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의 색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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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이 책은 교회의 분열과 왕의 계승 전쟁, 굶주림과 흑사병으로 흉흉하던 한 시대의 사람들이 택한 문화 전략들을 보여준다. 그와 더불어 14세기 사람들의 피난처이자 이상화된 거울이었던 책, 질서와 영속성 보존을 약속하는 수단이었던 책의 공간 속으로 안내한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일차 문헌들과 사회정치 상황을 통해 중세 중에서도 14세기 고유의 특성을 살필 수 있다.
이 책의 시리즈 (9)
작가정보
저자(글) 자클린 세르킬리니툴레
지은이 자클린 세르킬리니툴레는 1945년에 태어나 퐁트네오로즈Fontenay-aux-Roses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고, 프랑스, 미국, 스위스 등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교의 중세 프랑스 문학 담당 교수로 있었고, 현재 파리 4대학(소르본)의 중세 프랑스 문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욤 드 마쇼와 14세기의 글쓰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크리스틴 드 피장의 『연인과 귀부인의 백 편의 발라드』, 기욤 드 마쇼의 『진실한 이야기』, 『사랑의 샘』 등의 작품에 대한 비평적 주석판을 간행하였다. 14~15세기를 중심으로 기욤 드 마쇼에서 프랑수아 비용에 이르는 중세 후기의 서정시와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과 연구서를 발표했으며, 중세 특유의 독서와 글쓰기, 중세 프랑스 문학사 및 선집의 문제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역자 김준현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중세 프랑스 시에 대한 연구로 석사(『‘유증시遺贈詩’의 제명에 대한 연구』) 및 박사학위(『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에 대한 연구』)를 받았다. 중세 시학과 수사학, 중세 후기의 서정시, 근대 초기의 외국문학 수용사와 번역의 문제 등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이 있으며, 최근에는 보들레르, 베를렌, 아폴리네르 등의 프랑스 현대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고려대, 덕성여대, 서울대 등에 출강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목 매달린 자의 노래―프랑수아 비용 연구』(2012)가 있다.
목차
- 어느 수도사의 눈에 읽힌…… 25
라틴어의 상실 31
계통의 탐구 46
“이미 이야기되었다는”슬픔 92
시인들의 소재 133
시와 포도주와 정신의 벗들 209
한 세기의 지친, 늙은 아이들 222
한 세기에서 다른 세기로 -14세기의 문학 및 역사 연표 233
참고문헌 237
후주 253
옮긴이의 말_중세 서구, 칩거와 성찰의 14세기 289
찾아보기 294
책 속으로
바야흐로 때는 1350년이다. 얼마 전 시력을 잃은 78세의 베네딕트회 노수도사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본다. 그의 이름은 질 리 뮈지이다. 문학을 따로 익힌 적이 없었고 18세에 투르네의 생마르탱 수도원에 들어왔던 그는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읽었던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가 읽은 것은 이전 세기의 여러 작가들이며 그 가운데에는 몰리앵의 은둔자였던 어느 수도사의 작품들이 있다. (본문 25쪽)
프랑스어의 경우 중세 문학은 9~12세기에 형성된다. 긴 관점에 서 본다면, 14세기 역시 이 형성기에서 매우 가까운 것이 사실이지만, 이와 같은 근접성으로 인해 당시 시인들은 자신들을 그 형성기의 자식들로 여겼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낡아버린 세계에서 떠도는 자식들이었다. 이러한 모순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당대의 문학에는 고유한 색, 다시 말해 멜랑콜리의 색이 칠해진다. 모든 것이 프랑스어로 재창조되어야 했던 문학의 봄, 즐거운 환희의 시절, 선구자들의 시절이 과거 12세기에 있었다. 반대로 14세기는 자신들의 시대를 문학의 겨울, 자기 내면으로의 은거, 칩거와 성찰 그리고 노년의 시절로 바라보았다. (본문 28쪽)
메네스트렐m?n?strel이라 불리는 음유시인은 종글뢰르jongleur로 불렸던 유랑예인의 현대적 ‘현신avatar’이다. 그러나 이 명칭의 어원이 알려주듯, 음유시인은 이제 하나의 소임을 가지고 있고, 어느 영주, 어느 가문, 어느 군주에게 속하며, 때로는 당대의 새로운 경향처럼 어느 유력한 상인에게 속하기도 한다. (본문 65쪽)
