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동부의 조용한 지방도시 구시로. 절경의 습원이 내려다보이는 국도 근처에 위치한 러브호텔 ‘호텔 로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호텔 로열 사장의 부인인 ‘세쓰코’. 남편과는 부녀지간으로 보일 만큼 나이 차가 있는 데다, 세 번째 부인인 탓에 늘 주변의 수군거림 속에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랑이 결혼의 전부는 아니기에 자신의 선택에 추호도 후회는 없다. 그런 세쓰코에게 의외의 취미가 있었다. 31자로 노래하는 ‘단가’ 짓기이다. 최근에는 남편이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준 덕에 책도 출간했다. 책 타이틀은 남편이 좋아하는 단가의 제목인 ‘유리 갈대’라 붙였다.
어느 날, 세쓰코는 애인 ‘사와키’와 뜨거운 한때를 보내고, 평생학습센터에 들러 단가 모임을 마치고 나온 참에,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을 담은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세쓰코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한다. 남편의 사고를 시작으로 미쳐 돌아가기 시작하는 일상… 아니 어쩌면 일상의 궤는 훨씬 전부터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에게 흠씬 두들겨 맞던 어린 시절부터, 집에 찾아온 남자에게 돈을 받고 몸을 허락한 소녀 시절부터,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결혼한 그때부터, 혹은 엄마의 딸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 책의 총서 (91)
작가정보
저자(글) 시쿠라기 시노
저자 사쿠라기 시노는 1965년 일본 홋카이도 구시로 시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때 홋카이도 출신 작가 하라다 야스코의 《만가》를 읽고, 평소 무심히 마주한 풍광도 작가의 눈을 통하면 이렇게 근사할 수 있구나 감탄하면서 문학에 눈을 떴다. 고교 시절에는 문예반에서 활동하는 등 문학과 함께 성장했다. 졸업 후에는 법원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했다. 스물네 살에 결혼과 동시에 퇴직하고 남편의 전근을 따라 홋카이도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전업주부로 살았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 하라다 야스코가 과거 동인으로 활동한 문예지 <북해문학>에 참여, 습작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문학을 향한 꿈을 꾸었다. 2002년 《설충雪?》으로 제82회 올요미모노신인상을 수상했고, 2007년 소설집 《빙평선氷平線》을 발표함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에 이른다. 2012년에 발표한 《러브리스》로 제19회 시마세연애문학상 및 제41회 구시신향토문예상을 수상했다. 신인상 수상 이후 십여 년 만인 2013년, 《호텔 로열》로 제149회 나오키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다수의 소설이 작가가 나고 자란 홋카이도, 그중에서도 구시로 시를 주무대로 삼고 있는 만큼, 2014년부터는 구시로 시 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첫 작품부터 성性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와 파격적인 전개로 ‘신新관능파’라 명명되며 주목받았다. 인터뷰에 따르면 작가가 사춘기 시절, 이발소를 하던 아버지가 구시로 시내에 ‘호텔 로열’이라는 러브호텔을 새로 열면서 객실 청소 등 일을 거든 경험이, 작가 특유의 성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형성한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호텔 로열》《유리 갈대》를 비롯해 다수의 작품 동명의 러브호텔이 등장한다. 그밖의 작품으로 《순수의 영역》《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풍장》《원모어》《블루스》《그걸 사랑이라고 하진 않아》 등이 있다.

역자 권남희는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시드니!》《후와후와》 등 다수의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과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 마스다 미리의 《뭉클하면 안 되나요?》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길치모녀 도쿄헤매記》《번역에 살고 죽고》 등을 썼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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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마유미가 개인칸에서 나왔다. 미치코는 손짓으로 불러서 손을 씻으라고 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자상한 엄마와 딸이라는 이미지가 흔들린 것은 마유미가 세쓰코 옆 세면대에서 까치발을 한 채 물색 블라우스 소매를 걷었을 때였다. 수도꼭지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물 아래 양손을 비비는 팔목에 멍이 반점처럼 흩어져 있었다. 오래된 것, 새로 생긴 것, 내출혈은 보라색에서 황록색, 노란색 등 모아심기를 해놓은 제비꽃 같았다.
그 내출혈이 손으로 꼬집은 흔적이란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세쓰코는 어린 시절 자신의 팔다리에 핀 색색의 내출혈 혈흔을 떠올렸다. 사람들 앞에서 꼬집혀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울지 않는 게 원칙이었지만, 마유미는 어떨까. 엄마가 남의 노래를 낭독하며 회의 테이블에 가려진 딸의 팔을 꼬집는 장면을 상상했다.
웃는 게 고작으로 울 여유는 있을 리 없다는 건 쉽게 상상이 갔다. 거울 속에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맑은 눈동자가 음산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pp.48)
★ “선생님 취미는 뭐예요?” 스무 살의 세쓰코가 물었을 때, “여자”라고 대답해서 빈축을 샀던 기억도 그리웠다.
“너무 멋 부리는 대답 아니에요?”
“없다고 하는 것보다 낫잖아.”
“제 취미가 남자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무서워하면서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겠지.”
자신들은 살을 포개기 전까지 쌓아올린 기억을 먹으면서 십 년에 걸쳐 조금씩 썩어왔다고 생각했다.
고다 기이치로와 결혼한다는 통보를 받은 밤, 눅눅한 카펫 위에서 세쓰코를 안았다.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을 한없이 몰아붙였다. 이것으로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이렇게 가는 실을 조절해가면서 몸을 연결하고 있다.
