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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총서 (163)
작가정보

1959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1982년 《실천문학》지에 시 〈누이야〉 외 3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그때 이후》 《다시 불러보는 벗들》 《세상의 출구》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가 있고, 창작동화집 《모나리자 누나와 하모니카》, 어린이 인물 이야기 《채규철》 《윤이상, 끝없는 음악의 길》 《평화와 희망의 씨앗 김대중 대통령》 《황병기: 천년의 숨결을 가야금에 담다》 《김득신》 《백동수》 《백석》 등이 있으며, 청소년 평전 《채광석: 사랑은 어느 구비에서》 《윤이상: 세계 현대음악의 거장》, 장편소설 《조선의 별빛: 젊은 날의 홍대용》이 있다. 본격 평전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목차
- 마음 깊은 데서 울리는 천년의 소리 (머리말)
가회동 한옥집 삼대독자
공부는 싫어했지만
괴짜 학생, 가야금을 만나다
정악과 산조를 배우던 날들
가야금이 맺어 준 사랑
법대 졸업 후 음대 강사가 되어
창작의 기쁨, 사업가의 정열
백남준과의 만남
평생 음악만을 위해 살고자
남과 북에서 울려 퍼진 우리 가락의 향연
용어 풀이
황병기 연보
책 속으로
“얘, 어디 네 가야금 소리 한번 들어 보자.”
누나의 목소리도 약간 들떠 있었습니다. 병기는 얼른 가야금을 퉁겼습니다. 첫 음은 ‘두둥’하고 멋지게 울렸지만, 그 다음부터는 영 신통치 않았습니다. 민요와 간단한 음악 몇 가지를 익혔지만,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서툰 솜씨라는 게 단박에 표가 났습니다.
“에계!”
누나는 마뜩잖은 표청으로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기어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병기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가야금의 ‘둥둥’ 하는 소리만 가슴속에서 크고 작은 물결들을 일으킬 뿐이었습니다.
근라 밤, 병기는 벽에 세워 놓은 가야금을 몇 번이나 무릎에 올려놓았는지 모릅니다. 불을 켠 다음, 오동나무로 된 몸통을 오래오래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악기였습니다. 현을 누르면 온통 신비한 가락이 손가락에 묻어날 것만 같은 악기였습니다. 이런 악기는 세상 천지에 가야금 말고는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때부터 병기는 가야금을 평생의 벗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50~51쪽)
출판사 서평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국악인, 황병기
우연히 들었던 가야금 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소년이 있었습니다. ‘단단한 소리를 써야 깊은 맛이 나온다.’ 스승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소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합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덧 그 자신이 길이 되었습니다.
가야금 명인, 최초의 가야금 창작곡 작곡자,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음악가, 교육자이자 기획자……. 황병기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이력들입니다. 거기에 더해 얼마 전 국립국악원이 행한 조사에서 김덕수와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악인’으로 꼽힌 사람. 그가 있었기에 우리 음악은 한층 더 풍부하고 매혹적인 비밀을 갖게 되었습니다.
황병기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보다
녹음이 짙어진 숲으로 들어갑니다. 사위가 고요한데,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뒤 먹구름이 몰려듭니다. 투닥투닥 나뭇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이윽고 비가 그치더니, 구름에 갇혔던 달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은은하게 내려옵니다. 황병기 선생이 처음으로 작곡한 가야금 창작곡 <숲>을 듣는 느낌입니다. 네 개의 장으로 나뉜 소제목들을 보며, 속살을 짚어 보았습니다. 황병기 선생은 이 곡으로 가야금 창작과 독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후 <가을> <석류집> <봄> <침향무> <비단길> <미궁> <영목> <전설> <밤의 소리> <남도환상곡> <춘설> <달하 노피곰>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창작곡과 연주는 하나하나가 우리 국악의 길에 남긴 새로운 발자국들입니다.
그의 창작 국악곡들은 이전까지는 서로 닫혀 있었던 정악과 산조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표현의 가능성을 넓히고 그윽한 깊이를 만들었습니다. 선생이 생각하는 전통이란, 천년 세월을 타고 내려온 유산에 뿌리를 두고 현재와 미래에까지 잇닿을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모습과 정취를 담은 주옥같은 곡들, 파격적인 구성과 연주 기법으로 우리의 타성적인 음악 감정에 충격을 준 <미궁>,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신라인들의 마음을 헤아렸다는 <침향무>나 백제 정읍사의 설화를 듣고 그 ‘영원한 사랑 노래’를 담았다는 <달하 노피곰>에 이르기까지 선생은 우리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왔습니다.
