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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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19세기 당시 지배층은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경제학’, ‘사회적 공화주의’, ‘연대주의’의 네 사상적 조류를 낳았고 이는 20세기 복지국가 체제 확립의 기틀이 된다. 20세기 후반 서구사회는 신자유주의 폐해와 고령화, 청년실업자 증가 등의 새로운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인 것’이란 개념이 정착하고 사회적 연대와 합의가 이루어졌던 과정을 재검토 한다. 그럼으로써 복지국가 이념과 원리를 근본부터 다시 성찰하고 새로운 합의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 책의 시리즈 (9)
작가정보
저자(글) 다나카 다쿠지
저자 다나카 다쿠지田中拓道는 현대 복지국가 이론에 정통한 일본의 사회학자. 1971년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출생으로, 국제기독교대학 사회과학과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대학 대학원 법학연구과에서 정치사상사를 전공했다. 박사과정 중에 프랑스에 유학,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이 책 『빈곤과 공화국』의 기초 연구를 진행했다. 일본에 돌아와 2003년 복지국가 프랑스의 사상적 흐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니가타 대학 준교수를 거쳐, 2010년부터 히토쓰바시 대학 사회학연구과 정치학 부문 교수로 있다. 지구화 국면 속에서 복지국가 재편에 대한 비교연구, 19세기 복지국가 형성의 사상사(영국, 프랑스, 독일), ‘탈상품화’와 ‘재상품화’를 키워드로 하는 복지국가 일반이론 구성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박사논문을 보강하여 펴낸 『빈곤과 공화국』(사회정책학회 장려상 수상)을 비롯해, 『모색하는 정치―대의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행방』, 『복지체제의 수렴과 분기』(이상 공저)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현대 복지국가이론의 재검토」, 「자유·개성·연대―프랑스 제3공화국기 사회사상의 재해석」, 「탈상품화와 시민권―복지국가의 일반이론을 위하여」 등이 있다.
목차
- 한국어판 서문
서론
제1장 사회문제
제1절 도입
제2절 혁명기―시민적 공공성과 정치화된 공공성
제3절 19세기 전환기의 이데올로그―사회과학의 공공성
제4절 1830년대―‘사회문제’의 등장
제2장 사회경제학―새로운 자선
제1절 도입
제2절 정치경제학
제3절 사회경제학
제4절 사회경제학의 전개
제3장 사회적 공화주의―우애
제1절 도입
제2절 사회문제와 공화주의
제3절 우애의 공화국
제4절 우애의 험로
제5절 ‘우애’에서 ‘연대’로
제4장 연대주의―연대
제1절 도입
제2절 연대의 철학
제3절 연대 이데올로기의 성립
제4절 연대의 제도화
결론
후기|주|참고문헌|옮긴이 해제|찾아보기
책 속으로
이 책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프랑스혁명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프랑스를 대상으로, 자유방임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위치하려 했던 지배층이 산업화와 더불어 나타난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지고 있던 사상들을 검토하는 것. 둘째, 이를 통해 프랑스 복지국가의 탄생을 예비했던 사상사적 과정을 해명하는 것.(16쪽)
1932년 5월 1일에 사회가톨리시즘의 영향으로 도입된 가족수당제도와 더불어 프랑스 복지국가는 최초로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보편적 권리 보장을 목표로 하는 연대주의와 중간집단의 자치 및 국가 개입의 제한을 목표로 한 사회경제학의 대항관계는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본적 프레임은 2차대전 이후에도 지속되었다.(226쪽)
이 책은 먼저 프랑스혁명이 그전에 존재했던 사단국가社團國家라는 사회상을 대체하기 위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로 구성되는 사회상을 주장했음을 살폈다. 그리고 이에 내재된 이념적 평등주의?평등한 주권자인 인민?와 사실적 불평등의 괴리를 혁명 이후 어떻게 사상적으로 문제시하고, 7월왕정기에 사회문제라는 이름으로 추궁하게 되었는지를 검토했다. 나아가 19세기의 지배층이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방임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의 중간에 서서 주장했던 사상들을 정치경제학, 사회경제학, 사회적 공화주의, 연대주의라는 네 개의 조류로 구분했다. 또한 이들의 대항관계 속에서 프랑스 복지국가를 떠받치는 사상적 원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포괄적으로 검토했다.(229쪽)
프랑스 복지국가의 원형은 연대를 표상하는 국가와 중간집단의 상호보완을 통해 보편적 사회권의 실현을 목표로 했던 연대주의와, 대면적 관계에 기초하여 중간집단의 자치를 주장한 사회경제학의 대립관계를 내재한 채 제도화했고, 그 기본구조는 1930년 사회보장법에서부터 2차대전 이후 체제에까지 계승되어갔던 것이다.(237쪽)
