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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 · 2006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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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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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은이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1889~1951)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4월 26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1911년부터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과 교우하며 논리학과 수학의 기초를 연구하기 시작한 비트겐슈타인은 1921년 자신의 전기 사상을 대표하는 주저 『논리-철학논고』를 발표했다. 193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철학교수가 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후기 사상을 압축한 『철학적 탐구』를 가다듬는 데 주력했으나 결국 출판을 보지 못한 채 1951년 4월 29일 케임브리지에서 사망했다. 비록 살아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저서는 『논리-철학논고』 단 한 권밖에 없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는 20세기의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을 발전시키며 언어의 본질, 언어의 가능성과 한계 등을 해명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옮긴이 : 진중권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미학 오디세이』(1994)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1998) 등의 저서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유쾌한 미학자’이자 ‘탁월한 논객’으로 자리잡은 진중권은 자신의 인문적·미학적 사유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인식틀과 발터 벤야민에게서 받은 영감에서 시작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청갈색책』의 번역은 그에게 자신의 사유가 발 딛고 있는 기원을 되짚어보는 작업이었다. 진중권의 주요 저서로는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2005), 『춤추는 죽음』(2005),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2003), 『폭력과 상스러움』(2002) 등이 있다.

목차

  • 서문 (러쉬 리이스)

    청색책
    갈색책

    옮긴이 해제 :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진중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20세기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비트겐슈타인의 미완성 유고 국내 최초 번역
근대철학의 언어학적 전제를 해체한 탈근대적 사유!
『철학적 탐구』를 위한 예비적 연구 『청갈색책』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플라톤 이래의 모든 철학적 문제는 문법의 혼동에서 비롯된 가짜 문제라고 주장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1921)는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살아 생전에 출간한 이 유일한 저서 단 한 권으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 사후인 1953년 『철학적 탐구』가 출판되자, 사람들은 이 책이 과연 자신들이 알고 있던 비트겐슈타인의 작품인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는 서로 완전히 다른 별개의 독창적인 저작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 중 그 누구도 비트겐슈타인처럼 그 사유의 뿌리가 완전히 달라 보이는 두 개의 사유를 발전시킨 예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두 명의 비트겐슈타인이 존재한 것이 아닐까 한동안 의아해했다. 그리고 숱한 갑론을박을 통해 이 두 저작 사이에 가로놓인 30여 년이라는 ‘잃어버린 세월’동안 비트겐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완역된 비트겐슈타인의 미완성 유고 『청갈색책』은 이와 같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준 작품이다. 1958년 초판이 출판된 『청갈색책』을 통해서 사람들은 『논리-철학논고』의 비트겐슈타인이 아니라 『철학적 탐구』의 비트겐슈타인을 특징짓는 여러 사유의 단초들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철학적 탐구』를 위한 예비적 연구”라고 불리게 됐다.
그러나 『청갈색책』은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세월’로만 보였던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사유를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갔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책으로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청갈색책』은 근대철학의 토대를 이루는 모든 언어학적 전제들을 철저하고도 집요하게 해체함으로써 탈근대적 사유를 선취한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더 중요하다. 즉, 이 책은 20세기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속에 가려져 왔던 탈근대적 비트겐슈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청갈색책』의 국내 최초 완역이 우리 시대의 ‘유쾌한 미학자’이자 ‘탁월한 논객’으로 알려져 있는 진중권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도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진중권은 자신의 인문적·미학적 사유에 영감을 준 사상가로 발터 벤야민과 더불어 비트겐슈타인을 꼽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번 『청갈색책』의 번역은 진중권에게 자신의 사유가 발 딛고 있는 기원을 되짚어보는 작업이었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의 탈근대적 사유가 집약된 『청갈색책』의 번역자로서 진중권만한 적임자도 드물 것이다(전기와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사유 전반을 명쾌히 해설해주고 있는 진중권의 옮긴이 해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읽어보면 다들 동의할 것이다).
특히 이번 국역본의 대본으로는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친구인 이탈리아 경제학자 피에트로 스라파에게 선물한 『청갈색책』의 영어 원본 텍스트에 입각해 영어본 초판(1958)을 수정한 영어본 제2판(1960)을 사용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청갈색책』의 1, 2부를 이루고 있는 「청색책」과 「갈색책」은 각각 1933~34년과 1934~35년 비트겐슈타인이 수업시간에 구술한 내용을 학생들이 받아쓴 책이다. 「갈색책」의 경우는 비트겐슈타인이 독일어로 개정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지만, 「청색책」의 경우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즉, 『청갈색책』에 관한 한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로 씌어진 텍스트가 정본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이자 유산집행자인 러쉬 리이스의 「서문」 참조). 물론 번역에 만전을 가하기 위해 옮긴이 진중권은 독일어본(Werkausgabe, Bd.5)과 일본어본(全集 6)까지 참조했다.


