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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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전문기관 추천도서 > 세종도서 우수교양도서 > 2013년 선정
작가정보

저자 임동확은 젊은 시절 부분과 전체, 개인과 집단 간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큰 의단疑端을 품은 바 있다. 그러다가 후일 그 문제가 동아시아적 생성의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원에서「생성의 사유와 무의 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문학 연구자이면서 시대정신과 생에 대한 깊은 연민에 뿌리를 둔 깊이 있는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시인이다. 세상의 모순과 불화에 주목하면서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화해와 소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서구 담론에 마냥 끌려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인류의 대안적 사유와 삶의 방식과 연결시켜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삶과 정신의 담론의 가능성을 꾸준하게 모색하고 실천해오고 있는 중이다. 특히 시를 쓰고, 읽어주고, 가르치는 모든 과정을 일종의 종교적 제의로 받아들이며 문학과 학문을 병행하는 점에서 당대에 보기 드문 인문주의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장시편』을 펴내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인이 지은 책으로는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오래 전에도 여기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시화집『내 애인은 왼손잡이』, 시선집 『꿈, 어떤 맑은 날』,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생성의 시학』 등이 있다.
목차
- 들어가는 글
생生, 그 끝없이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는
: 오규원의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길, 멀리 떠나온 나그네의 집
: 기형도의 「정거장에서의 충고」
시간, 어느 순간 하나 빛나지 않는 것이 없는
: 최하림의 「공중을 빙빙 돌며」
공간, 바람이 일지 않는 고요에도 심히 흔들리는
: 정지용의 「장수산長壽山1」
사랑, 나를 무중력으로 떠올리는 폭풍
: 황지우의 「나는 너다 17」
고독, 누군가를 향한 존재의 모험
: 김현승의 「절대고독絶對孤獨」
죽음, 나를 살게 하는 유일한 출구
: 조은의 「무덤을 맴도는 이유」
생명, 그 어느 것 하나 ‘찬란’하지 않은 것은 없으니
: 이병률의 「찬란」
부분과 전체, 역동적인 주고받기의 꽃핌
: 김지하의 「화개花開」
율려, 충만의 속도를 화알짝 하늘 햇살로 열어젖히는
: 정진규의 「율려집律呂集14 」
신성神性, 일월성신이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올 때
: 허수경의 「나무 흔들리는 소리」
침묵, 어느 것보다 흰 불멸의 언어
: 허만하의 「야생의 꽃」
언어, 먼 나의 생각 사이를 빠져나가는
: 고형렬의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자화상, 헛것들과 벌이는 나의 싸움의 기록
: 김중의 「자화상」
자아,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망울들
: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변신變身, 내 무게보다 더 무거운 어떤 떠받침이
: 김정환의 「독수리」
눈目, 서로의 상처를 향할 때 더욱 아름다운
: 이시영의 「신길역에서」
우정, 뜻있는 곳에 뜻끼리 건배를
: 김영태의 「한 잔 혹은 두 잔」
초인超人, 시원의 광야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 이육사의 「광야廣野」
아니마anima, 기적적으로 마주친 내 안의 여자
: 김수영의 「여자 」
아니무스animus, 누가 심청 을 인당수로 밀어 넣는가
: 김승희의 「배꼽을 위한 연가 5」
성性,난 누구의 계집인 적이 없다
: 허혜정의 「미인도를 닮은 시」
연인, 아니 올 리 없는 나의 반려자
: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고향, 언제나 가슴 울렁 이는 이야기가…
: 김규동의 「느릅나무에게」
어머니, 여든의 나이에도 애기가 되게 하는
: 범대순의 「백년」
아버지와 아들, 그 불가능한 하나를 위한 사랑의 축제
: 최두석의 「바람과 물」
전승傳承,가장자리가 기름져야 한복판이 잘되는
: 하종오의 「시어미가 며느리년에게 콩 심는 법을 가르치다」
모국母國,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 조태일의 「국토 서시國土 序詩」
국가, 폭발점을 품고 있는 바다
: 황규관의 「경계」
서정시, 그 보잘것없는 주변성의 노래
: 윤중호의 「시詩」
■ 수록 시인 약력 및 작품 출처
책 속으로
†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순례 11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한 순간도 쉼 없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 있다. 부단히 움직임으로써 천지만물은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세상 속으로 알린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크고 작은 변화와 요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러기에 그 어떤 것도 예외 없이 모두 살아 있다. 대개 그 움직임 이 매우 희미하고 감춰져 있게 마련이어서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인식되거나 보이지 않기에 흔히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죽음의 상태로 치부되곤 하지만, 바로 그 속엔 결코 가시화할 수 없는 거대한 움직임 이 도사리고 있다. 가시적으로 한정 지워진 현상세계의 배후엔 자신들의 존재를 현시하고 증명하는 불가사의한 움직임만이 움직일 수 없는 불변의 진실로 자리하고 있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이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여행’ 또는 ‘길’에 비유해보고 있다면, 필시 그 사람은 이미 어느 길을 가고 있는 자이다. 동시에 그는 목적지로 가는 걸음을 잠시 멈춘 채 중간 기착지에서 휴식하거나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지 묻는 자이다. 아니면 행여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남은 가야 할 길을 점검하는 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걸어오면서 겪어내야 했던 일련의 사태와 경험들이 바로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결국 길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방황하다 길에서 죽는 것이 인생이며, ‘길’을 통해 우리는 자신들이 살아온 날들의 의미를 묻고 눈앞에 주어진 세계에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그런 면에서 “어쩌다가 집을 떠나”게 된 “나그네”의 음울한 여수旅愁나 고독한 여행자의 고립성이나 비연대성과 거리가 멀다. 또한 그것은 일정한 목적이나 목적지 없이 그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일종의 “떠돌이”로서 단지 혈연과 지연地緣의 “집” 또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동경을 나타내는 것과도 무관하다. 살아 있는 한 “길” 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 ‘나’의 운명을 자각하고, 오히려 그 절망의 “길”을 “희망”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자의 존재론적 전향에 대한 예감이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흘러”간 과거와 흐르고 있거나 “흘러”올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정거장”에서 “나”에게 던지는 ‘충고’는, 다름 아닌 가장 고유하고 역동적인 “나”로 되돌아가려는 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대답이라 할 수 있다.
