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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희 저자(글) · 윤상구 사진
기파랑 · 2014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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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그날의 역사]는 옛날 궁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동선을 쫓아 5대 궁궐의 이곳저곳으로 독자들을 이끌며 도처에 스며있는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들을 자상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역사적 체취가 남아있는 유적의 사진뿐 아니라 철저한 고증을 통해 현대 기술로 섬세하게 복원한 궁궐들의 새로운 사진들까지 함께 실어 현장감을 더하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황인희

저자 황인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과교육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에서는 사회 ㆍ 역사 교사가 되는 공부를 했지만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했다.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 (주)계몽사 홍보실장, 월간 《샘터》 편집장을 역임했고 2004년 이후부터는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또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을 소개한 글로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현재는 역사 칼럼니스트로, 두루마리 역사교육연구소 대표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에 《역사가 보이는 조선 왕릉 기행》, 《고시조 우리 역사의 돋보기》, 《잘! 생겼다 대한민국》, 《망국의 코드(근간)》 등이 있다.

사진 윤상구는 성균관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주)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주)LG화학 고분자연구소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사진 촬영 외에도, 전생에 고양이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공으로 하는 운동은 무엇이든 다 좋아한다. 특히 야구를 가장 좋아해서 사회인 야구 선수에 감독까지 경험해봤다. 현재는 등산과 테니스를 주로 하는데 이렇게 다져진 체력은 여러 유적지를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내 황인희와 함께 여러 권의 책을 공동 작업하였고, 2009년에는 조선 왕릉 사진으로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관광 사진 콘테스트에 입상하기도 했다.

목차

  • 들어가기 전에
    경복궁 - 조선의 정궁, 그러나 버려진 궁궐
    창덕궁 - 임금들이 사랑했던 아늑한 궁궐
    창덕궁 후원 - 자연과 어우러진 조선의 대표적 정원
    창경궁 - 임금의 효심으로 지어진 궁궐
    덕수궁 - 대한제국의 영광과 망국의 한이 깃든 궁궐
    경희궁 - 왕기가 서린, 그러나 사라졌던 궁궐

출판사 서평

단순한 궁궐 안내서가 아닌 스릴 넘치는 역사서
법궁(法宮)인 경복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등 서울의 궁궐에는 조선 27대 왕조, 그리고 그 후 100년의 애환과 영욕이 서려있다. 근정전의 돌계단에, 광화문과 흥례문의 문턱에, 연생전의 지붕에, 달빛을 머금은 경회루에, 인정전 용마루의 오얏꽃 문양에 …. 궁궐을 이루는 나무, 돌, 문양, 색채가 모두 묵묵히 역사를 지켜보아온 산 역사책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옛날 궁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동선을 쫓아 5대 궁궐의 이곳저곳으로 독자들을 이끌며 도처에 스며있는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들을 자상하게 들려준다. 가령 이런식이다.

그날, 영조 46년(1770) 4월 5일, 임금은 광화문에 나가서 유생 수천 명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영조는, 하고 싶은 말을 그날 중에 하면 죄를 주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상소하여 직언하는 자가 있으면 역률로 다스리겠다고 했는데 유생들은 모두 아뢸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임금은 그 자리에서 동몽(童蒙 :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5세에서 13세까지의 아동)들에게 《소학(小學)》 한 대목씩을 외워보게도 했습니다. 동몽 가운데 무인의 아들들에게는 “집안에 내려오는 무인의 직업을 어찌 버리려하느냐?”라고 말하며 병조 판서에게 무(武)를 권장하라고 명하기도 했습니다.
- 경복궁 광화문 -

그날, 정조 5년(1781년) 3월 10일, 규장각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이전에 후원에 있던 규장각을 영숙문(永肅門 : 창덕궁의 북문이며 후원의 서문) 밖 국별장청으로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도 지세(地勢)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건물이 좁아서 마땅치 않았습니다. 비용 때문에 확장하여 짓는 것도 문제가 되었는데 마침 도총부가 창덕궁과 창경궁에 나뉘어 있어 이를 창경궁 도총부로 합하고 남은 자리에 규장각을 옮기게 된 것이지요. 정조는 이전을 허락하고 손수 쓴 ‘이문지원(?文之院)’이라는 편액을 내려주었습니다.
다시 아까의 갈림길로 돌아와 오른쪽 검서청으로 가보겠습니다. 검서청은 책을 관리하는 검서관들이 근무하던 곳입니다. 정조 이전까지 서얼 출신은 관직에 나갈 수 없었는데 정조는 이 관습을 깨고 서얼들을 등용했습니다. 그 중 실학자로 잘 알려진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등은 검서관으로 일했습니다. 이 건물도 《북학의》를 쓴 박제가가 감독하여 지은 건물입니다.
- 창덕궁 규장각 -

그날, 순종 9년(1916) 5월 8일, 태황제이던 고종은 준명당에 가서 유치원 학생들을 만나고 붓과 먹을 선물로 내려주었습니다. 고종은 이처럼 유치원에 다니는 덕혜옹주를 보러 준명당에 가끔 들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고종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덕혜옹주의 삶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고종과 귀인 양씨가 세상을 떠난 후 외롭게 살던 덕혜옹주는 열다섯 살에 강제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지요. 식민지 조선의 공주라며 심한 따돌림을 당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발성 치매증이라는 정신병까지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중에도 옹주는 당당한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의 황족인 내친왕에게 인사를 하라는 말에 덕혜옹주는 “나도 대한제국의 황녀인데 왜 내가 절을 해야 하느냐”라며 단호하게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 덕수궁 준명당 -

