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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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17년 11월 2주 선정
“이 책은 청소년기와 망명생활에서 발견한 것, 파리와 세계, 여성성이라는 신비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어쩌면 무엇보다도, 프랑스어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부헨발트의 경험은 이 책에 아무런 책임도 없으며, 어떤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다. 또한 어떤 빛도 비추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로,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를 쓰면서 나는 결국엔 일종의 운명―좀 덜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전기傳記―에 스스로를 새겨넣고 만 일련의 우연과 선택에서 몸을 빼낸 양, 잃었던 자유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호르헤 셈프룬
이 책의 총서 (1)
작가정보
저자(글) 호르헤 셈프룬
저자 호르헤 셈프룬Jorge Semprun은 1923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열세 살에 벌어진 스페인내전으로 프랑스로 망명해, 2011년 파리에서 숨을 거둔다. 망명생활 동안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에 심취한 작가는, 평생 대부분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프랑코 독재정권과 나치 독일에 맞서 공산당에 가입해 반독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열아홉에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 수감된다. 수용소에서 보낸 십육 개월은 그의 인생 전체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다. 글을 쓰려면 끔찍했던 죽음의 수용소를 기억에서 불러내야 했던 그는, 글과 삶의 대결에서 힘겨워하며 60년대 초반까지 스페인 공산당 활동에만 매진한다. 마침내 나이 마흔이 되어 펜을 잡는다. 수용소로 떠나는 닷새의 여정을 그린 첫 자전소설 『머나먼 여행』(1963, 포르멘토르 상, 1964년 레지스탕스 문학상)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지만, 1965년 스페인 공산당에서 공식적으로 제명당한다. 이때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 『페데리코 산체스 자서전』(1977, 플라네타 상)이다. 이후 평생의 화두였던 질문을 제목 삼아 자전적 이야기 『글이냐 삶이냐』(1994, 페미나 바카레스코 상, 독일문고평화상, 1995년 인권문학상 & 루이 기유 상)를 완성한다.
그제야 부헨발트 수용소의 기억에서 해방되어, 수용소를 체험하기 이전, 그러니까 자신의 삶에서 아직 거대 역사의 밀물이 덮치기 전인 찬란했던 청소년기를 온전히 글로 풀어낸 이 책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1998)를 쓸 수 있었다. 또한 셈프룬은 알랭 레네의 [전쟁은 끝났다], 코스타가브라스의 [제트](1970년 에드거 앨런 포 상 ‘최고의 시나리오’), [자백]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프랑코가 사망한 후에는 스페인으로 돌아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다른 작품으로 『라몬 메르카데르의 두번째 죽음』(1969, 페미나 상), 『얼마나 멋진 일요일인가!』(1980), 『횡설수설』(1981), 『하얀 산』(1986), 『필요한 죽음』(2001, 샤르메트 상), 『생존 연습』(2012) 등 기억과 망각, 삶과 죽음, 문학과 정치에 대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고, 오늘날 글과 삶에 매진한 ‘20세기 위대한 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역자 윤석헌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알랭 로브그리예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조르주 페렉 연구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프랑스소설 전문 독립출판 레모LES MOTS를 통해 다양한 책을 소개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옮긴 책으로 페렉의 『용병대장』(근간)이 있다.
