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서 인류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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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동아일보 > 2022년 12월 5주 선정
작가정보
역자 강동혁은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면서도 새로운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책들을 쓰거나 소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번역서로는 소설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이 있다.
저자(글) 마사 C. 누스바움

저자 마사 C. 누스바움은 194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로서 뉴욕 대학교에서 연극학과 서양고전학으로 학사학위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고전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와 브라운 대학교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 대학교 철학과, 로스쿨, 신학과의 법학ㆍ윤리학 석좌교수이다. 노엄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등과 함께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지성’에 두 차례(2005, 2008년) 선정되었다.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Hiding from Humanity』, 『인류애의 함양Cultivating Humanity』, 『정의의 최전선Frontiers of Justice』, 『선의 연약함The Fragility of Goodness』 등 수많은 책을 썼다. 이 책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누스바움은 예리하고 철저한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동성애자들의 평등권에 반대하는 주장의 가장 중요한 원천, 즉 혐오의 정치를 무너뜨리기 위한 최전선에 섰다. 2015년 6월 26일 미국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이라는 획기적인 판결은 연방대법원의 시각이 인류애를 중심에 둔 시각으로 바뀌어갔음을 시사하며, 누스바움의 강력한 주장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명분을 더욱 진전시킬 것이다.
해제 게이법조회
해제 게이법조회는 법조계 및 법학전문대학원에 있는 게이들이 모인 단체다. 게이법조회는 미국연방대법원의 전향적인 판결들을 접하고, 이를 소개하고자 모인 게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는 재조 및 재야에 다양한 관심사를 갖는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의 존재를 통해 성소수자에게 척박한 대한민국의 법조계 환경 속에서 각자의 자존감과 게이다움을 잃지 않는 것을 소박한 목표로 한다. 거기에 더해 법조계 내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고 이를 통해 법조인들에게 가깝고 친숙한 동료들도 성소수자일 수 있음을 인식시켜 미국연방대법원과 같은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는 데에 일조하기를 희망한다.
목차
- 헌사
한국어판 서문
서론
제1장 혐오의 정치: 실제, 이론, 역사
혐오의 실천: 미국의 성 정치
혐오의 이론: 데블린과 카스
혐오: 신뢰할 수 없는 감정
역사 속의 혐오: 낙인찍기와 예속화
제2장 인류애의 정치: 종교, 인종, 젠더, 장애
개인에 대한 존중과 자유의 범위
삶의 의미와 자아 찾기: 성적 지향과 종교
체계적 불이익: 성적 지향과 인종, 젠더, 장애
상상력의 필요성
제3장 소도미 법: 혐오와 사생활 침해
사회에 대한 두 가지 관점: 데블린과 밀의 논쟁
역사: 소도미 법의 이론과 실제
자유, 사생활, 그리고 수정헌법 제14조
바워스 대 하드윅 판결: 사생활 침해와 둔감성
로렌스 대 텍사스 판결: 평등한 자유의 체제를 향하여
제4장 차별과 차별금지: 로머 대 에반스 판결과 적의
가족가치와 차별금지법
1막: 콜로라도 주ㆍ기본권과 정치적 진보
2막: 재판ㆍ적의의 행진
3막: 연방대법원ㆍ적대감과 합리적 근거
위헌의심차별: 성차별ㆍ불변성?
제5장 결혼할 권리?
결혼이란 무엇인가?
역사 속의 결혼: 황금시대의 신화
동성결혼에 대한 공포: 오염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는 주장들
“결혼할 권리”란 무엇인가?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캘리포니아, 아이오와: 법적 문제들
결혼의 미래
제6장 사생활 보호: 섹스클럽, 공공장소에서의 섹스, 위험한 선택들
혐오: 아직도 건재하다
개념 분명히 하기: 손해, 생활방해, 사생활
섹스와 생활방해죄
헌법적 원칙? 평등보장조항, 적법절차조항, 표현의 자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혼란, 그리고 또 혼란
합리적 정책: 격리와 자기본위적 행위
결론_혐오 이후?
해제_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류애를 기대하며(게이법조회)
옮긴이의 말
후주
찾아보기
추천사
-
“우연하게도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1995), 『혐오와 수치심』(2004), 그리고 『혐오에서 인류애로』(2010)를 출간 순서대로 읽었다. 첫 책에서는 ‘법에서의 감정의 문제’가 포괄적으로 서술되었지만, 두 번째 책에서는 감정 중에서도 ‘혐오’와 ‘수치심’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었고, 마지막 책에서는 ‘혐오’, 그중에서도 ‘투사된 혐오’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누스바움의 서술이 점점 명료해지면서 마지막 책에 이르러서는 혐오범죄를 향한 칼끝이 비전의 검술을 연마한 검객처럼 예리해지는 것을 느꼈다. 『혐오와 수치심』이 조금 어려웠던 독자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녀의 논지를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혐오와 수치심』, 『시적 정의』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서를 해봐도 좋겠다.”
