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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독일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

통일 20년 독일인 살림살이 들여다보기
우리시대 학술연구
황규성 저자(글)
후마니타스 · 2011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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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20년 독일인 살림살이 들여다보기『통일 독일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 이 책은 '복지국가' 독일의 통일과 그 이후 과정을 살핀다. 저자는 독일인들이 구체적인 생활과 그 조건에 초점을 맞춰 '독일인의 살림살이'에 주목하는 한편, 사람들의 사람을 좌우하는 소득 보장과 밀접히 관련된 노동정책 및 복지정책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독일의 복지국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조명했다.

이 책의 총서 (10)

작가정보

저자(글) 황규성

황규성

저자 황규성은 충북 청주에서 자랐고, 1987년에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2010년 같은 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2011년 2월까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노동시장과 노사 관계 등 노동문제에 대해 공부했으며, 2006년과 2007년에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노동연구원지부 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사회정책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성숙한 복지국가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데 힘을 보태려고 하고 있다.

목차

  • 1장 서론
    1. 문제: 독일통일의 사회적 차원 10
    2. 방법: 해석 투쟁과 현실 구성 그리고 지식 정치학 13
    3. 분석틀: 사회적인 것, 정책 담론, 권력 편제 17

    2장 통일 이전 동?서독 사회정책
    1. 통일 이전 서독의 복지국가 24
    2. 통일 이전 동독의 사회정책 54

    3장 통일 독일의 사회정책에 합의하다(1989~90년)
    1. 통일 합의 형성 64
    2. ‘사회적인 것’의 방향 설정 83
    3. 동?서독 협상과 사회정책 92
    4. 소결: 통일 합의 형성과 사회정책 111

    4장 서독의 사회정책이 동독으로 건너가다(1990~94년)
    1. 동쪽으로 간 사회적 시장경제 120
    2. 노동시장 정책 128
    3. 단체협약 정책 145
    4. 연금 정책 153
    5. 소결: 통일 합의 실현과 사회정책 160

    5장 사회정책이 산업입지 담론에 휩싸이다(1994~99년)
    1. 경쟁력 담론과 ‘사회적인 것’ 168
    2. 노동시장 정책 177
    3. 단체협약 정책 203
    4. 연금 정책: 연금 개혁 1999 222
    5. 소결: 산업입지론과 사회정책 231
    6장 사회?경제체제 혁신 담론이 사회정책을 바꾸다(1999~2005년)
    1. 사회?경제체제 혁신론과 ‘사회적인 것’ 238
    2. 노동시장 정책 253
    3. 단체협약 정책 276
    4. 연금 정책 289
    5. 소결: 사회?경제체제 혁신론과 사회정책 301

    7장 사회정책이 조정 국면을 맞이하다(2005~09년)
    1. 사회성 와해에 대한 성찰 담론의 등장 306
    2. 노동시장 정책 318
    3. 단체협약 정책 326
    4. 연금 정책: 67세 연금 337
    5. 사회?경제체제 혁신 조정론과 사회정책 344

    8장 통일 이후 사회정책과 복지국가, 이렇게 바뀌었다
    1. 통일 이후 사회정책의 변화 348
    2. 통일 이후 복지국가의 변화 I: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병존 356
    3. 통일 이후 복지국가의 변화 II: 복지국가의 지역적 분단 376

    9장 결론: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옮길 것인가?
    1. 독일이 선례가 될 수 있을까? 388
    2. 한국 사회정책의 풍경화 394

    부표 400
    참고문헌 419
    찾아보기 439

책 속으로

독일 정치경제 모델의 특징 중 하나는 고숙련과 고임금을 바탕으로 꾸준한 기술혁신을 통해 사양산업을 후진국에 넘기고 유망 산업을 개척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인데, 이때 직업훈련 정책은 경제구조의 개선 전략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직업훈련 정책은, 산업의 구조 개편 정책과 긴밀히 연계되었다는 점에서, <고용촉진법>의 케인스주의적 성격을 가장 뚜렷이 드러낸다.(37-38쪽)

