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 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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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양선미는 1967년 대전에서 출생했다. 별 특징 없는 여학생들이 그러는 것처럼 막연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어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했으나, 교사가 될 자질도 실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만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소설에 눈을 떴고 기적처럼 199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차를 타고 안개 속으로」가 당선되는 행운을 얻었다. 소설에 중독되어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살았다. 그 결과 장편소설 『문주』와 소설집 『맛동산 리시브』를 세상에 내보냈지만 문득 소설 쓰기에 한계를 느꼈다. 공부를 하면 나아질까 싶어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으나 해답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박사과정까지 마치게 되었다. 지금은 그간 읽었던 모든 책들이 잘 소화되어 온몸으로 퍼지기를 기대하며 밤과 낮을 소설만 생각하고 있다.
목차
- 조서
홍시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해피는
퀼트, 퀼트
내 사촌 동생의 결혼식
물고기들
산책 일기
풍경의 안쪽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브라보, 스위트 홈
해설 | 가족 이데올로기와 ‘정상가족’의 신화에 대항하는 글쓰기 _박진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선홍색 피를 흘리며 허공을 응시하던 그의 눈이 떠올랐다. 잠깐 습한 기운을 띠며 흔들리던 눈빛이. 까무룩 꺼져가는 그의 영혼을 바라보던 내 안에서 요동치던 당혹감이 아직까지 내 안 어딘가에서 떠도는 게 느껴졌다. 자꾸 뿜어져 나오려 하는 눈물까지도. 만약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방향을 틀지 않고 그대로 도로를 달렸더라면, 그는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을까. 횡단보도를 건너 내 집까지 찾아왔을까.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를 보는 순간 돌연 끓기 시작한, 나 자신도 감당 못 할 맹렬한 적의는 어디에서 떠돌던 슬픔이었을까. 자동차 불빛에 놀라던 그의 검은 얼굴, 허공에서 잠깐 빛나던 담배의 불빛은 혹시 꿈이 아니었을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반짝 투명한 알갱이 하나가 볼에 와 부딪혔다. 비인 것 같았다. _「조서」 33쪽
영우는 담 쪽으로 걸어갔다. 노인이 떨어졌다던 곳을 바라보았다. 땅이 까맣게 죽은 건 피 때문일 터였다. 그 옆으로 플라스틱 소쿠리에 수북하게 담긴 홍시가 보였다.
“하이고 홍시 좀 봐라. 내다 팔 작정이었나, 많이도 땄네, 제길. 여름 내내 감꽃 땜시 지저분해서 살 수가 없다고 원명학교에 쫓아가서 그렇게 뭐랬쌌더니 아, 막상 홍시가 열리니께 먼 걸신들린 사람처럼 따대더라니께.”
영우는 담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 아이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우우우 뛰어가거나 떼를 지어 걸어갔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분명 지난 저녁에 있었던 일들을 떠들어대고 있을 터였지만 늘 그랬듯 원명학교의 운동장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만 가끔 들려올 뿐이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영우는 생각했다. 슈퍼 주인에 의하면 노인은 몇 년 전 약을 먹었다.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하고 며칠을 입원한 끝에야 겨우 살 수 있었다. 퇴원을 한 뒤로는 그렇잖아도 잘 열리지 않던 말문을 아예 닫아버리고 말았다. _「홍시」54~55쪽
“그럼 나도 밖에서 잘란다.”
타협의 여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아버지가 아니라면 한 대 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곤 그만이었다. 아버지는 미련 없이 돌아섰고 정말로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개와 사이좋게 어깨를 맞댄 꼴이 영락없이 노숙자였다. 도저히 이해 못 할 사람이라고 나는 몇 번씩이나 속으로 욕을 했다. 결국 소리 나게 현관문을 닫은 후에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옷을 갈아입고 양치를 하고 몸에 밴 냄새를 닦아내면서부터는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욕들을 삼키지 않고 내뱉었다. 딱히 아버지에게로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해피를 풀어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_「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해피는」 83쪽
“자니.”
꿈을 꾸듯 그가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의 단면들을 퍼즐 조각처럼 아주 잘게 자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
“…….”
“파인 홈이 맞닿을 때마다 전혀 다른 생각들이 가지를 뻗어나가면 참 재미있을 거야. 퀼트처럼 말이야.”
“가끔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생길지도 몰라.”