-
“1974년,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닐 때였다. 같은 반 친구 집 문간방에 젊은 형제가 세를 들어 왔고 그중 동생에게서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 여럿이 과외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형제가 야반도주하듯 갑자기 동네를 떠났다. 과외 공부를 하던 나와 친구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난 형들에게 섭섭해했는데, 나중에 그들이 형제가 아니라 ‘호모들’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내쫓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모가 도대체 뭐기에 선량해 보이던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내쫓았는지 궁금해하던 내게 어른들은 ‘더러운 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짓던 표정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마치 구정물을 마신 것 같은 표정이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성소수자를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친구로,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한 걸까?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뭘까? 이 책은 그 이유를 법철학적으로 찾고 있는 책이다. 해답이 궁금한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다. 어제보다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다.”
책 속으로
본문에서
-이와 같은 격변의 시대에 대한민국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을까?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동성애에 낙인을 찍는 행위는 개신교에서 비롯됐으므로, 미국의 발전상과 한국의 현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빅토리아 영국식 청교도주의로부터 구체적인 영향을 받은 적이 없는 한국은 미국이나 인도와 달리 한 번도 동성애 행위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한 이점이다. 한국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상호합의하에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를 당할 위험에 처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수많은 불이익을 경험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첫째, 한국에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를 포함하는 일반적인 차별금지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법을 통과시키려는 노력은 여러 번 있었으나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번번이 이를 좌절시켰다.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동성결혼을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그 명분에 힘을 실어주기는 했지만, 동성결혼 합법화까지는 아직도 길이 멀어 보인다. (중략) 국내 상황을 돌아보면 한국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는 여전히 무거운 낙인이 찍혀 있으며, 이들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LGBT에 속하는 개인 중 상당수가 차별을 당할까봐 두려워 여전히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있다. (13~14쪽)
-‘혐오의 정치’는 사회가 모든 시민의 평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추상적 이념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만민의 평등에 기초한 사회에서는 모든 시민이 법에 따라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이념에 따르면, 내가 어쩌다가 다른 사람 때문에 구역질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법 테두리 밖에 있는 존재로 취급할 수는 없다. 시민으로서 그 사람이 누리는 가장 기초적인 권리를 부정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심지어 미국의 연방대법원조차 이런 ‘적의animus’를 사법적으로 존중하면 평등의 원칙이라는 이념이 가장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형태로 침해된다고 간주한다. 적의에 대한 사법적 존중은 또한 이성에 따른 정치라는 근본적 패러다임마저 깨뜨린다. ‘적의’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어진 법에는 이성적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23쪽)
-사회는 구성원들 중 몇몇을 이른바 ‘오염원’으로 규정하도록 가르친다. 다시 말해, 투사적 혐오는 사회적 기준에 의해 형성된다. 최소한 몇몇 사람들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간주하는 건 모든 사회의 공통점인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전략은 지배집단과 그들이 두려워하는 그들 자신의 동물성 사이에 안전한 저지선을 설치할 목적으로 채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혐오스러운 동물성의 세계와 ‘나’ 사이에 준準-인간이 존재한다면, ‘나’는 필멸하는/부패하는/냄새나는/진액이 흘러나오는 것들로부터 그만큼 떨어져 있게 되는 셈이다. 진짜 위험과 신뢰할 만한 연관관계가 거의 없는 이 투사적 혐오는 망상을 먹고 자라며 예속을 만들어낸다. 혐오가 자신을 순수한 것으로, 타자를 더러운 것으로 표상하려는 뿌리 깊은 인간적 필요에 봉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필요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오히려 이러한 전략은 사회의 공정성을 해친다. (55쪽)
-그러나 또 다른 이주민들은 점차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유대인이나 침례교도들, 아메리카 원주민들 같은 타인들의 행위는 여전히 나쁜 것이라고 거부하면서도, ‘사람’ 자체에 접근할 때는 좀 더 상상력과 이해력이 깃든 태도를 갖기 시작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교도들도 이주민들 자신과 상대적으로 비슷하게 보였다. 타인을 사탄의 대리자가 아닌, 나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어려운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자신이 구상하던 종교적 존중의 정치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로저 윌리엄스는, 종교적 평등에 대한 그의 위대한 저술에서 “자비롭고 동정심 많은 독자들”을 향해 “나는 대단히 신비로운 세상에서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둘 다 각자의 양심이라는 능력에 의존하는 탐색자에 불과하다. 그 양심은 우리가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참된 요건이다”라고 호소했다(이러한 접근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행위’가 악마적이라는 주장과 완벽히 양립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라. 실제로 윌리엄스 자신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악마적이라고 보았다). (90쪽)
출판사 서평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 동성결혼 합법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과 김조광수 감독의 동성결혼 혼인신고 소송에 맞붙어 더욱 노골화된 동성애 혐오 시위! 대한민국은 여전히 혐오와 싸우고 있다.”
