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실록으로 읽는 우리 문화재 2
최동군 저자(글)
담디 · 2017년 08월 18일 (1쇄 2017년 08월 11일)
10.0
10점 중 10점
(4개의 리뷰)
(null%의 구매자)
  • 창덕궁 실록으로 읽다 대표 이미지
    창덕궁 실록으로 읽다 대표 이미지
  • A4
    사이즈 비교
    210x297
    창덕궁 실록으로 읽다 사이즈 비교 153x226
    단위 : mm
01 / 02
소득공제
10% 13,500 15,000
적립/혜택
150P

기본적립

1% 적립 150P

추가적립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150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300원
배송안내
도서 포함 15,000원 이상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국내도서/외국도서
도서 포함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도서+사은품 또는 도서+사은품+교보Only(교보굿즈)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교보Only(교보배송)
각각 구매하거나 함께 20,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해외주문 서양도서/해외주문 일본도서(교보배송)
각각 구매하거나 함께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업체배송 상품(전집, GIFT, 음반/DVD 등)
해당 상품 상세페이지 "배송비" 참고 (업체 별/판매자 별 무료배송 기준 다름)
바로드림 오늘배송
업체에서 별도 배송하여 1Box당 배송비 2,500원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그 외 무료배송 기준
바로드림, eBook 상품을 주문한 경우, 플래티넘/골드/실버회원 무료배송쿠폰 이용하여 주문한 경우, 무료배송 등록 상품을 주문한 경우
당일배송 오늘(4/2,수) 도착
기본배송지 기준
배송일자 기준 안내
로그인 : 회원정보에 등록된 기본배송지
로그아웃 : '서울시 종로구 종로1' 주소 기준
로그인정확한 배송 안내를 받아보세요!

이달의 꽃과 함께 책을 받아보세요!

1권 구매 시 결제 단계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알림 신청하시면 원하시는 정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창덕궁 실록으로 읽다』는 실록을 근거로 창덕궁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다뤘다. 단순히 궁을 답사하기 위한 가이드북이 아닌 우리의 역사를 함께 되짚어보며 시간 속에 지워져 가던 창덕궁의 진정한 의미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다.

이 책의 총서 (3)

작가정보

저자(글) 최동군

저자 志于學士 최동군(崔東君)은
다음, 네이버, 페이스북 닉네임: 동쪽임금(東君을 풀어씀)
강원도 원주에서 육군 보병 장교 최준호 대위와 김주자 여사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남. 1973년부산 연제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동해중학교, 동인고등학교를 거쳐 1991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문화재와 역사에는 특별한 지식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음. 그러던 중 1997년 태어나서 처음 참여한 2박 3일간의 ‘경주고적답사’에서 거의 신내림에 가까운 큰 문화적 충격 및 감명을 받았고, 그 후로 우리 문화재와 역사에 대해 독학으로 집중 공부함. 또한 평소 ‘배워서 남 준다’는 소신으로 많은 문화답사 강좌 및 모임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와 역사를 전파하고 있음.
2013년부터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 ‘문화해설사 입문’ 과목을 강의중이며 2016년부터 성균관대학교에서 유교문화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유교문화 리모델링’ 과목을 강의함.

주요 저서 및 논문
ㆍ창경궁 실록으로 읽다(2017)
ㆍ경복궁 실록으로 읽다(2017)
ㆍ향교ㆍ서원 활용모델 개발에 관한 연구 (2016)
ㆍ8일간의 화성행차 정조반차도 (2016)
ㆍ현장학습 1번지 국립고궁박물관 (2016)
 (2017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ㆍ답사여행 1번지 경주 (2016)
ㆍ문화재 속 숨어 있는 역사 (2015)
ㆍ나도 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Series
 궁궐편(2011), 사찰편(2012),
북한산둘레길편(2013), 능묘편(상ㆍ하/2014)

공식카페: cafe.daum.net/NaMoonSa
카카오톡: EastKingKorea

목차

  • 머릿말 _4

    궁성과 문 _10
    창덕궁 개관 - 조선왕실이 가장 오래 머문 궁궐 _11
    돈화문 - 조선의 자존심을 드러내다 _21
    금호문 - 송학선 의사의 혼이 서린 곳 _38
    단봉문 - 인조반정의 비밀통로 _44

