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일기 5: 나는 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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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이오덕은 1925년 11월 14일에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구석들)에서 태어나 2003년 8월 25일에 충북 충주시 무너미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아홉 살에 경북 부동공립국민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예순한 살까지 마흔두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1951년 부산 동신국민학교에서 처음으로 시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거짓으로 꾸며 쓰는 ‘글짓기’가 아니라 자기 삶을 솔직하게 스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1983년 교사들과 함게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다. 스물아홉 살이던 1954년에 이원수를 처음 만났고, 다음 해에 이원수가 펴내던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딛었다. 1973년에는 권정생을 만나 평생 동무로 지냈다. 새로운 작가와 아동문학이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1989년 아동문학인들과 함께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를 만들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1965년, 우리 말에 관련된 첫 번째 글 ‘우리 말에 대하여’를 《새교실》에 발표했다. 백성이 쓰는 말을 살려야 어린이와 교육, 겨레를 살린다고 믿고 우리 말 살리는 일에 힘을 쏟아 우리 말 살리는 겨레 모임을 만들었다.
목차
- 1부 1999년
ㆍ 우리 말 바로 쓰자고 하는 사람은 마음도 참 고와요 1999년 1월 15일 14 ㆍ 아, 나는 아직도 살아서 이 봄에 살구꽃을 보게 되는구나 싶었다 1999년 4월 16일 25 ㆍ 어쩌면 분노 때문에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다 분노가 없으면 죽은 목숨 아닌가? 1999년 8월 8일 54 ㆍ 사람 한 사람이 옮기는 데 무슨 짐이 이렇게도 많은지 1999년 8월 23일 62 ㆍ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외로운 것,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구나! 1999년 10월 7일 72
2부 2000년 ~ 2001년
ㆍ 긴 세월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 저 소쩍새 소리를 꼭 시로 쓰고 싶다 2000년 5월 12일 130 ㆍ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동화를 쓰고 싶어요 2000년 12월 13일 155 ㆍ 내 나이가 지금 일흔일곱이다. 아직도 살아 있는 이 몸이 너무나 고맙다 2001년 1월 5일 166 ㆍ 날마다 한 편씩 시를 쓰자. 그래야 내 정신을 긴장시켜서 기록을 남길 수 있지 않겠나 2001년 1월 27일 172 ㆍ 오늘도 곶감 내다 말리고, 낮에는 팥 삶아 냉장고에 둔 것 새로 끓이고 2001년 11월 7일 219
3부 2002년 ~ 2003년
ㆍ 아, 이제 몇 번 더 이날을 보낼 수 있을까 2002년 8월 15일 275 ㆍ ‘쉬운 말로 세상을 확 바꾸자’라는 제목으로 2002년 12월 22일 304 ㆍ 아버지 밥 못 잡수신다고 하면 좀 야단쳐, 나는 권 선생이 그토록 내 가까이 있었는 줄 몰랐다 2003년 6월 17일 347 ㆍ 내 삶의 한 평생, 오늘 하루를 끝낸 것이다 2003년 8월 19일 382 ㆍ 즐겁게 떠나니 웃으며 보내 달라 2003년 8월 20일 383
ㆍ 이오덕이 걸어온 길 387
책 속으로
다시 누웠다가 깨니 뒤가 좀 이상하다. 또 일이 터졌는가 싶어 손으로 더듬어 봤더니 괜찮았다. 뒷간에 가야겠구나 싶어, 조금 있다가 일어나야지, 하고 잠시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그래 아픈 허리를 의자에 기대고 안정시키는 동안, 이대로는 아무래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만 참기로 했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생각하다가, 노인들도 기저귀를 찬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 기저귀를 만들면 되겠구나 싶었다. 뭘 가지고 어떻게 만들까 하다가, 수건이 많이 있으니 수건 가지고 만들면 되지 않겠나 해서 수건을 접어서 대어 보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긴 끈을 넣어 맬 수 있게 할라다가 그만두고 옆에 고무 밴드를 대어 좀 늘어질 수 있게 해서 그렇게 하니 아주 간단하고 좋았다. 그래도 한참 걸렸다. 운동복 못 쓰는 고무 밴드 떼 놓은 것 버리지 않고 요긴하게 썼구나 싶다. 옷을 다 입어서 벗기 싫어 안 입어 보고 두었지만 아마 잘 맞을 것이다. 오늘 밤에는 차고 자야겠다.
