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주실록

이 책에서는 지성과 미모, 부귀와 영화, 사랑과 명예 등 모든 것을 가졌으리라 생각되는 조선시대 공주들의 실제 삶은 어땠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그런 삶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저자는 각종 사료와 묘지명, 그리고 정황 등을 비교 조사하여 조선시대 공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 낸다.
조선왕조 500년간 총 116명이나 되는 공주들과 옹주들 중에서 왕의 딸이기에 겪어야 했던 삶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곱 명을 선별했다. 조선시대 부마간택의 역사적 연원이 된 정선공주와 왕의 딸이라는 이유로 권력투쟁에 휘말렸던 경혜공주, 정명공주, 효명공주, 화완옹주 등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작가정보

저자 신명호는 1965년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역사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이후 숙명인 듯 대학에서도 역사를 전공했다. 졸업한 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사연구사로 조선시대의 왕과 왕실 문화를 연구했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궁중 생활상 재현 전시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한ㆍ중ㆍ일 삼국의 군주제와 왕실 문화를 본격적으로 비교, 연구할 계획이다. 지은 책으로는『조선왕비실록』,『왕을 위한 변명』,『조선의 왕』,『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궁궐의 꽃, 궁녀』,『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조선의 궁궐에서 일했던 사람들, 궁』등이 있다.
목차
- 저자의 글
1. 정선공주_태종의 딸 : 과부의 아들과 결혼한 공주
꼬인 혼사길/조선 최초의 부마간택/대를 잇는 인연/부마 남휘/순탄치 않은 부부생활/죽음과 자손
2. 경혜공주_문종의 딸 : 나는 왕의 딸이다
어머니를 세자빈으로 만든 딸/사연 많은 혼인길/계유정난/연이은 비극/공주에서 노비로/자식들을 위해 원수와 대면하다/되찾은 명예
3. 정명공주_선조의 딸 : 공주로 죽고 싶소
환영받지 못한 출생/어린 시절의 고난/서예로 승화된 유폐 생활/혼인/대비의 죽음과 위기일발/고진감래
4. 효명옹주_인조의 딸 : 옹주에서 해도여자로
인조의 고명딸/인조의 편애에 따른 갈등/위험한 총애/축복받은 어린 시절/조 귀인과 강빈의 숙명적 대결/조작된 부마간택/비극적 결말
5. 의순공주_효종의 딸 : 급조된 공주의 비극적 운명
약소국의 딸들/청에 끌려간 공녀들/섭정왕 도르곤의 통혼칙/의순공주 선정 배경/의순공주의 삶
6. 화완옹주_영조의 딸 : 정조의 최고 라이벌
언니의 결혼과 때 이른 죽음/일성위의 부인/딸과 남편의 죽음/사도세자를 돕다/세손에 대한 지나친 애정/죽음 앞에 선 영조/세손의 대리청정/정처
7. 덕혜옹주_고종의 딸 : 조선과 함께 지다
망국의 옹주/천황의 황족이 된 고종/고종의 유일한 낙/미묘한 문제들/복녕당 아기씨/가장 행복했던 나날들/고종의 죽음/정략결혼의 희생자
부록
조선시대 공주와 옹주 일람/조선시대 공주 관련 용어와 제도/참고문헌/찾아보기
책 속으로
조선 후기에는 왕의 사윗감을 마치 왕비나 세자빈을 고르듯이 간택했다. 곧 혼인적령기에 해당하는 전국의 청년들을 금혼시킨 후 이들을 모조리 궁궐로 불러들여 직접 3차에 걸쳐 면담, 심사하여 간택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태종이 시행한 간택에서는 금혼령도 없었고 3차에 걸친 면담, 심사도 없었지만 여럿 중에서 고른다는 면에서 간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듯 조선 후기에 왕의 사윗감을 3차 간택으로 결정하게 된 것은 태종이 정선공주의 부마를 간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24쪽, ‘1. 정선공주_태종의 딸 : 과부의 아들과 결혼한 공주’ 중에서)