“말이 안 되면 어때. 또 그냥 그대로 사는 거지. 왜 계획 없는 여행처럼 말이야. 그때그때 닥치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거야. 버스를 타고 가는데 펑크가 났어. 그럼 걷는 거야. 걷다가 지치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고. 그러다 힘이 나면 다시 걸어. 배가 고프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눈에 띄는 걸 먹고. 재수 없어서 배탈이 나면 병원에 갈 수도 있고, 가게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움켜잡고 한없이 앉아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러다 심심하면 다시 걸어. 걷는데 저쪽에서 버스가 오면 올라타. 올라탔는데 아까 탔던 버스의 승객들이 이번에는 다 이 버스에 있는 거야. 분명히 행선지가 다른데. 그런데 또 펑크가 나. 문득 시계를 봤는데 아까 펑크가 났던 시간에서 멈추어 있는 거야. 그럼 생각하겠지. 어떤 시간이 진짜이고 어떤 시간이 가짜일까.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어이가 없어 하품이 날 지경이었다. 이따위 생각들을 하느라 잠도 못 자고 바닥이 꺼지도록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단 말인가. _「퀼트, 퀼트」 98~99쪽
출판사 서평
누군가에겐 안식처 그러나 누군가에겐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일 가족!
누구나 꿈꾸는 가정, 가족 그 이상향의 판타지에 갇힌 채
봉인되어버린 현세대에 던지는 열 편의 가족 서사
서정적인 문체로 일상의 이면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작가 양선미의 두 번째 소설집 『퀼트, 퀼트』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199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차를 타고 안개 속으로」를 발표하며 등단한 작가가 2003년 첫 소설집 『맛동산 리시브』 이후 11년 만에 펴낸 작품으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발표한 10편의 단편을 엮었다.
첫 장편소설 『문주』와 『맛동산 리시브』를 세상에 내보낸 이후 문득 소설 쓰기에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이번 소설집에서 섬세하게 조탁한 일상 언어를 풀어내는 오랜 시간 숙성된 글쓰기로 양선미만의 가족 서사극을 펼친다.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일상 이면을 꿰뚫어 보는 시선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표제작 「퀼트, 퀼트」는 억압된 기억과 해묵은 상처들이 조각조각 덧대어진 어두운 색조의 퀼트를 상징하며 소설집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내면에 간직한 어른들의 성장기
『퀼트, 퀼트』는 여성적이고 섬세한 글쓰기 속에 일상의 이면에 숨겨진 위태로운 세계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 가족은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아픈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을 잊고 싶어 하지만,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려다 교통사고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는 「조서」에서 은수가 말하듯이 모든 게 예정된 퍼즐과 같은 판에서 절대 도망칠 수 없다.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해피는」의 문자처럼 설령 자신의 분신이자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던 진돗개 해피를 도망치게 해도 아버지는 다시 다른 개를 데려올 뿐이다.
폭력적인 아버지들, 육아의 두려움에 아이를 버린 어머니들, 그런 부모를 미워하지만 그 그늘 안에 살고 있는 이들…… 양선미의 가족 서사는 육체적으론 다 자란 어른이지만 내면에는 상처 받은 아이가 존재하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화목한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꼬집는다. 그런 주인공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계기는 가족 구성원 간의 화해나 용서가 아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엄마에게 버려진 「산책 일기」의 ‘나’가 엄마의 임종을 끝내 보지 않고 홀로 오래오래 살아남기 위해 힘겨운 산책길에 나서듯이, 가족을 벗어날 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주제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박진에 따르면 “세상이 험하고 삶이 가파를수록 모든 것을 품어 안는 가족의 울타리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현실의 고통과 사회적 모순들을 은폐하고 독자에게 거짓 위로를 제공함으로써 만족감을”(「해설」 284쪽) 주는 소설들의 유혹에 양선미는 단호히 거부한다. 나아가 이런 양선미 작품을 읽는 일은 “우리 안의 버려진 아이, 또는 상처 받은 채 자라지 못한 영혼의 부분과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다”(「해설」 276쪽)고 평한다.
공동체의 이데올로기와 기억의 허약성을 파헤치는 풍자극
그러나 소설집은 깊숙이 뿌리내린 화목한 가정에 대한 동경과 관념을 떨치고 개인으로서 자립해내기가 쉽지 않음을, 자신만의 행복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서도 보여준다.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라보, 스위트 홈」의 명옥과 남편 세헌이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부담 속에 진실로부터 눈을 돌리듯이 말이다.
우리 사회 공동체의 속성을 낱낱이 드러내는 한 편의 풍자극인 「풍경의 안쪽」에서도 떨칠 수 없는 타인의 시선은 뚜렷이 존재한다. 장미빌라에서 로즈빌로 이름을 바꾼 빌라의 품격을 높여줌과 동시에 빌라를 사람 냄새가 사라진 삭막한 곳으로 만들어버린 ‘감시카메라’.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설치한 감시카메라의 렌즈는 공포스럽고, 타인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관음적 욕망은 오히려 그들을 불편하게 한다.