19세기 말에 탄생한 연대 사상은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제도화되고, 의회에서의 사회보험 및 사회권의 승인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19세기를 관통했던 사회적인 것의 탐구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했다. 여기서 개개인의 상호의존관계로 이뤄진 사회는 국가나 시장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자율적 집합으로 표현된다. 개인은 사회화를 통해 자율을 획득하는 존재가 되고, 국가는 연대를 더욱 잘 표상하는 기관으로 중간집단에 대한 보완과 교육이라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사회는 개인, 중간집단, 국가의 협동 아래 추상적 인간성의 진보를 실현하는 집합으로 파악된다. 20세기 전환기에 연대 사상은 산업의 자유와 권위적 사회통제를 조합한 정치경제학, 전통집단의 활성화를 통한 상하 계층의 융화를 모색한 사회경제학, 낭만주의적 내셔널리즘과 결합한 사회적 공화주의(우애의 공화주의), 노동자계급의 자율을 주장한 생디칼리즘 등에 비해 좀더 포괄적인 사회통합 모델을 제공했다. 또한 복수의 정치 세력들 간의 합의를 통해 제3공화정 중기 일정한 질서 안정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238쪽)
출판사 서평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복지국가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연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복지 선진국 프랑스의 복지체제 형성에 관한 사상사적 고찰
“지역주의와 가족주의를 넘어선 ‘사회적인 것’을 어떠한 논리를 통해 주장할 것인가,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관계를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이 직면해야 할 화두이다.”
- ‘한국어판 서문’에서
‘복지국가’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프랑스혁명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로 구성되는 사회상을 주장했으나, 19세기의 산업화는 ‘거대한 빈곤’이라는 사회문제를 초래했다. 이념적 평등과 사실적 불평등의 괴리 앞에서 복지국가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연대’의 철학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현대 복지국가 이론에 정통한 일본의 사회학자 다나카 다쿠지는 정치사상, 사회사상, 경제사상, 철학 등을 횡단하면서 프랑스혁명 이후 백 년 넘게 계속된 사상사적 토론의 장을 추적한다. 자유방임주의와 사회주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 했던 당시 지배층은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경제학’, ‘사회적 공화주의’, ‘연대주의’의 네 사상적 조류를 낳았고, 이는 20세기 복지국가 성립의 기틀이 된다.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고령화, 장기화된 실업문제 등 복지 체제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원점으로 돌아가 ‘사회적인 것le social’이라는 개념이 자리매김하고 사회적 연대의 합의가 이루어졌던 과정을 재점검한다. 기존 복지국가를 떠받쳤던 이념과 원리를 근본부터 다시 성찰함으로써 새로운 합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지금, 왜 다시 ‘사회적 연대’인가
최근 한국사회에서 복지정책은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인구의 노령화는 가속화되고,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에서 일자리는 점점 불안정해지며,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취약하다. 지난 수년간 복지정책은 각종 선거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으며, 누진과세나 연금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첨예한 사회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아직도 복지국가의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프랑스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 복지체제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특정한 이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다. 프랑스는 시민사회의 문을 연 1789년 대혁명 이후 복지국가 체제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기까지 백 년 넘게 치열한 논쟁을 거쳤다. 그리고 어느 한 당파와 이론의 승리가 아니라, 여러 당파와 이론의 결합과 컨센서스를 통해, 즉 ‘연대’의 원리를 통해 사회보장의 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마저 압축성장을 꾀해왔고, 복지체제도 위로부터의 기획으로 단기에 부분 이식해버린 우리나라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래로부터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 과정이 생략된 복지체제는 근본적으로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복지 정책과 제도는 그것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고 이를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기꺼이 부담하려는 연대의식 없이는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고 유지되기 어렵다. 연대의식 없는 복지정책의 도입, ‘사회적인 것’에 대한 논의 없는 복지정책의 도입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복지정책에 앞서 연대의식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사회적인 것’에 대한 담론과 지식의 확장이 반드시 팔요한 것이다.
