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도서+사은품 또는 도서+사은품+교보Only(교보굿즈)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로그아웃 : '서울시 종로구 종로1' 주소 기준
이달의 꽃과 함께 책을 받아보세요!
1권 구매 시 결제 단계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알림 신청하시면 원하시는 정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수상내역/미디어추천
책을 통해 저자는 수많은 관계들, 그리고 그 관계들 속에서의 개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상의 공간과 풍경들에까지 나아간다. 눈앞의 삶에만 신경 쓰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그 풍경들 속엔 또 다른 현재들이 있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던 풍경들 속에 녹아 있는 우리 이웃들의 삶.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저자의 시선은, 담담히 그것들을 그려내 보임으로써 다시 한 번 우리를 환기시킨다.
작가정보

저자 룽잉타이 龍應台는 대만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폭넓은 지식과 날카로운 시사적 감각, 촌철살인의 명쾌한 문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중화권 최고의 사회문화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중화권에서 ‘지식인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 선정되었고, 2012년 5월 대만 문화부가 신설되면서 2014년 12월까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지금까지 가장 능력 있고 따뜻한 장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6년부터 1999년까지 독일과 스위스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곳 신문에 칼럼을 써서 중국 지식인의 시각과 견해를 서양 세계에 보여주었다. 타이완으로 돌아온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타이베이 시 문화국 국장을 지냈고, 이후엔 홍콩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홍콩 사회의 정치제도 개혁, 문화보호, 국제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2005년에는 ‘룽잉타이 문화기금회’를 공동 창설해서 지금까지 청년들의 글로벌 시민 자질 함양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룽잉타이 인생 3부작’이라 불리며 출간된 지 십 년 가까이 독자들에게 스테디셀러로 읽혀온 《사랑하는 안드레아》 《아이야, 천천히 오렴》 《눈으로 하는 작별》 외에 중화권에 룽잉타이 돌풍을 일으킨 사회문화비평서 《야화집》과 1949년 이후의 분단과 중국에서 건너온 타이완 사람들의 디아스포라 같은 삶을 조명해 중화권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대강대해 1949》 등이 있다.
룽잉타이는 첫 책 《야화집》에서 수십 년을 이어져오던 국민당 1당 독재 체제하에서 대만 정치의 부패와 문화의 부식을 꼬집어 출간 한 달 만에 20만 부가 판매되며 대만의 민주화를 이끌었다. 결국 대만 정부는 1949년 이래 계속되었던 계엄령을 1987년 해제하고, 1989년 1월 복수정당제를 도입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룽잉타이는 살해 위협을 받을 정도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으나, 또한 그만큼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지식인이며 인기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번역 도희진
번역자 도희진은 연세대학교 사학과 및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중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어 국제회의 동시통역사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중국 과학 이야기》, 《잠재규칙》, 《번역학 비판》 등이 있다.
목차
- 서문_ 이 꽃을 바라보는 순간
1부 목송 目送
눈으로 하는 작별/엄마 딸/열일곱 살/사랑/홀로 가야 하는 길/외로움/믿음과 불신사이/그때, 우리는/선명해지는 것/무엇/함께 늙기/만약에/넘어졌을 땐_K에게/걱정 마/화장/겨울 빛깔/산책/누구를 위해/클럽/집으로 가는 길/오백 킬로미터/시간/엄마와의 대화/비밀계좌/행복/마지막 오후의 티타임
2부 풍경
두견새/우울증/우리 동네/헬렌/화재 경보/폭플람/원숭이 마피아/도시의 원주민/두보/댄스 플로어/큐빅 팔찌/침향/‘지뢰 조심’/애기장대/‘보통 사람들’/서울/나라/홍콩/눈처럼 새하얀 천/복제된 샛별/노래기/상식/치치/늑대가 온다/또다른 이민자/울남 하늘/꽃나무/흉가/새해/메콩강 뱃길/시간이 멈춘 곳/연꽃의 나라/느리게 보기
3부 시간
심연/무장해제/반야심경/여인/틀니/동창화/고비/노자/걸음마/눈/말/작별/공/1918년, 겨울/귀혼
추천사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별에 관한 책이다. 타인과의 작별이 아니라 가족과의 작별, 그중에서도 부모와의 헤어짐을 두고 그 작별인사로 읽어도 되는 책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성찰에 대한 책이야 많이 있지만 그 관계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로 시점을 두고 쓰여진 이 책은 보편적인 우리의 자화상들을 거울을 들여다보듯 바라보게 한다. 그동안 줄곧 사회문제에 대한 격렬한 비판의식이 담긴 글을 써온 룽잉타이의 이 책 『눈으로 하는 작별』은 냉철한 비평가의 눈으로가 아니라 두 아들을 가진 엄마의 입장, 또한 엄마이기 이전에 딸의 입장에서 이미 세상을 뜬 아버지 그리고 이제 다시 작별해야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쓰여진 그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이 담긴 인생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책 속으로
조금씩 어둠이 겉히는 새벽, 엄마는 어느새 깨어나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는다. 나이든 여인은 다 그런 걸까? 몸이 점점 왜소해지면서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목소리도 작아진다.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진다. 나이든 여인은 다 그런 걸까?
