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지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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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매물로 나온 집에 몰래 들어가 거주인의 삶을 짧게 살아내고 나오는 부동산중개소 직원 민. 입대를 앞두고 남의 신분증을 위장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용불량자 수.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쏟지만 머지않아 일자리를 잃게 될 연주. 젊은 세 남녀에게 여름은 위태롭고 아프기만 하다. 약혼자와의 결별과 그와 연관된 한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타인의 명의까지 도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 결국 다 이 여름이 벌어진 일들이다. 그들에게 세계는 거듭 폐허일 뿐이다.
여기 또 곧 폐허가 될 그들의 피난처가 있다. 폐업하고 급매로 내놓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가구점. 성스러움에 가까운 목수의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민과 수는 고단한 삶에 지칠 때면 그곳을 찾는다. 곧 철거될 예정이지만 연주에게도 무지개와 풍선이 그려진 옥상 놀이공원이 있다. 각자 겨우 겨우인 삶 속에서, 추억도 사치가 되는 메마른 시간 속에서 타인의 삶에, 그 고통에 손을 내밀어 보인다. 곧 폐점될 가구점에서 살이 부러진 비닐우산을 나눠 쓰고, 곧 철거될 옥상 놀이공원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나눠 마신다.
작가정보
목차
- 6월
7월
8월
여름의 끝
작가의 말
책 속으로
가구점의 잔잔한 어둠, 그 어둠 속에 느슨히 스며 있는 깊은 정적, 그리고 그 앞에 앉은 사람을 성실하게 복원하지 못하는 흐릿한 거울의 불명료함, 민이 좋아하는 건 그런 것들이었다. 흐릿한 거울 속에서 흐릿한 자신이 흐릿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 흐릿한 생애가 상상됐다. 가령 일정 기간 살다가 미련 없이 죽고 그 죽음에서 빠져나온 뒤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다시 태어나는, 그러니까 일생이란 개념으로는 규정될 수 없는 태어남과 죽음의 끊임없는 반복. 그런 식의 삶은 기차 같은 거라고 민은 생각했다. 수많은 칸들이 연결된 기차처럼 각기 다른 생애들이 길게 이어져 전체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어제의 눈물을 기억하지 않고 내일의 포부 따위 갖지 않는, 그저 그 순간만을 살다가 죽는 것이 가능하다면 응급실의 노인을 떠올리며 미리 슬픔에 잠식될 필요도 없을 터였다.
―본문 9쪽
세계의 농도가 묽어지는 게 느껴졌다. 묽어지면서 흐릿해지는 세계, 낯설지는 않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생애가 지나가는 곳, 죽는 건 또 다른 생애를 위한 준비에 불과하므로 불안할 것도 아플 것도 없는 세계, 생애와 생애는 기차 칸처럼 연결되어 있으니 손에 쥐고 있는 표를 잃어버린대도 상관없는 곳, 그런 세계를 지나가고 있는 거라고 민은 생각했다.
―본문 116쪽
몽롱했던 어둠, 흐릿한 거울, 톱밥 냄새와 차렵이불의 감촉은 콘크리트 먼지에 묻힐 것이고 성스러움에 가까웠던 목수의 노동은 처음부터 없었던 듯 허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진만 가능했던 이 세계의 여분 같은 공간, 그 공간이 아니라면 살아 있는 게 의심될 때도 찾아갈 곳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민은 생각했다.
―본문 179쪽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일 터였다. 이제 여름은 설산이나 사막보다 더 먼 곳처럼 느껴졌다. 언제였던가. 밀폐된 방에서 노인의 모습으로 죽어가는 꿈을 꾸었던 가구점에서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가엾다고, 그때 수는 생각했었다. 타인의 애도나 눈물 없이 죽어가는, 혹은 이미 죽어버린 노인이 아니라 그 노인의 세계가 담긴 오르골을 품에 안고 있던 여자아이가 가엾었다. 그렇게 죽음을 안고 다닌다면 살아 있는 매 순간이 불안과 고독으로 요동칠 터였다. 또다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아이, 수는 생각했다.
―본문 194쪽
출판사 서평
“세계는 거듭 폐허이며, 그들에게는 작은 피난처가 필요하다!”
고독과 몰락의 청춘을 살아가는 세 남녀,
곧 폐허가 될 피난처에서 보내는 뜨겁고 아픈 여름의 시간…
저 찬연한 자본의 진열장 너머에는 우리를 위한 것이 없다.
우리를 기다리는 건, 오로지 철거와 파장이 진행 중인 폐허뿐이다.
