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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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첫 장편소설!
“장담하건대, 그동안 당신은 이런 작품을 읽어본 적 없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17 <그랜타> 선정 미국 최고의 젊은 작가
2016 펜/헤밍웨이상 수상작
2016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
나는 누구에게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애였다.
실은 항상 격분했고 부글부글 끓었으며 내달리는 생각과
살인자 같은 정신으로 살았다.
항상 살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자살할 생각은 없었다.
탈출을 갈망하면서도 매번 게으름과 두려움에 눌려 너무 오래 미뤄왔다.
바로 그 성난 아일린으로 살았던 마지막 날들이 펼쳐진
12월 말의 일주일.
그 밤 처음으로 진정한 나 자신을 보았다.
한창 변화하는 삶의 진통을 겪고 있는 작은 인간.
내 평생의 예금. 그리고 총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정보
198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바너드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브라운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의 출판사 오버룩 프레스에서 편집자 겸 소설가인 진 스타인과 함께 일했다. 2007년부터 <바이스> <파리 리뷰> <그랜타> <뉴요커> 등에 단편소설을 게재했다. 2014년 중편소설 「맥글루McGlue」로 펜스 모던상과 빌리버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2015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아일린』으로 놀라운 장편 데뷔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2016년 펜/헤밍웨이상을 받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7년 소설집 『별세계를 그리워하며Homesick for Another World』로 스토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8년 두번째 장편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My Year of Rest and Relaxation』가 연이은 호평을 받으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 <가디언>과 아마존닷컴 ‘올해의 책’에 선정되면서 개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십 년 주기로 발표되는 <그랜타> 미국 최고의 젊은 작가(2017)에 선정되는 등 오늘날 영미 문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이다.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윌리엄 포크너 『곰』, 아모스 오즈 『친구 사이』, 파울로 코엘료 『불륜』,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존 치버 『존 치버의 편지』, 폴 하딩 『에논』, 세라 윈먼 『마블러스 웨이즈의 일 년』 등이 있다.
목차
- 1964 | 금요일 | 토요일 | 일요일 | 월요일 | 화요일 | 수요일 | 크리스마스이브 | 끝 |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지난 세월 동안 알코올중독증 남자 여럿과 함께 살아봤는데, 그들 하나하나가 내게 가르쳐준 건, 걱정은 쓸모없고 이유를 묻는 것은 부질없으며 도우려는 시도는 자살행위라는 사실이었다. _13p
지금 나는 혼자 산다. 행복하게. 심지어, 기쁨에 겨워. 다른 사람들 일에 관여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그리고 이제는 미래를 끌어다가 생각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항상 걱정에 빠져 있었고, 적잖이는 내 미래에 대한 걱정, 대개는 아버지와 관련한 걱정을 했다. 아버지가 얼마나 더 살까, 무슨 짓을 할까, 매일 저녁에 퇴근해 돌아가면 무슨 일이 벌어져 있을까 같은. _13p
그 겨울에는 해가 아주 빨리 져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어둠의 덮개 아래에서 나는 얼마간 안락했다. _14p
그가 좋아할 유형은 예쁘고 다리가 길고 입술이 불룩하며 아마도 금발일 테지, 나는 추측했다. 그렇긴 해도 꿈은 꿀 수 있었다. 그가 만화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이두박근이 꿈틀하고 치솟는 모습을 몇 시간 동안 바라보았다. 지금 그 남자를 상상하면, 이쑤시개를 입에 넣고 휙휙 돌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름다웠다. 한 편의 시였다. _28p
아, 내 불쌍한 지하 세계, 두꺼운 면 팬티와 어머니가 입었던 꽉 조이는 낡은 거들로 기저귀 찬 아기처럼 단단히 싸인 그곳. 내가 립스틱을 바른 건 멋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맨입술 색깔이 젖꼭지 색깔과 똑같기 때문이었다. _34p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 더욱이 자신을 변호하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차라리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분개하는 편이 나았다. 어렸을 때도 말없는 아이였고, 앞니가 돌출될 정도로 오래 엄지손가락을 빠는 그런 유형이었다. _41p
