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일본 우익들은 이해 대해 '외압'에 굴복하지 말라고 반발하며 세력을 넓히고, 다시 한국과 중국의 불만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는 비생산적인 비판과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는 고이즈미 수상과 일본의 우익, 그리고 좌파의 양심적 지식인 및 시민단체들, 한국의 민족주의와 언론, 정대협을 비롯한 시민운동단체들의 주장과 시각을 사안별로 짚어가며 '화해'의 길을 찾는다.
작가정보
지은이 박유하는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고교 졸업 후 도일, 일본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일본 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세종대 일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시리즈를 기획, 편집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를 번역하는 등 근현대 일본문학과 사상을 소개하는 작업과 함께, 민족?제국?젠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일본 근대문학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을 시도해왔다. 또한 민족주의를 넘어선 연대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모임 ‘한일, 연대21’을 조직하고,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발언하면서 한일 간의 참 화해를 위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文學の闇, 近代の沈?』, 『座談會 昭和文學史』(공저), 『女子高生のための文章?鑑』(공편저),『日本近代文學とナショナル?アイデンティティ』(근간), 번역서로 『마음』, 『만연 원년의 풋볼』,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인생의 친척』 등이 있다.
목차
- 들어가면서
교과서 - '긍지'에서 '책임'으로
위안부 -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야스쿠니 - '사죄'하는 참배
독도 - 다시 경계민의 사고를
화해를 위해서
나오면서
책 속으로
〈교과서-‘긍지’에서 ‘책임’으로〉 교과서 사태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의 ‘반성적 태도’에 있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식해둘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교과서문제란 우리가 생각해온 것처럼 ‘예전부터, 그리고 늘’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확대된 현상이 아니라 그 반대로 패전 이후 곧바로 시작되었고 1990년대 이후 위안부문제를 계기로 더 분명해진 ‘반성하는 일본’이 문제시된 사건이었던 것이다. 우파들의 대항심과 단결을 촉구할 만큼, ‘반성하는 일본’과 ‘반성적인 교과서’가 전후 일본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은 교과서문제에서 무엇보다 먼저 이해되어야 할 사항이다.(18쪽) 한국의 일본 교과서 비판이 궁극적으로는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일을 당연시하는 교육과 자국중심적인 민족주의의 수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일본의 우파는 이제 새삼스럽게 또 다시 일본인들에게 민족주의적 교육을 하려 하지만, 그러한 교육의 미래가 어떤 것인가는 현재의 한국과 중국과 북한이-그들이 비난하는-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교육을 지향한다면 일본의 우파들에게 한국이나 중국의 민족주의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53쪽) 〈위안부-‘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일본 정부는 ‘강제연행’에 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없지만 군의 관여는 ‘시인’했고, 위안부 문제에 관해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사과’했으며, ‘기금’을 통해 ‘생존자나 유가족에게 보상’하려 했으며, 위안부문제가 제기된 이후 일본의 교과서들은 위안부에 대해 대부분 언급했었다. 그 언급이 교과서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인데도, 그러한 사실조차 보려 하지 않는 정대협의 비난은 일본의 그나마의 성의조차 짓밟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정대협의 발언의 문제점은 “전범국 일본의 본성인 군사대국화 및 해외침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일본’이라는 나라란 원래부터 ‘군사대국화 및 해외침략 의도’를 갖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본질주의적인 사고에 있다.(73쪽)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위안부문제는 민족의 문제일 뿐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 성의 문제이며 계급의 문제이다. 현대 일본인들이 ‘일본’인의 후예이기 때문에 이들의 불행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그때 가난한 그녀들을 위안부로 보내고 학교나 결혼으로 도피할 수 있었던 유산계급-결과적으로 정숙한 여성으로 남을 수 있었던-의 후예이며 조선인 모집책의 후예이며 그들을 유린한 조선인 남성의 후예인 한국인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물론 전쟁과 식민지화에 따른 억압에 대한 책임은 무엇보다 발안한 자와 명령한 자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안의 책임을 묻는 일이 일본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발안’하고 ‘명령’한 자의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서도, ‘수행’한 자에 대한 책임은 물어져야 하는 것이다.(80~81쪽) 위안부문제의 본질은 그들이 수입을 얻었는가 아닌가, 즉 ‘공창’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위안소라는 장소가 ‘국가’의 묵인-공인하에 만들어지고 운영된 장소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일본의, ‘국가’로서의 보상이 필요한 이유이다. 