목차
- 1부 천 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내게 있으니……
2부 『팔뤼드』를 읽는다……
3부 여기 서방에 자리잡은 성스러운 도시가 있나니……
4부 곧 우리는 차디찬 어둠 속으로 빠져들 것이니……
작품 해설: 그럼에도 찬란했던 청춘의 한 시절을 그리며……
호르헤 셈프룬 연보
책 속으로
결국 삶의 의미가 삶에 있다 해도, 삶의 가치는 삶보다 우위에 있다. 삶은 그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들을 통해서 초월된다. 그러니 삶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반면, 삶이 최고의 가치였다면, 처참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상 실천에 있어 삶을 최고의 가치로 고려했을 때, 그것은 매번 역사적 재난이 되었다. 인간들이 삶을 항상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면, 실제 세계는 속박 상태로, 사회적 소외 혹은 만족스러운 순응주의 속으로, 끊임없이 다시 빠져버렸으리라.(43~44쪽)
그런데 프랑스어와의 첫번째 만남―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만남―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이 불만의 원인을 제공한 이는 바로 19세기 작가 빅토르 위고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고의 시 한 구절.(81쪽)
“패주하는 부대의 스페인 병사.” 빅토르 위고의 말, 생미셸 대로의 빵집 여주인이 환기한 이 말은 나를 지독한 비탄에 빠뜨렸다. 그 말은 사실이었고, 우리는 패주중이었으니까. 그 단어가 가진 모든 의미에서 우리는 그러했다. 빅토르 위고의 시적 표현은, 그때부터, 단순히 국수주의적인 허세로 느껴지기도 했으나 그만큼 정확한 표현이기도 했다. 우리를 패주로 몰아붙인 이는 나폴레옹이 아니라, 물론 프랑코였으니,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을 나선 장군이요, 배불뚝이에 거세된 가수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집요하고 인정사정없으며 냉혹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모든 희망과 예상을 뒤엎고 사십여 년 동안 스페인을 지배한 바로 그자였다.(90~91쪽)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프랑스어 발음에서 내 억양의 흔적을 전부 지워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 그 누구도 나를 더는 “패주하는 부대의 스페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외국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또한 그러한 정체성을 내적이고, 비밀스럽고, 근본적이며, 예기치 못한 힘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정확한 발음을 갖춘 익명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115쪽)
쓸 수 있는 모든 이야기, 그러니까 최근에 내게 주어진 모든 소설적 글쓰기의 가능성 가운데, 나는 욕망의 신비로운 망설임을 따라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를 쓰기로 선택했으니(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제목이 떠올랐는데,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모호한 상태에서 제목을 정하는 건 내게 특별한 경우다), 부헨발트 체류 이전의 삶을 다룬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130쪽)
나는 수용소의 기억으로, 그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을 강요당하고 싶지 않았다. 귀중한 것들과 슬픔들로 채워진 그 기억 속에서. 수용소의 기억이 내 소설적 상상력 앞에 세워둔 장애물들은 나를 짜증스럽게 했다.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다른-곳, 다른-존재라는 거대한 영토에서 모험하고자 고집을 부려도, 지나치게 대담하며 지나치게 큰 의미를 담은 삶은, 때때로 창작의 길을 막고 나를 나 자신에게로 다시 이끌었다.(132쪽)
기억하는바, 내게 『팔뤼드』를 빌려준 사람은 아르망이 아니다. 반면에, 루이 기유의 『검은 피』(1935), 폴 니장의 『음모』(1938), 장폴 사르트르의 『벽』(1939)과 『구토』(1938),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1933)과 『희망』(1937)을 권했다. 내게 깊이 영향을 미친 책들이다, 분명히. 물론 내 청소년기의 유일한 교양소설은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내가 아니었으리라.(135쪽)
어쨌든 내 관점에서 따져보건대, 『에스프리』 회합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에두아르오귀스트 F가 마치 친절한 데우스 엑스마키나처럼 내 인생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흥분과 호기심으로 나를 채워줄 새로운 단어가 내 인생에 예고도 없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역사성’이라는 단어가.(159쪽)
앙리4세 고등학교 체육관 근처에 있는 뜰에서 아르망 J는 지드의 『소련에서 돌아와』에 대해 비난하다가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기초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파울 루트비히 란츠베르크는 내게 역사라는, 어렴풋하고 강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엄청난 세계로 들어가는 문 몇 개를 열어주었다.(160~161쪽)
출판사 서평
'기억의 투사' '혁명가 프루스트'로 불리는 20세기 위대한 증인
유럽 정치계와 지성인들이 찬탄해 마지않은
부헨발트 수용소 생존 작가이자 유럽 지성인이 주목한 세계시민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 파리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글을 쓴 스페인 작가
호르헤 셈프룬의 찬란한 청소년기를 다룬 자전소설
국내 초역
