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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영조대왕의 진면목 | 양장본 Hardcover
영조 저자(글) · 박승원 번역 · 강현규 엮음
소울메이트 · 2014년 1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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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 중 9.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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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진면목을 가감 없이 들려주는 어록집!
『영조의 말』은 조선시대 중흥기를 이끈 제21대 왕 영조가 직접 했던 말을 정리한 어록집으로, 여러 사료를 참고해서 백성과 관리, 가족, 자기관리, 정책 등에 대해 영조가 남긴 말들을 엮어냈다. 과연 영조는 어떤 왕이었는지, 나아가 영조의 인간적 면모는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크게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영조 재위 51년 9개월간의 역사를 기록한 《영조실록》에서 각별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내용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또 나라의 공적인 일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와 《비변사등록》, 그리고 《정조실록》과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서》에서도 영조의 말이 담긴 부분을 발췌하여 들려준다.

책에 나오는 말들 가운데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모르면 언뜻 그 맥락이 이해가 되지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의 출처와 함께 영조의 발언 배경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는 영조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진면목은 잘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이 책의 시리즈 (13)

작가정보

저자(글) 영조

저자 영조 英祖(1694~1776) 는 조선 제21대 왕 영조는 1724년부터 1776년까지 재위했으며, 조선 역대 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이름은 금(衿) , 자는 광숙(光叔) ,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1694년(숙종 20) 숙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인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다. 비는 정성왕후(貞聖王后), 계비는 정순왕후(貞純王后)다. 비록 개인사적으로는 출신에 따른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친아들 사도세자를 죽이는 등 굴곡이 많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수많은 개혁을 추진한 개혁군주였다. 또한 위민과 애민의 군주로서 민생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며 손자인 정조와 더불어 조선시대 중흥기를 이끌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했을 때 극심한 당쟁으로 왕권은 매우 약했다. 그럼에도 영조는 52년이라는 오랜 기간 왕위에 있으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정국을 안정시켰다. 탕평책으로 붕당 간의 대립을 완화했으며, 민생을 위한 정치를 공격적으로 펼쳤다. 오늘날의 청계천을 준설해 하수처리 문제를 해결했으며, 균역법을 시행해 양역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양역민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또한 인쇄술을 개량해 많은 서적을 간행했으며 스스로도 많은 글을 지은 문화군주다.

역자 박승원은 1974년 경기도 의왕에서 출생했고,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과에서 문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명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재단법인 성균관 학술교육팀장 다산학술문화재단 정본여유당전서 출간팀장 등을 역임했다. 논저로는 ‘주희와 절동사공학파의 논변에 관한 연구’ ‘정이의 천리론과 공부론 연구’ ‘정이 철학에서 성과 기질의 문제’ ‘조선의 심경 읽기 사전’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이순신의 말』 『명심보감』 『채근담』이 있다.

엮은이 강현규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기획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고전 다시 읽기’라는 취지로 고전들을 원전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흥미롭게 재구성해 엮어내고 있다. 방대한 완역 고전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전문 연구자와 대중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이 기획의 취지다. 엮은 책으로 『이순신의 말』이 있다.

목차

  • 엮은이의 말_우리는 영조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

    1장 애민을 몸소 실천하다
    한 사람의 백성이 쓰러지면 위를 저버리는 것
    한 조각 이 마음은 오직 백성들에게 있다
    내가 덕이 없어 백성이 배고프다
    내가 때때로 친히 농기구를 잡는 이유
    백성을 끝까지 돌보아 진휼하도록 하라
    형벌과 옥사를 안이하게 처리하지 말라
    백성의 부모로서의 도리를 스스로 묻다
    나라의 큰 공사에 앞서 백성의 의견을 묻다
    늘그막에 왕이 친히 밭을 가는 이유
    위엄으로써 백성을 부리고 싶지 않다
    임금이 친히 보는 것처럼 백성을 진휼하라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는 이유
    친경과 친잠은 그저 구경거리가 아니다
    비가 쏟아지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네
    혹독한 가뭄에 내 마음 또한 마르네
    백성을 위하는 일에 예만 따를 수는 없다
    임금이 덕을 닦아야 백성이 편안해진다
    지금의 가뭄은 오직 나 때문
    백성의 사정을 해결하는 왕이 되고자 한다
    백성을 위해서는 풍년을 빌 뿐
    근본인 백성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백성이 잘살아야 비로소 성군이다
    늘그막의 마음이 오직 백성에 있다
    백성을 구제하는 데 진심을 다하라
    백성에게 혜택을 못 주었으니 매우 부끄럽다
    법보다 위에 있는 간곡한 백성의 사정

