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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탄생:한국 근대 문학의 풍속사

이경훈 저자(글)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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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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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이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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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이경훈</b>
1962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사상』을 통해 평단에 데뷔하였고,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이광수의 친일 문학 연구』(1998), 『어떤 백년, 즐거운 신생』(1999), 『이상, 철천의 수사학』(2000)이 있고 가라타니 고진의 『유머로서의 유물론』(2002)을 번역했다.

목차


  • 책머리에

    제1부
    놀부적인 것
    오빠의 탄생
    식민지의 트라데 말크

    제2부
    『무정』의 패션
    실험실의 야만인
    미두·온천·영어
    영문법·스포츠·사이보그

    제3부
    육체 이상(李箱)의 유리창
    공복의 유머

    제4부
    만주와 친일 로맨티시즘
    몸뻬와 야미
    노래를 넘어 노래의 시대를 넘어

출판사 서평

식민지 근대 문학, 식민지로서의 근대 문학
이 책은 식민지의 다양한 풍속을 통해 근대 문학과 근대성을 고찰하고 있다. 여기서 풍속이란 김남천이 말한 바, “사회 기구의 본질”이 “완전히 육체화”된 상태를 이른다. 이는 여러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일단 그것은 문학적 소재의 문제를 환기한다. 예컨대 최남선의 「경부철도노래」와 이광수의 「개척자」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기차나 시계는 근대 문학이 즐겨 취급하는 사물이다. 물론 이것들은 단지 우연적인 소재에 그치지 않는다. 기차와 시계는 새로운 척도에 의해 시공간을 측량하고 구획함으로써 시공간을 중립화하고 탈미신화하는 근대의 핵심적 활동과 관련된다. 더 나아가 이 사물들은 합리적인 계획과 진보의 이념을 본격적으로 일상화함으로써 계몽과 문명의 주제를 매개한다. 한용운이 ‘경성명진측량강습소’를 개설했던 것, 더 나아가 임화가 다음과 같이 시 썼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희망이란 큰 수부(首府)에 닿는 길이
경부철로처럼 곧다 안 할지라도,
아! 벗들아, 나의 눈은
그대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는,
남북 몇 곳 위에 불똥처럼 발가니 타고 있다. ―임화, 「지도」

따라서 각 민족과 국가들 사이에 펼쳐지는 “대학 운동회”에 참여하기 위해 “적어도 십 배의 속(速)으로”(「너를 혁명하라」) 달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최승구의 논의는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는 마라톤이나 100미터 달리기 등과 같은 스포츠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때문이다. 이 기록 경기들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온갖 신화적 상상력이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구체적 삶과는 상관없이 42.195킬로미터와 100미터는 세계(또는 우주) 어느 곳에서나 똑같이 측량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거리를 달리는 인간의 속도 역시 동일한 시계로 측정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모든 시공간은 같은 자로 측량되고 조직됨으로써 근대적으로 점유된다. 경기가 열릴 때마다 점령은 재확인된다. 식민지의 개척은 이렇게 시작된다. 역사란 시공간을 등질적인 것으로 만드는 스포츠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내용을 부여하는 인간의 실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삼랑진 철도 분기점에서 수재라는 “자연의 폭력”을 발견하는 『무정』의 장면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근대인에게 자연은 소외된 “풍경”(가라타니 고진)이거나 “폐허”(염상섭, 「폐허에 서서」)이다. 실로 건축가 이상(李箱)에게 전신주 하나 없는 평안도의 시골 성천은 “공포의 초록색”이었다. 그것은 온갖 타자이며 야만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묘사의 진정한 의미를 암시한다.