사랑의 궁정은 “모든 귀부인들과 젊은 아가씨들에게 경의와 칭송을 표하고, 조언과 봉사를 바치기 위해? l’honneur, louange, recommandacion et service de toutes dames etdamoiselles” ‘겸허humilit?’와 ‘충실loyaut?’이라는 두 가지 미덕의 기치를 걸고 만들어진다. 사랑의 궁정을 주재한 이는 그곳의 군주이자 헌장의 기안자인 피에르 드 오트빌Pierre de Hauteville로, 그는 1376년에 태어나 1448년 10월 1일 릴에서 사망한 시인이자 부르고뉴 공작의 피후견인이었다. 사랑을 숭상하는 문학적인 회합, 축제와도 같은 회합이었던 사랑의 궁정은 매달 첫번째 일요일, 그리고 상징적 의의에 따라 정해진 특정 일자, 이를테면 성 발렌티누스 축일이나 5월의 어느 날, 성모를 기리는 다섯 차례의 축제일 가운데 하루에 즐거운 축제인 “사랑의 시연장을 개최tenir joieuse feste de puy d’amours”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본문 80쪽)
사실, 사랑의 궁정을 편제하는 데 직접적인 모델이 된 것은 헌장이 명백히 암시하고 있는 시연장들 또는 ‘수사적인 법정들chambres de rh?torique’이었을 것이다. 피에르 드 오트빌은 이러한 모임들이 활발히 꽃피었던 북부 프랑스에서 온 인물이었고, 제시된 후렴구에 따라 발라드를 만드는 것, 성모를 경배하는 시serventois를 짓는 것, 만찬과 미사, “즐거이 소일하기 위한pour plaisant passetempz”사랑에 관한 문제들에 대한 논쟁 등, 사랑의 궁정이 채택한 활동들은 분명 시연장에서 행해졌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의 궁정은 14~15세기에 만들어져 그 수가 증가되는 기사단의 설립과 유사한, 또다른 차원을 더한 것이기도 했다. 그 규약은 사실 일련의 이름들과 구성원들의 방패휘장 목록으로 이루어졌다. 사랑의 궁정은 부르주아적이면서도 도시적인 모델(시연장)과 기사들의 모델(기사단)이 교차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다. 사랑의 궁정은 시작품을 만들고 유희를 펼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률의 제정?물론 유희 방식 안에서?과 사회적인 행실?아닌 게 아니라 사랑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도덕적인?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체제의 탄생에서 사랑의 궁전이 지닌 양면성은 매혹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진지한, 나아가 장엄한 법률어가유희에 사용되는 한편 치밀한 체계화를 추구한 것은 여흥인 동시에 어떤 불안의 흔적이었다. (본문 81쪽)
사랑의 궁정이 실제 현실에서는 조락 일로를 보이던 가치들을 부여잡고자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가치들 가운데 으뜸이 되는 것이 ‘충실’이었으나, 그 의미는 텍스트와 실제 행동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예들에서 드러나듯, 이중적인 말의 사용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손상된다. 또다른 조락하는 가치가 ‘즐거움’이었다. 사랑의 궁정은 “새로운 즐거움의 각성을 찾을” 수 있게 해주어야 했다. 그에 따라 사랑의 궁정을 창설한 행동은, 위기에 처한 한 사회를 삶과 미학 양면에서 지배적인 감정이 되어가던 멜랑콜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치료법처럼 구상되었다. 끝으로, 마지막 가치는‘안정’이었다. 사랑의 궁정 헌장은 운명의 여신과 그녀가 돌리는 수레바퀴의 영향에서 벗어난 체계 설립을 목표
출판사 서평
14세기 중세 프랑스의 문학과 감성을 주제로 한 책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엑스쿨투라 총서 네번째 권으로 나온 자클린 세르킬리니툴레의 『멜랑콜리의 색깔들―중세의 책과 사랑』은, 자신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로 칭하며 선조들보다 더 멀리 본다고 의기양양해하던 12~13세기와 달리, 화려했던 한때가 가고 스스로를 선대의 보잘것없는 후손이자 날 때부터 이미 늙어버린 아이라 여겼던 14세기를 다룬다. 중세 프랑스인들은 14세기를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책을 대했는가? 저자는 이 시기가 모든 것이 다 이야기됐고 더는 새로울 게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던 ‘멜랑콜리의 시대’였음을 강조한다. 『장미 이야기』에서 비용의 『유언의 노래』에 이르는 시기, 프랑스어는 지위가 뚜렷해지고 라틴어와의 관계 속에서 제 위상을 명확히 하고자 노력한다. 여기저기 떠돌며 재능을 펼치던 유랑예인들이 궁정의 음유시인이 되는가 하면, 왕의 명을 받은 ‘학식 있는 자들’과 ‘작가들’에 의해 위대한 번역들의 시대가 열린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교회의 분열과 왕위 계승 전쟁, 굶주림과 흑사병으로 흉흉하기 그지없던 한 시대와 그 무렵의 사람들이 택한 문화 전략들을 보여준다. 그와 더불어 14세기 사람들의 피난처이자 이상화된 거울이었던 책, 질서와 영속성과 보존을 약속하는 수단이었던 책의 공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자연스레 예시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일차 문헌들과 당대 사회정치 상황을 통해, 그간 두루뭉술하게 지칭되던 ‘중세’ 안에서 14세기 고유의 특성을 끄집어낸다. 사랑의 궁정에서 슬픔이 기쁨이 되고 세상에 대한 멜랑콜리가 글쓰기에 대한 매혹으로 바뀌고 비로소 제 색깔을 찾기 시작하는 한 시대를 그려낸다.