    2장 수많은 개혁정책을 단행하다
    팔순의 업적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면
    균역이라는 큰 사업은 후세를 위한 것
    마침내 함께 살기 위한 어진 정치
    그 뒷날의 폐단을 어찌할 것인가
    백성에게 원망이 있으면 그 원망은 내가 듣겠다
    오늘날 폐단이 없을 수는 없다
    지금의 잘못된 폐단을 고치도록 하라
    회계로 비용을 줄여 백성을 위한다
    큰 민폐인 양역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폐해를 구제할 좋은 방법을 찾아라
    균역에 관여하는 여러 신하들에게
    균역법을 추호도 늦출 수 없다
    백성을 위해 군포를 감면해주는 것
    나라의 직물에는 무늬를 금지한다
    나라의 흥망이 금주의 실행에 달렸다
    지금의 인심으로는 원망을 불러올 청계천
    나의 마음은 오직 준천에 있다
    도랑을 파내는 대사업을 시작하며
    서생의 붓으로 개천을 파낼 수 없다
    균역청은 백성을 위해 설치한 것
    준천과 양역이 느슨해짐을 경계하다
    여종의 공납을 정지시킨 것은 나의 사업
    세 감면 그 자체가 아닌 실질적인 혜택이 중요하다
    첩실의 자식들은 왜 적통을 잇지 못하는가

    3장 탕평책으로 정치를 맑게 하다
    두루 사귀면서 편을 가르지 않는 것
    신하들에 대해서는 탕평 두 글자를 생각했다
    피차에 어찌 역적이 없는 당이 있었는가
    탕평은 공, 붕당은 사
    이제는 탕평에 먼저 힘써야 할 때
    보복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습에 관계된 자를 내 앞에 천거하지 말라
    붕당은 조정의 허물로 당의가 불러온 것이다
    조선 이외에 또 다른 조선이 있는가
    당파의 소굴이 없는지 어찌 알겠는가
    ‘당’이라는 글자를 신하들이 잊는다면
    붕당이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할 것
    노론, 소론의 조선이 아니라 곧 나의 조선이다
    역적으로 모는 것은 이 또한 당심이다
    한 사람의 말 때문에 역적으로 의심한다면
    당파의 우두머리만 알 뿐 임금을 알지 못한다
    편을 가르는 것이 어찌 당이 아니겠는가
    당론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말하라
    탕평은 어찌 해냈다고 하겠는가

    4장 욕망을 경계하며 수신하다
    사사로움이란 무엇인가
    막아내고 이겨내야 할 사람의 욕망
    반성하고 살피며 자신을 이기자
    일의 낌새를 깊이 살펴야 한다
    공은 무엇이고 사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가다듬는 임금의 의지
    스스로를 권면하고 세상에 경계를 내린다
    하늘을 공경하는 정성과 백성을 사랑하는 덕
    사사로운 욕망을 물리쳐야 한다
    모든 것은 내 부덕이 초래한 것이다
    학문이 아니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다
    날마다 스스로 새로워져야 한다
    존호를 올리자는 청에 곤혹스럽고 부끄럽다
    어떻게 완전히 마음을 늦출 수 있겠는가
    힘써 실행하지 않으면 물욕에 가릴 것이다
    사치가 어찌 이렇게 심하게 되었는가
    마음이 크게 부끄러워 몸을 둘 곳이 없다
    분노하는 것도 사사로운 것
    금을 쓰지 말고 주석으로 대신하라
    임금으로서 진심으로 두려워할 만한 것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사치스러움
    스스로 마음을 결정하고 스스로 지켜야 할 뿐
    해이해진 법도와 기강을 깊이 개탄하며
    인재가 없음은 내가 부덕하다는 것

    5장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비극
    모든 사람이 세자를 우러러보게 하라
    식색에 대해 더욱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 어린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는 이유
    신하를 엄히 한다는 것의 의미
    나한테도 물어본 다음에 시행해야 될 것이다
    덕을 갖춘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면서
    ‘쾌’라는 한 글자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오직 안락함 속에서 태어나 자란 세자에게
    사람에게 학문은 일생의 맛이다
    언제라도 백성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내가 균형에 고집했던 것은 단연코 옳다
    세자는 백성들과 함께 도성을 지켜야 할 것이다
    세자의 천연두를 크게 걱정하며
    강연을 열지 않는 세자를 크게 타이르며
    어찌 아비가 자식을 보러 갈 수 있겠는가
    종기에 걸린 세자의 온천행을 허락하며
    세자의 행동이 이상하고 괴이하다
    이것이 어찌 세자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세자의 과실을 숨긴 자는 모두 죄인이다
    이 또한 나라를 망하게 할 말이다
    죽은 세자의 시호를 사도세자라 한다
    만고에 없던 일을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만약 일찍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면
    세자의 생명 경시를 크게 참담해하며
    20여 년에 걸친 부자 사이의 은혜를 끝낸다
    나만 혼자 아무도 없으니

