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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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TV「책읽는밤」 선정 ‘오늘의 책’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선정 ‘이 달의 읽을 만한 책’
작가정보

룽잉타이는 폭넓은 지식과 날카로운 시사적 감각, 촌철살인의 명쾌한 문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중화권 최고의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1952년 타이완 가오슝에서 태어나 1974년 타이완 청궁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타이완 정치의 부패와 문화의 부식을 신랄하게 비판한 첫 평론집 《야화집》을 출간하여 타이베이 사회에 돌풍을 일으켰으며, 1986년부터 1999년까지 취리히와 프랑크프루트에서 지내며 하이텔베르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독일 신문에 칼럼을 썼다. 그 후 타이완으로 돌아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타이베이시 문화부 국장을 역임했고, 2005년에는 중국우수도서의 세계화를 위한 열정으로 창작기금회를 설립했다.《눈으로 하는 작별》은 룽잉타이가 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의 시각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애틋한 정을 그려낸 에세이다. 출간과 동시에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 여러 중화권 나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중국 문학계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외에도 《은색 선인장》, 《백년 사색》, 《바다를 마주할 때》, 《문명으로 설득해봐》, 《사랑하는 안드레아스》, 《대강대해1949》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현재 홍콩대학 교수로 재임 중이며 홍콩과 타이완을 오가며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다.
번역 도희진
연세대학교 사학과 및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중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어 국제회의 동시통역사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중국 과학 이야기》, 《잠재규칙》, 《번역학 비판》등이 있다.
목차
- 1부 홀로 떠나야 하는 길들
눈으로 하는 작별/ 위얼/ 열일곱 살/ 사랑/ 홀로 가야 하는 길/ 외로움/ 믿음과 불신 사이/ 1964년/ 선명해지는 것/ 무엇/ 함께 늙기/ 만약/ 넘어졌을 때-K에게/ 걱정/ 화장놀이/ 겨울 빛깔/ 산책/ 누구를 위해/ 클럽/ 집으로 가는 길/ 오백 킬로미터/ 쥐화/ 어머니의 날/ 두 개의 비밀계좌/ 행복
2부 모래 위의 발자국, 바람 속의 목소리, 빛 속의 그림자
찾았다/ 우울증/ 우리 동네/ 배우지 않았나요/ 화재 경보/ 원숭이 마피아/ 도시의 원주민/ 두보/ 댄스 플로어/ 팔찌/ 홍콩/ 눈처럼 새하얀 천/ 별이 빛나는 밤/ 카프카/ 상식/ 치치/ 늑대가 온다/ 신 이민/ 울남 하늘/ 꽃나무/ 혼란/ 시간/ 거리/ 쑤막/ 느리게 보기
3부 산과 들에 가득 핀 차나무 꽃
심연/ 무장해제/ 젊었지/ 여인/ 틀니/ 동창회/ 고비/ 노자/ 걸음마/ 눈/ 말/ 지켜보기/ 끄다/ 1918년, 겨울/ 귀혼
책 속으로
안드레아스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교환학생으로 일 년 동안 미국에 가게 되었다. 공항에서 우리는 작별의 포옹을 했다. 내 머리는 그의 가슴께에 겨우 닿았다. 마치 기린의 다리를 붙들고 선 느낌이었다. 안드레아스는 엄마의 깊은 사랑을 간신히 참아내는 듯 보였다.
지루하게 늘어선 줄에서 여권 심사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줄곧 눈으로 뒤쫓았다. 마침내 안드레아스의 차례가 되었다. 창구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가 여권을 돌려받더니, 순식간에 문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줄곧 기다렸다. 잠깐 뒤돌아보지나 않을까. 하지만 그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눈으로 하는 작별〉, 17쪽
조금씩 어둠이 걷히는 새벽, 엄마는 어느새 깨어나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는다. 나이 든 여인은 다 그러한가? 몸이 점점 왜소해지면서 걸음이 가벼워지고 목소리도 작아지면서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진다. 나이 든 여인은 다 그러한가?
나는 쓰던 글을 멈추지 않고 말한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우유라도 데워드릴까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가만히 속삭인다.
“그쪽은 내 딸을 닮았네요.”
고개를 든 나는 엄마의 성근 흰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한다.
“엄마, 맞아요. 제가 엄마 딸이에요.”
-〈위얼〉, 23쪽
“나 집에 돌아갈 거야.”
침대칸에서 내려와 엄마 옆에 앉아 속삭인다.
“누우세요. 이불 덮어드릴게요.”
엄마는 몸을 옮겨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예의 바르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엄마가 갑자기 예의를 차리면 나는 알아차린다. 지금 이 순간 엄마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자신을 도우려는 친절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 한밤중의 기차 안은 오로지 정적만이 감돈다.