나는 쓰던 글을 멈추지 않고 말한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우유라도 데워드릴까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가만히 속삭인다.
“그쪽은 내 딸을 닮았네요.”
-21쪽
나라는 사랑할 수 없어도, 그 땅과 사람은 사랑할 수 있다. 역사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아도, 진실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계속할 수 있다. 문명의 힘이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우리가 의지할 만한 것은 그래도 문명밖에 없다. 정의가 아무리 의심스럽다고 해도, 그러한 정의
라도 가지는 편이 없는 것보다는 안전하다. 이상주의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이 있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랑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반딧불이가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
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해도, 모래 한 알에도 무한한 우주가 들어 있다면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에도 영원한 시간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42쪽
우리가 자라는 동안 고통과 좌절과 실패를 마주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어. 대중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도, 학교와 사회에서도 온통 남을 쓰러뜨리는 방법만을 가르쳤지. 복숭아나무를 베어버린 조지 워싱턴부터 자수성가한 빌 게이츠까지, 모두 성공담 일색이야. 어쩌다가 실패를 입에 올릴 때가 있어도 그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채찍질하기 위해서지.
-67쪽
예전에 에둘러서 아버지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저도 이제 마흔이에요. 더 이상 길 건널 때 손 잡아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때는 “알겠다”고 하셨지만, 횡단보도 앞에 설 때면 아버지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그때는 더 직접적으로 당부했다.
“저도 이제 오십이에요. 길 건널 때 손잡지 마세요.” 역시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횡단보도 앞에 설 때 내 손을 잡는 버릇은 바뀌지 않았다. 짧고 뭉툭한 아버지의 손이 무척 따뜻했다.
어느 날, 다리가 길고 늘씬한 청년이 대낮 큰길에서 나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저도 벌써 열여덟 살인데, 이젠 그만 제 손을 붙잡고 길을 건너려는 충동을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 멈춰 선 나는 그대로 눈물을 쏟았다. 도무지 멎지를 않았다.
-285쪽
인생이란 본래 길 위의 삶이다. 남편과 아내로, 아버지와 아들로,
아버지와 딸로, 아무리 깊은 정을 나누고 긴 세월을 함께했어도, 결국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풀잎 위의 이슬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그리워하고 마음이 놓아주지 않더라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우산이 되어주셨던 아버지, 스스로는 혼란한 세월의 고아로 버려졌지만,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돕는 삶을 사셨던 아버지. 자식들의 감사와 아내의 그리움을 이제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믿는다. 양초가 다 타 없어져도 마음을 밝힌 촛불이 우리 인생의 여정을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보이지 않지만 우리 인생의 여정과 평행선을 달리는 그 길로, 아버지 부디 잘 가세요. 해가 서산으로 지듯이, 그리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320쪽
출판사 서평
가족과 인생, 인간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따뜻한 작별인사
“그땐 왜 몰랐을까. 엄마의 눈엔 나도 늘 떠나가는 뒷모습이었다는 걸.”
중화권 문학 베스트셀러 부동의 1위
3대가 함께 보는 인생의 책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별에 관한 책이다.
타인과의 작별이 아니라 가족과의 작별, 그중에서도 부모와의 헤어짐을 두고 그 작별인사로 읽어도 되는 책이다. 원제인 ‘목송目送’에는 ‘떠나는 뒷모습을 그저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아련함이 묻어난다. 늙은 아버지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딸의 마음, 장성한 아들을 세상 밖으로 떠나보내는 엄마의 마음, 치매에 걸려 딸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져가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또다시 작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과 풍경들.