    외조 일원 _58
    금천교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_59
    진선문 - 신문고가 설치되다 _68
    궐내각사[내각 일원] - 제2의 규장각 _75
    궐내각사[옥당 일원] - 출세의 관문 _81
    궐내각사[약방 일원] - 대장금과 허준이 활동한 곳 _91
    궐내각사[구선원전 일원] - 종묘에 비견되는 건물 _102
    인정문 외행각 - 대비의 곡소리가 울려퍼지다 _112
    빈청 - 조선 최고의 논쟁이 벌어진 곳 _125

    치조 일원 _141
    인정문 - 이인좌를 치죄하다 _142
    인정전 - 철종의 한이 맺힌 곳 _154
    선정문 - 27세 최연소 병조판서의 비극 _170
    선정전 - 이곳에서 조선당쟁사를 간추려보다 _175
    희정당 - 암행어사 박문수의 전설이 탄생하다 _205

    대전과 중궁전 일원 _221
    대조전 - 대전일까? 중궁전일까? _222
    경훈각 - 대조전이 대전이 될 수 밖에 없는 증거 _238

    동궁 일원 _243
    정조는 진정한 보수주의자? _244

    낙선재 일원 _255
    외국출신 왕실여인들이 머문 곳 _256

    후원 일원 _270
    부용지와 주합루 일원 - 신하들을 가르치는 국왕 _271
    애련지와 연경당 일원 - 이토 히로부미 제대로 분석하기 _277
    관람지와 존덕정 일원 - 정조의 자신감이 넘치는 곳 _286
    옥류천 일원 - 유상곡수거의 흔적을 찾아서 _292

출판사 서평

실질적인 조선의 법궁이었던 창덕궁!
궁궐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완벽하게 설계되었던 경복궁을 누르고 왕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창덕궁.
흔히들 창덕궁의 매력은 후원뿐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철저한 좌우대칭의 법칙 안에서 건설된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의 주변 지형에 맞춰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왕들은 경복궁을 재건하지 않고 창덕궁에서 생을 보냈으며, 이 곳을 더 편안하게 생각했다.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많은 이야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손을 더 많이 탄 창덕궁이 경복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좀 더 인간적인 왕들의 생활상도 더 많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경복궁에 이어, 실록을 근거로 창덕궁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다뤘다. 책은 단순히 궁을 답사하기 위한 가이드북이 아닌 우리의 역사를 함께 되짚어보며 시간 속에 지워져 가던 창덕궁의 진정한 의미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촛불집회가 있었다?!
지난 겨울 광화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것은 촛불이 아닌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었으리라. 민주주의시대에 사는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으로 실행했다. 만약 지금이 조선시대였다면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하지만 실록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순종때 상왕으로 물러나있던 고종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많은 백성들이 등불을 들고 모였으며, 국왕이었던 순종은 백성의 대표자를 통해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등불을 들고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이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고 나아가던 우리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리더는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소통을 주도했다는 점일 것이다.
자유와 소통, 민주주의가 당연시 여겨지는 현 시대보다 만인지상 왕이 군림하던 군주제의 리더십이 더 빛나 보이는 것은 왜일까?

순종 1년(1908) 3월 10일 / 돈화문에 나가 백성들의 등불 행렬을 보고 한성 부윤을 소견하다
돈화문 밖으로 거둥하여 각 학교들과 일반 백성들의 등불 행렬을 관람하였으며, 만세를 축원하는 의식을 가졌다. 그리고 백성들의 대표인 한성부윤(漢城府尹) 장헌식을 인견(引見)하고 위문하였다.