-〈오백 킬로미터〉, 120쪽
아버지는 늙었다. 그래서 등이 굽었다. 당연하다. 치아도 음식을 씹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다. 당연하다. 걷지도 못하신다. 당연하다. 그래서 아버지의 곁에서 걷고, 함께 밥을 먹고, 부축해가면서 같이 앉고,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 모든 순간에, 한 번이라도 아버지에게 제대로 시선을 준 적 있는가?
그렇다면 ‘늙는다’는 의미는 곧,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한다는 뜻일까?
문득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겨울철 건초처럼 부스스한 흰머리를 정수리에 대충 묶고 있지만,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눈동자에는 오히려 집착이 가득하다.
-<눈>, 318쪽
출판사 서평
“저예요, 샤오징. 당신 딸…… 기억하시나요?”
저자는 치매에 걸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해 가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13억 중국인을 울린 감동의 베스트셀러인 이 작품은 대만 최고의 지성 룽잉타이 교수가 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깨달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섬세한 문체로 써내려간 수필집이다. 오십이 되어 겪은 아버지의 죽음은 비판적인 시각과 예리한 문체로 유명한 그녀마저도 무장해제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만의 내밀한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냈고, 이 책의 제목과 동일한 에세이 <눈으로 하는 작별>은 사람들 사이에 입으로 이메일로 회자되며 대만과 중국을 넘어 해외로까지 그 감동을 이어나갔다. 저자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늘 부모님에게는 떠나가는 뒷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눈으로 하는 작별》의 저자 룽잉타이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인물이지만 대만을 비롯한 중국, 홍콩 등 중화권 나라에서는 이름만 대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1985년 대만 정치의 부패와 문화의 부식을 비판한 첫 책 《야화집野火集》을 출간하며 대만 사회에 돌풍을 일으켰던 그녀는 그 후로도 중국과 대만을 오가며 양쪽 정치인을 향해 거침없는 직언을 해왔다. 2006년에는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기관지인 『중국청년보』의 주간부록 ‘빙점(氷點)’이 공산당의 심기를 거슬러 정간되자, 후진타오 국가 주석에게 장문의 공개서한을 써서 신문 복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빙점’ 사태 이후 중국 내에서는 더 이상 그녀의 정치적 입장이 담긴 책과 기사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룽잉타이는 여전히 중국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중 한 명으로, 그녀의 글은 인터넷을 비롯한 다른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룽잉타이 하면 중국 문화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10년 넘게 독일에서 체류하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했다. 귀국 후에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타이베이시 문화부 국장을 역임하며 재임 기간 동안 문화예술가들 및 시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유도해서 타이베이를 ‘문화의 도시’로 키워내는 데 성공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뛰어난 중국 문학이 여러 외부적 한계로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여 2005년 중국우수도서의 세계화를 목표로 ‘창작기금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화권의 정치, 문화 부문에 대한 폭넓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열정적으로 활동을 해온 저자가 2008년 발표한 《눈으로 하는 작별》의 출간이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동안 딸이자 부모로서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과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많은 독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대만에서만 20만 부 이상이 팔리며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저 사소한 것일 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은 일이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룽잉타이 또한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난 후 대부분의 사회적인 이슈들이 단지 사소한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삶의 고비에 대해 “어떤 일은 혼자 해내야 하고 어떤 고비는 혼자서 넘어야 하는 것처럼, 어떤 길은 온전히 홀로 가야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은 자신 또한 알게 모르게 가족과 친구 및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위안을 얻었음을 인정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 늘 자신을 걱정해주는 친구,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형제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 애쓴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로 대변되는 죽음과 노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동시에 어느새 훌쩍 자라서 자신의 품을 떠나려는 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비로소 떠나보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_ <눈으로 하는 작별>, 본문 18쪽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다
《눈으로 하는 작별》을 지배하는 정서는 가족과의 이별이다. 20세기 중반 중국 공산당에게 쫓겨 국민당과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 가정의 딸로 태어난 룽잉타이는 부모와 형제 외에 다른 친척이 없었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 때문에 오십이 될 때까지 죽음으로 인한 가족과의 이별을 경험하지 못한 룽잉타이는 “보통의 가족이었다면 아마도 열 살 때쯤 할아버지의 죽음을, 열세 살 때쯤 할머니의 죽음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십이 넘어서야 보통 사람들이 십 대에 겪었을 법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겪은 첫 번째 인생 수업이었다.”라며 아버지의 죽음이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나에게 망망대해에 느닷없이 내리꽂힌 번개와 같았다. 번개가 어두운 밤하늘을 둘로 가르면 순식간에 명멸하는 빛 속에서 당신은 평생 몰랐던 가장 깊숙한 상흔, 가장 신비한 파편, 가장 난해한 소멸을 알게 된다. _ <무엇>, 본문 61쪽
길거리를 둘러본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하지만 그는 어디에 있는가? 누구라도 말해달라. 그는 어디로 간 걸까? 간다면 한 마디 말이라도, 메시지라도, 변명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는가? (중략) 한 사람의 행방이, 어떻게 아무런 흔적조차 없이 묘연해질 수 있단 말인가? _ <끄다>, 본문 331쪽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망망대해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고독함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살아 계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새삼 깨닫게 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와 슬픔, 방황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그러한 아픔을 견디고, 상처를 극복하게 하여 이 책을 완성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굴곡진 인생을 살아오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지켜보며 자신 또한 여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어머니의 삶에 동변상련을 느끼며 삶과 죽음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것임을 깨닫는다.
