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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해석과 문화적 시선

한국문화사 · 2017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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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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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문화만큼 해석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놀라운 복제 능력과 유통 능력 때문에 해석에 해석이 꼬리를 무는, ‘해석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서로가 서로를 맹렬히 닮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 그 자체보다 문화적 관계에 대한 이해와 윤리적 해석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문화 연구서『차이의 해석과 문화적 시선』의 키워드는 관계로서의 문화이다. 이 책은 20세기 일제 강점기부터 21세기 소비문화 시대까지, 남한에서 북한까지, 서정시에서 만화까지, 담론과 현장에 이르기까지의 연구물들을 ‘문화적 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읽어내고자 하였다. 또한 격랑의 시대,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 역사와 현실을 문화적 관계로 접근했을 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재현되고 구성되는가를 포착하고자 하였다.

작가정보

저자(글) 류종렬

저자 류종렬은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화학부

저자(글) 정훈

저자 정훈은 문학평론가, 부산외국어대학교 만오교양대학

저자(글) 차선일

저자 차선일은 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범아프리카문화연구센터

저자(글) 박형준

저자 박형준은 문학평론가,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화학부

목차

  • 책을 내면서

    제1부 수용과 굴곡

    백석 시의 중국 문화 수용과 문화 의식의 특성 / 박경수
    1. 들머리
    2. 백석의 만주체험 시와 문화론적 접근의 경과
    2. 백석의 중국 문화 수용과 문화 의식의 특성
    4. 마무리

    ‘프란츠 파농 담론’의 한국적 수용 양상 연구 / 차선일
    1. ‘파농 읽기’의 특수성
    2. 1970-80년대 ‘파농 담론’ 수용?민주화 투사로서의 파농
    3. 1990년대 이후 ‘파농 담론’ 수용-탈정치화된 이론가로서의 파농
    4. 도래하지 않은 ‘검은 파농’, 비서구 문학의 연대를 위하여

    이주홍 작품의 화전민과 메아리 모티프의 변모 양상 / 류종렬
    1. 서론
    2. 기행보고문 『산지대 농촌 현장 보고; 비경에 사는 사람들 -갑산, 풍산을 다녀와서』(1941)의 화전민 모티프
    3. 소설 『내 산아』(1943)의 화전민과 메아리 모티프
    4. 동화 『메아리』(1959)의 메아리 모티프
    5. 화전민 모티프와 메아리 모티프의 변모 양상, 결론을 겸하여

    한국문학의 차이니스 디아스포라: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를 중심으로 / 박형준
    1. 들머리: 화교≠차이니스 디아스포라
    2. 타자의 흔적: 한국 근대문학에 재현된 중국인의 형상과 일국적 시좌
    3. 타자의 공간: 차이니스 디아스포라의 귀환 (불)가능성
    4. 타자의 형상: 차이니스 디아스포라에 대한 배타적 시선과 이데올로기
    5. 타자와의 조우: 다른 성장, 경계를 넘어선 만남의 가능성
    6. 마무리: 차이니스 디아스포라 문학 연구의 한계와 과제

    제2부 시선과 재현

    현대시에 투영된 이방인과 다문화 / 고봉준
    1. 다문화 담론과 이동의 시대
    2. 하위주체와 재현의 불가능성
    3. 이주자, 현대 세계의 호모 사케르: 하종오의 시편들
    4. 노동의 세계적 이동과 다문화적 인류의 탄생
    5. 다문화 담론의 문제점들

    명령하는 아버지 응답하는 아들; 유아적 노년의 로컬 부산: 영화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 권유리야
    1. 머리말
    2. 피난지에 할당된 공공성의 폭력
    3. 실체 없는 존재의 과시적 상징 부산
    4. 강요된 무시간성 부산
    5. 유아적 노년의 부산
    6. 맺음말

    1960년대 ‘동래 금강공원’의 로컬리티: 향파 이주홍과 요산 김정한의 소설을 중심으로 / 박형준
    1. 소설이라는 렌즈와 ‘동래 금강공원’
    2. 정양 공간의 탄생: 금강공원의 역사적 내력
    3. 순수한 것의 오염과 파탄 난 사랑/예술: 향파의 『동래금강원』
    4. 도시 개발의 내적 논리와 내쫓긴 자들의 부서진 삶: 요산의 『굴살이』
    5. 공간의 사고: 셈 바깥의 존재/자리를 위하여