†
나는 너다 17
황지우
내가 먼저 대접待接받기를 바라진 않았어! 그러나
하루도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니.
다시 이쪽을 바라보기 위해
나를 대안對岸으로 데려가려 하는
환장하는 내 바바리 돛폭.
만약 내가 없다면
이 강을 나는 건널 수 있으리.
나를 없애는 방법,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사랑하니까
네 앞에서
나는 없다.
작두날 위에 나를 무중력으로 세우는
그 힘.
고독이 사랑을 부른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거나 다가와도 결코 좁힐 수 없는 거리, 채워질 수 없는 부재가 고독을 낳고 사랑을 부른다. 제아무리 가깝거나 친밀하다고 해도 없앨 수 없는 거리 또는 부재가 낳은 것이 고독이자 사랑이다. 상대방에 대한 고갈되지 않는 그
출판사 서평
임동확 시인이 일상에서 뽑아낸
30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 현대시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마련인 30개의 인생론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기존의 틀에 박힌 시 읽기를 넘어 그 어떤 개념의 틀로 규정지을 수 없는 시의 역동적인 자연성 또는 고유한 생명의 박동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임동확 시인이 일상에서 뽑아낸 30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 현대시
젊은 시절 부분과 전체, 개인과 집단 간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큰 의단疑端을 품어 후일 그 문제가 동아시아적 생성의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줄곧 문학을 연구해온 임동확 시인. 그는 세상의 모순과 불화에 주목하면서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화해와 소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서구 담론에 마냥 끌려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인류의 대안적 사유와 삶의 방식과 연결시켜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삶과 정신의 담론의 가능성을 꾸준하게 모색하고 실천해오고 있다.
특히 시를 쓰고, 읽어주고, 가르치는 모든 과정을 일종의 종교적 제의로 받아들이며 문학과 학문을 병행하는 점에서 당대에 보기 드문 인문주의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이번에 한국 현대시사에서 주목할 만한 시인들인 윤동주, 이육사에서 허혜정, 이병률에 이르는 30명의 작품을 깊이 읽고 키워드별로 풀어 쓴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를 출간하였다.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마련인 30개의 인생론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기존의 틀에 박힌 시 읽기를 넘어 그 어떤 개념의 틀로 규정지을 수 없는 시의 역동적인 자연성 또는 고유한 생명의 박동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 책에는 한 인간이 지닌 한없는 존재의 깊이와 위대성이 한낱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시장가치로 환원되고 있는 21세기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긍정과 절대자유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리듬과 문명의 감수성을 찾으려는 한 시인의 몸부림이 담겨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서 저자는 인간의 근본적인 동일성과 가장 깊은 소통을 꿈꾸는 양식이 시이며, 그저 한없이 초라하고 덧없어 보이는 사물 곁에 기꺼이 멈춰 설 줄 아는 자들이 참된 시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비적 일체감이 사라진 시대 속에서 시와 사유가 분리되기 이전의 근원적 시원을 찾아가고 있는 이 책은 새로운 사유지평을 여는 시론집이자 훼손되지 않은 희망과 구원을 꿈꾸는 생명철학론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94054339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3월 15일 |
쪽수 | 328쪽 |
크기 |
153 * 225
* 30
mm
/ 442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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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은 시라는 문학은 시인을 존재케 하는 다소 강제적으로 부여된 세계관을 통해.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복잡한 인식. 그러한 의식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을 얻고, 그 여운을 느끼는 장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에서 소개된 작품 중에서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외면과 내면에서 우러난 것을 그린 인상주의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한 폭의 그림이 아닌 상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담아낸 시로. 그리고 그것을 해독해 낸 <시인으로 태어났다>의 임동확 작가의 필력은 시를 읽고, 뭔가를 채워야만 하는 빈 공백에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나로 하여금. 깊이도 깊이거니와 어떻게 이렇게 읽고 사유할 수 있는지. 그저 존경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3. 기존에 읽은 김수영 시인의 시나 학창시절에 배웠던 저항 의지가 담긴 상징을 찾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들은 <서양미술사>의 개념을 빌어서 말하자면 신고전주의의 화풍에 유사한 시였다면,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에서 이야기하는 시는 인상주의라는 화풍에 어울리는 서정시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정시라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하찮은 것들에서 생에 대한 통찰을 길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모두 일상생활에서 그런 통찰을 길어낼 수 있으므로 모두 시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라고 정해진 것 같았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덮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어떤 한 점에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는 것처럼 의식을 집중하는 과정을 통하여 압력을 가하고, 그런 결과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모두 시인이라는 제목에 실린 격려와 이런 의식을 생각하면서 떠올랐던 내 기억 속의 한 장면은
서리가 낀 추운 어느 겨울날.