    6장 정조에게 제왕의 길을 가르치다
    너의 도리는 할아비의 마음을 따르는 것
    도성을 지켜야 반역을 막을 수 있다
    비록 말로 가르치더라도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어린 세손은 마음에 새기고 따르라
    너희 신료들에게 세손을 부탁한다
    할아비와 손자, 오직 두 사람밖에 없다
    어린 세손이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저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세손을 가르치고 이끌려는 생각을 다지며
    세자가 자라기만을 날마다 간절히 기다렸다
    조선의 명맥이 오직 세손에게 달려 있다
    세손에게 검소의 미덕을 보일 것을 당부하며
    근본을 단정하게 하는 뜻을 본받게 하라
    임금은 굶더라도 백성은 굶지 않아야 한다
    네가 비록 글을 잘한다고 해도
    세손의 총명함에 크게 기뻐하며
    네 아비의 일을 다시 들추어낸다면
    임오년의 대의를 세손에게 말하다
    옳지 않은 것은 씻어버리고 옳은 것은 따르라
    어린 세손은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농사에 의지한다
    세손이 정치를 알도록 만들고 싶다

    영조 상세연보

책 속으로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먹을 것에 의지하니, 중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신농(神農)은 처음으로 농사를 가르쳤고, 주(周)의 후직(后稷)은 농사를 근본으로 삼았고, 우리 조정의 창업도 또한 주나라와 같았다. 공자께서 “나는 그 예(禮)를 아낀다.”라고 하셨는데, 성인이 가르치신 뜻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권농(勸農)이 곧 실속이 없는 말이 되었지만, 몸소 밭에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권장하겠는가? 때때로 내가 친히 농기구를 잡아 여러 백성에게 권장하고, 각 관청의 신료들이 몸소 밭 가는 기구를 갖추어 첫 해일(亥日)에 거행하는 것이 어찌 다만 농사를 중히 여기는 것일 뿐이겠는가? 바로 내가 처음 정사를 펼칠 때 위로는 제사 때 쓸 곡식을 바치고 아래로는 백성을 권면하고자 했던 뜻이다. _p.26

어영대장이 개천이 메워져 막혀 있다고 아뢰었지만, 나는 백성들의 힘을 더욱 지치게 할까 염려된다. 이제 이와 같이 막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도성을 지키려고 한다면 준천(濬川: 개천을 파는 것)은 더욱 급한 일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태종 때 성을 쌓은 것은 후손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니, 나는 다시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보건대 이와 같이 다리가 막혀 있으니 개천을 파내고 싶다. 너희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개천을 파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백성들 가운데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해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_p.32

많은 뱃사람들이 다 나를 만나고 돌아가면, 그 처자식들이 반드시 임금을 만나서 무엇을 받았는지 물을 것인데, 모두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이번 행차는 전에 없었던 일이니 만약 전에 없던 일에 대한 혜택이 없다면, 뱃사람들이 비록 원망하지 않더라도 어찌 서강(西江)의 조선점검소(漕船點檢所: 세곡 운반선을 점검하는 곳)에는 부끄럽지 않겠느냐? 뱃사람과 격군(格軍)에게는 선혜청(宣惠廳)의 낭관(郞官)이 빨리 가서 쌀 1말을 각각 나누어주고, 아전들 가운데 혹 역(役)을 겸하는 자가 있으면 금년에만 특별히 역을 면제해주며, 격군은 모두 금년에 한해 특별히 역을 면제해주도록 해당 차사원(差使員)과 첨사(僉使)에게 전하게 하라. _p.48

팔순의 업적에 대해 만약 나에게 묻는다면 마음속으로 부끄러우니,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첫째는 탕평이니, 스스로 ‘부끄럽다[?]’는 글자뿐이다. 둘째는 균역이니, 그 효과가 중들에게도 미쳤다. 셋째는 준천이니, 그 공덕이 만세에 드리웠다. 넷째는 옛 제도의 회복이니, 여종들이 모두 한가로워졌다. 다섯째는 서얼의 등용이니, 유자광(柳子光) 이후 처음이다. 여섯째는 옛 법도의 개정이니, 곧 『속대전』의 편찬이다. _p.63

지금의 사치는 옛날의 사치와 다르다. 의복이나 음식은 빈부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해 한 사람이 하게 되면 백 사람이 본받는다. 시체(時體: 당시의 유행)라고 이름 붙이고 유한한 재화를 가지고 무한한 비용을 쓴다. 얹은머리[??]는 사치가 아니지만 크게 하는 것은 사치이고, 홍포(紅袍: 관원이 입는 예복)는 사치가 아니지만 선홍색으로 하는 것은 사치이니, 시체의 폐단은 이와 같은 부류다. 무늬 있는 비단을 이미 금지했는데, 상방(尙方: 궁내의 의복 담당 기관)에서는 무늬 있는 비단 주머니를 나누어준다. 이제부터는 나라의 직물에는 무늬를 모두 금지한다고 안팎에 알리도록 하라. _p.82