    시선의 정치 -이주홍의 일제 말기 일문(日文) 만화 연구 / 류종렬
    1. 서론
    2. 만문 만화
    3. 본문 만화
    4. 속표지 만화
    5. 결론

    제3부 정념과 사상

    김애란 소설에 나타난 친밀감의 착시와 연극적 가족진리 / 권유리야
    1. 머리말
    2. 죽은 이웃으로서의 가족
    3. 이방인의 번역불가능성과 존재론적 지위
    4. 가족페티시즘과 연극가족
    5. 맺음말

    정지용 초기 시의 일본 근대문화 수용과 문화 의식 / 박경수
    1. 들머리
    2. 『카페?프란스』: 카페, 소외된 주체의 욕망과 정체성의 인식 공간
    3. 『파충류동물』: 기차, 배제와 동화의 이중심리와 부조화의 문화 의식
    4. 『황마차』: 도시, 왜소화된 주체와 위압적 시공으로부터의 탈주
    5. 마무리

    ‘남조선 사상’으로 본 민족미학의 방향: 김지하 미학의 경우 / 정훈
    1. 들어가며
    2. 김지하의 ‘남조선 사상’ 해석과 그 의미
    3. 남조선 사상과 미적 개념으로서의 ‘그늘’의 상관성
    4. 남조선 사상과 민족미학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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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백석 시의 중국 문화 수용과 문화 의식의 특성
박경수

1. 들머리

이 글은 일제강점기 동안 중국에 일시 체류 또는 거주한 바 있는 시인들 중에서 특별히 중국 문화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시 작품들을 상당수 남긴 백석(1912?1995)의 시를 주목하되, 그의 시 작품 분석을 통해 백석이 중국 문화를 어떠한 시각과 태도로 수용하고 있는지 그 특성을 밝히고, 나아가서 중국 문화의 수용과 관련된 백석의 문화 의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은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중국과의 많은 인적 교류를 통해 상호 문화를 수용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인식을 심화, 확대해 왔다. 특히 전통사회에서 한국과 중국의 상호 문화에 대한 수용과 인식은 주로 사행(使行)이란 공적 과정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런 과정에서 남겨진 수많은 사행 기록들과 사행가사들은 매우 주목되는 문학유산이자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근대계몽기 이후,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중국을 비롯한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문화 교류와 수용은 국권을 상실한 상황이었던 만큼 공적 차원보다는 유학이나 이주 등을 통해 사적인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바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의 문학인들이 중국이나 일본의 이문화를 체험하고 이를 토대로 쓴 문학작품들을 여러 문학 갈래에 걸쳐 남겨 놓았다. 이 글에서 백석의 시에 대해 갖는 관심은 바로 해외 이문화를 수용한 일련의 문학작품들에 관한 관심의 일단을 초점화한 것으로, 백석의 시를 통해 백석의 중국 문화 수용의 특성을 파악하는 동시에, 백석의 중국 문화 수용에 따른 문화 의식이 당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며, 나아가서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 것인지를 파악해 보고자 한 것이다.
이 글은 백석의 시 작품들 중에서도 ‘만주체험 시’ 작품들을 주목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백석은 1939년 조선일보사 기자로 있으면서 만주 안동(安東, 현 丹東)을 여행한 후 만주의 이국적인 풍물을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 『안동(安東)』을 썼다. 그 이후 백석은 조선일보사의 기자직을 사임하고 1940년 1월경 만주 신경(新京, 현 長春)으로 가서 1945년 해방 때까지 체류했다. 이 만주 체류 기간에 10편의 시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이들 중 『수박씨, 호박씨』, 『조당(?塘)에서』,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귀농(歸農)』 4편은 중국인과 중국의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인의 독특한 주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같은 시기에 만주에 체류했던 박팔양, 유치환, 김조규 등의 만주체험 시와 백석의 시가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는지, 또는 백석 이전에 상해체험을 통해 중국의 이문화를 수용한 주요한의 시 등과는 어떤 점에서 차이를 가지는지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지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향후의 과제로 삼고자 한다.
백석의 시에 나타난 중국 문화 체험의 형상화 방식 차이는 기본적으로 시적 주체의 문화 수용 관점과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주체의 문화 의식은 타자의 문화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주체의 동일화 의식을 형성한다. 여기에 동일자와 타자의 관계에 대해서 동일자의 의식이 ‘타자의 덕분’에 의해 형성된다는 데콩브의 논의나 “동일자는 타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만 동일자이다”와 같은 데리다의 견해, 그리고 주체가 거울 단계를 벗어나 상징적 단계로 진입하면서 주체의 “욕망은 타자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망이 된다”라는 라캉의 진술은 주체의 의식이 타자화된 주체의 무의식으로부터 형성된다는 데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리고 ‘나’, 즉 주체가 타자를 통해서 드러나고, 주체의 인식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행위들이 타자에 대한 의식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바흐친의 대화이론도 이 글의 입론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물론 이들 이론들의 입론과 목적은 서로 다른 철학적 기반을 가지는 것으로 본고에서 진행하는 백석의 문화 의식 구명을 위한 이론적 기반으로 직접 활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주체의 의식 특성이 ‘타자’로서의 중국 문화, 그리고 또 다른 ‘타자’로서 기능하는 일제의 만주국 식민 정책에 이중으로 영향을 받는 가운데 점차 분명하게 정립된다는 측면에서 유용한 입론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았다.