룽잉타이는 자신이 마주한 삶의 마디마디를 고스란히 풀어 놓는다. 그 장면 하나하나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짙은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라는 시점으로 쓰인 이 책은 보편적인 우리의 자화상을 거울 들여다보듯 바라보게 한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이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이 책은 지난 8년 동안 중화권 문학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그 까닭은 두 아들을 가진 엄마의 입장, 이미 세상을 뜬 아버지 그리고 이제 다시 작별해야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의 입장으로 쓴 이야기가 갖는 따뜻한 감동과 보편적 공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겪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만의 시선에 붙잡힌 ‘떠나보냄’에 대한 풍경은 가족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친구와 일상, 동시대인의 관계에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작별에 대한 책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풍경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모두의 마음에 담긴 인생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돌아보세요,
지금 당신의 옆에, 그리고 당신의 뒤엔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살아간다. 1인 가구가 500만에 이른 지금이지만, 우리는 오롯이 혼자일 수 없고, 나를 둘러싼 관계들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외부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어느 사이 타자가 된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국엔 ‘혼자’라고 생각되는 순간순간, 당신의 뒤에 그리고 옆에는 ‘그들-우리’가 있다. 그들을 지렛대 삼아, 우리는 또 무너지려 하는 몸과 마음을 추슬러보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수많은 관계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일상과 삶에 관한 책이다. 그 관계의 중심엔 엄마라는 위안, 아버지라는 버팀목, 가족이라는 단단한 울타리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 룽잉타이는 수많은 관계들, 그리고 그 관계들 속에서의 개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만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긴 글을 써온 그이기 때문일까. 가족을 비롯한 여러 관계들과의 만남, 무엇보다 헤어짐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냉철한 비평가의 눈과,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부모의 딸로서, 그리고 지금-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주위를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자주 책장을 넘기던 손을 거두고 돌아보게 된다. 멀리 떨어져 계신 부모님, 힘든 시간을 겪어내고 있는 친구들, 각자의 자리에서 제 삶을 건강하게 꾸려나가고 있는 형제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그들을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까지.
저자의 시선은 그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상의 공간과 풍경들에까지 나아간다. 눈앞의 삶에만 신경 쓰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그 풍경들 속엔 또다른 현재들이 있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던 풍경들 속에 녹아 있는 우리 이웃들의 삶.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저자의 시선은, 담담히 그것들을 그려내 보임으로써 다시 한 번 우리를 환기시킨다. 지금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시간과 풍경들을.
저자 룽잉타이의 글은, 독자 스스로가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그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만의 시선에 붙잡힌 것들을 담담히 그려내 보이면, 그다음은 독자들의 것이다. 지금의 내 삶은, 시간들은, 풍경들은 어떠한가.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작별에 대한 책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짧은 글들이지만 그래서 그의 글은 만만하지가 않다.
이 책 안에는 여러 번 곱씹고 되새길 풍경들과 시간들,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들이 있고, 그것은 곧 독자인 우리 자신의 시간들로 옮겨온다.
책을 덮고 잠시, 그 시간들을, 관계들을, 마음들을, 인생들을 돌아보기를.
이 책과 함께 열여덟 살 아들과 주고받은 인생 편지 《사랑하는 안드레아》,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따뜻한 모성으로 그린 《아이야, 천천히 오렴》(근간)은 룽잉타이의 ‘인생 3부작’으로 불리며 출간 즉시 중화권 문학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눈으로 하는 작별》은 중화권을 넘어 일본과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밖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63721941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5월 10일 | ||
쪽수 | 328쪽 | ||
크기 |
150 * 205
* 30
mm
/ 428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目送/龍應台 |
Klover 리뷰 (8)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0)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
반품/교환방법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
반품/교환 불가 사유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은 발견
이 분야의 베스트
이 분야의 신간
-
오렌지10% 10,800 원
-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릴케의 기도시집10% 15,300 원
-
첫 꿈10% 17,100 원
-
생기의 잔물결10% 14,400 원
-
월트 휘트먼의 노래 210% 9,000 원
여름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온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한다. 누군 키가 좀 컸고 누군 얼굴이 까매졌다. 건강해 보인다. ‘어, 누가 안 보인다. 어떻게 된 거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하나가 2학기 개학식 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하는 싸움도 한 번 하지 않던 착한 친구였다. 산딸기를 큰 통에 가득 따와서 친구들에게 나눠준 좋은 친구였다. 늘 책을 읽고 문제집을 풀던 친구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개학 하고 들었다. 여름 내내 공부만 하다가 한 번 가족과 함께 놀러갔는데 돌아오지 못했다. 너무 조용한 친구였기 때문일까, 나와 그리 친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놀라긴 했지만 슬프진 않았다. 슬픔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슬픔을 몰랐다. 친척 형들과 놀기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슬펐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제자를 잃었을 때는 많이 울었다. 나와 마음이 통했던 교회 형이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는 통곡했다. 어떤 이별은 무덤덤하다. 그리고 어떤 이별은 견디기 어렵다.
교사가 된 뒤에 아이들과 22번 헤어졌다. 전담교사로 헤어질 때는 그리 슬프지 않았다. 담임으로 만난 아이들과 헤어져도 같은 학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때는 슬프지 않았다. 아쉽고 허전하고 때론 시원섭섭했지만 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아이들을 어디서 다시 만날까!’ 했던 때도 같은 학교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슬픈 이별을 생각하지 않았다.