멜랑콜리, 14세기 프랑스 문학의 고유한 색깔
프랑스의 중세학자 자클린 세르킬리니툴레는 ‘멜랑콜리’라는 프리즘을 통해 중세, 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간과되곤 했던 14세기, 더 엄밀히는 1300년에서 1415년에 이르는 시기를 갖가지 층위에서 조망하며, 이 기간에 표출된 다양한 표명들과 그 결과들을 상세히 제시한다. 당대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14세기의 문학, 광채를 발하는 선구자의 세기이자 영광의 세기였던 12세기와 대비되는 불모의 겨울을 지배하는 고유의 색깔을 암시하는 것으로 시작해(「어느 수도사의 눈에 읽힌……」),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의 변화(「라틴어의 상실」), 프랑스어의 새로운 위상, 언어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주의(이상 「계통의 탐구」)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여러 작가들 사이의 문학 교류와 은유 계통의 형성(「“이미 이야기되었다는” 슬픔」), 독창성과 소재의 혁신, 기억과 책의 관계(이상 「시인들의 소재」), 그리고 유럽을 아우르는 문인들 간의 교류(「시와 포도주와 정신의 벗들」) 등으로 논의의 폭을 확장시킨다. 물론 이 얇은 책에서 ‘멜랑콜리’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문학의 겨울’, ‘위기감에 사로잡힌 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한 시대가 겪었던 물질적 정치적 사상적인 불안과 위기에 대한 문학 차원의 모색과 반응’ 등으로 ‘멜랑콜리’를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중세인의 눈에 비친 세상을 보여주면서 사회와 정치의 긴밀한 얽힘 속에서 멜랑콜리의 대기가 어떻게 아련한 향수와 책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가는지, 14세기 특유의 감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표출되는지 당시의 시(롱도, 레, 발라드 등), 산문, 편지 등을 제시해 풀어간다.
문학을 중심으로 한 색다른 중세 여행
일반인이 지닌 서구 중세의 이미지는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이나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같은 고전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들 책에서 중세는 ‘몰락의 기운이 만연한 시기’이거나 ‘근대가 동터오는 시기’로 그려지곤 한다. 이들 책이 지닌 또다른 특징은 서구 중세를 주로 문화사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표상된 ‘중세의 가을’이나 ‘근대의 여명’ 같은 이미지들은 종합적이라기보다 파편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그 시대상을 입체가 아닌 단면으로 유추하게 할 뿐 아니라 그 내적 체계를 추상화하는 단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멜랑콜리의 색깔들―중세의 책과 사랑』은 라틴 문화가 지배하던 중세에서도 14세기에 렌즈를 고정하고 그 시기 프랑스 문학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 상세히 해명하여 당대의 감각적 문화적 체계를 밝힌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저자가 진솔하게 밝히고 있듯이 ‘중세의 가을’로 고정된 이미지에 새로운 고찰을 도입하여, 유럽 대륙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라틴 문화가 어떤 격절과 변화를 겪는지, 그로부터 프랑스 문학이 어떻게 분기해 나오는지 세밀히 추적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중세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낯선, 이채로움을 띤 풍경이다. 저자는 음유시인과 군주, 기사와 귀부인, 문학과 사랑과 책, 이런 존재와 사물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또 그것은 어떤 필연성을 지니고 있었는지 시적인 서술로써 그 양상을 보여준다.
