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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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인 풍경이 담겨 있다.”
작가정보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ㆍ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홍익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고,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건축탐구 집』, 『도시 인문학』,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등이 있다. 현재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ㆍ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홍익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고,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건축탐구 집』, 『도시 인문학』,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등이 있다. 현재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목차
- 책머리에 ㆍ 6
제1장 사람을 담다 : 도시의 공간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서울역
일상에서 여행으로 ㆍ 17
풍경 속으로 빠져들다 ㆍ 21
근대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다 ㆍ 26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 헌법재판소
민원, 천재지변보다 무서운 재난 ㆍ 30
목소리 큰 자가 이익을 보는 세상 ㆍ 34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ㆍ 39
사람이 모이고 사람을 담다 : 광화문광장
하고픈 말을 품고 광장으로 나가다 ㆍ 44
자율성만으로 채워지는 사람들의 마당 ㆍ 48
무엇이 광장을 만드는가? ㆍ 52
싸우고 절충하고 타협하다 : 국회의사당
필리버스터로 진실을 알리다 ㆍ 57
민의를 대변하고 권위를 세우다 ㆍ 61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ㆍ 66
자본주의의 첨병에 서다 : 캠퍼스
지성의 열매를 구하는 들판 ㆍ 71
낭만이 사라진 캠퍼스 ㆍ 75
연대감과 자부심의 공간 ㆍ 80
제2장 시간을 담다 : 기억의 공간
전쟁의 기억을 간직하다 : 철원 노동당사
덕후와 서태지 ㆍ 87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맞닿아 있다 ㆍ 91
갈라진 세계와 끊어진 기억을 잇는 시간의 터널 ㆍ 95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다 : 덕수궁 정관헌
참혹한 역사의 기억 ㆍ 100
몰락해가는 조선의 자존심을 지키다 ㆍ 104
정동에 남겨진 시간들 ㆍ 107
탐욕 위에 희망을 세우다 :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우리의 미래는 어디인가? ㆍ 113
나는 네가 상상도 못할 것을 보았다 ㆍ 117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 ㆍ 121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만나다 : 산 카탈도 공동묘지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ㆍ 125
기억과 시간 속에서 길을 잃다 ㆍ 129
기억은 재구성된다 ㆍ 133
원초적인 공간과 만나다 : 발스 온천
아직도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ㆍ 138
좌절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반항하라 ㆍ 142
실존적인 나와 만나는 어떤 순간 ㆍ 147
제3장 일상을 담다 : 놀이의 공간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이루어지다 : 서점
여름은 독서의 계절 ㆍ 155
책방을 추억하다 ㆍ 159
동네 서점이 돌아왔다 ㆍ 163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 골목
공장에서 들려오는 자본주의의 찬가 ㆍ 168
낡은 것, 더러운 것, 낙후된 것 ㆍ 172
인간에 대한 존경과 시간에 대한 경외 ㆍ 176
자유와 저항을 노래하다 : 클럽
홍대 앞 지하실, 공연장이 되다 ㆍ 182
젊음과 저항의 상징 ㆍ 186
들판으로 나간 록의 창조자와 소비자들 ㆍ 190
예술과 문화가 넘치다 : 홍대 앞과 낙원상가
우리를 사로잡는 것들 ㆍ 195
매혹의 장소들 ㆍ 199
동네의 몰락과 낙원의 매혹 ㆍ 203
사람에 대한 배려 : 서울로 7017
도시의 성장 과정 ㆍ 209
산업화 시대 이후에 남겨진 도시의 유산들 ㆍ 212
도시의 속도, 사람의 속도 ㆍ 217
제4장 자연을 담다 : 휴식의 공간
오아시스를 만나다 : 아미티스 가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과로를 피하는 것 ㆍ 225
위로와 휴식이 필요한 시대 ㆍ 229
정원에서 휴식하며 뒤를 돌아보다 ㆍ 233
자연이 땅을 치유하다 : 선유도공원
살려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재생 ㆍ 238
부수고 새로 짓자 ㆍ 242
오랜 시간 쌓여온 도시의 정체성 ㆍ 246
자연을 존경하다 : 무린암과 줘정원
자연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다 ㆍ 251
이웃이 없는 집 ㆍ 256
이야기를 풍경으로 만들다 ㆍ 261
자연을 품다 : 데시마 미술관
자연으로 들어가는 건축 ㆍ 265
자연에 대한 예찬 ㆍ 269
땅속에서 만난 건축 ㆍ 273
자연을 향해 창을 열다 : 고안
차를 사랑한 추사와 초의선사 ㆍ 278
절대 자유의 경지로 드는 일 ㆍ 282
유리로 만들어진 ‘빛의 암자’ ㆍ 287
참고문헌 ㆍ 291
책 속으로
