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혁신리더 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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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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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이덕일은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시작으로 뚜렷한 관점과 흡입력 있는 문체로 한국사의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풀어냄으로써 역사대중화와 동시에 한국역사서 서술의 질적 전환을 이뤄낸 우리 시대 대표적 역사학자다. 특히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조선 왕을 말하다』(전 2권), 『조선왕 독살사건』, 『윤휴와 침묵의 제국』,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조선 최대 갑부 역관』, 『조선선비 살해사건』 등의 조선사 관련 저술은 조선사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등은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 패권주의사관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복원해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제 침탈이 가시화된 무렵부터 일제 패망과 정부 수립에 이르는 시기를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한 『근대를 말하다』는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외면해왔던 근대를 통찰하여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한국 사회의 갈등 치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며, 시대와 인물을 읽어내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저술에 힘쓰고 있다.
목차
- 저자의 글_서애 유성룡과 전란의 시대
제1부 전란의 시대, 칼끝에 서다
1 도주 길에 오른 선조
2 당쟁의 시대
조선에서 양명학 서적을 처음 접하다
양명학은 왜 비판받았는가?
단숨에 승진한 배경
붕당의 조점
의혹에 쌓인 정여립 사건
3 전란의 그림자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 의 상반된 보고
수수께끼의 일본 사신 귤강광
교꾼에 목을 벤 종의지
답서를 둘러싼 실랑이
4 유성룡과 이순신
임진왜란 직전의 상황
이순신의 뒤늦은 출사
계속되는 이순신의 불운
5 전란대비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사실인가?
진관법으로 돌아가자
6 임진왜란 발발
도체찰사가 되다
무너지는 조선군
운명의 탄금대 전투
패닉 상태의 선조
유성룡 파직되다
7 풍전등화
연전연패
풍원 부원군에 제수되다
평양성 함락되다
무너지는 기강
제2부 통한의 시대, 나라를 다시 세우다
8 반격
계사를 올리다
평양성 수복
배후 차단
삼도 도체찰사
행주대첩과 서울 수복
9 소강상태
강화회담과 유성룡의 반대
서울 수복의 명암
조선과 경략부의 갈들
훈련도감을 설치하다
10 유성룡의 영의정 복귀
양명서를 다시 접하니
경략의 간계와 싸우다
경략 송응창을 실각시키다
11 국방정책
진관체제로 복귀하다
양반도, 천인도 병역의무를 져야 한다
노비 충군에 대한 반발
벼슬길에 나가는 노비들
이몽학의 난
김덕령 연루되다
12 민생정책
대동법을 실시하다
들끓는 반대론
상업을 장려하다
13 정유재란 전야
기축옥사 연루자의 신원을 주장하다
강화교섭
15 정유재란 발발
이순신 제거되다
원균 출진하다
파죽지세의 일본군
반격
조명연합군의 총공세
15 유성룡의 실각
유성룡 공격받다
유성룡이 공격받은 이유
노량해전
16 두문불출
서애 유성룡 연보
책 속으로
*** 의주로 가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인데, 의주행은 곧 요동행을 뜻했다. 나라는 망해도 선조 자신은 살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선조의 뜻이 요동행에 있음이 분명해지면서 그대로 결정되려는 찰라, 말을 자르고 나서는 인물이 있었다. 좌의정 유성룡이었다. (중략) 국왕과 대신들이 나라를 버리고 도주하면 그것으로 조선은 멸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가가 우리 국토 밖으로 한 걸음만 떠나면 조선은 우리 땅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자른 것이다. _ 1장 18~19쪽, <도주 길에 오른 선조> 중에서
*** 서인에 대한 동인의 감정은 이해하지만 유성룡은 지금이 당파를 나누어 싸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쪽 일본에서는 풍신수길이 열도를 통일하고 대륙 진출을 꾀하고 있었으며, 북쪽에서는 여진족 통합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었다.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처럼 사림이 동서로 갈리고, 집권 동인이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린 상황에서 운명의 해 임진년이 밝아오고 있었다. _ 2장 47쪽, <당쟁의 시대> 중에서
*** 황윤길과 김성일이 계빈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드디어 풍신수길의 답서가 왔다. 답서가 온 것은 다행이지만 내용이 문제 투성이였다. 풍신수길의 「국서」는 통상적인 국서의 형식과는 사뭇 달랐다. 