이것 다 끝내고 골덴 겉옷(위) 단추 하나 달고 나니 7시 가까이 됐다. 이 골덴 보랏빛 겉옷은 거의 30년 전 안동서 산 것인데, 내가 지금도 겨울마다 가장 많이 입는 옷으로 나한테 효자 노릇 한다. 내가 아까 일어났던 시간이 5시쯤 되었는데, 그때 다시 누워 잘라다가, 바느질하느라고 두 시간 걸리고 나니 벌써 아침이 되어 바깥이 훤하게 밝아 온다. 간밤에는 네 시간쯤 잔 것 같다.
내 손으로 내가 쓸 기저귀를 만들다니, 사람 사는 것이 이것이구나 깨닫게 된다. 그렇다. 이것은 부끄러워 할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니다. 가장 절실한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마치 밥을 먹는 것과 같이. _2001년 2월 1일 일기에서, 174~175쪽
오늘은 서울 손님 만난 시간 말고는 아침과 저녁때를 다 바느질로 시간을 보냈다. 밤에 배를 따뜻하게 할 필요가 있어서 수건을 두 장 겹쳐 꿰매어 썼는데, 그것 꿰맨 실이 풀어져서 그것도 좀 단단히 꿰매어야 했고, 다시 따로 수건 석 장을 그렇게 포개어 꿰매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그런 바느질을 하니까 좀 재미가 나기도 했다. 글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다.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이고, 바느질하는 이런 재미를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빼앗긴 것은 참 섭섭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_ 2002년 12월 8일 일기에서, 300~301쪽
어제 생각하니 이렇게 입맛이 다 가 버린 것이 내가 목숨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대로 안 먹고 누워 있다가 고이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그럴 수 없다. 어째서 내가 이렇게 세상일에 사로잡혀 있나? 지금 나는 이승과 저승에서 줄당기기를 하는 사이에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는 꼴이다. 어차피 아무런 희망이 안 보이는 세상을 그만 내버리고 훌훌 떠나야 하는데, 그래도 자꾸 세상 걱정을 하고 있으니 내 모습이 정말 딱하고 처량하다. _ 2003년 3월 31일 일기에서, 330~331쪽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또 다른 한평생으로 살아간다. 오늘도 또 한평생을 살았으니 그것을 대강이나마 적는다.
“의사 선생님, 더 얘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암이란 말 듣고 내 마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아주 평온했어요. 하루하루 쇠잔해져서 이제는 다시 일어날 수 없겠다 싶어 얼마 전부터 죽을 준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살 만큼 살았고, 이 세상의 모든 인연과 헛된 욕망 다 버리고 또 다른 저세상으로 가는 것 참 즐거워요. 내가 죽을 때는 조금도 슬퍼 말고, 모두 웃으면서 흙에 묻어라, 그날은 기쁘게 잔치를 해라고 해요.”
아직도 오늘 하루 내 인생은 많이 남았다.
집에 와서 누워서 음악을 듣고, 하루 일을 대강 적고, 정우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이야기를 하고, 발 목욕을 하면서 앞으로 서둘러야 할 일을 의논했다. 내 삶의 한평생, 오늘 하루를 끝낸 것이다. _ 2003년 8월 19일 일기에서, 380~382쪽
출판사 서평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실에 집중한 참교육자, 교육의 본질이 단순히 가르치는 기술에 있지 않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육 사상가, 변방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늘 주류 사회의 통념과 싸웠던 실천가로 이오덕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1999년부터 2003년 8월 돌아가실 때까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쓴 일기다.