금요일에 헤어지면서 우는 아이는 없다. 월요일에 다시 만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헤어지고 월요일에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만나고 하면 방학 동안 헤어져도 이별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다시 만날 테니까. 그러나 언젠가 진짜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엄마, 또 올게요.”, “아빠, 설날에 내려올게요.”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되풀이하면 다음에 또 만날 거라 생각한다. 부모님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만남을 미루기도 한다. 그러다가 덜컥 다시 만나지 못할 형편이 되면 그 사람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별을 미리 준비해도 슬픔을 견디기 어려운데 준비하지 못한 이별을 만나면 너무 힘들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떨까?
눈으로 하는 작별
「눈으로 하는 작별」은 2016년 2월에 소개한 「사랑하는 안드레아」의 저자인 대만 작가 룽잉타이가 썼다. 책에는 ‘가족, 일상, 인생 그리고 떠나보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아버지가 늙어가면서 점점 움직임이 줄어들고 자녀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느낀 마음을 에세이로 썼다. 비슷한 종류의 다른 책처럼 다시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매달려 아버지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지는 않았다. 어릴 적 추억과 풍경, 부모님의 사소한 습관을 기억하며 늙음과 죽음이 무엇인지 적었다. 책을 읽으며 크게 3가지를 느꼈다.
첫째, 룽잉타이가 부러웠다. 「사랑하는 안드레아」에서도 보여준 바 있듯이 룽잉타이는 보는 눈이 다르다. 같은 사물, 사건을 보고도 보통 사람과 다른 생각을 펼쳐낸다. 나는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앞부분을 읽으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다음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그러나 룽잉타이의 생각은 거의 읽어내지 못했다. 작가가 펼쳐놓은 오묘한 이야기에 스르륵 빠져버렸다. 에세이 하나하나 모두 맛깔나고 색달라서 줄거리를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룽잉타이는 박학다식하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참 많다. 지뢰, 홍콩의 역사와 문화, 한 번도 듣지 못한 작가와 시인, 우리나라 이야기도 나온다.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쓸 때는 처음이라 놀랐지만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일상에서 겪은 평범한 일에 낯선 이야기를 엮어서 작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비나무에 대한 글이 마음에 남았다. 약간 길지만 소개한다.
<남미에는 비나무가 있다. 비나무는 큰 종처럼 커다랗고 둥글게 생겼는데,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가 삼십 미터나 된다. 나뭇잎이 그토록 무성하고 빽빽한데도 비나무 밑에서는 작은 풀도 잘 자란다. 날이 흐리거나 어두워지면 비나무의 가는 잎이 오므라들면서 잎 사이로 비가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형제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선로라기보다는 한 그루 비나무에 달린 가지나 잎이 아닐까. 비록 삼십 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고, 밤에는 잎을 오므리고 땅바닥으로 곧장 떨어지는 비를 함께 보면서, 나무와 비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어찌 아니 좋겠는가! (61쪽)>
둘째, 대만 국민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 대만은 공산당(모택동)과의 싸움에 밀린 국민당(장개석)이 본토에서 쫓겨나와 세운 나라라고 알고 있었다. 본토에서 쫓겨난 아픔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산가족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본성인(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대만에 들어와 살고 있던 중국인)과 외성인(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당에게 패해 국민당과 함께 온 사람들) 사이에 생긴 갈등의 골도 상당히 깊다는 걸 알았다. 둘은 정치 성향까지 정반대여서 여당과 야당으로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지뢰 조심’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대만의 ‘진먼’이라는 섬을 소개하고 있다. 진먼은 대만보다 중국에 가까운 대만 영토이다. 청일전쟁 때 평양이 불바다가 되었던 것처럼 대만과 중국 사이에 있다는 것만으로 폭탄 세례를 받았던 섬이다. 이 섬은 1958년 가을, 44일 동안 47만 발의 폭탄을 받아야 했다. 그 후로도 사십 년 동안 전투지역으로 봉쇄되면서 수많은 지뢰를 묻었다. 지금은 관광객이 가기도 하지만 모래사장을 뛰어다닐 수도, 숲에서 열매를 딸 수도, 바닷물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칠 수도 없다. 지뢰가 어디에,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모택동 군대의 공격을 피해 대만에 정착한 사람들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이 꼭 우리가 6€25 이후에 겪은 이야기 같다. 이웃이 한순간에 폭탄으로 사라지고, 내 편 네 편 나눠 서로를 죽이는 곳에서 겨우 견뎠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진먼 역사기념관의 그림 속 얼굴을 우리나라 사람으로 바꾸면 거기나 우리나 서로 비슷하다. 대만 사람이라면 우리가 겪고 있는 분단의 아픔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룽잉타이가 부모에게 정말 잘한다. 내가 아들이라서 그런가, 딸은 다 이렇게 애틋한가 싶다. 딸이 엄마에게 애틋한 건 이해하지만 아버지에게도 이런 마음을 가지다니 놀랍다. 더구나 룽잉타이는 문화부 장관으로 바쁘게 일하는 중에도 자주 아버지를 찾은 것 같다. 골목 사이에 숨은 작은 가게에서 아버지가 예전에 입던 양모 조끼, 모직 외투, 털실로 짠 장갑에 천 신발을 구해서 아버지에게 입혀 드린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을 구해 드리는 게 효도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두 장면은 이렇다. 룽잉타이가 걷는 법을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아빠 손을 붙잡고 아빠가 들려주던 시조를 읊으며 한 발 두 발 걷기 연습을 시킨다. “해는, 서산에, 기대어, 지려 하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황하는, 바다로, 흐을러, 가안다……” 방향 바꿔서~ (303-304쪽) 두 번째는 할아버지 말문을 트게 하면 상금을 주겠다며 아이들을 꼬드기는 장면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고향, 엄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침묵을 깨고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해준다. 엄마 이야기를 하다가 죄송하다고 우는 할아버지 모습을 손자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시조까지 배웠으니 최고의 효도를 한 셈이다.