"호르헤 셈프룬, 자네와 더불어 역사는 소설이 되었고, 그 소설은 다시 역사가 되었군." ―레지스 드브레
"그렇지만 인생은 소설이 아니네, 그렇게 보일 뿐." ―호르헤 셈프룬
‘기억의 투사’ ‘혁명가 프루스트’로 불리는 20세기의 증인
수용소 생존자이자 작가 셈프룬, 그는 누구였고 무엇을 썼나
나치 수용소를 겪은 후 증언문학 작가로서 우리는 몇몇 이름을 역사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프리모 레비, 안네 프랑크, 빅터 프랭클, 엘리 비젤, 로베르 앙텔므…… 죽는 순간까지 왼팔에 수감번호 A-7713이 찍혀 있던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엘리 비젤은 "기억은 선의를 지닌 모든 자가 짊어진 신성한 의무"라고 했다. 그리고 셈프룬을 가리켜 "기억을 말하기 위해 권한을 부여받은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 셈프룬은 20세기의 위대한 증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2011년 셈프룬이 파리에서 눈을 감았을 때, 프랑스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가 한 말은 그의 삶과 작품세계의 상관성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역사성과 내면성, 이 척진 둘을 화해시키고 등돌렸던 두 자매를 마주보게 한 둘도 없는 오늘의 작가, 셈프룬과 더불어 역사는 소설이 되고 소설은 다시 역사가 되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유력한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에스파냐어 대신 대부분의 작품을 망명지 언어였던 프랑스어로 글을 쓴 이중 국적의 작가. '20세기의 위대한 증인'으로 불리는 그의 삶은 스페인내전의 실패와 이차대전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크나큰 역사의 비극과 궤를 같이했다. 스페인 공산당에 가입해 반나치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다 게슈타포에 체포된 때가 막 성인기로 접어든 열아홉이었다.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되어 십육 개월을 살았고, 이후 유네스코에서 번역원으로 일하며 스페인 공산당 활동에 매진하다, 나이 마흔에서야 첫 자전소설 『머나먼 여행』(1963)을 출간했다. 이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기억은 이후에도 그에게 글이냐 삶이냐, 기억할 것인가 망각할 것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되돌아왔고, 그 고통 속에서 대표작 『글이냐 삶이냐』(1994)가 나왔다. 『페데리코 산체스 자서전』(1977)의 산체스, 『횡설수설』(1981)의 아르티가스, 『하얀 산』(1986)의 라레아 등은 반프랑코파에서 지하운동을 하던 당시의 셈프룬의 가명들로서, 그는 "또다른 삶을 위한 이름들"로 작품을 통해 여러 번 숨바꼭질하고 죽음을 따돌리며 살아남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삶, 소설, 그리고 20세기 역사는, 말 그대로 시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스페인 사람이냐 프랑스 사람이냐라며 국경과 경계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부헨발트 수용소의 생존자입니다. 나의 조국은 언어입니다.”
셈프룬은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알랭 레네, 코스타가브라스, 이브 부아세 등과 함께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프랑코 사후 스페인 민주주의의 복권과 더불어 수상 펠리페 곤살레스의 요청으로 문화부 장관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의 삶 자체가 역사의 부침과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그와 함께 다큐영화를 같이 찍기도 했던 프랑크 아프레드리 감독은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재미난 일화를 들려준다. "삼 년 동안 장관직에 있으면서, 이전에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그를 그렇게 찾아 헤매던 스페인 경찰들이 이제는 그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보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후 장관직에서 물러나면서 레지스탕스 활동 때 썼던 가명을 한번 더 써서 『페데리코 산체스는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1993)라는 제목의 책을 낸 걸 보면, 그는 분명 위트 있는 세기의 인물이었다.
셈프룬의 가장 사적인 역사적 전환점, 그 찬란한 청소년기에 건네는 인사
1998년 작가가 일흔넷에 발표한 이 책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는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과는 명확히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부헨발트 수용소 이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 수용소문학이나 증언문학 작가로 알려진 작가에게 그 시절이 아닌, 수용소 이전을 다룬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를 되묻는 책이자, 이로써 가장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기록을 엿볼 수 있는 책이란 점이다. 작품의 주된 시간적 배경은 1936년 스페인내전의 발발과 더불어 공화 진영 정치계에 몸담고 있던 아버지와 함께 누나 둘, 형, 남동생 셋이 뿔뿔이 흩어져 망명생활을 하던 청소년기다. 몇 해 전 죽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까지 거슬러올라가자면 시간은 계속해서 더 어린 시절로 소급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억의 탁월한 파수꾼이자 지킴이인 그는 파리 망명기인 이 책에서 재구성된 기억의 픽션 영역과 실제의 첨예한 시대적 국면을 오가며 자신의 가장 사적인 삶의 시절에 드리운 역사성을 놓치지 않고 핍진감 있게 묘사해낸다.