일산에서 문산에 이르기까지의 수재 자취도 적지 아니한 듯합니다. 곡식 잎에 흙이 묻었으니 비가 한번 곧 와야 하겠습니다. 모래가 자꾸만 상류에서 밀려 내려와서 한강의 수위가 높아지니, 연안의 평지에는 침수의 위험이 해마다 많아질 것 아닙니까. 그 구제법은 조림 밖에 없겠지마는 참 걱정입니다.
대동강에서 성산을 중심으로 동북을 바라보는 경치는 암만 보아도 천하 제일입니다.
“너무 아름다워.” 하는 것이 K의 걱정이었습니다. 과연 평양의 강산은 너무 아름다운 것이 흠입니다.
청천강이나 압록강이나 다 물이 불었습니다. [……]
압록강 신의주 역을 떠나면서 우리는 시계의 바늘을 한 시간 뒤로 물립니다. (이광수, 「만주에서」)

결론부터 말해 인용에서 묘사된 것은 자연 자체가 아니다. 화자의 눈 역시 맨눈이 아니다. 한강─대동강─청천강─압록강을 연달아 기술하는 화자의 시점은 어디까지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치며 달리는 기차와 그 속도에 매개된 것이다. 강들은 차창 위에 영화 장면처럼 연속된다. 더 나아가 이 연속되는 순서는 강의 자연적 위치보다는 경의선 철도의 노선에 근거한다. 자연에 시공간적 순서가 있을 리 없다. 즉 한강─대동강─청천강─압록강의 순서는 서울에서 신의주로 북진하는 철도의 합목적성과 분리될 수 없다. 기차가 탈선하지 않는 한, 또는 압록강 너머까지 갈 기차표를 살 돈이 있는 한, 계속 이 순서와 목적은 매끄럽게 확인될 것이다.
종종 이는 공간의 자연적 위치로 착각된다. 이 혼란과 착란이 근대인의 공간 감각을 이룬다. 시계 바늘을 돌리는 일이나 “조림”을 언급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인에게 자연은 재구성되고 정복된 자연이다. 그것은 자연이기보다는 철도나 국립공원으로 개발되고 상상된 ‘국토’이자 ‘세계’이다. 또 그것은 다양한 과학적 탐구와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무수한 교환으로 추상되고 재조직된 시장이다. 그것은 일종의 식민지이다. “풍경”은 오직 식민지로서 인간과 화해하고 인간의 환경이 된다. 따라서 이상은 다음과 같이 썼다.

현미경
그 아래에서는 인공도 자연과 똑같이 현상되었다
─이상, 「이상한 가역반응」

망원경이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먼 우주의 거시적 세계를 보여주듯이, 현미경 역시 시각만을 추상하여 맨눈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미시적인 세계를 열어준다. 이를 통해 인간은 점점 더 자연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며 자연을 활용한다. 그러나 이는 묘한 상황에 근거한다. 실상 현미경이나 망원경 등으로 그 원리가 관찰되고 인식된 자연은 결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이란 인간의 맨눈이 먼 곳의 별이나 아주 작은 세포를 볼 수 없다는 사실마저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체의 유기적 구성으로부터 시각만이 추상되고 관념화될 수 없으며, 따라서 세포나 바이러스를 시각적으로 관찰할 수 없다는 인간 육체의 필연적 한계야말로 원래의 자연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기술을 통해 자연을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인공으로써 자연과 인간 자신을 정복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활동은 진리(개념)나 미(美)의 이름으로 자연화된다. 그렇다면 그 자연은 결국 사회이다.
이것이 근대의 본질적인 풍속이다. 자연과 시공간 자체가 일종의 풍속이다. 한편으로 이는 ‘고향’이라는 감성적·미적 형식으로 현상한다. 향수(鄕愁)는 곳곳에서 옛이야기를 지즐댈 것이며, 메밀꽃은 숨막히게 피어날 것이다. ‘과학’과 ‘진보’라는 이성적 형식과 함께, 그것은 자연에 대한 근대적 감상화(感傷化)를 대표한다. ‘국가’와 ‘국토’는 이 둘을 인공적으로 종합함으로써 본격적인 동원을 수행한다. 이제 인간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일은 물론이려니와 적의 침입으로부터 고향을 방어하는 것 역시 정복이다. 이 내국인(內國人)은 온갖 세균과 바이러스로부터 육체를 지켜냄으로써 자기 자신을 점령하기도 한다. 애국자인 그는 근대에 위생적으로 순사(殉死)하는 풍속인(風俗人)이다.
이러한 센티멘털리즘과 짝을 이루는 것은 다음과 같은 신경과민이다.

