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역사를 듣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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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엄혹하기만 했던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서 새로운 미술을 표방한 이 단체들은 뒤이어 일어난 일련의 정치 사태, 이를테면 10·26사태, 12·12사태, 그리고 마침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군사정권의 무자비한 폭거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몰아치던 암흑의 광풍 속에서 전개되었기에 그 결기는 위태롭기까지 했다. 80년대 내내 숱한 탄압을 받으면서 전개된 민중미술은 그렇게 위태로운 시기에 탄생했고, 마침내 역사적인 미술이 되었다.
민중미술을 태동시킨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혁신적인 미술을 할 수 있었는가? 민중미술이 태동한 지 벌써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고, 그 주역들은 이미 칠순 고희를 훨씬 넘긴 지금, 민중미술의 태동을 전후한 허심탄회하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여덟 명의 원로 작가들에게서 듣는다.
이 책의 시리즈 (2)
작가정보
저자 박응주는 홍익대학교, 경희대학교 등지에서 강의하며, 미술의 사회학적 읽기에 관한 글을 미술비평지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에 기고하고 있다. 「1930~40년대 미국미술의 이행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 『죽을 수 있는 사랑?박응주의 미술비평』과 「고암 이응노의 예술철학?일획론을 중심으로」 「그린버그의 미술역사주의의 문제: 그린버그와 아도르노」 등의 논문이 있다. ?신체적 풍경? ?길에서 다시 만나다? ?입장들? ?내 안의 DMZ?전 등의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저자 이영욱은 1957년 서울 출생으로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89년 미술비평연구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민중미술운동에 참여하고 미술평론을 시작했다. 1999년에는 대안공간 풀의 대표와 ?포럼A? 발행인 등의 일을 맡았다. 민중미술, 문화정치, 아방가르드 미술, 공공미술, 미술과 전통과 같은 주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과 글쓰기, 사회활동을 지속해왔다. 현재 전주대학교 문화융합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 김종길은 1968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목포 문화패 갯돌에서 활동했고, 서울시립대학교와 경희대학교, 국민대학교에서 조각과 예술경영, 미술이론을 수학했다.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이동석전시기획상, 자연미술연구상,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부문 장려상, 김복진미술이론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전시 기획으로는 ?2007경기아트프로젝트-경기 1번국도? ?2008경기아트프로젝트-언니가 돌아왔다?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팔방미인? ?경기도의 힘? 등이 있고, 저서로 『포스트 민중미술 샤먼/리얼리즘』 『100.art.kr』(공저) 등이 있다.
저자 박현화는 공립중학교에서 13년간 국어교사로 재직했으며, 이후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논문 「민중미술에 나타난 남성성 연구-‘동성사회적 욕망’과 ‘성정치’의 관점에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무안군 오승우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전시기획, 미술교육, 미술사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민중미술을 비롯하여 80년대 변혁적 사회에서 전개된 여러 시각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이에 대한 소논문을 쓰고 있다.
저자 신정훈은 1975년 생으로 미술사학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빙햄턴 소재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서울 공간 환경의 변모와 연관지어 196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의 전개를 다룬 논문(“Seoul Art Under Construction from the Late 1960s to the New Millennium”)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련 논문으로는 「산업사회, 대중문화, 도시에 대한 ‘현실과 발언’의 양가적 태도」(미술이론과 현장), 책으로는 『X: 1990년대 한국미술』(공저) 등이 있다.
저자 심광현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동 대학 인문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계간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인을 역임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문화사회와 문화정치』 등이 있다.
저자 최태만은 1962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국립서울산업대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등을 거쳐 현재 국민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쓴 책으로 『미술과 도시』 『미술과 혁명』 『한국현대조각사연구』 『미술과 사회적 상상력』 등이 있다.