창덕궁엔 종묘만큼 중요한 곳이 있었다?!
수많은 사극드라마에서 단골로 나오는 대사를 꼽으라면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와 ‘짐이 종묘사직을 위해…’ 이 두 가지 대사는 순위 안에 꼭 있을 것이다. 종묘사직은 선왕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종묘와 토지 신과 곡식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나타낸다. 유교국가이면서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 때 종묘사직은 국가 자체를 상징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종묘사직과 지위가 같은 건물이 경복궁도 아니고 창덕궁에 있었으니 바로 선원전이다.
선원전은 태조 이하 역대 국왕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었다. 조선왕조는 역대 임금을 추모하면서 제향하는 건물로서 궁궐 밖에는 종묘를, 궁궐 안에는 선원전을 지었다. 선원전이 가지는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실록기사는 바로 영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고 죽이려고 뒤주에 넣기 전 선원전에 들려 이런 사실을 선조들에게 고했다. 이런 엄청난 사건 전에 직접 들려 그 일을 고했다는 것은 선원전의 지위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영조 38년(1762) 윤5월 13일 / 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안에다 엄히 가두다
임금이 창덕궁에 나아가 세자(世子)를 폐하여 서인(庶人)을 삼고, 안에다 엄히 가두었다. …(중략)…
한번 나경언이 고변(告變)한 후부터 임금이 폐하기로 결심하였으나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유언비어가 안에서부터 일어나서 임금의 마음이 놀랐다. 이에 창덕궁에 나아가 선원전(璿源殿)에 전배하고, 이어서 동궁의 대명(待命, 과실이 있을 때에, 상부에서 내리는 처분(處分) 또는 명령을 기다림)을 풀어주고, 동행하여 휘령전(徽寧殿)에 예를 행하도록 하였으나, 세자가 병을 일컬으면서 가지 않으니, 임금이 도승지 조영진을 특파(特罷)하고 다시 세자에게 행례(行禮)하기를 재촉하였다. …(후략)…

과거시험이 치러지던 인정전, 화장실 문제는 어떻게?!
창덕궁은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경복궁을 대신하여 법궁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이후 큰 규모의 왕실행사들은 모두 인정전에서 치러졌다. ‘조하’나 ‘조참’ 같이 문무백관이 참여하는 행사는 물론이고, 외국 사신들의 공식 접견도 이루어졌으며, 수많은 참가자가 있는 과거시험도 이곳에서 치러졌다. 그렇다면 한꺼번에 많은 수가 몰리는 과거시험 때는 그 많은 인원의 화장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간이화장실이 있을 리 만무했던 그 시절엔 인정전 주변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인정전이 더러워졌고, 그 행위를 엄금하도록 하라는 왕의 명이 실록에 실려있을 정도이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 화장실이 없어 궁 여기저기 있는 배설물과 오물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이 발달한 것을 보면 궁에서의 화장실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한 주제였던 모양이다.

정조 18년(1794) 2월 21일 / 인정전에 거둥하여 삼일제를 거행하다
인정전(仁政殿)에 거둥하여 삼일제(三日製, 3월3일에 보던 과거)를 거행하였다. 문 안에 들어온 유생의 숫자가 2만 3천 9백여명이나 되어 뜰에 전부 수용할 수가 없자, 인정전 뜰에서 금천교(禁川橋) 밖에까지 늘어 앉도록 하였다. 거둔 시권(試券)이 1만 5백 68장이었는데, 수석을 차지한 유학(幼學) 김취강은 전시(殿試)에 곧바로 응시하게 하였고, 회시(會試, =복시)에 곧바로 응시토록 한 사람이 1백 명, 점수를 준 사람이 1백 명, 상을 준 사람이 1백 명이었다.

광해 10년(1618) 10월 9일 / 전시에 인정전에서 소변 보는 일 등을 엄금하도록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인정전(仁政殿)에서 전시(殿試)를 누차 거행하여 매우 더러워졌다. 소변을 보는 일 따위를 병조로 하여금 각별히 엄금하게 할 일을 착실히 거행하도록 하라.”

이처럼 각 건물들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우리가 접하는 문화재를 컴퓨터로 예를 들자면 유물 또는 문화재들은 하드웨어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역사)는 소프트웨어이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컴퓨터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없듯 문화재 속에 담긴 역사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문화재 답사를 했다고 볼 수 없다. 스스로 한번 자문해보자. 우리는 항상 겉으로 들어난 창덕궁의 하드웨어만을 둘러보고 있지 않은가? 본 서적에 실린 소프트웨어(역사)를 잘 숙지하여 창덕궁의 하드웨어와 접목시킨다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창덕궁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68010675
발행(출시)일자 2017년 08월 18일 (1쇄 2017년 08월 11일)
쪽수 304쪽
크기
153 * 226 * 14 mm / 473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실록으로 읽는 우리 문화재