국서에 “나의 어머니께서 일찍이 나를 잉태하셨을 때 해가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상사(相士, 점쟁이)가 ‘햇빛은 비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커서 필시 팔방에 어진 명성을 드날리고 사해에 용맹스런 이름을 떨칠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_ 3장 65쪽, <전란의 그림자> 중에서
*** 이순신은 훈련원 근무 8개월 만에 충청병사의 군관으로 좌천된다. 그러다가 선조 13년(1580) 7월 전라 좌수군 산하 발포(鉢浦, 전남 고흥군 도화면) 만호(萬戶, 종4품)로 승진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이충무공 행록』은 “서애(西厓) 유 정승만이 같은 동리에서 살던 어린 시절의 친구로서 공이 장수의 재목이라고 알아주었다”라고 전하고 있듯이 유성룡은 권력 실세들과 척이 져 지방으로 쫓겨난 이순신을 생각해준 유일한 인물이다. _ 4장 78쪽, <유성룡과 이순신> 중에서
*** 유성룡이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반대해서 임란의 참화를 초래했다는 이야기는 김장생의 창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김장생이 만든 말은 이것뿐이 아니다. 김장생은 ‘기축옥사 때 유성룡이 위관이 되어 이발의 팔십 노모와 어린 아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만들었다. _ 4장 100쪽, <전란대비> 중에서
*** 유성룡은 서울 수복에 전쟁의 조기 종결 여부가 달려 있다고 보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는 군량 확보에 많은 신경을 썼다. 명군은 군량이 준비되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유성룡은 평안 감사 이원익에게 공문을 보내 김응서가 거느린 군사 중에서 전투할 수 없는 인원을 징발해 곡식운반을 맡기고, 평안도 세 고을의 관곡(官穀)을 배로 청룡포(靑龍浦)를 거쳐서 황해도로 옮겼다. 황해 감사 유영경에게는 군사들이 행군할 연도(沿道)에 곡식을 비축해 제공하게 했다. _ 8장 190쪽, <반격> 중에서
*** 선조는 유성룡이 광해군 편에 서면 자신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유성룡 역시 선조가 최선의 임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성룡은 지금 선조를 사퇴시킬 경우 국가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보았다. 광해군이 즉위하면 ‘선왕파’와 ‘현왕파’로 나뉘어 극심한 정쟁이 벌어질 것이다. (중략) 유성룡은 선조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_ 10장 246쪽, <유성룡의 영의정 복귀> 중에서
출판사 서평
▶ 조선 최고의 재상 서애 유성룡의 삶을 통해
임진왜란과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 중기의 모습을 재조명하다!
이 책은 임진왜란과 당쟁이라는 두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유성룡의 삶을 통해 임진왜란과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 중기의 모습과 400년을 이어온 그의 인생철학을 재조명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여러 가지 사료와 유물,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유성룡을 둘러싼 다양한 의문을 밝혀내고, 당시의 상황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또한 백성들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유성룡의 인간적인 면모는 물론 전쟁 기간 내내 도주하기 바빴던 선조를 대신해 정치, 행정, 병법, 경제 등 전란 내내 국정 전반을 책임진 리더로서의 역량을 제시한다. 이 밖에도 ‘양명학은 왜 비판받았는가?’ ‘의혹에 쌓인 정여립 사건’ ‘수수께끼의 일본 사신 귤강광’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사실인가?’ 등 왜곡되어 있는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놓았다.
▶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겸비한 조선 최고의 재상, 유성룡
유성룡은 한없이 우유부단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따라 유성룡의 행적을 하나씩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난다. 대동법이 그중 하나다. 광해군 즉위년(1608) 경기도에 시범 실시했다가 100년 후인 숙종 34년(1708)에 전국으로 확대 실시한 대동법은 임란 때 유성룡이 작미법(作米法)이란 이름으로 이미 시행한 제도다. 고종 9년(1871) 대원군이 강행한 호포법(戶布法)도 마찬가지다. 호포법 실시 이후에야 양반들도 비로소 병역의 의무를 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성룡은 임란 때 속오군(束伍軍)을 만들어 양반들에게도 병역의 의무를 지웠다. 그뿐 아니라 천민들도 종군(從軍)을 조건으로 면천(免賤)해주고 나아가 공을 세우면 벼슬까지 주는 신분타파책을 실시했다. 유성룡의 이런 전시 정책에 큰 불만을 갖고 있던 양반 사대부들은 유성룡이 창안한 훈련도감에서 훈련 중인 노비들을 데려가는 행태까지 보였으며, 전쟁 기간 내내 도주하기 바빴던 선조는 탄핵을 유도해 그의 실각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유성룡은 자신이 속한 계급의 신분적 특권까지 모두 포기해가면서 전란을 수습하기 위한 여러 제도와 민생정책을 실시한다.