노동조합이 연대 임금 전략을 채택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사용자가 산별 단체협약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첫째, 사용자단체가 보유한 교섭 전문 인력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기에, 개별 기업마다 단체교섭 담당 인력을 둘 때 발생하는 비효율을 피할 수 있다. 둘째, 사용자단체를 통해 노조의 공격에 집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셋째, 사업장 차원의 노사 관계 갈등을 회피할 수 있다. 넷째, 임금 인상은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이 아니라 평균 수준에 맞추어지기 때문에 노동비용을 억제할 수 있다. 특히 산별 협약은 기업 수준에서 별도로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한 부담을 안지 않고 생산성 향상에 집중할 수 있게 해 투자 유인을 제공한다.(41쪽)

독일 모델의 전성기에 산업별 포괄 협약의 적용률은 약 80퍼센트 후반대를 유지했다고 한다. …… 산별 협약 체제가 정착되자 개별 기업들은 임금 및 노동조건을 경쟁적으로 낮출 수 없게 되었고, 노동자들도 낮은 임금과 노동조건이라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덤핑 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 이렇듯 노동조합의 연대 임금 정책과, 사용자가 수용한 산업별 포괄 협약은 그 자체로 임금 및 노동조건을 균등화해 산업의 지속적인 개선에 기여했다.(41-42쪽)

조기 퇴직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력 감축 전략은 성과가 좋지 않았다. 경제성장이 둔화되어 대규모 고용 창출이 불가능해지자 노동 공급을 감축하는 전략을 선택했지만, 이는 남성에게는 실업 급여 또는 연금 수급 의존도를, 여성에게는 남성 소득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결국 노동시장 내에 남아 있는 노동자에게는 고용 안정에 대한 요구를 강하게 하여,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높아지고 고용 창출은 어려워졌다.(48쪽)

1992년 연금 개혁은 기민당과 사민당이라는 거대 양당의 합의에 근거해 처리되어 대연정의 전통을 잇고 있었다.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인식과 재정 안정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뚜렷한 이견이 없었다. …… 그러나 1992년 연금 개혁은 서독만을 염두에 둔 개혁안이었지 통일 독일을 상정한 것이 아니었다. …… 서독과 통일 독일은 달랐다. 보험료율을 안정화하는 것과 지위 유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상충되는 목표라는 것이 점점 명확해졌다.(53쪽)

동독 연금제도 아래 연금 수급액은 매우 낮아 다수의 연금 수급자, 특히 고령자는 연금만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어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동독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연금 수준을 높일 필요가 없었다. 낮은 연금 수준은 노동력 동원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사회정책의 최우선 목표에 복무했다. …… 소득 불평등의 측면에서 동?서독을 비교할 때 서독은 ‘안정적 불평등’ 체제였고 동독은 ‘하향 평준화’ 체제였다.(61쪽)

기민당은 서독 <기본법> 23조에 의해 동독의 각 주가 서독에 편입하는 방식으로 조속하게 통일을 달성한다는 입장이었고, 사민당은 서독 <기본법> 146조에 의해 동?서독 의회가 동등한 자격으로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제헌의회에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점진적 통일을 주장했다.(75쪽)

동?서독 통합이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로 귀결한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항할 만한 대안적인 사회?경제 형태가 가시적이지 않았다. …… 통일 과정에서 사회적 차원을 강조하고 점진적 통일을 주장한 사민당은 오히려 콜의 공세에 몰려 통일을 지연하는 세력으로 비쳤고 실제로 동독 인민의회 선거에서 참패했다. …… 둘째, 대안적인 사회?경제 형태를 찾을 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 셋째, 통일 당시 서독의 경제적 성과가 성공적이었다. …… 세계시장에서 수출 점유율, 경상수지, 임금수준 및 임금 불평등도와 같은 기준으로 볼 때 통일 당시 서독의 사회?경제적 성과는 흠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 넷째, 동?서독 간의 협상 과정에서 협상 당사자 간 세력 관계가 비대칭적이었다.(81쪽)

