 가정사를 관리해야 한다": 가족에 대한 가치관
3장 문화생활과 여가활동
신들의 발명품, 춤
고대 그리스인들도 온천욕을 즐겼다
2 강력한 제국의 고대 로마인
짧게 쓰는 고대 로마사
1장 의식주생활
로마 귀족들은 대식가이자 미식가였다
식도락가들의 별난 요리들
로마 서민들의 식생활 수준
사치스러운 옷을 즐겨 입다
"잘 살기 위해서는 로마로 가라": 도시 과밀화와 심각한 주택난
2장 고대 로마 초기의 가족생활: 로마 건국기-포에니 전쟁 말기
"남편은 아내의 심판관이다"
결혼의 여러 형태들
여성의 간음은 중대한 범죄이지만 남성의 간음은 정상이다
여성이 이혼당하는 사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다르게 키워야 한다"
3장 고대 로마 후기의 가족생활: 포에니 전쟁 말기-로마 제정 말기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여성들
"지참금의 노예가 되느니 혼자 살겠다": 남성 독신자들의 증가
"무자식이 상팔자": 출생률의 감소
이혼이 유행하다
해방노예와 귀부인들의 등장
양육의 책임이 가정에서 학교로 넘어가다
4장 문화생활과 여가활동
공중목욕탕은 로마인의 예배당이다
에필로그: 고대 그리스·로마의 민중문화와 현대 역사가의 한계
3 기독교로 무장한 중세인
짧게 쓰는 고대 중세사
1장 의식주생활
정복자 게르만족, 갈로-로마인의 식탁문화에 홀리다
2차 민족대이동과 기근
교회가 식탁예술을 부활시키다
영주의 식탁과 농노의 식탁
누더기 옷을 걸친 농노, 실크 옷을 입은 왕족
성에서의 생활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중세의 주거환경
위생 관념이 없었던 중세인들
2장 가족생활
돈을 주고 신부를 사다: 초기 결혼제도
교회가 결혼에 관여하다
중세인의 성과 사랑
중세 여성들의 삶과 일
3장 문화생활과 여가활동: 민중들의 축제
축제로 민중들의 공격성을 잠재워라
에필로그: 중세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각
4 인문주의를 주창한 르네상스인
짧게 쓰는 고대 르네상스사
1장 의식주생활
프랑스 요리를 문명화시킨 이탈리아 요리
빵이 고갈되다: 문예 후원자들의 중과세와 피폐해진 농가
포도주의 확산
농촌의 부흥과 이국적 농산물의 유입: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의 식사문화
의상 스타일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하다: 패션의 시작
상류층의 화려한 저택들과 '사생활'개념의 등장
2장 가족생활
"여성에게는 법정에 설 권리가 없다": 르네상스 시대의 여성의 지위
교회가 점차 결혼제도에서 손을 떼다
3장 문화생활과 여가활동
테니스와 연극을 즐기다
에필로그: 아직 다 밝히지 못한 르네상스기의 일상생활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훑어보기식 역사책들이 가르쳐 주지 않은 ‘살아 있는 역사’
보통 역사라고 하면,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옥타비아누스가 집권하면서 로마 제정이 시작되었다”, “중세 도시 거주자였던 부르주아 계층이 근대 시민사회를 이룩했다” 등과 같이 정치, 경제, 사회제도와 관련된 사실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만으로는 인류의 역사, 특히 당대인들의 생생한 생활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무리 역사교과서를 읽고 역사를 공부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었을까, 고대 로마인들은 어떤 요리를 해 먹고 어떤 음료를 즐겨 마셨을까, 또 르네상스 귀족들은 한가할 때 어떤 오락거리를 즐겼을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해 시원스러운 해답을 들려준다. 각 페이지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 중세인과 르네상스인의 삶들이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역사란 결코 정치나 경제와 같은 공적인 제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먹고 마시는 일이나 휴식을 취하는 법 등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의 집적集積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주요 내용
Ⅰ. 신화와 태양을 사랑한 고대 그리스인의 생활
누워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심포지움 장면.
화려한 연회를 자주 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걸 중요시했기 때문에 화려한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 연회의 참석자들은 주로 남성이었으며, 음식 시중을 드는 하녀나 고급 창녀인 헤타이라Hetaira, 여성 악사를 제외한 여성들은 부인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음식을 먹을 때에는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를 취했으며, 포크와 같은 식탁도구들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사용하여 음식을 집었다.