조금씩 어둠이 걷히는 새벽, 엄마는 어느새 깨어나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는다. 나이 든 여인은 다 그러한가? 몸이 점점 왜소해지면서 걸음이 가벼워지고 목소리도 작아지면서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진다. 나이 든 여인은 다 그러한가?
나는 쓰던 글을 멈추지 않고 말한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우유라도 데워드릴까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가만히 속삭인다.
“그쪽은 내 딸을 닮았네요.” _ <위얼>, 본문 23쪽
우리 엄마도 항저우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고명딸이었는데, 왜 이렇게 ‘씩씩’한 거지? 그래, 피난살이를 겪으면서 아이 넷을 낳아 그 뒤치다꺼리를 다 했는데, 언제까지나 연약한 아가씨로 남을 수는 없었겠지. 우리 엄마는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이웃 아줌마랑 웃고 떠들 때면 웃음소리가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렸다니까. _ <선명해지는 것>, 본문 55~56쪽
“나야 완전히 할머니가 다 됐는데, 무슨 화장이니?”
하지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빗을 꺼내 머리카락을 곱게 빗는다. (중략)
"자, 오므려 보세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듯, 입술을 자연스럽게 오므린다. 이번에는 볼에 연지를 엷게 펴 바른다. 그리고 눈썹 문신을 했던 자리에 가늘게 눈썹을 그려 넣는다.
"보세요," 나는 엄마를 껴안고 큰 거울을 마주한다. "둥잉(冬英)이 얼마나 예쁜지."
그러자 엄마는 놀란다.
"아니, 네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니?" _ <화장놀이>, 본문 90쪽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에서 드러나는 삶에 대한 긍정
룽잉타이가 중년이 되어 다시 시작한 인생 수업에서 슬픔과 좌절만 배운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그동안 존경받는 교수이자 칼럼니스트,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라는 옷을 입고 있었을 뿐, 실제로 생활적인 면에서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기본적인 일에서조차 서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워한다.
헬렌은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청소 도우미다. 산더미같이 쌓인 신문과 잡지, 엉망진창인 책꽂이 그리고 침대 머리맡과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책들을 보고, 처음에는 내가 꽤나 학식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게다가 책 표지에서 내 사진을 발견한 이후로는 더욱 존경하는 눈치였다. (중략)
"타이완 사람들은 수선화 구근의 껍질을 안 벗기나요?"
헬렌은 수선화 화분을 주방으로 가져가 작은 칼을 들고 구근을 감싸고 있는 보기 싫은 껍질을 한 층 한 층 벗긴다. 컴퓨터를 포기하고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배우지 않았나 봐요?"
이제 상황이 이렇게 바뀌어버렸다. 헬렌만 오면, 나는 달걀 하나 삶는데도 혹시 어딘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눈치를 보게 된다. _ <배우지 않았나요>, 본문 160~164쪽
급하게 들어오는 나를 보고 윈펑이 다정하게 물었다. "좀 피곤해 보이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스스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데도 피곤해 보인다'고 하니 아무 생각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마 전립선 비대증인가 보지." (중략)
그는 내 '농담‘에 대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내게는 농담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윈펑은, 마치 바지 지퍼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남자에게 말해줄 때처럼 난처한 표정으로, 상체를 쑥 내밀고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잉타이, 음…… 여자는 전립선이 없어." _ <상식>, 본문 213쪽
요리도 못하고, 여자에겐 전립선이 없다는 것도 모르며, 지네와 노래기도 구별할 줄 모르는 서툰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은 독자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동시에 주변을 바라보는 룽잉타이의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듯 솔직하게 표현된 생활의 단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붓끝에서 나온 글이 무엇이든 늘 관통하는 핵심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을 포함한 살아 있는 생명체에 무한한 애정이다’라고 한 중국 매체의 기사 내용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실패와 좌절,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한 놀람과 기쁨, 흥분과 기대를 통해 위안을 얻으며, 삶이라는 여정에서 만난 커다란 고비 하나를 넘었다. 그리고 뒤늦게 배운 인생 수업을 통해 비로소 조금이나마 삶의 참모습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몇 번이나 글 읽기를 멈추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책에서 손을 놓기 힘들다. 이 책은 추억하기조차 힘든 감정을 차분하고 세심하게 남긴 뛰어난 작품이다.
_남방도시보
룽잉타이는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품을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과 죽음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이슈들은 그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고백한다.
_중국청년보
가족과 인생을 주제로 쓴 아름다운 작품이자, 인간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작별 인사이다.
