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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과 인성

강상원 회고록 | 강상원 나의 인생 여정 | 양장본 Hardcover
강상원 저자(글)
물레 · 2019년 0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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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청렴과 진취로 일관한 강상원 전 전라북도지사의 허심탄회한 회고록
강상원 전 전라북도지사가 미수(米壽)를 맞이하여 어린 시절부터의 삶과 공직생활 35년을 돌아보며 진솔하게 써 내려간 회고록. 전주시장을 지내며 오늘날 전주의 전통미를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매김한 시청사를 신축했으며, 전북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도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용담댐 건설을 숱한 난관을 뚫고 마침내 성사시킨 그는 공정함과 청렴성을 평생의 신조로 삼고 언제나 주민의 편의와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행정을 앞장서서 펼쳤다.
이 책에는 공직자로서 크고 작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맛본 보람과 좌절,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자 주민, 기업, 농민, 상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설득하면서 겪었던 고충과 그 결과, 그러는 과정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들과의 관계 등이 꾸밈없이 그려져 있다. 또한 삼례에서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 집안을 지키며 키워나간 가족애라든가, 평생을 이어온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려주는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강상원

1932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출생. 아호는 동암(東庵).
삼례초등학교, 전주북중학교, 서울대학교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특별시 재무국 촉탁으로 공직의 길에 들어섰으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14년간 근무했다. 이후 내무부로 옮겨 전라북도 기획관리관실 기획담당관, 순창·진안군수, 내무국장 등을 지내고, 전주시장을 두 차례 역임하면서 전주시청사를 신축했다.
전라북도 부지사, 총리실 심의관, 총무처 소청심사위원을 거쳤고, 전북도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전북의 오랜 숙원사업이던 용담댐 건설을 기획하고 추진하여 그 기반을 닦음으로써 전북도민들의 가뭄과 홍수 문제 해결에 큰 공을 세웠다.
녹조근정훈장 등을 수훈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심리연구대학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논문으로 「경영행정 방식에 의한 투자재원 확대방안」(1984)이 있다.

목차

  • 축사
    우듬지의 생명력을 떠올리며 | 송하진(전라북도지사)
    내디딘 걸음걸음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 김승수(전주시장)
    ‘일하는 공직자’의 풍부한 경륜을 배우고파 | 박성일(완주군수)
    후배 공직자들에게 참된 나침판이 되길 | 임명환(전 진안군수)
    재임기관에는 산 역사가 되고 후배들에게는 귀감이 되길 | 김성연(전 정읍군수)
    후배들에게 큰 도움과 본이 되는 삶 | 이석봉(징검다리 회장)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Part 01 식민지배와 전쟁의 격동 속에서 보낸 성장기
    유년 시절의 기억
    - 유복한 한약방집 장남 / 일제에 빼앗긴 놀이의 즐거움
    중학교 시절의 기억
    - 이리농림학교에서 공부 대신 농사만 / 대학 가려고 전주북중학교로 전학
    전쟁의 공포와 책임감의 무게
    - 죽음의 공포를 일깨운 전쟁 / 가족을 책임진 어린 경찰

    Part 02 국가고시에 도전하던 법학도
    낭만과 열정 넘치던 대학 시절
    -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다 / 청춘은 뜨거웠다
    아내와의 결혼생활
    - 적극적으로 다가온 아내 / 잘 자라준 아이들
    국가고시 도전기
    - 실패의 연속 / 고시를 포기하다

    Part 03 공직의 길에 들어서다
    말단 공무원 시절
    - 계약직에서 군대로 / 선거관리위원회의 시기 / 전북도청으로 내려가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순창군수 시절
    - 지역현황을 살피다 / 왕성한 사업 추진
    정신일도(精神一到)의 진안군수 시절
    - 사람이 문제다 / 핵심 지역사업
    보직이동으로 영호남을 넘나들다
    - 전북도청으로 다시 돌아오다 / 부산시 민방위국장이 되다

    Part 04 두 차례의 전주시장 임기
    지성통천(至誠通天)의 1차 전주시장 시절
    - 사명감을 느끼며 금의환향 / 고질적인 물 부족 해결 / 설득과 타협으로 이루어낸 도시계획 / 부채상환을 위한 노력 / 생활 밀착형 사업의 성과 / 세계 속의 전주를 지향 / 문화도시의 기틀을 다지다 / 국무성 초청 미국 방문 / 어려운 민원을 해결하는 방법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교육파견
    - 군사정권의 고위공무원 기강 잡기 / 그래도 시간은 간다
    호시마주(虎視馬走)의 2차 전주시장 시절
    - 현황을 세심하게 살피며 사업 추진 / 임기 지속성이 필요하다 / 청렴의 원칙을 지키다