저자 주재환은 1940년 생으로 본적은 충북 옥천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살아왔다. 재동초등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한 학기 수학했다. 이후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점차 출판 관련 일들에 집중하여, ?미술과 생활? 기자, 미진사 주간을 역임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그룹에 참여하여 작가 활동을 시작했고,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지냈다. 90년대 초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2000년 그의 나이 60세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가졌다. 이후 10여 회의 개인전과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저자 심정수는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부터 ‘현실과 발언’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사)민족미술협회 고문을 지냈다. 1981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2008년 일민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질 때까지 여덟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1966년 신인예술상, 1991년 가나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을 비롯한 많은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저자 신학철은 1943년 경북 금릉군 감문면에서 출생하여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70년 ?AG전?, 1972년 ?앙데팡당전?, 서울미술관 제1회 개인전 등 수많은 작품과 전시를 통해 신선한 충격과 문제작들을 발표해온 그의 예술 세계는 사회적 현실 혹은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현상과 사물의 진실을 드러내왔다. 대표 연작으로는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갑돌이와 갑순이? 등이 있다.
저자 손장섭은 1941년 전남 완도군 고금면에서 출생했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수료한 후 1979년에는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85년 민족미술인협의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역사와 현실, 혹은 삶에 대한 애정을 담은 풍경을 통해 유연하지만 단호한 민중미술의 미학을 견지해오고 있다. 2017년 학고재갤러리에서의 전시를 비롯, 15회의 개인전과 15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1998년 제10회 이중섭미술상과 제15회 금호미술상을 수상했다.
저자 박석규는 193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와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했고, 목포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20여 년 동안 갯벌에서 노동하는 민중들의 강인한 삶의 리얼리티를 그려내오고 있다. 목포미술협회 회장, 목포민주시민운동연합 공동의장, 목포민족문화운동연합 의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라남도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중미술 작가와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저자 김정헌은 1946년 평양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 공주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 80년대 미술운동에 참여,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맡았고, 이후 문화연대 대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여러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고 제1회 광주비엔날레 국제현대미술제 특별상을 수상했다.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문화예술 행정가이자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그리고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체 운동가로서 현재에도 그의 실천은 미술과 삶의 구분 없는 영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저자 김인순은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3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생활미술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20년 뒤인 1984년에 첫 개인전을 열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85년 윤석남, 김진숙과 여성주의 그룹 ‘시월모임’을 결성했고, 민족미술인협의회 창립에 참여했다. ‘여성미술분과’ ‘여성미술연구회’ ‘그림패’ 둥지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고, 유홍준과 민미협 공동대표를 지냈다. 그의 삶과 예술은 ‘여성’ ‘인간’ ‘예술정신’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데, 최근 그는 ‘태몽’을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저자 강연균은 1940년 전남 광주에서 나고 1962년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하여 짧은 수학기를 거쳐 중퇴(1996년 명예졸업장 증정)했다. 1980년 광주의 참화를 겪고 난 체험을 ?하늘과 땅 사이? 연작들로 환생시켜 1982년 서울 롯데미술관에서 전시했으며 1996부터 98년까지는 광주광역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광주오월시민상(1996), 광주시민예술대상(1998), 보관문화훈장(1998)을 수상하며 현재는 광주미술상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예술은 고향에 깔린 향토적 서정, 즉 서민들의 삶이 담긴 일터나 민중의 애환이 담긴 남도의 산야를 현실 감정이 깃든 사실주의로 표현한 풍경, 정물 등의 수채화로 민중미술의 한 축을 이루었다.
목차
- 발간에 부쳐
1. 주재환과의 왁자지껄 명랑 방담 / 이영욱
2. 민족미학에 뿌리 내린 심정수의 조각 / 최태만
3. 신학철,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회화적 정신분석 / 심광현
4. 그림의 신명, 손장섭의 예술 / 박진화
5. 갯벌에서 민중을 만난 작가, 박석규 / 박현화
6. 김정헌, 미술을 통해 세상을 보다 / 신정훈
7. 김인순, 여성의 현실에 맞서다! / 김종길
8. 민중의 정한(情恨) 속으로 낮게 강직하게, 강연균의 길 / 박응주
책 속으로
“이영욱: 그니까 지금 그 당시 그냥 문학 좀 한다, 뭐 좀 한다 이러면서 그냥 명동에서 술 마시고 옆에서 일 하나, 건수 있으면, 너 할 줄 아니 하면서 시키고 ….
