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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

심재휘 저자(글)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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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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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심재휘

심재휘

대진대학교 문예콘텐츠창작학과 교수이다. 1963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1997년 『작가세계』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등이 있다. 현대시동인상, 발견문학상, 김종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 1 바람의 경치 ... 11
    2 폭설 ... 53
    3 쓸쓸한 향기 ... 79

    심재휘의 시세계 ... 109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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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70752693
발행(출시)일자 2002년 11월 27일
쪽수 126쪽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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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 중 10점
이 시집을 모두 읽고 난 뒤의 첫 느낌은 '정말 시를 잘 썼구나'였다. 그리고 이어진 느낌은 '이 시집을 갖고 싶다'와 '오랜 시간 두고 읽어야 겠다'였다. 이 시집은 시인이 걸어온 시간들을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라는데, 아마 나는 시인이 걸어온 삶의 궤적에 많은 공감을 했는가보다. 또한 그의 성찰, 통찰이 자리잡은 곳을 잠시나마 거닐다 왔는가보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을 만나보기로 하자.


씀바귀

봄마다 내 발 밑을
이름도 모르는 저 풀꽃들이
하염없이 맴돌 때에도
나는 바람에 떠밀려 다니기만 했는데
끝내 어두워진 현관에 서서 몸을 털면
오월의 여섯시 같은 것들만 동전처럼
발 아래로 떨어질 뿐이었다
신발 뒤축은 비스듬히 닳아갔다

씀바귀는
국화과의 다년생 풀이름이다
뿌리가 곧고 길어서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
온몸이 쓴 것은 꽃을 피우기 위함이다
그 꽃이 그 꽃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가시論

오늘은 가시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그보다 먼저 식탁에 대해 말하자면
식탁이 네모난 것이나 둥근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알고 계시지요?

아버지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시고 나자
나는 미루나무 식탁 하나를 깎아야 했습니다
아침마다 젖은 몸으로 식탁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 길 걸어 내 식탁에 오른
꽁치 한 마리 낯이 익기도 하였습니다

창 밖 나무의 가지들이 무심한 아침이었는데
가시는 길 잃은 별처럼 내 목 깊숙이 박혀
밥을 밀어 넣어도 거친 생각을 삼켜보아도
두 눈을 말똥거릴 뿐이었습니다

오늘도 내가 문을 나서면
아내는 식탁을 치울 것이고
식기들은 다시 허공에 걸려 달그락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는
오랫동안 내 목구멍에 걸려 까끌거리고 따갑겠지만
그도 삭으면 내 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그 꽃이 씀바귀의 꽃인지,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 쓴 것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을 것이다. 또한 가시라는 것이 까끌거리고 따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삭으면 내 몸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가 않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시인의 작품에 대해 '생에 대한 예의'라고 표현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겸손한 고독에 빠지게 한다고 말한다. 오늘 내가 걸어온 시간들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시인과 함께 말이다. 그럼 절대 쓸쓸하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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