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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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재학중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이후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하면서 그 특유의 신랄한 시선으로 인간의 내밀한 갈등의 기미를 포착하여 삶의 진상을 드러내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휘청거리는 오후} {목마른 계절} {살아있는 날의 시작}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꽃을 찾아서}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꿈엔들 잊힐리야}(원제{미망}) {저문 날의 삽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등 다수의 소설작품과,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살아있는 날의 소망}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른노릇 사람노릇}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두부} 등의 산문집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상(2006)등을 수상했다.
목차
- 엄마의 말뚝 1
엄마의 말뚝 2
엄마의 말뚝 3
유시
꿈꾸는 인쿠베이터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꿈을 찍는 사진사
창 밖은 봄
우리들의 부자
해설 / 김경수
작가·작품연보
작품목록
출판사 서평
『엄마의 말뚝』은 평론가 권명아에 의해 적절하게 표현된 것처럼 우리 시대 ‘억척 어멈’의 삶의 기록, 그것도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부터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는 분단의 현실을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의 기록이다.
우리 시대 보편적인 어머니들의 삶의 한 판본
『엄마의 말뚝』은 1980년 9월 <문학 사상>에 1부가, 그 이듬해에 2부를 발표하여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3부작으로 되어 있다. 1편은 일제시대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신교육을 시키기 위해 시댁인 개성을 떠나 서울의 문밖인 현저동 꼭대기에 알량한 여섯 칸짜리 기와집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며, 2편은 말년에 사고로 넘어진 어머니가 약간의 혼수상태를 겪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는 대목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3편은 사고 후 7년을 더 사신 어머니의 일상과,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겨진 가족들이 그녀의 죽음을 수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런 『엄마의 말뚝』이 일차적으로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어머니들의 삶의 한 판본인 것만은 분명하며, 그런 만큼 그것은 그 기록 자체만으로도 여성들의 삶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돕기에 족하다.
분단의 상처와 여성의 삶이라는 영원한 현재성의 문제
주인공 엄마의 삶의 전 과정은 딸의 시각과 입을 통해 증언되고 있다. 그러나 『엄마의 말뚝』은 어머니의 삶이란 것은 딸의 시선을 통해 복원되고 의미가 부여되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주인공인 엄마의 삶의 전 과정이 딸의 시각과 입을 통해 증언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보편적인 익명 속에서 개별자로서의 어머니 삶의 개체성을 복원하고 확인하고 거기에 합당한 사적 위상을 부여하는 책무가 전적으로 딸에게 부여되었다는 점에서 어머니로부터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이라는 문제는 영원한 현재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엄마의 말뚝』에서 보여주는 모성의 집요함이 보편적 공감을 획득한 것은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시공간과 결합된 것뿐만 아니라 오빠라는 존재를 사이에 둔 모녀간의 오랜 갈등의 드러냄을 통해 상처란 얼마나 깊고 지속적으로 삶 속에서 거듭 덧나는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의 근원적 치유는 결국 죽음이라는 형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진실을 제시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심연을 보여준다.
『엄마의 말뚝』 2편에서 '말뚝'의 의미는 드러난다. '나'의 말뚝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이고 '나'는 그 말뚝에 매여 자신의 인생을 찾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엄마의 말뚝은 죽은 오빠에 대한 애통함이다. 즉 '나'의 말뚝보다 더 참혹한 것이다. 즉 엄마의 말뚝은 바로 오빠에 대한 애정, 다시 말해 원한 맺힌 분단 상처인 셈이다.
많은 한국 전쟁 소설이 지나친 이념 대립이 강조되거나, 이 이념 대결의 연장선에서 계속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박완서의 작품은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념 대결의 갈등이 그렇게 첨예하게 부각되어 있지도 않고, 아픔의 책임을 전쟁으로 돌리는 구호적인 외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생활 속에서 여전히 배어 있는 그 아픔의 깊숙한 체험을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소설가 마르시아스 심 - 『엄마의 말뚝』을 읽고
한 문장도 보태고 버릴 것이 없이 이어지는 이 회고담 소설은, 가능성의 힘이 그러하듯이 지나간 세월의 힘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이 명작인 까닭은 이렇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볼 수 있는 근거와 여유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33800546 | ||
---|---|---|---|
발행(출시)일자 | 2007년 01월 02일 (1쇄 1994년 04월 01일) | ||
쪽수 | 458쪽 | ||
크기 |
152 * 223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박완서소설전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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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밖에 적어 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만큼 너무나 서러운 아름다움이 느껴진 이야기다.