주재환: 그렇지. 그 선배가 독립을 해서 사람 필요하니까, 민학사라고. 심우성 씨 일을 도와주고 있는 나를 찍은 거지, 그때. 그냥 안면으로 먹는 거지. 이력서 필요 없어. 인건비가 싼 사람이 필요하니까. 지금이랑 다르게. 그니까 그때는 그게 없잖아, 스펙이 없다고, 스펙. 스펙이 없잖아. 그래서 뭐 일할 때도 알아서 그냥 써. (웃음) 정으로 먹고 산 거야, 정. 초코파이 정처럼.
이영욱: 그러니까 전후 문화계, 그 세계에 계셨던 거네요. 제일 좋은 학교 출신이시네, 그럼. (웃음) 전후에 제도라는 게 허술해서 실질적으로 교양이 전수되던 데가 거기였고, 거기 계신 거네요. (웃음) 제도권과는 다른 그 문화계 바닥이 학교보다 배울 게 더 많았는데, 선생님이 거기 출신이다 이거죠.
주재환: 그렇지, 그렇지.” (27쪽)
“최태만: 문학도 좋아하시고 문예반에서 활동도 하셨는데 서울대학교 조소과로 진학하신 데는 특별한 동기가 있었습니까? 혹시 부모님께서 반대하지는 않으셨는지?
심정수: 아, 무척 심하셨지. 몰래 들어간 거라구. 그 당시에는 라디오에서 합격생 명단을 발표하는데 법대 다음에 미대잖아요. 근데 법대 명단에 없는 거야. 법대 지원 안 했으니까 당연하지. 미대 합격생 명단이 발표되는데 내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는 거예요. 미대 수석은 아니고 조소과 수석이었나 봐. 그래서 아버지도 알게 되신 거지. 어떡하나. 합격했으니 인정하실 수밖에. 회화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조소과로 갔지만 조소과 들어가기 전까지 조각은 해본 적이 없어. 옛날에는 조소과가 있는지도 몰랐어. 대학 가서 알았던 거야.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각을 전공한 거 너무 잘 선택했다고 믿어요. 화가는 조각을 할 수 없지만 조각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잖아.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부 다 공부했다구. 회화니 조소니 구별이 없었지.
최태만: 조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조소과로 진학한 게 믿어지지 않네요.” (84~85쪽)
“심광현: 선생님은 첫 전시를 하기 전에 이미 아방가르드적 실험을 다양하게 해보시고 나서 다시 리얼리즘 작업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현실의 어떤 단면을 직접 그리기보다는 그런 단면을 찍은 사진들을 다시 몽타주해서 새로운 전체를 그려내는, 현실의 단편들을 가지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전체적으로 재구성해냈기에 강력한 힘이 배어있었던 것 같아요. 아방가르드 작업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자유롭고도 날카로운 구성이 나오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신학철: 아까도 얘기했듯이 자율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내가 표현하는 것이 실은 자율이에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방가르드에서 배웠지만, 아방가르드 자체를, 그 자체로 따르다 보면 자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보다는 현실 자체를 내 마음대로 나타내는 것이 나의 자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잡지에 있는 사진들을 만나면서 현실과 만나게 된 거죠. 상품의 이미지, 사진 이미지 자체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다 이야기해줘요.” (147쪽)
“손장섭: 거참, 말하기 뭐한 얘긴디 …. 그러니까 월남에 가면 전투 수당을 받아. 그 전투 수당이 꽤 나오거든. 그거 1년 모으면 등록금은 실컷 되고도 남을 돈인데, 그 돈을 집에다 보내면 다 써버릴 것 같아 친구한테 보냈어. 그 돈을 꼬박꼬박 매달 말이야. 그래서 믿을 만한 친구한테 부쳐줬는데 …. 친구가 제대하고 나와서 만났더니, 전부 다 써버린 거야, 친구가.