_신경보
《눈으로 하는 작별》은 세상을 뜬 아버지와 늙어가는 어머니를 통해 자신이 곧 걷게 될 노년을 생각하게 하고, 젊은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_전강만보
《눈으로 하는 작별》은 《얘야, 천천히 오너라》와 《사랑하는 안드레아스에게》에 이어 룽잉타이가 또 한 번 ‘가족과 인생’을 주제로 쓴 역작이다.
_북경청년보
이 책을 통해 룽잉타이는 그동안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가족의 삶과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_항주일보
기본정보
ISBN | 9788994026503 |
---|---|
발행(출시)일자 | 2010년 05월 14일 |
쪽수 | 347쪽 |
크기 |
148 * 210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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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대만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다는 작가는 삶의 여행자로서 한동안 믿었다가 다시 한동안은 불신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믿음을 찾아 헤맸지만 이제는 세월 앞에서 믿음이나 불신 모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치매 걸리신 어머니, 그리고 이제는 엄마 품을 벗어나 어엿한 성인으로 자란 자신의 두 아들을 대한 애틋한 사랑, 그리고 세상살이에 대한 작가만의 감성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일종의 수필집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눈으로 한 작별”에서 작가는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고 타이완으로 돌아와 첫 출근하던 날, 사료를 나를 때 쓰던 낡고 작은 트럭에 태워 데려다 주신 아버지께서 정문이 아닌 옆문이 있는 좁은 골목에 차를 세우시면서 대학교수가 탈 차가 아니라면서 미안해하셨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부모와 자식은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눈으로 작별하는 그런 사이구나 하고 느낀다. 또한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아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옛 집 앞에서도 계속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가 돌아가고자 했던 “집”은 우편 번호가 매겨져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어릴 적 자식들이 뛰어놀고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하던, 시간 속의 그 “집”이며 어머니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를 놓친 “시간여행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과 인사처럼 나누는 말 "건강 조심해"라는 말이 늘 진지한 까닭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며, 사랑이란 속절없이 사라지는 존재라 해도, 반딧불이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하고 우리에게 물어온다. 또한 실패에 좌절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를 성공적으로 완주하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지만,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가끔씩은 실패가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지, 넘어져 본 사람이 달리기에 더 진지하게 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실패가 때로는 다시 힘차게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충고한다. 그녀는 행복이란 항상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삶이며,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나날 속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아침에 손을 흔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나간 아이가 저녁이 되면 아무일 없이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와서 책가방은 방 한구석에 던져버리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의자 밑에 쑤셔 박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평온함이 곧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버지께 안부 전화 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3부 산과 들에 가득 핀 차나무 꽃”에서는 병마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 곁을 지키셨던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애틋하면서 가슴 아픈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아련해졌다.
가족과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여느 수필과 별 차이가 없겠거니 하고 시작한 책 읽기가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더니, 다 읽고 나서도 그 여운이 길게 지속되는 그런 책이 되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결코 녹록치 않은 삶에 대한 성찰들은 노트에 적어두고 자주 들여다 보고 싶을 정도로 글귀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 그런 글들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부모님과 그리고 자식들과 매번 눈으로 작별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슴으로 이별하게 되는 그날, 아무리 준비해 둔 이별일지라도 눈에 하나 가득 차오르는 눈물과 심장이 뜯겨나가는 듯한 슬픔을 참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그런 이별이 준비로만 끝나기를, 실제로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가슴 속으로 빌어볼 뿐이다.
저자는 중화권에서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다양한 이력을 가진 지식인이었고, 그런 내면은 책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자가 가진 지식을 고리타분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닌 일상과 맞물려 그려 냈기에 지식이라는 편견을 없애고 알찬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의 시작과 말미에 부모님에 관한 글이 실려 있어 하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아버지에 관한 추억이 가득한 책의 끝부분은 저자의 절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부모님에 관한 추억과 죽음 앞에서 조금은 숙연해지고,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저자의 경험이 구석구석이 녹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듯한 부분도 많았다. 순식간에 읽어버릴 수 있는 에세이임에도 속도가 나지 않았던 것은 저자가 펼쳐놓은 삶의 면모가 낱낱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자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누가 더 많이 살았느냐, 어떠한 무게를 갖고 있느냐보다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동감을 얻어낼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해준 작가가 바로 룽잉타이였고, 나의 인생보다 앞서나간 것 같은 많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 안에서 내게 맞는 이야기들도 넘쳐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저자는 중국의 고전 시들을 많이 인용하며 잔상들을 남겼는데, 고전 시가 내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도 나름대로의 해석들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어떤 외로움은 곁에 얘기를 나눌 누군가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개 한 마리가 덜어줄 수도 있다.', '사랑이란 속절없이 사라지는 존재라 해도, 반딧불이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란 문장 앞에서 어떻게 나와 다르다고 떨쳐 버릴 수 있겠는가.