표제작 「퀼트, 퀼트」를 통해 독자들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 즉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믿었던 진실들과 그 이데올로기의 허약성을 엿볼 수 있다. 기억이란 소재를 다루는 「퀼트, 퀼트」의 주헌이 생각의 단면들을 퍼즐 조각처럼 잘게 잘라 전혀 다른 생각들이 가지를 뻗어나가도록 퀼트로 시간의 단층들을 조각하여 상상하는 장면은, 이데올로기의 허약성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면서 그것을 깨뜨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각 인물들의 바람을 그려낸다.
책속으로 추가
감시카메라의 설치는 대성공이었다. 504호의 말마따나 로즈빌의 시세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하루하루 신기록을 갱신했다. 읍내의 평균 상승률은 따돌린 지 벌써 오래였고 마지막으로 로즈빌에 안착한 401호의 경우에는 불과 6개월 만에 두 배의 차익을 실현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로즈빌을 찾았다. 그러나 상승 기세에 놀란 주민들이 더 큰 차익을 예상하고 내놓았던 매물마저 다시 거둬들였기 때문에 여전히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로즈빌은 점점 더 한가로워졌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거지가 한결 쾌적해진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주민들은 빌라 주변을 걷거나 계단을 오를 때, 문득문득 근원을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감정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건 심심하달 수도 있고 섭섭하달 수도 있는, 어쩌면 허전하달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셋 다 아닐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주민들은 몸 한구석 어디에선가 느껴지는 가려움의 부위를 찾지 못해 애쓰는 사람들처럼 가끔씩 어깨를 으쓱대거나 고개를 흔들거나 공연히 옆구리를 긁어대며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다. 물론 호기심 강한 누군가는 원인을 알아내려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어느 날 오후, 603호가 8개월 된 딸의 가슴을 다독거리다가 문득 아기를 재우는 일이 이전과 달리 매우 수월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동시에 점심때만 되면 나타나 대책 없이 확성기의 볼륨을 높이던 생선 장수가 무슨 이유에선지 이즈음 통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그 역시 낯선 느낌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6월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에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 사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노여움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모처럼의 이야깃거리에 대한 흥미의 표현일지도 몰랐다. _「풍경의 안쪽」 202~203쪽
김 선생의 시선이 여자의 오른쪽 주머니에 와 닿았다. 여자는 서둘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휴대전화를 잡았다. 간헐적으로 요동치던 진동이 이내 멈추었다.
“제발 조심 좀 해. 한 생명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네 아기 같으면 이렇게 내동댕이치겠어?”
손에 달라붙은 알들을 신경질적으로 떼어내며 김 선생은 다시 한 번 화를 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대체 무슨 일은 할 수 있겠냐, 라고 말할 때의 그는 분명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말을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에 띄게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아무튼 조심하라는 말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틀림이 없었다. 그는 상식적인 사람이었지만 남의 상처를 덧나게 할 정도로 악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은 계속되었다. 강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연어를 암컷과 수컷으로 분리했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배를 갈랐다.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 옆에 서서 여전히 알을 향해 수컷의 정자를 쏘아댔다. 여자는 바닥에 놓여 있던 호스를 들어 조금씩 물을 흘려보냈다. 붉은 모래처럼 박혀 있던 알들은 작은 물살에도 쉽게 쓸려나갔다. _「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231~232쪽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던 소리는 빠르게 명옥에게까지 전해져왔다. 집 안의 모든 문이 열린 듯 요란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냉기가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지만 명옥은 침대에 누운 채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해가 뜨는지 방 안의 물건들이 서서히 제 몸을 드러냈다. 손을 뻗어보았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번이었다.
(……) 딴엔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던지 세헌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명옥은 잔뜩 부푼 배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이라도 빵, 터지면 매직풍선에서처럼 퍼즐 하나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스위트 홈을 완성시키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 코트를 입으며 명옥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보풀 같은 눈들이 온통 도시를 덮고 있었다. _「브라보, 스위트 홈」 271~273쪽
기본정보
ISBN | 9788972757009 |
---|---|
발행(출시)일자 | 2014년 06월 20일 |
쪽수 | 292쪽 |
크기 |
145 * 207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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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가 양선미가 말하는 가족, 엄마의 이미지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가족은 폭력의 근원이다. 두려움과 공포의 온상이다. 엄마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떠오르는 대신 미움이, 분노와 증오가 퍼져 흐른다.