추천사
한평생을 하얀 칼날 위를 한 치 흐트러짐 없이 걸어가신 분. 돌아가시기 사흘 전 “꼬리뼈, 등뼈가 아프고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는 밤에도 당신 삶의 기록을 놓지 않으신 분. 장엄하다. 그분의 꼼꼼하고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읽으면서 이 말이 맨 먼저 떠올랐다. _ 이상석(부산 신도고 교사)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그의 눈은 밑으로 밑으로 향하고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아이들의 편에 서서 바닥의 눈으로,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 선생님 일기에는 나날의 생활,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둘레 사람과 그들의 말 따위에서 찾아낸 것들이 이론이 되고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되어 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_ 탁동철(청호초 교사)
나는 이오덕 선생의 책이 나올 때마다 다 샀다. 《이오덕 교육일기》, 《우리 글 바로 쓰기》,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 간에 오간 편지글 모음, 그리고 이오덕 선생이 엮은 아이들 글 모음과 산문집은 헌책방을 뒤져 샀다. 이제 또다시 선생의 글이 나온다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오덕 선생의 골수 ‘팬’인 성싶다. _ 공선옥(소설가)
간교한 말, 앞뒤 안 맞는 말, 무지한 말, 감성에 깊이 닿지 않는 말이 판치면서 학교에서 청소년이, 농촌에서 농민이, 북한에서 동포가, 자연에서 새와 벌레가 시들어 가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바른 삶에서 나온 말과 진실이 담긴 글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이오덕 선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_ 홍순명(전 풀무학교 교장)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이오덕 일기》의 탄생 과정
크고 두꺼운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슬며시 넘겨 본 1960년대 노트 일기장에는 습기를 먹어 번진 채 휘갈겨 쓴 글자들이 빼곡히 차 있었고, 또 다른 1980년대 일기장에는 날짜에 맞춰 손수 다녀왔던 강연 팸플릿과 오린 신문을 붙인 흔적들이 보였다. 2000년대에 쓴 손바닥만 한 수첩 일기장을 들추니 단정하게 쓴 깨알 같은 글씨들과 함께 쓸 자리가 모자란 곳에 종이를 오려 붙여 더 쓴 흔적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낡은 책장 속에 이처럼 켜켜이 먼지 쌓인 채 보관된 일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가 2011년이다.
교육자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오덕 선생님이 1962년부터 2003년 돌아가실 때까지 42년 동안 날마다 쓴 일기였다. 처음에는 ‘와 엄청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42년의 기록’이라는 일기의 힘이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일기장들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만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42년의 시간. 원고지로 37,986장, A4 용지로 4,500장.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몇 권의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세 사람의 편집자가 다른 일은 제쳐두고 고스란히 일기를 읽어 나가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전체를 세 번 정도 읽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두 번 정도 더 꼼꼼히 읽고 가리게 된다. 날마다 조금씩 읽어 나가면서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던 이오덕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이오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기를 가려 뽑는 기준으로 시대와 맞닿아 쓴 역사 기록 쪽에 자꾸 눈길이 갔다. 워낙 하루 동안 겪은 일, 보고들은 일, 생각한 일 따위를 빠짐없이 꼼꼼하고 솔직하게 기록했던 터라 교육 운동, 아동문학사, 우리 말 운동 따위와 관련하여 남길 만한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일기 읽기에 흠뻑 빠져들 때쯤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서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을 중심으로 가려 뽑는다. 둘째,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 이야기에서 겪은 일을 더 또렷하게 붙잡아 쓴 글을 뽑는다. 셋째, 한 개인의 역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시기별로 중요한 행적을 가능하면 빼지 않는다. 이런 기준으로 세 번에 걸쳐 날짜마다 동그라미, 세모, 가위표를 했고, 세모와 가위표 된 날짜 일기도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한 끝에 걸렀다. 그러고 나서도 모자라 살아 있을 때 이오덕과 함께했던 동무와 따르던 선생님 몇 분에게 《이오덕 일기》가 이오덕의 온 삶을 온전히 담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번에 《이오덕 일기》(모두 5권)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원고지 4만 장에 가까운 일기를 6,200장 정도로 줄인 것이다. 2년 8개월이 걸렸다.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만큼 《이오덕 일기》를 통해 이오덕이 한 사람으로 우리 삶 속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오덕 일기》, 어떻게 다섯 권으로 구성하게 되었을까?
《이오덕 일기》는 시기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교사로 살았던 24년 동안의 기록(1, 2권)이고, 두 번째는 학교를 떠난 뒤 경기도 과천에서 살면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13년 동안의 기록(3, 4권), 세 번째는 충주 무너미 마을로 내려와 돌아가시기 전까지 쓴 5년 동안의 기록(5권)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행적 혹은 장소에 따라 세 권으로 내는 걸 고민했다. 하지만 일기를 읽어 나갈수록 시기에 따라 선생님의 고민과 생활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일기와 비슷한 시기에 썼던 시를 찾아 읽으면서 선생님의 고민 내지는 화두를 좀 더 선생님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오덕 일기》의 권별 제목은 선생님이 쓴 시 구절과 일기 본문에서 찾아 썼다.