서울역은 원래 경성역이라 불렸으며 1925년 준공되었다. 1900년 개통된 약 33제곱미터 규모의 남대문정거장이 전신이며, 베이징이나 모스크바까지도 철도를 연결해 지배와 수탈의 거점으로 삼으려는 일제의 야심에 의해 건립된 역이다. 조선총독부 철도국 공무과 건축계의 주도하에 도쿄역을 설계한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의 제자로 도쿄대학 교수인 쓰카모토 야스시(塚本靖)가 설계를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6,836제곱미터의 규모로, 1층은 대합실, 2층은 귀빈실과 식당(그릴), 지하는 역무실로 사용되었다. 서울역의 비잔틴풍의 돔과 르네상스적인 외관은 과거의 좋아 보이는 양식을 취사선택해서 조합하는, 당시 유럽과 일본에서 유행하던 절충주의 건축의 파편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서울역」(본문 29쪽)
온 국민의 눈길이 집중되었던 헌법재판소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 1만 9,221제곱미터 규모다. 극적인 대칭과 비례를 맞춘 위압적인 형태, 끝없이 오르는 계단으로 주눅 들게 하는 대법원 청사나 여타 다른 ‘법의 공간’에 비해 권위적인 인상은 덜한 편이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보니 지어진 해(1993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당시 설계자인 김희수 건축가는 기존에 지어진 권위적인 형태의 법원 건물들이 주는 딱딱한 이미지 대신 쾌적한 시민공원의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 헌법재판소」(본문 40~42쪽)
2002년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낡고 위태로운 구조물의 보존을 위해 지금은 출입을 통제해서 외관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그런 제한이 없었고 그곳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여기저기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부가 다 허물어지고 껍데기만 위풍당당하게 남아 있는 노동당사 건물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껍데기같이 공허했다. 폐사지도 많이 가보았지만 여기만큼 쓸쓸하지는 않다. 그 무렵 서태지와 아이들이 3집을 발표하며 〈발해를 꿈꾸며〉라는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를 이곳 노동당사에서 찍었다. 「전쟁의 기억을 간직하다 : 철원 노동당사」(본문 97~99쪽)
다양한 온도의 온천수와 조명과 빛으로 인해 변화하는 공간의 색, 주변 자연을 그대로 끌어들인 재료의 경험은 건축과 인간의 실존적 경계를 넘나든다. 산속 동굴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를 상징하듯 이 건물에서 ‘산, 돌, 물’이 빛과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일상적 행위인 목욕의 의미를 종교적 의식(목욕재계 혹은 세례)으로 확장시킨다. 그 안에서 벌거벗은 사람들은 인간이 원시 동굴 속에서 처음 겪었을 법한, 가장 원초적인 모습의 자기 자신이 된다. 페터 춤토어의 공간에서는 낱낱의 개별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과 기억이 신 혹은 물과 같은 원초적 자연으로 환원된다. 그렇게 건축화한 자연 안에서 그 장소에 머무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실존적으로 만나게 된다. 「원초적인 공간을 만나다 : 발스 온천」(본문 152쪽)
‘매혹적이었던’ 동네들의 성장과 몰락의 과정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지가(地價)가 적당히 저렴하고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 않아 밀도도 적당한 어떤 동네에 예술가들이 모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동네에 조금씩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러자 그곳에 갤러리가 들어오고, 뒤를 이어 커피숍과 같은 간단한 ‘근린생활시설’들이 들어온다. 그러고는 사진기를 들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덩달아 지가와 임대료가 상승한다. 그러면 그 동네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한, 그러나 가난한 예술가들은 자연스레 상승되는 거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난다. 그 자리에 돈으로 무장한 자본이 들어앉는다. 마침내 문화의 내용이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동네는 아주 저렴하고 유치한 곳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과 문화가 넘치다 : 홍대 앞과 낙원상가」(본문 207~208쪽)
미국 뉴욕 도시 한복판에 낡아서 용도 폐기한 고가철도를 이용해 오랜 논의 끝에 높이 9미터, 길이 2.5킬로미터의 공중정원으로 재탄생시킨 ‘하이라인 파크’가 있다. 그곳은 21세기로 접어들며 가장 화제가 되었던 도시적 사건들이 있었다. 또한 낡은 것을 폐기하며 개선이니 개혁이니 하는 명목을 들이대던 개발 지상주의자 혹은 ‘토건 세력’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그렇게 도시로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이른바 근대적 삶의 형식을 이끌었던 공장들이 기계 대신 예술 작품이 가득한 미술관이 되고, 기차가 더는 달리지 않는 선로가 꽃과 풀이 가득한 녹지가 되기까지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사례들의 이면에는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과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한 오랜 시간의 노력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배려 : 서울로 7017」(본문 209쪽, 221쪽)