통일 이후 독일 사회정책은 통일 당시 환상이 깨지고 동독인들 사이에서 실망과 좌절, 때로는 분노가 생겨나면서 부담을 안게 되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동?서독 간에는 복지국가의 물리적 기반의 격차가 컸는데, 복지국가에 대한 동독의 요구수준은 서독 제도가 감당할 만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동독인들은 경제성장, 물가 안정, 직업 안정성 등의 문제에서 서독인들보다 국가

출판사 서평

문제 제기
* ‘사회적인 것’에 대한 독일에서의 논쟁은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 합의에 이르렀을 때와 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결정되었을 때, 정책의 지속성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 의회에서 정당 간 대립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시장 정책 및 연금 정책에 비해, 사업장에서 노동과 자본이 직접 대면해 결정되는 단체협약 정책은 어떤 차이점을 나타내는가?
* 시장성 강화에 대해 강력한 반대자였던 사민당은 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는가?
* 독일 사회의 복지국가와 사회정책은 온존하고 있는가?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는가?
* 독일 사례는 분단과 사회ㆍ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복지국가 스웨덴』(2011년 1월 출간)이 북유럽 사민주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 정책의 사례를 제공해 관련 논의를 풍부하게 했다면, 이 책은 통일과 사회ㆍ경제적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한 독일의 사례를 통해, 복지 정책(연금 정책)은 물론 ‘사회정책 이전以前의 사회정책’이라고 불리는 노동정책(노동시장 정책과 단체협약 정책)에 대해 밀도 있는 분석을 제공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독일의 ‘사회국가성’에 대한 담론의 변화를 반영해 구분된 시기들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행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서술된다. 노동시장 정책과 연금 정책 영역에서는 연방의회에 제출된 법률안과 의사 회의록을 중심으로, 단체협약 정책 영역에서는 노동조합(노동)과 사용자단체(자본)의 성명서나 입장 발표, 언론 보도 등을 중심으로 담론을 분석했다. 권력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지표인 의회의 의석 배분 상태와 노동과 자본의 조직률, 그 밖에 다양한 통계자료가 1백여 개의 표와 그림으로 제시되어 이해를 돕는다.

60여 년 만에 활성화된 독일의 최저임금제
2008년 10월 7일, 독일 연방 정부는 <최저노동조건법>과 <강행노동조건법> 등 최저임금에 관한 두 가지 법률의 개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특히 <최저노동조건법>은 1952년에 제정된 이래 한 차례도 변경되지 않은 채 유지된 법률이었다는 점에서, 개정안 상정은 고임금 국가로 알려진 독일이 이제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분야를 확대해야 할 만큼 저임금 부문이 급속히 늘어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완전고용, 표준 고용 관계, 산별 포괄 협약으로 이루어진 노동 세계를 기반으로 공적 사회보험이 설계되어 웬만한 사회적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전성기의 독일 복지국가 체제는 옛말이 되었다.
이제 독일의 노동과 복지 제도의 연관성은 전처럼 긴밀하지 않다. 소득 불평등도는 크게 증가했다. 1994년 중위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 소득층이 8.3퍼센트였는데, 2003년 이후 10퍼센트대로 높아져 2006년에는 11.4퍼센트에 이르렀다. 1989년 가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10월 3일 통일 조약이 발효되면서 통일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지 20여 년, 그 사이 독일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독일에서 ‘사회적인 것’의 시기별 변화
1989~94년 통일 합의와 그 이후: “탐탁지 않은 통일 케인스주의?”
통일 이전 서독의 고용 형태는 완전고용과 전일제 노동, 즉 표준 고용 관계가 일반적이었다. 산별노조의 단체교섭과 기업 수준의 사업장 평의회의 공동 결정제가 조화를 이루는 ‘이원적 노사 관계’ 또한 원활히 작동되었다. 이 같은 노동 세계의 안정성으로 충분했기에, ‘최후의 안전망’인 공공 부조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당시 세계화, 탈산업화, 대량 실업의 발생,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 등으로 말미암은 ‘복지국가의 위기’에서 독일도 자유롭지 않았으나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한편 ‘먹고살기 힘든 평등’을 제공했던 동독 체제는, 1989년 “우리가 민중이다”라는 구호로 시작해 해가 바뀌면서 “서독 마르크가 공급되지 않으면 동독을 벗어나겠다”라는 구호를 외친 동독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사회적 시장경제로 요약되는 서독의 사회ㆍ경제체제를 동독에 확대 적용한다는 통일 합의가 이후 4~5년간 독일 전역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나 통일 초기부터 동ㆍ서독 지역 간 경제력의 격차는 컸다. 동독 지역의 총생산은 서독 지역의 10퍼센트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1인당 총생산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통일로 말미암아 발생한 특수마저 서독 지역이 누리면서 지역 간 경제력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예견된 대로 동독 주민의 대량 실업도 현실화되었다. 1990년 12월 현재 65만 명 정도였던 동독 지역 실업자는 1991년에 이미 1백만 명을 넘어섰다. 실업률이 높아진 동독 지역에서 단체협약 체제가 침식되자 노동조건 및 생활 조건의 동질성도 훼손되었다. 사회ㆍ경제적 불균등이 심화되었고 사회적 분열 경향이 강해졌다. 결국 이 시기에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심각한 적응 문제에 직면했고, 새로운 노동시장 제도를 수용하기 어려워졌으며, ‘동독 향수병’이 발생했다.