세쓰코가 테이블에 앉았다. 카펫에 펼쳐진 원피스 자락이 형광등 불빛을 빨아들였다. 사와키는 멍하니 자신의 하루하루를 돌이켜보았다. 좌식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술을 마시고 흥미도 없는 스포츠 뉴스를 보면서 기다 사토코가 갖다준 반찬을 집어먹는다. 아무것도 없을 때는 밖으로 나온다. 나온 길에 뒤탈이 없는 여자를 조달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여자의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도 마흔 넘은 남자의 생활 따위 묻지도 않고 먼저 말하지도 않는다. (pp.207-208)
출판사 서평
나는 엄마의 애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조용히 미쳐가는 여자의 일상, 관능과 서스펜스의 문학적 절창!
러브호텔 집 딸로서, 어린 시절 호텔 잡일을 도우며 자랐다는 사쿠라기 시노. 그래서인지 사랑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짙은 냉소를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호텔 로열》을 비롯해, 《러브리스》《그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아》 등 사쿠라키 시노의 소설은 ‘착하지’ 않다. 외려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신작 장편소설 《유리 갈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엄마에게 맞는 아이, 딸에게 매춘을 사주하는 엄마, 그런 엄마의 애인과 결혼하는 딸, 그리고 이어지는 불륜, 가출, 유괴, 살인, 놀라울 정도로 뒤틀린 가족관계, 그로테스크한 남녀관계 등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서 희망의 싹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쩌면 그 모든 것이 곧 인생일지도 모른다. 옮긴이 권남희는 귀띔한다. “무엇보다 사쿠라기 시노의 소설은 잡념이 들지 않아서 좋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한결같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전개, 독특한 소재,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서술 스타일…… ‘너무’ 좋아서, 한동안 잡념이 많던 머릿속에서 이 소설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즈음 압도적으로 밀려오는 감상은? 아, 재미있다, 였다.” 《유리 갈대》는 WOWOW TV에서 드라마화되어 브라운관에서도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출판사 리뷰]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아이였다.
한순간도 소년인 적 없이 나는 여자가 되었다.
엄마 애인과의 결혼, 남편 지인과의 불륜, 살인, 분신자살……
허무하고 지루한 일상, 여자의 마음에 격정이 흐른다.
홋카이도 동부의 조용한 지방도시 구시로. 절경의 습원이 내려다보이는 국도 근처에 위치한 러브호텔 ‘호텔 로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로열’ 사장의 부인 ‘세쓰코’. 남편과는 부녀지간으로 보일 만큼 나이 차가 있는 데다, 세 번째 부인인 탓에 늘 주변의 수군거림 속에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랑이 결혼의 전부는 아니기에 자신의 선택에 추호도 후회는 없다. 여유로운 용돈과 넉넉한 자유 시간. 세쓰코는 러브호텔 경영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예쁜 여자로 지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세쓰코에게 의외의 취미가 있었다. 31자로 노래하는 ‘단가’ 짓기이다. 최근에는 남편이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준 덕에 그간에 끼적인 단가를 한데 모아 책으로도 출간했다. 책 타이틀은 남편이 좋아하는 단가의 제목인 ‘유리 갈대’라 붙였다. 허무와 권태, 그리고 마음속 깊숙이에서 흐르는 격정…… 여자의 마음, 그 전부를 담은 한 수이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유리 갈대 (기다 세쓰코 지음)-
어느 날, 세쓰코는 애인 ‘사와키’와 뜨거운 한때를 보내고, 평생학습센터에 들러 단가 모임을 마치고 나온 참에,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을 담은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세쓰코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하는데…… 남편의 사고를 시작으로 미쳐 돌아가기 시작하는 일상, 아니 어쩌면 일상의 궤는 훨씬 전부터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에게 흠씬 두들겨 맞던 어린 시절부터, 집에 찾아온 남자에게 돈을 받고 몸을 허락한 소녀 시절부터,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결혼한 그때부터, 혹은 엄마의 딸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 소설은 어떠한 교훈도, 권선징악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부추기지 않는다. 때리는 사람, 맞는 사람, 그 어느 쪽에 감정을 이입하든 인생은 잔혹하고 위악적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소설 속에 드러난 이야기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그 ‘어른들의 유희’를 《유리 갈대》는 담고 있다.
나오키상 수상에 빛나는 신新관능파 미스터리!
아이부 사키 주연 WOWOW TV 전격 드라마화
“사쿠라기 시노는 ‘新관능파 성애문학의 대표 작가’라는 수식어답게
어른들을 위한 연애소설을 즐겨 쓴다(확실히 십대, 이십대에 읽었던 연애소설과 농도가 다르다).
그래서 ‘야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관능’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녀의 소설을 고를 일은 아니다. 굳이 구체적 묘사를 하지 않아도 문장과 행간에서 살냄새가 나는 정도이다.”
_권남희(옮긴이)
[일본 아마존 독자 서평]
★★★★★ 크라임 서스펜스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 오랜만에 만나는 천재 여성작가!
★★★★★ 어둡고, 춥고, 외롭고, 거북한… 사람들. 멋진 작품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34975557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9월 12일 | ||
쪽수 | 300쪽 | ||
크기 |
141 * 199
* 23
mm
/ 360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블랙 앤 화이트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硝子の葦/櫻木紫乃 |
Klover 리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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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거 그냥 말하면 '엄마의 애인'이지만 결혼제도에 얽매여있는 나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해보자면 새아버지와 결혼했다는 그런 이야기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책을 읽기 전부터 내게는 '관능과 서스펜스'라는 글이 다가왔고 '문학적 절창'이라는 광고문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 그래, 사실 책을 읽은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오래 전에 다 읽고, 이미 읽은 책을 쌓아둔 책탑 구석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내가 어떤 감상이었는지 생각해보려고 하니 도무지 그 독특했던 감흥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하아, 이렇게 또 책을 다시 펼쳐 읽어야하나?... 생각하니 괜히 바쁜 연말에 쓸쓸해져버린다.