아아, 즉위한 지 45년이 되었는데, 비록 추모한다고 했지만, 제사 지내고 알현한 것이 뜻한 것과 같지 않았고, 비록 백성을 위한다고 했지만 목소리를 들려주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 같으면서 그것을 효라고 할 수 있겠으며, 이와 같으면서 백성을 위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준천에서는 겨우 그 공적을 이루었으나, 만약 1년만 해이해져도 모래가 백 척은 쌓일 것이다. 백성들에게 거듭 당부해도 법이 오래되면 느슨해질 것이다. 양역에 있어서는 관청의 노비와 각 사찰의 중들까지 모두 혜택을 입었지만, 은혜가 다하게 되면 태만해질 것이다. _p.94

아, 당습의 폐단이 어찌 이미 백골이 된 세 신하(최석정?남구만?윤지완)에게까지 미치는가? 무관(武官)과 음관(蔭官)이 어찌 당색(黨色)에 연관되고, 서리(胥吏)에 이르기까지도 어찌 붕당에 관계되기에 조정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이들에게까지 미치는가? 이미 거듭 당부했는데도 이전만 못하다면, 조정이 명령한 법률을 따르지 않은 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이번의 처분은 다른 것이 아니다. 지난번에 여러 신하들이 사사로운 원한을 앞세우고 나라의 일을 뒤로 미루면서도 양사(兩司: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아뢰는 말을 장악하고 다른 신하들이 뵙기를 청하는 일도 멋대로 막아서 마침내는 임금을 농락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내가 크게 고치

출판사 서평

영조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생생한 어록!
조선시대 중흥기를 이끈 제21대 왕 영조, 그는 붕당으로 얼룩진 정치상황을 탕평으로 이끌고 수많은 개혁정책과 민생정책을 펼치면서 조선을 부흥시켰다. 이러한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영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무수리 어머니를 둔 비천한 출신이라는 점과 친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잔인하게 죽인 비정한 아버지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개인사적인 콤플렉스를 가진 왕이라는 이유에서 영조를 소재로 한 소설과 드라마도 많이 나와 있다. 이 책은 영조가 직접 했던 ‘말’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의 차별성이 있다. 과연 영조는 어떤 왕이었는지, 나아가 영조의 인간적 면모는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 사료를 참고해서 백성과 관리, 가족, 자기관리, 정책 등에 대해 영조가 남긴 말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리더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애민(愛民)과 위민(爲民)의 기본 정신을 절절히 일깨우는 생생한 어록이다.
영조는 1724년부터 1776년까지 재위한 왕으로, 조선 역대 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그 오랜 재위 기간 동안 그는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을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사료는 영조 재위 51년 9개월간의 역사를 기록한 『영조실록』이다. 긴 재위기간만큼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실록의 글들 중 각별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내용을 발췌해 소개했다. 그리고 『영조실록』뿐만 아니라 나라의 공적인 일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와 『비변사등록』, 그리고 『정조실록』과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에서도 영조의 말이 담긴 부분을 발췌했다. 또 주목할 만한 사료는 ‘어제’다. 어제는 임금이 지은 글을 말하는데, 영조 때부터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왕 중에서 어제 편찬의 양이 가장 압도적으로 많았던 영조는 80종이 넘는 어제를 통해 백성에 대한 사랑, 치열한 자기수양, 과거에 대한 회고와 개탄 등을 드러냈다.

애민을 몸소 실천한 위민의 군주, 영조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는 영조의 위민에 대한 말을 모았다.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 밭에 나가 직접 농사를 짓거나, 개천을 넓히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 직접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 나가 백성의 의견을 묻는 등 백성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2장에는 개혁군주로서의 모습을 담았다. 재정관리를 위해 사치를 금하거나 새로운 회계법을 도입하고, 균역법을 실시해 백성들의 세 부담을 크게 줄였다. 그뿐만 아니라 신문고제도를 부활시키고 서얼의 관리 진출을 허용하는 서얼통청법을 제정하는 등 민생정책도 펼쳤다. 3장에는 탕평책과 관련한 말들을 모았다. 영조는 즉위 초부터 극심한 붕당 갈등을 겪었기에 붕당의 악습을 척결하는 데 온 힘을 다 했다. 4장에는 욕망을 경계하며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영조의 모습을 담았다. 공과 사의 구분을 엄격하게 하고 사사로움을 항상 경계하는 것, 반성하고 살피며 자신을 이기는 것이 영조가 지향하고 실천했던 삶의 자세였다.
5장에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담았다. 영조는 세자가 자신과 달리 안락함 속에서 태어난 자랐기에 늘 훈계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세자에 대한 실망감과 복잡한 정치적 상황, 그리고 세자의 잇단 악행 등 때문에 결국 ‘만고에 없던 일’을 일어나게 했다. 마지막 6장에는 영조가 세손인 정조에게 각별히 당부한 말들을 담았다. 영조에게 세손은 아들 대신 왕위를 계승해 왕조의 오점을 씻어낼 성군이어야 했기에, 세손교육이 엄격하고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영조는 오직 백성을 위하는 어진 정치에 힘쓰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이 책에 나오는 말들 가운데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모르면 언뜻 그 맥락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의 출처와 함께 영조의 발언 배경에 대한 설명을 달았다. 이 책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영조라는 왕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그 이름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60603615
발행(출시)일자 2014년 11월 07일
쪽수 252쪽
크기
152 * 227 * 30 mm / 484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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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말
 