    Part 05 전라북도 부지사에서 도지사까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전라북도 부지사 시절
    - 변화를 추구하다 / 행정에서의 융통성은 필요하다 / 마음은 언제나 고향 / 해프닝으로 끝난 국회의원선거 출마
    호시우행(虎視牛行)의 국무총리실 시절
    - 큰일은 없지만 할 일은 많다
    심성구지(心誠求之)의 시절
    - 여유롭던 내무부 민방위학교 교장 / 법지식이 유용했던 총무처 소청심사위원회 위원
    마부위침(磨斧爲針)의 전라북도지사 시절
    - 하늘의 별을 딴 심정 / 철저하게 준비하다 / 용담댐 건설사업 추진의 전말 / 오랜 숙원사업 추진 / 아쉬운 마음으로 공직 마무리

    Part 06 은퇴 후의 삶
    새로운 삶을 설계하다
    - 아내와의 해외여행 / 성원건설의 문화원장 / 잠시 정치에 입문하다 / 자연인으로 살아가다
    건강은 관리가 최선이다
    - 병약했기에 건강에 민감하다 / 나만의 건강비법
    기억 속의 사람들
    - 내가 만난 사람들 / 전해 들은 사람들

    이야기를 마치며
    발문(跋文)_우리 시대의 청백리상 | 유민영(단국대 석좌교수)
    강상원 연보

책 속으로

인민군 치하 3개월 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우익이라 인민군에게 해코지당할 것 같아서 익산군 온수리로 혼자 피난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장남인 내가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인민군은 매일 한 집에 한 사람씩 노력동원에 참가하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했는데, 항상 집안을 대표해 내가 나갔다. 삼례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황방산에 참호를 파거나, 미군 폭격으로 손상된 철교의 교각을 보수하는 데 주로 동원되었다. 특히 교각 보수는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무척 힘들었다. 큰 모래가마니를 교각의 손상된 부분에 쌓는 단순노동이었지만 물 묻은 모래가마니를 등에 지고 경사진 교각을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보수하다가 공습경보가 울리면 철교에서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가 숨어야 했다. 당시의 폭격은 정확도가 떨어져서 오폭이 대부분이었는데, 운이 나쁘면 빗나간 포탄에 맞아 죽는 경우가 많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공습의 순간에도 아이러니하게 밤하늘을 쳐다보면 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_69쪽, 「전쟁의 공포와 책임감의 무게」 중에서

내무부에서 권장하는 새마을사업도 많이 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을 통째로 옮겨서 새로 조성하는 사업인데, 대부분의 군에서 하나 이상 사업을 수행했다. 순창군도 주변에 냇가가 있고 건너에 도로가 있어서 이동하기 적당한 지역을 찾아서 새마을사업을 벌였다. 그런데 내무부 지침에 따르면 마을 집들은 무조건 도로 쪽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위치해야 했다. 지침을 그대로 따르면 모든 집이 동향이 되기 때문에 나는 남향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새마을과에서는 상부의 지침에 따라야 한다며 반대했다. 그래서 순창군의 마을은 남향으로 하겠다는 공문을 만들어 내무부에 올리고, 담당 직원들에게는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터이니 나만 따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내무부에서 왜 지침을 어기냐면서 현지조사를 나왔다. 내가 조사결과를 직접 장관에게 설명하니, 지침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지 사정에 맞도록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나를 칭찬했다. 당시의 내무부는 무척 권위적이라 현지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탁상행정으로 기획하고 획일적으로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공무원도 책임지기 싫어서 지시대로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역행정을 책임지는 군수는 지역의 현실에 맞게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풍 사업에서 실패를 겪으며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피하지 않았다.
_183~184쪽,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순창군수 시절」 중에서

신청사 설계에 관해서는 특별히 신경 썼는데, 분명한 기준점을 갖고 있었다. 새로운 전주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시청 앞에는 너른 광장이 조성되고, 주변에는 도시개발로 고층건물이 들어설 것이며, 뒤편으로는 40미터의 대로가 생기는 시청의 주변환경을 고려해서 설계하라는 것이었다. 저층이면 시청이 파묻혀서 주변 공간에 가리게 될 것이고, 고층이면 시민에게 불편하니 적절한 높이가 필요했고, 전통도시 전주라는 이미지가 담길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시장실 창문은 전통 창틀로 해라, 민원인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관공서의 권위에 눌리기 쉬우니까 이를 피하기 위해 민원실을 도로보다 낮은 곳으로 설계해라 등등 세세한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설명하기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디자인하기에는 어려운 요구였다.
전국을 대상으로 설계공고를 했더니 많은 설계회사가 응모했고, 결국 지상 8층 규모에 전통 기와지붕을 살리는 콘셉트의 디자인이 선정되었다. 당시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던 때여서 행정관청은 대부분 사각형의 획일적인 건물이었고, 디자인의 개념이 담긴 건물은 없었다. 그런데 시청사에 디자인이 도입되면서 ‘행정관청의 권위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훌륭한 건물’이라는 호평을 많이 들었다.
_236~237쪽, 「지성통천(至誠通天)의 1차 전주시장 시절」 중에서