아니, 그래. 어쩌면 유리 갈대를 읽은 내 마음이 바로 그런 것 아니었을까?
유리 갈대는 러브호텔 사장의 부인인 삼십세 고다 세스코의 사체 발견으로 이야기의 서장을 열고 있다. 사체의 발견 상태로는 휘발유를 뒤집어쓰고 불을 붙인 것 같다,는 소견이며 고다 세스코는 알만한 사람들에게 엄마의 애인을 꿰차고 호텔 사장 안주인 노릇을 하며 젊은 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시점은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고다 세스코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러브호텔 사장의 부인이며, 거의 아버지뻘인 남자 그것도 엄마의 애인이라 알려진 남자의 세번째 부인이기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그녀는 개의치않는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단가를 지으며 돈많은 한량 부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흔히 격조있고 품위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알려져있는 단가모임에서 그녀는 어쩌면 이질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모임에는 세스코와 대척점을 이루듯 단란한 가정의 현모양처 스타일인 미치코가 있다. 항상 얌전한 딸 마유미를 데리고 모임에 참가하는 미치코의 단가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의 단가를 짓는 에프엠 같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조되는 겉모습과 실제 가정 생활의 모습에 대한 대비, 세스코가 현상 유지를 하는 사랑과 가정, 그녀의 환경... 이 모든 것들이 관계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이야기를 읽다보면 왠지 세상의 사랑이 모두 외롭고 쓸쓸하고 어둡기까지 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결코 그 모습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려하지 않는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 허를 찌르는 결론은 - 물론 그조차 어떤 판단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 뿐이지만, 책을 덮을즈음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그저 씁쓸한 현실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던 유리갈대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남아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내어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시간과 경험이 쌓인 후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궁금해지고 있다.
공허함의 바닥을 걷다 [유리 갈대]
[유리 갈대]는 세 번째로 만나는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다.
[순수의 영역] 이라는 장편 하나와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 이라는 단편집 하나를 읽었을 뿐이지만 작가가 표현하는 분위기는 밝은 편이라기 보다는 어두운 편에 속한다.
작가가 홋카이도 구시로에서 태어나 계속 그 곳에 살았기에 작품 속 배경은 거의 홋카이도다.
거센 바닷바람에 맞서는 대가 센 여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음지 특유에 사는 사람들의 스산하면서도 음습한 기운이 문장 사이사이에 베어들어 있다.
<순수의 영역> 나의 리뷰 중.
질투의 감정을 다룬 소설이라면 좀 더 빠르고 적대적이고 불꽃튀는 드라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처연하고 스산하고 차갑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질투라는 감정의 성질이 잘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 나의 리뷰 중.
여자라서 여자의 이야기를 더 잘 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또한 여자라서 관능적이고 섹시한 묘사, 올바른 몸가짐을 가진 진짜 무희의 삶을 진지하게 적어내려간 작가의 이야기에서 더 깊은 떨림을 맛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 두 권의 리뷰를 찾아 읽어보았다.
그래. 이런 분위기를 간직한 작가였어.
이번 [유리 갈대]는 작가가 창조한 기존 캐릭터와 견주어 인생 역정이 기구하기로는 비교할 데 없는, 세쓰코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세쓰코가 단가 모임에 나가 쓴 글 중의 하나다. <유리 갈대> 라는 제목의.
아마도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텅 빈 허무함, 가슬가슬해서 부드러움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메마른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 읽는 내내 <유리 갈대> 구절이 되뇌어지니 말이다.
고작 서른 살인 세쓰코는 오랜 세월 어머니의 애인이었던 남자를 가로채서 러브호텔 안주인의 자리를 꿰찼다. 이쯤 되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세쓰코의 인생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에게 얻어맞지 않으려고 감정을 죽이며 살아왔던 것이 이런 일에까지 이르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스즈란긴자 골목에서 잔술집을 하던 세쓰코의 어머니는 어린 딸을 이용해 돈을 벌었고 급기야 자신의 남자에게 딸을 주기까지 한다. 세쓰코가 남편을 "아빠" 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사정을 알면 이해가 된다.
멀쩡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오자 세쓰코는 남편의 행적을 추적한다. 남편이 사실은 '직장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전 애인이었던 세쓰코의 어머니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살'격인 교통사고를 낸 것도 알게 된다.
"아빠, 어제 여기 왔었지?"
-72
돈으로 유혹받아 돈으로 맺어졌다고 믿었던 남편과의 사이에 "어머니"가 끼어들자 세쓰코는 마음이 아파온다. 애써 죽이고 덮어두었던 감정이 어딘가에서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세쓰코가 결혼 후에도 러브호텔의 재정을 맡아 주고 있는 젊은 세무사 사와키와 관계를 갖는 것을 들춰낸다.
사와키와 세쓰코 관계와 기이치로가 리쓰코와 끊어진 적 없었다는 사실이 과연 상쇄할 수 있는 일일까. 사람의 마음을 상쇄할 수 있기는 할까.-73
화가 난 세쓰코는 어머니를 밀쳤고, 어머니는 쓰러졌다.