경혜공주는 생모가 세자의 후궁이었을 때 태어났으므로 엄격히 따지면 공주가 아니라 현주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본부인이 낳은 딸은 공주, 후궁이 낳은 딸은 옹주, 세자의 본부인이 낳은 딸은 군주, 후궁이 낳은 딸은 현주로 구별했다. 군주는 정2품, 현주는 정3품의 작위를 받도록 규정되었다. 군주나 현주는 보통 7세가 넘어야 작위를 받았으므로 경혜공주는 출생 직후에 아무런 작호 없이 그냥 동궁의 딸이란 뜻의 동궁녀로 불렸을 것이다. 경혜공주의 출생은 권 승휘에게 양원으로의 승진 이상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50쪽, ‘2. 경혜공주_문종의 딸 : 나는 왕의 딸이다’ 중에서)
정명공주는 조선의 제14대 왕인 선조의 딸이다. 그것도 11명이나 되는 선조의 딸들 중 유일한 공주다. 정명공주는 선조 36년(1603) 5월 19일에 정릉동 행궁에서 태어났다. 정명공주가 태어난 정릉동 행궁이나 선조 36년이라는 시점 모두 공주에게 불길하게 작용했다. 축복을 받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정명공주가 태어난 정릉동 행궁이라는 장소부터가 문제였다. 행궁이란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궁궐이었다. 정식 궁궐이 아닌 임시 궁궐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파란의 예고였다. 정릉동 행궁은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 처음으로 행궁으로 이용되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겨우 보름 만인 동왕 25년(1592) 4월 29일 밤에 한양을 버리고 북으로 파천했다. 개성,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갔던 선조는 동왕 26년(1593) 10월 1일에야 다시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101쪽, ‘3. 정명공주_선조의 딸 : 공주로 죽고 싶소’ 중에서)
효종은 금림군의 딸을 자신의 양녀로 삼고 공주에 봉작하였다. 금림군은 굳이 촌수로 따지면 효종의 10촌 할아버지뻘이다. 금림군은 성종의 4대 후손이고, 효종은 성종의 6대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림군의 딸은 효종에게 11촌 고모뻘이다. 그럼에도 효종은 금림군의 딸을 자신의 양녀로 삼았다. 물론 도르곤의 배우자로 보내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효종은 금림군의 딸을 공주로 봉작하고 그 봉작명을 의순이라 하였다. 나라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대의에 순종했음’을 높이 기리자는 의미였다. 의순공주란 봉작명에는 금림군과 의순공주에 대한 효종의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담겨 있다. 4월 22일, 의순공주는 도르곤에게 시집가기 위해 한양을 떠나 청나라로 출발했다.(211쪽, ‘5. 의순공주_효종의 딸 : 급조된 공주의 비극적 운명’ 중에서)
일제는 덕혜옹주에게 완전한 일본식 교육을 시키고자 했다. 덕혜옹주는 유치원 때 일본인 보모에게서 일본식 교육을 받은 뒤라 일본식 교육에 익숙했다. 일제는 덕혜옹주에게 아예 일본식 초등교육을 시켜 옹주를 일본인화하고자 하였다. 덕혜옹주는 1921년 4월 1일에 일본 거류민이 세운 일출소학교에 입학했다. 덕혜옹주는 2학년 3조에 편입했다고 하는데, 나이 때문에 2학년으로 편입했을 것이다. 덕혜옹주는 ‘게다’를 신고 ‘하오리’를 걸친 채 검은 마차를 타고 통학하였으며, 학교가 파한 후에는 창덕궁에 돌아와 “윤황후 마마. 오늘 학교에서 배운 노래 들려 드리려 합니다”하고는 ‘호타루 찬가’ 등을 부르곤 했다고 한다.(329쪽, ‘7. 덕혜옹주_고종의 딸 : 조선과 함께 지다’ 중에서)
출판사 서평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으나 사료에 기록조차 되지 못한 공주들의 역사 최초 복원!
공주는 최고의 권력자인 왕의 딸이다. 또한 전국의 처녀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간택에서 최종 선택된 왕비의 딸이기도 하다. 그런 왕과 왕비에게서 태어났으니 공주는 분명 빼어난 지성과 미모를 가졌으리라 상상되곤 한다. 게다가 공주는 왕과 왕비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존재였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삶은 언제든지 수단화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조선의 많은 공주들이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적 삶을 희생당했다.