저자가 명쾌한 문장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글의 다양함 속에서 독자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무리 듣기 좋은 시 구절도 문학적인 가치만 언급한다면 지루할 것이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도 자신의 경우만 얘기한다면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그 모든 것을 적절히 섞었을 뿐만 아니라 유머도 집어넣고, 생활 속의 자잘한 에피소드까지도 기꺼이 드러냈다. 어느 날은 문학과 사회 현상에 대해 깊이 있는 글을 써내다가도, 계란 하나 삶는 것에도 가정부에게 타박을 들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아들과의 대화나 메일을 주고받을 때는 항상 긴장하게 되었다. 세대가 다르다는 차이를 느끼고, 자신의 의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 앞에서 버릇없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느끼다가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앞에서는 괜히 찡해지기도 했다.
3부로 이야기가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소재의 글을 만나서인지 나름대로 정리한다는 것이 벅차게 다가온다. 오랜 시간 꼼꼼히 읽었음에도 평소와는 달리 느린 독서여서 그런지 많은 이야기가 뒤엉킨 기분까지 든다.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 일상의 자잘함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그 안에는 분명 나와 다른 것에 생경함을 느끼기도 했다. 저자가 살고 있는 타이베이의 풍경, 타이완의 문화,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일상이 그랬다. 하지만 그런 과정 자체도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걸러내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오히려 그런 생경함 때문에 내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게 된 경우도 많았다. 문화의 다름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일 뿐, 그것이 타인과 나를 연결해 주는 데 방해를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하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중략)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라고 말했다. 저자가 부모와 자식 간에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더 다양한 단상들을 엮어볼 수 있을 것이다. 삶, 관계, 사랑, 이별, 죽음 등 그런 식으로 바라보다 보면 자신의 현재 위치는 물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보일지도 모른다. 꼭 이렇게 거창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갇힌 시선에서 타인의 드러낸 시선을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놓쳐 버리고 잊어 버렸던 기억들, 스치고 무시해 버렸던 추억들이 저자를 통해 생생히 되살아 날 것이다. 그로인해 현재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존재감이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시대적 아픔을 지니고 고향을 등지고 떠나 와 자식 넷을 꿋꿋이 잘 키워낸 부모님의 노년을 먹먹히 바라보는 ‘자식’인 동시에 다 큰 아들들의 뒷모습에서 알아챈 ‘작별’을 받아들여야 했던 ‘부모’인 저자의 시선은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문장이 절절함과 깨달음 그 이상을 대신한다. 일련의 모든 삶 속의 감정들이 꾸밈없는 섬세한 묘사와 표현에서 생생히 살아난다. 글로도 모자라 여백에조차 ‘작별’의 과정에 서 있는 우리의 눈물을 담아냄은 물론이다. 반 세기의 고개를 넘어서 느끼는 주위와 자신의 ‘변화’에 대한 깨달음, 그 세월이 묻어나는 짧은 일상의 에피소드들에 난 그 한 장 한 장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려는 ‘집’은 우체부가 찾을 수 있도록 우편번호가 매겨져 있는 그런 집이 아니다. 엄마가 돌아가고 싶은 ‘집’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어린아이가 숨바꼭질하며 웃고, 부엌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남편은 등 뒤에서 두 눈을 가리면서 누군지 맞춰보라고 농을 건다. 그때 누군가가 문밖에서 외친다. “등기 왔어요. 도장 가지고 나오세요.”
엄마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를 놓친 시간 여행자다.
- P.117 <집으로 가는 길> 중
나는 저자의 엄마에게서 작년에 먼 하늘 길을 따라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간 나의 할머니를 부단히 떠올렸다. 나의 할머니는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부재와 지극히 아꼈던 아들(나에겐 큰아버지)의 외면에 슬퍼하다 어느 순간 이 책 속의 ‘엄마’와 같이 시간 여행자가 되어 마지막 14년을 보냈다. 나의 지난 20여년의 인생 초반부는 아련한 할아버지의 내리사랑과 ‘시간여행자’가 된 할머니와의 끊임없는 부대낌, 그리고 그들과의 ‘작별’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서툴렀던 ‘작별’이 가져다 준 일련의 감정들과 변화를 눈에 선하게 그렇게 보고 느꼈나 보다. 그러다 보면 이젠 그 문장의 마침표 마다 나의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품을 벗어나 멀어지고 있는 나의 뒷모습을 보는 그런 나의 부모님이 보이는 것이 신기하리만치 이상하지 않았다.
이 한 권으로 ‘작별’에 갑작스레 익숙해지거나 정해진 ‘작별’을 기꺼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자신도 쉬이 가질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물 셋의 ‘자식’이기만 한 지금의 내가 부모님에게 ‘멀어지는 작별의 야속한 뒷모습’만을 남기지 않아야겠다는 잊지 못할 ‘작별’의 약속만큼은 가슴 깊이 남는다.