그러니까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서고 내전이 마드리드의 함락과 더불어 공화 진영의 실패로 끝나면서 1939년 프랑스로 망명했을 때, 셈프룬은 ‘사춘기 소년’이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 “이 책은 청소년기와 망명생활에서 발견한 것, 파리와 세계, 여성성이라는 신비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어쩌면 무엇보다도, 프랑스어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에서 셈프룬이 ‘찬란한 빛’이라고 명명하며 작별을 고하고 있는 시기는, 바로 파리로 망명해 그의 몸과 정신이 급속도로 새 나라, 새 언어, 새 역사에 눈을 뜨고 있던 때다. 또한 돌아보면 작가 자신의 전반적인 삶의 토대를 일군 시기로, 그가 왜 프랑스어로 글을 썼는지에 대한 항간의 숱한 질문을 잠재울 만한 일상의 사건들로 수놓인 빛나는 개화의 전환점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수용소 생존자로서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 나이 일흔넷에 “잃었던 자유를 되찾은 기분”으로 썼다는 이 책은, 그러므로 시인 클로드 루아의 말대로 ‘혁명가 프루스트’로서, 셈프룬이 다시 찾아낸 삶의 빛나는 생장점으로서의 소년기에 대한 회상이랄 수 있다. 이 파리 망명기에는 프랑스어에 귀를 활짝 열어둔 이방인의 두근대는 흥분과 새로운 문학세계에 눈뜬 열정적 독서, 내전을 피해 몰려온 ‘스페인 붉은 진영’ 난민들을 전염병처럼 바라보는 파리 일반인들의 시각과 그로부터 느끼는 까칠한 소년의 저항감과 분노, 파리 중심가와 외곽의 새로운 장소들에 대한 탐험, 방황하는 길에서 스쳐지나는 파리 여인들에 대한 동경과 성의 세계에 대한 발견 등이 총4부에 걸쳐 스케치된다.
특히 문학작품에 심취한 작가의 전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자전소설은 제목을 비롯해 1부와 4부의 부제 역시 보들레르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고, 3부는 랭보의 시구이며, 2부는 셈프룬이 좋아했던 『팔뤼드』(앙드레 지드)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그가 여기서 작별을 고하는 대상은 바로 그 사춘기 소년의 셈프룬이므로. 부헨발트라는 ‘차디찬 어둠’ 속으로 끌려가기 전의 그 소년이 지니고 있던 빛에 대한 애도이므로. 아니, 어쩌면 이 어두운 시대에 기억을 등불 삼아 머물다 간 한 인간에게 건네는 20세기의 인사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청춘기, 좀더 좁혀 말하면 소년으로서의 자기를 이제야 겨우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에서 마주한 그는, 역사의 더께를 걷고 마침내 한 인간으로서 낮은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모아두었던 것들은 다 써버렸다. 더이상 나 대신 죽여야 하는 가공의 인물은 없다. 내가 사용했던 모든 예명과 가명까지 모두 써버렸고, 죽음이라는 황량한 바람 속에서 흩어졌다. 이제는 더이상 희생을 치르게 할 아르티가스도, 라레아도, 뷔스타망트도, 살과 뼈로 된 유령도 없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의연하게. 나만 홀로 남겨진 채 죽음 앞에 노출되었다.”
20대 중반 프랑스로 건너온 루마니아 태생의 에밀 시오랑이 “언어를 바꾸면서 나는 인생의 한 시절과 결별했다”라고 한 반면, 작가 셈프룬은 짐짓 모든 걸 넘어선 듯 이렇게 말한다. "나의 조국은 언어다." 언어의 왕국에서 그가 자유롭게 유영했던 곳, 삶에서 유형지의 기억을 끊임없이 각인하고 되돌아봐야 했던 작가에게 문학은 그야말로 해방의 찬란한 빛이었다. 그가 이끌린 독서 체험과 작가로서의 또다른 사명을 엮어내는 데 이 청소년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한 이방인 소년의 눈에 비친 1930년대 후반 파리 풍경과 세기의 인물들과 문학작품
여기에는 몇몇 중요한 시대 정황과 생제르맹데프레의 되마고 카페, 몽파르나스의 셀렉트 카페 등 당시 파리의 지식인들이 드나들던 명소들을 비롯해, 역사적인 인물들이 슬쩍슬쩍 그의 주변배경으로 스케치된다. 내전이 끝나고 사반세기가 지나 고향 마드리드 카페에서 만난 신랄한 입담으로 작가를 씁쓸한 우수에 젖게 하는 헤밍웨이, 아버지가 가담해 있던 『에스프리』 철학잡지 동인들, 생미셸 대로에서 신문 가판대 근처를 지나다 소개받은 사회학자 레몽 아롱, 망명해온 스페인 정치가나 지식인들 근처에 살던 한나 아렌트와 68혁명 학생 주동자 다니엘 콘벤디트의 부모이자 제4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던 콘벤디트 가족, 카페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주위의 이목을 끌던 발터 벤야민, 1936년 8월 ‘소련의 스파이’로 몰려 체포당해 죽기 전에 셈프룬의 집에서 자신이 최근에 쓴 희극을 읽던 가르시아 로르카, 학교 기숙사 사감이자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던 투샤르 집에서 만난 루마니아에서 막 건너온 재담꾼 에밀 시오랑, 같은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죽어간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 등.