이 책에서 저자 신명호 교수는『조선왕조실록』은 물론 각종 사료와 묘지명 그리고 정황 등을 비교, 조사하여 그동안 자료와 관심 부족 등을 이유로 단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은 조선시대 공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최초로 복원해냈다.『조선왕비실록』에서 역사 기술의 관점을 왕비, 곧 여성으로 바꿈으로써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신명호 교수가 이번에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으나 사료에 기록조차 되지 못한 조선시대 공주들의 모습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재조명해낸 것이다. 그 대상으로는 조선왕조 500년간 총 116명이나 되는 공주들과 옹주들 중에서 왕의 딸이기에 겪어야 했던 삶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7명을 선별했다. 조선시대 부마간택의 역사적 연원이 된 정선공주와 왕의 딸이라는 이유로 권력투쟁에 휘말렸던 경혜공주, 정명공주, 효명공주, 화완옹주 등의 삶을 깊이 있게 살펴보았으며,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인질로 잡혀가야만 했던 의순공주와 덕혜옹주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조선시대 공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에서는 지성과 미모, 부귀와 영화, 사랑과 명예 등 모든 것을 가졌으리라 생각되는 조선시대 공주들의 실제 삶은 어땠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그런 삶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깊이 있게 살펴보았다. 부왕인 태종의 뜻에 따라 과부의 아들과 혼인했으나 부부관계가 단절돼 갖은 어려움을 겪은 정선공주, 계유정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편과 친동생 단종을 잃고 노비로까지 전락한 경혜공주, 왕실 저주사건에 연루되어 서궁에 유폐되었으나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서예로 승화시킨 정명공주, 인조의 편애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으나 저주혐의로 어머니와 남편을 잃고 귀양에 처해진 효명공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 섭정왕 도르곤에게 시집보내기 위해 효종의 양녀로 공주에 봉작된 의순공주, 어린 세손(정조)을 편집증적으로 아꼈으나 후일 정조의 최고 라이벌이 되어 사사건건 대립한 화완옹주, 14세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도쿄로 유학 갔다가 대마도 번주 종무지와 정략적으로 결혼한 덕혜옹주 등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외의 공주들과 옹주들도 간략하게나마 부록에서 정리했다.
남성 중심의 역사에 가려진 공주들의 역사!
지금까지 조선시대 왕의 딸들, 곧 공주에 관한 단행본은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았다. 의순공주와 덕혜옹주를 다룬 글이 몇 편 있지만 본격적인 평전과는 거리가 있다. 왕의 딸들에 관한 대중의 관심과 궁금증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그와 관련된 연구 성과가 이렇게나 없을까. 그런 와중에 일본 학자가 덕혜옹주를 다룬 전문 연구서를 출간했고 그 연구서를 한국 학자가 번역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그간 조선의 왕실사람들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해서였다. 요즘 들어 그런 경향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주로 왕, 세자, 왕자 등에 주목했을 뿐 공주들의 역사는 살펴보지 않았으며, 막상 재조명하려 하다가도 자료의 한계 때문에 포기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왕의 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설서 한 권쯤은 낼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서 저자는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저자가 마주친 가장 큰 어려움 또한 자료의 한계였다. 공주와 옹주는 왕의 딸들임에도 관련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저자는『조선왕조실록』은 물론 각종 사료와 묘지명 그리고 정황 등을 샅샅이 조사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록조차 되지 못한 역사 속 여성들에 대한 관심과 조명이 한층 더 깊어지기를 바란다.
기본정보
ISBN | 9788993119091 |
---|---|
발행(출시)일자 | 2009년 05월 30일 |
쪽수 | 371쪽 |
크기 |
148 * 210
mm
|
총권수 | 1권 |
Klover 리뷰 (15)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0)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
반품/교환방법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
반품/교환 불가 사유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은 발견
이 분야의 베스트
이 분야의 신간
-
명유10% 28,800 원
-
식민지 조선과 일본군‘위안부’문제 자료집 610% 31,500 원
-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2 (큰글자도서)10% 31,500 원
-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1 (큰글자도서)10% 31,500 원
-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10% 20,700 원
드라마나 영화로도 접할 수 있는데
공주에 관한 내용은 처음인 것 같네요.
일반적으로 공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좀더 실생활에 관한 내용이 있었으면...아쉽습니다.