책을 읽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나름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한데도, 그것이 꽤나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타인이 쓴 책을 읽는데도 이렇듯 시간과 노고가 들어야 하는데, 하물며 글을 쓴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고가 들어야 하는걸까.. 매번 책을 읽을때마다 작가들에 대해 드는 감정이자 감탄이다. 중국 작가의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이상하게 그러네..) 오랜만에 접하게 된 여작가의 책으로 에세이집이다. 표지를 들추면, 제일 앞장에 작가의 프로필이 나오고 그녀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상당히 푸근한 모습이다. 한국의 옆집 아주머니 같은 인상의..^^
중국에서는 꽤나 알려진 작가임에는 틀림없이 보이는 그녀가 틈틈히 써내려간 에세이 집으로, 가족에 관한(그중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라거나, 자신의 글 이야기, 친구 이야기. 나이가 들어감에 생긴 소소한 이야기 등등이 실린 책으로 소소함을 느낄수 있는 책이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이 읽으신다면, 조금은 더 공감가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실려있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이상하다. 남편과 헤어짐을 했을지도.. 혹은 먼저 저세상으로 가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남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글이 하나도 없음은 조금 의문점이 드네.. 다 읽은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을 하는.. ^^;
룽잉타이 그녀의 어머니는 중풍에 걸렸다. 자신의 딸이 곁에 있어도 '누구세요?'라고 자꾸 되물어 오는 어머니.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대할때면, 그녀는 자꾸 작아지고 가슴이 아파온다. 좀 더 온전한 모습이셨을때 더 많은 것을 함께하고,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더 많은 맛난 음식들을 함께했더라면.. 하는 부끄러운 후회감.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와 닿았던게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들이었다. 부끄러움에서였을까.. 나도 그녀의 부끄러움을 따라가고 있었다. 눈오는 날 읽으면 좋을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들로 담겨진 책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책.
처음 책소개를 읽었을때 나는 이 책이 '가족'을 주제로 한 홈드라마인줄 알았다. 장르가 시/에세이였기 때문에 어떤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대하면서 책의 첫장을 넘겼다. 어딘지 가슴뭉클한 이야기일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읽었던 책인데 막상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느낌의 책은 아니었다. '가족'을 주제로 한것은 맞지만 애잔하다거나 눈물이 핑도는 이야기는 없었다. 잔잔하다못해 참 평범한 이야기였다. 어느 중년 여성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눈으로 하는 작별」은 대만의 룽잉타이 교수의 자서전격의 에세이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다들 삶과 죽음, 작별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한다. 제목에도 '작별'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정도다. 그러나 내가 읽은 「눈으로 하는 작별」은 책소개에서 말하는것처럼 삶과 죽음, 작별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부모님, 그리고 세대차이, 또 나이를 먹는 나와 나의 자식들,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생각이 담긴 책이었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는 작게는 룽잉타이 본인의 이야기였고, 조금 더 크게는 저자와 동시대에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외성인 가정의 모습이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에게 쫓겨 타이완으로 건너온 외성인 가정에서 자란 저자가 그런 환경속에서 부모, 형제와 겪은 구구절절한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격동하던 우리 60~70년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와 그 세대 아래에서 자란 내 부모세대를 떠올려보게 만들기도 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자식들의 뒷바라지 하는 모습은 국경을 초월하는 한결같은 마음같았다. 그런 부모님의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흰머리가 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의 심정이 더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표현되어 있어서 많은 공감이 일었다.
저자인 룽잉타이는 이 책에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그렸다. 치매에 걸려 자신에게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당신의 딸이예요' 라고 대답한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이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진전없는 이 대화가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에서, 그리고 눈앞에서 생생히 그려졌다. 딱히 그 장면이 슬퍼서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딸의 지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당신의 딸이예요'라는 말에 '그래. 내 딸을 닮았군. 그래서 당신은 누구죠?'라고 다시 되묻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서서히 작별을 준비해야 하는 딸의 입장과 마음이 전해져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함께 나이를 먹는 딸인 내가 또 한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자식을 제 품에서 떠나 보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은 내가 다 아는 관계이고,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심정이 어떤지 알수 없는 일이다. 그 모습을 이토록 간결히 표현하면서도 이토록 애틋한 감정을 들게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눈으로 하는 작별」을 읽으면서, 아니 읽고나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책소개에서 말한것 같은 '만남'과 '작별'에 대한 고찰도 물론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떠올린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나와, 내 어머니, 내 아버지, 내 형제들에 대한 것이다. 시가은 많은것을 변하게 만드는데 그 시간은 나와 내 가족들을 비켜가지 않는다. 그 유수와 같은 시간속에서 나의 위치는 또 얼마나 변했는지, 어떻게 변해갈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어떤식으로 받아들일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게 변했어'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날이 올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런 날을 대비해 그게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가 가르쳐준 적이 있었던가?
넘어졌을 때 진정으로 필요한 용기가 무엇이고,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는 무엇인지.
좌절을 더 멀리 뛰는 힘으로 바꾸는 방법은?
왜 가끔씩은 실패가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지.
