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빼어난 예술이 덕을 가리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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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실학적 행보에 집중하기 위해 시간순이 아닌 사건과 작업 중심의 구성을 택했고, 문헌이나 회화, 지도 등 70점에 달하는 시각자료를 편집부에서 골라 엮었다. 더불어 저자의 내공이 엿보이는 서사가 어우러져 한 시대, 그리고 실학자 윤두서가 꿈꾸었던 세상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작가정보
목차
- 책머리에
적선과 실천의 가풍
사사로움을 버리고
쓰고 만들며 그리다
지도에 담은 마음
두 번의 시련
채권 더미를 불사르다
시대를 앞선 노비관
소금을 구워 팔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인용문 출처
도판목록
해남윤씨 가계도
공재 윤두서 연보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압도적인 정면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이자 문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자로 알려진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화상의 인상만큼 포부 넘치고 실천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그대의 빼어난 예술이 덕을 가리었네』는 ‘실학자’ 윤두서를 조명하는 이야기로, 그동안 보아 온 화가로서의 모습이 아닌, 당쟁으로 점철된 시기에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 했던 행보를 좇는다.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저자 김영주(金永珠)는 『자산 정약전』 『책쾌』 등을 통해 역사에 등장한 인물들을 치밀하고 생생한 필치로 풀어 온 소설가다. 「책머리에」 글에서 그는, 한 전시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을 마주했을 때 압도적인 인상 너머의 굳은 다짐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 박차고 비상하겠노라는 외침”을 들었고, 그렇게 윤두서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강렬했던 첫인상을 반영하듯 이 책에서 윤두서는 굳은 의지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데, 단지 당찬 기세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존 인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비범하다 평가되는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을 지녔다는 사실이고, 윤두서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맏아들 윤덕희가 아버지 윤두서의 생애, 성품, 교유 관계 등을 기록한 「공재공행장(恭齋公行狀)」에 따르면 그는 매사 명확하고 철저했다. 편을 만들거나 아첨하지 않는 성격에, 뜻한 바가 있으면 의지를 굽히는 일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정이 넘쳐 약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졌다. 불쌍한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며, 모두가 미천히 여기는 자라 한들 이름을 부르고 인격체로 존중했다. 이 책은 때론 호기로우면서도 남의 급함을 먼저 살피고 많은 것을 내주는 모습까지,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유연한 태도를 다각적으로 그려낸다. 이는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하지만, 장길산이 이끄는 광대패를 곤경에서 도와주거나(「적선과 실천의 가풍」), 납치를 당하지만 기량을 발휘해 탈출하는 일화(「사사로움을 버리고」), 일꾼 몽구를 살리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척박한 땅을 일구며」)을 그리는 등 소설적 상상력이 극적 재미를 더한다.
실학적 행보에 집중하기 위해 시간순이 아닌 사건과 작업 중심의 구성을 택했고, 문헌이나 회화, 지도 등 관련 자료들을 편집부에서 골라 엮었다. 70점에 달하는 풍성한 시각자료에 저자의 내공이 엿보이는 서사가 어우러져 한 시대, 그리고 실학자 윤두서가 꿈꾸었던 세상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과 예술세계
윤두서는 국부(國富)로 불리던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7대 종손으로, 어려서부터 집안의 유훈(柔訓)으로 삼아 온 『소학』을 바탕으로 『논어』 『맹자』 등을 탐독했고, 천문, 역법, 기술, 지리 등 실용적 학문과 자연과학 분야의 학문까지 섭렵했다. 특히 총 80권 25책 분량의 중국 천문서 『관규집요』를 모두 필사해 소장할 정도로 천문학에 깊이있게 접근했다.(「쓰고 만들며 그리다」) 방대한 양의 독서를 즐겼을 뿐 아니라 글로 기록해 남겼는데, 약 25년간 써 온 글들을 모으고 필사해 엮은 문집 『기졸(記拙)』은 일상, 교유관계부터 서간, 시문, 화평 등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증조부 윤선도의 학풍을 이어받아 성리학의 관념과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천윤리를 중시했으며,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는 박학(博學)을 추구한 그는 축적된 견문을 바탕으로 지도를 제작했다. 〈동국여지지도〉는 색의 농담에 따라 각 도와 강줄기, 산맥, 섬이 구분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된 지도로, 사실을 토대로 진리를 탐구하는 실사구시의 정신이 담겨 있다. 「지도에 담은 마음」에서는 지도 제작의 과정과 더불어 그 시기에 벌어진 갈등을 풀어 나가는 윤두서의 기지(奇智)를 그려낸다.