물론 역사적 팩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역사물이라기 보다는 픽션이 매우 가미된 팩션 종류의 중국 드라마였지만
그 당시 '왜 우리나라에는 저런 드라마 소재가 될 만한 공주가 없는가!!-ㅁ-!!'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후 장나라가 주연한 '댜오만 공주' 역시 팩션임을 알지만 방대한 이야기를 보며[물론 다 보진 않았음 -ㅅ- 대강 줄거리만 찾아 봄]
우리나라의 수 천년 유구한 역사상 팩트+픽션을 가미하여 이야기 소재가 될 법한 걸출한 왕녀 이야기가 정녕 없단 말인가!!는
싶었다.
신라시대 때 여왕이 된 세 명의 여성을 제외하면 [그나마 선덕여왕의 공주시절 에피소드가 제일 보편적임...-ㅅ-]
기껏해야 사랑 때문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 낙랑공주나[낙랑공주나 이완용이나 다를게 뭐냐 -_-)=3]
바보 온달을 장수로 만든 평강공주이야기...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야 뭔가 그럴 듯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만...-ㅅ-
얼마 전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긴 했지만 그 이전에는 뭐...가장 유명한 공주가 위에 두 명 아니면
그나마 역사적으로 제대로 기록된 공주는 고종황제의 고명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판타지나 동경에 요소는 전혀 없는 우울한 팩트만 있는 망국의 황녀 이야기..-ㅅ-)=3
우리나라의 수천 년 역사가 주로 왕좌에 올랐던 이들이 남자였고 철저치 정치판 위주로 세세한 역사서가 남아 있다보니
여자가 등장하더라도 대비, 왕비, 세자빈 또는 왕을 홀렸던 후궁들 이야기가 주를 이룰 뿐 공주에 대한 에피소드는 매우 드문 것 같다.
근래에 '이산'이 방영되면서 '화완옹주'가 부각되긴 했지만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 왕조를 통틀어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유일무이한 왕녀가 아닐까 함..-ㅅ-;;;]그 외에는 뭐..전설처럼 전해지는 저 먼 옛날의 낙랑이나 평강 공주이야기 정도?
그러던 차에 '조선공주실록'이라는 책을 우연하게 발견!
비록 모든 왕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특기할 만한 왕녀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이나 배경, 그리고 몰랐던 궁중의 지위 높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제법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왕녀들은 왕자들과 달리 6~7세 될때 까지 그냥 '아기씨'로 불리다가 공주 또는 옹주라는 봉작과 함께 이름을 받는 다거나
[그래서 어릴 때 죽은 공주나 옹주는 이름도 없다 -_-;;;걍 1공주 또는 1옹주로 표기되어 있음..쿨럭;;아들은 세자가 아니더라도
이름도 주고 봉작 시 봉호도 주더구먼...-ㅅ- 남녀차별이냐-ㅅ-++]
11세나 12세가 되면 보통 금혼령을 내리고 길례를 올린 후 합방이 가능한 15세까지는 궁궐에서 살았다는 점 등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던 외명부를 알 수 있어서 유익했음.
이걸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만....조선 역사상 '인조'만큼 찌질한 왕도 드문 듯...-ㅅ-;;;
이번 <조선공주실록>은 이런 연장선에서 왕, 왕비가 아닌 그들의 딸들이었던 공주와 옹주들의 삶을 통해서 조선시대를 한번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태종의 딸이었던 정선공주에서 조선의 마지막 옹주였던 덕혜옹주에 이르기까지 7명의 공주/옹주들의 삶을 당시대와 연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시대적으로도 조선의 개국초기인 태종대와 세종조를 거치면서 기틀을 잡았지만 수양대군의 쿠테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을 거슬린 시기인 문종대 부터 세조조, 조선 최대환란기인 선조와 광해군, 인조, 효종조,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영,정조시대 그리고 종말 맞이한 고종,순종대등 조선사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시대와 맞물려 그 시대의 대표적인 공주와 옹주들의 삶이 당시대 역사과 어떻게 관련되고 그리고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어 공주 개개인들의 개인사에 집중된 것 같지만 실상 역사전반을 아우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왕실 의례와 궁중생활 전문가 답게 저자는 공주와 옹주들의 출산에서 부터 혼인에 이르기까지의 궁중의례 전문지식을 일반독자층에게 알게 쉽게 설명하고 있어 새로운 지식의 확장의 장으로도 다가온다. 또한 그동안 남성중심의 역사에서 다루어 지지 않았던 각종 비사와 어리니,계향,애순등 공주들 유모나 궁녀들의 실명과 그들의 막후 역활등 소소한듯 부분들이 역사에서 잊혀졌던 개인들(소외 되었던 여성들)의 무대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한층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또한 왕비나 세자빈의 간택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에게 사위인 부마의 간택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조의 딸인 효명옹주를 다루는 장에서 인조반정의 명분을 마치 광해군이 후궁격인 김개시의 치맛폭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서술이 눈에 거슬린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연산군의 치세와 더불어 도매값으로 인지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서술이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공주 개개인들의 삶을 당시를 전후한 시대적인 고찰을 통해서 역사전반과 같이 고찰할 수 있어 독자들에게 역사적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다는 점에선 높이 평가된다. 그동안 왕실의례나 궁중생활에 문외했던 독자들에게 조선왕실과 관련된 또 다른 목마름을 풀어 주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쉬우면서 세세한 설명들이 독자들 뇌리에 각인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수많은 공주들 중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몇몇 공주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정선공주(태종의 딸), 경혜공주(문종의 딸), 정명공주(선조의 딸), 효명옹주(인조의 딸), 의순공주(효종의 딸), 화완옹주(영조의 딸), 덕혜옹주(고종의 딸)...