한국의 미군기지 주변의 ‘공창’ 역시 기본적으로는 일본이 묵인한 위안소와 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즉 ‘국가’가 용인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공범관계일 수밖에 없다. 이 역시 한국이 ‘책임’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이유이다.(89쪽) 〈야스쿠니-‘사죄’하는 참배를 위해〉 고이즈미 수상은 자신의 참배가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확인하는 의식이라고 말했지만, 야스쿠니 신사가 이처럼 전쟁이 났을 때 나가 싸우는 것-‘희생의 정신’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고귀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맹세’=약속은 모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야스쿠니의 사상 자체가 이렇게 국가를 위해 죽는 일을 당연시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장소에 참배한다는 것은 그러한 사상에 동의한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 수상의 참배는 수상이 의도하는 것처럼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120쪽)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고이즈미 수상의 뜻을 나타내면서 전사자와 유족들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추모의 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출판사 서평
우리의 일본 비판은 반쪽짜리 비판이었다! 교과서, 종군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독도 문제. 끊임없이 거듭되며 갈등의 골만 깊어질 뿐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한일관계의 치명적인 현안들이다. 이 문제들은 도대체 왜 풀리지 않는 걸까. 일본이 정말 ‘반성과 사죄를 모르는, 식민지 지배와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역사를 미화하고 다시 군국주의로 치닫는 나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만 터지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서 한목소리로 일본을 규탄하는 우리의 비판이 아직도 모자라서일까. 이 책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은이 박유하 교수는 그 동안의 한국의 비판은 일본의 ‘전후’에 대한 이해가 결정적으로 결여된 반쪽짜리 비판이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일본에 대한 본질주의적 불신과 비난으로 이어지고, 일본 우익들은 이에 대해 ‘외압’에 굴복하지 말라고 반발하며 세력을 넓히며, 다시 한국과 중국의 불만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는 비생산적인 비난과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는 고이즈미 수상과 일본의 우익, 그리고 좌파의 양심적 지식인 및 시민단체들, 한국의 민족주의와 언론, 정대협을 비롯한 시민운동단체들의 주장과 시각, 그 모순을 네 개의 현안별로 냉정하게 비판해가며 진정한 ‘화해’의 길을 찾고 있다. ‘반성하고 사죄하는 일본’과 한국 민족주의의 아이러니 일본의 ‘전후’에 대한 이해는 기존의 인식에 어떤 균열을 낳는가. 이를테면 박 교수는 교과서문제를 다룬 글에서, 새역모와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문제는 우리가 생각해온 것처럼 ‘예전부터, 그리고 늘’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확대된 현상이 아니라, 그 반대로 패전 이후 곧바로 시작되었고 1990년대 이후 위안부문제와 1993년 호소카와 수상의 ‘침략전쟁’ 발언 등을 계기로 더 분명해진, 전후의 ‘반성하는 일본’과 ‘반성적인 교과서’가 문제시된 사건이라고 말한다. 또한 교과서문제나 야스쿠니문제는 한일 간의 현안이기 이전에 일본 자신의 문제, 곧 ‘제국주의 일본’시대뿐 아니라 ‘전후 일본’이라는 이름의 60년 세월을 둘러싼 그들의 ‘과거청산’ 싸움이기도 하다는 점, 따라서 우리의 ‘친일파’나 ‘박정희’문제가 그렇듯, 결코 쉽게 해결되거나 어느 한 쪽의 완전한 굴복으로 끝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새역모 역사교과서, 공민교과서가 지향하는 ‘전통, 문화, 긍지, 공공성, 애국심’이야말로 한국의 (일본적) 민족주의 교육이 국어-국사교과서를 통해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강조해온 덕목이 아닌가.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앞세운 새역모 교과서에 대한 일본 시민들의 탈민족주의적 비판이 한국의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볼 것인가. 결국, 한국의 일본 교과서 비판이 궁극적으로는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일을 당연시하는 교육과 자국중심적인 민족주의의 수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책임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서 위안부문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도, 그리고 독도문제도, 이와 같은 복잡함과 불편함을 마주하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과거에 국가가 저지른 일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할 주체와 대상이 결코 단일하지 않다는 인식 아래,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이름을 호명하기보다 일본의 누가, 한국의 누가, 그리고 그들의 어떠한 사고가, 내부/외부의 타자를 지배와 폭력의 대상으로 삼도록 했는가를 섬세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또 해방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의 역사 속에서 생겨나고 굴절돼온 이 문제들은 궁극적으로는 근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독도문제는 