그저 아름다워 보였다고 밖엔 표현할 수 없게 난 세차게 휘둘려있다.
그렇게 세차게 휘둘려도 싫은 느낌 한점 끼지 않는, 겸허한 아름다움을 본 것 같다.
여러번 말하게 되지만 내겐 단편을 읽는 것이 너무 어렵기만하다.
마치 시를 읽는 것과 닮은, 자신의 감정을 함축하고 생략해서 과정없는 결과물만 내놓은, 완전하지 않은 완전함을 가진 작품이 시라면 이보다 더 빼다 박을 수 없겠다.
난해한, 너무나 난해한 하지만 그래서 더 끌리는 그런 묘한 매력을 단편 소설은 담고 있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함과 그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면 어느새 강렬한 두려움이 되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만다.
단편은 중독성이 있다.
모르겠어서 불안한만큼 알고자하는 지적 호기심, 감성적 호기심은 커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운 좋게 어떤 결정적 단서를 발견해냈을 때는 환호마저 터져나온다.
때로는 눈물도 난다.
엄마의 말뚝,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환각의 나비'와 함께 읽었었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건 한자어의 결합이 묘해 간단히 의미를 추측할 수 없어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유실과 꿈을 찍는 사진사, 창 밖은 봄, 우리들의 부자 이렇게 네 편이었다.
유실과 꿈을 찍는 사진사는 마지막까지 내게 수수께끼를 남겨주고는 참, 허망하게도 끝이나 버렸다.
결국 제목 유실이 무슨 뜻인가부터가 내겐 수수께끼다.
남은 잃어버린 것? 아니면 잃어버리고 남은 것?
지금 가장 강력하게 추측하고 있는 것은 잃어버리고 남은 것이다.
이걸 얘기하려면 줄거리를 적어야 할 것 같은데, 간단히 말하면 5년 전 당뇨병 진단에 결핵 진단까지를 한꺼번에 받고 난 후 친구와의 동업을 정리하고 작은 사무실을 낸 후 식이요법과 운동을 철저히 지키며 자신의 당뇨병을 어느정도 자신의 의지로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김경태씨가 이따금 저지르는 일탈 행위에 쾌감을 느끼고 있던 어느날 옛 친구 서병식을 만나고 그 친구를 빌미로 술을 마시고 거하게 취해 난생처음 필름이 끊겨 전혀 상관이 없는 낯선 도시(성남시)에서 깨어난 후 자신의 오래 써오던 물건과 300만원짜리 어음을 잃어버린 사실을 깨닫고 그 시간을 추적하던 중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들은 모두 찾지만 결국 자신이 찾으려던 것은 찾지 못하고 돌아오던 성남시와 서울시의 경계를 지나며 자신이 성남시에서 잃어버리고 찾고 있던 것이 '녀석'이며 그 '녀석'은 자신임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줄거리야 어쨌든 제목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계속하련다.
결국 물건은 다 찾았는데 여전히 못찾은 것이 있다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제목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는 얘기다.
이것이 나름의 답이다.
난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꿈을 찍는 사진사는 내게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 막히는 결말을 선사해주었다.
난 천지가 개벽하는 줄 알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줄 알았다.
정말 깜~짝 놀라버렸다.
그리고 조금 절망했다.
그 이유는 제목이 꿈을 찍는 사진사인 이유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옥순이가 죽고 이야기가 끝이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느닷없이!
거기에 석민이 어머니는 왜 그런 행동을 한건지? 여자들만 아는 어떤 것이라고는 했지만 난 정말 모르겠어서 이렇게 끝난게 더 허탈했다.
다만 과거 김영길과 비슷한 짓을 했던 체육선생과의 악수에 어떤 야합과도 같은 야릇한 의미가 녹아있는 것 같은 느낌과 특수한 두 동네의 협곡이라는 학교의 위치, 그리고 풍토병이란 말이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지 않았던가 싶을 뿐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몇번이나 읽어도 알 수 없었기에 그런 이유에서 이 작품의 수수께끼는 난 포기.
내가 내놓고 내가 포기. 아 슬퍼. 옥순이의 명복을 빌어본다.
이것이 단편의 가장 두려운 점인 것 같다.
느닷없음. 갑작스러움. 전혀 엉뚱함.