수도원 공간을 벗어나 세속으로 옮겨가는 주도권
『멜랑콜리의 색깔들―중세의 책과 사랑』를 열면 가장 먼저 눈먼 수도사 ‘질 리 뮈지’라는 인물이 읽었다는 책들의 목록이 나온다. 문학을 따로 익힌 적 없고 18세에 수도원에 들어와 78세가 되어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 이 늙은 수도사가 읽은 것은, 1350년에 이미 고전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장미 이야기』를 비롯해 그와 동시대인인 기욤 드 마쇼, 필리프 드 비트리, 장 드 르 모트 같은 작가들의 책들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작가들과 책들은 『멜랑콜리의 색깔들』 안에서 계속 인용되고 분석된다. 이 노수도사가 글을 시작한 1350년은 다시 밝아온 성년(聖年, 지은 죄를 모두 사해주는 관용의 해, 면벌의 해, 대사면의 해)이었다. 1300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선포했던 성년의 주기는 교황 클레멘스 6세에 의해 100년에서 50년으로 짧아지면서 다시금 선포된다. “삶이 단축되고 허약해”졌기 때문이란 것이 그 이유였다. 여기서 우리는 당대인들이 그 시절을 대단히 어지러운 시기로 인식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단일 체제의 기독교 세계와 라틴 문화 기저에 흐르는 공통된 분위기였다. 이와 달리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북부 투르네에 이르는 여러 도시에서는 문학적이면서도 축제의 성격을 띤 모임들이 성황리에 개최된다. 유랑예인들과 부르주아들이 한데 어울렸던 그곳에서 뛰어난 문학 재능을 보인 사람에게는 월계관이 주어지기도 했다.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던 이들 중에는 군주의 호의를 입고 궁정에서 고귀한 대접을 받는 음유시인도 등장했다.
아버지의 언어 라틴어 대신 모어 프랑스어에 사랑을
교회가 분열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자기네 땅의 말, 즉 토착어에 대한 관심의 증대였다. 물론 ‘아버지의 언어’로서 라틴어가 지닌 막강한 힘이 여전히 전 유럽을 휘감고 있었지만, 라틴어와 더불어 토착어가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프랑스어는 라틴어에 버금가는 ‘고급 문화어’의 위상을 얻는다. 일례로 프랑스의 미남왕 필리프 4세의 서거 후 불거졌던 왕위 계승 문제에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을 만큼 프랑스어는 위세를 떨치게 된다. 당시의 작가이자 번역가였던 니콜 오렘은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관계가 고대 라틴어가 그리스어에 대해 가졌던 관계와 비슷하다고까지 했다. 라틴어의 권위를 빌려 자기네 땅의 언어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 이는 새 시대의 열망과 다를 바 없었고, 이로부터 번역의 시대가 열린다. 왕은 권위를 높이기 위한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아버지의 언어 라틴어 대신 어머니의 언어인 모어(母語) 프랑스어를 강조하고 장려한다. “학식 없는 왕은 당나귀와 같다”는 인식하에 군주는 스스로 학식을 쌓고 문인이 되며 권위 있는 정전들을 번역하도록 명을 내린다. 왕의 주변에는 라틴어 경전을 옮기는 일에 매진하면서 자신이 창작한 라틴어 작품을 손수 프랑스어로 옮기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이런 풍조는 한 시대 전체를 관통하며 책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진작시킨다. 애서가 군주들! 발루아 왕가의 군주들은 특히 아름다운 책들을 수집하는 데 열광했던 사람들이다. 희귀한 장서들로 가득한 왕실도서관이 생겨나고 그 안으로 다종다양한 군상의 문인들이 몰려든다. 이 모든 것이 자기네 말, 즉 토착어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일이었고 이로써 프랑스 인문주의가 융기하는 기틀이 마련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라틴어와 더불어 살았던 질 리 뮈지 같은 수도사에게 이러한 라틴어의 상실은 뼈아픈 것이었다. 단순히 라틴어만 잃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식 전체, 생애 전체를 상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고통, 그는 “나는 내 시간을 잃어버렸네”라고 탄식함으로써 그 아픔을 호소한다.