근대 국민국가의 영토 구분의 움직임이 빚은 문제이며, 야스쿠니와 위안부문제는 그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동원된 군인과 여성에 관한 문제이고, 교과서문제란 그 영토와 군대와 여성에 대해 국가가 어떤 식으로 공식적으로 ‘기록’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국 안에서도, 일본 내부에서도 사이에 서’ 있다는 지은이의 진단과 대안은, 줄곧 ‘반성하고 사죄하는 일본’(에 대한 우익의 반발)이 교과서문제의 발단이었다는 첫머리에서 독도를 공동영역으로 해 한일 간의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제안까지, 현안의 민감성에 비례하여 사뭇 논쟁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100년 전의 잘못된 시작이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 새로운 100년,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대단히 뜻깊은 진전의 계기가 될 터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90024466 |
---|---|
발행(출시)일자 | 2005년 09월 27일 |
쪽수 | 214쪽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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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반 세기가 훌쩍 지나버렸기에, 지난 일제 시대는 교과서에서나 읽을 수 있는 과거사로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권위주의적이고도 경직적인 분위기를 고수하고 있으며, 다양성을 받아들이는데 익숙지 못한 것을 볼 때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듯해 보인다. ‘단일 민족’ 신화에 대한 지나친 집착 역시 어쩌면 잃어버린 지난 날에 대한 반발 심리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50년이라는 시간이 우리 자신의 상처를 씻기에 부족했던 것일까? 하지만 패배주의적인 시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에 비롯된,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문제로서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본이 지난 침략주의 역사에 대해 반성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독일은 지난 날의 유태인 학살에 대해 철저히 사과하고 보상했지만 일본은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선이다.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행해지고 있으며, 그것으로도 모자라 극우세력이 수시로 고개를 쳐드는 나라. 그런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민족이나 자신의 역사가 되도록 찬란하길 바란다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 싶어 보인다. 직접적으로 일제 시대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시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쉽지가 않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지난 역사에 있어서 일방적인 피해자나 가해자는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신음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 당시 자생적인 발전의 움직임을 상실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오늘날 저성장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역사는 단절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한 세력을 가해자라 일컫는다 하여 지난 날의 굴욕적인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는 일본에 지배당한 신민으로서 우리가 중국민을 차별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위안부에 팔아 넘긴 아버지가 있었음을 말하며, 철저히 일본인이 됨으로써 출세하고자 자발적으로 학도병이 된 이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물론, 이러한 언급이 일본 아닌 우리의 잘못으로 나라를 잃었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부당한 하나의 구조가 어떠한 역학 하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 역시 지난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서 희생된 일본인, 아들을 잃은 아픔을 억눌러야만 했던 일본 어머니, 그들 역시 역사의 피해자이며 희생자이다. 어쩌면 아픔은 우리 자신만의 것이라 그 시대를 살다간 모든 이들의 것이 아닐지 싶었다.
언제쯤 앙금이 모두 사라질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화해는 민족의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하여도 이루어지기 힘들 듯하다. 하지만 삶은 공존하는 것이며, 누구 하나를 짓밟음으로써 우리 자신의 안위를 위하는 것이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대한 사죄를 받는 것도 물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역사로부터 끊임없이 현재를 배워야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모든 악을 용서해주진 않는다. 베트남에서 우리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수많은 생명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승리한 자의 모든 행동이 정당한 것은 아니듯, 아무리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베트남의 체제가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는 거리가 있다 하여도, 그것이 우리는 절대적으로 선이며 그들은 절대적으로 악임을 의미하진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