1, 4권은 일기 본문에서 찾아 쓴 것이고, 2, 3, 5권은 선생님이 쓴 시에서 찾은 표현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좀 더 잘 드러내기 위해 권마다 ‘여는 시’를 넣었다. 그래서 독자들도 이오덕이라는 한 사람이 1권에서는 답답한 현실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느낌, 2권에서는 확신에 차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은 느낌, 3권에서는 퇴직한 다음에 좀 더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느낌, 4권에서는 사상과 삶이 깊어지고 초연해진 느낌, 5권에서는 자연 속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소박한 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이오덕 일기》는 시간 순서대로 다섯 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는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니며 일하는 아이들의 삶을 가꾸고, 무능한 교육행정에 맞서던 때 쓴 일기이고, 2권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는 1978년부터 1986년 학교를 떠날 때까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풀어 쓸 수 있도록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힘을 기울이던 때 쓴 일기다.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이고, 4권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는 1992년부터 1988년까지 우리 말을 바로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과 교육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으며 삶과 사상을 정리하면서 쓴 일기다. 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1999년부터 2003년 8월 돌아가실 때까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쓴 일기다.
이오덕의 평생을 온전히 담은 최초의 책 《이오덕 일기》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1989년에 한길사에서 《이오덕 교육 일기》가 두 권으로 나온 일이 있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 10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담은 교단 일기였다. 이번에 양철북에서 펴낸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는 《이오덕 교육 일기》를 포함(《이오덕 일기》 1권의 일부)한 이오덕의 평생을 온전히 담은 최초의 책으로,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치열하게 써 내려간 42년의 기록이다.
그동안 이오덕의 교육 철학, 글쓰기 교육 이론을 담은 책, 어린이를 위해 쓴 동시와 동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엮은 글쓰기 모음집, 우리 말을 살리기 위해 펴낸 책들 70여 권을 통해 분야별로 이오덕의 삶과 사상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온 삶을 다 들여다보고 그의 생각의 바탕과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조망해 보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오덕 일기》는 아이들과 함께한 삶에서 찾은 이론을 바탕으로 선생님으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과 그 성장을 관통하는 생각의 바탕과 뿌리를 바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 될 것이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 이오덕의 삶을 다룬 평전이 나오지 않은 지금 그의 온 삶을 바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정본 기록이자, 손수 쓴 자서전의 역할을 대신할 책이다.
《이오덕 일기》를 통해 새롭게 만나는 인간 이오덕
사람들은 보통 이오덕을 말할 때 교육자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이야기한다. 실제 《이오덕 일기》에도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니며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함께했던 삶, 가난하고 힘든 형편에 놓인 아이들이 제 삶에 당당해지기를 바라며 건강하고 바르게 키우려고 글쓰기 교육을 했던 모습, 어린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동시, 동화, 평론을 쓰며 어린이 문학에 힘을 기울이던 모습, 백성들이 쓰던 자연스런 우리 말과 말법을 바로 쓸 수 있어야 우리 민족의 삶을 바로 세울 수 있다며 우리 말 운동을 펼치던 모습들이 때마다 곳곳에서 나오기 때문에 맞게 본 것이다.
하지만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한 만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오덕은 늘 세상을 약자의 눈으로 진실하게 바라보았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기대지 않고 살아갔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의 삶으로부터 자신의 사상을 찾아갔다. 그런 면에서 그의 모습은 머리띠 묶고 거리의 군중을 향해 목청을 돋우는 광장의 실천가와도, 책에서 찾은 이론과 지식을 바탕으로 원고지와 만년필을 무기 삼는 실천가와도 달랐다. 이오덕은 오로지 자신이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 이오덕의 삶을 두고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교실에서 실천하며 이오덕을 따르는 초등학교 교사 탁동철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평범한 것에서 찾아내는 평범하지 않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찾아내는 아름다움.’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그의 눈은 밑으로 밑으로 향하고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아이들의 편에 서서 바닥의 눈으로,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 선생님 일기에는 나날의 생활,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둘레 사람과 그들의 말 따위에서 찾아낸 것들이 이론이 되고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되어 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_ 탁동철(속초 청호초 교사,《달려라 탁샘》저자)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바닥의 눈,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 상식이랍시고 굳어져 있는 통념과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의 통찰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오덕에게 무능하고 부패한 학교 행정당국, 아이들을 외면하고 사회적 지위, 평판 따위에만 눈이 먼 아동문학가, 핍박받는 노동자 농민을 외면하고 지식인들의 언어로 차별을 만들어 내는 신문, 방송, 학자들은 모두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고, 투쟁의 대상이었다.