박진화: 뭐요? 월남서 보낸 돈을 친구가 다 써버렸다고요?
손장섭: 그랬다니깐! 그 돈을 친구한테 보냈는데, 그 친구가 그걸 다 써버렸어! 갔다 오니까. 내가 이제 다시 학교 등록을 할라고 홍대까지 갔다 왔는데, 복학하려고, 학교서 알아보고 친구 만나서 “너 인제 돈 줘야되겠다” 했더니, 다 써버렸다는 거야. 다 써버렸다는 그 말만 하더라고. 하여간 그 땜에 배신감 많이 느꼈지. 근데 어떡해! 다 날려버렸다는데 ….
박진화: 허! 그거 참! 그 친구분은 누구세요? 성함이 누구신지요?
손장섭: 뭘, 지금 그 얘기 하면 뭘 해. 그땐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그래서 학교는 집어치고 직장에 다니게 된 거야.” (176~177쪽)
“박현화: 그럼 혹시 ‘현실과 발언’ 그룹과 연계된 적은 있으시나요?
박석규: 현실과 발언에 나는 참여를 안 했어. 우린 처음부터 민중미술을 한 사람들은 아니거든. 난 민미협이 발족된 다음부터 참여를 한 셈이지. 맨 먼저 작가들이 했던 일은 일제 식민지 잔재 미술의 청산이었지. 그 다음에 중요한 이슈는 주로 서구에서 들어오는, 그러니까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미술과 무분별하게 들어온 현대미술에 대한 반성, 이런 것이 주축이 되었어요. 그 당시에 원 선생 논문도 일제 식민지 잔재 미술을 어떻게 청산해야 될 것인가, 그런 이슈가 강했어요.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자는 것은 문학도 같이 이루어졌어요. 그래 나도 고민 많이 했지. 83년도 1년 동안 사실은 그림을 잘 못 그렸어. 그러니까, 우리가 해방 1세대인데 우리 스승들은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들이었지. 그래서 인상파 정도의 그림밖에 할 줄 몰랐으니까 ….” (256~257쪽)
출판사 서평
민중미술 태동 전후를 둘러싸고
8인의 원로 작가와 8인의 평론가가 벌인 심층 대담
그동안 민중미술에 관한 조명이 전혀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충분한 연구와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술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일천했던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이처럼 혁신적인 미술을 표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돌이켜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많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일궈낸 미술사적 성과에 비추어볼 때 6,70년대에 그들이 미술을 하게 되었을 이러저러한 동기, 성장하면서 받았을 미술 교육,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식 등과 연관 지어 추측해볼 때 그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1세대 민중미술 작가들 중에서 벌써 고인이 된 분들이 여럿이고 보면(얼른 손꼽아보면 오윤, 김용태, 여운, 원동석 등이 있다), 민중미술에 대한 이후의 제대로 된 조명을 위해서라도 민중미술 태동을 둘러싼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작업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도 이 책을 만드는 동기로 작용했다. 민중미술은 불과 30여 년 전의 가까운 시기의 미술 활동들이었지만, 우리 근현대의 고질적인 문제인 아카이브의 부재는 민중미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당시의 활동들을 증명해줄 작품들, 사진들, 문서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기에, 그들의 기억을 들추어 기록하고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은 아카이브의 부재를 조금이나마 메꿔줄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이에 『민중미술, 역사를 듣는다 1』은 민중미술 관련 연구를 해온 여덟 명의 평론가와 미술사가가 원로 작가들과 벌이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길게는 반세기 전의 기억까지 복원하고 있다.
평론가 중심의 민중미술론에서
작가 중심의 민중미술론으로!
