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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라담화면배

구양숙 시집
그루 현대시인선 20
구양숙 저자(글)
그루 · 2020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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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구양숙 시인의 시는 쉽다. 그림처럼 환하게 다 보이는 평범한 글이다. 지나치면서 보는 나무, 꽃, 사람 모두가 시인에게는 글감이다. 구어체의 진솔한 구문으로 삶의 비애와 고뇌를 극대화하면서 탄탄한 언어감각과 날카롭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시적 묘미를 증폭시키는 개성이 돋보이는 시인이다.

이 책의 총서 (24)

작가정보

저자(글) 구양숙

경북 영일 출생으로 1991년 《우리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봄날은 간다』,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사랑은 늘 목마르다』, 『세상이 참 조용하다』가 있으며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가을 아침 / 광흥사 마당 / 꿈길 따라가면 / 금대암 / 길이 없을 때까지 / 꽃놀이 달놀이 봄놀이 / 날이 가면 / 눈 피고 꽃 내리던 그날 / 늙은 여류 / 다시 시월에 / 다시는 / 말하자면 / 산다는 일은 / 저녁 기도 / 조용하면 들리는 것 / 계량컵

    제2부
    갇혀서, 봄 / 19세기식 데이트 / 꿈, 이별 연습 / 계요등 / 꿈 깨라 / 우리 옆집 / 보고 싶고 그립고 / 동행 / 들꽃 / 다시 만나다 / 아시나요, 당신? / 옛 사람 / 꽤 괜찮은 일 / 청사포 / 진달래꽃 / 떠나가던 날

    제3부
    경상도 아부지 / 나비야 나비야 / 미처 못 배운 것 / 반성문 / 손님 / 살맛 / 아가들이란 / 아빠, 시원하고 있습니다 / 깨고락지 만세 / 초보 / 비밀 하나 / 법 / 성묘 / 병원 / 더불어 산다 / 보다 더 다운

    제4부
    가당찮은 꿈 / 갱년기 / 깨어 있으라고 / 다 그런 거 아닌가요? / 박주가리 / 봄눈 / 아가시, 아카시아 / 어떤 날 / 안부 / 우수 경칩 / 잊지 못할 날 / 출입 금지 / 잡라담화면배 / 그리 말하시니, 저는 / 차례차례 / 팔자에 없는 일

    제5부
    BUS STOP / e편한세상 / 개 발에도 땀 날 때 있거든 / 공원묘지 / 그녀가 춤을 춘다 / 낯선 밤 / 신 아라비안 나이트 / 어찌 아셨는지요? / 자화상 / 어느 하루 / 제가 선녀였을까요? / 하수구에 버려진 엽서 한 장 / 그러신가요, 당신도 / 나도 모르는 일 / 사서 하는 걱정

    산문 붙여서 쓰는 말

책 속으로

아무 데도 못 간다
입을 안 막고는
돌아다니는 것도 안 된다

사람도 삶길 것 같은
한낮 땡양지에 서서
비행기 가는 하늘을
넋 놓고 보다가
하염없이
버스 노선표를 본다

어디든 가야 되는데
그래야 살 것 같은데
미치겠다
-「잡라담화면배」

삼월에 펑펑 눈 내려
피어나던 동백꽃 봉오리째 얼고
어설프게 덤벼들던 나도
같이 얼던
남쪽 절집, 미황사
언 몸을
탁배기 한잔 짠지 한 젓갈로 녹이던
그날이
꽃보다 더 진하게 남아서
살면서
거길 언제 또 가보나
생각만 참 아득하다가
어찌어찌 연이 닿아 다시 간 삼월
그 술
다시 마셔 보니
그때 맛이 아니다
맛난 짐치가 없어선가, 눈이 안 내려선가
몇 잔을 거푸 마셔도 싱겁다
딱 고만큼만 그리워하다 말 걸