새로운 아버지 찾기, 예술의 탄생과 작가의 탄생
교회의 대분열, 아버지가 두 명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없다고 것과 같다. 당시 사람들은 그 대응책으로 새로운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군주들, 대영주들, 프랑스 왕의 혈통 주변에서 이 교회의 아버지를 대신할 모델들을 찾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쌍은 그 본보기에 해당한다. 첫째 쌍은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선왕(善王) 장 2세와 그 아들들이다. 선왕 장에게는 왕위를 계승한 장남 샤를 5세 말고도 세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전장에 아버지를 보위한 사람은 오직 필리프 드 부르고뉴(부르고뉴 공작 대담한 필리프)뿐이었다. 그런 과오를 지닌 왕이었지만 샤를 5세는 어진 군주로서 통치를 하여 현왕(賢王)이란 별명을 얻는다. 하지만 이후 왕위에 오른 샤를 6세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감당하지 못한 채 24세에 광기에 사로잡히고 만다. 둘째 쌍은 보헤미아의 훌륭한 왕 장 드 ?상부르와 그의 두번째 부인에게서 난 아들로, 많은 시인들의 보호자이자 후원자였던 뱅스라스 드 브라방이다. 장 드 뤽상부르는 눈이 먼 채로 말에 자신의 몸을 묶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했고, 뱅스라스 드 브라방은 나병으로 죽었지만 끝까지 품격을 잃지 않는 군주였다. 마지막 부자의 쌍은 가스통 푀뷔스와 그의 아들들이다. 가스통 푀뷔스는 유명한 수렵서의 저자였는데, 아들이 자신을 독살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사냥꾼답게 아들의 목을 베어 죽인다. 또 그의 사생아 이뱅은 야만인 분장을 하고 늑대를 흉내내다 산 채로 불에 타 죽는다. 이처럼 14세기에 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중시됐고, 이는 문학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를 상실한 시인들은 그간 금기시되던 ‘창안자’의 자리에 이르고, 한편으로 생계를 위해선 후원자를 둔 음유시인들은 천상의 아버지와 대비되는 지상의 아버지로서 군주를 섬긴다. 그러면서 그 시인의 지위는 나아가 후일 ‘식자-작가’의 지위로 변화하게 된다. 식자-작가는 자신의 생계를 한 명의 보호자에게만 의탁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명에게 의탁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을 “구비해놓고” 보호자가 원할 때 제공해줄 수 있어야만 자신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에 상급을 내리는 군주는 현대적인 군주요 그렇지 않은 군주는 인색한 군주였다.
사랑의 궁전, 통합을 위한 여성 숭배 체제
작가와 후원자의 관계,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스템 하나가 14세기에 등장한다. 바로 사랑의 궁정이다. 이 문학적인 체제는 샤를 6세에 의해 창시되었다. 사랑의 궁전 헌장은 1400년 1월 6일 공현절에 공표된다. 사랑의 궁정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숭상하는 문학적인 회합, 축제와도 같은 회합이 바로 사랑의 궁정이었다. 18세기에 사랑의 궁정 헌장이 기록된 필사본이 발견되자 19세기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의 원형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프리드리히 디츠나 가스통 파리스 같은 로망스어 학자들은 이들 체제를 ‘사랑의 신의 궁정’을 우의적으로 연출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사랑의 궁정에 모델이 된 것은 ‘북부 시연장’ 또는 ‘수사학적 법정들’이었고, 또한 다른 한편으론 14~15세기 사랑의 궁정 체제는 그 무렵에 그 수가 증가되는 기사단의 설립과 유사한 차원을 더한 것이다. 즉 사랑의 궁정은 부르주아적이면서도 도시적인 모델(시연장)과 기사들의 모델(기사단)이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 “무구(武具)와 사랑”이 중시되는 체제였다. 사랑의 궁정은 흑사병이 창궐하고 백년전쟁으로 세상이 뒤숭숭한 시기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으로 설립된 것이다. 이 사랑의 궁정은 치밀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사랑의 궁정이 개최되는 시기나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희에 가까운 문학적 경연, 궁정에 등록부에 이름과 방패휘장(즉 문장紋章)이 기재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규약에 따라 이뤄졌다. 만약 사랑의 궁전 헌장을 어긴다면 그들의 방패휘장은 잿빛으로 칠해진다. 수치마저도 그 흔적을 남겨야 했다. 사랑의 궁정이라는 회합은 숱한 시연장, 수사적인 법정들, 여러 기사단의 창설 같은 거대한 움직임의 하나였다. 사랑의 궁정 의례에서 은유로서의 어머니는 상징적 문학적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숭배로, 귀부인에 대한 숭배로 전환된다. 사랑의 궁정은 삶과 문학을 동일시하고, 사랑에 하나의 양식을 부여함으로써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 등 갖가지 차원에서 이탈 징후를 보이는 힘들에 교의적인 통일성을 유지하고 사회적인 통합을 꾀했다.