출판사 서평

[머리말]

관계는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다. 사실 애초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누구’이었다거나 하는 자연적인 관계는 없다. 상대를 해석하는 바로 그 순간, 관계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해석을 통해서 무의미하게 던져져 있던 점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해석을 통해서 특별한 의미로 매듭지어지면서 의미 있게 서로를 결박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해석의 결과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금 문화만큼 해석의 문제가 중요한 사회는 찾기 어렵다. 시대의 주도권은 이미 디지털로 넘어갔다. 디지털 세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문과 같아서 해석에 해석이 꼬리를 무는 해석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엄밀하게 말하면, 디지털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해석의 속성은 소문의 속성과 여러모로 닮았다. 소문은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쉽게 변하는 복수성을 갖는다. 누가 그렇게 말하더라, 하는 식의 여러 개의 입이 소리 없이 끼어들면서 소문은 늘 복수의 이야기가 된다. 해석을 해석하는 것이 소문의 속성이다.
디지털의 가공할 만한 복제와 유통 능력으로 여기에 연루된 대단히 복잡다단한 관계의 선들은 해석을 해석하고, 또 해석하면서, 문화 텍스트는 마치 소문처럼 수많은 해석‘들’을 만들어낸다.
소문이 이렇게 단독 주체가 없는 간접서사인 것처럼, 왕성한 복제능력을 가진 문화 역시 단독 주체가 없는 간접서사이다. 달리 말하면, 문화야말로 그 어느 분야보다도 해석의 문제가 중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구나 문화적 할인의 시대로 접어든 상황에서 고유한 문화 텍스트는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문화를 정면으로 거론하든, 그렇지 않든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고, 거의 모든 영역에 문화적 보편화의 현상이 지배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문화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한, 서로를 맹렬하게 닮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 그 자체보다 문화적 관계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한 윤리적 해석의 과제가 긴요해진다.
그런데 암호는 소문과 해독 방식이 같다. 암호에서 중요한 것은 암호 자체에 대한 해독이 아니다. 이보다는 암호화 과정에 대한 해석이 훨씬 시대의 본질에 근접한다. 소문은 단순히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빙자하여 전달자의 욕망을 슬쩍 끼워 넣는 권력의 서사다. 그래서 소문 속에는 변경에서 중심부로 뚫고 들어가려는, 혹은 중심에서 변경으로 퍼지려는 권력 관계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소문의 서사에서는 어떤 내용인가가 아니라, ‘누가’ ‘왜’ 이 왜곡의 서사를 지어내고 있는가 하는 관계에 집중해야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
이번 저서의 키워드 역시 ‘관계로서의 문화’이다. 20세기 일제강점기에서 21세기 소비문화 시대까지, 남한에서 북한까지, 시에서 만화까지, 담론과 현장에 이르기까지 개개의 연구물들을 ‘문화적 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읽어내느라 애를 썼다. 격랑의 시대,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 혼돈의 내부가 문화적 관계로 접근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되는가가 꽤 흥미로운 고민거리였다.
‘1부_수용과 굴곡’에서는 지역적 경계를 넘으면서 하나의 가치가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양상을 담아내고 있다. 가치는 유혹하고 충동질하여 끌어당기는 것이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 선과 악의 사이, 성과 속의 사이, 이 흔들리는 ‘사이’에서 가치가 방향을 드러낸다. 그러니 가치는 언제나 힘으로 구부러지고 휘어질 수밖에 없다. 힘의 불균형이 강력할수록 굴곡과 우회하는 힘도 극심해진다. 4편의 논문을 이러한 점에서 읽으면 꽤 흥미롭다.
박경수의 『백석 시의 중국 문화 수용과 문화 의식의 특성』은 일제강점기 백석 시에서 중국 문화를 수용하는 시적 주체의 태도가 이방인으로서의 관찰자가 아닌 문화 참여자라는 점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탈식민주의의 문화 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을 새롭게 읽어낸다. 차선일의 『‘프란츠 파농 담론’의 한국적 수용 양상 연구』는 제3세계의 민족 해방 운동의 이론적 공급원 중 하나였던 비서구 출신의 실천적인 사상가 프란츠 파농이 국내 학계와 문화계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몇 단계의 굴곡과 우회의 과정을 포착한다. 류종렬의 『이주홍 작품의 화전민과 메아리 모티프의 변모 양상』은 기행보고문이라는 독특한 장르적 시각으로 일제 말기 향파 이주홍의 현실 인식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다. 박형준의 『한국문학의 차이니스 디아스포라』는 참신하게 차이니스 디아스포라라는 시각으로 일국적 경계를 넘어선 문화적 소통의 가능성을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에서 찾아내고 있다.
