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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에 앉다

장인수 시집
시인세계 시인선 27
장인수 저자(글)
문학세계사 · 2017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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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수 시집 『적멸에 앉다』는 평생 흙투성이 농군으로 일해온 한 농부의 필생의 모습이 담겨 있고, 이런 아버지의 한 생을 눈에 담아서 시를 쓴 아들의 사부곡이 담겨 있다.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아버지에겐 농로의 나무 밑에서 쉴 수 있는 나무 그늘마저도 적멸의 공간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언어는 농사꾼의 언어인데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자갈 같은 언어요, 패랭이꽃 같은 언어들이다. 풀의 언어요 가축의 언어다. 코스모스와 놀란 흙과 풀냄새가 있는 곳이면 아버지의 언어가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장인수

장인수

저자 장인수는 2003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으로 『유리창』, 『온순한 뿔』, 『교실-소리 질러』가 있고, 교양서로 『창의적 질문법』이 있다. 현재 중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작가의 말

팥꽃을 팥꽃의 높이에서 보면 들판의 팥꽃이 두타산 꼭대기에 피고, 구름 위에서 피기도 해.
고추를 딸 때 밭고랑에 쭈그리고 앉아서 보면 고추가 부처님으로 보여.
구절초를 구절초의 높이에서 보면 별처럼 보여.
나무에 달린 사과의 높이에서 사과를 바라보면 합장이 절로 나와.
사람은 늘 자신의 고정된 눈높이가 있지.
나의 눈높이보다는 상대방의 높이에 내 눈썹을 맞추면 순식간에 새 세상이 보인다는 아버지 말씀.
감자를 캘 때 흙속에 손을 쑥 집어넣으시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2017년 10월
장인수

목차

  • 1 적멸에 앉다
    적멸에 앉다 _______ 10
    친구 _______ 11
    소 떼 _______ 12
    가지 비빔밥 _______ 13
    아버지 옆에 가만히 눕다 _______ 14
    당당하게 쏘다니자 _______ 16
    아버지의 등 _______ 17
    초승달 _______ 18
    아버지 밭 _______ 19
    아버지의 집 _______ 20
    노을이 소 등을 덮다 _______ 21
    아버지의 눈 _______ 22
    아버지의 허리 _______ 23
    아버지의 냄새 _______ 24
    책가방은 멀쩡하네 _______ 25
    나무 그늘 속에 극락보전이 있다 _______ 26

    2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
    하늘 밭 _______ 28
    풀 냄새 _______ 29
    힘겨루기 _______ 30
    놀란흙 _______ 32
    소는 혀가 아름답다 _______ 33
    살얼음 _______ 34
    다림질 _______ 35
    구두 _______ 36
    눈꼽재기창 _______ 37
    마당 풍경 _______ 38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 ______ 39
    뿌리 _______ 40
    엄마는 꽃의 삶을 산다 _______ 41
    돼지국밥 _______ 42
    얼큰 멸치 칼국수 _____ 43
    생닭장수 _______ 44

    3 음악으로 목욕을 한다
    함께 잡니다 _______ 48
    손길 _______ 50
    독감의 유혹 _______ 52
    예수님이 섹시해 보이네 _______ 54
    웃음의 물살 _______ 56
    젖꼭지 수업 _______ 57
    음악으로 알몸 목욕을 합니다 _______ 58
    아랫도리의 무량사無量寺 _______ 59
    팬티 속은 예배당입니다 _______ 60
    갯벌의 욕정 _______ 61
    찰나의 미학 _______ 62
    해바라기 사원 _______ 64
    스침의 충만 _______ 66
    귀두는 제 3의 눈동자입니다 _______ 68
    스님! 노여움을 푸세요 _______ 70

    4 성경 구절 같은 칼국수를 먹는다
    초짜 선생 _______ 72
    지구의 모텔 _______ 74
    몸, 최고 달아 _______ 75
    천 원짜리 식사 _______ 76
    397세의 우정 _______ 78
    노량진역의 폭설 _______ 80
    각설이의 땀 _______ 82
    취미 여덟 가지 _______ 84
    성경 구절 같은 칼국수를 먹는다 _______ 86
    바다가 정말 싫다 _______ 88
    갯벌에 합장을 하였다 _______ 89
    코스모스의 중심 _______ 90
    우리 가족은 미쳤습니다 _______ 91
    옆구리 _______ 92
    노을과 초승달 _______ 93
    흙덩어리 _______ 94

    | 해설 | 기혁(시인 문학평론가)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의 카니발을 꿈꾸는 아비들의 연대기_______ 95