출근길로 향하는 수많은 차 속의 한 존재로 머물러 있던.
다른 방향을 생각할 것도 없이 정해져 있는 의식.
한없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태어나는 궁금증은 오로지 파란 신호뿐.
그것을 애인 기다리듯 애타게 기다리며 맹목적으로 앞 차의 간격에만
집중했던 그 의식.
그것에서 존재의 구속과 구역질을 느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처럼 책을 읽으면서 내용의 해석을 탐구하는 깊이도 깊이었지만. 그런 깊음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을 되새김질해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4. 또 하나의 되새김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관이 바뀌었구나라고 느낀 생각이다. 예전에는 모든 인문학 서적을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문학에서 쓰이는 악기의 이름을 맞히기 위한 도구의 성격으로 읽었는데, 최근에는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이름도 '마구읽기'로 바꾼 것처럼, 모든 책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독자가 되기로 했구나. 그랬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5. 되새김은 끝나지 않는다.
시가 가리키는 물체는 그것이 온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기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의 있음과 없음이 동일한 무언가일 수도 있는. 그렇게 본다면 시는 정말 해석하기 나름의 문학으로 다가온다. 적어놓고 보니 깊이에의 강요스러운 단락이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6. 또 한 가지의 단상은 이 책이 나의 다리를 찢는 책이었다는 것이다. 춤을 출 때나 신체적 활동을 할 때. 다리를 찢는 행위를 통해 유연성을 기르고, 그것으로서 능력치를 올리는 바탕으로 진입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이 책은 내면의 다리를 찢는 책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책이 이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땐 뭣도 모르고 수행평가 점수 깎이니까 해야지.. 하는 생각에 시의 이면에 대한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채 그저 달달 외워가는것에만 그쳤을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도 시를 배우면 시에 담긴 생각이나 의미를 정형화된 방식으로 해석해 준다. 예를 들면 김소월의 [진달래 꽃]의 갈래는 님을 절대 보낼 수 없다는 여인의 마음을 담고 있어서 서정시이고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은 님에 대한 ??를 의미한다는 등의 아주 형식적이고 지루한 면만을 배워 시 하면 수능이고 내신이다. 라는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수업을 할 때도 시에 대한 배경이나 결정적인 사건 등을 배우기는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는데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는데 있어서 학생들에게는 시에 대한 더욱 풍부한 자료와 정보를 줌으로써 더욱 깊이 있는 이해와 가치관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들은 가볍고 상큼한 느낌보다는 조금은 어둡고 칙칙한 시들이 많이 등장한다. 봄이 왔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기분전환 삼아 시를 읽자는 마음으로 보았다가는 역효과를 줄 수도 있으니 삶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유 등을 고려하는 측면에서 읽으면 좋을듯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 사랑.결혼.우정.배신.증오.황당.저항.기가막힘.자아혼란 등 헤아릴수 없을만큼 다양하다. 시 하나가 내포하고 있는 감정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시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시를 읽다보면 그것이 하나로 모이게 되는데 이걸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주제를 바탕으로 임동확님께서 설명해주시는 해설들을 보고 나중에 시를 한 번 더 읽어서 아무 정보 없이 읽었을 때와 정보들을 접한 후 읽었을 때를 비교해보면 다른 감정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의 생각을 알게되고 나의 생각에 비춰보면서 공감을 얻는다. 그게 시의 묘미이고 문학의 묘미가 아니지 싶다. 이제 본격적인 봄인 4월이다. 봄을 맞이하여 밖에 나가 편안한 자세로 시 한 수 직접 읊어가며 따스한 봄을 느끼고 시를 느껴 문학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시간을 갖는것은 어떨까..?
보통 소설을 많이 읽어서 시는 읽기 어려웠었는데 이 책에는 시와 함께 작가의 해설과 견해가 같이 있어서 더 좋았다.