‘2부_시선과 재현’에서는 권력 안에서 생성된 비존재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을 담았다. 재현의 문제는 재난의 현실에 연루되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서 재난은 제도로서의 재난이다. 권력의 성패 여부는 타자를 양산해내는 제도의 교묘함, 이를 통해 공적 문제의 사적으로 이전시키는 비윤리적인 합법성을 얼마나 제대로 작동시키는가에서 판가름이 난다. 이 점에서 보면, 이방인은 외부에서 들어온 존재가 아니라, 내부의 권력에서 만들어진 내부자들이다. 따라서 이방인에 관한 재현의 문제는 배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4편의 글은 이러한 재현의 테마를 존재론이 아닌 관계론으로 풀어 보여준다.
고봉준의 『현대시에 투영된 이방인과 다문화』는 2000년 이후 한국시에 투영된 이방인과 다문화에 관한 재현의 방식을 담론과 예술의 문제로 요약한다. 이방인과 다문화를 재현의 불가능성이라는 철학적 문제가 아닌 선(善)한 의도와 미학적 균열 사이의 이율배반을 중심으로 전유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주성에 주목한다. 권유리야의 『명령하는 아버지 응답하는 아들; 유아적 노년의 로컬 부산』은 영화 [국제시장]에 전면화하는 가족공공성이 주인공의 삶을 로컬로 만드는 과정을 현실의 부산이 로컬로 확정되는 과정과 동일선상에 놓고 고찰한다. 박형준의 『1960년대 ‘동래 금강공원’의 로컬리티』는 1960년대 동래 금강공원의 공간적 표상 변화를 통해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던 한국 사회의 내재적 모순과 부조리의 징후를 분석한 글이다. 류종렬의 『시선의 정치 ?이주홍의 일제 말기 일문(日文) 만화 연구』는 이주홍이 일제 말기 ?동양지광?에 발표한 일문(日文) 만화를 최초로 소개하고, 1940년대 대중적인 만화 매체를 통해 이주홍의 역사 왜곡과 대일 협력의 양상을 밝힌다.
‘3부_ 정념과 사상’에서는 정념을 시차의 관점으로 현실을 재해석하려는 의지로 이해하였다. 종합이나 매개할 수 없는 두 지점 사이에서 늘 이동하는 관점을 시차라고 한다면, 시차에서 중요한 것은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점을 연결하려는 대면의 의지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개별적인 것 자체로 옮겨놓는 것뿐이다. 이를 뭉뚱그려 정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억압적 현실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려는 해석의 의지라는 점에서, 정념은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사유의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권유리야의 『김애란 소설에 나타난 친밀감의 착시와 연극적 가족진리』는 김애란의 소설이 가족이 아닌 가족‘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밝히며, 한국 사회의 현재성이라는 차원에서 김애란 소설을 가족윤리가 아닌 가족진리의 문제로 좁혀 고찰하였다. 박경수의 『정지용 초기 시의 일본 근대문화 수용과 문화 의식』은 정지용의 초기 시 『카페?프란스』, 『파충류동물』, 『황마차』를 중심으로 카페?기차?근대도시에 대한 피식민 주체로서 타자의 문화인 일본 근대문화를 어떤 관점과 태도로 수용하고 있는지, 그에 따른 문화 의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정훈의 『‘남조선 사상’으로 본 민족미학의 방향: 김지하 미학의 경우』는 김지하의 사상에서 남조선 사상을 민족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김지하의 문학의 본질이 학계에서 외면당하는 사상과 미학을 결합하려는 노력의 산물임을 밝혀내고 있다.
관계는 해석의 산물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관계에서는 ‘이미’라거나 ‘우연’이라는 말은 쓰기가 어렵다. 서로에 대한 해석의 ‘의지’를 통해서 관계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해석의 의지가 있는 한, 그 관계는 늘 새롭게 시작되는 현재형이 된다.
공부라는 매개 속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사제지간의 경우, 이 말은 대단히 유의미하다. 책으로 이어진 30년 가까운 시간에서 우리 사제들은 밝게 혹은 어둡게, 느리게 혹은 빠르게, 가깝게 혹은 멀게, 꾸준히 서로에 대한 해석을 갱신해 가며 사제의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왔다.
쉽지 않은 현실에서 책을 매개로 꾸준히 만나면서 서로의 변화를 바라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난 7년간 ?1930년대 문학의 재조명과 문학의 경계 넘기?(국학자료원, 2010), ?지역?주체?소수자 담론과 욕망 표상? (국학자료원, 2014) 두 권의 책을 냈고, 이번에 또 세 번째 책을 기획한다. 서울-부산을 오가는 고단함이 있었고, 연구실에서 밥자리로 술자리로 이어지는 기껍고 애틋한 시간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벌써 인생의 한 바퀴를 도는 회갑이시다. 박경수 은사님의 남은 학자로서의 삶이 이전보다 더욱 빛나시기를 우리 모두 고대한다.