투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전해 들으니 온갖 나쁜 내용이 적시되어 있었다. 첫째가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서 인사이동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업소로 보낸 세 명의 과장 중 한 명이 투서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둘째는 뇌물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전주역 근처에 대지조성을 하면서 대지를 빼돌렸고, 업자에게는 아파트 한 채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여비서하고 살림을 차렸다는 등 아홉 가지 내용이 망라되어 있었다. 보름 동안 조사를 했지만 문제점을 찾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조사관이 시장실에 들렀다. “긴 시간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20년 동안 수사관 생활을 했지만 시장님 같은 공직자는 처음 봤습니다. 공직생활을 오래 하면 대부분 구린 뭔가가 조사과정에서 나오는데, 최대한 했는데도 이렇게 깨끗한 분은 처음입니다. 저도 정읍 출신인지라 존경스런 마음에 한번 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하기에 나도 뿌듯했다.
_352~353쪽, 「호시마주(虎視馬走)의 2차 전주시장 시절」 중에서

“사정이 시급하니 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댐을 건설한다면 외지인보다 내가 도지사일 때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될 것입니다. 나는 진안군수를 했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보상도 더 신경 쓰고,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도 챙기고, 공사도 서둘러서 생활의 불편함을 적게 하겠습니다. 대청댐이 다목적댐 역할을 못 해서 서해지구가 항상 수해를 입는데, 이것도 해결이 됩니다. 그러니 일석이조 정도가 아니라 일석오조, 육조가 되는 것입니다. 진안군에도 절대 손해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시간이 늦었지만 식사하러 가자고 했더니 위원대표가 한마디 하겠다고 나섰다. “지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네요. 고향이 수몰된다는 아쉬움만 참을 수 있으면 참 여러 사람이 혜택을 보겠네요. 댐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약속하신 충분한 보상과 빠른 공사에 대해서는 꼭 지켜주십시오.”라고 물러섰다. 나의 설득이 통하여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졌다.
_437~440쪽, 「마부위침(磨斧爲針)의 전라북도지사 시절」 중에서

출판사 서평

용담댐 건설을 성사시켜 전북도민의 가뭄과 홍수 문제를 해결하다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댐을 건설하는 사업은 이미 일제강점기에도 계획되어 토지보상까지 진행되다가 해방이 되면서 무산된 적이 있다. 그 후 건설부에서 다시 추진했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쳐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1980년대에 전주시장을 지내며 상수도 부족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강상원은 이후 전북 부지사로 일하면서 전북 서부지역 전체가 물 부족과 홍수피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용담댐 건설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강현욱 도지사에게 건의하고 사업 추진을 시작해놓았던 터였다. 그러고 나서 총리실로 발령이 나서 전북을 떠났다가 1992년에 도지사가 되어 돌아와보니, 그간 여러 도지사를 거쳤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반대에 막혀 별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주민을 설득하지 않고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고 생각한 강상원 지사는 진안군수에게 사업반대투쟁위원회 위원들과의 끝장토론 자리를 군청에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물리적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군수의 만류에도 개의치 않고 직접 나섰지만, 토론장에서도 양측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릴 뿐 도무지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강 지사는 다소 엉뚱하게 용담면과 진안군의 이름 풀이를 통해 위원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는 댐 건설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역설하기 시작했다.
“용담댐 건설은 서해지구 사람들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여러분들께는 고향산천이 수몰되어 가족의 역사를 잃어버리는 비극이겠지만, 이는 생사문제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죠. 지금처럼 반대만 하신다면 진안군에서 떠난 여러분의 부모형제도 생존의 문제에 내몰리게 됩니다. ……
만약 댐을 건설한다면 외지인보다 내가 도지사일 때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될 것입니다. 나는 진안군수를 했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보상도 더 신경 쓰고,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도 챙기고, 공사도 서둘러서 생활의 불편함을 적게 하겠습니다.”
이렇듯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부모형제를 위한 사업임을 설득하자 결국 위원들도 한발 물러나 찬성을 표시하면서 용담댐 건설사업은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이후 강 지사가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음도 물론이다. 보상에 필요한 조사를 세밀하게 진행하고,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보상특별대책반을 만들어 재단출연금 50억 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공직생활 35년 동안 간직하고 실천해온 원칙
저자는 공직에 들어서고부터 35년 동안 국가와 도민에 봉사하면서 공정함과 청렴성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해왔다고 한다. 이를 두고 그는 “조부님이 가르치신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이 이미 어릴 적부터 각인되어 평생의 지침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6·25전쟁의 와중에 미처 다 마치지 못한 군 복무를 하기 위해 뒤늦게 국토건설단 29건대에 근무할 당시, 그는 군대의 쌀 여섯 가마를 누군가 훔쳐낸 것을 적발했다. 실상은 대대장 등의 하숙비를 충당하려고 빼돌린 것이었는데, 이 사건을 눈감아주면 제대할 때까지 휴가를 나가 있게 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았다. 동료 부대원들이 배곯을 것이라는 생각에 타협하지 않고 상부에 정직하게 보고한 그는 상관들에게 미운털이 박혔지만 동료들 사이에서는 영웅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전주시장 시절 명절선물이라며 보내온 인삼을 무심코 받았다가, 인삼 상자에 인사 청탁을 위해 1백만 원이 든 봉투를 끼워놓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깜짝 놀라 되돌려준 적도 있다. 이렇듯 항상 부정을 멀리했기에 반복되는 무고(誣告)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었다. 역시 전주시장을 할 때 투서 사건으로 치안본부의 조사를 받기도 했으나, 조사관이 20년 수사관 생활 동안 이렇게 깨끗한 공직자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게다가 이 조사 보고를 믿지 못한 상관이 보낸 새로운 조사단까지 빈손으로 돌아갔다.