우리는 흔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그속에 나타난 배우 이미지를 실제화 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드라마)속의 주인공이 멋지게 나오면 그 배우의 실제 삶 또한 그렇게 간지나게 살고 있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영화속의 배역이 멋지게 나오면 영화속의 인물의 실제 삶도 그렇게 멋들어진 삶을 산것인양 착각하게하기도 한다. 우리들이 영조임금에 대한 이미지도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조는 조선 21대왕으로 '사도세자'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고 뒤주에 가두어서 아들을 죽인 잔인한 임금으로 많이들 기억하고 있다. 옛날 드라마나 영화속에서도 그런 이미지가 많았었고 우리가 기억하는 영조는 이순재(이산)나 한석규(비밀의문)가 역활을 했던 그 이미지정도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임금으로서 영조는 어땠을까? 폭군이었을까? 어진 성군이었을까? 우리는 그냥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여준 인물정도로 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이책 '영조의말'은 임금으로서의 영조에 대해서 그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이다. 이책은 역사적인 사료인 '영조실록'과 '승정원일지', '비변사등록', '정조실록', '홍재전서'등의 사료에서 나타난 영조임금의 발언을 모은 자료집이다. 이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애민을 몸소 실천하다'에서는 백성에 대한 마음과 그 생각들을 표현한 말들을 모은것이고, 2장 '수많은 개혁정책을 단행하다'에서는 균역법을 위시한 많은 개혁정책을 실시한 내용들을 모았고, 3장 '탕평책으로 정치를 맑게하다'에서는 붕당정치를 해소하고자 노력한 탕평책과 관련된 말들을 기록하였고, 4장 '욕망을 경계하며 수신하다'에서는 임금으로서 이겨내야할 욕망과 사사로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글들로 꾸며졌고, 5장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비극'에서는 사도세자와 얽힌 말과 글들을 모아서 그 생각들을 알 수 있게 하였고, 6장 '정조에게 제왕의 길을 가르치다'에서는 세손인 정조에게 임금으로서 지켜야 할 당부하는 말들을 모은것이다.
 
이책의 자료들을 읽어보면 '영조'가 '성군'으로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서 21대왕 영조와 다음 22대와 정조에 이은 그들의 정치가 얼마나 백성을 위하고 그속에서 많은 정책과 문화가 꽃피었는던가는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흔히 기억하고 있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비극을 제외하고는 영조가 조선시대 몇명 되지않는 휼륭한 임금이라는데 이의를 달수는 없으리라. 이책은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서 그사실을 다시한번 우리에게 기억시켜주고 있다.
 
"임금이 굶주리는 것이 옳은가, 백성이 굶주리는 것이 좋은가? 임금은 비록 굶주리더라도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는것이 더 좋다"
 
 
 
제목: 영조의 말
저자: 영조
출판사: 소울메이트
출판일: 2014년 11월 7일 초판 1쇄     
10점 중 10점
[영조의 말]탕평책과 개혁정치를 펼친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의 어록…….
 
 

영조는 비록 개인사적으로는 출신에 따른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친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는 등 굴곡이 많았지만, 정치적으로는 군주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정립해 수많은 개혁정책을 추진한 개혁군주였다. 또한 조선의 왕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위민과 애민의 군주로서 민생문제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해소하며 손자인 정조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11쪽)
 
개혁과 위민의 군주인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 그는 조선 역사상 가장 장수한 임금이요, 가장 오래 재위한 임금이다. 천한 태생 콤플렉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이었을까? 그는 생활이 검소하고 눈물 많고 인간적이며 백성의 삶을 잘 헤아린 임금이다.
 
   




 

영조의 출생과정은 조선 역사상 가장 미천할 정도다.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는 숙종의 총애로 후궁 자리에 올라 아들을 낳아 정1품의 ‘빈’ 자리에 올랐다. 사실 숙빈 최씨는 궁녀 축에도 들지 못할 정도였다. 궁녀의 시중을 들며 물을 길러주던 무수리였기 때문이다. 그런 핏줄에 대한 배경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
또한 영조를 더욱 괴롭힌 것은 경종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영조가 경종에게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고 경종이 급서했기 때문이다.
 
경종의 죽음에 따른 죄책감과 출신성분에서 오는 자격지심이 더욱 그를 검소하고 강한 임금으로 키웠을 것이다. 그런 충정으로 노론과 소론을 두루 중용하는 탕평정치를 펼쳤지만 노론의 계락으로 아들인 사도세자를 믿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것 또한 영조를 괴롭히지 않았을까?
 