2017년 여름
마음을 모두어 제자들 드림

[책속으로 추가]

주체의 문화 의식에 타자의 문화가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주체와 타자의 상호 대화적 관계에 의해서 주체의 문화 의식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주체가 체험하는 대상으로서의 문화는 일차적으로 타자화되지만, 그것은 이차적으로 타자의 문화가 갖는 특성과 이를 수용하는 주체의 태도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타자의 문화가 우월적 위치에 있을 때 주체는 타자의 문화에 압도되거나 호의적인 태도로 선망하거나 관조하는 특성을 보일 것이며, 또는 그 반대인 경우에는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배제 또는 저항의 대상으로 삼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주체와 타자의 상호 호혜적인 대화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 문화적 갈등 없이 문화적 조화나 융합의 국면을 보이기도 할 것이다. 백석의 시는 물론 이와 같이 다양한 국면의 문화 수용 태도와 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백석의 중국 문화 수용의 관점과 태도는 독자적이면서도 문제적인 문화 의식을 보여준다고 앞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백석의 중국 문화 수용 태도와 그에 따른 문화 의식은 결코 당대에 한정된 문제의식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점차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선험적인 문화 의식으로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2. 백석의 만주체험 시와 문화론적 접근의 경과

백석 시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고형진, 김명인의 백석 시 연구에 이어 이숭원은 『풍속의 시화와 눌변의 미학』을 통해 시집 ?사슴?(1936) 이후 발표된 『수박씨, 호박씨』, 『귀농』, 『두보나 이백같이』 등의 시 작품들이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이국에서의 향수를 민족적 실체를 찾으려는 노력과 연결되고 있음을 간략히 논의했으며, 윤영천은 일제강점기 만주지역 거주 조선인들이 겪는 삶의 문제들을 형상화한 이른바 ‘유민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시 『안동』이 이국정취의 느낌을 말한 ‘통상적인 풍물시’에 불과한 것으로 그 시적 의미를 가볍게 보아 지나치듯 언급한 바 있다. 이후 국내외 학자들이 재만 조선인의 시문학에 대한 자료의 발굴과 소개를 포함한 논의가 이어졌으나, 이들의 논의는 만주지역에서 발행된 ?만주시인집? (1942), ?재만조선시인집?(1942), 시 동인지인 ?시현실?, ?북향?, 일간지 ?만선일보? 등 매체들을 중심으로 시작품들을 논의했던 까닭에 만주에 체류하면서도 국내 매체를 통해 시를 주로 발표한 백석의 시는 관심권 밖에 두었다.
백석이 만주 체류 시기에 쓴 시를 포함하여 만주체험 관련 시 작품들에 대한 논의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재개되었다. 비록 한정된 작품에 대한 논의이지만, 신범순은 시 『귀농』이 백석의 실제 소작농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이면서도 “민중들의 현실적 이해관계로부터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개인주의적 세계”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중세적인 전원시적 세계로 퇴화한 것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이른바 ‘만주시편’으로 구분될 수 있는 백석의 시를 전반적으로 논의한 이는 박주택이다. 박주택은 백석의 ‘만주시편’이 백석의 방랑 편력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는 동시에 자유정신을 바탕으로 낙원에의 꿈을 펼치고 있는 작품들로 파악했다.