다만, 아직은 작가의 글을 다 이해하기에 나의 이해력이 부족했던것인지, 난해하게 여겨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임동확 시인의 책을 많이 읽으면 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일말의 기대를 해본다.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인 윤동주, 김수영, 백석 시인의 시도 소개되고 있었다. 다른 시각으로 시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임동확 시인의 시에 대한 해석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백석 시의 경우, 그의 시에 일인칭 나와 소유격인 내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백석시인은 자기애가
매우 강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윤동주 시의 경우, 그가 북간도에서 태어나 성장한 것을 바탕으로 ‘나’의 마음 밑바닥에는 그러한 다양한 삶과 문
화의 체험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삶, 길, 시간, 공간, 사랑, 고독, 죽음 등 작가는 문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그리고 추상적이고 무거운 주제들을 나타내주
는 시들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시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생이라는 주제로 소개된 오규원 시인의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한 순간도 쉼 없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다.
- 이 말이 어쩜 이렇게 와 닿을까.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희망을 부여하는 글이란 생각이 든다.
임동확 시인의 시 읽기 희망읽기라는 책의 부제와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임동확 시인의 글로 많은 시들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본다.
인류는 어쩌다가 시를 노래하게 되었을까요? 하늘의 신을 찬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그 기원이라고도 하고, 전쟁 영웅을 높이기 위해 만들진 것이 기원이라고도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언어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된 시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드려지는 하나의 제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말'인데도 시인의 언어는 어찌 그리 청량한지 가락이 없어도 향기로운 노래가 됩니다.
봄꽃이 화사한 봄날 봄볕 드는 창가에 앉아 시리도록 눈부신 시 하나 가슴에 담아보고 싶어 이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시를 읽어주는 책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음을 간지르는 시 한 편 감상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쳐 든다면, 아마 많은 독자분들이 당황하시리라 짐작됩니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시에 대한 진지한 담론입니다.
시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모든 시들은 자신의 주변과 세계를 신화화하는 신화적 세계를 지향한다. 신화의 이야기들처럼 인간의 삶의 세계를 바로잡고 바꾸는 것이 시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4-5). 시가 이렇게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가 그 궁극적인 지향점에 도달하는 길은 멀고 험해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시작은 마주치는 낯선 풍경이나 사물들을 장악하고 소유하려는 개념적 동일화를 포기하면서 시작된다"(5). 제게는 시보다 더 어려운 설명입니다.
시는 아름다운 노래이지만 그 시의 심장부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는 그 아름다운 언어 속에 많은 뜻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시어 속에 은폐 되어 있는 시의는 그래서 저마다 해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시의 의미체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생명체처럼 유동하면서 다른 세계의 출현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그 어떤 것일 뿐이다"(6). 그래서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가능한 한 미리 주어진 이해방식, 그러니까 특정한 이론이나 문학주의에 입각한 교과서적인 시이해 및 해석을 배제하도록 최대한 노력"(7)하며 시 읽기를 시도했습니다. 저자는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의 시라도 우리에게 절실하고 간절한 인생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 시들을 나의 시 읽기의 텍스트로 삼"(9)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에서 만난 시 중에 가장 인상적이면서 독특했던 시로 고형렬 시인의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를 꼽고 싶습니다. '언어'라는 주제어를 가진 이 시는 무슨 비밀스러운 암호같기도 하고, 풀기 힘든 수수께기같기도 합니다.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고형렬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이 문장은 성립되지 않고 시상이 전개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는 말은
상상할 수 없는 걸 상상하므로 항상 제기되는 문제다
그러나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
증명할 길이 없지만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
에르덴조 사원에서 생각하거나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려다가 생각을 못하고 놓친다
그들은 먼 나의 생각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문장 성립은 둘째치고 나는 늘 이렇다
나는 이 사유 자체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는 말이 꼭 성립해야 하는가
길을 가면서, 나는 혼자, 그 생각에 골몰한다
분명하게 말해서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있는 것처럼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
그래 에르덴조 사원에 내가 있다는 것은
에르덴조 사원이 없다는 것과 진배없다
나에게 에르덴조 사원이 있다는 것은 에르덴조 사원이
없다는 것과 동급의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문제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문제가 발생한다
허나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내가 너무나 고독하다
음률을 맞추며 고통스러워하는 자의 행보
왜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나를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리며 슬퍼한다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나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그런데 그대여 왜 그대는 에르덴조 사원엔 없는 건가
나는 지금, 그때, 에르덴조 사원에 머물고 있어라
나는 정처가 없어서 나무처럼 외로워 보인다
나 없는 사막 입구의 산처럼 나는 하늘을 쳐다본다
에르덴조 사원의 하늘에 나타난 눈부신 구름처럼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을 읽기 전까지, 이 시는 저에게 하나의 난해한 기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니, 시인만이 할 수 있는 고뇌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시를 이해하려면 우선 '언어'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어의 성격과 기능을 논리적이고 의미론적인 차원에 한정시키는 것은, 복잡다기한 삶의 실감과 깊이를 느끼고 이해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139). 그러니까 이 시는 논리적으로, 의미론적 차원에서 읽을 수 없는 시입니다. "근본적으로 부재하는 '에르덴조 사원"과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나"는 양립할 수 없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때닫는다"(139).