출판사 서평

흙과 바람과 자연의 섭리와 함께 농사짓는 아버지
생명을 얻고 적멸 또한 얻었던 아버지의 초상화
평생 농부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시로 그린 시인 아들의 사부곡

1. 흙의 즐거움과 연민으로 가득한 우리 시대 새로운 농부 아버지의 모습


장인수 시집 『적멸에 앉다』는 평생 흙투성이 농군으로 일해온 한 농부의 필생의 모습이 담겨 있고, 이런 아버지의 한 생을 눈에 담아서 시를 쓴 아들의 사부곡이 담겨 있다.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아버지에겐 농로의 나무 밑에서 쉴 수 있는 나무 그늘마저도 적멸의 공간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언어는 농사꾼의 언어인데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자갈 같은 언어요, 패랭이꽃 같은 언어들이다. 풀의 언어요 가축의 언어다. 코스모스와 놀란 흙과 풀냄새가 있는 곳이면 아버지의 언어가 있다.(「코스모스의 중심」, 「놀란흙」, 「풀냄새」 등), 갯벌의 온갖 생명체에게 경배를 하고(「갯벌에 합장을 하다」), 소와 염소에게 감격과 감탄을 하고(「소떼」, 「아버지의 등」, 「소는 혀가 아름답다」, 「노을이 소 등을 덮다」 등), 비오는 날 마당의 물주름을 타고 넘는 미꾸라지(「마당 풍경」)의 카니발이 펼쳐진다. 아버지는 흙과 바람과 감자와 개와 돼지와 소와 호박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 식물과 가축의 언어와 감정을 잘 해독한다. 해독할 수 없는 동식물의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관심과 관찰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농사의 핵심은 사람이 먹는 것을 길러내는 것이지만 사람을 살리면서 동시에 흙을 살리고, 돼지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살리는 일이어야 한다. 인문학은 사람을 위한,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 중심의 학문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사람 중심을 버리는 탈여토, 리좀의 학문이기도 하다.
시집 『적멸에 앉다』에서는 아들과 카니발을 벌이는 부성(父性)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전의 유형들과는 변별성이 확보된다. 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폭군, 노름꾼, 알코올 중독자, 난봉꾼, 막노동꾼, 실패한 혁명가(지식인) 등으로 표상되는 문학 속 아버지들은 스스로의 부재를 은폐하기 위해 끊임없는 방황의 길로 들어서서 체제의 언저리를 배회해왔다. 반면 『적멸에 앉다』라는 시집에서는 서로 다른 재료들을 너무 삶아 “자주빛 곤죽이 되”(「가지 비빔밥」)어버린 아버지의 가지 조리법이 마침내 허기를 잊게 하고 막걸리의 취기를 부르는 것처럼, 시인에게 아버지의 정신과 육체는 권력과 권위와 그러한 사회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기존의 윤리(금기)마저 무화시키는 카니발의 장소로써 인식된다. 그것은 곧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서도, 현실의 일탈(불온성)을 놀이와 웃음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동인으로써 포착되는 아버지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축제의 정점에서 우리는 가부장적 사회를 지탱시켜 온 ‘남성의 몸’까지도 되짚어볼 수 있다. 아버지는 급기야 아들 친구와 친구되기를 시도하면서 아들 친구와 반말을 트고 함께 들판에 퍼질러 앉아 막걸리를 나누어 마신다.(「친구」)

2. 언어 미학 속에 녹아 있는 지적으로 통제된 서정 그리고 평화와 소통의 이미지

자전거에/ 막걸리 한 병/ 비닐포대 두 개/ 낫 한 자루/ 된장 한 식기/ 꼭꼭 동여매고/ 밭에 가서/ 고추, 고구마, 열무, 참깨랑 어울리다가/ 출출함이 찾아오면/ 밭가 그늘의 적멸에 털푸덕 앉아서/ 막걸리를 몇 잔 마시는 거라/ 알타리 무를 쑥 뽑아/ 낫으로 껍질을 설겅설겅 친 후/ 깨물어먹는 거라/ 나무 그늘의 품은 잠시나마/ 별서(別墅)이며/ 적멸보궁인 거라
- 「적멸에 앉다」 전문