Klover 리뷰 (4)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10점 중 10점
<창덕궁 실록으로 읽다> 는 실록으로 읽는 우리 문화재 시리즈이며, 첫번째 경복궁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다. 조선의 궁궐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궁궐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본다. 창경궁은 경복궁 다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 궁궝의 숨어있는 역사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해 기획된 역사책이며, 조선왕조실록 안에서 창덕궁과 관련한 역사들을 꺼낸다.창덕궁을 말하기 전 , 경복궁을 먼저 알아야 한다. 경복궁은 조선이 태조 이성계에 의해 세워지면서, 정도전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궁궐이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의 아들 태종 이방원은 자신의 이복동생을 죽이기 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며, 그 피가 묻어있는 경복궁 대신 자신이 기거할 수 있는 창덕궁을 건립하게 된다. 창덕궁은 태종 5년 1405년 10월 25일 세워진 조선의 궁궐이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자연스럽게 창덕궁이 조선의 법궁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조선은 법치국가가 아닌 예를 중시한 나라이다. 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형조보다 예조가 조선에서 더 우위에 있었으며, 조선은 대표적인 왕조국가였다. 왕조국가는 왕의 정통성을 가장 우선시 하며, 후계자는 전 임금의 적장자를 우선하게 된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였음에도,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자신의 다음 후계자로 내세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면 소현세자가 죽은 뒤 인조는 자신의 후계자로 소현세자의 아들을 내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봉림대군을 옹립함으로서 조선은 또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조선의 궁궐은 현대에는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엔 서로가 연결된다. 창경궁과 종묘는 지금은 따로 떨어져 있지만, 조선시대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궁궐은 왕과 왕의 일가 친척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왕권강화를 우선할 수 밖에 없다. 백성의 억울한 누명을 덜어주기 위한 신문고 제도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닌 바로 왕권강화를 우선하기 위한 제도다. 즉 신문고를 악용하는 행위를 조선시대엔 용납하지 않았고, 폐쇄와 회복을 반복했다.조선의 제도의 근간은 중국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의 궁궐의 모습과 법과 제도는 중국을 따라왔다. 돈화문의 모습을 보면 바로 중국을 모방했지만, 조선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천안문의 5개의 홍예는 정면이 5칸인 창덕궁의 돈화문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황제의 궁궐은 '5문 3조', 제후의 궁궐은 '3문 3조'의 큰 원칙에 따라 건립된다. 조선의 왕은 제후의 위치이기 때문에 '3문 3조'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돈화문은 실제로는 5개의 문을 가지고 있지만, 2개의 문만 열어놓음으로서 겉으로는 5문3조이지만 실질적으로는 '3문 3조'를 따른다. 책에는 돈화문에 대해 기록하면서 중종반정에 대해 나오는데, 중좀반정의 목격자가 바로 돈화문이다. 중종반정은 조선시대 4대 쿠데타의 하나이며, 나머지는 왕자의 난, 계유정난, 인조반정이 있다.금호문은 창덕궁의 첫번째 서문이다. 금호문에는 궐내각사가 밀집되어 있는 외조와 가까우며, 관리의 출입이 잦은 곳이다. 사극 여인천하에 등장하는 양재역 벽서사건이 이루어진 것이 바로 금호문이다. 명종때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과 문정완후의 동생 윤원형의 권력 다툼 속에서 을사사화의 빌미가 된 것이 바로 양재역 벽사 사건이다. 익명서를 벽사, 괘서, 방서라는 이름으로 실록에 등장한다.보물 817호로 지정된 선원전은 태조 이하 역대 국왕의 어진이 보관된 곳이다. 선원전은 조선시대에서 종묘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곳이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기 직전에 들린 곳이 선원전이며,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알린 곳이다.이 책의 특징은 바로 궁궐과 사극을 연결시킨다.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를 궁궐과 연결시키면 우리는 감이 오지 않는다. 사극 여인천하, 대장금, 허준, 동이 등등이 나오고 있으며, 궁궐과 사극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사극 동이에 등장하는 숙빈 최씨, 숙종의 후궁 숙빈최씨의 신위가 모신 사당을 숙빈묘라 불렀다. 이후 영조에 이르러 숙빈묘는 육상국으로 개칭하게 된다. 이 책의 특징은 우리가 아는 역사들을 재복습하게 만든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조선의 역사와 그들의 삶, 조선의 법과 제도들을 창덕궁과 연결지으면, 왕와 왕비,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의 삶이 그려지며, 창덕궁에 있는 것 하나 하나 허투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10점 중 10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표지석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자연의 경관을 살린 자연미와 궁의 조합이 돋보이는 창덕궁!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궁은 경복궁이지만 궁으로서의 역할은 경복궁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창덕궁은 1406년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궁궐이에요. 아시다시피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그 이듬해 조선의 법궁으로서 경복궁을 세웠는데요. 그 후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형제간의 살육이 자행되었기에 정종에 이어 보위를 이어받은 태종 이방원은 그런 경복궁을 동쪽에 새로운 이궁 창덕궁을 짓게 됩니다. 왕위를 두고 형제간의 살육을 벌였던 이방원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경복궁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란게 사람들이 생각이지요. 그렇게 이궁으로 지어진 창덕궁은 이후 조금씩 편의시설을 늘려가며 증축되다가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전소되면서 법궁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궁을 좋아하는 분이거나 눈썰미가 있으신 분이라면 창덕궁이 다른 궁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실 수 있을 것에요. 바로 다른 궁과 달리 들어가는 입구가 5개의 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인데요. 당시 중국의 간섭을 받고 있던 조선으로서는 중국과 같이 궁궐의 문을 5개로 할 수 없었고 그러한 이유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은 3칸으로 지어진 것이 대부분인데요. 창덕궁만큼은 5개란 사실! 하지만 중국의 간섭이 있었으므로 사신 접대 등은 경복궁에서 했고 실제로는 5칸이지만 3칸만 열어놓고 양 옆의 두칸 문은 닫아놨다고해요. 조선의 자부심과 중국의 외교를 문에서 살펴볼 수 있답니다.