뭐니뭐니해도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 중 하나는, 자신을 공산주의자로 살게 한 데 일조한 금쪽같은 작가들의 목록이다. 보들레르, 랭보, 앙드레 지드, 앙드레 말로, 루이 기유, 레비나스 등 이들 말고도 덜 알려지긴 했으나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인 파울 루트비히 란츠베르크, 아르망 J, 에두아르오귀스트, 변증법과 관련해 작가에게 예리한 질의문답을 해온 헌책방 주인, 지하철 안에서 만나 자신에게 잊지 못할 욕망의 이미지로 화한 한 여인 등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사람을, 그 시대 자기 곁에 있었던 한 인간을 기억의 등불로, 시대의 나침반으로 삼는 셈프룬. 그는 20세기의 리얼리스트 화가이자 휴머니스트 시인이었다.
【해외 언론 리뷰】
“셈프룬, 자네와 함께 역사는 다시 소설이 되고, 소설은 다시 역사가 되었군.”
―레지스 드브레(프랑스 철학자)
“수용소 생존자 중 하나로 시간을 되찾고 시련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획득한 명상가, 셈프룬은 이를테면 혁명가 프루스트다!”
―클로드 루아(프랑스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기억을 말하기 위해 작가로서 권한을 부여받은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 20세기의 위대한 증인들 사이에서 셈프룬은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엘리 비젤(홀로코스트 생존자,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 작가)
[책속으로 추가]
나에게, 의미와 피로 채워진 이 ‘역사성’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발견을 상징한다. 바로 정치와 역사라는 실질적인 세계의 발견을. 육체와 정신을 저당잡혀 필요한 경우 소멸마저 감수해야 하는, 아마도 미로 같은 하나의 혼돈스러운 대륙. 당시 나는 열여섯 살이었고, 물론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는 그 수많은 논쟁은 내 지적 능력을 넘어선 것이었다. 내 의식은 그러한 논지를 완전히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그때 받았던 지배적인 인상은 마치 정신적인 열병처럼 거의 육체에까지 자극을 주었고, 훨씬 나중에 나는 다른 맥락들 속에서, 가령 셰익스피어나 그리스비극, 그리고 마르크스와 루카치 초기의 몇몇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 인상을 되찾은바, 이는 바로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소속감과 관련한 느낌이었다. 세계를 알아내겠다는 환상,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 말이다.(163~164쪽)
왜 지드의 그 짧은 이야기가 내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을까? 왜 그 책이 기억 속에서 그토록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더하여, 왜 다른 어떤 이야기도 내 기억 속 『팔뤼드』가 차지한 자리를 빼앗아갈 수는 없었던 걸까?(168쪽)
해가 거듭되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나는 『머나먼 여행』을 프랑스어로 썼다는 부적절함에 대해 각양각색의 다양한 이유를 제시했는데…… 내 인생의 그 시절을 재구성하는 지금에 와서야, 진짜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것도 처음으로. 프랑스어에 적응하는 과정이 내 인성을 만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 바로 그 추억의 작업, 1939년의 몇 달을 재구성하면서, 나는 왜 내가 첫번째 책을 프랑스어로 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176~177쪽)
보들레르와 베데커. 이들은 도시를 관통하는 탐험으로 이끌어준 나만의 지도제작자들이었다. 세계의 중심이며 출발 기지였던 팡테옹 광장에서부터, 매번 탐험이 시작되었다.(204쪽)
외관은 그렇다 쳐도 본질마저 증발해버린 그 동네의 중심, 내 기억 속 생제르맹데프레의 중심에, 적어도 퓌르스텐베르그 광장만큼은 아주 순수하고 변질되지 않은 물속 다이아몬드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이처럼 과장스럽게 환기하는 것이, 이곳이 개인적인 추억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된 장소인지, 목소리를 드높이지 않을 수 없음을 잘 드러내주리라.(219쪽)
가장 중요한 질문은, 능숙하고 재능을 타고나고 영악하고 종종 미숙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수사학적이며 그 어떤 단절도 없이 자연스럽게 프랑스 시의 전통 속으로 들어간 이 매력적인 젊은 시인이, 왜 갑자기 인간 랭보가 되어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랭보는, 타락한 천사가 추락할 때 그 주변이 불타오르듯 믿을 수 없이 강렬한 빛으로, 다채로운 감각으로 타오르며, 감각과 관능이라는 면에서 엄청나고 끝도 없는 어떤 한 지점에, 프랑스어의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운석 같았다.(240쪽)
