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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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움켜쥔 사랑을 잃고 자주 울컥하더라도
사람으로 온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약속은 사랑이다”
소년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사랑과 상실의 에세이는 때로는 한 편의 시처럼, 때로는 소설처럼 읽힌다. 그 리듬 속에서 시인은 슬픔이 무엇인지 섣불리 정의 내리거나 조언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삶의 찰나에서 느낀 진실들을 자기 안의 심해 속에서 끌어올려 우리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넬 뿐. 우리는 그의 글을 각자의 삶에 비추며 자신의 사랑과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과 사랑을 향한 온기 가득한 정현우의 산문집은 우리가 슬픔 속에서도 마침내 사랑으로 설 수 있도록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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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1부 ㆍ 유년의 서 :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기대어
빛의 다락 ㆍ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ㆍ 엄마의 일기 1 ㆍ 기쁨의 질감 ㆍ 겨울잠 ㆍ 문이 없는 것들을 위하여 ㆍ 우리의 영사기가 꺼지기 전에 ㆍ 정미수족관 ㆍ 증명의 시간 ㆍ 엄마 ㆍ 포도나무 아래서 ㆍ 수채화 ㆍ 꿈꾸는 것은 항상 망가진 장난감 같아서 ㆍ 사랑의 뒷면 ㆍ 소년의 투정 ㆍ 엄마의 마지막 나이 ㆍ 순리 ㆍ 사랑하는 일은 모두 사랑할 수 없다 ㆍ 그대는 꽃으로 지는 시간이 아니니 ㆍ 미움을 견디는 마음 1 ㆍ 예 의 ㆍ 콩잎이 우거지는 밤 ㆍ 투명 물감 ㆍ 늦은 답장 ㆍ 사랑과 슬픔의 유통 기한 ㆍ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 들에 기대어
2부 ㆍ 사랑의 젠가 : 나의 사랑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한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들 ㆍ 엇갈린 고백 ㆍ 그냥 ㆍ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한다 ㆍ 천국이 있다는 거짓말을 믿기로 해 ㆍ 사랑의 기분 ㆍ 엄마의 일기 2 ㆍ 사랑은 마른 건초 침대에 누워 ㆍ 포옹 ㆍ 그 겨울의 길 ㆍ 버찌가 마르는 계절 ㆍ 광합성 ㆍ 트루게네프의 언덕 ㆍ 묘묘 ㆍ 사랑의 거리 ㆍ 맹꽁이 의 밭 ㆍ 가을에 ㆍ 작은 것들에게서 배우는 비밀 ㆍ 4B 연필 ㆍ 동주의 눈 ㆍ 신이 내게 일러준 것 ㆍ 그 겨울, 저녁에는 ㆍ 미움을 견디는 마음 2 ㆍ 스물 ㆍ 고양이 잡화점 ㆍ 엄마의 일기 3 ㆍ 엄마의 연애편지 ㆍ 꿈 갈피 ㆍ 우리가 눈을 감는 이유 ㆍ 그 겨울의 첫눈 ㆍ 너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겠지만 ㆍ 사랑의 젠가 ㆍ 그럼에도 우리를 찾아와 울게 하는 것들
3부 ㆍ 성실한 슬픔 :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울어야 아는 일
성실한 슬픔 ㆍ 시간의 태엽 ㆍ 겨울 귀 ㆍ 가을 끝에서 나는 늘 ㆍ 꿈 ㆍ 버려진 마음 ㆍ 사랑이 미움에 닿을 때 ㆍ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던 밤 ㆍ 양파와 빛의 소묘 ㆍ 시가 나의 안부를 물을 때 ㆍ 슬픔은 비 내리는 동 사 ㆍ 돌의 시간 ㆍ 금지된 약속 ㆍ 애도의 숨 ㆍ 독감 ㆍ 열아홉 ㆍ 나의 서른 ㆍ 오후, 새점을 치다 ㆍ 신이 사랑 하지 않는 사람들 ㆍ 귀의 미로 ㆍ 여름 구름 사이로 ㆍ 두 가지의 마음 ㆍ 사랑의 발견 ㆍ 살아 숨 쉰다는 것 은 ㆍ 컬러풀
4부 ◆ 남은 꿈 : 우리는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 ㆍ 완벽한 과거형 ㆍ 유실된 사랑과 남은 꿈 ㆍ 도토리를 줍는 숲 ㆍ 엄마의 일기 4 ㆍ 두 눈이 둥근 이유 ㆍ 마음의 비밀 ㆍ 끈 ㆍ 엄마의 일기 5 ㆍ 내게 슬픔을 주세요 ㆍ 시간의 동공 ㆍ 빛의 구 두를 신고 ㆍ 따라갈 수 없는 시간 ㆍ 긴 숨 ㆍ 슬픈 맹세 ㆍ 우울과 구원 ㆍ 말줄임표 ㆍ 유서 ㆍ 나의 수호령 ㆍ 당신의 심장 위에 장미꽃을 올려두고 ㆍ 슬픔의 특권 ㆍ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추천사
-
여기 천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사는 아이에게 귀를 주었어요. 귀를 받은 아이는 입이 없는 존재에게 입을 그려주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합니다. 다락방에서, 포도나무 숲에서, 정미수족관에서 아이는 상상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계에 분명 존재하는 아름다워서 슬픈 것들을.