 
 
 
창덕궁은 오랜 법궁의 역할을 했던 곳이니만큼 조선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해요. 조선왕실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가 바로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세상을 뜨셨다는 이야기는 몇년 전 영화가 나오며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요. 그리고 정조가 개혁을 이루고자 노력한 장소가 바로 규장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 서화, 고명, 유교, 선보, 보감 등을 보관하는 곳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해갔던 곳이라고 해요.
 
책은 창덕궁 내부의 공간과 쓰임새를 설명해주며 창덕궁에서 일어났던 조선의 사건들도 함께 알 수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창덕궁의 사진과 함께 일련의 사건들을 읽으니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또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보통 역사적인 사건은 알고 있어도 그 사건이 궁의 어떤 장소에서 일어났는지 잘 모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장소를 통해 사건들을 들여다보게 되니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의 흥망성쇄를 고스란이 간직한 궁이기에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는 지식이 아니거나 체험학습으로 선생님의 설명을 듣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며 보게되는 것이 문화재인데요. 책을 통해 창덕궁의 다양한 일들을 읽고보니 다음번에 아이와 창덕궁에 방문한다면 저와 아이에게는 좀 더 특별한 역사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
10점 중 10점
창덕궁 실록으로 읽다 -역사를 다시 보는 눈을 키우고 싶어져요


역사 책이라 역사 교수님이나 선생님이 쓰신책 일꺼라는
생각 하면서 펼쳤는데
저자의 소개가 특이하여 먼저 시선이 쏠렸다.

평범한 시민으로 생활하시다가, 1997년 경주고적답사에서
신내림에 가까운 문화적 충격을 받으시고,
독학으로공부하시면서... 역시를 전파하여,
' 배워서 남 준다' 라는 신념을 가지신 멋진 분이 
쓰신책이라, 더 열심히 보았다.^^

지금은 역사 관련 일을 하시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힘써주시는데...
이렇게 역사관련 일을 늦게 시작하실수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시험 공부가 아닌, 나를 위한 역사공부를 나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보았다.

궁권을 좋아해서,
지방에 살기때문에 서울에 갈때마다, 경복궁이며, 창덕궁, 덕수궁 등
많이 가는데....
사실 가면서도, 역시 지식보다는...
사진찍고 옛 조상들의 흔적을 느끼는 것만으로 좋아서 가는 경향이 있었다.

근데 책을 읽고 나니, 더 공부하고 갔으면..
더 많은것을 볼수 있었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음번에 서울에 갈때는....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겉으로 보이는 궁궐의 모습이 아니라,

책에서 보았던것처럼... 조상들이 살았던 그 흔적을 따라서,
같이 느껴보고 생각해보고 하면
너무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기에이 책은.. 무척 에피소드도 많고, 처음 들어보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어서... 재미있다.