홍대 근처 반듯반듯하고 마당이 넓은 집들이 모여 있던 동네가, 커피 마시고 파스타 먹고 옷 사 입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바뀌는 그런 곳 한가운데 넓은 정원이 있는 땅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설계를 하면서 건축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각 층에 발코니를 내고 옥상을 활용해 입체적인 정원을 만들자고 제안하며 아미티스의 공중정원을 떠올렸다. 공중정원은 건물의 중요한 프로그램이 되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건물 이름에도 붙이기로 했다. 나는 팍팍한 바위의 틈으로 녹색의 풀들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는 그런 그림을 연상했는데, 건축주는 그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다. 혹은 지나친 상업주의에 물들어 사막화되어가고 있는 홍대 앞이라는 동네에 한숨 돌릴 공간이 되는 오아시스를 연상했을 수도 있다. 「오아시스를 만나다 : 아미티스 가든」(본문 234쪽)
자세히 인식하기 힘들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완화시키고 치유하기도 한다. 데시마 미술관에 미술은 없다. 설치도 없다. 단지 파고들어가서 비워놓은 자연과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땅속 같은 공간에서 서성거리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고 땅으로 돌아간다. 땅은 아주 실질적인 생명의 공급원이며 추상적인 인간의 지향점이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건축은 아주 구체적인 공간을 지향하면서도, 극도로 추상적인 공간의 이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자연을 품다 : 데시마 미술관」(본문 277쪽)
출판사 서평
우리를 둘러싼 도시의 공간들
“도시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도시에는 역사와 삶의 흔적이 만든 복합적인 풍경이 담겨 있다. 서울역은 찬란하고 서글펐던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며,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는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며, 덕수궁 정관헌은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헌법재판소는 상식과 원칙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의 공간’이며, 광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시끄러운 ‘민주적인 공간’이며,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싸우고 절충하고 ‘타협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우리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캠퍼스는 지성의 열매를 구하는 ‘연대감과 자부심의 공간’이며, 서점은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골목은 도시 재개발에 밀려 하나씩 사라지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를 둘러싼 도시의 공간에는 사람과 시간과 일상과 자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쇠락해간 시간의 역사를 보며, 우리는 그곳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대의 도시 풍경을 읽게 된다.
임형남ㆍ노은주의 『공간을 탐하다』는 두 건축가를 매혹시키는 장소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더불어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의 일상에 담긴 시간들을 더듬어가며 엮었다. 또 이 책은 건축을 보며, 그 건축에 관한 매혹에 대해, 그 공간이 주는 감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모은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간을 위한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임형남ㆍ노은주 건축가는 건축은 가장 오래 남는 물질문명이며 문화이고 시대를 반영하는 척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리를 거닐다 만나는 작은 가게,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담긴 작은 정원,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오래된 시장 등 흔하디 흔한 익숙하고 일상적인 풍경도 그 안에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순간 마법처럼 그 공간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공간은 의미가 더해지고 점점 더 넓어져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결국 개개인의 기억이 모여 역사가 되고 도시가 된다.
제1장은 도시의 공간이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서울역,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헌법재판소, 넓고 시끄럽고 민주적인 광화문광장,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싸우고 절충하고 타협하는 국회의사당, 자본주의의 첨병에 서 있는 캠퍼스에 대한 이야기다. 제2장은 기억의 공간이다.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덕수궁 정관헌,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를 기억하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만나는 이탈리아 산 카탈도 공동묘지, 실존적인 나와 만나는 스위스 발스 온천에 대한 이야기다.