위민 애민의 강력한 정치를 펼치던 영조는 장수한 세월만큼 많은 어록을 남겼다. 영조는 80종이 넘는 어제에는 백성에 대한 사랑, 치열한 자기수양, 과거에 대한 회고와 개탄 등을 적기도 했다.
 
그의 어록에는 왕이 농사를 짓는 친경의 실시하고, 준천 공사에 백성의 의견을 듣고, 홍수와 가뭄에는 백성들을 걱정하고, 방만한 국가 재정을 막기 위해 새로운 회계법을 만들고,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고, 신문고를 부활해 백성의 억울함을 듣고, 균역법을 시행해 양역의 불균형을 잡고, 오늘날의 청계천을 준설해 하수처리를 해결하고, 서자의 관리등용을 허용하는 서얼통첩을 만들고, 여종의 공납을 정지하고, 붕당의 폐해를 막기 위해 ‘탕평’을 고민하고, 사도세자에 대한 고민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도량을 파내는 하나의 일은 오직 백성을 위한 것이다. 한번 명령을 내려 시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와 같은 큰 역사는 즉위한 뒤에 처음이다.(이하 생략) (88쪽)
    
영조 35년에 영조 임금이 명정전 월대에서 준천을 주관하는 관리와 백성들을 만나 준천에 대해 하교하는 말이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백성들을 격려하고 직접 공사에서 삽을 뜨며 일꾼들을 독려하던 영조였다.

    
두루 사귀면서 편을 가르지 않는 것은 곧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고, 편을 가르고 두루 사귀지 않는 것은 실로 소인의 사사로운 의도다. (105쪽)
 
당쟁의 중심인 성균관에 세운 「탕평비」에 있는 말이다.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물든 붕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왕의 노력이 보인다. 노론과 소론의 분탕질 같은 붕당 싸움에서 백성을 위해 탕평을 생각하고, 백성을 위해 양역을 생각하고, 백성을 위해 정치를 생각했던 왕의 노심초사도 담겨 있다.
 

네가 왕손의 어미(사도세자의 후궁인 경빈 박씨)룰 때려죽이고, 비구니를 궁으로 들였으며, 평양으로 여행가고, 북한산성으로 놀러 나갔으니, 이것이 어찌 세자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사모를 쓴 자들은 모두 나를 속였으니, 나경언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들을 수 있었겠는가? (중략) 이와 같이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겠느냐? (194쪽)
 
영조 38년 왕이 사도세자의 악행을 꾸짖는 대목이다. 늘 아버지의 눈에 들지 못했던 사도세자의 악행은 진짜 사도세자의 짓일까? 아니면 노론이나 소론의 음모일까? 궁금하다.
 

지금 세손을 보니, 진실로 성취한 효과가 있다. 한없이 많은 일 가운데 이보다 나은 것은 없으니, 3백 년의 명맥이 오직 세손에게 달려 있다.(226쪽)
 
영조 37년 세손(정조)과의 강연 후 강관들에게 말하는 대목이다. 아버지를 잃은 세손에게 그 슬픔을 잊고 백성을 위해 정치하기를 늘 강조하는 대목이다. 정조의 선정에도 할아버지 영조의 가르침이 컸으리라.
 
이 책의 사료는 영조 재위 52년 9개월간의 기록인 『영조실록』, 『승정원일기』, 최고의결기관이던 비변사의 매일 업무를 기록한 책인 『비변사등록』, 『정조실록』,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서』 , 영조가 지은 글(어제) 등이라고 한다.
 
    
위민 애민의 강력한 정치를 펼쳤던 영조의 어록을 보니, 미처 몰랐던 영조의 삶과 가르침을 알 수 있었다. 역사책 한 자락에서 탕평책과 균역법으로 만났던 영조에게 이리도 기구한 사연이 많을 줄이야.
 
일찍이 할아버지인 숙종의 총애를 받았고, 노론의 역할로 왕이 될 수 있었던 영조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왕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유약한 아들 사도세자에게 만큼은 누구보다 엄하게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만고에 없던 일을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세손을 훌륭한 성군으로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백성을 위하는 어록들, 가정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먹먹함을 더하는 책이다.
 
 
10점 중 7.5점
 
조선의 21대 임금으로 비운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도세자의 아버지이며, 정조의 할아버지이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영조와는 다른 영조를 볼 수 있었다는게 다행이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그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서 죽이는 비정한 아버지로만 알았던 영조다. 500여 년에 걸친 조선의 사직에 드물게 보는 명군이었다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사극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통치자로서의 영조는 훌륭한 임금이었으며 조선시대 찬란한 문화를 일구어낸 정조를 손자로 둔 명군이었던 것 같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고 지순하였으며, 역대 어느 임금보다 훌륭한 개혁정책을 펴 백성이 편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성심을 다 했던 왕이었다.