카오스의 숲에서 상징의 숨결로 노래하다
모든 것이 이미 다 이야기됐고, 자신들은 위대한 선조 뒤에 온 사람들이라는 어두운 인식이 만연한 시대의 시인들이 어떻게 소재의 혁신을 이룩할까. 자신들이 두번째라는 감정, 선조의 경전을 다시 쓴다는 의식은 은유 체계의 다양한 변화를 낳았다. 중세인들은 자신들의 창작을 위대한 선조들이 쓴 글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으로, 아버지의 보고(寶庫)에서 지푸라기만 쥐는 것으로, 성찬이 마련된 식탁에서 부스러기를 줍는 것으로 은유하여 노래한다. 이때 선조의 위대한 글을 대표하는 것이 『장미 이야기』였다. 14세기는 ‘장미’에 대한 사랑을 『사랑 이야기』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어놓는다. 모든 것이 다 이야기됐다는 주제의 고갈을 이 시기의 시인들은 축적과 재사용의 미학으로 극복한다. 축적의 미학은 함(函)/행낭(行囊)의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시를 함 속에 넣어두는 것은 보관했다가 건네주기 위한 것이다. 이는 군주가 노래를 원할 때 적절히 꺼내어 건네줄 수 있도록 준비된다. 시인과 군주의 교환은 선물과 보상의 체계를 만들어낸다. 문학적 재능의 경쟁을 통한 명성의 획득이 이뤄진다. 사랑의 궁정 헌장에는, 발라드들을 기록하는 필경사의 보수를 열거하고 산정하듯이, 시 경연의 승자에게 수여하는 은제 왕관의 무게를 상세히 설명하며, 종이 대금을 지불할 사람들이 명시되어 있었다. 중세 시인들은 소재의 고갈을 그 자체가 이미 창작의 본질적인 상태임을 인식하는 것으로써 위기를 타파해나간다. 즉 중세의 질료에 대한 상상계에서 질료는 근원적 통일체, 최초의 카오스, 최초의 비분할 상태로 인식됐다. 이것은 곧 ‘숲’이라는 은유를 낳는다. 그리고 이 숲은 곧 어머니라는 존재와 상응하는 것이었다. 숲은 거칠고 두렵게 만들지만 숲으로서의 어머니는 고통을 가라앉히고 달래주고 진정시킨다. 이 어머니의 상징은 탄생과 연결되고, 이 탄생은 곧 처녀이자 어머니인 성모의 수태고지와 연결된다. 시인의 창작은 수태고지의 성모가 행하는 것으로 승화한다. 중세 시인에게 창작이란 기독교적 상상계 안에서 펼쳐진다. 작품의 탄생은 자연적인 탄생의 하나이며 일종의 수태이다. 이런 수태의 상상계가 중세 시인의 창작을 자극한다. 따라서 강생의 모델은 이 시기 창작자에게는 핵심적인 모델이 된다. 그들의 혀는 말을 하는 차원에서 말의 차원으로 갑작스레 이행한다. 그것은 신체기관, 언어기관을 넘어 신의 뜻, 영감을 전달하는 형이상학적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제 부친의 언어이자 권위의 언어이자 상징적인 언어인 라틴어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거쳐 자기 자신 곧 창작자와 창작자 자신과의 관계로 변화하는 계기를 가져온다.