‘자유의 상징’ 프리지아 모자를 후세에 남기다
원래 프리지아 모자는 페르시아의 태양 신 미트라, 아나톨리아의 신 아티스가 썼던 모자였으나 고대 그리스인들도 즐겨 쓰고 다녔다. 당시에 이 모자는 비非그리스인인 파리스를 의미했으나 로마 제정기에는 해방노예나 로마 시민이 된 노예 자손들이 많이 착용해 ‘자유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후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가들이 이 모자를 즐겨 썼다.
“국가가 모든 가정사를 관리해야 한다”
‘사생활’ 개념이 발달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국가가 가정생활에 개입하는 걸 당연시했다. 이런 사실은 당시 대표적인 철학가들의 사상에서 잘 드러난다. 플라톤은 지배층 남녀에게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라고 제안했으며, 태어난 아기는 공동탁아소로 보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결혼연령을 국가에서 법적으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개인적 생활의 가치보다는 도시국가의 전체 복지가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이런 가치관들이 생겨났다.
Ⅱ. 강력한 제국의 고대 로마인의 생활
더 많이 먹기 위해 이미 먹은 것을 토해 내다
로마인들은 공화국 초기에는 검소한 생활방식을 가졌지만 제정기에 들어서면서 호화롭고 기름진 식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심지어 연회 때마다 먹기 경연대회를 열어 대식가에게 상금을 주었는데, 이 때문에 새의 깃털로 목구멍을 간질여 먹은 것을 토해 내고 다시 먹는 사람도 생겨났다. 통음난무痛飮亂舞가 벌어졌던 바쿠스제는 우리에게 ‘폭음폭식을 하는 로마인’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서민들의 집합주택인 인술라의 모습.
“잘살기 위해서는 로마로 가라”
거대한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는 2-4세기에 인구 백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도시가 되었다. 사람들은 잘살기 위해서는 로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방 도시에서 사느니 차라리 로마에서 죽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렇게 로마로 몰려드는 인구(특히 서민들)를 수용하기 위해 집합주택이 건축되었는데, 어떤 집합주택은 10층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이런 주택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법도 여성의 욕망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다
가부장사회였던 로마에서 이혼하는 권리는 초기에는 주로 남편의 특권이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합법적으로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사유는 첫째, 아내가 독극물을 준비한 경우, 둘째, 간음을 한 경우, 셋째, 포도주를 마신 경우 등 세 가지였다. 특히, 아내가 간음을 한 경우에 남편은 아내를 그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해이해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무리하게 피임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메살리나, 율리아, 포파이아 같은 음탕한 여인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게다가 여성의 지위가 점차 향상되면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도 생겨났다.
Ⅲ. 기독교로 무장한 중세인의 생활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던 성城에서의 생활
후대인들은 중세의 성에서 생활하는 게 낭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성에서의 생활은 매우 불편하고 비위생적이었다. 성의 홀의 바닥은 흙, 돌, 회반죽이나 나무 등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 위에 짚이나 풀 따위를 깔았다. 에라스무스에 의하면 이 짚더미 밑에서는 종종 “맥주, 지방분, 파편, 뼈, 침, 개와 고양이의 배설물, 또 불결하고 더러운 모든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중세의 화형식 모습.
사형을 볼거리로 즐기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면 광장이나 거리는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중세의 엄격한 신분 질서는 사형 방식도 각각 다르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귀족들은 화려한 의상 차림으로 명예로운 죽음(?)인 참수형을 당한 다음에 다시 교수형에 처해진 반면, 평민들은 셔츠 차림으로 바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 평민 가리지 않고 모두 단두대로 끌려 간 것은 죽음의 불평등 현상이 소멸된 것을 의미했다. 살인강도는 질질 끌려 다니다가 교수형에, 대역죄인은 참수형에, 화폐위조범은 솥에서 삶아지는 형에, 마녀나 이단자는 화형에, 수간 및 근친상간이나 동성애자 역시 화형에 처해졌다.
충만한 사랑은 있되 위생 관념은 없다
중세인들은 페스트가 유행하면 밀폐된 공간인 예배당에 모여 신에게 집단적으로 구원을 요청하는 바람에 더 많은 화를 불렀다. 도시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비위생적인 조건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특히 중세인들은 건강과 위생에 대한 많은 미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몸의 질병이 영혼의 죄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명상이나 기도, 순례여행 등 비의료적인 방법에 의지했다.
당시 유행하는 의상을 입은 베네치아 여성
Ⅳ. 인문주의를 주창한 르네상스인의 생활
의상에서 유행이 시작되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 유럽인들은 대개 민족의상을 즐겨 입었다. 그러나 르네상스기에 들어 와서 국제간 교류가 활발해지자 의상은 ‘장소’보다는 ‘시간’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이제 과거의 전통적인 지방의상은 갓 유행하는 새로운 패션에 자리를 양보했다. 토속적인 의상은 단지 농부들의 구식 옷차림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교적 유사한 스타일의 의상이 한 차례 유행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새로운 스타일의 의상이 유행했다.