흔적 없이 사라질 폐허에서 조해진만큼 예민하게 빛과 온기를 탐지해내는 작가도 없다.
―권여선(소설가)
소외되고 버려지고 혼자 남은 타인들의 삶을 깊이 있는 문장으로 담아내온 조해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여름을 지나가다』가 출간됐다. 조해진 작가는 200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하여 2013년 신동엽문학상과 2014년 젊은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했고, 섬세하고 정교한 문장으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해나가며 유망한 젊은 작가로서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네 번째 장편소설인 『여름을 지나가다』는 2014년 한 해 동안 계간 《문예중앙》에 연재되었던 소설로서, 내일의 희망이나 포부를 갖지 못하는 젊은 세 남녀의 폐허 같은 삶을, 곧 폐허가 될 피난처에서 보내는 그들의 뜨겁고 아픈 여름의 시간을 치밀하고 단단한 서사와 특유의 정밀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권여선 작가는 “이 소설을 읽고 나는 내 어깨 위에 온전치 못한 천사가 기우뚱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당신에게도 그 불구의 천사가 찾아온다면, 그리하여 그 가엾은 천사의 호우로 꺾이려던 당신의 무릎이 곧추서고 비틀거리던 걸음이 제대로 놓인다면, 부디 기억하라. 그것은 조해진이 지난여름을 아프게 통과한 당신에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추천했다.
각자 겨우겨우인 삶 속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여기 젊은 세 남녀가 있다. 매물로 나온 집에 몰래 들어가 거주인의 삶을 짧게 살아내고 나오는 부동산중개소 직원 민. 입대를 앞두고 남의 신분증을 위장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용불량자 수.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쏟지만 머지않아 일자리를 잃게 될 연주가 그들이다. 그들은 “어제의 눈물을 기억하지 않고, 내일의 포부 따위는 갖지 않는” 잠시 머물다 가는 기차 칸과 같은 세계에서 흐릿한 존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정 기간 살다가 미련 없이 죽고 그 죽음에서 빠져 나온 뒤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다시 태어나는, 그러니까 일생이란 개념으로는 규정될 수 없는 태어남과 죽음의 끊임없는 반복. 그런 식의 삶은 기차 같은 거라고 민은 생각했다. 수많은 칸들이 연결된 기차처럼 각기 다른 생애들이 길게 이어져 전체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어제의 눈물을 기억하지 않고 내일의 포부 따위 갖지 않는, 그저 그 순간만을 살다가 죽는 것이 가능하다면…. (본문 중에서)
여기 또 곧 폐허가 될 그들의 피난처가 있다. 폐업하고 급매로 내놓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가구점. 성스러움에 가까운 목수의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민과 수는 고단한 삶에 지칠 때면 그곳을 찾는다. 곧 철거될 예정이지만 연주에게도 무지개와 풍선이 그려진 옥상 놀이공원이 있다. 기차 칸을 통과하는 승객처럼 단편적인 삶, 끊어질 철로를 달리는 기관사처럼 위험한 삶 속에서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작은 피난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목수가 만든 침대에 누워 한 시간만이라도 자고 일어난다면 그 모든 일들이 이미 종결된 타인의 삶인 듯 멀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본문 중에서)
이 젊은 세 남녀에게 ‘여름’은 위태롭고 아프기만 하다. (민에겐) 약혼자 종우와의 결별과 그와 연관된 한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은희 할머니의 죽음까지. (수에겐)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타인의 명의까지 도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 결국 다 이 여름이 벌어진 일들이다. 그들에게 세계는 거듭 폐허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각자 겨우겨우인 삶 속에서, 추억도 사치가 되는 메마른 시간 속에서 타인의 삶에, 그 고통에 손을 내밀어 보인다. 곧 폐점될 가구점에서 살이 부러진 비닐우산을 나눠 쓰고, 곧 철거될 옥상 놀이공원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나눠 마신다.
등 뒤에서 그가 탁한 목소리로 또 그 질문을 해왔다. 대답을 준비해놓고 기다려왔는데도 민은 말없이 발끝만 내려다봤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곳이 가구점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은 진심이 아니었다. 어쩌면 진심이란 단순한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것 같아. 민은 속으로 말했다. 사는 게 진짜 같고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아. 너를 돌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본문 중에서)
기본정보
ISBN | 9788927806738 |
---|---|
발행(출시)일자 | 2015년 08월 31일 |
쪽수 | 212쪽 |
크기 |
133 * 192
* 18
mm
/ 326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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