내가 남포에 가던 전날 밤에는 그 증(症)이 더욱 심하였다. ―간반퉁밖에 아니 되는 방에 높이 매달은 전등불이 부시어서 꺼버리면 또다시 환영에 괴롭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으나 심사가 나서 웃통을 벗은 채로 벌떡 일어나서 스위치를 비틀고 누웠다. 그러나 쨍응 하는 소리가 문틈으로 스러져 나가자 또 머리를 엄습하여 오는 것은 수염 텁석부리의 메쓰, 설합 속의 면도다.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은 개구리 해부 및 “메스”이다. 해부는 영혼이나 감정과 분리된 육체만을 분리해내며, 이로써 지극히 유물론적인 육체는 오히려 개념화·관념화된다. 해부의 잔인성은 거기에 있다. 따라서 추상과 개념화는 센티멘털리즘과 신경과민의 근본적 원인이다. 이는 주인공이 꺼버린 전등의 원리이기도 하다. 촛불이나 램프 등과 비교해 전등은 그림자와 열(熱)을 최소화함으로써 빛만을 추상하고자 한다. 그 빛은 너울거리거나 따뜻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냉정하게 밝으며 오로지 밝다. 과연 그것은 빛과 계몽의 이데아를 표상한다. 더 이상 주인공은 몽상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환영과 신경과민은 반드시 어두움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날카로운 전등빛 때문에 발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한 양상은, “자기의 육체가 소멸되고 만 뒤에, 그 사랑만이 뛰어나서 영원히 영원히 살아 있을 것 같”(이광수, 「개척자」)다고 생각하는 성순의 경우에서도 발견된다. 그녀에게 사랑은 구체적이고 술어적(述語的)인 실천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기호화된 명사이고 개념이다. 그녀의 자살은 바로 그 개념에 굴복함으로써 부모로부터 자유로운 근대인의 자격을 획득하는 아이러니를 암시한다. 성순은 ‘사랑/자유’를 알기 위해, ‘사랑/자유’라는 이름을 부르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다. 춘원이 쓴 다음 구절은 그녀의 사랑에 대한 적확한 비판이다.

무엇이나 다 그렇지마는, 원체 사랑이란 것은 있는 것이 아니어든. 누구의 사랑―그도 어느 때 누구에게 대한 사랑이란 것이 있지, 사랑 그 물건이란 것은 없단 말야. (이광수, 「그 여자의 일생」)

근대 문학은 이와 같은 식민화의 풍속을 통찰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식민화란 일본의 식민 통치와 지배라는 정치적인 상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식민지 체제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근대의 양상과 활동을 의미한다. 사실 이는 근대 문학의 원리 자체이다. 비유컨대 근대 소설의 묘사는 측량, 개구리 해부, 건축, 철도 부설 등과 닮은꼴이다. 김동인이 강조한 ‘했다’체와 ‘인형조종술’은 문학이라는 식민지가 근대적으로 개척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근대 소설은 이야기라는 질료를 해부·계산·설계·조직하여 플롯과 허구를 꾸민다. 내밀한 심리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은 작가에게 점령당한다.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인 소설의 서술은 철도적(鐵道的)이다. 땅에 의거해 레일이 설치되듯이, 소설은 이야기에 근거해 인과관계를 실험한다. 진행되는 것은 이야기라기보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창조한 세계”란 작가의 이성에 정복·개조된 세계이다. 소설의 원리 자체로써 근대의 필연성이 선포되고 설득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근대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내재율은 선택된 이미지들을 자연의 즉자적인 맥락에서 떼어내어 새롭게 결합함으로써 발생한다. 이 재문맥화는 자연의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선택·결합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화학적 탐구와 닮은꼴이다. 자유시가 계시하는 은유적 비전은 화학적이다. 한편 비유나 상징이 성립되고 수용되는 근거가 개인 화자라는 점에서, 그것은 개인적이다. 이렇게 자유시는 개인을 관철한다. 이는 신분(가문)이라는 기존의 맥락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는 근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비유컨대 내재율은 직업(職業)이다. 이는 ‘성장’과 ‘진보’의 시간성을 내면화한다.
물론 유기체적 구조와 존재 자체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시는 생물학적이고 생태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대인이 매끈하게 가정해놓은 유기체 자체가 여러 면에서 재구성된 것이다. 그는 국가와 우주를 갈등과 균열 없는 공동체로 상상한다. 이는 근대시의 단성적이고 유기적인 구조로 반복된다. 따라서 자유시는 자연을 관찰하고 ‘풍경’을 전유하는 가장 적극적인 제도에 속한다. 그것은 문명의 다른 이름이다.
이렇게 근대 문학은 그 자체로서 지극히 풍속적이다. 더욱이 그것은 대량으로 인쇄·배포되어 시장에서 화폐 교환된다. 자주 그것은 여러 측면의 교육과 동원을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근대 문학은 개인, 민족, 시장, 사회, 고향, 사랑 등의 여러 근대적 담론과 실천들을 활성화하고 자연화하는 본격적인 제도이다. 그것은 뿌리깊이 개척되었으며, 근대적 원리와 양상을 자신의 육체로 삼았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 문학은 전형적인 식민지이다. 저자는 그 문학적 식민화의 장면들을 탐색하고자 했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오빠’는 근대를 상징하는 주체의 위치이다. 그것은 풍속의 다른 이름이다. 요컨대 이 책은 식민지화됨으로써 식민지를 개척했던 식민지 풍속에 대한 보고서이다.