한편 단가 모임에서 만난 우아한 부인 사노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는 겉으로는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행복한 가족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는 곪을 데로 곪아 "인간다움"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세쓰코는 남편이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은 다른 데 신경을 안 쓰려 하지만 꼬마 마유미의 유난히 맑은 눈동자가 괜시리 신경 쓰인다. 마유미의 걷어진 소매 속에 얼핏 보이던 얼룩덜룩한 멍자국!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삼키고 화도 못 내며 울음 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 받은 영혼을 그 투명한 눈동자 속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겉과 속이 다른 어머니 미치코에게 맞은 건가, 했지만 곧 의붓 아버지의 짓임을 알게 된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계획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마유미를 이틀간 보호하게 되고 마유미의 아버지는 그 이틀간 마유미가 유괴되었다 주장하고 세쓰코는 도마뱀같은 마유미의 아버지에게 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어떡하나...아이와 아이의 어머니는 "인형의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다 '유괴된 아이의 아버지는 자살' 하게 되는가. 짤막한 한 편의 미스터리 드라마가 솜씨 좋게 들어앉아 있다.
세쓰코는 혼자 러브호텔을 경영할 수 없다며 직원에게 호텔을 양도하고 마지막으로 사와키와 함께 어머니의 집을 찾는다. 잠시 후 세쓰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잔술집 '바비아나'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까맣게 탄 주검만이 사와키를 기다린다. 이른바 분신자살이라고 하는 건가.
이십대의 세쓰코와 관계를 맺는 도중 세쓰코가 러브호텔 사장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밝혔을 때 사와키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결혼이란 속박에 매이지 않기 위해서였기도 했고, 세쓰코의 몸에 흐르는 처연함 때문이기도 했다.
세쓰코의 죽음에 망연자실해 있던 사와키는 유리 갈대같던 세쓰코를 자꾸만 곱씹는다.
그런다고 살아돌아오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안고 그녀의 흔적을 좇는 사와키만은 실낱 같은 빛을 보았으면 좋겠다.
속이 텅 빈 갈대 속에 모래가 흐른다고 했던가.
인생이 날개 달고 한 번 위로 솟구쳐 본 기억을 선사해주지 않아서, 이들은 자꾸만 공허함의 바닥을 걷는가.
그들이 끌고 가는 회색의 그림자가 오그라든다.
속이 비어 여린 것 같으면서도 한 번에 꺾어지 않는 갈대는 스산함 속에 강인함을 숨기고 있지만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면 또 한 번의 일격에 쨍 하고 깨져버릴지 모른다.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인생의 반려를 제대로 만났더라면 깨지지 않고 손상되는 일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스스로 노래할 수 있었을 텐데.
웃고, 울고 , 화내는 어린 아이로 살았더라면 아름다운 여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거센 풍랑에도 굴하지 않는 홋카이도 여자의 안간힘을 본다.
충격적인 막장 드라마로도, 관능적인 성애 소설로도, 으스스한 미스터리로도 손색 없는 [유리 갈대]다.
세쓰코는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세번째 부인입니다. 그를 아빠라 부르는 그녀. 그녀의 남편은 한때, 그녀 엄마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엄마의 애인과 결혼한 여자. 그리고 자기가 일을 하던 직장의 상사와 몸을 섞으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여자. 참으로 복잡미묘한 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호텔로열 이라는 모텔의 안주인으로, 취미생활을 하며 여유롭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어느날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이 날아듭니다. 남편이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병원에서 그녀를 찾아온 마유미라는 한 소녀. 마유미는 세스코가 취미생활로 다니던 단가모임에서 만난 미치코의 딸로, 미치코의 남편은 마유미의 친아버지가 아닙니다. 마유미와 미치코를 수시로 폭행하는 그 남자를 피해 무작정 마유미를 세쓰코에게 맡긴 마유미의 엄마.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그 순간부터, 그리고 마유미가 그녀에게 온 그 순간부터 세쓰코의 삶은 뒤죽박죽 뒤엉키키 시작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집으로 찾아온 남자들에게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능욕을 당하고 엄마는 돈을 챙기고, 그녀를 때리고...그리고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한 후에도 엄마를 찾아갔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듣고...어쩌면 세쓰코의 삶은 그녀가 엄마의 딸로 태어난 그때부터 그렇게 될거라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모든 비극은 엄마로 부터 시작되었고 엄마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일에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것 역시 엄마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세쓰코라는 인물은 살인도 저질렀고, 불륜도 저지르고 있지만 그런 자신에 대해 한없이 관대합니다. 어쩌면 그녀가 그렇게 사는것은 과거의 모질고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 엄마의 애인이라는 사람과의 결혼은 엄마에 대한 보복이었을까요. 그리고 남편 몰래 정을 나누고 있는 그 사람에게서는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이 있기는 한걸까요.
이 소설은 일본 티비에서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었다고 하는데 드라마는 어떤 느낌일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는데 좀 어두운 느낌이 들면서도 그리 무겁지는 않은,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호텔로열]은 이 작가의 다른 책 제목으로도 쓰였네요. 그리고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검색하다보니 놀랍게도 우리집 책장에도 이 작가의 책이 한 권 꽂혀 있는것 같습니다. [순수의 영역]이라고...우선 이 책부터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만 왠지 그녀들이 불쌍해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녀들의 삶이나 지금 나의 삶이나 표면적으로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한꺼풀만 벗기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소설속의 이야기를 우리 삶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요즘이야 말로 정말 소설같다 싶은 삶들도 꽤나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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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편이 교통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간다. 내리막길 커브가 연속으로 있는 도로를 상당한 속도로 들이박은 것 같다는 사고 경위를 전해 듣는 여자는 남편이 대체 어디서 돌아오는 길이었을지 의아하다. 머리를 다쳐서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낮다고 하니, 아마도 남편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 의심이 되는 것은 그 방향이었다면 남편의 옛날 애인이 사는 곳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옛날 애인은 바로 여자의 엄마였다.