영조 임금이 재위했던 52년 동안의 치적은 속대전을 편찬하여 정치제도를 개혁하였으며, 균역법을 시행하여 군역과 관련된 폐단을 없애려 하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 부서에 회계제도를 도입하는 등 경제개혁에도 힘써 나라 살림이 방만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경계하였고, 가혹한 형벌을 금지하고, 죄인에 대해 심문할때 세 번을 받게 하여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신문고를 부활시키고, 상언과 격쟁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친히 홍화문에 나가 오부방민을 만나 여론을 파악하는 등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한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경영하는 위정자들이 본 받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또한 군사 무기 개발 및 성곽 구축 등 국방 정책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문화 정책에 있어서도 영조 임금은 학문을 장려하고 각종 서책을 간행하도록 하여, 손자인 정조가 나라를 경영하는데 초석이 되고자 하였다. 그 덕에 손자 정조는 문화 부흥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이밖에 다수의 서원에 학문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다. 붕당정치의 폐해를 바로 잡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였으며, 비인간적인 고문과 혈벌을 금지시키는 법을 제정하고, 궁전과 둔전에도 정액을 초과하는 것에 대해 과세하게 하고, 다섯 집을 하나의 통으로 묶어 조세를 계획적으로 부과하는 오가작동법을 시행하였으며, 양처소생은 모두 양인이 되게 하는 등 사회개혁에도 앞장서는 성군 중의 성군으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 많은 위민정책과 정치개혁을 단행하였다.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던 영조 임금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만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존경하는 정조 임금을 있게 한 위대한 왕이었음을 깨우치게 되었다. 
10점 중 7.5점
우리가 영조대왕을 알지 못해서 어제나 실록에서 영조대왕이 한 말을 뽑아서 실었다라고 책 서문에 밝히고 있다..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조대왕을 잘 모르고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해본다. 사도세자를 죽인 왕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왜 죽였는지는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삼종혈맥(효종. 현종. 숙종)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그 전시대의 조선은 어데가고 왜 소현세자를 저버리고 임금이 된 효종부터 삼종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형이자 선왕인 경종은 어데가고 삼종혈맥의 연결성을 왜 이야기하는지.. 그럼에도 우리가 영조를 모르는 건지...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 듯하다.
 
영조의 말을 책으로 보니 영조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고 고뇌한 왕이 아니라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백성과 신하들에게 말로 전하고 싶었던 왕이었던 듯 하다. 또한 백성들 앞에서 바로 본인이 생각한 바를 말로 해야 자신들의 사욕만 채웠던 그당시 신하들이 뭐라고 반론을 못할 것 까지 알았던 머리좋은 왕이기도 했던 듯하다. 말하기전에 신하들과 먼저 얘기했다면 당연히 신하들은 반대를 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백성들에게 말로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중간과정을 과감히 버리고 바로 백성앞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했던 듯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조는 탕평책을 펴고 했던 듯 하다. 하지만 본인이 다양한 사람들을 쓴다고 해도 어짜피 남아 있던 당파들이 노론밖에 없었던 듯 하다. 간혹 소론이 있기는 했지만 다 망한 집안에서 조정까지 어찌 나갈 수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탕평책을 실시하면서도 노론의 힘을 많이 키워준듯 하다. 그랬으니 정조 즉위하자 말자 정조를 시해하기 위해서 살수들이 임금의 궁에까지 들어왔지 안겠는가.. 정작 탕평책을 실시하고자 했다면 노론이던지 소론이던지 가리지 않고 선비들을 썼어야 했지만.. 적당한 균형을 이루고자 한것은 탕평책이 실패로 돌아간듯 하다.
 
백성을 생각한 마음은 진정인듯 하다. 그 방편으로 백성을 위한 균역법개정과 신문고 부활.. 친경을 통한 농사개발 등 많은 일을 한 위대한 대왕이긴 했다. 하지만 노론에게 힘을 실어준 영조의 말이 과연 백성에게까지 왔겠냐라는 것이다. 다만 탕평책을 드러냈기에 노론이 자신들의 힘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 백성을 덜 건드렸으면 그나마 백성들로서는 살기좋은 세상은 맞았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백성들은 물론 자신들에게 혜택이 오는 것도 좋지만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인지... 여하튼 영조대왕은 조선을 부흥케 한 왕이기는 하다.
10점 중 10점
왕이지 않는가? 그런 그를 만나는데 부담이 없다면 말이 안되지 않겠는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만나고는 싶었다. 익히 알려진 사도세자의 죽음이 커튼처럼 쳐진 그에게 아버지로서 어찌 그리 하실 수 있었느냐고 묻고도 싶었다. 다른 어떤 많은 업적을 쌓고 쌓아도 아들을 죽인 꼬리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진정코 알았느냐고 묻고 싶었다. 지금생각하니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울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허락한 당시의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수를 죽인 이름으로 악한놈 나쁜놈 쳐죽일놈으로 꼬리표를 갖고 있는 것이랑 무엇이 다를까?