정선공주는 왕의 딸이나, 부모의 불화로 인해 사랑받지 못한 채 시집을 가게 되고, 남편과도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딸 각각 한명씩 낳아 기르다 매우 젊은 나이에 죽게되는... 슬픈 삶을 살다간 공주다. 다만, 몰랐던 사실이며 놀라웠던 것은 그녀가 남이 장군의 할머니자, 신사임당의 증조할머니란 것이다. 몹시 짧은 인생을 살다 갔으나 훌륭한 후손들이 태어남에 따라 그녀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은 듯 하다.
경혜공주는 문종의 딸이자 세조의 조카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공주인데 자손이 귀한 문종의 첫째 딸로 태어나 하나뿐인 남동생과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받았으나 문종의 승하 후, 자신의 동생인 단종이 보위에 올라 왕의 누이로써 더할나위없는 영화를 누리는가 싶더니 숙부 세조에 의해 동생의 보위를 빼앗기고 남편과 동생의 죽음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가장 슬픈 삶을 살았던 공주가 아니었나 싶다. 더욱이 그 자신은 공주에서 노비로 강등되기까지 했으니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신원이 회복되고 아들이 어엿한 벼슬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은 그녀에게 약간의 위로가 될 지 모르나 그녀 자신은 늘 피맺힌 한(恨)속에 살지 않았을까?
정명공주는 선조가 늦은 나이에 본 고명딸로 비록 임진왜란의 참화속에 태어났으나 부모의 보살핌 아래 귀하다 귀하게 자란 공주였다. 허나 아버지인 선조가 일찍 승하하고 보위에 오른 이복 오라버니 광해군의 온갖 핍박을 받고 유폐까지 되었으니 정말 고생이 많았던 공주라 하겠다. 다만 특이한 것은 아버지인 선조의 필체를 닮은 데다 서예에 능통해 유폐 생활동안 서예에 몰두했다는 것인데 이는 어머니인 인목대비의 마음을 위로함이라고 하니 그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깊지 아니할 수 없다.
아무튼 갖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인조 반정으로 인해 광해군이 폐위됨에 따라 그녀의 공주로써의 지위나 특권도 되찾게 되는데, 옛말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이 좋은 것이란 말도 있듯이 그녀에겐 너무 넘치게 주려한 것도 후에 이런저런 문제가 된 듯하였다. 이를 테면 과도한 살림집과 절수지(황무지나 묵은 땅을 개간하여 사용권을 국가로부터 허가받는 제도, 수조권과 소유권 논쟁을 야기한 제도?)랄까?
그녀의 삶은 이로써 보상받았다 할 수 있지만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의심(저주사건등)하고 자신 또한 의심한 인조로 인해 그녀는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다행히 인조가 먼저 승하하고 다른 왕들은 그녀에게 최고의 예우를 바치고 그녀 또한 천수를 누렸으니 말년에 그녀는 무척 행복하였을 듯 하다.
우암 송시열은 말년에 그녀가 받은 복을 '겸손하고 공손하며 어질고 후덕하여'라고 표현하였다는 것이 인상깊다. 그리고 그녀가 막내아들에게 써준 '자위수택'이란 글의 한 구절은 정말 가슴깊이 와닿았다.