19세기 프랑스를 주로 다루고 있으나 이 책은 단순히 프랑스 복지국가 형성사가 아니다. 프랑스 학계에서는 1970~80년대 이후 서구 복지체제가 맞이한 위기 앞에서 푸코 세대를 중심으로 그 복지체제를 이룬 핵심 개념인 ‘사회적인 것’을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그런 연구 동향과 궤를 같이하며 복지국가 형성의 근본 동력을 재조명하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시각이다. 복지체제를 이제 제대로 구축해야 하는 우리에게나, 재검토와 갱신을 위해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다시 숙고하는 프랑스에게나 이 과정은 매우 긴요할 수 있다. 복지체제의 한계와 가능성은 모두 그 뿌리에 자리한 ‘사회적인 것’과 ‘사회적 연대’의 개념 자체에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것’, 복지 사상의 핵심 개념
복지국가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에서는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이론을 만들고,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던 일련의 노력을 ‘사회적인 것’이라는 개념으로 지칭한다.
신분제로 대표되는 과거의 질서를 무너뜨린 프랑스혁명은 이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원리를 발명해야 했다. 혁명 주도자들은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구성원 간 의사소통과 토의를 통해 창출된 일반의지를 질서의 근간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혁명 주도자들이 실제로 맞닥뜨려야 했던 것은 주권자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극심한 빈곤층이었다.
이윽고 이 상황을 개선하고 해결하려는 지식이 등장한다. 1820년대에 이 새로운 지식은 인구의 다수가 겪고 있는 빈곤문제를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현상으로 인식했고, 이를 ‘사회문제’라 지칭했다. 그후 1880년대에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었을 때, 이를 중재하고 계급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통치의 테크닉으로 ‘사회연대’ 사상이 힘을 얻고 일련의 사회적 입법이 이뤄지면서 복지국가 프랑스가 성립하게 된다.
‘사회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가지는 불안, 특히 이들이 개인 단위로 대처하기 어려운 사고, 실업, 질병, 노령화 등 노동 능력 상실과 이로 인한 빈곤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며, 이를 ‘연대’라는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총칭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1980~90년대 서구 사회과학자들이 복지국가를 비판하거나 복지국가의 위기 혹은 전환기를 논하는 가운데 널리 알려졌다. 이때는 서구가 2차대전 이후 누렸던 경제적 풍요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제공할 수 있다던 복지국가의 황금기도 끝나갈 무렵이었다. 일군의 서구 지식인은 복지국가의 기능부전과 비효율성을 보면서 이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거나 새로운 형태로 전환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1970년대 말 프랑스 파리에서 미셸 푸코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푸코의 영향을 받은 자크 동즐로, 프랑수아 에발드, 조반나 프로카치 등이 그런 학자들이다. 이들은 복지국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기층에 존재하는 지식들과 실천들을 ‘사회적인 것’으로 개념화했으며, 19세기 프랑스 역사 속에 ‘사회적인 것’이 자리를 잡는 과정을 검토했다.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관점은 복지국가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이를 이끌었던 일련의 철학적 이념과 지식, 실천, 전략인 ‘사회적인 것’을 통치의 테크놀로지로 보는 것이다. 이들은 복지국가가 생활수준은 향상시켰지만, 그 대가로 개인들은 주권자로서의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책임감 없이 수동적으로 살게 되었다고 본다.