"가집을 내라고 한 것도 그 사람이에요. 한번 제대로 자기가 쓴 글과 동반자살을 해보라며."
"동반자살이라니, 그것도 넘치게 문학적이네."
...........세쓰코는 남편이 사용한 동반자살이라는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이대로 계속 같은 노선으로 단가를 쓰면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세쓰코 자신이 아프리만치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돌아보니 세쓰코보다 기이치로 쪽이 더 열심히 단가를 선별하고 있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보다 한번 무덤에 묻는 편이 서로를 위한 거야. 당신은 앞으로도 살아갈 테고."
엄마의 애인과 결혼한 여자, 게다가 그녀는 남편이 의식 불명으로 병원에 실려 있는 동안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 라고 하면 무슨 막장 드라마냐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는 동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천천히, 느리게 흘러가는 이야기 탓도 있겠지만, 생각을 알 수 없는 여자의 담담한 일상과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사연들이 전혀 선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플롯만 보면 막장이지만, 이야기는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기 그지 없으니 말이다.
러브 호텔을 배경으로 젊은 나이에 연배가 있는 남자의 세 번째 아내가 되면서도 결코 그를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하는 여주인공이라니 정말 이상하기 그지 없다. 돈과 여유를 줄 테니 마음대로 살아보라는 청혼을 받아 들었을 때, 극중 세쓰코 처럼 반응할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 남자는 오랜 세월 엄마의 애인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사랑이니 뭐니 운운하지 않는 만큼 담담한 결혼 생활이 평범하게 이어지다, 어느 날 이유를 알 수 없는 남편의 교통 사고 이후 그녀의 삶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애초에 돈으로 유혹 받아 돈으로 맺어진 부부의 관계, 게다가 그녀는 그를 '아빠'라고 부른다. 그런 남편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녀는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 조차 누릴 수가 없다.
마음이 아프다는 건 대체 어떤 것일까.
살면서 좀처럼 '감정'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여자. 세쓰코는 단가를 쓰면서 자신의 내면을 글로만 투영해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성애와 허무를 기둥으로 하는 그녀의 작품이 매우 도발적이고 적나라한데 비해, 그녀의 평소 말투와 행동은 정반대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 가정 폭력에 시달려온 어린 소녀라는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 그녀 역시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대를 받았던 과거가 있었으니 말이다.
미치코는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품위 있게 웃었다. 마유미도 역시 엄마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세쓰코는 미치코의 천진난만함보다 한마디도 하지 않는 소녀가 보이는 엄마와 똑같은 미소에 무서움을 느꼈다.
세쓰코는 자신도 어린 시절 리쓰코와 꼭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딸은 엄마를 닮으며 자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같은 생물을 낳은 여자가 얼마쯤은 후회하게 하기 위해.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은 <굽이치는 달>과 <호텔 로열>에 이어서 세 번째로 만난다. 어린 시절 실제로 러브호텔을 하던 부모의 딸이었던 사쿠라기 시노는 열다섯 소녀였던 시절부터 학교에서 돌아와 호텔에서 청소를 했었다. 더러운 시트를 갈고, 욕실 청소를 하고, 손님들이 사용한 콘돔을 버리고 새것을 구비해놓는 등 부모의 일을 도우며 그녀는 러브호텔을 드나드는 다양한 인간을 마주해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절실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우울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극단적으로 불행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이어지지만, 이상하게도 마냥 어둡지만은 안다는 것 또한 그녀의 작품 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삶에서 결코 부정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포착해내는 것 같다고 할까.
사쿠라기 시노를 '신 관능파 성애문학의 대표 작가’라고 하는데, 확실히 이 작품은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치정이 얽혀있고, 막장스럽고, 러브 호텔이 배경이라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치열한 애증과 욕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주 밑바닥까지 내려간 원초적인 욕망을 마주하고 나면 오히려 그것이 순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가식과 허례허식에 둘러 쌓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제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오봉에 앗케시 마을의 스즈란긴자에서 한 여자가 분신을 하면서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세쓰코다. 세무사와 엄마 집을 방문한 후 집에 둔 것이 있다고 말하고 갔는데 불이 났다. 완전히 타 신원 파악을 세무사와 몇 가지 단서로 했다. 세쓰코가 맞다. 몇 개월 후 남편 기이치로도 죽었다. 이 둘의 장례식을 주관한 것은 세무사 사와키다. 기이치로의 호텔 로얄을 담당하고, 한때는 세쓰코의 고용주이자 애인이었다. 물론 결혼 후에도 둘은 가끔 만나 몸을 섞는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면서 기이치로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부터 일어난 사건과 일상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에로틱한 뭔가가 나올 것이란 예상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뒤틀린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세쓰코의 일상도 평범한 주부의 모습이 아니고, 그녀가 참가한 단가 모임의 미치코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고, 암을 앓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세쓰코의 일상은 강하게 소용돌이친다. 남편의 딸 고즈에를 찾고, 러브호텔을 직원에게 넘기려고 한다. 남편을 열렬하게 사랑했다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바람을 피는 그녀가 할 행동은 분명 아니다. 이 이상함이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데 마지막에 한 방 크게 터트린다.
약간 평범하고 밋밋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 즈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단가 모임 동기인 미치코이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아니 그녀의 딸 마유미를 세쓰코에게 맡겼다. 아이의 팔에는 꼬집힌 흔적이 있다. 분명히 아동 학대다. 마유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지 않고 고즈에에게 맡긴다. 돈을 조금 주고. 어린 아이를 돌보는 단순한 일처럼 보이는데 뒤에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과 이어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무섭다. 보여지는 표정과 감정 뒤에 숨겨진 진실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다. 서늘한 느낌이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든다.
