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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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27)
작가정보
작가의 말
내 첫울음의 입김과
당신 마지막 눈빛의 흐느낌은
언젠가
한 봉분 위
아지랑이로 만날 것이다 다만
즐거운 거짓말로 쓴 나의 시들이
부디
명랑한 죽음에 가닿을 수 있기를,
2017년 2월
임 창 아
목차
- 1 밀가루는 밀가루를 털어 내기 바빴고
어떤 일의 순서 _______ 10
자라나는 용서 _______ 12
밀가루는 밀가루를 털어내기 바빴고 _______ 14
그녀의 웃음 _______ 16
스물 _______ 18
떨림의 뒤편 _______ 20
살아 있는 공 _______ 22
알 수 없는 기분 _______ 23
남해 _______ 24
딸꾹질을 하자 _______26
오후의 콜라보 _______ 28
묵밥 _______ 29
주름잡던 시절 _______ 30
왕년의 힘 _______ 32
편두통이 찾아왔다 _______ 34
2 나를 함부로 탐독하지 마라
추상화에 대한 보고 _______ 38
토성 _______ 40
관심 밖에 있는 사람 _______ 41
벽 _______ 42
열두 번째 슬픔 _______ 43
당신의 목을 조르기엔 너무 약하고 _______ 44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맛이다 _______ 46
더 이상 그것을 중심이라 부를 수 없을 때 _______ 48
낱말의 표정 _______ 50
나를 함부로 탐독하지 마라 _______ 52
쌀이 물 먹는 소리 _______ 54
자꾸 욕하고 싶어진다 _______ 56
하빈 _______ 58
오후에 사랑하는 것들 _______ 59
옆구리는 옆구리가 아니다 _______ 60
그 남자의 식사 _______ 62
오월 _______ 64
질문들 _______ 65
3 혼자,라고 말하면
에덴 _______ 68
어디로 갔나 _______ 69
관심법 _______ 70
밤 _______ 72
혼자, 라고 말하면 _______ 74
아주 사소한 병 _______ 76
그믐 _______ 78
체리의 계절 _______ 80
그 일요일을 기억한다 _______ 82
모텔 모로코 _______ 84
막내고모 _______ 86
나를 향해 날아온 시 _______ 88
악몽 _______ 90
서울과 칸나 _______ 92
4 당신이 좋다면 그것으로 됐어요
화장 _______ 94
꽃 피는 폐가 _______ 96
당신이 좋다면 그것으로 됐어요 _______ 98
은행나무 아래서 _______ 100
울산 _______ 102
어제 그리고 어제 _______ 104
돌림과 노래 사이 _______ 105
유월을 기다리는 방 _______ 106
광화문 _______ 108
죽음의 방식 _______ 110
아무 일도 아닌 일 _______ 112
흑백 _______ 114
어제보다 약간 짧은 오늘 _______ 116
당신의 방 _______ 118
털이 하얀 짐승은 _______ 120
선택된 시 _______ 122
□ 해설 | 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
기억, 향수, 시 임창아의 시 세계_______ 125
출판사 서평
향수를 품은 기억의 축제
기억에 의한 기억을 위한 기억의 시!
2009년 계간 《시인세계》로 등단한 임창아의 첫시집은 얼마간의 향수를 품은 기억의 축제가 벌어지는 장이다. 그의 시에서 지난 경험이 남긴 자국과 흔적들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자국과 흔적들이 개인적 기억들을 소환한다. 소환된 기억은 달무리 같이 어슴푸레하게 확장된다. 불확실성을 품은 회색빛 미래에 견줄 때 과거-기억은 더 단순하고 명확하며 빛난다.
미래는 모호하지만 과거-기억은 항상 현실보다 더 찬란하다. 과거-기억들이 실제보다 더 빛나는 것은 뇌가 좋은 기억을 선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대뇌변연계, 그 중에서 특히 감정 기억을 관장하는 편도체 안에서 기억이 세운 과거라는 왕국은 빛난다. 임창아의 시들이 대체로 어두운 가운데 뜻밖의 빛을 품는 것은 과거-기억이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재의 대안에서 촉발된 상상력에 바탕을 둔 까닭이리라.
1. ‘시’, 유일한 파라다이스이자 아름다운 감옥
과거에 사로잡힘, 어제에 대한 동경, 즉 우리 안에 있는 기억의 방은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면서 삶의 안전망을 구축한다. 그것은 고통을 담보한다. 임창아의 시들은 과거의 기억들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를 만드는 힘으로 작동하는지를 보고한다. 많은 시들이 기억의 촉매에 의해 발아하고, 기억의 아득함을 더듬으며, 기억을 위해 봉헌한다. 그런 까닭에 임창아의 시는 기억에 의한, 기억을 위한, 기억의 시들이라 할 만하다. 기억이 발화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기억 때문인데, 이를테면 “콧구멍으로 하얀 바람이 몰아쳤어요 눈꺼풀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조금씩 검정을 지나 흰색으로 가고 있”(「밀가루는 밀가루를 털어내기 바빴고」)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는 이름 없는 태풍이 휘몰아치고 나는/젖몸살로 고압선이 흐르는 자물쇠 푼다”. 결국 “과거는 더 이상 박제된 것이 아니다”(「낱말의 표정」). 박제가 아니라 현재의 힘으로 작동하는 과거를 다시 쓰기, 그게 바로 임창아의 시 쓰기다. 그는 시 쓰기가 파라다이스이자 아름다운 감옥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속이 울렁거린다 저 구불구불한 리듬을 타고/ 가자 내 유일한 파라다이스이자 아름다운 감옥으로”(「선택된 시」).