‘사생활’ 개념이 싹트다
현대인들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사생활’은 중세 때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미지의 개념이었다. 튜더 일가는 귀찮은 조신들과 궁정식구들이 들끓는 공동거실에서, 아늑하고 조용한 개인적인 응접실로 기꺼이 후퇴해 버렸다. 그러나 이 당시에 사생활이라는 유별난(?) 관습은 희소성의 가치는 있었으나,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 상류층에서 최초로 시작된 이 새로운 관습은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영주 부부는 더 이상 성의 널찍한 홀 구석에 놓인 캐비닛식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이제는 독립된 침실에서 종자들, 시동, 시녀들을 가까이 거느리고 잤다.
기본정보
ISBN | 9788995868980 |
---|---|
발행(출시)일자 | 2007년 06월 30일 |
쪽수 | 350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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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서양사는 사건 중심의 전개로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멀게 받아들여졌다.
이 책은 마치 그리스,로마,중세,르네상스시대의 뒷골목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베르베르'의 소설 중에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되돌아 갔다가 오는 여행에 나섰던 사람이
다시 돌아 올 때 쓰는 기구를 잃어버려 난감해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긴박함에 마음 졸이며 읽었는데 그런 염려없이 여유롭게 타임머신을 탄 셈이다.
옛 서양사람들은 무엇을 입고,먹고,어떤집에 살았을까?
한 번쯤 가졌을 의문들을 이 책은 속속들이 실타래처럼 풀어 놓았다.
동네 뒷골목길로 지나가다 보면 낮은 담 사이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나쳐 볼수 있듯이 말이다. 해 아래서 새로운 것이 없다던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요즘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도 많았다.
우리나라에 '남녀칠세 부동석'이란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남녀가 일곱살이 되면 서로 판이하게 다른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남자아이는 엄격한 학교교육으로 훌륭한 시민이나 군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자아이는 거의 하루종일 집안에 갇혀 직물을 짜고 수를 놓거나 요리를 배웠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익차원에서 국가가 가족적인 사무를 관리할 것을 권장했다.
결혼도 나라에서 권장하는 혼인축제에서 '제비뽑기'로 짝을 정하고
아이는 태어나는 즉시 나라가 운영하는 공동 탁아소에 맡겨져야한다고 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누워서 식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자연히 식사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로마의 귀족들은 산해진미를 호화롭게 차려 매일 연회를 열고 먹기대회까지 열었다.
대식가에게는 상금을 주었기 때문에 잔뜩 먹고 토해내고 또 먹고 했다니 게걸스러움에 역겹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나 식사 때 '눕는 권리'를 누린 것은 아니고 일종의 사회적 특권을 의미했다.
로마의 공중 목욕탕은 냉탕,온탕, 한증실, 큰 홀, 도서실, 점포,경기장등을 고루 갖추고 있었고
한 번에 16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교장이었다는데 놀랐다.
그러고보면 오늘날의 다양해진 찜질방 문화와 닮은데가 있다.
여성들의 지위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는 누리지 못한 채
'아이 낳는 도구'에 불과 했음이 안타까웠다.
다양한 머리 모양과 옷들이 지금 봐도 현대감각에 뒤지지 않았고
사이 사이에 있는 토막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그리스문명이 로마인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보면
그리스를 무력으로 정복한 이는 로마인이었으나
그리스인의 '문화적 식민주의'에 의해 역으로 지배 당하는 이는
오히려 정복자인 로마인이었다는 말이 새겨 들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생활사를 훗날에 속속들이 쓴다면 과연 어떨까?
신화와 태양을 사랑한 그리스인, 강력한 제국의 고대 로마인, 기독교로 무장한 중세인, 인문주의를 주창한 르네상스인까지 푸짐한 만찬을 보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우리가 어떤 시대에 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리스인하면 떠오르는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앙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다. 그리스하면 보통 철학을 떠올리지 않을까. 혹은 올림포스 신들이 활약하는 그리스 신화 정도?
그러나 그리스의 모든 사람들이 고상하게 철학만 운운해서는 나라가 운영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신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신전은 공들여 만들었지만 일반 서민들의 공간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스에서는 큰 도시에도 공중화장실이 없었고, 개인 목욕은 특별한 경우에만 했다. 그리스인들의 위생 관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막연하게 알고 있던 한 시대를 사람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지만, 저자도 말했던 것처럼 생활상이 상류층 중심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역사가 상류층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시대를 한 마디로 결정짓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암흑시대’라고 일컫는 중세는 말 그대로 마녀사냥처럼 무시무시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또한 르네상스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예술을 사랑하고 보티첼리의 그림처럼 낙원 같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회의 맥락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생관념 없는 중세인을 보며 쯧쯧거리기도 하고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받은 여성의 낮은 지위에 대해 분개하기도 한다. 혹시 누가 아는가. 진보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도 몇 백 년 후에는 동정 받는 처지가 될지.