1994~99년 산업입지 담론: “독일 체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비판”
1997년 4월 26일 헤르초크Roman Herzog 연방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활력을 잃은 경제, 마비된 사회, 불신의 심성 상태는 하나같이 독일이 직면한 위기의 징후라고 규정했다. 이를 계기로, 독일은 생산비용이 높고 규제가 많아 세계적인 경쟁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산업입지 적합성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었다. 세계화는 물론 (1992년에 조인되고 이듬해 발효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본격화된 유럽화의 동시 진행이 당시의 배경이었다. 정부나 의회로부터 연구 과제를 맡은 위원회뿐 아니라 친사민당 계열로 알려진 학자들조차 세계화와 통일 부담을 근거로 독일 모델의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산업입지론 논쟁 당시 <고용촉진법> 개정 관련 발언
<고용촉진법> 개정에 관한 논의는 1995년 3월 29일 민사당이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의제로 설정되었다. 1969년 제정된 이래 약 28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고용촉진법>은 사회법전 3권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야 모두 <고용촉진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완전고용과 2차 노동시장에 대한 관점을 놓고 차이를 보였으나, 사민당 안에서도 산업입지 담론에 의해 ‘사회적인 것’이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관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자민당 의원 바벨 “독일 산업입지로서 매력은 다른 산업입지에 비해 낮아지고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서만이 아니라 헝가리ㆍ체코ㆍ폴란드 같은 인접국에 비해서도 그렇습니다. …… 신연방주라는 시험 지역을 보면 1차 노동시장이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 따라서 [2차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1차 노동시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강력히 지원해야 합니다. ……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우리는 자영업의 비중이 너무 적습니다. 서비스업이 더 발전해야 합니다. …… 실업자가 반드시 노동자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업훈련, 법률적 지원, 가능한 한 장기간의 창업 보조금 지원을 통해 이들이 자립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기민/기사련 의원 루벤 “노동이라는 요소는 너무 비쌉니다. 독일의 일자리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노동비용이 높아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 단체협약의 자율성을 갖춘 시장경제에서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기민/기사련 의원 람자우어 “사민당은 2차 노동시장의 확대를 제안하고 있지만……동독 지역에서의 경험을 놓고 볼 때 2차 노동시장을 한정 없이 지원하면 구조 전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반대로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신규 사업장은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기민/기사련과 자민당 연정이 저임금 서비스업 일자리를 늘리고 자영업 창업을 지원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던 반면에, 사민당은 국가가 지원하는 일자리를 계속 늘려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사민당 의원 얘거 “하지만 1차 노동시장 이외 영역에서 4백만 실업자가 있는데 이들에게 공적으로 지원되는 일자리를 축소할 수는 없습니다. 총체적인 고용 촉진 수단은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사민당 의원 슈라이너 “동독 지역에서 3년 후 처음으로 정규 일자리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민사당 의원 크나케-베르너 “공공 부문의 일자리가 정상적인 노동시장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고용촉진법> 전면 개정은 독일 노동시장 정책에서 중대한 변화다. 노동시장 정책의 목표가 “높은 고용수준 달성”에서 “노동시장 균형”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정책의 우선순위도 달라졌다. 노동시장을 둘러싼 해석 투쟁에서 즉각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기민당은 의석수로 표현된 권력에 의존해 자신의 뜻을 관철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석 투쟁에서까지 승리를 거두었다.
세계화가 급부 삭감과 시장 친화적 개혁을 강요하고, 산업입지 경쟁을 명분으로 ‘바닥으로 치닫는’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사회적인 것’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호소력이 크지 않았다. 사민주의적 정치인ㆍ학자ㆍ언론인들도 세계화 논쟁에서 거의 전적으로 산업입지의 경쟁력에 초점을 두어 사고했고, 대중마저 각종 여론조사에서 신자유주의적 입장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2005년 사회ㆍ경제체제 혁신 담론: “일자리의 질을 따지지 마라”
사회적 시장경제를 혁신하고 효과적으로 유지하려면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짐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 의미는 개별적으로 다음과 같다. …… 국가는 핵심 영역으로 활동을 제한해야 하고 관료주의와 행정절차는 간소화되어야 한다. 조세와 지출 부담을 더 줄여야 시민과 기업의 독자적인 창발성이 폭넓게 발현될 것이다. …… 이제 포괄적인 보장을 명목으로 한 지출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그 이상의 보장을 원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 돌보아야 한다. …… 더 많은 경쟁, 더 높은 효율성, 더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
___본문 중에서(‘새로운 사회적 시장경제 기획’INSM 홈페이지)