민중미술론은 그동안 평론가 중심으로 기술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80년대 당시에도 작가들의 작품 세계와 평론가들이 주창하는 이론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일이 없지 않았다. 그러한 간극이 80년대라는 급박한 현장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적인 긴장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단순화시키는 문제점을 낳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민중미술을 이해하는 방식도 많은 부분에서 평론가 중심의 민중미술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때로 민중미술에 대한 편협한 이해도 이에 기인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민중미술, 역사를 듣는다 1』에서 여덟 명의 원로 작가들은 같은 세대이면서도 민중미술에 대해 견지했던 각자의 입장과 기억이 결코 단일하지 않다. 심지어 민중미술에 대한 작가들의 평가 역시 몇 개의 단어로 축약할 수 없는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많은 질문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들은 평론가와 다르게 민중미술을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그동안 평론가 중심의 민중미술론이 주류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며, 그러한 간극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물음들이 가능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물음들이 민중미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하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신정훈: 그럼 ‘현실동인’ 이야기는 군대에서 들으셨네요.
김정헌: 그렇지. 군대 가 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선데이 서울?을 내가 봤어, 군대 내무반 막사에서. 그런데 아니, 이게, 이놈들이 무슨 전시회를 한다고 그림이 소개가 되어 나오는 거야. 그래서 깜짝 놀랐는데, 근데 그거 보고 아 얘네들이 뭔가를 했구나. 그래서 잘 된 줄 알았더니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게 중앙정보부에 포착이 되가지고 곤욕을 치뤘는데, 임세택 아버지가 무마를 시킨 모양이야. 그런데 그때 그림들을 나중에 보니까 김지하나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오윤이 멕시코의 오로츠코니 리베라니 그 사람들의 역량을 책 같은 것을 통해 많이 본 모양이야. 김지하 씨가 ‘현실동인’ 선언문을 썼을 거야.” (282~283쪽)
“김종길: 선생님, 언제부터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거예요?
김인순: 여기도 나와 있는데, 결혼하고 얼마 동안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월급쟁이 돈 없는 남자를 만났기 때문에 돈도 좀 벌어야 했고, 또 나는 생활미술과를 나왔으니까 뭐 회화를 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도 없었죠. 하지만 꿈은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무렵이었어요. 왜 실천문학(사)에서 나오는 문학잡지 있잖아요? 젊은 친구들이 만들었던 것. 그 문학잡지를 읽으면서 ‘문학에서는 이런 역사의식이 있는 작품들이 나오는데 왜 미술은 없을까.’ 그때는 ‘현발’에 대해서도 몰랐으니까. 왜 미술은 그런 작품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가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주제가 내 가족과 6·25 이야기더라고요. 그걸 가지고 첫 개인전을 한 거예요.
김종길: 1980년대 초반이면 어쨌든 현발도 있었고 다른 미술 단체들도 있었을 텐데 거기에 들어갈 생각은 안 하셨어요?
김인순: 몰랐어요. 전혀 몰랐어. 김윤수 선생님을 알게 된 것도 그때 ?계간미술?에 쓴 평론을 보고 알았지.” (321~322쪽)
“박응주: ‘그냥 화가’, ‘좋은 화가’, ‘각성한 사람’ 정도의 의미를 말씀하고 싶어 하신 거군요. 그 안에 선생님의 어떤 민중미술론이 있군요.
강연균: 90년대 언제쯤이었던가 한 신문에 기고했던 짧은 글에 써 본적이 있는데, 나는 ‘역사’를 사회과학에서가 아니라 길바닥에서 배웠고, 80년 광주의 시련을 치르면서 ‘민중’을 껴안게 되었다고 고백했던 것이지. 자, 이 사실을 보자고. 민중미술이란 말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나지만 어쨌건 나는 민중의 삶을 그렸고 광주의 아픔을 그렸단 말이지. 이 불일치가 내겐 있어. 예술은 내가 딛고 선 사회나 삶 속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은 그저 예술인가? 이런 갈등은 나의 내부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인 거지.” (384쪽)
기본정보
ISBN | 9788965642039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11월 30일 |
쪽수 | 416쪽 |
크기 |
151 * 226
* 29
mm
/ 746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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