에르덴조 사원은 어디이며,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러니까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는 명제는 시인인 "나"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논리적이거나 언어를 사물과의 대응관계에서 보려는 지시론적 의미론으로 볼 때 무의미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 '상상"할 수는 있지만 "증명할 길이 없"다고 해서,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는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일반 언어와 달리 시적 언어는 "증명"할 수 없지만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세계에 관계하기에 논리적 검증이나 반증의 차원에서 다룰 수 없다"(140).
이 시를 노래한 "시인인 "나"에게 언어는 사건의 인과적인 설명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체험이나 실감의 표현에 다가가는 수단일 뿐이다"(142-143). "무엇보다 "나"는 지금 말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과감하게 불러내는 자이며, 그래서 "나"는 구체적인 형상과 무형의 절대성 사이의 참다운 통일을 꿈꾸며 기꺼이 "에르덴조 사원의 하늘에 나타난 눈부신 구름처럼" 부재하는 동시에 현존하는 것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144). 어떻습니까? 논리와 의미를 초월하는 시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세계이며, 고차원의 세계인 것만 같습니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제한된 해석의 감옥"에 갇힌 독자들을 풀어주고자 의도한 책입니다. 그런데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자의 해설이 어찌나 확신에 차 있고 박력이 넘치는지, 너무 힘차서 오히려 '정답' 같은, 그리하여 그 정답의 감옥에 다시 독자를 가두는 모순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는 저자는 이 시를 이렇게 읽어냅니다. "그러니까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타자 또는 타문명이 부여한 가치와 이념을 내면화하고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를 부인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나"의 자아를 뜻한다"(163).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읽기 어려운 난해한 시, 고정관념으로 읽고 있는 시의 의미를 해체합니다. "이미 주어진 이해나 선입관"을 걷어내고, 그 시 속에 숨쉬고 있는 어떤 실재에 가까이 다가서려 합니다. 그런데 시를 읽는 데 방해가 되는 선입견을 제거하려는 '전문성'이 오히려 너무 탁월하여 초보자들을 다시 그 해설 안에 가두어버리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또다른 문제는 시를 읽어주는 목소리가 시보다 더 읽기 힘든 문장이라는 것입니다. 수강신청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제겐 너무 어려운 강의였습니다! 시어 속에 은폐된 속뜻을 찾고, 난해한 시를 좀 더 전문적으로 읽고자 하는 독자(만)에게 추천합니다.
시란 과연 무엇일까? 어린이를 위한 동시를 비롯하여 청소년,어른들을 위한 일반시에 이르기까지 시는 시를 제대로 음미하고 상상하고 추리하는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존재물이다.시가 언제부터 세상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시 속에는 서정성,상징성,사실성,비판성 등이 잘 담겨져 있다고 보여진다.시 한 편을 통해 삶의 의미를 고취시키는 계기가 있는 가 하면 지난 날 아픈 상처를 위무해 주는 시도 있다.짧지만 강렬한 압축미와 운율감은 음미하는 이로 하여금 심성을 정화시켜 주고 사회부조리,불만에 대한 것들은 대리만족을 시켜 주는 경우도 있다.
시의 언어는 신화처럼 유동적이고 다의적인지도 모른다.시인의 눈과 귀에는 한없이 펼쳐진 신화적 우주가 펼쳐내는 풍경과 노래를 향해 열려 있다는 점에서 시의 세계는 신화를 닮아 있다. - 본문 -
시는 정해진 제도와 규율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상상력 풍부한 자유스러움 속에서 인간의 생명,존재를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우주를 닮은 것 같다.아득한 태고의 시절의 갖가지 신화들이 인간의 정념을 가득 채우고 그러한 신화가 인간의 삶의 세계를 질정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시의 궁금적인 지향적은 아닐까 한다.시를 지은 시인의 마음 속에는 당대 사회상,개인의 정념,이루지 못한 꿈에의 회한,인간의 생명력과 존재감 등이 아로새겨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은 임동확저자는 기존 명불허전과 같은 30편의 시를 선별하여 시와 해설을 정교하고도 개성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시는 굳이 가르치거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만큼 교과서적인 시 이해 및 해석을 배제하고,시가 살아 꿈틀거리는 동사적 텍스트로 전환시키면서 시가 선사하는 존재론적 사태와 말들의 향연(饗宴)에 참여하는 한 명의 초대객으로 남고자 했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시들도 참 많이 등장하고 있다.기형도의 길,정지용의 공간,김현승의 고독,윤동주의 자아,이육사의 초인,김수영의 아니마,백석의 연인,김규동의 느티나무 등이 새록새록 마음을 울리게 한다.대부분의 시인들이 구축해온 세계를 확대하고 심화시키려는 노력보다 현상 유지에 급급하거나 관성적인 것들이 주는 편안함에 눌러앉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김정환 시인의 시 「독수리」는 시인 자신에 대한 반기이자 모반으로 보인다.
독수리
잘난 사람들은 모른다
내 날개는 바로 아깻죽지의
운명이라는 것을.