하면 안 되는 일도 있는 것을
참 일찍도 알았다
-「눈 피고 꽃 내리던 그날」

스트레칭 로라가 있는
늙은이들이나 오는 공터에
어느 아버지가 텐트를 쳤다

마누라는 입이 닷 발이나 나와
돌아앉았고
겨우 걷는 둘째는
텐트에서 나무 벤치까지
먹을 것을 나르느라 바쁜데

그것도 눈이라고
제 엄마 한번 보고
아빠 한번 보고
여섯 살 장남이 소리친다

아빠, 시원하고 있습니다
-「아빠, 시원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서평

오십대 초반부터 눈 돌린 사진 찍는 일을 쓴 것이 제1부의 ‘눈 피고 꽃 오던 그날’이다. 불교 사찰 답사를 따라간 날, 봄인데도 눈이 펄펄 내렸다. 해설자를 따라 법당으로, 탑으로, 스님의 법문까지 보태지면 사진은 날아간다.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모두가 사라진 절 마당을 돌며 요사채도 찍고 법당도 둘러보고 탑도 찍고. 늦으면 큰일이다. 부랴부랴 내려오니 버스 문이 잠겼다. 상점에 들어가 막걸리를 청하니 보시기에 같이 짠지가 나왔다. 한 잔 마시고 김치 한 젓가락 먹고 또 한 잔 마시고, 그제야 가게 안을 둘러보니 눈을 피해 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얼마 전까지 내가 살던 집은 지은 지 스물여섯 해가 넘는 복도식 시영 아파트였다. 나는 끝에서 두 번째, 맨 마지막 집에는 한 육십 된 괄괄한 아줌마가 살았다. 나남 없이 없는 살림이라 아주 쪄 죽기 전까지는 에어컨은 안 틀고 살아서 문을 열어 두면 옆집 소리는 내 집 같이 잘 들렸다. 이 아줌마는 베란다에 나와서 전화하는 게 취미인지라 친구 이름, 자식들 전화, 손주 재롱까지 생중계를 하셨다.
제2부의 「우리 옆집」이 바로 그 얘기다. 남편은 아니고 애인 비스무리한 키 작은 아저씨가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시끄러운 아줌마 소리에 묻혀 웃는 소리만 들릴 뿐 세상 조용한 사람이었다.
제3부의 ‘아빠, 시원하고 있습니다’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우리 집 옆 공터에 친 텐트를 보고 쓴 글이다. 테니스장 하나에 운동 기구 셋 놓인 작은 터라 식구들에게 졸리다 못해 그래 가자 하고 텐트를 친 아버지, 부끄러워 등돌리고 앉은 어머니, 겨우 걸음마를 하는 동생, 아이는 겨우 여섯 살쯤, “시원하고 있습니다.”라고 할 만큼 어렸다. 전염병이 몰고 온 웃지 못할 풍경이었다.
제4부에 실린 ‘잡라담화면배’는 우리 동네 가게 이름이다. 집을 나와 작은 개울을 건너 공장을 끼고 올라가면 공동묘지가 나오고, 과수원 지나 고물상 지나면 나오는 가게 이름이다. 어디든 가고 싶은 맘을 어쩌지 못해 자인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보다가 쓴 시다.
‘팔자에 없는 일’은 쌍둥이를 보다가 모처럼 애들이 휴가를 떠나는 덕분에 다녀온 제주 이야기다. 자리 물회, 고등어 회, 갈치 회……, 시장 안 식당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어도 아무도 말 거는 사람이 없었다. 올레길 돌며 혼자라 마음은 넉넉했지만 쓸쓸했다는 걸 고백한다. 한라산 소주는 진짜 맛있었다. 지금은 대구에서도 살 수 있다는데 그 맛이 날지는 모르겠다.
제5부 ‘버스 스톱’은 좀 오래된 글이라 20번 버스가 등장한다. 있는 대로 끼고 걸고 차고 살림사는 아낙 같지는 않고,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어도 예쁘고 날씬한 여자가 버스를 몇 대나 보내고 앉아 있었던 게 내 눈길을 끌었다.
가다가 괜찮은 남자 만나 하룻밤 아닌 여러 날 여러 달을 살았으면 싶었다. 내 시에 나오는 보기 좀 불편한 여자들은 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인생 조진 여자들이 많다. 과거가 있는 남자는 괜찮고 여자의 과거는 왜 용서가 안 되는 건지.
-‘붙여서 쓰는 말’ 중에서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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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80694297
발행(출시)일자 2020년 10월 30일
쪽수 152쪽
크기
137 * 211 * 14 mm / 279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그루 현대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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