넘어져본 사람이 달리기에 더 진지하게 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는 배운 적이 없어. (p.78 中)
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사피엔스21
가을에 어울리는 다시금 내 삶을 차근차근 씹어보며
되짚어 보기 좋은 한편의 인생수업을 들은거 같다
대만의 지성으로 유명한 룽잉타이 교수가 50에 말하는 인생수업이라....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어머니의 나이듦을 통해 또 자신이 자라나는 모습과
자신이 나이드는 모습등을 잔잔하게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서로가 하나로 가족이란 틀로 만나지만 서서히 천천히 조금씩 이해하며 살아가는 동안 멀어지는 이별....
그렇게 작가는 눈으로 하는 작별이란 제목처럼 서로 서로의 멀어짐을 꾸밈없이 솔직한 그 심정으로 토로한다
읽는 내내 스스로 돌아본다
아 맞아 나두 이런 느낌이였는데....
공감되는 이야기들 속에 일상과 다양한 사물에 대한 관철된 이야기가
왠지 순간순간 잊고 있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란 느낌...
그리고 죽음앞에서 엄마와 아이가 자라 느끼는 감정에선 사실 울컥했다
그게 앞으로 내 미래일 수 있기에 나역시 조금은 뭔가 이런 작별을 준비할 시기란 느낌....
그리고 이미 떠나보낸 엄마에 대한 그리움일 교차되며
마지막 페이지앞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아다
보고싶고 그리운 그러나 그렇게 마지막을 예고하며
떠난 그리운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감정이입이 되버린듯하다...
섬세한 이야기와 진실이 묻어난 에세이인 만큼 순간순간 눈물이 억제되지 않으리라.....
잊었던 내 어릴적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 그리고 지금 내 아이와 함께 하는 나의 모습과
앞으로 성인이 되어 내 위치가 될 아이와 노년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정에 젖어들며 나 역시 작가한 말한듯
죽음은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가장 큰 스승임을 느껴본듯하다.....
‘눈으로 하는 작별’을 통해 룽잉타이를 처음 만났다. 우리나라 수필 이외 해외 작가들의 글은- 하루키의 수필을 제외하곤- 조금 낯설어서 살짝 염려가 되기도 했다. 기우였던 걸까. 중화권 최고의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룽잉타이가 풀어내는 글은 담백하고도 재미있고, 또한 따뜻했다. 그녀의 글에서 묻어나는 삶에서의 원숙함과 사색의 힘이란! 스물이 조금 넘었던 때던가, 박완서 선생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느꼈더랬다. 소설에서도 이렇게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연륜이 묻어날 수 있구나. 세상을 좀 더 오래 살았던 선배로서의 인생에 대한 사색과 깨달음이 담겨있을 수 있구나 했던, 조금은 놀란 감정이랄까. (정말, 그 때는 참 어렸었구나.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미숙한 나의 얕은 생각들) 눈으로 하는 이별도 그러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감정들을 정교하지만 결코 뾰족하거나 날카롭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언제부턴가, 나는 두렵다. 일 년, 일 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연세가 많아지고 있다는 그 사실이, 두렵다. 삶에 지쳐갈 때, 가장 나를 염려해주고 사랑해주는 분들. 사회생활에 힘들어 할 때, 혹은 흔들리다 못해 주저앉았을지라도 무조건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무한히 신뢰하는 내 편. ‘무조건 내 편인 사람’이 세상에 없다면.. 1Q84의 표현을 빌어 부모님이 ‘상실되어 질까봐’ 두렵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세상에서 영원할 수는 없으니. 생각만해도, 벌써부터 콧날이 시큰해진다.
하지만 그러한 내가 준비하는 작별에 앞서, 나는 조금씩 부모님에게 등을 보여왔던 것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갔던 것은 내가 아닐까. 한시도 떨어져있지 않았던 유아기를 지나 학창시절을 지내며 머리가 굵어졌다는 이유로 독립적인 자아를 꿈꿔왔던 것은 아닌가. 관심을 간섭으로 여겨온 적은 없었던가. 먼저 등을 보여왔던 것은 내가 아닐까.
비단 부모님과의 관계뿐이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별하는 연습을 하는 과정일지도. 사랑했던 사람들과, 낯익었던 공간과 시간과, 특히 아꼈던 사상과 지식과 예술과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과.
그녀의 수필에는 감성만이 담겨있던 것은 아니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자연, 인권 등에 대한 그녀의 의지도 담겨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글이라는 ‘믿음과 불신 사이’는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빛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떠오르게 했다. 그녀의 말처럼 정의를 믿고, 문명의 힘을 믿으며, 역사를 믿어오던 청춘이 세상에 실망하게 되고 불신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니 믿고 있다. 분명 세상에는 ‘정의’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속에는 희망이 담겨있다.
정의가 아무리 의심스럽다고 해도 그러한 정의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 안전하다. 이상주의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되지만, 그들이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여보세요.. 오늘은 어떠세요?”