날아오르는 날개는 없다.
내 무게보다 더 무거운 어떤
떠받침이 있을 뿐
숭배보다 더한
그 무엇이 있을 뿐.
지상의
짐승의 시체를 파먹으며
내 날개가 느끼는 것은
유가족
집단의 집단적인
위의(威儀)
(중략.후략)
저자는 이 시를 집단적인 생명의 세계에서 개별자의 세계로,지상적이고 대지적인 것에 더 가치를 부여 하며,세속의 시간으로 귀향하는 신으로서 독수리를 출현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그외 김규동의 「느릅나무」를 통해 선입견,가치체계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인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했다.타향에 있으면서도 눈 감으면 언제나 마을 어귀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느티나무는 수호신과 같고 어머니의 품결과도 같으며 끊임없이 변주되면서 삶의 지평으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마음은 또 다시 고향의 느티나무로 훨훨 날아가고 만다.
살아 있는 모든 만물은 한 순간도 쉼 없이 움직이고 살아 있다.그것은 작은 변화일 수도 있고 때로는 요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기도 한다.인간도 마찬가지 예외 없이 살아 있는 것이다.육신은 없어졌지만 영혼은 순환되어 내세에 또 다시 탄생하여 움직이고 살아 가는 생명력과 존재론을 이 글은 특히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시 한 편 한 편 세세하고 정교하게 해설을 하고 있는 저자의 해박함과 다채로운 언어감각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시인의 마음을 꽤 뚫어 보고 있는 듯 예리한 통찰력과 예지력이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몇 가지 탁월함이 보인다. 다양하면서도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주제의 시를 골랐다고 생각된다. 시를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생각된다. 시를 읽거나 쓰다보면 내 취향에 빠지기 쉬운데 이런 시도 있구나 생각되면서 이런 주제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미숙한 나라 이런 깊은 사색을 하는 시를 짓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정말 감사한다.
저자는 또한 시를 어떻게 그렇게도 깊으면서도 통찰력 있게 분석하고 이해시켜주는지 놀랍고도 놀랍다. 정말 시를 제대로 연구하는 시의 전문가, 시박사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그냥 읽을 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시도 설명을 들으면 정말 공감이 되고, 그 시와 시인에 대한 재평가가 저절로 된다. 어떤 시는 시인 보다도 더 깊이, 더 큰 의미를 불어 넣어주는 시에 영감을 불어 넣는 영성가라는 생각이 든다. 임동확 시인의 소개에 ‘특히 시를 쓰고, 읽어주고, 가르치는 모든 과정을 일종의 종교적 제의로 받아들이며 문학과 학문을 병행하는 점에서 당대에 보기 드문 인문주의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내가 감동받은 몇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p19에서 그러므로 “살아 있다”는 것은 “흔들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불가피하게 “흔들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살찌운다. 참으로 공감한다. 나도 “흔들리는 나무”라는 시를 쓰면서 흔들리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는 느낌을 적어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어떤 분이 그 글을 보고 “요즘 흔들리고 있나봐”하면서 답글을 올린적이 있다. 조금은 씁쓸했다.
정지용의 장수산이란 시에서
p53에 ‘“맹아리”와 “고요”, 정지와 흔들림과 같은 절대적으로 서로 다르면서도 동시에 서로 절대적으로 결속되어 있는 영속적인 패러독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절대적 시공간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집중할 때, ’장수산‘은 한낱 우리에게 죽은 기계의 소음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상호 유대적인 결속이 창조하는 생명의 화음을 들려주는 장소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라고 했다.
영국의 유명한 영성가 C. S. 루이스도 신의 음성을 듣지 않기로 작정하였다면 라디오, 음악, 드라마, 신문 등의 소리를 계속 들리게 하라고 하고 있다. 장수산 같은 절대적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김현승 시인은 그의 시 <절대 고독>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나의 시는‘라고 한다. 그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직시함으로써 나의 시는 그 생명력을 얻는 역설에 직면한다. 시적 언어의 무기력 내지 한계를 느끼는 데서 오는 절망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안도감으로 뒤바뀐다. 침묵의 희열, 침묵의 영광, 침묵의 환희를 볼 수 있었다.
김정환의 시 ‘독수리’에서
p177에서 “고독한 천상과 무한한 지상 사이의 중간 지대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으로서 ”나“는 ”내 무게보다 더 무거운 어떤 / 떠받침“, 또는 ”숭배보다 더한 그 무엇“에 대한 깨달음 혹은 그 어떤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득 세속의 시간으로 임재하는 신으로서 ‘독수리’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작가 이중텐은 영감 중에는 끝없이 질문을 하는 철학적 영감과 맹종을 요구하는 종교적 영감이 있는데 둘을 이어주는 것이 시인의 영감이라 했다. 김정환의 시인의 영감으로 두 영감을 이어주는 시로 이해된다.