"나는 원하건대 너희들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논의하기 좋아하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미워한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손들 사이에 이런 행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듣지 않기 원한다."
효명옹주는 인조의 딸로 정명공주와 비슷하면서도 대비되는 삶을 살았는데 그녀가 말년에 복을 받았다면 효명옹주는 말년을 쓸쓸하고 비참하게 살다 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병자호란 속에 태어난 공주였다. 인조의 후궁인 조귀인이 어머니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인 인조와 어머니의 편애속에서 자라났는데 이 점이 오히려 그녀를 해친 듯 하였다. 그녀는 자기중심적인 것은 물론 안하무인격으로 자라났다니 말이다. 병자호란으로 청국에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가 고국에 돌아온지 2개월만에 죽고 원손을 마땅히 세손으로 삼아야함에도 불구하고 둘째아들인 봉림대군 즉 효종을 세자로 삼은 것부터가 그녀의 비극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인 조귀인과 시아버지인 김자점이 조장 내지 방조하여 소현세자의 부인 즉 세자빈인 강빈을 저주사건으로 몰아 죽이게 되고 그녀 역시 시아버지를 임금으로 세우려했다는 저주사건에 연루되어 어머니인 조귀인과 남편인 김자점의 아들 김세룡이 죽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목숨만은 건져 귀양에 처해져 후에 한양으로 돌아오게 되나 더이상 옹주도 아닌 해도여자로 불리며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니 매우 불행한 삶이 아닐 수 없다.
의순공주는 효종의 딸로 양녀이다. 이 공주 역시 병조호란으로 인해 위기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청에 보내진 비운의 공주다. 본디 그녀는 금림군 이개윤의 딸로 진짜 공주를 보낼 수 없어 대신 선발되고 낙점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청의 왕의 숙부인 도르곤에게 시집갔다가 7개월만에 도르곤이 죽고 청나라 황족인 박락에게 한번 더 개가하였지만 그 마저 1년만에 죽고 말았다니 이보다 기구한 운명이 있을까 싶다. 어쨌든 북경에서 외롭게 지내던 그녀를 그녀의 아버지 이개윤이 7년만에 고국으로 데려왔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람들은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비난했다고 하니 실로 고단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되니 참으로 쓸쓸하고 슬픈 공주다.
화완옹주는 영조의 딸로 영조의 지극한 편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는 누구보다 잘아는 사실이나 그녀가 세손인 정조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했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풍문으로 화평옹주가 있었다면 사도세자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들은 것 같은데 그말도 일리가 있던 듯 했다. 영조는 처음엔 화평옹주를 그 누구보다 총애했고 화평옹주는 큰딸이자 맏이로 부모와 형제사이를 잘 중재해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니 말이다. 헌데 그런 옹주가 일찍 죽게 되었으니 이는 비극의 시작을 알린 셈이다. 이로써 자연스레 궁에 남아있던 화완옹주에게로 그 편애가 이어졌다니 말이다. 그녀도 처음엔 결혼하고서 나름 사도세자와 사이가 나쁜 영조에게 좋은 말도 해주었으나 딸과 남편이 죽고 양자 정후겸을 들이게 되면서 그녀는 점점 정치적으로 변해갔다. 처음엔 세손에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보여주었으나 커가면서 정조가 그녀를 멀리하자 양자인 정후겸에게 애정을 쏟으며 반대편에 서서 정치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단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정조가 임금이 되고 그녀의 이같은 행동으로 인해 양자인 정후겸은 죽고 그녀는 귀양에 처해지지만 후에 그녀를 용서하고 한양에서 살게 해주었다고 한다. 비록 그녀의 인생은 복잡다단했으나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삶이 아니었나 싶다.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화완옹주의 얘기속에 곁들여 나온 화순옹주에 대한 이야기이다.그녀는 남편이 죽자 곡기를 끊고 14일만에 굶어죽었다고 한다. 영조가 친히 집까지 가 음식을 권했는데도 먹지 않았다니 대단한 절개가 아닐 수 없다. 허나 영조에게 그녀는 열녀인 동시에 불효녀였던 셈이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늦은 나이에 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명딸이었다. 고종의 유일한 낙이었던 옹주는 처음엔 입적도 되지 못하고 이름없이 복녕당 아기씨로만 불렸다고 한다. 이는 일제가 정한 규칙과도 같은 것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이 인정한 건 오로지 정부인의 자식이었으니 후궁의 자식인 옹주는 당연히 입적이 되기 어려웠다. 그나마 고종의 재치로 입적되긴했지만 그때까지도 이름은 없이 '제삼녀 이씨'로만 입적되었다니 어이가 없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다른 공주들도 대다수 그랬지만 아버지인 고종이 살아있을때만 해도 그녀의 나날은 평온했다. 고종이 죽고 그녀 역시 그녀의 오빠인 영친왕이 그랬듯 인질과도 같이 일본에 끌려가게되고 흔히 알려진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허나 정략결혼이 그렇듯 결혼생활은 그녀의 정신까지 병들게 한 것 같다. 후에 옹주는 나이가 들어 고국으로 들어와 생을 마쳤다고 한다. 조금 아쉬운 것은 돌아온 뒤의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다루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것이다.