현장감을 더해주는 풍부한 사진자료

궁궐은 도시공원이나 휴식처이기 전에, 6백년동안 고도(古都)의 중심에 세워진 역사와 정치문화의 진열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본다면 그저 오랜 건축물, 사극이나 교과서 안에서 보던 공간, 어릴 적 소풍을 가던 유적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다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생생한 “우리의 산 역사”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또 역사적 체취가 남아있는 유적의 사진뿐 아니라 철저한 고증을 통해 현대 기술로 섬세하게 복원한 궁궐들의 새로운 사진들까지 함께 실어 현장감을 더하고 글을 읽으며 쉽게 궐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개념도를 넣었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65238812
발행(출시)일자 2014년 09월 30일
쪽수 384쪽
크기
152 * 225 * 30 mm / 746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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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부는 예로부터 지배층을 위한 공간이었다. 지금에야 겉으로 명시된 신분이랄 게 없지만,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고 돌아다니기 위해선 어느 정도 레벨의 대학을 졸업하고 괜찮은 직장에 입사해야만 한다. 하물며 신분제가 견고했던 과거에는 더 했다. 극소수의 지배계층만을 위한 공간이 아예 따로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왕과 그 가족들이 있었다. 누가 왕인지를 모르는 시대야말로 태평성대라 했지만, 애초에 왕이 누군지 알 기회 자체가 있긴 했을까 의심이 간다. 서로 스쳐지나갈 기회조차도 없던 시절, 그 경계에 놓인 것이 바로 성곽이었고 궁궐이었다.
여전히 서울한복판에는 조선의 5대 궁궐이 위치해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요 문화재인 이들 궁궐들은 외국인들이 방문했을 때 필히 들려야 하는 명소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됐는지라 여전히 적지 않은 부분이 복원을 필요로 한다. 안타깝게도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에 의해 원형을 잃은 곳들까지 복원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부족하나마 현존하는 궁의 모양새를 통해 지난날 지배계층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소풍장소일 것이고, 가족 나들이 장소이기도 한 궁이지만 엄연히 한 나라의 정사를 돌보던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궁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경복궁을 으뜸이라 일컫는다. 조선 건국 후 가장 먼저 지어진 정궁(正宮)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경복궁은 임금이 공식적으로 나랏일을 보고 생활을 하던 법궁(法宮)이기도 하다. 경복궁의 위치는 최고의 명당자리로 꼽아도 무리가 없다. 북악산과 남산, 낙산과 인왕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청계천과 한강이 안팎으로 각각 흐르고 있다. 하지만 풍수지리설이 언제나 옳지만은 않은 듯 경복궁을 대하는 왕들의 태도는 데면데면(?)했다. 초창기 왕권이 확립되기 전 경복궁은 왕자의 난의 배경이었다. 권력을 탐하는 첨예한 대립이 있던 장소를 꺼리는 마음에 정종은 개성으로의 천도 아닌 천도를 감행하기도 했다. 세종 시절부터 드디어 제대로 활용이 되는가 싶었으나 500년의 나라 역사에 비한다면 찰나였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이 등장할 때까지 폐허인 상태로 놓여 있었다.
창덕궁은 경복궁을 외면한 왕들이 좋아했던 곳이다. 별궁이었던 창덕궁을 왕들이 가장 좋아했던 까닭으로 저자는 역시나 지형을 꼽는다. 숲과 산자락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사생활 노출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는 게 그 이유다. 경복궁과 달리 자연친화적이란 점 또한 창덕궁의 매력이다. 십 년 전 즈음 개방된 후원의 경우 자연을 훼손치 않으면서 정원을 가꾼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장소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성종이 정희왕후, 소혜왕후, 인순왕후를 위해 지었다는 창경궁, 세조의 개인집이었으나 임진왜란을 피해 의주에 갔다 온 선조가 거처로 택하면서 궁궐이 되어버린 덕수궁, 왕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경희궁까지.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한 바퀴 돌고 나온다면 알고 나면 각 궁궐에 깃든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다. 역사에 부침이 많았던 만큼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경복궁은 형제간 칼을 겨눈 장소다. 창덕궁 돈화문은 이인좌의 난에 얽힌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으며, 창경궁은 희대의 폭군 연산군이 어머니의 비극을 접하고 폭군의 면모를 갖추어간 곳이다. 덕수궁은 제국을 꿈꾸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대한제국과 깊은 관련이 있고, 경희궁은 아예 없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이 훼손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학창시절 국사과목은 단순암기 과목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반짝 암기했다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잊어버리기 일쑤였던지라 당연히 흥미가 덜했다. 그나마도 요즘 아이들은 필수과목이 아니다보니 아예 제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시대 순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인데 저자는 장소를 통해 역사를 풀어냈다. 각 궁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 속 그날들을 펼쳐놓는데, 무심하게 둘러보았던 궁들을 향한 호기심이 일었다. 건물 하나하나가 간직하고 있는 기쁨과 슬픔은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복잡한 심경을 안겨다준다. 당대를 호령하던 이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는 사실이 주는 쓸쓸함을 건물들은 과연 이해할까. 무생물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궁에서 접하는 역사는 살아서 요동치는 생물과 닮은꼴을 하고 있었다. 그토록 느끼고 팠던 살아있는 역사, 생생한 역사를 궁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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