천사의 귀를 가진 아이에게 겨울처럼 차고 반짝이는 노래가 들립니다. 때로 노래는 흐르지 않고 깨집니다. 금이 간 거울 같은 노래를 아이는 오래 바라봅니다. 그 슬픔 속에 빛이 있으니까요. 버려진 것을 사랑하여 쓰레기통에서 옷과 연필과 시를 건져내던 아이는, 어른들은 이미 잊은 ‘징그럽고 아름다운’ 질문을 흙바닥에 또박또박 적어봅니다. 어째서 사랑과 슬픔은 같이 오는지, 삶은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지, 우리는 왜 끝없이 버려지면서도 그 자리로 돌아와 다시 사랑하게 되는지…….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이 너무 슬퍼 ‘사람은 심어도 다시 필 수 없을까’ 묻던 아이는 천사의 귀를 가진 시인이 됩니다.
시인은 어린 시절 자신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만 같아요. 사람을 심으면 천사가 피어날 거야. 정현우 시인의 첫 산문집은 그의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오누이 같습니다. 당신은 천사를 만난 적 있나요? 그의 글 속에서 나는 천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책 속으로
아픈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엄마는 자주 집을 비웠고, 나는 끼니를 자주 걸렀다.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오지 않는 날에는 다락방에 들어가 생라면을 부숴 먹었다. 창밖 고드름이 다락을 가릴 정도로 크게 자라면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눈의 여왕』을 읽고 또 읽었다. 동쪽으로 나 있는 창밖에서 눈의 여왕이 얼음 마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 와줄 것만 같았다. 거대한 겨울 앞에서 혼자 슬퍼지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가난과 눈 속에 남겨진 겨울의 벼랑 끝에서 나는 자주 웅크려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자주 울컥하게 되는 것, 자주 뭉클해지는 것임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았다. - 〈빛의 다락방〉, 15~16쪽
집에 도착하자마자 백과사전에서 병아리에 관해 찾기 시작했다. “병아리는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해야 합니다”라는 말에 방바닥을 데우려고 보일러의 온도를 올렸다. … 병아리는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었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웅덩이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 물속에서 수면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보는 것, 그리고 함께 휘청해보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고요히 그 존재를 다치지 않게 안아볼 수 있었을까. 그럼 사랑을 주는 기분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은 알게 되는 것뿐. 사랑은 예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18~19쪽
엄마는 모든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뭐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보기 전까지는. 엄마의 일기장을 옮긴다. … 금천 재근중학교에 입학했다. 육 개월 동안 다녔는데 엄마가 공납금 삼천오백 원을 주지 않았다. 나는 쓰레기통에서 다 찢어진 교복을 주워 입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공납금을 가져오라고 머리를 때렸다. 다음 날 엄마에게 졸랐더니 주워온 교복과 책가방을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나는 그걸 다시 주워 마당에 펼쳐놓았다. 소나기가 내렸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아침, 학교 가려고 기찻길을 지나는데 기차 소리가 너무 커서 내 울음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의 일기 1〉, 20~21쪽
우리는 씻지도 않은 참외를 한 입씩 깨물면서 사랑과 증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새엄마에게 맞을 때마다 더 크게 울어버리면 덜 맞을 수 있다고 했고, 정미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아빠가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누나와 엄마, 아버지랑 같이 외식을 나가 돈가스를 썰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나는 평화로운 사랑이 궁금해졌다. 따끈한 크림 스프와 토스트가 있는 그런 화목한 저녁 풍경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것이지. 나의 산타가 가난한 엄마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참외들을 이리저리 마구 던졌다. 작은 씨앗들이 바닥에 왈칵하고 여름의 투명한 내장처럼 쏟아졌다. 참외는 힘없이 샛노랗게 터져버렸다. - 〈사랑의 뒷면〉, 44쪽