<그림이론에서 언어놀이로! ― 비트겐슈타인의 근대철학 비판>

철학적 문제는 한 단어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서로 혼동하거나, 어느 한 영역에서만 적용되는 규칙을 부주의하게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대 적용시키는 문법의 혼동에서 비롯되고, 이는 다시 일상언어의 모호함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이를 막으려면 하나의 ‘이름’이 오직 하나의 ‘대상’만을 지시하는 이상언어를 만들어, 그것으로 우리의 일상언어를 교정해야 한다 ― 바로 이것이 ‘그림이론’(picture theory)으로 불리는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자신의 사유를 스스로 비판하게 되는 데, 이 자기비판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최초의 저서가 바로 『청갈색책』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자기비판은 흔히 사람들이 언어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독특한 사유실험을 통해 전개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비트겐슈타인은 전통적인 의미론들을 기각함으로써 근대철학의 토대를 이루는 언어학적 전제들을 무너뜨리고, 이를 바탕으로 의식철학과 반성철학이라는 근대철학의 패러다임을 무너뜨리고, 그와 동시에 근대철학의 두 갈래인 관념론과 실재론이 딛고 서 있는 공통의 지반을 허물어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험주의 철학의 유아론은 물론이고, 명증성·직관·현전과 같은 합리주의 철학의 주요 개념들 역시 언어의 오용에서 비롯된 형이상학적 허구로 폭로한다. 우리가 『청갈색책』의 비트겐슈타인을 ‘탈근대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 전통적 의미론의 해체
제일 먼저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세 개의 방식을 소개한다. 첫째, 단어의 의미는 다른 단어로 번역이 가능하다는 ‘번역설’. 둘째,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라는 ‘대응설’. 셋째,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들 모두에 공통된 특성에 대한 관념이나 심상이라는 ‘관념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이 세 개의 방식을 차례차례 기각해 나간다.
가령 첫번째의 번역설은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정의항조차 모호한 일상언어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결국 언어 속을 돌고 돌 뿐, 한 발짝도 언어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각된다. 두 번째의 대응설은 가령 “이것은 토브다”라는 말과 함께 연필을 가리킬 때, 우리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것이 무엇인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원초적 번역의 불확정성’에 처하게 될 뿐이라는 이유로 기각된다(26~27쪽). 마지막의 관념설은 한 단어는 하나의 의미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고 그 다양한 의미 사이에는 서로 교차하는 유사성만이 있을 뿐이라는 이유로 기각된다(54~55쪽).

2) 의식철학과 반성철학의 해체
기존의 세 가지 전통적 의미론을 모두 기각한 뒤, 비트겐슈타인은 곧장 언어에 대한 그릇된 관념 위에 서 있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첫번째 해체대상은 의식을 가지고 의식의 안을 직접 기술하는 형태의 반성철학이었다. 대표적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그것이다. 이 유명한 명제를 듣고 우리는 “물론이지”라고 대꾸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우리는 거기에 “헛소리”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바라다’ 같은 지향적 태도의 표현이 “의식적 과정의 직접적 기술”이 되는 경우를 예로 든다(76쪽). 가령 “당신은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것임을 확신하는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흔히 “물론 나는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안다”고 대답하곤 한다. 그러나 원래 그 물음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당신이 내게 물은 것은 말이 안 된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자기가 아는 것은 이미 ‘바라다’의 문법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도 마찬가지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다’의 문법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데카르트의 이 명제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자기가 안다’는 문장만큼 의미가 텅 빈 표현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또 다른 예를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정신은 사유의 기관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된 은유다. 손이 글쓰기의 기관이라고 말하는 것과 정신이 사유의 기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36쪽). 손은 실재하는 기관이지만, 정신이라는 기관이 실재하는가? 사실 ‘정신’이란 그저 ‘생각하다’라는 동사를 실체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데카르트는 정신을 사물과 나란히 존재하는 실체로 간주했다. 이렇게 정신을 실체화하다 보니 공간의 은유가 사용된다. 대개 우리는 사유의 장소가 ‘머릿속’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물리적 공간을 기술할 때에나 사용되는 ‘장소’라는 단어를 부당하게 사유에 옮겨 놓은 것이다(39~44쪽). 이처럼 의식의 안과 밖이라는 것 자체가 그릇된 은유라면, 의식의 안과 밖의 관계를 가장 중요한 물음으로 취급하던 근대 의식철학의 근본문제는 ‘해소’된다.

3) 관념론과 실재론의 해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적 소통이란 화자의 머릿속의 심상을 청자의 머릿속으로 옮겨 놓는 데에 있다”는 통념을 기각함으로써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마저 해체한다. 예컨대 A가 “갈색책을 갖다 다오”라고 말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기존의 통념에 따를 경우, A는 ‘갈색’이라고 말할 때 B의 머릿속에 ‘갈색’의 상을 불러일으키려 한 것일 게다. 하지만 실제로 B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청색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관념론자들은 “우리가 언어로 소통에 성공했다고 할 근거가 없다”는 회의주의적 결론을 내리는 반면, 실재론자들은 “우리는 소통에 성공하고 있으므로, 그의 머릿속에도 나와 똑같은 갈색이 떠오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들은 독단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게 이 대립은 거짓 대립이다. A가 “갈색책을 갖다 다오”라고 말하자 B가 A에게 갈색책을 건네주는 경우를 떠올려 보라. ‘갈색’이라는 말을 듣고 B의 머릿속에서 ‘청색’이 떠올랐건 ‘적색’이 떠올랐건, B가 A에게 건네준 책의 색깔은 결국 갈색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이 아닐까? 결국 ‘갈색’이라는 말을 사용해 A는 원하던 책을 건네 받았고, 그로써 소통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언어놀이 속에서 B의 머릿속에 무슨 색깔의 상이 떠올랐는지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적 소통이란 화자의 머릿속의 심상을 청자의 머릿속으로 옮겨 놓는 데에 있다”는 관념을 해체하고 나면, 실재론과 관념론의 위와 같은 대립 역시 간단히 해체된다.