유리 갈대는 세쓰코가 지은 단가집의 제목이자 단가의 제목이다. 그녀가 몇 번이나 자신의 단가를 인용해서 말한다.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그녀의 삶속에는 무엇이 흐를까? 이 허무와 공허함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미치코와 함께 한 행동과 그 반응은 이것을 더욱 공고화시킨다.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간 후 예상한 반전이 나올 때까지는 더욱 더. 하지만 그 이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결국 알아채는 사람은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사와키 세무사 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사와키는 탐정 같은 역할도 하고, 경영컨설팅도 하고, 한 여인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그의 강한 책임감은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한다. 그의 마지막 외침은 가슴에 강하게 와 닿는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의 몸을 기댈 수 있는 버팀목과 같은 존재이다. 길에서 넘어졌을 때나, 친구에게 놀림을 당했을 때, 몸이 아프거나 배가 고플 때, 아이는 부모에게 찾아가고 부모에게 기댄다. 그렇게 아이는 사람을 신뢰하며, 서로에게 기대며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만약 그런 기댈 수 있는 부모나 그 누구도 없이 자란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 황량한 벌판과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다면... 누구에게 기대 본 경험도 없고, 기댈 사람도 없다면 그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삭막할까?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라는 소설의 여주인공 '기노 쎄스코'라는 여인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쎄스코는 이제는 한때의 흥청거림만을 기억하는 낡은 항구도시의 유각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술을 팔고 몸을 파는 여성이었다. 쎄스코는 어린 나이부터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학대를 당하고 자랐다. 심지어는 그녀가 어머니 가게에 드나드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할 때도, 어머니는 그 일이 끝날 때까지 모르는채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난 후 남자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일을 했다.
소설의 쎄스코가 어머니의 유각에서 화재로 자살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의 애인과 결혼했고, 어느 정도 부유한 삶을 사는 그녀가 왜 어머니의 술집에서 자살을 했을까? 소설은 다시 이주 전으로 돌아가 그녀의 일상을 비춘다.
그 날 쎄스코의 남편 기이치로는 아침부터 드라이브를 간다고 집을 나선다. 한때 어머니의 애인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남편인 기이치로는 변두리 호텔의 사장이다. 그는 쎄스코에게 부족함 없는 결혼생활을 약속하고 결혼했으며, 실제로 그녀가 가집까지 낼 수 있도록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 '가집'이 무엇인지는 접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아마 한국의 시조 정도 비슷한 운율을 가진 시집이나 수필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 날 오후 기이치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기이치로는 그 사고로 혼수상태가 되고, 기이치로가 사고난 길은 어머니의 유각과 연결된 도로였다. 결국 기이치로는 그 날 어머니를 만나러 갔던 것일까? 이야기는 기이치로가 혼수상태가 된 이후의 사건들을 통해 쎄스코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의 가집 제목인 '유리갈대'처럼 그녀는 아무에게도 기대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소설 곳곳에는 그런 그녀의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쎄스코는 숨을 토했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거르실리는 말을 해도 엄마는 이제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생각나는 말을 전부 퍼부으며 욕해도 상처 따위나지 않는다. 자신이 엄마를 원하지 않는다. 태아난 뒤로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다." (p73-4)
"사모님이 홀가분해지는 건 상관없어요. 아직 젊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요, 홀가분해지는 건 무서운 거예요. 속박이 없는 생활의 무서움, 아세요? 의지할 데도 없고 구속하는 곳도 없는 사람에게는 내일이 필요 없어져요." (p221)
소설은 추리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끝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전까지 등장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일본 소설이 그렇듯, 추리소설의 형식에 주인공 쎄스코의 공허한 내면을 잘 끄집어 내고 있다. 특히 쎄스코가 쓴 가집 제목인 '유리갈대'와 함께 소설 중간중간에 갈대의 이미지가 쎄스코의 이미지와 겹치며, 그녀의 공허한 삶의 모습을 표현해 준다.
€ 책의 띠지만 읽었을 때에는 이런 '막장' 같은 이야기가 또 있구나 싶었는데 막상 책을 읽고 보니 띠지의 선명한 문구 보다 제목이 주는 여운이 더 깊이 오래남아 있는 책이었다. 책은 비교적 잘 읽히나 사쿠라기 시노가 말하는 여자의 일상, 관능과 서스펜스의 조합은 어딘가 모르게 물결에 흐느끼는 해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인 세쓰코의 삶은 단조롭지 않았고, 엄마 리쓰코에 의해 어렸을 때부터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것동조했다. 중학교 이후 부터 그녀는 아이였지만 아이가 아니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였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보다 한번 무덤에 묻는 편이 서로를 위한 거야. 당신은 앞으로도 살아갈 테고." - p.37
엄마의 애인이었던 고다 기이치로는 애인인 리쓰코 대신 그녀의 딸인 세쓰코와 결혼했다. 그의 세번째 부인으로. 그냥 보기에는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를 천천히 읽다보면 이 이상한 구조의 이야기가 하나도 비정상적인 관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지만 고다 기이치로는 세쓰코에게 쓰기에 부족하지 않는 풍족함과 안락한 공간을 제공한다. '사랑'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이지만 남편에게 느끼는 느낌은 그저 자신이 세상 밖에 나갔을 때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남편과 관계를 맺는 대신 세쓰코는 남편의 러브 호텔의 세무사인 사와키와 관계를 맺는다. 그와의 관계 역시 사랑이 아닌 그저 서로 따스한 체온을 잠시 맞댈 수 있는 관계일 뿐이라고, 사와키는 느끼고 있고 세쓰코 역시 그와의 관계를 깊이 정의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세쓰코의 마음이 느껴질 듯 느껴지지 않는 내면의 심연이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남편인 고다 기이치로 역시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세쓰코와 결혼을 했으면서도 그의 전 애인이자 장모인 리쓰코와 헤어지지 않고 여전히 관계를 맺고 있고 죽을 때 조차도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돌아와 교통 사고가 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사고로 혼수상태가 되어 몇 개월 동안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세쓰코의 삶이 평온한 일상으로 걸어가지 못하고 엄마 리쓰코와 있을 때처럼 폭력적인 삶을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반추시킬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생각지 못한 결말로 향해 나간다.