그날 밤에는 나 홀로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앞의 절벽 너머로 차를 몰아가지 않기로 한다면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 자문했다. 결국 내 인생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랜디의 집, 즉 여전히 분통 터지는 어둠으로, 그런 다음에는 우리집으로 흘러갈 뿐이었다. _93p
아버지의 기분 변화와 감정 폭발 때문에 진이 빠졌다. 아버지는 화를 너무 자주 냈다. 나는 실수로 아버지의 성미를 건드릴까봐 항상 두려워했고, 그러지 않을 때는 화가 나서 일부러 건드리려 들었다. 우리는 늙은 부부처럼 게임을 했으며 이기는 쪽은 항상 아버지였다. “너한테 끔찍한 냄새가 난다.” 그날 아침 아버지가 그렇게 말할 때 나는 그 턱선 아래로 면도칼을 꺾어내리고 있었다. _103p
거실 소파에 누워 베르무트 술병을 허벅지 사이에 끼운 채 잡지를 읽는 어머니의 머리 위로는 오후의 답답한 햇빛 속에서 담배 연기가 자욱한 먹구름처럼 떠 있었다. “지옥으로 엄마 보러 온다고 약속해줄래, 아일린?” 어머니는 묻곤 했다. _109p
삼십대에 만난 한 남자가 기억나는데, 어느 밤에 그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 얘기?나무 아래에 놓인 선물, 코코아, 강아지, 불을 피워 밤을 구워 먹던 일?를 지겹게 늘어놓으며 내 귀를 학대했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들보다 내게 더 혐오스러운 건 없다. _149p
어쨌든 나는 변화를 거듭하는 그애들의 비참한 얼굴이 좋았다. 가장 좋은 건, 어린 시절의 통통한 볼과 미숙한 부드러움을 뚫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자의 매서운 얼굴이 비칠 때였다. 그럴 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_159p
“사모님,” 그렇게 부르는 걸 듣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을 뻔했다. “아버님과 얘기 나눴고요.” 그가 말했다. “아버님이 본인 소유물을 따님이 관리하도록 넘겨주기로 하셨습니다. 따님이 그 총을 아버지에게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요. 본인 표현입니다.” _239p
그런 남자를 사귄 나는 바보였다. 남자 전반에 관해서도 바보였다. 사랑에 대해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온 동네의 문을 다 두드려보고 나서야 맞는 집을 찾았다. 지금은 마침내 혼자 살고 있다. _267p
내가 생활해온 가정과 직장의 특성상, 남에게 복종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느끼게끔 말하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웠다고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사실 이 여자에게서 추악한 진실을 끄집어내는 일에 관해서라면, 나야말로 남다른 경험을 통해 소양과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_333p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이렇다. 아름다운 곳에서 산다. 아름다운 침대에서 잔다. 아름다운 음식을 먹는다. 아름다운 곳들을 따라 산책한다. 사람들을 마음 깊이 좋아한다. 밤에 내 침대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 위에 나 혼자 누워 있으므로. 고통이나 기쁨으로 쉽게 울며 그걸로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는다. 아침이면 밖으로 나가 또 하루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런 삶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_356p
우리 가족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끔찍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당신들보다 특별히 더 나쁠 것도 없었다. 우리의 결말, 우리에게 생긴 일은 그저 운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_361p
출판사 서평
보스턴 글로브 뛰어난 장편 데뷔작. 작품 속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굉장한 즐거움을 느낀 독자들은 여전히 한 가지 질문과 함께 남겨질 것이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
존 밴빌(소설가) 짐 톰프슨과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만난다면 아일린과 같은 존재를 만들자고 공모했을 것 같다. 어둠보다 어둡고, 고드름처럼 차갑다. 훌륭하게 쓰였고, 끔찍하게 재미있다.
북페이지 셜리 잭슨과 메리 겟스킬이 문학계의 딸을 둔다면 그건 오테사 모시페그일 것이다. 그녀의 장편 데뷔작은 반드시 주목할 만하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오테사 모시페그는 아름다운 문장을 쓴다. 연이어 펼쳐지는 그 문장들은 익살맞고, 충격적이고, 현명하고, 섬뜩하고, 재치 있고, 지독히 날카롭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특히 인상적이다. 세심하면서 기발하고, 생생하면서 흥미진진하다.