엄마는 어느 것 하나 지나치는 것이 없는 사람이기에 콩잎들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콩잎으로 장을 해 먹겠다며, 짜증이 잔뜩 난 내게 콩잎들을 따게 시켰다. 난 가끔 콩잎에 딸려오는 송충이에 화들짝 놀라면서 유에프오라도 나타나서 내게 초능력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지독한 짠순이 엄마를 고급 주택에 사는 아줌마들처럼 고쳐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 식은 밥에 콩잎 장아찌를 손으로 찢어서 먹는 엄마의 굽은 허리를 보았다. 한 움큼씩 푸른 콩잎처럼 부풀던 엄마의 열여덟 살이 떠올랐다. 엄마도 한때는 흰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이고 싶었을 텐데. 솜사탕처럼 떠 있는 구름들을 떼어 먹기도 하면서. 콩잎들 사이에 핀 유채꽃들처럼 하늘거리고 싶었을 텐데. - 〈콩잎이 우거지는 밤〉, 63~64쪽
나는 외로워지고 싶지 않아.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또 잊어. 다시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해. 추억을 오래 견디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법칙이 있지. 바보 같다고 해도 나는 그 아픔들을 견뎌보고 싶어. 그건 울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마음일 거야. 잊지 말아야지, 모두 다. -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한다〉, 79쪽
네가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한 시절 그때의 너는 내게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서로의 순간에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은 끝이 나고야 말겠지. … 조금만 두드려도 깨져버리는 기억은 그런 거야. 그런 순간에도 사랑은 있다가도 없는 거니까. 네가 나의 마지막이 아니라도 쉽게 울고 웃을 수 있는 거야. 사랑은 지나치면 그만이니까. 또다시 올 거니까,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물어도, 너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겠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너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때지. 내가 없는 곳에, 그곳의 나는 무심히 빛나고 있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없는 그대가 더 많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한 시절 나의 가장 찬란한 슬픔, 잘 지내.- 〈너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겠지만〉, 130~131쪽
슬픔을 잊는 방식이 더딘 사람도 있고, 성실하게 슬픔을 비워내는 사람도 있다. 멀리서 걸어오는 너의 얼굴이 그립지 않고 첨벙이는 노래들이 이제 들리지 않을 때, 이토록 사소한 하나에 반응하고 더 이상 그 대상을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잊는 것 또한 아주 평범해진다. 나도 모르게 닳아버린 칫솔처럼. 잊는다는 건 아주 평범하고 사소하게 휘어진 사랑. 사랑은 습관이 될 수 있으나 이별은 습관이 될 수 없으니, 그래서 잊는다는 건 성실하게 앓는 것. 우리는 묵묵히 흐른다. 아주 평범하고 성실히. - 〈성실한 슬픔〉, 137쪽
우리는 끝없이 애도해야 한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 슬픔과 마주 보며 우리가 인간임을 알기 위해서. 그 사람의 빈집까지 사랑하기 위해서. 죽음 또한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른 일부임을 인정하기 위해서. 그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초라하고 위대한 초능력일지도. 나의 모든 것들을 잃는 순간이 오면 나는 알게 되겠지.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을 이별하고 있는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울어야 아는 일이라고.- 〈애도의 숨〉, 164~165쪽
아침은 아무렇지 않게 시작된다. 국을 데워 먹고, 유리잔엔 오늘의 날씨. 문득, 거리를 걷다가 그 사람에게 미안했다. 나의 마음이 무뎌져 버린 것에 대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음에 대해.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 나의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완벽히 사랑을 과거형으로 쓸 수 있는 순간에 대해. 일상적이고 아주 사소한 순간 안에서, 모든 것은 한순간 시작된다. 걷다가 지붕 위의 풍향계를 바라본다. 잊히는 것들은 또 다른 시간에 밀려 흘러가고, 그 순간에 매달려 있는 우리들.-〈완벽한 과거형〉, 191쪽
“꽉 잡아, 넘어지면 큰일 나니까.” 눈구름 속에 구멍이 났는지 함박눈이 쏟아졌다. 네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을 뒤에 태우고 시장으로 간다. 돌아오는 도중에 눈에 미끄러져 셋이 한꺼번에 엎어져 버렸다. 양쪽에 실어둔 과일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졌다. 딸이 벌떡 일어나 엎어진 나의 손을 잡는다. 아들은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를 쓴다. 넘어지는 순간 아이들이 다칠까 봐 내 몸을 바닥 쪽으로 던지는 바람에 허벅지 한쪽이 찢어지고 멍이 들었다. 울고 싶었지만 아이들 앞이어서 울음을 삼켰다. 엄마에게 피가 난다며 아들이 울었다. 나는 아이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뚝, 세상에 울 일이 훨씬 더 많지. 이건 하나도 아픈 일이 아니야.”