어떤 이별은 정말 슬프다.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엉엉 운 적이 있다. 힘든 일을 많이 겪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아픔을 글로 쓰고, 아픔을 치유해주려고 더 많이 사랑했다. 어떤 아이는 잘 살고 있다. 다른 아이는 방황하며 살고 있다. 어떤 아이는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내가 나이가 더 들어 추억을 곱씹는 즐거움으로 살아갈 때가 되면 아이들을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때 아이들과 함께 모여 옛날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즐거울까! 나는 비나무 기둥이 되고 아이들이 삼십 미터나 되는 가지가 되어 함께 늙어 가면 참 좋겠다.
괜히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아직 떠나보냄에 익숙하지 않은(이게 익숙해질 날이 있을까?) 나에게 '작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책의 무게보다도 더 무겁게 다가왔다.
'우리가 아무리 그리워하고 마음이 놓아주지 않더랃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작별은 누군가가 나에게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난 요즘 엄마와 어떤 대화를 나누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해,
정작 나눠야 할 이야기는 뒤로 미뤄버린 것이 아닐까?
작가의 또다른 책인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싶게 만드는 묘한 책이다.
부모님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자꾸 부추기는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슬퍼지기도 했지만,
책을 안 읽었으면 가족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했을까라는 생각에 고마워진다.
고작 대여섯 페이지를 읽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나이를 이만큼 먹어서인가, 요즘 트렌드가 이런건가, tvn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도 가족에 대한, 부모와 자식간의 감성을 툭툭 건드리고 있는데 룽잉타이의 <눈으로 하는 작별>까지 읽고 있으니 요즘 눈물 쏙 빼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날엔가, 엄마에게 전화와서는 엄마가 요즘 통 기억이 없다라고 말할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워낙 일 아니면 집에서 잠을 자는 엄마라서 신문이고 책이고 뭐라도 읽으라고 갖다줘도 눈이 좋지 않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는데
엄마는 딸이 혼자서, 혹시나 엄마가 나를 잊어버리면 어쩌나 눈앞이 캄캄해지는걸 알고 있을까?
죽을 끓이는 걸 배운 적 없어요? 선생님은 왜 배우지 않았나요? 라고 묻는,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청소 도우미 헬렌과의 에피소드는 웃음을 짓게 만들다가도 그녀의 질문에 내가 다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내 딸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먼저 떠나버리면 어쩌지? 하고 하루에도 열두번, 나이 먹고 아이를 낳아서인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엄마를, 땡깡만 늘어난 딸은, 알 턱이 없겠지;
<눈으로 하는 작별>은 타인과의 작별이 아닌 가족과의 작별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먼곳으로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기만 했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와의 담담한 일상과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와의 에피소드들이 한데 어울려 때로는 코끝을 찡하게 만들거나 '노래기'에 관련된 에피소드나 전립선이 목에 있는줄 알았다던 그녀의 친구의 말에 실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타이완에 들어와 살고 있는 중국인들을 '본성인'이라 부르고 피난길에 모든 것을 잃고 타이완에 들어온 사람을 '외성인(난민)'으로 불리는 등 중화권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알게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횡단보도 앞에 설 때면 아버지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그때는 더 직접적으로 당부했다. "저도 이제 오십이에요. 길 건널 때 손 잡지 마세요" 역시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횡단보도 앞에 설 때 내 손을 잡는 버릇은 바뀌지 않았다. 짧고 뭉툭한 아버지의 손이 무척 따뜻했다.