없던 일로 하자
한 번만 봐 달라, 이제 와서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한 번만 봐 줄 수 없는 일은, 대체
어떻게 자라 어디로 갈까?
오래 달려 온 말에는 오해가 들어있다
발길 끊어진 밭에 제멋대로 자라나는 잡풀처럼,
주인 발소리 오래 듣지 못한 풀은 날마다 발뒤꿈치를 든다
자신이 풀이란 걸 잊은 채,
풀의 말은 풀만 알아듣고
손가락만한 풀잎들은 손가락만한 하늘을 가리고
오래 만난 사람을 어쩐지 오늘은 만나고 싶지 않은 날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려면
얼마나 오래 달려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을 때까지 오래
오래 달렸다 오해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자라나는 용서」 전문
「자라나는 용서」가 노래하는 것은 ‘용서’에 대한 것이지만 이런 사태가 빚어지는 계기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누군가 시의 화자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한다. “이제 와서” 그게 가능한가? 아마 과거의 일이란 ‘말’로 인해 생긴 것이리라. 그런데 그 ‘말’은 고착되고 응고된 채 머무는 게 아니라 자라난다. 그 ‘말’이 “발길 끊어진 밭에 제멋대로 자라나는 잡풀”이라는 비유를 얻을 때, 그것은 새로운 감각적 명증성을 얻는다. 그리고 “주인 발소리 오래 듣지 못한 풀은 날마다 발뒤꿈치를 든다/자신이 풀이란 걸 잊은 채,”라는 생동감으로 나아가며 생채(生彩)를 띤다.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려면/얼마나 오래 달려야 할까?”라는 물음은 아직 용서를 할 수 없어 유보를 하는데,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 흑백이 되어 버린 과거의 시간
임창아의 어떤 시편들은 노골적으로 과거를 향해 있다. “남해에서 여고 다닐 때”(「어떤 일의 시작」)라거나 “갈래머리 여고시절”(「주름잡던 시절」), 혹은 “셋방 한 칸이 신접살림 전부였을 때”(「서울과 칸나」) 같이 회고조 문장의 시편들은 시의 화자가 지나간 시절, 망각과 기억이 반반 섞인 시간대에 서성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왕년”을 앞세우는 시들은 일종의 시간 거스르기다. 서정시들이 주로 자아의 고백으로 이루어지고, 이때 고백은 지나온 삶의 대한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 그다지 이상할 건 없다. 어쩌면 시인은 너무 일찍 “왕년을 앞세우면 누구나/수탉처럼 용맹하고 유치하고 무모하고……”(「왕년의 힘」)라는 구절이 직설적으로 드러낸 “왕년의 힘”을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 “왕년”이란 지나간 시절이지만, 그것은 과거에서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다. 그래서 시인은 왕년이 “오늘날까지 매일매일 이어져 있다”고 쓰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가 불가피하게 망각으로 기울어진 뒤 많은 것들, 이를테면 추억이나 기억들은 망각의 주변에서 득실거리며 번성한다. 기억과 추억들은 망각의 지층에서 용케도 현재로 싹을 내민 것들이다. 그것들은 언제나 망각의 영토 안에서 편재(偏在)한다. 기억과 망각은 정확하게 삶과 죽음에 대응하고 회통(會通)하는 것이다. “요컨대 망각은 기억의 살아 있는 힘이며, 추억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산물인 것이다.”(막 오제, 『망각의 형태』, 25쪽) 우리의 추억-이미지들은 망각에서 살아 귀환하는 기억들이다. 그것은 삶의 자취들, 무엇보다도 부재의 징표들이다. 우리는 추억과 기억 안에서 산다. 그 기억 속에는 ‘아버지’가 있고,‘막내고모’가 있고, ‘삼촌’이 있으며 신산한 가족사가 있다. 그런데 추억이란 실제 있었던 것의 재현이 아니라 있었다고 믿어지는 기억, 즉 각색된 이야기들이다.
사과를 깎는데
껍질은 갑자기 너에게로 가는 길이 되었어
너에게 쓰는 편지가
어느 순간 나에게 오고 있었어
맨발을 내려다보는데 내 발목에 네 발이 달려 있었어
벗어 놓은 고무신은 화분이 되고 있었어
발을 품었을 때보다
흙을 품었을 때 더 오래
더 멀리 갈 것만 같았어
신발 속에 앉아 생을 망칠 궁리만 하던 스물
발끝에서 뒤꿈치로
개미가 물어 나르는 내용은 뭔지 모르겠어
신발 밖의 세상이 늘 궁금했어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
너를 나라고 생각한 적 있었어
사과의 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에게로 이어져 있었어
툭,
뛰어 내려 잠을 열면
사과는 흑백
검은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스물
―「스물」 전문
「스물」은 사과 깎기에 대한 소소한 경험을 다룬 시다. 사과는 깎이면서 껍질이 갑자기 “너에게로 가는 길”로 변하는 것이다. 이때 ‘너’라는 객체는 “생을 망칠 궁리만 하던 스물”, “검은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스물”의 ‘나’다. 그렇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로 오는 “맨발을 내려다보는데 내 발목에 네 발이 달려 있었어”라는 구절 때문이다. 스물의 나이란 아직 세상을 모르고, 저 바깥세상의 모든 것들에 맹렬한 호기심을 품을 때다. 시인도 그 나이 때 “신발 밖의 세상이 늘 궁금했어”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사과 껍질이 만든 길과 스무 살의 ‘나’에서 오늘의 ‘나’로 이어지는 길은 하나다. 그 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에게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너’는 흑백이 되어버린 과거의 시간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70758466 |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02월 01일 | ||
쪽수 | 144쪽 | ||
크기 |
125 * 209
* 13
mm
/ 45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인세계 시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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