나를 까닭없는 절망이라는 수렁에 밀어넣는 행위.
창밖은 봄에서 그나마 난 위로를 얻었지.
의지없는 사람끼리 그렇게 순수하게 아끼고 위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고, 길례 정씨 백봉선생 공기사가 꾸려나가는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코믹하기까지해서 긴장을 내려놓고 안심하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들의 부자 날 눈물짓게 만든 괘씸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장애아를 가진 유세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마음을 울리고, 위선 아닌 위선으로 위장하고 있는 이들의 천연덕스러움과 그런 이들에게 시달려 삶의 나락까지 밀려나갔어도 너무나 편안해 할 수 있는 선함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엄마 순복이의 품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지내던 혜나가 독립해가는 과정 이야기.
무일푼으로 한데로 쫓겨났으면서도 너무나 편안해 하는 순복과 그녀가 "나는 지금 2만원이 있어."라며 혜나가 자립을 하게 되었다고 친구 오숙경에게 하는 말. 그런 그들에게서 도망치듯 물러나다가 빈 용달차를 세워 순복이에게 돌아가는 오숙경이 떠올리는 "우리집엔 남아도는 빈방이 하나 있었다."는 구절이 묘하게 어우러져 서럽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기어이 눈물을 짜내는 절절한 아름다움이 우러났다.
소리내어 읽으면 그 울림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내 마음에 울리는 이 소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좋다.
그는 친구의 늙고 고달픈 뒷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슬퍼서 아름다운지 아름다워서 슬픈지 가슴이 찐하면서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153p
[나도 처음에 부임했을 때 김선생님 비슷한 짓을 했더랬죠. 파탄에 이르는 경로도 거의 비슷하구요. 아마 특수한 두 동네 사이 협곡에 자리잡았다는 우리 학교의 특이한 입지적 조건에서 오는 풍토병, 딜레마, 그런 거였겠죠.]
[병이라구요?] 340-341p
나는 혜나가 공주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기의 능력에 대해 환상을 갖는다면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혜나하고 얘기할 때 불구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썼다. 남 듣기엔 힘 안 들이고 예사롭게 그 소리를 써먹는 것 같지만 실은 내 아이 중의 하나는 근시라는 말을 할 때처럼 예사롭게 들리도록 그 말을 하기란 세심한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394-395p
일상의 이야기를 의미를 담은 소설로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들 우리와 비슷한 상처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와 행동에
위로를 받고, 때로는 반성을 할 수 있게 된다.
박완서 소설전집의 7번째 책인 ‘엄마의 말뚝’(세계사, 2007)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가하고 감상해 볼 만한 책이다.
‘문학사적 의미’라는 객관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게도 여러 의미를 전해줄,
그러니까 ‘주관적인 감상’의 측면에서도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담을 가지지 않고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냥 접하면 어렵고 무거웠을 이야기들과 의미일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을 통해서는 자연스럽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집에 속해져 있는 '엄마의 말뚝'을 비롯해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 가을의 사흘동안'등의
소설들은 여성의 주체성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국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상처를 힙겹게 마주본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들었던 것은, 남성을 제쳐놓는다는 측면이었다.
남성과 사회를 원망하기 보다는 주체적이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고 정체성을 찾으려는 듯한
태도가 느껴졌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어떡하든지 달라져야 한다’
이 부분이 다시 마음에 떠오른다.
분명히 힘이 되는 소설집이다.
성(性)을 떠나서 사람이 인생에서 힘든일을 겪었을 때
그 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인물들은 단순히 상처를 잊고 극복하는 태도만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상처와 과거를 피하지 않고 뚜렷히 받아들이며
그 위에 자신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덧바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용감하고 멋지게.
단아한 얼굴에서 어찌나 기품이 쏟아지던지...
역시 대가는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엄마의 말뚝을 읽은 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시대극을 보는 듯한 느낌...
연작으로 이어지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내게는 꼭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읽었는데
엄마의 말뚝과 이어지는 이야기였던 기억이 난다.
추천하고 싶은 책...
소설「엄마의 말뚝」에서는 작가 박완서씨의 정신세계, 더 넓게 나아가 그녀의 삶에 영향을 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비롯 여기저기서 그녀의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눈에 띈다.