윤중호의 <시>에서
p316-321에서 서정시가 “엄니”의 삶으로 대변되는, 제대로 된 보호막조차 없는 작고 초라한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 "행상으로 어렵게 살다 간 시인 자신의 “엄니”에 대한 회상은, 바로 그와 같이 힘없고 가난한 삶과 세계가 서정시가 태어나는 자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 한낱 “행상”으로서 “한 달에 한 켤레씩 신발”이 닳도록 “걸얻”니며 겪어야 했던 “엄니”의 내면에 스쳐갔을 가뭇없는 “막막”함이나, 명확한 의미로 규정지을 수 없는 “질수심”과 같은 마음의 세계가 서정시의 근원이자 출발지임을 의미한다. ...... 서정시가 단순히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낙원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 간신히 정하는 소리 없는 주변성의 소리, 하지만 그 속에 내재한 생명의 원초적 리듬 또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 때문에 서정시인들은 “이른 봄 새벽부터” 길도 얼어버린 겨울 그믐밤까지“ ”눈물겹게 아름다운“삶의 길 또는 사랑을 마치 ”행상“처럼 노래하면서 스스로를 주변자 또는 생의 변방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정시인들의 시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시를 통하여 대변하는 것 같다. 아니 그 시를 저자가 대변해주는 대변인 같은 느낌이다. 나도 시감이 짧아 자연을 통해 먼저 느끼고, 그 느낌의 의미를 새겨보는 정도로 적어보고 있다. 이렇게들 깊은 것까지 느끼고, 지면에 옮기는 것은 아직 나에게는 먼 길인 것 같다. 그러나 저자와 같은 책들을 많이 읽고 습작하다보면 언젠가는 산마루에 오를 날이 오리라 생각해본다.
중학교 시절에는 자주 읽었던 편이기도 했지만
저도 지금은 잘 읽게 되지 않더라구요
그러면서도 시를 좀 더 재미나게 읽고 싶다라는 마음은 늘 한켠에 자리잡고 있답니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라는
이 책의 제목과
표지에 쭉~ 적힌 시인들의 이름을 보고
이 책은 사람들에게 시를 편하게 읽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어요
이 책의 저자 "임동확"님 역시 시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딸이 시에 대해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보고
좀 더 시를 가깝게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썼다고 하셨어요
사실 우리가 학교 다닐때 시를 그저 읽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온갖 줄을 그어가면서 적용된 표현법과 내재된 의미를 외우느라 바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더 어렵다고 느끼는 거구요.
그런 모습을 보며
시를 그대로 느끼도록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이 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책에는 제가 알고 있는 시인들 뿐만 아니라
생소한 시인들의 작품들이 가득해요
잘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제가 그동안 얼마나 시를 멀리하고 살았는지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답니다.
이 책의 구성은
전체의 시를 먼저 읽게 하고
그 뒤에는 그 시에서 느끼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있어요.
아~ 그런데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이 책을 읽기가 저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시에 대한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
시인이 이 시를 쓰게되었던 배경같은 것들이였어요
그런데 시인은 시의 문구 하나하나를 들어가며 너무나 상세히 설명을 하고 있어서
저는 읽으면서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따옴표까지 사용해가며 문구들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는데
처음 접하는 시들이 많은 제가 한두번 읽고 앞쪽의 시 전문을 외울수는 없는 노릇이니
읽으면서 계속 앞쪽에 실린 시를 들추어 보면서 읽어야했어요.
그러다보니 책장이 넘어가지를 못했고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단어나 문장에 줄 그어가며 설명하셨던 것과
무슨 차이인가 싶었어요
시의 전체를 보고 느끼고 싶었으나
시의 부분부분의 해석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이 책이 저는 참 어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읽으면서 아~ 이 시 참 좋다~~ 라고 느꼈던 작품들이
도리어 뒤의 설명들을 읽으면서
좋았던 기분을 잃게되고 말았어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시인들과 시를 많이 접할 수는 있었지만
그 시를 제 마음에 담아내기에는 어려웠던 책이라 많은 아쉬움이 남네요
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 이런 시들은 학교에서 문학으로 들어가서 배우고 그 당시에 시대적 배경과 시의 저자의 마음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풀이 되어 왔다. 어린 시절 국어시간에 시를 배우는 시간이거나 시로 출제된 문제풀이를 위해 시에 담겨져 있는 것들을 파악하고 문제를 푸는 대에만 공부를 하였었다.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를 한 후에는 대학에서는 자기계발 관련된 교과나 인문학 수업을 통해서 몇 가지 시를 들으며 한 줄에 담겨있는 의미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각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직접 겪어왔던 공부를 통해 배우는 사람들이 있겠고 심성이 곱고 감정이 풍부해서 시의 한 단어에 담겨 있는 뜻을 풀이하거나 생각하면서 지내는 사람이 있고 시를 짓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저도 아직은 아니지만 시를 나중에 한번 지어보고 싶고 시를 가까이 하고 싶었는데 이 책을 쓴 임동확 저자를 통해서 시의 풀이에 더 다가가고 임동확 저자가 생각하는 각 주제들이 있는 시의 풀이를 볼 수 있었다. 각 주제들에는 많은 시인들이 쓴 시들이 있지만 그중 에서도 살아오면서 마주치게 될 30가지의 주제들로 선정하였다.