처음에는 함께 단가를 배우는 사노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가 세쓰코의 삶에 어떡해 엮일지 몰랐다. 그저 잠시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의 시아를 벗어나 잠시 세쓰코에게 맏겨두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세쓰코가 의붓딸인 고즈에에게 마유미를 잠시 맡기고 두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녀가 감춰두었던 생채기가 하나하나 벗겨졌고, 마유미의 아빠의 파렴치한 행동이 결국 그녀가 꽁꽁 싸매놓은 상처를 헤집어 놓았다. 아마도 마음의 내면은 잔잔한 호수가 아니라 성난 파도를 담고 살았을 세쓰코가 행동하는 동기는 마유미의 사건이 가장 크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와 관계된 모든 것을 끊어 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예견된 일이다.
세쓰코의 가집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사와키는 자신들이 세쓰코의 단가처럼 말라빠지고 긴 갈대의 대롱을 흘러내리는 모래알 같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서로 비비고 엉키고 하면서 그저 흘러가는 것으로 서로를 지키고 있다. - p.193
엄마의 애인과 결혼하고, 결혼을 해서도 전 애인과 관계를 맺는 남편과 남편의 세무사와 관계를 맺는 아내. 이것이 남녀가 맺는 관능적인 삶을까. 그 어떤 관계에서도 '깊은 사랑'이 전제된 행위였다면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행위가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라 그저 허무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숨을 쉬듯 행하는 행위라면 그것은 관능이기보다는 그저 시간에 몸을 던지며 살아가는 자학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의지할 데도 없고 구속하는 곳도 없는 사람에게는 내일이 필요 없어져요' - p.221
일본 문학에서 신 관능파란 이름을 얻고 있는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다.
책 표지의 문구인 '나는 엄마의 애인과 결혼했다. 그리고....'에서 주는 강렬한 암시가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내용일지를 궁금하게 하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허무감'이다.
자신보다 40세 이상의 나이 차가 있는 남자와 결혼한 세쓰코-
엄마와 이미 관계를 맺고 있었던 남자였고 그런 남자임에도 선뜻 결혼을 한 이유는 그가 제시한 결혼의 조건 때문이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당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조건, 그녀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술집 운영과 남자들과 정을 통해온 엄마로부터 온갖 구박과 어린 나이에 남자 손님들과 경험을 하게 된, 그런 과정을 지켜본 친엄마, 오히려 화대를 갈취하는 친엄마란 존재는 그녀에겐 이미 아무런 감정의 느낌이 없는 사이다.
남편이 운영하는 러브호텔 위층에서의 단조로운 생활, 남편 외에도 자신의 직장 상사였던 세무사 사와키와도 관계를 맺고 있는 가운데 남편이 어느 날 차 사고로 의식 불명의 상태로 발견이 된다.
차의 형체는 망가졌고 얼굴의 형상은 알아볼 수 없는 처지에서 그녀는 단가 모임에서 만난 모녀 노리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와의 관계도 또 다른 사건 속으로 연관이 된다.
남편의 후원 아래 자비로 단가집을 낸 그녀는 책 제목을 '유리 갈대'라 지었고 단가 모임 회원들로부터 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과정 속에서 마유미의 신체에 드러난 폭행의 상처를 보고 그것이 가족 내에서 벌어진 일임을 짐작하게 된다.
남편의 행선지는 엄마가 있던 장소를 지나쳤고 그렇다면 엄마와의 관계는 청산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또 마유미를 잠시 맡긴다는 노리코의 메모를 통해 양딸의 집에 맡기게 된 세쓰코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첫 장에서부터 세쓰코의 엄마가 운영하는 술집에 방화가 일어나고 그 사건 이후에 세쓰코 남편의 죽음, 마유미를 두고 마유미의 의붓아버지와 벌인 담판, 그의 죽음 뒤에 감춰진 비밀들은 한 편의 긴장감의 느낌을 주지만 조여 오는 숨통이 아닌 하나의 인간과 인간들이 관계를 맺고 이어나가면서 벌어지는 일반 생활의 한 단면들을 보여주는 듯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단가의 제목인 '유리 갈대'에서 보인 내용처럼 성애에 주목한 세쓰코의 인생에 대한 해답은 과연 그 어떤 희망도 없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마유미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기억하게 되는 진행을 통해 또 다른 허무함을 느꼈던 것인지를 이리저리 다각도의 방면으로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마유미와 또 다른 방화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을 듯한, 짐작만 할 뿐 세쓰코에 대해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내레이션식의 고백처럼 보여주는 사와키란 인물의 감정을 통해 책 뒷말 미의 반전의 맛도 느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리저리 갈대 줄기에 의지해 흘러가는 모습들을 자신의 삶에 대한 투영으로 비친 세쓰코와 사와키의 존재는 인생의 삶에서 기대조차 할 수 없는 허무감을 너무나도 일찍 간파해 버린 한 여인의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함마저 전해준다.