1999년 하반기 이후에는 논쟁의 범위가 더 확대되었다. 즉, 산업입지 논쟁이 주로 투자 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담론은 아예 독일 사회ㆍ경제체제 전반을 문제 삼았다. 이 시기 ‘새로운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할 때 새롭다는 의미는 사회성을 약화하고 시장성을 강화해 ‘새로운’ 균형을 추구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산업입지론 논쟁 당시 <해고제한법> 등 법률 개정 관련 발언

세계화와 산업입지론으로 무장한 세력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기민/기사련과 자민당은 1996년 5월 10일 ‘성장 및 취업촉진을 위한 노동법적 법률안’에서 <해고제한법>, <병가 시 임금지급법>, <취업촉진법> 등의 개정을 제안했다. 이 법률안은 “새로운 사업장 설립을 용이하게 하고자” 발의되었다. 개정안은 찬성 326표, 반대 313표로 통과되었다.

자민당 의원 졸름스 “외톨이 시장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처럼, 특히 최근 몇 십 년 동안 유지한 사용자와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카르텔을 지속한다면 노동시장은 제 기능을 점점 상실하고, 노동자는 불법 노동이나 실업으로 내몰리며, 투자자는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입니다.”

기민/기사련 의원 글로스 “산업사회는 정보사회 및 서비스 사회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시장과 성장 중심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그런데 우리의 생산 비용은 주요 경쟁국보다 20퍼센트가 높습니다.”
기민/기사련 의원 루벤 “높은 임금 부대 비용이 사업장을 위태롭게 만드는 한편, 신규 사업장 창출을 막고 있습니다.”

사민당 의원 슈라이너 “입지 문제란 없습니다. 대외무역, 수출 경제는 번성하고 있습니다. 성장의 문제는 있습니다. 이것이 중심적인 문제입니다.……오늘날 독일과 유럽의 핵심적 과제는 ‘어떻게 수요를 살려낼 수 있는가’입니다.”