윤두서가 살았던 숙종(肅宗) 재위 기간(1674-1720)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기존의 틀이 무너지고 정치, 경제적 개혁에 대한 모색이 절실한 시기였다.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당쟁이 더욱 치열해져, 남인계였던 해남윤씨 가문은 밀려나게 되었다. 이 가운데 윤두서는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학문과 예술에 몰두했다. 이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 윤두서의 예술적 재능과 그 성취는 역사적으로도 높이 평가된다. 「쓰고 만들며 그리다」는 빼어난 재능을 보였던 말 그림에서부터 풍속화, 정물화,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과 함께 해서, 행서, 초서 등 서체를 구사한 글씨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림에도 윤두서가 추구했던 실득의 정신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실제 모습과 똑같을 때까지 오랜 시간 공들여 그렸고,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서민들의 일상과 노동 현장을 무심히 넘기지 않고 〈선차도〉 〈채애도〉 등과 같은 그림으로 남겼다. 그의 화풍은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 김홍도(金弘道) 등 조선 후기 화가들과 화단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자신만의 화풍을 수립하려는 고민과 노력이 이루어낸 성과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그 예술적 재능은 윤덕희와 손자 윤용에게로 이어져 삼대 문인화가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학문정신은 남구만, 심득경, 이형상 등 주변 인물들과의 교유관계를 통해 확장되어 간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성호(星湖) 이익(李瀷)과 옥동(玉洞) 이서(李?) 형제로, 윤두서는 이들과 밤낮 없이 학문과 예술에 대해 논했다고 전한다. 그들의 각별한 우정은 대화는 물론, 이잠과 함께 완성한 〈유림서조도〉를 통해서도 생생히 전달된다. 윤두서의 학풍과 사상은 이익에게 전수되어 실학사상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고, 훗날 윤두서의 외증손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에게 이어지게 된다. 이서는 동국진체를 정립하고 윤두서와 함께 영자팔법을 연구한 인물로, 해남윤씨의 종택인 녹우당 사랑채의 현판도 써 주었다. 행장에는 윤두서가 사망하자 비통한 심정을 담아 지은 애사(哀詞)가 기록되어 있다.
“그대의 선하고 믿음성 있는 자세를 흠모했었고, 그대의 공명하고 평형(平衡)한 의지를 존경했었네. 넓고 넓은 바다에서 그대의 모범적인 마음을 알 수 있었고, 화창한 봄 날씨에서 그대의 따뜻한 성정을 볼 수 있었노라. 나는 항상 그대의 충국(充國)의 지혜를 생각했었고, 그대의 영공(令公)의 정성을 양모했었다오. 그대의 절륜한 예능은 오히려 덕을 가리었고, 까닭 없이 중대한 명망을 숨기고 있었네.”
-윤두서에게 바치는 옥동 이서의 애사
적선행인(積善行仁)을 실천하며
적선(積善)은 해남윤씨 선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풍의 근간이다. 즉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베풀어야 함을 강조한 것인데, 윤두서는 위민사상을 몸소 행했다. 평소에도 검소한 생활을 유지한 그는 유복한 형편이었지만 혹한에도 침실에 병풍을 치지 않았고, 출입할 때 털옷을 입지 않았다. 자신을 위하고 재산을 불리는 일보다는 약자를 돌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 간 천연두를 치료할 방법이 없자 감염 경로와 예방법을 상세히 기록한 ‘두신론’을 지었고, 농민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쳐 주거나 해남 지역의 곡물 매매를 중개하는 등 백성들을 돕는 일이라면 주저 않고 나섰다.(「적선과 실천의 가풍」)
윤두서의 나이 서른 살에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해남에 채권을 정리하러 갔다가 모두 불태운 일화 또한 행장에 기록되어 있다. 「채권 더미를 불사르다」에서는 배를 곯고 있는 어린 아이들과의 조우를 그리며, 다정하고 부드러운 성정을 비추어 준다. 부모의 뜻이라면 받들어 따랐던 윤두서였고 당시 가세가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서도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뜻한 바를 향한 흔들림 없는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며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한편 대대로 이어지고 있는 노비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악법을 폐지하고자 문서를 남기기도 했다. 노비의 토지를 상전인 주인의 것으로 등록하는 것을 기상記上(己上)이라고 하고, 이렇게 등록된 토지를 기상전답이라고 하였는데, 윤두서는 이런 관행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했다.(「시대를 앞선 노비관」)
“옛 사람은 개를 묻기 위해 헤진 휘장을 버리지 않았고, 말을 묻기 위해 헤진 가리개를 버리지 않았다. 어진 사람은 사물에 대해서, 비록 개와 말일지라도 그 어짊과 사랑을 다하였다. 하물며 사람에게서랴? (…) 나는 너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죽은 뒤에도 사적으로 털끝만큼도 기상(記上)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들은 마땅히 이 문건을 가지고 훗날 증좌로 삼도록 해라.” -윤두서, 『기졸』
해남 백포리에는 윤선도가 지어 준 윤두서 고택이 자리하는데, 백포는 바다와 가까워 해일이나 가뭄으로 마을 사람들이 굶주릴 때가 있었다. 윤두서는 종가 소유의 산 나무를 베어 소금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게 하거나, 농토를 마련해 주기 위해 개간 사업도 추진했다. 이 책에는 사업을 해 나가는 윤두서를 박태형이라는 실존 인물이 돕는데, 행장에 따르면 고아가 된 그를 윤두서가 데려다 자식처럼 길렀다고 한다. 이처럼 남에게 덕을 베풀었을 때는 돌아오기 마련이다. 한 예로 「두 번의 시련」에는 윤두서가 누명을 쓰자 오래전 도움을 받았던 장길산이 의금부 감옥에 찾아와 은혜를 갚아 주는 장면이 묘사된다. 자칫 교훈적일 수 있는 내용들은 저자의 생동감있는 문체와 유머 섞인 대화로 풀어낸다.
책끝에는 인용문의 원문과 출처, 도판 목록, 참고문헌을 수록해 독자들이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에는 앞서 언급된 역사적 인물들 외에도 윤두서의 아버지 윤이석을 비롯한 다양한 해남윤씨 가문 사람들이 등장하거나 언급된다.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윤두서를 중심으로 한 해남윤씨 가계도를 실었다. 또한 윤두서의 일대기를 연보로 정리하여 시간순으로도 그의 생애를 훑어볼 수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30106863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9월 01일 |
쪽수 | 192쪽 |
크기 |
151 * 300
* 14
mm
/ 424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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