워싱턴 포스트 지금껏 소설에서 만나온 사회 부적응자 가운데 가장 이상하고 엉망이고 애처롭지만 흉내낼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스럽다. 장담하건대, 그동안 당신은 이런 작품을 읽어본 적 없을 것이다.
가디언 주인공 아일린이 결코 단순한 문학적 괴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의 위력이 발휘된다. 극도로 생생하면서 인간적이다. 육체적·정신적 누추함을 환기하는 작품으로서 독창적이고 대담한 걸작이다.
오프라닷컴 어두운 감정과 뒤틀린 환상이 만연한 오테사 모시페그의 심리 스릴러는 그야말로 사악하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오테사 모시페그는 주도면밀히 구성한 기초 위에 굉장히 충격적인 결말을 세웠다. 놀랍게도 그녀는 심리 서스펜스, 호러, 집착과 광기라는 각각의 요소를 정교하게 접목해낸 최초의 소설가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독자를 동요시키는 장편 데뷔작. 결말 역시 황홀하면서 충격적이다. 기분 나쁘지 않은 비호감에 더럽고 놀라운 아일린은 진정으로 독특한 캐릭터다.
뉴스데이 『아일린』의 클라이맥스는 기묘하고 섬뜩하면서도 묘한 만족감을 준다. 독자의 마음에 불안한 여운을 남기는 걸작 심리 드라마.
퍼블리셔스 위클리 오테사 모시페그는 첫 장편소설을 통해 지난날 단편소설로 쌓아온 자신의 성취를 넘어섰다.
월스트리트 저널 적나라하면서 밀실공포적 분위기를 구사하는 오테사 모시페그의 장기가 매우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젊은 작가는 이미 인간 정신의 가장 음산한 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녔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오테사 모시페그는 여느 작가(성별·국적을 불문하고)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그 독특함은 『아일린』을 통해 확고해진다. 술책 부리기를 거부하며 전적으로 새로운 무언가가 되고자, 스스로 순전한 예술성 안에 머물고자 하는 작품이다.
커커스 리뷰 오테사 모시페그의 언어 구사력은 뛰어나다. 그녀는 모든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일린』은 내적 혼란이 어떻게 외적 소란으로 변화하는지 훌륭하게 써낸 작품이다.
NPR 매력적으로 불안하다. 기분좋게 음침하다. 즐겁게 삐딱하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강렬하고 맛깔나고 비범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속에 떠오른 모순적 감상들이다. 작가가 부린 어두운 마법에 웃음 짓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BBC 망가진 가족의 왜곡과 공모를 포착한 걸작.
북포럼 진실을 말하는 아름다운 작품.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북리스트 최고의 심리 서스펜스 소설.
버슬 주목해야 할 유능한 작가로서 오테사 모시페그를 알린 수준 높은 작품.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가장 영특한 장편 데뷔작
오테사 모시페그, 개성과 작품성을 완벽히 갖춘 괴물 유망주
날 선 개성과 뛰어난 작품성을 겸비한 젊은 작가로서 오늘날 영미 문학계가 주목하는 오테사 모시페그의 첫 장편소설 『아일린』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파리 리뷰> <그랜타> <뉴요커> 등에 단편소설을 발표해온 모시페그는 『아일린』으로 2016 펜/헤밍웨이상을 수상하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문단과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언론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후 2018년에 발표한 두번째 장편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My Year of Rest and Relaxation』가 연이은 호평을 받으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 <가디언>과 아마존닷컴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십 년 주기로 발표되는 <그랜타> 미국 최고의 젊은 작가(2017)에 선정되는 등 모시페그는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젊은 작가로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여러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모시페그의 성격은 그의 글만큼이나 개성적이다. 자신만만하고 냉철한 눈빛과 솔직하고 냉소적이며 재치 넘치는 말투, 가식과 편견을 깨부수는 풍자, 자신의 재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화법 등으로 미루어보아 모시페그는 영특함과 직관만으로 이십대의 혼란을 치열하게 헤쳐나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패기 넘치는 작가인 듯하다. _옮긴이의 말