이경수도 백석의 후기시인 『수박씨, 호박씨』와 『두보나 이백같이』에서 노자, 공자, 도연명, 이백, 두보 등의 인물 인유(allusion)를 통해 동양적 상상력의 하나로서 은둔의 상상력을 주목하면서 현실과 화합하지 못하는 시인의 성향을 읽어내었으며, 여기에 더 나아가서 백석의 시에서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습합의 현상을 여행, 음식, 종교를 중심으로 파악하는 가운데 시 『안동』에서 이국적인 문화의 감각적 전유와 동화에 대한 바람을 논의하고 『수박씨, 호박씨』를 재론하면서 은둔의 인물과의 동일시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소극적 부정의 태도’라고 해석했다. 이경수가 주목해서 논의했던 백석 시에 나타난 ‘은둔의 상상력’(또는 도가적 상상력)은 김용희에 의해 집중 논의되었다. 김용희는 백석의 북방체험을 형상화한 일련의 시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도가적 인물들과 그들의 정신적 지향이 백석이 피폐한 현실에서 겪는 실향의 심정과 사회적 속박의 고달픔을 이겨내기 위한 ‘정신적 표본’으로서의 ‘자기 좌표’로 삼은 것이며, 거기에는 공동체적 평화의식, 소박한 은거와 정신적 초연함, 생명존중의식이 내재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백석의 도가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동양정신은 ‘세속-현실과의 맞서기’보다 겸허하게 물러서는 태도로 지나친 ‘자족’이 극단적 순수주의로 나아갈 위험이 있는 것처럼 비현실 반역사성의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았다. 백석 시에 관한 이들 앞선 논의들은 백석의 만주체험 시가 갖는 중요한 정신적 지향점을 밝힌 것으로 이후 백석 시의 문화 의식 해명에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백석 시에 나타난 도가적 정신주의가 백석 개인의 삶과 어떤 길항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지에 논의를 집중함으로써 피식민 주체로서 타자인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대응적 관점에서 갖는 의미를 천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다.
백석의 만주 체류기에 쓴 시에 대한 논의는 서준섭이 ?만선일보?에서 백석 관련 기사와 그의 산문을 찾아서 당시 백석의 행적과 의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복원하고, 이를 시 작품의 해석과 연계시켜 논의하면서부터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특히 백석의 시를 통해 드러나는 중국인과 중국 문화에 대한 의식은 만주국이 내세운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정책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중국인에 대한 인간애와 중국 문화에 대한 우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주목해서 논의했다. 신주철도 이와 같은 서준섭의 견해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백석의 ‘타자 인식과 존중’의 태도를 이른바 ‘만주 체류 시’에서 거듭 읽고자 했다. 본고의 논의 역시 서준섭과 신주철의 앞선 논의에서 힘입은 바가 크다. 그렇지만 백석의 중국 문화 수용과 그에 따른 문화 의식을 논의의 중심에 두면서, 식민 제국주의에 대한 피식민 주체로서 중국 문화를 수용하는 백석의 태도와 정신적 지향점이 탈식민적 문화 의식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나아가서 백석의 문화 의식을 당대는 물론 오늘날의 다문화적 상황과 연결해 보았을 때 긍정적인 시사점이 있다는 논지는 앞선 논의들과 차이를 갖는 지점이다.
백석의 만주체험 시에 대한 논의는 왕염려의 실증적인 연구로부터 그동안 백석 시에서 풀지 못한 여러 의문들이 해소되면서 한층 진전되었다. 왕염려는 만주 신경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현장조사와 탐문을 거친 결과를 토대로 백석이 1940년 1월경에 만주 신경으로 갔다는 점,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고 또 6개월 만에 사직한 사정, 북만주 산간 오지의 오로촌족과 솔론족과의 접촉 여부, 시 『귀농』에 나오는 백구둔(白狗屯) 마을의 실제 존재와 당시 현황, 이와 연관된 백석의 귀농을 통한 소작인 생활의 여부, 1941년 평양 변호사의 딸인 문경옥과의 결혼과 이듬해 말 이혼 등 그동안 의문을 가져온 여러 사실들을 밝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백석의 만주체험과 관련한 일부 시의 해석에서 백석이 중국인과 중국의 풍물을 동경했다고 본 것은 중국 중심의 견해가 작용한 