어느 날, 다리가 길고 늘씬한 청년이 대낮 큰길에서 나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저도 벌써 열여덟 살인데, 이젠 그만 제 손을 붙잡고 길을 건너려는 충동을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 멈춰 선 나는 그대로 눈물을 쏟았다. 도무지 멎지를 않았다. 아들이 창피한지 성큼성큼 혼자 건너편으로 가더니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제 발끝을 노려보았다. / 286
<눈으로 하는 작별>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이런게 아닌가 싶다, 부모와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나와 내 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차갑게 내치는 자식의 손이 야속하면서도 동시에 나도 부모에게 그래왔다는 것, 거기에 더해 내 아이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품을 떠날 꺼라는 것, 인생이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것, 그래서 순간순간을 헛되지 않게 소중하게 보내야 겠다는 것,
그녀는 중화권에서 인기 있고, 또 영향력 있는 에세이 작가다. 중화권의 글을 잘 읽지 않던 나라서, 그녀의 글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웠고, 읽고 나니 사람들이 그녀의 글을 찾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아버지를 여의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물론, 형제들도 있다. 자식을 낳아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던가. 쉰이 다 된 그녀는, 이제 성인의 언저리에 있는 아들 둘을 보며,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독립을 꿈꾸는 자식의 마음과, 언제까지나 자기 자식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 보이는 부모의 마음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저도 이제 오십이에요. 길 건널 때 손 잡지 마세요.” 역시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횡단보도 앞에 설 때 내 손을 잡는 버릇은 바뀌지 않았다. 짧고 뭉툭한 아버지의 손이 무척 따뜻했다.
어느 날, 다리가 길고 늘씬한 청년이 대낮 큰길에서 나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저도 벌써 열여덟 살인데, 이제 그만 제 손을 붙잡고 길을 건너려는 충동을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 멈춰 선 나는 그대로 눈물을 쏟았다. 도저히 멎지를 않았다. 아들이 창피한지 성큼성큼 혼자 건너편으로 가더니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제 발끝을 노려보았다.(p. 286)
아지(어머니)가 천으로 만든 신발 바닥을 아버지의 품에 밀어넣을 때 아버지도 사실은 귀찮았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도 수십 년 후에야,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고 한번 흘러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고 난 후에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p. 294)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우리는 가족과 부모님의 소중함을 자꾸만 잊고 사는 것일까. 항상 내 편이고,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걸까. 언젠가 모두 잃은 다음에야 후회하려나. 글쓴이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는 나와 우리가, 지금, 아직, 내 곁에 있는 부모님들을 더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가 글로 적는 '주변'의 이야기는 단순히 부모님과, 자기 자식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삶과 죽음, 이별에 대한 이야기만도 아니다. 80년대 대만의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준 글을 쓰고, 생명의 위협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가 살았던 사람인만큼, 그리고 어린시절을 가난하게 보낸만큼, 그녀는 세상에 가장 가난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타이완의 진먼섬, 라오스, '스탄'국가들의 국경지대에 묻혀있는 지뢰에 대해 이야기 한다. 땅 밑에 묻혀있다가 농부들과 아이들의 삶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지뢰를,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십년 후를 폭격한 셈이다.(p. 257)" 또, 어떤 골목길에서 만났던, 큐빅을 붙이던 어떤 소년을 향한 그녀의 애달픈 시선도 만날 수 있다. 그녀가 그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의 글을 읽은 누군가는 행동으로 옮겨주기를 바랄 뿐이다.
조용하고, 따뜻하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글이다. 중화권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글에서 중국 고시들도 많이 인용했다. 문체는 화려하지만, 지나친 기교를 부렸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깔끔하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은 문장을 보고 배워봄직도 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힘든 사람이라면, 혹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의 글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도 좋을 것 같다. 역사는 언제나 그 시대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 같은 어버이, 어버이 같은 아이
― 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글
도희진 옮김
양철북 펴냄, 2016.5.10. 14000원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아이한테 돈을 줄 수 있고, 누군가는 아이한테 학원 교육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이한테 여느 학교 교육을 줄 수 있고, 누군가는 아이한테 ‘집에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조용한 살림’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이한테 오직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주는 대로 받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받은 대로 마음하고 몸을 키웁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살면서 마음속으로 꿈을 키웁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으로 마음이랑 몸을 살찌우면서 꿈을 키워요. 사랑이 없이 다른 것(돈이나 학원이나 학교)만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이 빠진 채 다른 것만 바라보는 마음이나 몸이 될 수 있어요.
어른이자 어버이인 우리는 아이하고 어떻게 살 적에 즐거울까요? 어버이요 어른인 우리는 아이한테 무엇부터 주고 무엇부터 나누며 무엇부터 베풀 때에 아름다울까요?