이 책은…
우리는 성적 지향이라는 분야에서 서로 대단히 다른 두 종류의 정치가
교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김영란 전 대법관, 김조광수 감독 추천
“우리는 누구나 어떤 이유에서든 소수자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세 차례에 걸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보수주의 기독교계의 격렬한 반대 운동에 따라 현재 여전히 국회 법사위원회에 계류중이다. 보수주의 기독교계에서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안에 ‘성적 지향’이란 대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면 목회자가 동성애를 비판하거나 동성애자들의 교회 사용을 거부했을 경우 법적 제재를 당할 수 있다.
법이 도덕적 논쟁에서 발을 빼는 것은 과연 옳은 방식인가? 이에 대해 저자 마사 C. 누스바움은 법률 및 사회가 동성애를 대할 때에 갖는 ‘혐오’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혐오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처럼 이 책은 헌법과 법률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대할 때 갖는 ‘혐오’라는 감정에 대한 훌륭한 사회과학적 분석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성혼에 관한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그의 파트너 김승환은 2014년 5월 21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청의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해 불복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그전에도 동성 간에 혼인 신고를 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여론의 관심을 끈 적은 없었고, 당연히 동성혼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정면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 결정도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2015년 6월 26일 동성결혼 합헌이라는 획기적인 판결이 있기까지의 역사와 평등권에 관하여 새로이 개척해나가고 있는 법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탁월한 책이다.
세계적인 석학 마사 C. 누스바움의 ‘성적 지향과 헌법’에 대한 명쾌한 해석
시카고 대학교의 걸출한 법학ㆍ철학ㆍ신학 교수인 마사 C. 누스바움은 이 책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동성애자들의 평등권에 반대하는 주장의 가장 중요한 원천, 즉 혐오의 정치에 포화를 쏟아붓는다.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2004)이라는 책에서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호모포비아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서 혐오가 어떤 식으로 작동해왔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성적 지향과 헌법’을 다룬 이 책에서는 앞서 소개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최근의 차별 사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소도미 법을 무효화시킨 ‘로렌스 대 텍사스 판결’ 및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차별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무효화시킨 ‘로머 대 에반스 판결’ 모두에서 활용되었던 “적의”라는 법적 개념을 ‘혐오’라고 간주한 자신의 이론을 판결 및 판결에 이르는 추론과정을 통해 심층적으로 입증했다.
예술을 통해, 종교의 내적 개혁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게이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들의 존엄성을 표명하는 커밍아웃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커다란 움직임을 조명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법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은 법이 만인의 평등과 정의를 구현하리라고 기대한다. 이 높은 기준을 법이 항상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적 지향이라는 분야에서 몇몇 국가가 법적 정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혐오의 정치에서 인류애의 정치로”
너무 오랫동안 혐오는 때로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레즈비언과 게이들의 인권에 대한 헌법적 사유를 형성해왔다.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이라는 획기적인 판결은 연방대법원의 시각이 인류애를 중심에 둔 시각으로 바뀌어갔음을 시사하며, 누스바움의 강력한 주장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명분을 더욱 진전시킬 것이다.
누스바움은 혐오의 정치에 정면으로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혐오의 정치는 법 앞에서 모든 시민이 평등하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혐오의 정치 대신 누스바움은 새로이 출현하고 있는 “인류애의 정치”가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을 지지한다.