자란트 주지사 라퐁텐 “세계화로 말미암아 사회보장과 사회정의가 희생될 이유는 없습니다. …… 모든 국가가 실질임금과 조세를 계속 낮춘다면 내수는 더욱 약화될 것입니다. 그 결과 경기가 후퇴하고, 고실업은 여전하며, 국가 부채는 증대할 것입니다.”

민사당 의원 기지 “기업이 왜 외국으로 나가는지 아십니까? 세금 때문이 아닙니다. 팔 수 있는 시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15년 이상 내수 시장을 망쳐 놓았고, 수요를 줄어들게 했기 때문에 외국에서 판매망을 확보하는 것 말고는 다른 가능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혁신론의 기본 입장은 슈뢰더/블레어 공동선언문에서 간명하게 드러난다. “국가가 시장 실패를 교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민주의 정책에서 행정과 관료주의가 지나치게 확장되는 현상을 낳았다. 우리는 개인적 성취와 성공, 기업가 정신, 자기 책임, 공동체 정신처럼 시민에게 중요한 가치를 낮게 치부해 왔다. …… 시장의 약점은 과대평가되어 왔고, 강점은 과소평가되어 왔다”(243쪽).
이 시기에 독일의 주요 정당들은 ‘조세 인하’와 ‘지출 확대’ 가운데 무엇을 더 강조하는지를 기준으로 자리매김할 때 하나같이 시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입장을 돌렸다. 사민당은 물론 녹색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정규 고용과 <해고제한법>과 관련해 정책 방향 자체에 있어 정당 간에 차이는 거의 없었다. 다만 그 규칙을 설정하고 적용되는 범위를 결정하는 ‘정도의 문제’에서 차이를 보였을 뿐이다.
이전 시기에 비해 세력 관계가 뚜렷해졌고 대중들도 이런 권력관계와 체제 논리를 내면화했다. 하지만 정책의 산출물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고, 삶의 조건은 점점 열악해졌다.

2005~09년 사회ㆍ경제체제 혁신 조정 담론: “약화된 사회성을 되살리려는 시도”
이것은[이중적 운동은] 사회 안에서 작동하는 두 가지 조직 원리의 활동으로 인격화시킬 수 있다. …… 첫째 원리는 경제적 자유주의로서, 자기 조정 시장의 확립을 목적으로 사업에 종사하는 사회 계급의 지지에 [의존한다.] …… 다른 하나는 사회 보호의 원리로서 인간, 자연뿐만 아니라 생산 조직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시장의 해로운 운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 즉 주로 노동계급과 토지 계급의 다양한 지지에 의존하며, 보호 입법, 경제 규제를 위한 연대 및 기타 경제 개입의 수단들을 방법으로 삼는다.
___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길, 2009), 381쪽

2005년 9월 18일 치러진 16대 연방의회 선거에서, 거대 양당 가운데 어느 정당도 군소 정당과 연정을 이루지 못했고 1966년 대연정에 이어 전후 두 번째로 기민/기사련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결성했다. 이를 배경으로 사회ㆍ경제체제 혁신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2007년 함부르크 강령에서 벡Kurt Beck은 ‘사회적 독일을 위한 개혁’이라는 의제를 던졌는데, 이는 (실업 급여를 줄여 실업자를 노동시장에 몰아넣는) 하르츠 개혁으로 상징되는 의제 2010류의 개혁을 되돌리고자 한 것이었다.

사민당의 시기별 입장
산업입지론 당시 사민당 의원 슈라이너 “[기민당 루벤을 필두로 하는 대연정 내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을 비판하며] 실업자를 통합하기 위한 연대주의적 지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무 일자리나 잡으라는, 마치 진흙탕 속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것이 핵심입니다. …… 사회정책은 없습니다. 이것은 사회정책의 경제화이고 결국에는 인간 자체의 경제화입니다.”

사회ㆍ경제체제 혁신론 당시 사민당 의원 클레멘트 “오늘날 사회정의의 가장 심각한 결함 가운데 하나는 노동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배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고용을 증대하고 사람들을 사회적 삶으로 끌어들이는 모든 조치는 더 많은 정의를 의미합니다.”