이오덕이 살았던 교육자의 삶, 아동문학가의 삶, 우리 말 운동가의 삶 모두가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오덕 일기》를 통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 약한 아이들 편에 서서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던 사람, 책에서 얻은 이론이나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은 게 아닌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세상과 맞닿은 하루를 되돌아보고 쓰면서 살아간, 삶의 구체로부터 생각의 바탕과 뿌리를 찾은 사람,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선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진실하게 보았던 한 사람으로 이오덕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이오덕 일기》가 되기를……
일기를 만들며 만난 젊은 독자들 대부분이 이오덕을 몰랐다. 요즘 세대는 이 땅에 살아 있는 정신으로 존경받는 함석헌, 장일순, 문익환……처럼 마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우리 시대 어른들도 잘 모른다. 실제로 둘레에 물어봐도 ‘이오덕’ 하면 “우리 말 운동했던 깐깐한 어르신” 정도로 어렴풋한 인상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와 다음 세대가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사람과 가치를 잊은 채 지내는 것은 잘못될 교육 현실이라 생각된다. 《이오덕 일기》를 통해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 세대, 다음 세대들이 이오덕을 다시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오덕은 우리 교육사에 잊혀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다. 1970~80년대 ‘글짓기’를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한 이오덕의 이야기는 교육 혁명이었다. “네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네 말로 쓰렴.”이라고 한 이오덕의 가르침은 큰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어른들 글을 흉내 내고 거짓으로 꾸며 쓰는 ‘글짓기’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많은 선생님들이 글쓰기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1960년대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닐 때부터 이오덕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닌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있음을 깨닫고 아이들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커서 직업이 꼭 판사, 의사가 아니라도 국숫집 주인으로, 농사꾼으로, 노동자로 스스로 제 삶에 당당하게 제 몫을 다하며 살아나갈 수 있다고 여기며 아이들을 대한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안네의 일기》를 통해 나치 독일의 유태인 탄압에 분노하고 안네라는 솔직한 소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감동했듯이, 《난중일기》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역사적 상황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번뇌에 찬 내면마저도 들여다보았듯이 《이오덕 일기》가 청소년들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게 한 사람 이오덕을 오롯이 이해하는 귀한 책으로 선물되길 바랄 뿐이다.
《이오덕 일기》로 들여다본 이오덕과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 그리고 만남들
10월 유신, 5ㆍ18 광주민중항쟁…… / 권정생, 이원수, 문익환, 함석헌, 염무웅, 신경림……
1962년부터 2003년까지 42년 동안 기록된 《이오덕 일기》에는 말 그대로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단면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42년이라는 긴 시간을 후루룩 넘기면서 해마다 기억나는 사건이 일어난 날짜 언저리를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사건과 관련한 이오덕의 기록이 남아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 늘 세상과 맞닿아 있어 일기 자체가 고스란히 시대의 기록이기도 했고, 또 누구보다 솔직하고 진실한 눈으로 보고 썼기 때문에 시대의 증언이자, 사료로서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0월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고 계엄령을 공포했을 때(1권 218~226쪽 참조), 10ㆍ26 때(2권 65~68쪽 참조), 5ㆍ18 광주민중항쟁 때(2권 165~175쪽 참조), 87년 6월 항쟁 때(3권 90~103쪽 참조), 그 뒤 몇 번의 대선……처럼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경우다. 이때마다 이오덕은 스스로의 눈으로 본 진실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또 《이오덕 일기》에는 세상 속에서 이오덕이 문학으로 우정을 나눴던, 우리 말 살리는 일로 뜻을 함께했던 여러 소중한 인연들이 등장한다. 이오덕은 길 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생각을 키워가고 뜻을 펼쳐나갔던 것이다. 권정생, 이원수(1권 305~328쪽 참조), 문익환(4권 142~143쪽 / 149~156쪽 참조), 함석헌(1권 214~216쪽 / 293쪽 참조), 염무웅(1권 332~342쪽 참조), 신경림, 백낙청, 김남주……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그 가운데 특히 평생의 동무로 만나 지냈던 권정생과의 첫 만남(1권 227~232쪽)은 인상적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오덕은 늘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고 발 벗고 나섰는데, 첫 만남에서부터 그런 모습이 감지된다.
기본정보
ISBN | 9788963720906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6월 24일 |
쪽수 | 400쪽 |
크기 |
134 * 197
* 30
mm
/ 516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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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2003년까지, 74살부터 78살 때까지 일기이다. 선생님은 충주 무너미에서 살며 2003년 8월 25일 새벽 6시 50분쯤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일기를 쓰셨다.