제3장은 놀이의 공간이다.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서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을지로 골목, 자유와 저항을 노래하는 홍대 클럽, 예술과 문화가 넘치는 매혹의 장소인 홍대 앞과 낙원상가, 도시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서울로 7017에 대한 이야기다. 제4장은 휴식의 공간이다. 상업주의에 물들어 사막화되어가는 홍대 앞의 아미티스 가든, 도시 재생의 모범적인 사례인 선유도공원, 자연을 존경하게 되는 창덕궁 후원과 일본 교토 무린암과 중국 쑤저우 줘정원, 자연으로 들어가는 건축인 데시마 미술관, 사람과 자연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교토 고안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 사람을 담다
서울역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후에도 서울의 관문 역할을 오랫동안 하면서 많은 사람의 흥망성쇠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기차를 통해 거리를 극복했고 시간을 극복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기차는 인류를 근대로 옮겨준 교통수단이었다. 그 많은 기차역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서울역이다. 많은 해후와 이별이 이루어지며, 기회를 얻기 위해 분주히 서울로 올라오는 많은 사람이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차역은 사람들을 실어나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도 실어나른다.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등 많은 민자 역사에는 백화점, 극장, 푸드 몰 등 사람들이 모여서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서울역도 2004년 새로운 민자 역사가 신축되면서 구(舊) 역사는 폐쇄되었다가, 2011년 원형 복원 공사를 마친 후 사적번호 284에서 따온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던 찬란하고 서글펐던 한 시대의 기억이, 다시 문화라는 이름의 플랫폼이 되어 우리를 머물게 한다.
광장은 정치적인 장소이며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구의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싹을 틔웠으며 자라났다.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편을 나누고 결정을 하는 시끄럽고 복잡한 과정이 민주주의의 전통이 되었다. 하지만 서구에서 들어온 원래의 개념, 즉 광장이라는 넓고 시끄럽고 민주적인 공간이 우리에게 맞는 곳으로 거듭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우리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앞에서 마음껏 놀아보라고 해도, 마음이 가지 않으면 그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그냥 허울만 좋은 광장일 수밖에 없다. 광장은 울타리 안으로 모여드는 공간이 아니라 경계 없이 밖으로 한없이 뻗어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될 때, 광우병 파동 때,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에 사람들은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집에서 걸어 나와 죽어 있는 광화문광장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고 사람을 담는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굽이치는 그런 광장을 열었다.
도시, 시간을 담다
덕수궁 정관헌은 전통 양식의 목조건축이 아닌, 어딘가 양식풍이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양식으로 보이지는 않는 묘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로 칭했지만, 그 호기와는 달리 정관헌은 쓸쓸함이 느껴지던 당시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고종은 황제에 즉위하기 전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을미사변’과 자신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 ‘아관파천’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관헌은 고종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놓은 정자라고 흔히들 알고 있는 건물이며, 이곳에서 다과나 연회를 열었고, 한때는 태조·고종·순종의 영정과 어진을 모신 적도 있었다. 덕수궁 한 귀퉁이에 이국적이며 쓸쓸한 모습으로 오도카니 자리 잡고 있는 정관헌에서 고종은 외세에 둘러싸여 나라를 걱정하고, 그보다도 먼저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관헌은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한 약한 나라에 대한 회한과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상처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원폭 돔은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파괴되고 남은 원폭 피해의 유적이다. 이것은 인류가 영원히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어떤 상징이다. 1915년에 지어진 원래의 건물은 얀 레첼(Jan Letzel)이 설계했고, 산업 장려 등을 목적으로 한 전시장이자 사무실이었다. 원폭 당시 투하 지점에서 580미터 거리의 이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망했고 건물도 부서졌지만 외벽과 골조의 일부가 남았다. 건물 안의 시계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8시 15분을 가리키며 멈춰 서 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거두고 어렵게 이룬 문명의 흔적이 한순간에 파괴되기도 한다. 인간의 욕심은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더욱 탐욕스러워졌다. 모든 것이 과학이나 기술의 진보로 통제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인류를 지키기 위해 발전시키고 만들어지는 하늘의 천둥이나 거대한 파도보다 더욱 위력이 강한 무기들은 사람들을 겨누는 흉기가 되고 있다.