사회ㆍ경제체제 혁신 조정론 당시 사민당의 함부르크 강령(2007년 10월 28일 채택) “[저임금 노동 공급을 확대하는 전략이었던 의제 2010에 반대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대부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실업은 인간의 존엄을 해치고 배제하며 병들게 만든다. 모든 일자리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지만, 모든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는 아니다. 일자리는 존엄한 삶에 속하지만, 또한 인간적인 존엄에 합당해야 한다. …… [완전고용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고실업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더라도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저임금 부문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상태에서 최저임금 제도에 관한 논쟁이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 시기였다. 2006년 5월 독일노총은 시간당 7.5유로의 법정 최저임금제 도입을 요구할 것을 결의했다. 상위 집단의 소득은 상승하고 있는데 하위 집단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심지어 하락하는 현상이 정의감을 훼손했다는 자각을 통해 노동조합이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셈이다. 2007년 12월 대연정은 5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실업 급여 수급 기간을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20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담론 변천사를 통해 보면, 2008년에 최저임금제가 새롭게 논의되고 도입되었던 것은 앞서 살폈듯 독일의 사회정책이 취약해졌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즉, 강화된 경쟁적 시장구조 속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 의식이 약화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미약하나마 다시 사회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던 것이다.

독일 사례의 교훈, 그리고 한국 사회
1990년에 형성된 통일 합의의 본질적 내용인 생활수준의 균등화를 임금 및 연금 소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통일 합의는 실현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전통적 복지국가는 축소되었고 사회성은 약화되었다. 독일의 계층 간 격차는 커졌고, 동ㆍ서독 지역 간의 사회ㆍ경제적 ‘분단’도 해소되지 못했다. 통일 독일이 맞이한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실업 문제의 해법은 저임금의 비정규 일자리 확충과 자영업 창업 지원이었다. 실업 기간에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실업 부조는 기간이 단축되거나 지급액이 감축되었다. 연대성이 옅어진 대신 자기 책임성이 강조된 셈이다. 통일 이후 시장성을 강화하는 정책 방향이 자리를 잡으며 이에 대항할 여지는 축소되었다. 최근 들어 열악해진 상황을 타개하라는 독일 국민의 요구가 커졌는데, 2009년 9월 사회적 시장경제를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설문에 독일 국민의 61퍼센트가 ‘사회보장 강화’라고 답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375쪽).
하지만 해법은 여전히 미흡하다. 합의가 아닌 (의석수를 반영한)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 사안은 의회 다수당이 바뀌었을 때 번복될 수 있다고 기대되었으나, 실제 그렇게 되었을 때의 변화 폭은 크지 않았다. 게다가 ‘준비되지 않은’ 통일과 세계화 담론이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긴박하게 전개된 거대한 통일 담론에서 다양한 논의는 질식했다. 가령 동독 지역에서 사회보험 체제, 단체협약 체제, 재정 행정 체계가 수립된 뒤 양독 마르크의 태환을 고려해야 한다는 라퐁텐의 주장은 ‘반통일적’이라고 매도되었고, 사민당은 통화 통합 과정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동독 주민의 요구에 편승한 콜의 주도권에 끌려 다녔다. 결국 강력한 경제 담론 속에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 영역이 온전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런 독일의 풍경이, 성장 우선주의, 사업장의 해외 이전, 그에 따른 정리 해고 및 비정규직화, 사회정책과 복지 확대에 대해 머뭇거리는 정치적 역량과 리더십의 결여로 나타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결과적으로’ 동일하다며 정당화할 준거로 활용될 수는 없다. 저자가 강조하는 ‘맥락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독일 사례는 이제 ‘일자리 없는 복지’와 ‘복지 없는 (열악한) 일자리’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사회ㆍ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구성원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균형감 있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독일의 통일 이후 20년의 궤적을 그린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강한 제약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책임 있는’ 정치가 발휘되어야 할 필요성이다.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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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64371329
발행(출시)일자 2011년 04월 25일
쪽수 444쪽
크기
148 * 210 * 30 mm / 534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우리시대 학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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