‘인류애의 정치’는 나와 다른 신념을 갖는 사람도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혐오’라는 감정을 갖는 순간 성소수자는 나와 동등한 인간이 아닌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된다. 저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이와 같은 ‘혐오’에서 ‘인류애’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와 관련된 법의 지형은 세계 곳곳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다수의 ‘부정적 태도’, ‘두려움’, ‘도덕적 기준’, ‘적의’ 등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선언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동성애 성행위에 대해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처벌이 정당하다는 듯하게 설시하였다. 여전히 국가가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내밀한 사적 영역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고민이나, ‘혐오’라는 주관적인 감정이 타인의 평등한 자유를 제한하는 정당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처럼 빈약한 고민의 근저에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동성 간 성행위를 동등한 존엄을 갖는 인간의 행복추구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인식에 이르지 못한 채, 이를 ‘혐오스러운’ 또는 ‘변태적인’ 행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한 법률이 합헌이라고 한, 무려 30년 전의 ‘바워스 대 하드윅’ 판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처럼 성소수자의 성행위를 동등한 인간으로서 마찬가지의 행복을 추구하는 내밀한 영역에서의 결정이라고 전제한다면, 대한민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위와 같은 빈약한 법적 추론은 그 정당성을 잃고 만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접근방법을 통해 성소수자의 성행위는 기본권의 성질을 획득하게 되고, 이로써 이에 대한 제약은 “기본권 제한의 합헌성의 범위와 한계”라는 대단히 풍부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다고 당당하게 기술하고,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다는 이유로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제 시대의 변화에 답해야 할 것이다.
2015년 6월 ‘오버게펠 대 호지스’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이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권리인 만큼 미국의 모든 주에서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혐오에서 인류애로』의 원서가 2010년 출간되었기 때문에 저자 마사 C. 누스바움은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여 새로이 한국어판 서문을 써주었으며, 특히 대한민국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성적지향ㆍ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에서 제공한 연구논문과 최근의 보도자료를 참조하여 집필하는 수고를 감내해주었다. 또한 법원 국제인권법학회에서 번역 원고의 감수를 맡아주었으며, 미국연방대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을 접하고 이를 소개하고자 모인 법조계 및 법학전문대학원에 있는 게이들의 단체인 게이법조회에서 해제를 썼다.
[책속으로 추가]
-데블린의 주장과 가장 극명하게 대립하는 관점은 19세기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선호했던 사회관이다. 밀이 살던 당시의 영국은 과거의 미국보다도 훨씬 더 사생활을 쉽게 침해하는 청교도주의적인 나라였다. 밀은 청년 시절에 런던의 빈민가에 피임과 관련된 정보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이후 장년이 되어서도 그는 유부녀인 해리엇 테일러와 우정을 쌓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따돌림을 당했다. 정작 해리엇의 남편은 둘의 관계에 반대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해리엇의 남편이 죽은 후에 정식으로 결혼한 두 사람은 결혼하기 전까지 성적 관계를 한 번도 맺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유사한 여러 경험을 겪으면서 밀은 공중의 감정이 개인의 선택을 폭압하는 상황에 치를 떨게 되었다. 명저 『자유론』에서 밀은 어떤 행위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자기본위적” 행위라고 부르면서, 이러한 행위는 결코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도박이나 음주, 평범하지 않은 성행위 등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반대하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 행동이 당사자들에게만 영향을 끼친다면 이를 합법적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밀은 어떤 행동이 동의하지 않는 제3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 즉 “타자관련” 행위일 경우에만 그 행동을 법적으로 타당하게 규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0~101쪽)
-1998년 9월 17일, 45세의 의료기술자인 존 게디스 로렌스는 휴스턴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타이론 가너와 상호합의하에 항문성교를 하고 있었다. 그는 몰랐지만, 이때 로렌스의 이웃인 로버트 로이스 유뱅스가 로렌스의 집에서 “흉기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불만신고를 했다. 유뱅스는 가너의 옛 연인으로서, 로렌스와 가너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적이 있었다. 그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서는 총을 든 남자가 “미쳐 날뛰고 있다”고 했다(유뱅스는 나중에 이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인정했고, 허위신고를 한 혐의로 감옥에서 15일을 살았다). 경찰은 총기를 소지한 채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가 두 사람을 체포했다. 로렌스와 가너는 감옥에서 하루를 보낸 뒤 텍사스의 소도미 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치안판사의 선고를 받았지만, 추후 그들은 상고권을 행사하여 연방대법원에 자신들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겨달라고 청원했다. 텍사스 주법이 오직 동성애자들의 소도미 행위만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평등보장조항과 적법절차조항을 모두 인용하면서 재판에 임했다. 2002년 12월,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을 청취하기로 했다. 마침내 2003년 6월 26일, 연방대법원은 6 대 3의 표결로 로렌스와 가너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써 바워스 판례는 뒤집혔으며 그때까지 잔존하던 소도미 법도 전부 무효화됐다. (107~108쪽)