유성룡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본 군주는 정조다. 『홍재전서』「일득록(日得錄)」 ‘인물’조를 보면 정조는 유성룡을 “저 헐뜯는 사람들을 고(故) 상신(相臣, 유성룡)이 처한 시대에 처하게 하고 고 상신이 맡았던 일을 행하게 한다면 그런 무리 백 명이 있어도 어찌 감히 고 상신이 했던 일의 만분의 일이라도 감당했겠는가. 옛날 당 태종(唐太宗)이 이필(李泌)에 대해서, ‘이 사람의 정신은 몸보다 크다’라고 말했는데 나도 서애에 대해서 또한 그렇게 말한다. 대개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이미 우뚝 거인(巨人)의 뜻이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 이 시대에 왜 우리는 유성룡을 읽어야 하는가?
향년 66세. 조선조 500년 최고의 재상이란 평가를 받은 유성룡이 세상을 떠나자 그를 정적으로 여기던 선조는 3일 동안 정사를 중지시킨다. 『서애선생 연보』에는 당시의 상황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사대부들이 성남(城南) 옛집 터에 신위를 마련하고 친척상처럼 통곡을 했다”고 전하며, 시민들이 조정에서 정한 일자보다 하루를 더 철시하면서 “우리들이 이 어진 정승을 잃은 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잃은 것과 같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또한 미수 허목은 「서애유사」에서 “선생의 충성과 갈력(竭力)과 주선이 없었다면 위험에 처해 쓰러져가는 국운을 다시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가 선조조의 중흥을 이룩하고서 부자, 형제 등 국민들이 서로 삶을 유지하며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편안한 데 거처하며 직업에 종사하는 바가 진실로 선생의 힘이 아니고서 그 누구의 힘이겠는가”라고 말했다.
유성룡이 황해도에서 소금을 구워 전라도에서 쌀로 바꾸어 도성에 공급하지 않았으면 굶어죽었을 백성이 얼마이며, 그가 대동법(작미법)으로 가난한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지 않았으면 굶어죽었을 백성들이 얼마나 됐겠는가.
전란 극복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계급의 신분적 특권까지 모두 타파하려 했던 유성룡. 우리는 왜 유성룡을 읽어야 하는가? 그의 인생을 기존 당파나 양반 사대부들의 시각이 아니라 역사의 보편적 시각으로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인생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또한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겸비한 조선 최고의 재상, 유성룡. 그가 임진왜란과 당쟁을 승전으로 이끈 원동력으로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능력을 꼽을 수 있다.
① 위기돌파 능력 - 유성룡은 한없이 우유부단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겸비한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발생한 여러 위기상황을 회피하거나 모른 체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냈다.
② 비전제시 능력 - 유성룡은 행정에 박식한 관료이자, 군사에 통달한 병법가이고, 경제에 해박한 학자다. 때문에 그는 전란 극복할 수 있는 전략과 정치ㆍ경제ㆍ민생 등 국가 발전에 필요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
③ 탁월한 국정수행 능력 - 유성룡은 대동법, 진관체제, 중강개시, 기득권 타파, 노비 충군 등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 실시해 백성들의 공역부담을 덜어주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④ 뛰어난 현안해결 능력 - 유성룡은 어떤 자리에 있든지 명분보다는 시급한 현안해결에 매달렸다. 극단이 아닌 중용의 길을 택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했다.
⑤ 능수능란한 외교력 -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유성룡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고, 일본의 전략과 계략을 한눈에 파악한 뒤 이를 역이용해 일본군을 물리치는 등 뛰어난 외교 전략을 펼친다.
⑥ 유연한 사고방식 - 유성룡은 표면적으로는 성리학자를 자처했지만 교조적인 신봉자는 아니었다. 모든 학문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열린 자세를 갖고 있었다.
⑦ 날카로운 인재발탁 능력 - 유성룡은 하급 무관이라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했고, 두 장수는 임진왜란 3대첩 중 행주대첩과 한산도대첩을 승전으로 이끈다.
기본정보
ISBN | 9788993119435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06월 04일 |
쪽수 | 414쪽 |
크기 |
152 * 225
* 30
mm
/ 75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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