또한, 사진들도 사실적으로, 되어있어서..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저자 소개..
 
 

 

 


 
 
1000만 너는 관람객이, 조선궁궐에 입장했는데 주변에 물어보면,
의외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아마 그 설명할 수 없는 한명의 사람에 속하지 않을까...
다녀와서 아이들이 일기를 쓸때 엄마, 뭐라고 쓰면 될까? 물으면 바로,
안내책자 가져온거 읽어봐.. 이러면서. 회피하곤 했는데..
정말 여러번 다녀왔지만.. 설명할 능력은 안된다.. T.T


 

 

 


 
 
차례
 
 

 

 

 

 


 

 
창덕궁은 경복궁에 이어 두번째로 세워진 궁궐이라는 소개...

 

 

 

 

 

 

 

 

 

 

 

 

 


 

 

 

 

 

 


이렇게 뱀의 발이라고 해서.ㅎㅎ
첨가 설명을 사족으로 하여 아래 부연설명하는데... 이런 것도
재미나다.ㅎㅎ

 

 

 

 

 


 

 

역사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나같은
사람은 이렇게 따로 배우는 정보들이
재미있고,  깊이있게 알지 못해서,
이런 중종반정. 인저반정 차이를 모르겠다.. 이런 비교하고 차이를 설명하고
하는 것들을 보면서, 나름 정리를 해나가니,
더 이해가 쉽고, 폭넓게 알게되었다.

 

 

 


 

‚아래 사진들은 박물관가서 직접 본 문화재인데,
그냥 예쁘다 그렇게 생각하고 온 기억이 있다.
책에서 다시 보니 반갑기도하고, 왜 제대로 공부할 생각을 못했을까 아쉽기도하다.

모두 같은 가마가 아니라,
남여, 연, 사인교
이렇게 이름도 다르고, 용도도 모두 다르다.

똑같은 것을 봐도 모두 똑같은걸 느끼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같은걸 봐도 같은걸 느끼지 못했구나... 생각을 하면서
더 열심히 역사공부를 해야겠구나 느꼈고,
고궁에 대한 것도 마치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설명들을 읽으면서,
나를 대입시켜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역사를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10점 중 10점
 











"실록으로 읽는 궁은 어떤 모습일까?"조선왕조실록은 긴 역사를 담고 있는 만큼 888권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유산입니다. "유산은 지켜주는거지 함부로 들춰보는게 아니야~~" 싶은 농담이 절로 나오는 분량이지만 실록을 적절히 잘 발췌해 재미있게 엮어 놓은 책들이 여럿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죠? ㅎㅎ

 

 
창덕궁은 조선왕실이 가장 오래 머문 궁궐입니다.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경복궁과 한양의 지세 문제(=터가 안좋다)로 도읍을 다시 개경을 옮겼다가 태종(이방원)이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법궁(정궁)인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을 새로 지어 이사오게 됩니다. 이복동생들의 피가 묻은 곳, 자신의 정적이 건설한 궁이니 싫어할만도 하지요. 공식적으로는 경복궁이 법궁이지만 태종 외에도 많은 왕들이 실제로 기거했던 곳인만큼 기구하고 긴 역사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경복궁은 다소 FM스러운 건축 그러니까 왕만 생각한 건축이었지만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해 본래 지형을 훼손하지 않았고 주변과 어우러지게 설계하고 만들어 무척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궐 내 역사는 화려한만큼 붉었습니다

 