가끔 나는 아파트 창밖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안드레아의 모습을 내려다보곤 한다. 늘씬한 청년이 회색빛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나처럼 저 아이의 마음속에도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가 있겠지만, 상상에 그칠 뿐 그 안에 들어갈 수는 없다. 버스가 도착한다. 아이의 뒷모습이 버스 안으로 사라진다. 버스가 떠나자 텅 빈 길가에는 우체통만 덩그러니 남는다. (17쪽)
룽잉타이 님이 쓴 《눈으로 하는 작별》(양철북,2016)을 읽습니다. 이 책은 룽잉타이라는 분이 두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째, 어머니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둘째, 딸이요 아이로서 어버이를 마주하는 이야기가 흘러요.
책을 읽다가 문득 돌아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요 어른’입니다. 나이가 열 살이라면 ‘그냥 아이로만 있다’고 할 만하지만, 열 살 아이는 어느새 스무 살이 되고 마흔 살을 거치며 예순 살을 지나요. 나이가 여든 살이라 하더라도 ‘백 살 어버이’나 ‘백열 살 어버이’가 튼튼히 살아서 곁에 계실 수 있어요.
문득 끼니 걱정을 혼자 어깨에 짊어졌던 엄마를 떠올린다. 그녀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서재에 몰래 숨어들던 소녀였겠지. (88쪽)
우리는 늘 두 자리에 함께 서면서 살아간다고 느낍니다.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라는 자리에 서서 생각을 짓고 살림을 가꾸어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서 마음을 돌보고 사랑을 베풀어요.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더라도 아이한테는 사랑을 물려주려 합니다. 어버이한테서 그리 반갑지 않은 것을 물려받았어도 아이한테는 ‘반갑지 않은 것’은 안 물려주려 할 수 있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반갑지 않은 것’을 아이한테도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어요.
친구는 가난했던 기억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비좁은 뒷골목에 자리잡은, 골목만큼이나 비좁은 집 안은 가득 쌓인 일감으로 더욱 좁게 느껴졌다고 한다. 플라스틱 조화와 크리스마스 전구를 끼우는 일이었는데, 그 집에서 언제나 피로에 지친 엄마가 유럽으로 팔려나갈 값싼 크리스마스 장식을 쉴 새 없이 조립했다. (202쪽)
두 자리에 선 사람은 이녁 아이 앞에서는 쓸쓸하거나 서운한 마음이 흐르다가도, 이녁 어버이 앞에서는 살며시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씁니다. 두 자리에 선 사람은 이녁 어버이 앞에서 아쉬우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느끼다가, 어느새 이녁 아이도 이녁을 바라볼 적에 ‘어머니(어버이)는 왜 새롭게 나아가려 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려주기에 아차 하고 무릎을 칩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되지 않는 건, 정말 웃겨요, 아빠도 초보 시절이 있었을 거잖아요. 태어나자마자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지는 않았겠죠? 아빠는 젊었을 때 차가 뒤집힌 적도 있잖아요. 도로를 벗어나면서 그대로 뒤집혔다면서요. 아빠도 젊어서 그랬겠죠? (272쪽)
아이 같은 어버이입니다. 아이처럼 해맑은 마음을 고이 품으면서 즐겁게 살림을 짓고 싶은 어버이입니다. 어버이 같은 아이입니다. 어버이인 내가 때때로 잘못을 하거나 서툰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이런 어버이를 “괜찮아. 다음에 잘 하면 되지?” 하는 말로 달래 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늘 기다려 줍니다. 밥을 좀 늦게 차려도 기다려 줍니다. 살림돈이 떨어져서 옹송거려도 기다려 줍니다. 밭일을 하느라 바빠서 함께 놀지 못해도 밭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참으로 아이들은 잘 기다려 주고, 잘 지켜보면서, 잘 자랍니다.
그러면 어버이인 나는 아이들을 얼마나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이제 막 바닥을 기는 갓난쟁이더러 일어나서 걸으라고 할 수 없겠지요? 글씨를 아직 모르는 아이더러 글을 써 보라 할 수 없겠지요? 차근차근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따스한 손길과 말길과 눈길로 마주할 적에 아이들은 느긋하면서 씩씩하게 자라리라 느낍니다. 《눈으로 하는 작별》이라고 하는 책은 바로 이 대목을 넌지시 짚습니다. 그저 따스한 눈길이 되자고, 그저 넉넉한 손길이 되자고, 그저 사랑스러운 마음길이 되자고 하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펼칩니다.