모든 공주들의 이야기를 다 담은 것은 아니지만 7명의 공주들의 얘기를 읽으며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거기다 부록으로 공주와 옹주들의 목록도 있어 참고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이 가진 장점이 아닐까한다. 작가는 공주에 대해서만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 없어 책을 쓰고 내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조선공주의 사생활'이란 책이 나왔던데 앞으로 공주들에 대해서도 좀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다양한 책들이 나왔으면 하고 바래본다.
처음에 책을 잡자마자 빠져들었다.
몰랐던 공주,옹주들의 삶..
어렸을때부터 책이나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공주들의 삶과는
다른 이야기들이었다.
마지막 덕혜옹주는 그전에 소설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소설 덕혜옹주와 비교하면서 읽어 보았는데,
소설에서 나왔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도 있어
쉽게 읽을수 있었다.
마지막엔 5월이되면서 책을 잡지 못해 오래걸렸지만
쉽게 읽을수 있는 책인거 같다.
지성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공주라는 말에 -병이라는 단어가 붙어 한때, 아니 여전히 자뻑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곤 한다.
그만큼 여자라면 누구나 공주의 삶을 꿈꾸는가 보다.
화려한 옷에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며 여러 사람들의 시샘어린 주목까지 받는 삶!
조선공주실록은 7명의 공주와 옹주를 통해 그들의 삶이 그다지 화려하고 부러운 것만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공주로 태어났기 때문에 버려야 했던 것들, 빼앗겨야 했던 것들, 가질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태종의 딸인 정선공주는 원경왕후 민씨와 태종의 사이가 틀어져 있을 때 태어나 출생부터 그닥 환영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순탄치 않는 부부생활로 남편은 노름에 빠진데다가 첩을 들이고 몸과 마음의 병을 얻은 그녀는 21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우리가 그녀를 기억할 수 있는 건 공주의 아들에게서 남이 장군이 태어났고 딸에게서 신사임당의 할아버지 신숙권이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단종의 누나인 경혜공주만큼 한 많은 여인이 또 있을까!
남편인 영양위를 잃고 노비가 되었다가 그 아들 정미수를 위해 원수인 세조 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삶은
기구하다 못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짓게 만든다.
정명공주의 생애 역시 경혜공주에 버금갈만큼 기구한 팔자다.
광해군 밑에서 동생 영창대군을 잃고 인수대비와 서궁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 후에 명예를 되찾지만 인조의 의심으로 인해 좌불안석이었다.
인수대비가 죽고나서 커지기 시작한 인조의 의심증은 정명공주를 향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움인지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였던 공주는 겸손과 덕을 갖춘 여인으로 후손들에게 귀감이 된 인물이라 한다.
효명옹주는 병자호란으로 인열왕후 한씨를 잃고 소현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 후 절망에 빠져있던 인조에게 태양처럼 등장한 자식이었다.
그 때문에 지나친 애정을 받으며 화려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생모인 조귀인의 음모와 인조의 열등감이 합쳐지면서 소현세자가 독살당하고 강빈까지 사사된 후
봉림대군이 세자에 책봉되지만 그녀의 안하무인격인 행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조가 죽고 봉림대군이 효종에 오르면서 조귀인과 효명옹주는 그들이 한짓 그대로 저주사건에 휘말려 그 끝을 보게 된다.