 
태종12년 5월 22일도성 좌우의 행랑이 완성되었다. 궐문에서 정선방 동구까지 행랑이 472칸이고, 진선문 남쪽에 누문 5간을 세워서 돈화문이라고 이름하였다. 돈화문은 동궐도를 보면 가장 좌측 아래 노란 느티나무가 있는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요. 돈화문이 의미있는건 바로 '5문3조'이기 때문이에요. 아시죠? 황제의 궁궐은 5문, 왕의 궁궐은 3문이잖아요. 경복궁의 광화문, 덕수궁의 대한문, 경희궁의 흥화문, 창경궁의 홍화문 모두 3문인데 돈화문과 중국 천안문은 5문입니다. 그럼 근정전은? 사실 3문인데 5문인 것처럼 효과(?꾀?)를 낸 거라고 해요. 월화문, 일화문을 만들어 5문효과를 낸거죠. 중국에게 절대 굴하지만은 않겠다는 마음 속 의지가 엿보이죠. :)순종 1년 3월 10일돈화문 밖으로 거둥하여 각 학교들과 일반 백성들의 등불 행렬을 관람하였으며, 만세를 축원하는 의식을 가졌다. ....조선시대에도 촛불집회가 있었어요. 물론. 조금 더 크고 강해보이는 '등불'이었지만 초가 없었으니 지금의 촛불과 비슷하다 해도 되겠지요. 이 행렬은 다행히도 고종의 만수무강을 축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드라마나 영화에선 궐 안의 이야기, 왕의 모습만 보여주지만 이렇게 서민들과 왕이 화기애애할 때도 많았겠죠?정조 즉위년 9월 25일규장각을 창덕궁 금원의 북쪽에 세우고, 제학, 직제학, 직각, 대교 등 관원을 두었다. ...돈화문을 지나 숱한 조선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인정전, 왕의 서재 겸 사랑채, 조선왕실 가족들이 여생을 보내거나 임종을 기릴 때 머물던 낙선재를 둘러보다 제 마음이 확~ 꽂힌 곳은 역시나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부용지였어요. 부용지에는 부용정, 규장각, 주합루, 영화당이 있습니다. 이 중 규장각이 가장 유명하지요. 정조가 즉위한 해에 곧바로 설치하고 관리직에 서얼 출신을 기용, 초계문신 제도를 도입한 곳이 바로 규장각이에요. 초계문신 제도는 이미 과거를 거친 사람 중 낮은 직급 출신으로 27세 이하의 젊은 인재를 뽑아 임금에게 재가를 받고, 3년 정도 특별 재교육을 시키는 제도였어요. 세종 때의 독서사가제(문신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유급휴가)와 비슷하게 운영되었지만 정조가 친히(;;;) 강론에 참여하거나 직접 시험을 보여 채점하기도 할 정도로 아주 타이트하게 관리, 운영되었다고 해요. 공부 못하면 유배 ㅜ_ㅠ지만 왠지 엄청 탐나는 건.. 제가 시대 감각이 좀 떨어지는 걸까요.(누가 유배 좀 시켜줬으면 싶은 걸까요. ㅎㅎ)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쓸 때까지도 전 규장각과 주합루가 같은 건물인지 몰랐어요. ㅡ.ㅜ 역사무식자라서 그렇겠지만 눈썰미도 참 없나봅니다. 한옥은 1층이 답인줄 알았다는게 핑계가 될까요. 궐 내에 2층 건물이 있었지 뭐에요. 1층이 왕의 책을 보관한 규장각, 2층은 열람실인 주합루! 저 멋진 곳이 도서관이라니 더 부럽네요~ 역시 궁궐은 클래스가 다르구나 싶지요. 책은 대체로 꼼꼼해요. 근데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으로 이어지진 않아서 빈 공간은 스스로 메꿔야할 것 같아요~ 학습용은 원래 이런 맛에 읽는 거겠죠? :) 가을엔 공부 좀 해서 궐로 놀러가 보아요~~~~  (놀러가려고 공부한건가...ㅎ)

문장수집 (0)

문장수집 안내
문장수집은 고객님들이 직접 선정한 책의 좋은 문장을 보여주는 교보문고의 새로운 서비스입니다.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기록하고 좋은 글귀들은 "좋아요“ 하여 모아보세요. 도서 문장과 무관한 내용 등록 시 별도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리워드 안내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드립니다.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이 책의 첫 기록을 남겨주세요.

교환/반품/품절 안내

  • 반품/교환방법

    마이룸 > 주문관리 > 주문/배송내역 > 주문조회 > 반품/교환 신청, [1:1 상담 > 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 반품/교환 불가 사유

    1)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공급사(출판사) 재고 사정에 의해 품절/지연될 수 있으며, 품절 시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이메일과 문자로 안내드리겠습니다.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1)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은 발견

이 분야의 베스트

이 분야의 신간

공간 인간
이벤트
  • 4월 단말기 북꽃축제 패키지
  • 25년 4월 북드림
01 / 0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