개구쟁이 소년이 가야금을 만나다
어린 시절의 황병기는 아주 평범했습니다.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에다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낙제를 면치 못했을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뒤늦게 한글을 깨치고 책 읽는 재미로 밤을 새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은 그의 상상력을 한껏 부풀렸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소년은 우연히 친구를 따라가서 가야금 소리를 듣게 됩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가락이었지만, ‘둥기둥’ 울리는 투명하고 정갈한 소리는 이내 소년 황병기의 마음을 사로잡고 맙니다. “아, 이런 소리가 있었다니.” 그 뒤로 가야금은 평생을 같이한 그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의 황병기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자라야 한다며 방학 때마다 시골 외갓집으로 보냈던 어머니, 한글을 가르치고 책 읽는 즐거움에 눈을 뜨게 해 준 김소열 아저씨, 그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음악 선생님,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 교장 선생님….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세상으로 돌리다
하지만 가야금을 가르쳐 준 선생님들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분들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때문에 피난을 갔던 부산에서 처음 가야금을 가르쳐 준 김철옥,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정악 스승 김영윤, 산조 스승 김윤덕, 국악곡을 오선지에 그리는 법을 가르쳐 준 나원화 선생에 이르기까지. 또한 황병기는 서양의 음악가 스트라빈스키와 존 콜트레인의 음악에서도 영감을 얻었고, 뉴욕에서 만난 전위 예술가 백남준을 통해서 현대 음악의 새로운 영역과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황병기는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곡들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64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가야금 연주를 하고 음반을 제작했으며 한국 음악을 강의하여 국악의 대중화와 한국 음악의 세계화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그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 훌륭한 국악인으로 키워 냈으며, 음악으로 남과 북의 겨레가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담은 예술이 이 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인 것입니다.
이 책의 특징과 구성
어린이 독자들에게 한 인물의 생애를 들려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가 걸었던 길을 풍부하고 실감나게 그려 내야 하고, 그가 품었던 생각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이야기나 터무니없는 미화도 피해야 합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것은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이야말로 한 사람의 발전에 가장 커다란 동기가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남들은 힘든 길을 걸었다고 여길지 몰라도, 황병기 선생 자신은 그냥 재미있고 즐거워서 걸은 길이라고 말합니다. 숨 막힐 듯한 경쟁이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끈기 있는 열정이었던 셈입니다. 이렇듯 꿈이란 남들이 강요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이루는 과정이겠지요. 이 책에서는 어려서는 괴짜나 영감으로 불렸고, 지금은 어린아이 같다는 말을 듣는 황병기 선생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고자 했습니다. 인물의 특징과 음악적 분위기를 개성 있게 살려 낸 허구 화백의 그림도 눈길을 줄 만합니다. 책의 뒷부분에는 우리 국악기들에 대한 설명과 사진을 실었고, 국악 관련 용어들도 쉽게 풀어 실었습니다.
기본정보
ISBN | 9788976503763 |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09월 20일 | ||
쪽수 | 151쪽 | ||
크기 |
153 * 215
* 20
mm
/ 298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산하어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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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 선생에게는 가야금 명인, 최초의 가야금 창작곡 작곡자,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음악가, 교육자이자 기획자라는 말이 늘 따라다닙니다. 이러한 수식어 가운데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악인’이라는 말이 가장 알맞을 듯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야금 소리를 듣고 그 매력에 빠진 뒤 날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오늘날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가야금 명인에 올랐던 그에게 ‘단단한 소리를 써야 깊은 맛이 나온다.’는 스승의 말씀은 망망한 바다를 헤치고 가는 키와도 같았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첫 가야금 창작곡 <숲>을 비롯해 <가을> <석류집> <봄> <침향무> <비단길> <미궁> <영목> <전설> <밤의 소리> <남도환상곡> <춘설> <달하 노피곰> 등 황병기 선생의 모든 작품들은 우리 국악사를 새로 써왔던 기념비였습니다.
어렸을 적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 소년이 친척의 가르침에 따라 한글을 깨치고 책 읽는 재미를 붙이면서 불과 몇 개월 안에 우등생이 된 일화는 유명합니다. 가야금 배우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던 부모님께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제가 가야금을 배운다 하더라도 공부에는 아무 지장이 없게 하겠습니다. 아니, 가야금을 배우면 공부를 더 잘할 것입니다. 믿어 주십시오.”라고 당차게 말한 뒤 정말로 가야금과 공부를 병행하여 서울대 법대에 당당히 입학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였던 선생은 가야금으로 돈 벌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서울대에서 학생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쳤고, 나중에는 이화여대 교수로서 평생 후학들에게 가야금의 깊은 소리를 가르치는 뛰어난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합니다. “나는 그저 즐거워서 가야금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그의 진솔한 고백은 자신이 어떤 일을 즐거워할 때 가장 큰 힘이 발휘되며, 또한 모든 이에게 짙은 향기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음악인 황병기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우리 국악기들에 대한 설명과 사진, 쉽게 풀어 쓴 국악 관련 용어들이 읽는 이를 특히 배려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