스페인 ―너무 가깝지만 다다를 수 없는,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의, 무화無化된 가족생활의 영토― 쪽으로 튀어나온 비리아투의 테라스에서 문득 그러한 것들을 의식했지만, 방학 내내 축적된 강렬한 행복의 순간들을 불시에 찢어버릴 만큼 위력적인 이 한결같은 근심거리도, 프랑스어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적어도 상쇄되었으며 ―어쨌든 경감되었거나― 혹은 지워져버렸으니, 이 성공이 관념적인 공동체 안으로 나를 안내하여 더이상 그 누구도 내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지드, 지로두, 말로, 사르트르, 마르탱 뒤 가르, 레리스, 그 누구도 나한테 경탄할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그들의 책을 펼칠 수 있게, 문학이라는 엄숙한 제약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데 있어 여권을 요구하지 않았다.(295~296쪽)
비리아투의 테라스, 에브의 곁에서 진심 어린 침묵의 시간을 보내던 그날 오후였을까? 전원풍의 투박한 성당에 인접한 작은 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이 처음으로 내게 스쳤던 것이…… 무국적자들한테 가능한 그 조국, 하나의 소속과 다른 소속 ―스페인 사람이라는 아주 절대적이며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근원과 그 자명함, 그리고 프랑스 사람이라는 아주 불확실하고 때로는 근심스러운 선택과 열정― 사이, 에우스칼레리아(바스크 지방)의 오래된 대지에 자리잡은 이 국경지에. 나의 부재를 영속시키기에 완벽히 딱 들어맞는 장소가 아니었을지…… 나는 또한 내 육신을 ―붉은색, 금색, 보라색― 공화국의 삼색기로 둘러싸달라고 요구할 것이다.(318~319쪽)
어쨌든 내 기억에서 이 부분만은 의심할 여지도, 모호한 것도 없다.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셀렉트 카페의 그 테이블에 발터 벤야민이 있었는가 하는 점뿐이다.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자기 견해를 밝히며 다른 사람들한테 특히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가 정말 발터 벤야민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한참이 지나 발터 벤야민의 사진들을 보았을 때, 나는 셀렉트 카페에서 본 그 사람, 드물게 말을 할 때면 다른 독일 망명자들이 주의깊게 경청하곤 했던 그 미지의 남자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350쪽)
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올라갔다. 이 빛, 유칼리나무들의 향기, 수국들, 자갈 깔린 오솔길을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 소리, 노는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다. 옛날 그 모습이었다. 베리만의 영화 [산딸기] 속 인물처럼, 나는 늙어버린 나를 데리고 현실에 다시 나타난 과거 속을 산책했다.
“오후가 지나간다, 하나 그날 ‘오후’는 머물러 있다……”(359쪽)
기본정보
ISBN | 9788954648745 |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10월 30일 | ||
쪽수 | 416쪽 | ||
크기 |
129 * 190
* 27
mm
/ 445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호르헤 셈프룬 선집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Adieu Vive Clarte/Semprun Jor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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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책에는 작가의 청소년 시절 문학에 대한 심취가 담겨 있다. 이 자전소설은 제목을 비롯해 1부와 4부의 부제 역시 보들레르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고, 3부는 랭보의 시구이며, 2부는 셈프룬이 좋아했던 『팔뤼드』(앙드레 지드)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그가 여기서 헤어지고자 하는 대상은 바로 그 사춘기 소년 자신이다. 부헨발트라는 ‘차디찬 어둠’ 속으로 끌려가기 전의 그 소년이 지니고 있던 빛에 대한 애도이자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