♧ 저자 소개

이경훈
1962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사상』을 통해 평단에 데뷔하였고,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이광수의 친일 문학 연구』(1998), 『어떤 백년, 즐거운 신생』(1999), 『이상, 철천의 수사학』(2000)이 있고 가라타니 고진의 『유머로서의 유물론』(2002)을 번역했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32014609
발행(출시)일자 2003년 11월 17일
쪽수 343쪽
크기
152 * 223 mm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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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탄생?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오빠의 탄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빠’가 ‘탄생’한 것이라면, 기존에 있던 ‘오빠’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왜 하필 저자는 이처럼 선정적인 제목을 붙였을까?
저자에 의하면 이 ‘오빠’는 기존 사회의 질서에는 없던 새로운 인간형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침략일환으로 근대문명의 외피를 쓰고 들어온 일본의 전략과 함께한 것이지만, 그러한 근대문물의 충격은 조선사회에 일종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라 명명할만한 풍속사적 특징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 책의 전반적인 논조가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 ‘오빠’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우선 근대적인 교환가치를 발견한 ‘놀부의 해부학적 시선’을 가진 인간이다. ‘놀부의 해부학적 시선’이란 육체가 영혼이나 하늘, 혹은 부모에 귀속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교환가치를 지닌 대상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시선이다. 그러한 육체에는 이야기, 신화성, 제의 등의 아우라가 제거되어 있다.(p 21) 때문에 ‘오빠’는 ‘천륜 및 인륜과는 상관없는 세계에서 계속 부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p 24) 자본주의적 인간이다.
이 ‘오빠’는 그러므로 ‘부모-자식의 종적인 질서’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립하는 ‘청년’으로 태어난 인물이다. ‘부모’를 거부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를 선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 46) 이렇게 탄생한 오빠는 ‘교육’을 매개로 성장한 인물들이다. 그 교육이란 주로 ‘영어’를 매개로 이루어진 근대문물이므로 ‘식민지의 근대는 번역으로 시작되었다’(p 188)고 할만하다. 이 ‘영어’는 서양문화의 집약이랄 수 있는 원전소설읽기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때문에 ‘오빠’들은 ‘영어’를 통해 ‘연애를 배웠다’(p 189)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빠’들이 배운 ‘연애’란 무엇인가? ‘오빠’들은 신식문물로 다시 태어난 ‘청년’이었기에 뭇 여성들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그 ‘오빠’들은 위스키와 키스를 즐기고, ‘TRADE MARK'를 ‘트라테말크’로 읽는, 그러니까 근대문물의 본질을 꿰뚫기보다는 단지 흉내 내고 소비하는 인물들이지만, 양반들과는 달리, 온 몸으로 땀을 흘리는 스포츠를 하고, 남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한다고 믿는 인물들이다.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직업’의 문제는 더없이 중요하다.(P 209)
이러한 ‘직업’은 규칙적이고 효율적인 동선으로 사회적 공장, 혹은 민족공동체 내의 직업에 편입되므로 일제의 전향정책과 긴밀한 연관을 맺기도 한다.(p 216) 이 ‘오빠’들의 직업이란 ‘미두’처럼 때로 자본주의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빠’들은 일만 하지 않는다. ‘오빠’들은 ‘미두’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러 멋진 ‘온천’에 ‘기차’를 타고 ‘정해진 시간’이나마 즐겁게 놀다 온다. 멋진 ‘하이칼라’의 여성들을 동반하고, ‘자유연애’의 구호를 부르짖으며.
그러므로 이러한 ‘오빠’들이 살다 간 근대란 본질적으로 ‘쇼 윈도우’를 매개로 진열된 상품들의 근대라 할 만하다. ‘유리’는 그럴듯한 환상을 진열해 놓는 매개이지만 그것은 ‘박물관이 문명과 진보의 이름으로 과거와 야만을 유리창 저쪽에 놓음으로써 근대와 근대인을 동적’(p 228)으로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유리창 저 안쪽에 진열된 상품의 근대이므로, ‘오빠’들은 마지막 남은 ‘최후의 이십전으로 타임즈판 상용영어사천자’를 구입하는 인물들이다.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근대를 소유하고 소비하고 싶어 했던 이 ‘오빠’들은 그러나,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현실은 ‘아무렇게나 고추장으로 끄린 두부찌개 한 그릇’(p 246)이지만, 그들의 정신은 ‘커피차와 부란데와 과자’를 향유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때문에 이들이 주창한 ‘자유연애’란 본질적으로 겉만 번지르르한 ‘공복’의 ‘패션’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자유연애는 늘 외국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보건과 위생의 흰 장갑으로 더 우량한 종자를 선별하는 식민지(p 134)의 얼굴을 숨기고 있었던 셈이다.