3부가 끝나갈 무렵, 가슴이 아려옴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살아가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올 작별의 과정이 천천히 소개된다. 아버지와의 작별이 바로 그것. 가족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함부로 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과 아련함이 애절하게 다가온다.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은 정말, 곁에 있을 때는 느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늦은 밤 부모님과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너무 잠이 와서 부모님 손을 양손에 잡고 눈을 감고 걸었던 기억.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면 언제라도 이어지는 어머니의 응원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러는 거야. 이번 일이 너에겐 더 좋은 일이 될 테니.” 정물화의 창시자 샤르댕이 외워지지지 않아 고생하던 미술시험 전날 ‘샤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외워질 것 같다.’라는 말도 안 되는 딸의 땡깡에, 한달음에 달려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시던 아버지. (그 아이스크림 덕에,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샤르댕은 머릿속에 남아있게 되었다.) 한 달쯤 전, 집으로 도착한 어머니의 편지. (누군가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그것도 우체통에 있는 편지!) 회사일로 지방에 계시던 아버지에게 아침에 날아오던 일기예보 문자 “날씨가 많이 춥단다. 옷 따뜻하게 입어라. 우산 꼭 챙겨라.” 어떤 결정을 내려도 딸의 선택을 믿는다! 말씀해주시는 부모님.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기억인지. 그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를 단단하게 설 수 있게 하는- 마음 속의 디딤돌이 아닐까.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는 생활 속 이야기, 에피소드. 그것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나를 닮은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전해도 괜찮을 만한 책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눈으로 하는 작별’은 인생의 선배이신 어른들에게도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책을 만났으니까. 즐거이 이 책을 읽은 나는 책을 태교 중인 친구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따스한 수필은 읽는 이의 마음 또한 부드럽고 따스하게 해줄 테니, 사랑하는 친구의 태중의 아기 ‘별이’도, 친구가 읽을 ‘눈으로 하는 작별’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 소소한 인간관계의 따스함을 담게 되리라. 그 아기가 세상을 아름다운 곳이라 믿으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본다.
오랜만에 접하는 수필을 통해서 또 한 번의 감동과 사랑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게 되었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야도 달리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KBS1 TV 《책 읽는 밤》이라는 프로그램 선정도서로 올랐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된 도서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책은 우리나라의 작가가 쓴 책이 아니다. 중국인이 쓴 책이거니와 저자 《룽잉타이》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에 더욱 놀라기도 하였다. 그녀는 교수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인생에 대한 진정한 깊이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아마도 책 읽는 나 자신조차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인생의 소소한 일상이나 경험담을 통해서 담담하게 써 내려갔고 그녀의 섬세한 문체로 그 울림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가족, 부모, 나, 자식, 인생 등 나와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연결 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많은 인연이 닿아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작 그런 부분에 대해서 놓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누구에게나 헤어짐이나 혹은 이별의 경험은 있을 것이다. 헤어짐과 이별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별’은 ‘서로 갈리어 떨어짐.’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 또는 그 인사.’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두 단어는 비슷한 뜻인 것 같지만, 의미상으로는 다르게 해석된다. 이 책의 제목을 살펴본다면 「눈으로 하는 작별」이다. 즉 ‘작별’에서 말하는 인사라는 의미는 마지막 인사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아버지와 작별을 하였다. 고향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하셨고 더욱 슬픈 사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가족과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단지 가족에 대한 이별이 아닌 외성인(外省人) 가정의 딸로 태어났고 부모와 형제 말고는 다른 친척도 없었다. 그런 그녀의 삶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 다른 의미였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누군가는 고통을 받고 또 누군가는 상처도 받는다. 그리고 실망과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우리 인생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이나 삶의 한 부분에 큰 덩어리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중국인의 쓴 이야기라서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우리네 인생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였기에 읽으면서도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점점 잊혀가고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쳐버린 가족의 테두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던 책인 것 같다. 삶이나 인생을 살면서 그냥 넘겨버릴 일이나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들이 이 책을 통해서 삶에 대한 깊이와 그녀의 이야기로 인생에 대한 통찰력으로 자칫 흘려보내 버릴 것을 잡아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 자신을 그리고 가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가족에 관련된 책은 많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 그 속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독자를 공감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가족과 부모는 항상 자신의 주변에 있지만 정작 그 소중함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설상 알더라도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내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가족의 소중함을 이끌어내어 주었다. 언젠가는 나도 나이가 들고 내 자식들이 나를 부모로 혹은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이 책은 가족, 자식, 부모, 사랑, 애정이라는 연결고리처럼 하나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P21
아무리 깊은 정을 나누고 긴 세월을 함께 했어도,
결국은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풀잎 위의
이슬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그리워하고 마음 속에서 놓아주지 않더라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우산이 되어 주었던 아버지,
그래도 우린 믿어요.
양초는 다 타 없어져도 마음을 밝힌 촛불은
우리 인생의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인생의 여정과 평행선을 달리는 그길로.
아버지 부디 잘가세요.
해가 서산으로 지듯이
그리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P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