사극 드라마를 통해 등장한 영조와 사도세자와 정조(물론 떠올리는 대상은 이순재님과 이창훈님 그리고 이서진님이지만)를 통해 어느정도 친근함(?)을 나에게 주었는데 이렇게 글로써 만나는 영조는 무한 감동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좋다. 그를 만날 수 있어서, 조금은 그를 알게 되어서, 백성을 향한 무한 사랑을 보게되어서 너무 행복하다. 무섭고 두려운 왕이 나에게 다가와 백성의 아버지라는 포근함으로 넉살좋게 쟁기질 같이 하는 친척같은 느낌으로 내려오신 듯하다. 물론 "영조의 말"은 영조에 대한 이야기만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그에 대한 칭송의 의미가 가미되었을 것이라는 기본바탕의 생각은 깔려있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고 감히 단언한다. 그의 인간성을 논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가 가졌던 백성을 향한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지니깐 작금의 시대에 나라의 녹을 먹고사는 분들과 너무 비교되고 "이런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심장의 목소리가 활화산처럼 솟구쳐 오른다는것이다. 그는 지금 없다 그래서 더욱 그리운 사람이 되고 있다 "존경"이라는 말에 안성맞춤인 영조를 만난 오늘 나는 요새말로 득템을 한 것이다. 뼛속까지 백성의 리더자인 영조같은 후손들이 정말 많이 배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요즘 책을 읽겠다는 아들(고1)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난것도 감사하다. 가벼이 읽을 수 있으면서 묵직하게 생각할 줄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될 것 같다. 아들에게 "영조의 말"을 통해 조금은 다르고(다른게 틀린게 아니라는 것) 조금만 더 넓고 높고 깊은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시각을 갖기를 기대해 본다.
10점 중 10점
조선 제21대 왕 영조(1694~1776)는 18세기 조선의 중흥기를 이끈 임금으로 평가된다. 조선왕조 임금 중 재위 기간(52년)이 가장 길었던 왕이다. 콤플렉스와 개인사적인 불행을 안고 있었으면서도 탕평책을 써 붕당 간 경쟁을 완화하고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치면서 조선을 부흥시켰다.
 

영조는 수많은 업적을 남긴 개혁군주이자 그 어느 왕보다도 백성을 사랑했던 위민의 군주다. 그런데 그런 영조가 왜 친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잔인하게 죽게 했을까?
 

이 책은 영조는 어떤 왕이었는지, 나아가 영조의 인간적 면모는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영조 재위 51년 9개월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영조실록’중에서도 현대의 우리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내용만을 발췌해서 소개했다. 또한 여러 사료를 참고해서 백성과 관리, 가족, 자기관리, 정책 등에 대해 영조가 남긴 말들을 엮은 것이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애민을 몸소 실천하다’에서는 영조의 위민에 대한 말을 모았다.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 밭에 나가 직접 농사를 짓거나, 개천을 넓히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 직접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 나가 백성의 의견을 묻는 등 백성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2장 ‘수많은 개혁정책을 단행하다’에서는 개혁군주로서의 모습을 담았다. 방만한 국가 재정을 막기 위해 새로운 회계법을 도입하고, 균역법을 실시해 백성들의 세 부담을 크게 줄였다. 그뿐만 아니라 신문고제도를 부활시키고 서얼의 관리 진출을 허용하는 서얼통청법을 제정하는 등 민생정책도 펼쳤다.
 

3장 ‘탕평책으로 정치를 맑게 하다’에서는 붕당의 극심한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영조의 탕평책과 관련한 말들을 모았다. 영조는 즉위 초부터 극심한 붕당 갈등을 겪었기에 붕당의 악습을 척결하는 데 온 힘을 다 했다.
 

4장 ‘욕망을 경계하며 수신하다’에서는 욕망을 경계하며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영조의 모습을 담았다. 공과 사의 구분을 엄격하게 하고 사사로움을 항상 경계하는 것, 반성하고 살피며 자신을 이기는 것이 영조가 지향하고 실천했던 삶의 자세였다.
 

5장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비극’에서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담았다. 영조는 세자가 자신과 달리 안락함 속에서 태어난 자랐기에 늘 훈계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세자에 대한 실망감과 복잡한 정치적 상황, 그리고 세자의 잇단 악행 등 때문에 결국 ‘만고에 없던 일’을 일어나게 했다.
 

6장 ‘정조에게 제왕의 길을 가르치다’에서는 영조가 세손인 정조에게 각별히 당부한 말들을 담았다. 영조에게 세손은 아들 대신 왕위를 계승해 왕조의 오점을 씻어낼 성군이어야 했기에, 세손교육이 엄격하고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영조는 오직 백성을 위하는 어진 정치에 힘쓰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영조 대왕이 한 말을 오늘 정치인들과 대통령이 새겨들으면 좋을 것이다. “임금이 굶주리는 것이 좋은가, 백성이 굶주리는 것이 좋은가? 임금은 비록 굶주이더라도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는 것이 더 좋다.”(p.229)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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