지나친 자기애와 옹주라는 봉작을 이용한 오만방자함이 어떤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 효명공주가 몸소 보여준 셈이다.
의순공주는 효종의 양녀로 입적되어 원나라 도르곤에게 시집을 갈 수 밖에 없었던 처지였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 했던 길에 강단을 내리고 떠났던 그 길이 행복의 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23세나 연상이었던 도르곤이 혼인 7개월만에 죽고 의지할 곳이 없던 그녀는 청나라 황족인 박락에게 다시 시집을 가지만 그도 1년후에 세상을 뜸으로써
또다시 외로운 신세가 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에 돌아오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환향녀라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한다.
그나마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던 효종은 자신의 친딸을 대신해서 먼 길을 떠났던 의순공주에게 미안하긴 했었나 보다.
영조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력의 맛을 보았던 화안옹주는 사도세자의 동생이지만 가는 길이 달랐다.
남편과 자식을 그렇게 빨리 잃지만 않았다면 오히려 평범한 여인네로 살 수 있었을까!
의지 할 곳 없었던 그녀에게 조카 정조는 남편이자 자식이었다.
혜경궁 홍씨는 가문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버렸던 비정한 여인이었지만 혹여 자식이 잘못될까 싶은 마음에
화안공주에게 잘보이려고 무던히 애를 쓴 것만 봐도 그녀의 권세가 어떠했는 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조카 정조에게 배신을 당하고 강화도에 유배될 줄 누가 알았으랴!
할 일이라고는 궁녀들에게서 아이를 만드는 일밖에 없었으리라 짐작이 되는 고종의 쓸쓸한 삶에 귀하게 태어난 덕혜옹주는 이름을 얻는 데 조차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폐망한 대한제국의 왕 고종에게는 정처만이 인정될 뿐 후궁과 그의 소생들은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여 곡절 끝에 옹주로 봉작을 받지만 일본의 철저한 계획 속에 일본식 교육을 받고 볼모로 잡혀가면서 그녀의 몸과 마음은 병이 든다.
대마도 번주와 정략 결혼 후 이혼을 하기까지 정신병에 시달리면서 망국의 마지막 황녀로 살아야 했던 비운의 운명이 바로 덕혜옹주였다.
인생이 뻥 뜷린 4차선 도로라면 막힘없이 달리겠지만 막 걸음을 떼는 아이조차 세상이 마음데로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터이다.
7명의 공주만 보더라도 하나같이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았다.
때론 권력의 맛에 취해 향긋한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으나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까지 가야했던 삶들이 적지 않다.
어쩌면 선택받은 삶이었으나 그 위치와 조건으로 인해 오히려 훨씬 더 기구하고 사연 많은 삶을 살아내야 했는 지도 모른다.
공주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조선공주실록>은 조선왕조 공주 38명과 옹주 78명 중 조선시대 부마간택의 역사적 연원이 된 정선공주부터 외국에 인질로 잡혀간 덕혜옹주까지 7명의 공주들과 옹주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선왕실과 대한제국의 봉작이 사라진 상태에서 출생하여 호적에도 오르지 못하다가 고종의 노력으로 겨우 호적에 올랐으나 입적된 후에도 옹주로서 공인받지 못했던 덕혜옹주는 말할 것도 없고 섭정왕 도르곤의 배우자로 청에 끌려가야 했던 의순공주의 삶도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혼인 후 1년도 되지 않아 남편이 죽고 그가 역적의 누명을 썼기 때문에 박락의 부인이 되어야 했고 그도 죽어 귀국했지만 환향녀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저자의 글에 따르면 '공주'란 말의 원초적 의미는 '삼공이 주관해서 혼인시키는 여자'라고 한다. 그만큼 존귀한 신분인 공주(혹은 옹주)였음에도 영화를 누렸던 다른 공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삶은 안타깝기 이를 데 없었다.
정선공주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부마간택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부마간택도 왕비나 세자빈을 고르듯이 삼간택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장례법이 한 사람의 생을 꼬이게 만들 수 있었다는 점도 그러했다. 유교식 장례법이 아니라 불교식 장례법을 따를 수 있었다면 정선공주는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교식 혼례절차와 왕실 혼례절차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고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 역사이야기가 가진 강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료에 기록조차 되지 못한 공주들의 삶을 최초로 다른 책이라는데 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라서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