2016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모시페그는 『아일린』을 쓴 동기에 대해 돈이 없어서, 베스트셀러를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다른 “멍청이들”에게도 가능하다면 자기라고 못할 게 뭐냐고 생각했다며 호기로운 대답을 했다. 다른 매체에서는 자신이 절반만 이란인이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나머지 절반이나마 크로아티아인이라는, 즉 유럽계 백인이라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여긴다는 발언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소수 인종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냉소와 재치 어린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2018년 7월에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to the President」라는 기고문을 통해 캐주얼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게 날카로운 물음과 풍자를 던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당당하고 재기 넘치는 젊은 작가의 문학적·사회적 목소리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통해 발산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자기혐오와 망상 없이는 통과할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젊은 날
“독자의 마음에 불안한 여운을 남기는 걸작 심리 드라마” _뉴스데이
미국 보스턴 외곽의 소년원에서 비서로 일하는 24세 여성 아일린. 겉으론 조용하고 옷차림도 보수적이지만 자기혐오로 똘똘 뭉친 소심한 성격에 야한 상상과 독특한 망상을 즐기며, 한집에 살고 있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를 버리고 뉴욕으로 탈출할 계획을 매일같이 세우고 있다. 짝사랑하는 소년원 교도관을 집앞에서 스토킹하고, 드러그스토어에서 정기적으로 물건을 훔치는 비행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일상에 아름답고 쾌활한 소년원 교육국장 리베카가 등장하면서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급격히 가까워진 두 여자는 춥고 척박한 도시에서 서로에게 자극제 같은 존재가 되고, 실제로 친구 한 명 없는 아일린에게 리베카가 먼저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자고 제안한다. 파티를 위해 와인을 사고 아버지가 맡겨둔 총을 챙겨 리베카의 집으로 향한 아일린. 하지만 몹시 낡고 지저분한 집안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리베카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 둘만의 행복한 시간이 산산조각나버린 그날 밤, 아일린은 리베카의 차가운 진실을 알게 되는데……
나는 비쩍 마르고 각진 몸매에 움직임은 모나고 쭈뼛쭈뼛했으며 자세는 경직되어 있었다. 말랑하고 부글거리는 여드름 자국이 가득한 내 얼굴의 지형은 차갑고 생기 없는 뉴잉글랜드적 외피 아래에 있을 수도 있는 기쁨 혹은 광기를 흐릿하게 지웠다. 안경을 썼다면 똑똑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진짜로 똑똑하기엔 참을성이 너무 없었지만. _본문 10p
그날 저녁 리베카의 집을 향해 차를 몰고 X빌을 지날 때, 기대감으로 최고조에 이른 내 쾌감에는 그 무엇도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고요한 도로나 부드럽게 내리는 눈도, 행복한 가족으로 가득한 집들도, 크리스마스트리마다 깜빡거리는 전구 불빛도. 배기가스와 토사물 냄새 말고도 바깥에서 햄과 쿠키 굽는 냄새가 흘러들어왔지만 그런 명절의 흥겨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내겐 리베카가 있었다. 인생은 근사했다. 배기가스와 토사물로 이루어진 내 조그만 세상도 어쩐지 근사했다. 열린 차창 밖으로 어느 집에 도착한 손님들을 바라보며 지나갔다. 유리팬에 담긴 파이를 든 아이, 빨간 셀로판지와 리본으로 포장한 와인 선물을 든 부모. 행복해 보였지만 그 크리스마스에는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을 참이었다. 자기연민과 원한을 잘 느끼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휴일인 크리스마스. 사람들이 달리 그 많은 와인과 에그노그를 마시는 게 아니다. _본문 276p
이 소설은, 살벌하게 추운 어느 소도시에서 자기혐오와 망상으로 점철된 젊은 날을 통과해온 24세 아일린의 삶을 이제는 안정과 사랑과 풍요를 알게 된 74세 아일린의 목소리로 회고하는 모노톤 서스펜스 드라마다. 시내버스 안에서 한 명쯤 볼 법한 평범한 젊은 여성의 내면에 내재된 혐오, 망상, 미성숙함, 뒤틀린 심리가 징그러울 정도로 세세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차가운 문체로 묘사되는 와중에, 그 클라이맥스에는 허를 찌르는 서스펜스적 사건이 등장하면서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킨다. 1964년 12월 말의 일주일, 이 젊은 여성 아일린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긋지긋한 직장과 끔찍한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에게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란 무엇이었을까?