당장 낯을 들이밀고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바로 대답이 나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생활사 이야기는 그래서인지 정해진 목차대로 흘러가기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이야기를 하는 투로 진행된다.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중세, 르네상스를 고루 거치면서 어느 새 한 권이 끝나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항상 어떻게든 서양인들은 살아왔다는 것이다.
고대에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서양인의 생활이 꾸준히 윤택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변화했을 뿐이다. 생활 환경은 단순한 2차원 그래프의 높낮이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면에서 변화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요리학 책이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웬만한 역사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세의 성(城)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도 특이했다. 흔히 떠올리는 성 생활이란 디즈니랜드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성’처럼 우아하고 세련된 성의 침실 안에서 왕자님을 생각하며 공상에 잠기는 공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제 중세 시대의 영주들은 지금의 기준에서 상당히 고통스러운 생활을 해야 했다. 게다가 바닥에 깐 것은 깔끔한 카펫 대신 짚이나 풀 따위였다. 에라스무스에 따르면 짚더미 밑에서는 “맥주, 지방분, 파편, 뼈, 침, 개와 고양이의 배설물” 등 오물들이 흔히 나오곤 했다. 잠도 하인들과 같은 침실에서 자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용으로 침대 위에 막을 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흥미로우면서도 소소한 이야기 뒤에서 글쓴이는 여러 시대를 꿰뚫는 커다란 흐름을 이야기한다. 흔히 남녀간의 성애, 근대적인 사랑의 형태는 초기 귀족에서 부르주아, 노동계급까지 점차 확산된다는 진보사관이 보편적인 추세였다. 그렇지만 진보사관을 깨뜨리는 예는 역설적으로 ‘결혼세’ 같은 부당한 세금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는 데서 나온다. 사회적으로 아무 득이 없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 사랑 말고는 설명할 이유가 없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 마리 제비 때문에 봄이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비가 점차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봄이 가깝다는 증거가 된다. 페스트가 한창 유행하는 여름철에 귀족의 마루에 덮인 골풀 사이로 해충들이 기어다니는 생활 수준조차도 여러 계층에 확산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래 귀족의 특권을 상징했던 ‘자유’라는 개념은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점차 확대된다. 여전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시대의 커다란 흐름을 읽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가장 관심이 갔던 내용은 책의 초반부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그리스 사회의 모습이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시작한 일종의 흐름인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처음을 잘 알아야 한다는 내 생각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고대 그리스 사회로부터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원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현대의 자유와 평등 등의 기치를 발견하기 위해 인류가 꽤나 많은 시간을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투쟁을 필요로 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 당시의 민주주의가 오늘날과 똑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도 물론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민주주의 체제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충격이었던 것은 여성에게 드리워진, 어쩌면 오늘날보다 더욱 정교한 형태의 ‘가부장적 질서’였다. 어떠한 정치, 사회 활동도 허락되지 않는 그녀들에게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가정 안에서의 삶뿐이었는데, 그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누추해서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는 저자의 설명 앞에서 나는 과거에 대한 환상이 꺾이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내가 남성 아닌 여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실망감(!)은 더 했던 것이리라.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일종의 특권이었음에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에 대해 그토록 열광을 하는 것인지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서양의 것이라면 무조건 우러러보는 시선이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일지도…
어느 사회나 계층은 존재했고, 각 계층간의 격차는 존재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상류층은 자신들을 중, 하류층과 끊임없이 분리하려 노력하고, 중, 하류층은 끊임없이 상류층을 따라잡으려 드는… 어쩌면 이러한 움직임이 사회를 고대서부터 지금까지 변화시켜온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많은 이들이 환상적이라 칭송하는 르네상스가 일반 민중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민중이 대중으로서 대중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르네상스로부터 4-5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사람들이 ‘진보’라 칭하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역사는 앞서나간 자들을 위주로 기술되기 때문에, 민중의 삶에는 큰 변화가 존재치 않을 지라도 선두 그룹의 삶이 변화하면 그것이 진보가 될 수도 있음을 역사는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날 빈부격차를 더욱 벌리는데 일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역시 역사를 기술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진보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역사를 정의하는 자도, 역사에 의해 기억되는 자도 강자인… 역사는 그런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