표제시격인 「적멸에 앉다」에서 드러나다시피, 근대화 이후 사라저가는 농촌의 풍경은 ‘지금, 여기’의 삶에서 떨어져 있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변하지 않는 일체감의 대상이 된다. “적멸”의 순간을 기다리는 위태로운 풍경은 시인에 의해 죽음이 아닌 (도시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동력으로 전환되고, 나아가 근대의 균열을 극복하기 위한 믿음의 장소, 즉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같이 실재하는 세계의 일부분으로 현현(epiphany)하는 것이다. “자전거”, “막걸리”, “비닐포대”, “낫”, “된장”, “고추”, “고구마”, “열무”, “참깨” 등의 시어들은 낯익은 농촌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상투적으로 동원된 것에 불과하지만, 일체감에 대한 “출출함이 찾아오는” 순간, 비로소 욕망의 대상이 되어 시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시집 『적멸에 앉다』는 서정적 화해를 위한 실존적 운동이 작품마다 작동하고 있다. 그의 시는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치는 갈등, 분열, 대립, 저항, 부조리, 환멸 등을 부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일성(일체감)의 시학’이라는 서정시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모색한다. 그런데 그의 시는 1인칭으로 향유되는 서정시의 원리에서 벗어나 있다. 1인칭은 쉽게 등장하지 않는다. 집요하게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하거나, 주변의 인물이나 동식물의 시선을 등장시킨다. 눈높이를 1인칭인 시인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높이에 맞추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말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중요한 것은 “고추를 딸 때 밭고랑에 쭈그리고 앉아서 보면 고추가 부처님으로 보인다”는 사후적인 결과가 아니라, “사람은 늘 자신의 고정된 눈높이가 있다”는 자명한 사실로부터 “나의 눈높이보다는 상대방의 높이에 내 눈썹을 맞추면 순식간에 새 세상이 보인다”는 사실을 인지한 자의 ‘운동(위치) 에너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시선, 새로운 인식, 새로운 각도, 시적 화자의 새로운 위치가 신선하게 드러난다.

장인수의 시집 『적멸에 앉다』에서 적멸은 주로 나무 그늘 속이다. 적멸보궁, 묘토(妙土), 정토(淨土), 청정토(淸淨土)의 공간은 주로 아버지와 엄마가 고된 노동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어가는 나무 그늘이다. 일을 하면서 바가지를 엎어놓고 짓밟아 깨부술 듯이 싸우다가도 나무 그늘 속에 들어가면 평화롭고 온순해진다.(「적멸에 앉다」, 「나무 그늘 속에 극락보전이 있다」) 또는 적멸보궁은 눈꼽재기창으로 내다보는 마당이거나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천하를 천하로서 감싼다)’처럼 폭설이 쏟아지는 마당이다.(「눈꼽재기창」,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 우리 주변의 가장 낮은 곳, 하찮은 곳에 적멸보궁과 정토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나 깨달음이 잘 드러난 시집이다.
장인수 시인은 2003년 시 전문지 《시인세계》의 신인작품 공모 당선으로 등단하여 심사위원 황동규, 김종해, 김승희 시인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시인이기도 하다. 장인수의 첫 시집 『유리창』(문학세계사, 2006), 두 번째 시집 『온순한 뿔』(황금알, 2009),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시집 『적멸에 앉다』에 이르기까지, 장인수 시인의 시에는 레토릭이 과하지 않을 만큼 일관된 시적 지향이 드러난다. 꾸밈없는 언어들과 일상적인 경험들, 일원론적 자연관, 고향을 배경으로 한 가족서사 등은 장인수의 시집 전편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들이고, 이는 곧 균열된 세계와 갈등하기보다 자아와 세계의 일치점을 모색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리를 펴 뒤로 젖히고/ 우두커니 서서/ 사방팔방을 둘러본다/ 노을 빛깔, 야생화 빛깔, 물빛 빛깔, 구름 색깔, 여치와/ 백로와 제비들의 색깔이/ 헤실바실/ 넘실거린다/ 들깨, 참깨, 콩, 팥, 마, 감자, 고추, 배추, 호박, 가지들을/ 밭에만 심는 것이 아니다/ 구름 속에도 심고, 노을 속에도 심고, 바람 속에도 심는 것/ 허리를 펴고 잠시/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색소를 만들고, 향기를 풍기는/ 색깔의 세상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 「아버지의 허리」 전문

하얗게 함박눈이 내리는 마당은/ 잠실蠶室, 누에방이다./ 누에방에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비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누에가 뽕잎을 먹을 때 내는 소리는/ 콩밭에 가랑비 내리는 소리/ 굵은 빗방울이 연잎에 듣는 소리/ 포목점에서 비단 찢는 소리/ 녹두알만한 누에똥이 후두기는 소리는/ 댓잎파리에 싸락눈 뿌리는 소리/ 섶에 올라 제 입의 명주실을 뽑아/ 하얀 고치의 적멸보궁을 짓는 소리는/ 끝없는 정적으로 들어가는 소리/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
- 「눈이 오는 날은 그런 소리가 다 보인다」 전문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70758671
발행(출시)일자 2017년 10월 30일
쪽수 126쪽
크기
125 * 209 * 10 mm / 191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시인세계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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