지저분하고 의뭉스럽고 소심한, 그리고 더없이 솔직한 여성 서사
“가장 이상하고 엉망이고 애처롭지만 흉내낼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스럽다” _워싱턴 포스트
24세 젊은 아일린이 살았던 시기는 1964년이다. 여자들은 외출할 때 장갑을 끼었고, 대학교 댄스 파티에조차 동행이 있어야 했고, 이십대 여성은 으레 결혼을 해야 하며 여성의 몸은 남성의 탐사 대상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젊은 아일린은 자신을 억압하는 그 시대의 모든 것을 혐오하지만 은연중에 자기혐오와 검열을 강화하면서 늘 외모에 집착하고 남에게 “싫다”는 말 한 마디 못하는 여자였다. 자주 씻지 않았고, 변비약의 도움으로 변기가 막힐 정도로 배설한 뒤 찾아오는 탈진 상태를 즐겼고, 단둘이 사는 아버지와 마주치기 싫어 방안에 소변용 항아리를 두고 지내며, 죽은 엄마의 옷을 겹겹이 껴입고 다녔다. 현관 처마 위 거대한 고드름이 머리 위로 떨어져 상처 입기를, 아버지가 죽기를, 직장과 집을 버리고 떠나기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양가감정에 매일같이 시달렸다.
집을 나오면서 유혹을 느낀 대로 현관문을 세게 쾅 닫았다면 머리 위 고드름이 하나쯤은 확실히 떨어졌을 것이다. 그것이 쇄골의 움푹 들어간 곳으로 내리박혀 심장을 정통으로 찌르는 상상을 했다. 혹은, 머리를 뒤로 젖혔다면 그것은 내 목으로 떨어져 비어 있는 몸의 중심을 긁고 내려가?나는 이런 것들을 상상해보기를 좋아했다?내장을 통과한 후 마침내 유리 단검처럼 지하 세계를 갈랐을 것이다. (…) 물론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정말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_본문 20p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주먹으로 배를 두드리고 얼마 안 되는 허벅지 살을 꼬집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내 존재가 줄어들면 내가 겪는 문제도 적어지리라 진심으로 믿었다. 어머니의 옷을 입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였을 테다. 별로 크지 않았던 어머니의 몸집만큼도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말했듯이 나에겐 어머니의 인생, 여자의 인생이 철저히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일만큼 싫은 게 없었다. 물론 스물넷이라는 어린 나이에 나는 이미 아버지에게 그 두 가지가 모
두 되어 있었다. _본문 263p
한 젊은 여성의 불균형과 미성숙, 우울과 의뭉스러움이 솔직하고도 노골적으로, 더 나은 미래로의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음울한 안개 속에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미묘한 불안감으로 독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동시에, 분명 호감은 아닌 이 인물의 솔직함 덕분에 연민과 응원의 감정까지 이끌어내며 다채롭고 생생한 이입과 공감의 경험을 선사한다. 더불어 이제는 아름답고 균형잡힌 생활을 영위하게 된 나이든 아일린의 여유와 유머 깃든 통찰이 절묘하게 등장해 쾌감과 위로를 전하며 뛰어난 완급조절 역시 선보인다. 오늘의 껍질을 버리고 기꺼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 젊은 여성의 서사는, 누구나가 거쳐온 젊은 날의 미성숙함을 훌륭하게 돌아보는 회고록이자, 자신의 현실과 내면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생의 단계를 통과하고 있는 젊은 세대를 위한 공감의 기록이자, 압도적인 첫 장편소설을 탄생시킨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를 그다음으로 나아가게 할 위력의 작품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54655477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3월 15일 | ||
쪽수 | 371쪽 | ||
크기 |
134 * 195
* 28
mm
/ 461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Eileen/Moshfegh, Ottes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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