선생님은 무너미에서 생활하며 자연 속 생활을 좋아하게 된다. 경기도 과천에서 살며 이런저런 단체 활동을 하며 수없이 상처받고 절망하다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에 빠져들게 된 것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그렇다고 하여 단체 활동을 아주 놓을 수는 없다. 단체 활동을 하는 사이에 자신을 고요히 돌아보거나 자연의 풍광을 보며 즐거워할 따름이다.
가만히 앉아 온갖 생각을 한다. 창 너머로 파란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는 것도 말할 수 없이 기쁘다. 그러다가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기쁜 시간을 보내는데 내가 공연한 날을 허송하다니! 시도 이렇게 혼자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고, 내가 정말 행복을 맛보는 것이 이렇게 혼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임을 알게 된다. 내 건강도 이렇게 해서 다시 찾아 가질 수 있겠다고 믿어진다.
외로운 것,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구나. (72쪽, 1999년 10월 5일)
선생님은 혼자 있는 행복을 오래 누리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몸이 당신의 혼자 있는 행복을 앗는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은 당신의 병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장염 덕분으로 먹는 즐거움, 밥과 나물, 오리고기, 된장, 감자, 고구마…… 이런 온갖 먹을거리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우가 제 길을 가게 된 것, 정우가 늘 내 곁에 있어 아들 노릇뿐 아니라 친구 노릇까지 너무나 잘해 주는 것도 모두가 신장염 덕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장염 만세!”(152-153쪽, 2000년 11월 30일)하고 병을 긍정하거나, “먹는 것을 끊고, 이런 가을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에 혼자 누워서, 바깥이 좀 보이도록 창문이라도 열어 놓고서 가을 하늘을 쳐다보아도 좋고, 저녁때라면 벌레 소리를 들으면서도 좋고, 이렇게 누워 하루고 이틀이고 지나다가, 한 시간, 두 시간 지나다가 그만 촛불이 사그라지듯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141쪽, 2000년 9월 3일)고 죽음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선생님에게 병과 죽음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위대한 정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아침을 안 먹고 누워 있어야지 했는데, 감 홍시 주워 버리고 절대로 안 먹는다고 밖에 나갔다가, 홍시가 많이 떨어져 있어 그것을 버리기가 아까워 그만 또 여러 개 먹었다. 그리고 기왕 먹었으니 할 수 없다고 밥도 먹고 조기, 오리 알도 먹어 버렸다. 내 마음이 이렇게 굳지 못해서 무엇을 하겠나 또 뉘우쳐졌다.”(213쪽, 2001년 10월 3일)하는 글에서는 당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된다.
병이 깊어지고 죽음이 다가오는 듯하자 선생님은 당신의 죽음을 꼼꼼하게 챙긴다. 미리 원칙 같은 것도 정한다. 첫째, 죽은 사실을 친척 몇 군데 말고는 알리지 말 것. 둘째, 장례를 지내고 난 다음에 알릴 만한 사람들 앞으로 알릴 것. 셋째, 비석 같은 것 세우지 말 것(331-332쪽, 2003년 4월 8일) 등이 그것이다. 선생님은 당신의 장례식 절차며 장지를 생각하고, 부고와 인사장도 미리 쓴다(377쪽, 2003년 8월 16일). 당신은 “살 만큼 살았고, 이 세상의 모든 인연과 헛된 욕망 다 버리고 또 다른 저세상으로 가는 것 참 즐”겁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내가 죽을 때는 조금도 슬퍼 말고, 모두 웃으면서”“그날은 기쁘게 잔치를 해라”(380-381쪽, 2003년 8월 19일)고 말한다. 꼼꼼하게 일기를 쓴 위대한 정신답게 당신의 죽음마저 꼼꼼하게 준비하고 즐겁게 받아들인 것이다.
당신의 일기를 읽으며 큰아드님의 수발 또한 참 섬세하고 지극 정성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참 좋은 큰아드님을 두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신 곁으로 온 신정숙 씨도, 무너미로 삶터를 옮겨 생활한 노광훈 선생님도 뜻이 아름답다. 당신에게는 글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어가는 제자뿐만 아니라 실제 삶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어가는 제자들이 많다. 외려 실제 삶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 당신의 뜻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당신이 돌아가신 지 10년, 당신의 뜻이 더 필요한 지금, 당신에 대한 평가와 계승이 활발하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