도시, 일상을 담다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는 일차원적이다. 그러나 서점에 책을 사러 가는 행위, 그 안에서 지식의 그물에 빠지는 행위, 지식을 선택하는 행위 등 많은 차원의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서점에 가는 행위는 단순히 구매라는 의미를 뛰어넘는 또 다른 문화 행위인 것이다. 대형 서점은 책을 사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재미를 주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대형 서점이 인터넷 서점에 밀리고, 그 인터넷 서점이 헌책까지 사고팔면서 오프라인 서점은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은 돌고 돈다고 서점이 각광을 받고 있다. ‘독립 서점’으로 불리는 작은 서점들은 대형 서점에 비하면 규모는 비교할 엄두도 낼 수 없지만, 대형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보고 싶은 책을 파는 곳, 책을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곳, 골목을 걷다 만날 수 있는 가까운 동네 서점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서울 을지로 입정동 골목에는 사람들이 불안하게 살고 있다. 그곳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후, 개선이나 이주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도심 속의 섬처럼 유리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활발히 성장하면서 을지로통도 매우 빠른 속도로 상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결국 집들은 하나씩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기계로 쇠를 깎아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그 공장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굉음은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축원하는 찬가로 들리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기계가 채웠던, ‘산업화의 역군’들이 나가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러나 입정동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옥이나 을지면옥 등 유명한 식당들이 있고, 응접실다방ㆍ순정다방ㆍ화성다방 등이 있고, 서울의 여느 번화가만큼 혹은 신도시의 상가건물처럼 많은 간판이 붙어 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음악을 듣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이 있는 곳이 어둠이 내린 폐허 속으로 들어간 줄 알았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사람들의 체온이 느껴지는 일종의 생태계와도 같았다.
도시, 자연을 담다
선유도공원은 서울시가 진행한 도시 재생 사업 중 가장 돋보이는 사례다. 이곳은 선유정수장 시설을 활용한 생태공원으로 한강의 역사와 동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선유도는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멋진 풍광을 갖고 있었다. 원래는 섬이 아니고 한강의 남쪽에 붙어 있는 땅이었고, 그 끄트머리에 아름다운 봉우리가 솟아 있어 선유봉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선유도공원은 기존 정수장의 껍질을 그대로 살린 것이 전부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살리고, 오랜 시간 고난을 겪은 땅을 자연이 다독이며 서서히 치유시켜주는 곳이다. 정수장 내부의 물길들을 그대로 살려 산책로로 조성해 고대의 유적지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장소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인 안목을 기반으로 할 때 진정한 공간과 시간의 재생을 일구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방식의 재생을 통해 아주 오랜 시간 쌓여온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형태의 개발 혹은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의 정원은 그 경계가 칼로 자른 것처럼 선명하고 명확하다. 경계뿐만 아니라 각 공간의 프로그램도 아주 정확하다. 그에 비해 한국의 정원은 그 경계를 손으로 선을 뭉개놓은 것처럼 아주 흐릿하다. 심지어 그곳이 정원인지 그냥 풀들이 자라서 만들어진 풀밭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자연의 일부가 인간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공간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 같은 역동성이 느껴진다. 창덕궁 후원은 구릉과 계곡과 폭포 등 자연 지형을 살린 조화로운 정원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자연 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는 한국의 정원을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공간이다. 그만큼 땅의 흐름과 기운의 흐름대로 공간들 간의 상호 존중과 땅들끼리의 교감을 바탕으로 지어놓았고, 그 배치가 절묘하다. 더구나 너무 자연스러워 만든 이의 의도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일본 교토 무린암은 ‘이웃이 없는 집’이라는 뜻이다. 삼각형 모양의 땅의 영역에 담을 두르고 그 안에 못을 파고 나무를 심어놓아 심산유곡까지는 아니더라고 속세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정원은 ‘지센카이유(池泉回遊)식 정원’이라고 한다. 지센카이유식이란 물을 가둔 못이 하나 있고, 그 못을 중심으로 다리를 놓고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고 숲을 만들며, 멀찌감치 작은 초막이나 커다란 개구부를 가진 집이 있어서 정원을 바라보게 만들어진 방식을 의미한다. 다다미가 깔린 방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다다미 선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정원과 눈을 맞추게 된다. 중국의 4대 정원으로 불리는 줘정원은 크기가 크고 동적인 구성을 이끈다. 줘정원에는 기암괴석과 오묘한 모양의 산이 가득하다. 가히 명원(名園)이라고 해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 전체를 압도하며 건물과 나무와 사람을 비추는 물이 있다. 또한 물처럼 굽이치며 정원을 휘돌며 감싸는 회랑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사람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회랑을 통해 계속 움직이게 만들며, 중간중간 경치의 의미나 그런 경치를 대하는 자세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귀가 나타난다. 또 주인이 들려주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를 풍경으로 만들고, 그것을 문자와 시적 운율을 통해 전해주는 음악적인 흥겨움이 숨어 있는 정원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59066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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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21년 12월 13일 |
쪽수 | 292쪽 |
크기 |
152 * 210
* 19
mm
/ 498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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