것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심원섭은 백석이 만주행을 한 동기에는 연속적인 파혼과 집안과의 불화, ‘속세’에 대한 과도한 혐오, 사회적 관계망을 거부하는 결벽적이고 대인기피적인 삶의 스타일, 귀거래에 대한 낭만적 몽상, 고답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인 자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 다음, 그의 만주체험 시편들은 “그가 과거부터 지녀온 목가적 동경의 세계를, ‘자유로운 나라’ 중국의 서민에 투사한 것”이라고 하고, 만주행을 거친 후 자기참회로부터 자기인식에 도달한 작품이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南新義州柳洞朴氏逢方)』이라는 것이다. 남기혁은 신원섭이 말한 ‘자기인식’의 문제를 시인의 내면적 윤리의식과 결부시켜 한층 면밀하게 논의하고자 했다. 타락한 세계와 거리를 두고 내면의 순결성을 추구하는 시인의 정신이 ‘만주시편’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원섭은 사실 백석의 시를 문화론적 관점이 아니라 심리적인 측면에서 조명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그의 문화 의식도 백석의 결벽증적인 자기인식과 순결성의 윤리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백석의 시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실마리가 백석의 ‘자기인식’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남기혁의 글 자체는 백석의 자기인식이 자기참회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측면에서 백석 시의 발전적인 과정을 추적하려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백석의 만주체험 시 작품들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긍정적인 시각에서 만주국의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주체적 인식과 삶의 여유와 고결함을 추구하는 시인의 내면 의식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글에서는 백석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새롭게 경험하는 타자로서의 중국 문화를 어떻게 주체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시적 주체의 문화 의식이 또 다른 타자인 일제의 만주국 식민 정책과는 어떠한 대응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그리고 백석의 중국 문화 수용 태도가 오늘날 점차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어떤 시사점을 제공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자 한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김신정의 최근 논의는 본고와 논의의 입각점을 같이 한다. 그것은 만주국 자체가 원주민인 한족, 만주족, 그리고 집단이주 민족인 조선족, 일본인, 백계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오족(五族)을 중심으로 구성된 다문화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 다문화 사회에서 백석의 시는 소수자의 시선을 통해 만주국이 내건 오족협화의 이념이 위선적 동화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다문화적 조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김신정의 논의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백석의 만주체험 시를 보완적으로 재론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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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68175497
발행(출시)일자 2017년 10월 20일
쪽수 336쪽
크기
154 * 226 * 19 mm / 494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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