저자 자신의 경험을 되살린 러브호텔의 내부와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그 속에서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 그것에 비한다면 이것저것 모두 의지를 상실한 세쓰코의 모습과도 대비되는 효과를 주기에 저자가 그리는 인생에 대한 그 어떤 기대감이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냉소적인 흐름의 느낌을 느낄 수 ㅣ있는 이색적인 작품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재미를 준 작품이다.
그명성처럼 한결같이 몽환적이고 관능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번엔 그러한 느낌에 파격적인 소재까지 더한 신간 <유리 갈대>를 읽었다.
'나는 엄마의 애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띠지의 책 소개문구부터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소설. 엄마의 애인과 결혼했다는게 과연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이 책속 주인공 세쓰코는 실제로 그리하였다.
러브호텔을 운영하는 엄마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것은 아니지만...서로 필요에 의해 결혼을 했다.
조그마한 마을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았던 세쓰코는 소녀가 되기전에 이미 여자가 되어있었다.
남자가 끊이지 않는 엄마와 그녀의 아름다운 딸,,,세쓰코에게 무슨일이 일어났을지는 뻔하지 않은가??
어쨋든 세쓰코는 엄마의 애인과의 결혼을 통해 자유와 경제적 여유를 얻었다. 그리고 ..애인도 있다.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가 나서 혼수상태가 되었다.
사고가 의심스러운 세쓰코는 남편의 행적을 더듬어 보다가 엄마가 아직 남편과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여전히 엄마와 한 남자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세쓰코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다.
하나남은 영혼의 조각마저 깨져버린 느낌이다. 그녀는 분노했다. 그리고 엄마가 실종되었다.
세쓰코가 다니는 단가모임에 눈길을 끄는 한 모녀가 있다.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 겉으로는 한없이 행복해보이지만 왠지 속은 텅비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녀들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엮여버렸다.
그리고 그녀들은 큰 사건을 공모하게 된다.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야기는 잔잔하게 진행되지만 그속에는 잔혹함이 가득 담겨있다.
상처입고 부서지기 직전까지 내몰린 여자들이 그래도 살아가기위해 선택하고 결정해야만 했던 순간들.
그녀들을 어떻게 탓할수가 있을까??
누군가는 그녀들이 지은 죄의 댓가를 반드시 치뤄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살아온 삶의 모든 순간들이 속죄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조차 메말라 투명하다 못해 사라질꺼 같은 순간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을 보고 안도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꽃길만 걷길...
소재만 본다면 우리에게도 친숙한 막장드라마의 한편을 보는것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사쿠라기 시노의`유리갈대`는 이렇게 진부한듯한 소재를 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부하지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자신보다 서른살도 더 많은 남편과 결혼을 한 세쓰코는 그런 결혼을 통해서 얻고자 한건 무엇일까?
정말 남편이 청혼할때의 말처럼 경제적,심리적 안정을 원해서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혼을 한것으로 보기엔 그녀의 행보는 평범하지않다.
그녀는 특별히 원하는것도 애착을 가진것도 없을 뿐 아니라 늘상 그녀가 꾸는 꿈에서 나오는 마른모래를 보면 알수있듯이 마치 모든것이 언제든 무너질것처럼 위태롭고 불안하게 보인다.
이렇게 매일매일 평온한 생활을 하는것처럼 보이면서도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위태로움을 느끼게 하는 세쓰코의 일상이 무너져내린건 남편인 고다 기이치로의 의심스런 사고이후부터인듯하다.
늘 긍정적이고 유쾌한듯 보였던 남편의 사고는 그가 자신에게는 숨긴 채 엄마와 만나고 있었다는걸 알려주게 되고 이후부터 세쓰코는 더욱 불안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숙면을 취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면서 어디론가 떠날사람처럼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세쓰코의 모습은 어릴적부터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정붙이고 의지할곳 없어 텅빈것 같은 그녀의 마음처럼 공허하고 허무하게 보이고 그런 그녀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또다른 남자 사와키 역시 그녀를 걱정할순 있어도 그녀를 잡아줄수는 없는 남자다.결국 어디에도 그녀가 의지할만한 것이 없는 그녀의 삶은 마치 속이 텅빈 갈대같다.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
이제껏 그런 그녀를 붙잡아두었던 남편이자 파파라 불리었던 기이치로마저 끝내 그녀에게 의지할만한 안식처는 아니었다는 게 밝혀질 즈음 세쓰코를 흔드는 모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긴장감을 가지고 서스펜스처럼 흘러간다.
자신의 어릴적모습과 닮아있는 마유미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남자없이는 살 수 없었던 자신의 엄마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어 남편의 폭행을 견디는 여자는 어딘가 닮아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말없이 스스로를 던져 세쓰코를 끌어들이고 엄마로 하여금 결심을 하게 한 마유미는 흔들리며 부유하던 세쓰코마저 변화하게 하는 결정적인 촉매의 역활을 하고 있다.
결국 세쓰코가 마지막으로 한 결정은 이렇게 스스로의 삶은 남편도 남자도 아닌 스스로가 책임지고 결정해야한다는 진리를 마유미를 통해 깨닫게 되면서가 아닐지...
마지막까지 의외의 묘수를 숨겨놓아 끝까지 긴장을 놓지않게 하는 묘한 소설이었다.
자극적이고 막장인것같은 소재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미스를 범하지 말기를...내겐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