반면에, 로베르 카스텔과 피에르 로장발롱 같은 학자들은 복지국가의 쇠퇴·위기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복지국가의 부정적 요소들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의 긍정적 가능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인 것’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베르 카스텔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균형이 깨졌으며, 사회적 합의에 의한 규제 및 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 복지제도는 자유로운 시장 운용과 기업 경쟁력 제고라는 명분에 밀려 약화되었다고 본다. 피에르 로장발롱도 사회적 연대의 기초를 재발견·재정의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장기화된 불안정과 ‘배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사회 속으로 ‘편입’시키는 ‘능동적 복지국가’로의 이행을 주장했다.
이런 논의를 이어받은 이 책의 저자 다나카 다쿠지는 19세기 ‘사회적인 것’의 문제설정과 해결책 제시에 있어 정치경제학, 사회경제학, 공화주의, 연대주의 사이에 차이가 있었으며, 이 사상들이 순차적으로 교체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사회입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과정까지도 이들 사상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결국 혼종적 결합의 형태로 사회보장의 제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경제학과 연대주의를 결합했던 프로카치, 공화주의와 연대주의를 결합했던 동즐로 등의 논의와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 ‘사회적인 것’을 일률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그것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검토하고, 이를 반성적 계기로 삼아 새로운 ‘사회문제’를 대면하며, 새로운 ‘사회적인 것’을 구상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문제의식과 결론에 있어 카스텔과 로장발롱의 연구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복지국가 체제로 이끈 네 사상
― 정치경제학, 사회경제학, 사회적 공화주의, 연대주의
19세기의 지배층은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방임주의와 사회주의의 중간에 서서 네 가지 사상적 조류를 발전시켰다. 정치경제학, 사회경제학, 사회적 공화주의, 연대주의가 그것이다. 프랑스 복지국가를 떠받치는 사상적 원리는 이 네 가지 조류의 대항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 중 뒤의 세 사상의 핵심 개념이 바로 ‘새로운 자선’, ‘우애’, ‘연대’이다.
18세기 후반까지 정치경제학은 인민의 안녕과 국부의 증대를 목적으로 농업, 조세, 재정, 가격통제, 공중위생 등에 관련된 통치행위 일반을 대상으로 한 학문이었다. 정치경제학의 목적은 물리학과 생리학에 비견되는 경제현상의 법칙을 밝히는 것이었다. 조제프 드로, 샤를 뒤팽, 테오도르 픽스 등 7월왕정기(1830~48) 정치경제학자들은 산업의 자유를 통한 진보를 보편적 법칙으로 이해하고, 계층화의 진전이 경쟁을 촉진한다며 긍정했다. 빈곤문제란 개인의 무지와 태만, 그리고 산업의 자유를 저해하는 공권력의 개입으로 생긴다고 보았다.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공권력의 확대가 아니라, 가부장적 가족, 종교조직, 파트로나주 등 전통적 조직을 통해 하층계급의 모랄에 개입하여 이들로 하여금 자기규율, 저축습관, 미래 진보에 대한 헌신 등을 내면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경제학은 7월왕정기 이후 정치경제학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 요소들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통치의 학문이다. 사회경제학자들은 부의 확대와 인민의 행복을 엄격히 구별했고, ‘진보’나 ‘법칙’ 같은 추상적 관념에 회의적이었다. 이들은 계층의 상하관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전통집단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종교적 자선과는 다른 새로운 자선을 조직하기 위해 하층계급의 생활상태를 참여관찰하고 실천적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중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가족, 종교조직, 파트로나주, 협동조합, 공제조합 등 다양한 중간집단을 활성화하여,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억제하고 국가 개입을 일정 범위 이내로 제한하고자 했다.