얼마 전에 권비영 작가의 <은주>를 읽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가정 폭력에 관한 소설이었다. 가정 폭력에 관한 글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가정이 여기저기 많이 깨져있다는, 또한 수많은 가정이 해체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런 시대적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권비영 작가는 <은주>에서 가족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10편의 단편 속에서 가족에 대한 말한 양선미 작가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냉정하게 현실의 상황을 묘사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언뜻 언뜻 작가의 마음을 내비치며 희망의 햇살을 살며시 보여준다. 홍시를 양 손에 들고 웃는 손자의 사진을 보며 억척스레 홍시를 모은 할아버지 마음을 알게 된 <홍시>의 영우가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안도감이나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에서 여인이 찜질방에서 알게 된 아이가 있는 바다를 향해 서둘러 걸어가는 모습, <물고기들>의 주인공 인숙이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며 어머니의 흔적을 지우는 장면 등에서 자신을 얽어매고 고통스럽게 했던 가족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은주>에서처럼 이들도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고통의 굴레를 벗어난다.
그렇지만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는 그렇게 쉽게 치유되는 상처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조서>에서 나오는 이은수가 아버지를 보자마자 현실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환각 속에 빠지는 모습은 가정 폭력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또한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해피는>의 문자 역시 엄마에게 또한 기르는 개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만큼 가정 폭력의 그늘은 넓고 깊게 드리워져 있어서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다.
한 아이의 아빠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았는지,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예기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는지? 행복한 가정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수없이 많은 생각 속에서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이 책은 사실 내가 퀼트를 혼자서 하고 있는터라 제목에 먼저 땡기는 책이었다. ^^ 총 10편의 단편으로 묶여진 책으로서의 소시민들이 누구나 겪을만한 이야기들, 우리네 아픈 이야기들이 고스란이 담겨져있는 이야기들로 10편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야기는 짧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아픔,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해서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아리는 증상이 생기는 듯했다.
첫번째 글 조서는 우연잖게 자신이 하지 않은 교통사고에 경찰서에서 조서를 쓰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지금 현실을 생각하면서 왜 자신에게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되짚어보면서 이야기는 전개되고 이야기의 말미에는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주인공이 가해자가 아님이 밝혀지고 주인공은 그 교통사고 피해자가 자신이 그 토록 싫어하고 미워했던 아버지였음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리고 책 제목의 퀼트,퀼트 단편은 기억의 조각 조각을 잇는다는 제목으로서 사촌 동생의 결혼식을 가면서 과거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이 이야기는 하나하나 풀어진다. 사촌동생이 마흔이 넘어서 하는 결혼은 첫번째 결혼이 아닌 과거 사촌동생의 또하나의 아픈 사랑과, 슬픔에 대해서 주인공은 생각하면서 그의 결혼식에 가서 사촌이 이제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물고기들'에서는 인숙이라는 주인공이 10대인 미혼모인 아이를 통영의 미혼모보호소에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통영은 인숙의 이야기가 있는곳이기도 하다. 미혼모인 그 아이는 내내 인숙에게 협조를 하지 않지만 인숙은 그런 아이에게 내내 그저 그 아이를 마중나올 간사에게 그 아이를 인계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그 아이와 동행한다. 그 미혼모인 아이의 집안사정과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까지 그토록 반항어린 모습을 보이는 그 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어린시절 자신의 집안과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아이를 이해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또 다른 적개심으로 자신 또한 가득차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인숙은 미혼모인 아이를 마중나올 간사와 통화가 되지 않자. 인숙은 그 시간을 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여태껏 가지고 있었던 장막을 그 아이를 통해서 서서히 깨뜨려가는 과정을 시작하게 됨으로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풍경의 안쪽'은 장미연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반상회를 하면서 요즘 아파트이름을 요즘 추세에 따라서 이름을 '로즈빌'로 바꾸기로 하고 그리고 아파트 cctv설치등 아파트의 값을 올리고 쾌적한 아파트를 만들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등이 고스란히 이 이야기에서는 나온다. 우리들과 매한가지 아니 그대로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이야기에서 아파트에서 cctv 가 설치되면서 보이기 싫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들어남으로해서 그곳의 사는 주민들의 뒤틀려진 모습이 담긴 cctv의 장단점으로 이야기하면서 겉으로는 편안한 그속의 모습이 또 한편으로는 일그러져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이 책속의 단편단편들이 우리주위에 아니 우리의 모습인것을 보여줌으로써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때로는 아픔을 가지고 때르는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소시민적인 삶들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어서 한편한편을 너무나 재미나게 읽었다.
그리고 이 한편한편이 요즘도 하는지 모르지만 드라마게임 같은 드라마의 소재로 나와도 재미있을듯 싶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듯 해서 가슴한켠을 허하게도 하고 때로는 반성하게도 하고 때로는 분개하게 하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속에서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허한 마음들을 이 일상의 이야기들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한번 찾아보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