임동확 저자가 시들을 보면서 풀이한 방법에는 우리가 학생시절이나 시를 접했던 때의 풀이와 다르다. 하지만 시에 대한 시대적 풀이도 틀린 것은 아니고 저자가 풀이한 방법도 틀리다고는 할 수 없다 생각한다. 이유는 시를 보는 관점에서 그 시대의 작가가 시대의 아픔이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사용하던 단어를 쓰고 이 단어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을 수 있다고 본다.
시에는 표현방법이 다양하고 함축적인 것이 매력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 할 때만 보고 다시 접하지 않게 된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이 책을 통해서 시의 풀이를 보면서 생각을 폭을 많이 넓혔으면 좋겠고 마음을 시로 표현한 많은 작가들이 생겼으면 한다. 임동확 저자는 시를 쓰고, 읽어주고, 가르치는 모든 과정을 일종의 종교적 제의로 받아들이며 문학과 학문을 병행하는 점에서 당대에 보기 드문 인문주의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를 쓰고 싶은 감정이 아직 크진 않지만 쓰고 싶어 하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나 감정적이고 싶은 사람은 이 저자의 시도 보고 컴퓨터를 통해 찾아 볼 수 있는 시나 집근처의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시를 통해 주변 사람들 간의 대화에 표현력에도 시적표현이 나타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세상도 한번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것을 통해 상상력도 키우고 날개를 펼치며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서로간의 동질감이나 관심사가 시로 되면 아름다울 것이다. 작가에는 동요를 짓기도 하고 노래를 짓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시를 짓는 것 또한 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많이들 짓기도 하고 시 분야도 잘 되었으면 한다.
시가 좋아서라기 보다 교과서에 실린 시들이 그 책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국어 점수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시를 봤던 것이다.
읽은 게 아니라...
우리는 시를 그렇게 배웠다.
은유, 단어가 상징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오답이다.
이렇게 시를 보아왔다.
그것이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는 우리에게 문학이 아니라 시험문제로 남아 있었다.
지금 학새을도 시를 그렇게 배울까봐 사실 서글프다.
작년에 윤동주 시인에 관한 소설을 읽고 다시금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어보았다.
국어 교과서에서, 국어 선생님이 알려주던 은유를 모두 빼고 그의 시만을 읽었다.
아무런 주석도, 설명도 달려 있지 않은 생것 그대로의 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느낌대로 만끽하는 시의 맛은 정말 황홀했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다.
시를 써서 시인이 아니다.
시를 읽고 느낄 줄 아는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집을 가장 많이 산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시인인 것이다.
사실 이 책도 조금은 반칙이다.
시를 느끼자고 해놓고 시에 대한 부연설명이 너무 많다.
물론 그가 느낀 시를 적어 놓은 것이겠지만...
책의 구성은 시 한편을 소개하고, 그 시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붙이는 형식인데 그가 이미 언급했듯 시를 통해 생의 다양한 주제들과 만나고 싶어한다. 그래서인지 읽어나가며 한편의 철학서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고, 전에 읽었던 <철학카페에서 시읽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소개된 시들은 모두 서른 편인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시들도 있고, 다소 생소하거나 얼핏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없지않다. 하지만 익숙하면 익숙한대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만날수 있어 즐거웠고, 낯선 시들은 나름대로 해체하고 생각하며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편을 들어보자면 최하림 시인의 "공중을 빙빙 돌며"라는 시와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중을 빙빙 돌다 버드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새 한마리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은 특별하다. 시의 시작에서 끝까지 머뭇거리다 내려앉은 새는 여전히 버드나무 가지위에 있지만 그 시간동안 물리적인 인과율로 단지 이파리들이 동요하는 것을 넘어 비인과적인 원리로서 존재의 율동들이 이어지는 모습을 시로써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과 상황들로 치환된 철학, 시인은 '은유'라는 도구를 가지고 인간과 세계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하고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된다. 처음에 눈으로 본 시들을 작가의 설명을 쫓아가며 다시 보고 또 보고. 그러고 나면 시를 머리로 읽고있는것 같지만 어느샌가 한구절 한구절 마음으로 읽힌다. 눈에서 머리, 마음을 거친 한편의 시를 마침내 소리내어 천천히 읽는 일은 즐거운 마지막 작업이었다.
돌이켜 제목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를 떠올려본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라는 운명을 받아쥐는 유한한 우리, 아무리 타인 혹은 외부의 그 어떤 것을 갈구해도 결국 온전한 '나'는 철저히 혼자일수밖에 없는 고독한 우리. 그렇기에 우리는 결국 모두 시인일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고, 누군가의 詩를 내려놓고 어디로든 한걸음 나서보아야겠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바람과 멈춰있는듯 보이는 것들에 깃든 과거의 시간들과 무언가로 가득 들어찬 공간들... 온갖 존재들 속에서 나만의 詩心을 들여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