사회적 공화주의는 7월왕정기 지배층의 정치경제학, 사회경제학에 대항하면서 인민의 일체성에 기초한 실질적 평등을 추구했던 사상이다. 인권협회와 공화파 잡지 『국민』, 『개혁』 등의 주변에 모인 저널리스트, 저술가, 법률가, 정치가 등의 공화파 지식인들은 낭만주의적?종교적 관념에 호소하는 정치운동을 전개했으며, 사회 그 자체를 평등한 공동체로 변혁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사회적 유대와 정치적 집합체를 동일한 논리로 보았고, 인류(인간성) 관념을 사회통합의 종교적 상징으로 긍정했다. 이는 우애의 끈으로 맺어진 정치 공동체, 즉 ‘나시옹(국민)’ 또는 ‘조국’으로 민중층을 통합하기 위한 이론으로 기능했다. 이들은 가족 또는 아소시아시옹association(자율적 개인들의 협동조직)의 사회적 역할(저축, 상호부조, 재분배 등)을 국가가 계승해야 한다고 보았고, 공권력의 개입을 통한 사회문제의 해결, 그중에서도 노동의 권리와 보통선거권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
우애의 공화주의는 인류, 나시옹이라는 낭만주의 개념을 매개로 하여 사회경제학을 넘어서는 사회통합의 논리를 제공했다. 이 중 일부는 통합을 위한 종교적 상징의 자리에 황제를 올려놓고 직접보통선거와 데모크라시를 통해 통치를 정당화하려던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3세)의 질서상으로 계승되었다. 하지만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 이후 제2제정기(1852~70)의 공화주의자들은 인류 등 낭만주의적 상징에 의한 통합, 우애에 기초한 정치적 공동체(나시옹)의 찬양, 보통선거권, 사회정책의 점진적 실현 등으로는 공화주의의 기반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이들은 좀더 원리적 차원에서 공화주의를 구현하려 했다.
제2제정 말기 공화주의 철학자들이 원리적 차원에서 사회상社會像을 탐구한 과정, 제3공화정 중기 사상가들이 이를 통용시키고 이데올로기화한 과정은 연대주의로 수렴된다. 제2제정기 공화파 철학자인 르누비에와 푸예는 1848년 세대의 낭만주의적?종교적 경향을 부정하고, 사회적 유대를 기초로 하는 연대를 철학적으로 도출하려 했다. 르누비에는 인간성과 인격을 모든 현상을 포섭하는 인식의 카테고리로 규정했다. 그랬을 때 사회는 인간성의 진보라는 목적하에 기능적 차이를 갖는 사람들의 상호의존관계로 파악된다. 푸예는 사회를 인간성 실현을 위한 상호의존에서 생겨나는 유기체인 동시에, 개개인의 준계약이 지지하는 자발적 집합으로 규정했다.
제3공화정(1870~1940) 중기의 급진공화파에 가까운 입장을 가진 논자들은 연대 사상이 산업사회에 적합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했다. 급진공화파를 대표하는 레옹 부르주아는 특정 직능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상호의존을 연대라 부르고, 여기서 소급하여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도출했다. 사회는 집합적 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며, 개인이 맞닥뜨리는 질병, 사고, 실업, 노령 등은 집합적 리스크의 발현이므로 사회가 이에 대한 보상책임을 진다. 한편 개인은 산업사회 내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직업적 능력을 충족시키고, 교육과 공중위생 등을 통해 스스로를 사회화하며,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회 진보에 공헌할 의무를 진다.
뒤르켐의 사회학은 이러한 연대 사상을 대학에서 제도화하고 여기에 지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에 따르면 분업에 수반하는 상호의존관계인 유기적 연대는 개별 사회적 역할을 능동적으로 담당하는 정상적 모랄(도덕적 개인주의)을 내면화한 개인들로부터 성립한다. 이러한 모랄을 내면화하지 않은 비정상적 상태(아노미)에 있는 개인들은 중간집단을 통한 교정 대상으로 여겨진다. 국가는 연대의 법칙을 보다 잘 표현하는 보조적 기관으로, 그 역할은 중간집단을 감시하고 개인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데 그쳐야 한다.