「엄마의 말뚝」은 1, 2, 3편으로 연작 형식이지만 한편, 한편은 독립된 단편으로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1편이었다. 이 연작들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 해방, 한국전쟁 그 후 지속되는 분단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기초로 근대화의 과정을 통한 여성의 인식 변화 또한 비추어 볼 수 있으며, 한국 근대사와 여성, 역사와 여성의 상관성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자하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어머니들의 삶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그 당시 여성의 삶과 근대화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그려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일제 식민지시기를 배경으로 한 1편에서는 급변하는 세계와 구습에 젖어 있는 세계 속에 변화해가는 한 여성을 만날 수 있고, 그녀의 의식을 살펴보면서 당시 여성의 삶을 더욱 자명하게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겹겹이 무너질 듯 쌓여 있는 성냥갑같이 부실한 집들의 결정체 현저동은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과 무관하지 않으며, 감옥주변을 놀이터 삼아 놀던 주인공도 결코 박완서와 완벽히 다른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소설「엄마의 말뚝1」은 한 가족에 뿌리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조선시대까지 유교적 전통 아래 가부장적인 생활이 익숙한 그 들에게 어느 날부터 심심찮게 양복쟁이들과 넓게 트인 신작로가 삶을 향해 들어온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이야기의 정신적 지주이기도한 어머니는 아득하게나마 변화를 느끼게 되고, 아들과 딸을 새로운 문명 앞에 빨려 들어가도록 애를 쓴다. 아이의 어머니는 소설에서 여성의 힘으로 일관된다.
지금과 같은 21세기에는 남녀평등을 외칠 수 있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불과 몇 십년 전보다 엄청나게 커졌지만, 그 당시 남자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때에 며느리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파괴하면서까지 여성을 교육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진보적인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너무도 가볍게 세상을 떠난 남편의 죽음이 모티브로서의 역할을 한다. 2번의 출분이 있었고, 이 출분은 여전히 ‘아버지의 법’이 존재하는 시골의 한문 지식권으로부터 서양식 근대 지식권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아이가 시골집을 떠나올 때 은근히 모녀의 서울 행을 지원해 주는 할아버지로부터 우리는 가족간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지만,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는 적극적인 행동이 할아버지 시대의 봉건주의자들에게도 서서히 자리잡혀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아이에게 신여성이 되라는 이념을 교육시키는 동안 어머니는 순전히 네 한 몸 좋으라고 교육을 시킨다는 당부와 함께 오빠는 성공하면 우리 집안이 일어서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말은 그 집안에서 아이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를 지나 이제는 오빠의 세계를 준비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를 지나 새로운 근대적인 가부장의 바톤을 넘겨받는 형상으로 일축할 수 있는 것이다. 과부 어머니의 큰 소리로 인해 그 집안의 질서가 새로 잡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것이 소설에서 또 다른 재미와 긴장을 주는 부분인 것이 어머니가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가부장적 사회의식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 당시의 사회가 여성의 힘으로 집안을 일으킬 여건이 마련되지 못하였지만, 어머니가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전근대적인 요소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덧붙여 이 글의 주제의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말뚝’은 자신의 정체성과 아이들의 정체성까지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산꼭대기, 그들의 정신적 고향인 현저동에 위치한 괴불마당 집으로 말할 수 있다. 현저동은 문 밖에 위치하였고, 주변부라는 인식을 우리에게 심어 준다. 이 것은 그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주변부에 위치했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이 소설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수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 질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아이의 어머니의 관점에서 많은 부분을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다. 물론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어머니의 근대적인 사고 방식과 맞물려 생각을 이끌어 내는 요소가 많았다.
소설은 이야기라고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실로 엄청나게 깊은 생각과 노력이 만들어낸 결정체라는 것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이 소설은 오랜 전통의 붕괴와 풍속의 허물어짐을 여지없이 잘 그려내고 있으며 그 속에서의 갈등과 고통 또한 독자가 보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었다.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던지는 의미를 우리는 잘 간직하고 언제든 다시 꺼내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머니를 점점 닮아가는 자신을 느낄 때…,
내 가슴 속을 파고드는 구절-.
'내가 그 낙원에서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고 화자는 말한다.