아이들은 ‘비싼 자전거’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엄청난 놀이공원’이 아닌 ‘함께 노는 어버이 손길’을 바랍니다. 아이들은 ‘값비싼 아파트’가 아닌 ‘따사로운 보금자리’를 바랍니다. 수수한 자리에서 수수하게 빚는 살림이면서 수수하고 바라보는 눈망울이 눈부시게 빛납니다. 2016.6.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눈으로 하는 작별』은 말보다 더 슬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각자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말없는 말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하며 펼쳤다. " 가족, 일상, 인생, 그리고 떠나보냄 "에 대해 어떤 감동이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 나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깨닫고 있다. 나의 외로움은 어쩌면 또다른 뒷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 친구 사이의 짧은 만남에서도 가족 사이에서도 헤어지는 뒷보습은 더 그립게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사람과의 헤어짐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곧장 바쁜 사람처럼 걸어간다. 상대방이 돌아봤을 때 서운할지도 모르겠지만, 헤어지기 싫을 때는 더욱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트럭으로 대학교수인 나를 바라다 주며 미안하다는 아버지. 지금은 휠체어에 앉아계시고, 엄마는 나 위얼과 통화하면서 위얼을 찾고 딸을 보면서도 딸을 닮았다고 하는 엄마. 슬픔보다는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자식에 대한 부모에 대한 사랑을 먼저 생각하게 한다. "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달빛이 땅위로 젖어들듯이, 마음속 무언가가 서서히 선명해지는 듯하다. " 반백년을 살다보면 인생이 무엇인지 누군가 말해주지 않도 스스로 경험에서라도 느낀다.
열일곱살된 둘째 아들 필립과 쉰여섯살 엄마와의 대화 중에 " 사랑이 지속되려면 두 사람 사이에 `상호 이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부모들이 열일곱살 때는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뒤돌아본다면 순수한 사랑, 짝사랑, 영원한 사랑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어릴적이야기, 지금의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혹은 세월에 대한 과정과 생각의 변화 등을 이야기 하며 전개되는 에세이다. 삶 자체와 작가의 博學多識[박학다식]한 지식을 토대로 펼쳐진 세련된 에세이다.
1부 목송目送, 2부 풍경, 3부 시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2부 풍경의 내용은 `목송目送`과 `시간`에 비해 약간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두보>의 시가 그랬고, 독일 <슈피겔>지 헤드라인 뉴스 소개가 그랬고, <시경詩經>의 `막불곡` 등이 그랬다. 가족이야기에서 조금 동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작가의 글솜씨 만큼은 뛰어났다. " 강산이 일곱 번 바뀐다는 칠십 년의 세월조차도, 이들에게는 그저 시장에 장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반나절에 불과한 것이다. " 처럼 슬픔을 뛰어 넘은 문체, 삶의 노고와 아픔 보다는 작가의 표현력에 더 감동을 받았던 책이다.
누가 이런 평가를 했는지, 어느 기관에서 조사한 평판인지,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이 책을 처음 대하는 내게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 작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사전 지식이나 자료가 없는 상태이고, 이 책을 아직 읽기도 전이기에 작가에 대한 이런 좋은 평가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이 책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가독성을 더해 주는 역할을 해 준다.
감히 시시한 독자로서 이런 말이 건방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중화권 문학 베스트셀러 부동의 1위]라는 말이 수긍이 간다. 참 좋은 글이다. 여류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그 감성을 가장 적절하게 풀어 놓은 필치가 압권이다.
과장되거나 모자람이 없는 느낌과 감정의 표현들이 절묘할 정도다.
책마다 책이 갖고 독특한 분위기나 색상 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하루 중 해가 석양에 넘어가기 바로 직전의 풍경이고, 계절로 말하자면 늦가을 정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작가가 부모님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나 사물을 통찰하는 시각이 진지하면서도 예리하다.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15p)]
또 시간이라는 3부의 표제 글에서, [인생이란 본래 길 위의 삶이다. 남편과 아내로, 아버지와 아들로, 아무리 깊은 정을 나누고 긴 세월을 함께 했어도, (중략)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다(263p)] 이런 삶에 대한 철학적 인식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죽음과 삶의 거리는 화장장 입구와 화장장의 거리로서, 눈으로는 볼 수 있지만 그 이상 다가 갈수는 없는 거리인 것이다. 이 작가는 이 책에서 한 장의 고흐의 그림에서도 두견새의 애처로운 울음 속에서도, 한 마리의 미물인 노래기에서도 삶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과 죽음을 잇는 중간에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는 모래시계가 설치되어 있어서 모래가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다. 이 모래시계는 열어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모래시계 안에는 얼마의 모래가 남아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모래가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과 언젠가는 그 모래가 다 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기꺼이 할애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탁월한 통찰이며, 발견이며, 인식이다. 우리는 출생하는 순간부터 이 모래시계가 작동한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 시계를 멈출 수는 없다.
저자의 행복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행복이란 아침에 손을 흔들며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나간 아이가 저녁이 되면 아무 일 없이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와 책가방을 방 한 구석에 던져 넣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의자 밑에 쑤셔박는 것이다.(120p)]
행복은 이렇게 단순하고도 평범한 것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