4) 의미는 사용에 있다
이밖에도 비트겐슈타인의 독특한 사유실험은 『청갈색책』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이름에는 하나의 명사가 대응한다는 관념, 의미란 인간 내부에서 작동하는 어떤 정신적 활동이라는 관념, 의미작용이란 지시대상이 된 사물과 머릿속에 품은 기억상을 서로 비교하는 과정이라는 관념, 의미나 사유의 배후에 어떤 특정한 정신상태의 존재를 가정하는 관념 등 언어를 둘러싼 기존의 모든 관념들이 기각된다.
그 결과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세계에 대한 관조가 아니라 삶의 실천과 연동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즉, 초기 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의 본질은 세계의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는 세계 속에서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언어는 세계의 ‘그림’이 아니다. 세계 속에서 일을 하는 데에 사용되는 ‘연장’이다.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언어의 유일한 기능은 아니다. 세계의 기술(記述)은 그저 언어라는 연장을 갖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언어가 세계 속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러시아 ‘스타니슬라프스키 극단’에서 오디션을 볼 때, 배우들은 “오늘 저녁에”라는 짧은 대사로 40개의 상이한 상황을 연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배우들이 여기에 성공한다면, “오늘 저녁에”라는 표현은 40개의 상이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렇게 동일한 표현이라도 어느 맥락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의미가 ‘사용’에 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의미=사용’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이 새로운 의미론은 언어놀이(language game)라는 개념으로 『청갈색책』에서 처음으로 탐구되고, 『철학적 탐구』에서 보다 정교해진다. 『청갈색책』이 “『철학적 탐구』를 위한 예비적 연구”라고 불리게 된 것이 이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을 통한 근대와 탈근대의 변증법>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들, 특히 『청갈색책』은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비트겐슈타인은 하나의 단상에서 또 다른 단상으로 별다른 예고 없이 넘어가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쓰기 역시 비트겐슈타인의 탈근대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특징이겠지만, 독자들로서는 이런 글쓰기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비트겐슈타인의 빛나는 통찰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들은 다채로운 사유의 보고라고 할 수도 있다. 즉, 독자들은 사유의 방향이 굳게 닫혀 있지 않은 비트겐슈타인의 단상들 중 아무것에서나 출발해 비트겐슈타인을 따라서, 아니 비트겐슈타인을 거슬러 자유롭게 자신의 사유를 펼쳐볼 수도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출간을 염두에 두고 정리 중이던 다른 저서들이 아니라 굳이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청갈색책』을 번역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 사이의 과도기에 씌어진 『청갈색책』이야말로 미완성이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다채로운 사유의 파노라마 같은 저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갈색책』을 통해서 자신의 초기 사상에 대한 비트겐슈타인 본인의 자기비판도 볼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후기 비트겐슈타인 사상을 특징짓는 여러 단초들을 막 탄생하는 싱싱한 자태 그대로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분석은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그보다 더 중요한 철학적 과제의 수행을 위해서였다. 그 과제란 근대철학의 물음들은 ‘해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해소’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언어에 대한 그릇된 관념 위에 서 있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근대철학을 해체하는 작업은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들 이전에 이미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완성된 것이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은 근대를 해체하면서도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 펼치는 탈근대적 사유의 회의주의적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는다. 가령 자크 데리다 같은 이들은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며 최종적 기의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세계와 텍스트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린다. 그럼으로써 세계의 존재 자체를 괄호 안에 묶여버린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가 세계와 맞물려 있지 않을 때 언어는 휴가를 가고 이때 다시 형이상학적 물음이 발생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렇듯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형이상학적 물음은 우리를 회의주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언어는 여전히 세계와 맞물려 있다. 근대(모던)와 탈근대(포스트모던)의 변증법을 사유하는 데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이 그 튼튼한 언어철학적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근대철학에 대한 프랑스 철학자들의 비판이 다소 직관적이라면,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는 이 모든 작업이 수정처럼 투명하고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논리적 증명들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의 탈근대적 사유는 때로는 그 논증들이 너무 아름다워 미적 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번에 진중권에 의해 국내 최초로 국역된 『청갈색책』은 철학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그 아름답고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논증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원서(번역서)명/저자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76829627
발행(출시)일자 2006년 09월 15일
쪽수 373쪽
크기
148 * 210 mm
총권수 1권
원서(번역서)명/저자명 (The)blue and brown books/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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