저자가 한국의 근대풍경을 이처럼 여러 가지 문헌적 자료를 토대로 풍속사적인 입장에서 들여다 본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현재의 근대문학의 연구들이 주로 작품의 문학적인 완성도나 문학사적인 맥락에서만 이루어지는 것과는 다르게 다양한 방법으로 보다 뚜렷한 당대의 상을 조망해 내려는 의도에서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이란 게 일본문학에서 자국문학을 조망하려고 했던 일종의 유행을 그대로 따라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가라타니 고진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 고미숙이나, 권보드래 등등의 소장학자들이 비슷한 방식의 풍속사연구로 한국의 근대성을 들여다보려고 했다는 점을 나는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방법이란게 고작 고진이 일본의 근대문학을 ‘내면, 풍경’등으로 발견한 그 방법에서 별로 떨어져 있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 같은 방법을 들여오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닐테지만, 들여왔다면 그에 합당한 문제의식이 보여야 하지 않을까. 고미숙의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 문고
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물론 고미숙의 그 책에서 가령, 푸코나 들뢰즈의 방법론으로 한국의 근대에 나타났던 우생학적 사고나, 풍속 등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이 책에서 식민지적 사고로 수렴되는 것까지 보여준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지적유희에 그치고 만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저자가 결론을 미리 상정하고 쓴 글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근대문학의 텍스트들을 모두 분해해 놓은 다음 자신의 주장에 맞게끔 논리적으로 퍼즐 맞추듯 조립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학문의 일반 원리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일본 혹은 프랑스 등에서 있었던 논의의 결론을 빌어와, 한국의 근대라는 재료를 가지고 다시 조립한다는 것은 지적유희의 차원에서는 의미 있을지 몰라도, 사유의 진전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 저자의 문제의식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재미는 있었지만 이 같은 물음에 확연한 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러한 문제의식은 현실로부터 토대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현실은 분명 저자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일 것이고, 이 시대의 어떤 풀리지 않는 부분이 저자로 하여금 한국의 근대를 풍속사로 다시 고찰하게끔 하는 이유가 책 속에 들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빠’는 정말 ‘탄생’한 것일까? 근대 이전과 ‘오빠’는 전혀 별개의 세상일까? 그리고 그 ‘오빠’는 지금에 와서 무엇인가?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저자의 문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정하는 듯한 문체. 저자의 글 속에서 근대의 풍속사는 모두 필연적인 이유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체는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찜찜한 이유는 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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