거친 숲에서 정묘한 도시로, 책의 탄생
14세기 시인들인 기욤 드 마쇼, 크리스틴 드 피장은 소재 탄생의 모델에 관해 숙고한다. 그리스도를 모델로 삼는 것은 강생을 통한 탄생이며 다른 한편 사랑의 기적이다. 어머니가 없는 탄생, 죽은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의 단절, 도려내기, 추출에 의한 것이다. 14세기 시인들은 “무구와 사랑”을 노래했다. 무구와 사랑이라는 이항(二項)은 지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소재의 고갈에 대응하기 위해 제3항이 부가된다. “무구, 귀부인, 인식” 또는 “무구, 사랑, 다른 기예나 문예” 등. 이는 인생의 시기 이론과 조응하며 소재의 혁신을 가져온다. 전치를 통해, 대체를 통해. 이렇게 시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소재를 갈아엎어 당대를 지배하던 “사랑과 무구”의 이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두 가지 쌍에서 덧붙여져 셋이 된 쌍은 시인에게 글쓰기 자체가 지닌 위상을 드러내준다. 시인들은 기독교적 상상계 안에서 강생의 모델과 성모의 모델을 수용하고 소재의 혁신을 꾀한다. 그러면서 시인들은 도시를 노래한다. 도시가 바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일종의 텍스트였다. 왜냐하면 도시는 하나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근원과 혈통에 대한, 상상된 선조와 가계에 대한 중요한 문제에 적용된다. 그리하여 도시는 도시-텍스트는 미궁으로, 괴물들이 숨어 있고 보물들을 감추고 있는 궁전이 된다. 사람들은 책의 문화와 대조를 이루는 숲에서, 여러 도시에서 드러난 책에 대한 열광으로 옮겨가게 된다. 즉 헌주(獻酒)libation에 의해 나무liber에서 책livre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된다. 소재의 위기에 처한 14세기 작가들이 세번째 대응이 이루어진다. 이제 시인들은 더는 강생의 모델, 도려내기의 모델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창안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창안’이지 ‘창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최초로 찾은 자’라 했지 ‘창조하는 자’라 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창조는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창작이 정당성을 띠려면 당시의 기독교적 상상계를 벗어나지 않는 교묘한 장치가 필요했다. ‘창안’과 ‘찾아내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이 맥락에서 창시자 영웅, 한 계통의 출발점이 생겨난다. 사랑을 창안한 사랑의 신, 글쓰기의 창안자 카드모스와 카르멘티스, 음악의 창안자 뮤즈 등이 작품에 빈번히 인용되는 계기가 마련되고, 또한 이를 통해 책의 우주에서 개인이 탄생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기억의 보관소이자 묘지로서의 책
“기억의 창고는 대개 창안의 창고보다 많은 물품을 갖추고 있다.”(몽테뉴) 기억이 행하는 축적은 사실 창안의 문제와 연결되어야 한다. 이제 궤, 장, 보석함처럼 여겨지던 기억의 은유는 서책의 형태로 옮겨간다. 기억은 여기가 아니 어딘가에 보관돼 있다. 바로 책 속에. 따라서 수도원에서 찾아낸 책, 누군가에 의해 옮겨지는 책. 이것은 속인들에게 닫혀져 있는 라틴어를 여는 것이 된다. 이런 발견은 하나의 ‘이동translatio’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이뤄진다. 이에 더해 또다른 소개 방법은 무덤 속에서 책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제 세 개의 공간, 즉 무덤, 기억, 책이 나란히 주어진다. 공간의 지표이자 문화의 새로운 지표인 묘지는 14~15세기 문학 도처에서 빈번히 나타난다. 무덤들 사이를 거니는 산책은 하나의 서정적이고 서술적인 공간이 되어, 장르들의 경계를 긋고 어떤 우울한 상상에 리듬을 부여한다. 무덤은 미래에 들어올 자를 기다리고 옛 기억을 보존하는 공간이다. 여러 기념비의 발치에서 걸음을 멈추는 묘지 산책은 당대이 모든 기억술이 가르치던 기념화된 기억 속의 산책과 닮은 것이었다. 묘지의 재현, 기억의 재현, 책의 재현은 열림과 닫힘이라는 섬세한 변증법 속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간, 그릇이자 집합처로 간주된다. 이 모든 것은 읽기로써 이뤄졌다. 묘지의 등장은 읽기의 등장과 목소리의 쇠퇴를 의미한다. 이제 노래는 사라지고 글로 적힐 뿐이다. 책을 위해 목소리는 쇠퇴하고, 대리석을 위해 노래의 온기와 약동이 식어지고, 무덤들을 위해 새들을 버린다. 중세 시인들은 자신의 명상을 무덤에 봉인한다.