-이제 성적 지향의 문제로 돌아가자. 이와 관련하여 프론티에로 판결을 참조하는 올바른 방식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에 따라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 온갖 속성을 부과한 뒤 “이런저런 속성을 띠고 있는 만큼 동성애자들에게는 나쁜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온 수많은 사례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교육직에서 배제시킨다. 이 고정관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개인에 대한 온갖 종류의 부당한 판단이 이 고정관념에 따라 일어난다. 그러나 교사 채용을 할 때 지원자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교육기관은 지원자의 성적 지향이 아니라 과거 경력을 검토해야 한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과 프론티에로 판결 사이에는 강력한 유비관계가 발생하며, 두 사건 모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통념적인 “불변성”이 아니다. 차별의 근거가 되는 어떤 속성의 불변성은 그러한 차별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만큼 수많은 편견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핵심적인 개념은, 사람들이 편견에 좌우된 나머지 그 속성을 아무 상관도 없는 목적에 적용한다는 사실, 즉 “무관성”이다. (178~179쪽)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두 번째 주장은 보다 분별 있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장이다. 그들은 국가가 인정하는 결혼의 주요 목적은 2세 생산과 자녀양육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목적에 봉사하는 제도를 보호하는 것은 정당한 공익이므로, 2세를 생산할 수 있는 결혼을 지지하는 데에는 정당한 공익이 걸려 있다는 주장이다.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의 권리를 2세 생산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제한하는 행위까지 공익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점은 분명하지 않다. 2세 생산과 아이들의 보호 및 안전한 양육이 중요한 공익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2세 생산이 가능한 사람들만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것이 정말 최선의 방법이었다면 무엇이 되었든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임신이 가능한 부부에게만 결혼할 권리를 준 적도 없고, 심지어는 임신이 가능한 나이의 사람들만 결혼할 수 있다는 제한을 둔 적도 없기 때문이다. 2세 생산이라는 국익만을 놓고 볼 때, 70세 이성애자들의 결혼은 허용하면서 두 남자 혹은 두 여자 간의 결혼은 금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205쪽)
-어떻게 보면 결혼의 미래는 앞으로도 예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결합하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것이며, 때로는 갈라설 것이다. 다만 국가는 이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반드시 평등에 기초해야만 한다. 그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압도적인 국가의 법익이 걸려 있지 않는 한, 정부는 특정한 혜택이나 결혼의 존엄성이라는 의미의 표현으로부터 어떤 집단의 시민들도 배제시킬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동성커플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완전히 포섭한다는 결정은 인종 간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결정이나 여성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유권자로서, 또한 시민으로서 인정한 결정에 견줄 만큼 거대한 변화다. 이 모든 변화는 헌법이 보장하는 약속의 진정한 실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변화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인류애의 정치’에 따라, 우리는 더 이상 동성결혼을 전통적 결혼을 더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이유로 보지 말아야 한다. 대신 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목적을 이해하고, 결국 이성애자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동성애자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유사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성결혼금지는 인종 간 결혼금지와 마찬가지로, 만인의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차별이다. (232~233쪽)
-예술은 우리에게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삶에 대한 강력한 이미지를 많이 제공해주었으며,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간에 우리 모두는 이 이미지에 의해 변화했다. 이러한 이미지들 중 특히 강력한 것은 캘리포니아의 정치인인 하비 밀크의 삶을 다룬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밀크>인데, 이 영화는 평단과 대중 모두를 상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다양한 관객들이 동성애자 주인공을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브로크백 마운틴>의 경우와는 달리, <밀크>의 주인공은 절망하거나 덫에 걸린 인물이 아니다. 하비 밀크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능했고, 널리 존경받았으며, 역동적이었다. 그는 또한 유쾌한 인물이었다. 그의 관대함과 진취적 기상은 전염성이 높아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켰다(이것이야말로 나중에 밀크를 저격했던, 고뇌에 찬 사람에게는 너무도 위협적이었다). 밀크가 동성애자임을 공개하고 출마하여 캘리포니아의 공직에 처음으로 선출될 때 다양한 관객들은 모두 그를 응원한다. 관객들은 또한 사랑을 찾고 그 사랑과 정치적인 참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밀크의 시도에 공감하며 그 시도를 따라간다. 관객들은 심지어 더러움과 오염에 의존하는 정치를 조롱하는 밀크의 대사를 내면적으로 응원하기도 한다. 밀크의 연설 첫머리를 장식한 대사는 다음과 같다. “제 이름은 하비 밀크입니다. 우리 팀이 되어주십시오.” (283쪽)
기본정보
ISBN | 9788964620656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1월 20일 | ||
쪽수 | 336쪽 | ||
크기 |
153 * 224
* 30
mm
/ 502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From Disgust To Humanity: Sexual Orientation And Constitutional Law/Nussbaum, Martha 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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