말뚝은 중요한 버팀목이다. 기둥을 박기 전에 기둥과 그 사이사이를 연결할 벽과 그 위로 얹혀질 지붕까지, 모든 삶의 테두리를 두르기 전에 가장 기초적으로 세우는 버팀목이다. 그리고 말뚝은 한번 박아놓으면 쉽게 뽑히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깊게 박아야 한다.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받쳐주는 존재, 말뚝의 의미는 상징적이다. 가장의 부재. 그것으로 인해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빈 말뚝의 자리를 채워나간다. 어머니가 의지하는 것은 훗날 자라서 가장이 되어야 할 오빠이며, 오빠의 죽음으로 어머니는 또 하나의 말뚝이 베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오빠가 아버지의 빈 자리를 잇는 어머니 가슴 속 말뚝이라면, 딸인 화자는 어머니의 내면 욕망을 투영하는 대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자식을 교육하는 것에서도 어머니가 부여하는 의미는 차이가 난다. 어머니는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며 화자를 엄하게 교육시킨다. 그것은 오빠에게 가정을 일으켜야 하는 책임을 부여하는 것과는 달리, 딸이 도시 여성으로 세련되게 서장하길 바라는 어머니의 꿈인 것이다. 그렇기에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소설 속에서 더더욱 긴밀하고 묘하게 보여진다.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로 증가시킨다.
2. 공간
에서 공간은 이야기의 배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골의 할머니 댁에 있을 때, 차라리 화자는 풍족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의 변두리, 달동네로 옮겨 가면서 화자와 그 가족의 치열한 삶의 경쟁은 시작된다.
문은 중심 층과 변두리를 구분하는 상징적인 벽이다. 유독히 사대문 안의 공간에 집착하는 어머니. 소설은 어머니의 집착과 내색 않지만 깊게 배어있는 열등감 등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그려내고 서울에 올나와 정착하기까지 소시민들의 궁색하면서도 악착같은 삶을 그려낸다.
훗날, 그렇게 꿈꾸던 사대문 안으로 가족은 옮겨가게 되지만, 어쩐지 그들은 자신들이 서울에 올라와 처음 의지하고 박던 말뚝은 이제는 헐려진 옛 집에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헐려지는 옛 집을 보며, 그 아웅다웅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화자는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시린 듯 아쉬워진다.
3. 유화 그리기
박완서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결핍, 상실 등 상처는 현실의 고통에서 오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현실에서 찾아낸다. 한 마디로, 박완서 소설의 말뚝은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박고 있다. 작가의 세대가 겪었을 정치, 경제적인 시대상이 소설에서 현실적으로 다루어진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 구체적이고 신랄한 세태 묘사로 그려진다.
"그 며칠 동안의 낭자한 유혈과 하늘에 맺힌 원한을 어찌 잊으랴. 그러나 덮어둘 순 있었다. 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아 또 사랑하는 걸로, 어머니는 손자를 거두어 기르며 부처님께 귀의하는 걸로."
결국 작가가 제시하는 해결책이란 삶이다. 철저히 살아가는 것, 생의 이 켠 저 켠굽이진 골목들을 둘러보며 살아가는 데 마음을 쏟는 일. 그것이 상처의 극복 방법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지난 시간동안 아프게 꼬인 매듭을 굳이 풀어내려 하지 않는다. 한 가닥 한 가닥 엉킨 실을 들추어 풀어내는 일은 어쩌면 아무 의미없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의 남겨진 인물들에게는 그러하다. 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그에 따른 오빠의 죽음을 이제 와서 한 올 한 올 풀어낸다 한들 무엇이 남을 것인가. 엉킨 실 뭉터기가 풀리워지면 텅 비어버릴 뿐이다. 한 가닥씩 상처를 끄집어올리던 손끝만 시리고 아플 것이다. 결국 아픈 상처를 다시 들추어내는 행위일 뿐, 어떠한 극복방법도 되지 못한다.
소설의 인물들은 이러한 의미없는 매듭풀기대신 끌어안기를 택한다. 아프게 꼬였으면 꼬인 대로, 엉키었으면 엉킨 대로 품 안에 끌어안고, 가슴 깊이 깊이 묻어두고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어머니와 딸이 오빠의 죽음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새 가족을 맞으면서 삶에 충실하게 매여간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자연히 지난 세월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세월이 가슴 속 응어리를 발효시키는 지도 모른다.
세월에 의해, 삶의 분주하고 자연적인 일상대화에 의해 작가가 깔아놓은 날카로운 상처는 점점 그 아픔을 잊어간다. 상처를 긁어내려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위에 새로운 삶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박완서 소설의 메시지일 것이다. 지우거나 긁어내지 않고 그 위에 다른 색으로 덧칠을 하는 것은 아픔을 가라앉히기 위해 박완서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극복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