포도주와 시를 나누는 정신의 벗들
14세기 문학은 혈통, 부친들, 소재 만들기의 수직망과 여러 벗들이라는 수평망의 항들 속에서도 파악된다. 작가는 이러한 기쁨과 글쓰기를 공유하는 벗들의 집단에 속한다. 이제 아버지라는 지배 상징은 다양한 여러 쌍으로 옮겨간다. 향연을 즐기는 쾌한들, 인문주의자들의 진중한 무리들이 그것이다. 전자는 포도주로 엮인 관계이고, 후자는 책들의 교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인들은 이제 군주를 생각지 않고 스스로를 인식한다. 포도주는 시인 자신들을 추한 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런 은유적인 방법으로 포도주와 추함과 시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신성한 시인의 모습을 만든다. 포도주vin와 신성함divin을 나란히 놓는다. 군주는 잃은 시인들은 이제 빈곤해진다. 빈곤한 시인들은 여행을 떠난다. 포도주, 글쓰기, 여행은 14세기 문학 상상력이 만든 새로운 풍경을 그린다. 한편 인문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시의 교환, 책의 교환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이야기하는 방식, 영감과 뮤즈를 찬양하는 시를 유포시킨다. 책은 뮤즈의 샘을 적시는 하나의 정원이다. 현실에서는 유럽 전역에 걸쳐 문학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광범위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페트라르카 같은 인문주의자나 포조 브라치올리니 같은 이들은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에서도 유명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있는 인문주의자들은 잦은 왕래와 서한 교환으로 새로운 책의 공간, 책의 환경을 만들어낸다. 파리와 루브르의 도서관이 생기고 콜레주 드 나바르가 세워진다. 또한 인문주의자들이 발굴한 고대 라틴 텍스트들(예컨대 키케로의 『우정에 대하여』)은 프랑스로 옮겨진다.
긴 14세기, 한 세기의 늙은, 지친 아이들
14세기는 서기 1300년에서 시작해 1400년에 끝나는 게 아니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더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지 않게 된다. 상당 기간 몇몇 길은 아비뇽으로 향하게 된다. 정신의 지향점도 마찬가지였다. 14세기는 화형대의 불길 속에서 열리고 닫히며, 1310년 6월 『사랑의 의지와 욕망만이 남은,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영혼의 거울』이라는 책을 썼던 마르그리트 포레트가 파리의 그레브 광장에서 화형당하고, 1431년 잔 다르크가 루앙에서 화형당한다. 14세기에 책livre은 마치 아이liber처럼 여겨졌다. 여러 작가들이 동시에 나무껍질liber과 아들들liberi을 지칭하는 어원을 가지고 말의 유희를 벌이곤 했다. 사람들은 책을 만들고, 책에 이름 하나를 붙인다. 저자들은 점점 더 제목을 조정하게 된다. 책은 하나의 목소리를 가지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 책이 자율성을 획득해,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말하게 되는 것은 15세기가 들어서야 가능해진다. 그러나 라틴어의 경우 책들은 이미 자신들을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한 필사자들에게 질책을 던진 바 있다. 시인이 시를 헌정하면 풍성한 성찬을 베풀고 경이로우리만치 환대를 보였던 군주들은 사라졌다. 이제 시인은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시인이 시를 헌정해도 군주들은 책을 만져볼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책은 자신을 쓴 저자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러자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격려한다. “자, 내 아들아, 방패를 들어라/ 당당하게 버티거라.” 그러자 책은, 기운을 얻어, 날개를 흔들고 마치 한 마리 새처럼 나아간다. 이제 한 시대를 남겨두고 그 새는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
추천사
하위징아가 중세의 가을을 보았던 곳에서 세르킬리니툴레는 묘지를 본다.
시인의 기억을 사라지지 않게 간직하고 있는 책이라는 무덤들을!
-블루먼펠드코진스키(피츠버그대학 중세 문학 교수)
책을 읽고 쓰고 간직하거나 건네받는 중세인의 이미지들은,
저자가 14세기의 근본적인 감성으로 강조한 ‘책에 대한 매혹’과
‘책에 대한 사랑’을 잘 반영한다. 아울러 중세의 책들에서 길어올린
이 이미지들은 과거의 책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는 눈만이 아니라 지성에도 얼마나 풍성한 매혹을 선사했는지
새삼 상기시킨다. 이들 책은 진정한 위안의 원천이었으며,
흑사병, 백년전쟁과 같은 끔찍한 불행으로부터 몸을 맡길 은신처였다.
-실비아 휴오트(케임브리지대학 중세 문학 교수)
이 책은 단순히 멜랑콜리의 해부로 그치는 것도 아니고,
14세기에 국한된 내용만 있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이제껏 ‘사랑받지 못했던’ 한 시기,
『장미 이야기』에서 장 몰리네와 장 르메르 드 벨주에 이르는
장구한 시기를 심도 있게 다룬 활기찬 시론이다.
-마이클 프리먼(프리스톨대학 중세 문학 교수)
기본정보
ISBN | 9788954619431 |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10월 22일 | ||
쪽수 | 300쪽 | ||
크기 |
137 * 218
* 20
mm
/ 560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엑스쿨투라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La)couleur de la melancolie : la frequentation des livres au XIVe siecle, 1300-1415/Cerquiglini-Toulet, Jacquel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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