연대 사상과 복지국가의 성립
20세기 전환기에 연대 사상은 다양한 이념을 포괄하는 사회통합 모델을 제공했으며, 복수의 정치 세력들 간의 합의를 통해 제3공화정 중기 일정한 질서 안정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1890년대 말 의회 내에서 주도권을 잡은 급진공화파는 사회보험의 의무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위와 같은 연대 사상을 활용했다. 1898년 노동재해보상법은 직업적 리스크에 기초하여 입법을 허용하는 새로운 세대의 사회경제학(셰송, 지드 등) 및 연대주의, 이를 자발적인 모랄의 쇠퇴와 연결하여 비판했던 정치경제학 및 보수적 사회경제학 사이의 대항관계에서 성립한 것이었다. 1910년 퇴직연금법은 국가 개입에 비판적이었던 정치경제학?사회경제학?생디칼리즘과 이들 반대편에 서서 리스크의 보편화를 목표로 했던 연대주의?수정사회주의의 대항관계에서 제도화한 것이었다.
“프랑스 복지국가의 원형은 연대를 표상하는 국가와 중간집단의 상호보완을 통해 보편적 사회권의 실현을 목표로 했던 연대주의와, 대면적 관계에 기초하여 중간집단의 자치를 주장한 사회경제학의 대립관계를 내재한 채 제도화했고, 그 기본구조는 1930년 사회보장법에서부터 2차대전 이후 체제에까지 계승되어갔다.”(237쪽)
연대 사상은 리스크의 사회화라는 논리에 기초하여 다양한 중간집단과 국가의 역할을 재규정하고, 개인을 전통집단에 대한 의존에서 실질적으로 해방시킨다. 다른 한편 새로운 사회관계 속에 개인을 위치시키고 질서유지에 적합한 존재로 규율한다는 논리를 도입하는 것이기도 하다.
복지국가의 위기와 ‘사회적인 것’의 재검토
20세기의 복지국가 형성과 전개의 역사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전후 부흥이라는 환경 변화를 배경으로 여러 정치세력들 사이에 타협과 합의가 이뤄지는 과정이었다. 전후 프랑스 복지국가는 전쟁 이전 체제의 기본성격을 계승하는 가운데, 직업별 보험을 기반으로 하면서 국가의 재정적 보완과 최소한의 공적 부조를 조합한 국민적 연대를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전후 프랑스 복지국가는 1932년에 도입된 가족수당을 합쳐 국가-직업단체-가족으로 이뤄지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조합주의/합의주의) 체제로 발전했고, 1960~7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이 체제는 연대 사상과 사회경제학의 타협이며, 개인을 학교, 노동, 가족이라는 사회화 장치의 틀 안에 편입시켜 사회진보와 개인의 자율을 양립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불황을 계기로 복지국가의 위기가 드러났다. 산업구조의 변화, 고령화 등을 배경으로 한 이 위기는 단순히 사회지출의 증대나 재정구조의 악화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청년실업자, 장기실업자, 이민자, 홈리스 등 종래의 복지국가가 파악할 수 없는 상당수의 ‘배제된 사람들’이 등장했다. 1980년대 이후 채용의 불안정화, 비정규 채용의 확대 등과 더불어 ‘배제’는 특정 계층의 문제에서 사회 각 계층으로 확대된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처럼 기존의 복지국가는 사회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이것으로 모든 이를 포섭하여 개인을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로 구성하려는 과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사회의 분열을 재생산하는 장치로 변모한다. 이는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합의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종래의 연대 원리가 시민의 권리와 교육?노동이라는 의무의 대응관계, 개인과 사회의 계약이라는 논리, 사회진보를 전제로 한 개인들의 역할 규정 등에서 일정한 배제의 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고 할 때, 앞으로의 과제는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사회적인 것’을 어떻게 새롭게 구상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모아진다.
기본정보
ISBN | 9788954625876 | ||
---|---|---|---|
발행(출시)일자 | 2014년 09월 26일 | ||
쪽수 | 384쪽 | ||
크기 |
137 * 218
* 24
mm
/ 723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엑스쿨투라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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