주민의 어려움을 두루 살피고 책임을 다하다
또한 저자는 무사안일을 경계했다. 어떤 곳에 발령을 받든 간에, 적당히 자리만 지키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복지부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불편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지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지역현황을 파악하고 광범위한 의견을 들어 신중하게 결정하되, 한번 결정한 사업은 어떠한 반대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지성통천(至誠通天)의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매진했다. 진안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그는 지역의 관문인 진안로터리가 엉망으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도로를 정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재원이 없으니 불가능하다는 건설과장의 의견을 물리치고 직접 뛰어들어서는 토지주들을 일일이 설득하여 토지를 기부받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군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마침내 도로정비를 완수했다.
행정을 하다 보면, 지역의 특별한 상황과 법 규정이 서로 맞지 않아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그는 어떤 선택이 지역민에게 더 유익한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그 결정의 책임을 결코 부하직원에게 넘기지 않고 자신이 감당했다. 순창군수로 일할 당시 마을을 통째로 옮겨 조성하는 새마을사업을 했는데, 내무부 지침에 따르면 마을 집들은 도로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지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집들이 동향이 되기 때문에 남향으로 하라고 그가 지시하자, 담당 직원들이 내무부 지침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결국 군수인 자신이 책임을 질 터이니 모든 집을 남향으로 지으라고 하고는, 내무부에 지역 사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니 오히려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공직자의 덕목과 자세
회고록 제목을 ‘공직과 인성’으로 지은 데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바로 ‘인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부하직원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에도 “능력이 모자라더라도 성실·청렴하면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데, 똑똑하지만 믿을 수 없을 때가 정말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업무 능력보다 사람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이 책의 발문(跋文)을 쓴 유민영 단국대 석좌교수는 강상원 전 지사와 함께 그의 고향 삼례와 지난 시절의 임지를 몇 군데 여행하면서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놀랐다고 한다. 한 가지는 근대화과정에서 저자가 개발에 앞장섰던 지역에 땅 한 평 가진 것 없고, 유산으로 받은 임야와 집마저 생활비 충당을 위해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는 저자가 조선시대 이원익 정승에 버금가는 ‘현대판 청백리’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저자가 부임했던 곳마다 놀랍도록 많은 진취적인 일을 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그중에서도 용담댐 건설은 전북의 지형을 바꾸고 전북도민들의 생활혁명까지 도모한 역사적 업적이라고 평가한다.
대학 시절 법학을 공부하고 서울특별시 재무국 촉탁으로 공직의 길에 들어선 이래 35년간 공직의 외길을 걸어온 강상원 전 지사는 이 책에서 책임감과 추진력을 가지고 주민의 삶을 위해 수많은 사업을 성공시킨 유능한 행정가이자 청렴하고 공정한 관리로서 쌓은 경험과 지혜를 차분한 어조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88653630
발행(출시)일자 2019년 08월 30일
쪽수 552쪽
크기
153 * 210 mm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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