-〈엄마의 일기 5〉, 207~208쪽
밤마다,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한 사람에게 날아가 그 사람의 슬픔을 생각합니다. 슬픔이 너만의 것이 아니라고, 너는 아직 숨 쉬고 있다고, 혼자 엎드려 있지 말라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모두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고백하건대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제가 사람으로 온 이유를 하나 알았습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약속이라는 것을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은 늘 약속 없이 떠난다는 것을요. 건너온 슬픔과 사랑들은 약속이 없다는 것을요. … 나는 속삭여봅니다. 사람으로 온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약속이 감히 사랑이었노라고. 그러니 당신은 내 곁에 부디 살아 있어달라고. -〈나가며〉, 236~237쪽
출판사 서평
“떠난 사람들이 찾아와 잠긴 문을 두드리는 날에 나의 문장은 쓰였다. 우리의 슬픔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슬픔은 지금을 쓰고 사랑은 과거를 쓴다.”
_들어가며
“인간은 슬퍼지기 위해 만들어질까요”
한 인간이 사랑과 슬픔을 이해하기까지
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생(生)
한국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시인 정현우의 에세이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첫 번째 산문집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에서 그는 지금껏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던 모든 일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소년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1부 〈유년의 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기대어〉에는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슬픔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슬픔은 왜 생겨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그는 홀로 다락방에 웅크렸던 나날들, 배변 주머니를 차고 투병하는 아버지, 그 곁에서 모든 슬픔을 묵묵히 견뎌내던 엄마를 떠올린다. 문득 발견한 엄마의 일기장에는 푸른 콩잎처럼 부풀었을 소녀 시절 꿈과 생의 힘듦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며 소년은 인생과 슬픔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가는 듯하다. 소년은 휠체어를 탄 친구 정미, 길고양이 묘묘와 온기를 나누며 슬픔의 자리를 메워나간다.
2부 〈사랑의 젠가: 나의 사랑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한다〉에 이르러 소년은 비로소 모든 사랑엔 마지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나보다 오래 살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슬픔 앞에 물러서지 않으며 소년은 어른이, 인간이 되어간다.
“오래 견디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법칙이 있지. 바보 같다고 해도 나는 그 아픔들을 견뎌보고 싶어. 그건 울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마음일 거야. 잊지 말아야지, 모두 다.” - 본문 중에서
“생의 기쁨은 발목에 차오르는 빗물을 그대로 맞는 것”
아픔을 견디는 마음과 슬픔의 특권에 대하여
오래도록 마음을 나눈 것들과 영영 이별하는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시인은 3부 〈성실한 슬픔: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울어야 아는 일〉에서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소년의 시선으로, 시인의 감성으로 찾아 나선다. 그는 말한다. “생의 기쁨은 발목에 차오르는 빗물을 그대로 맞는 것”이라고. 결국 “살아 있다는 건 울어야 아는 일”이니, 아주 평범하고 성실하게 앓으며 슬픔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겠다고.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은 별게 없는지도 모른다. 월급에 매달려 사는 인생, 이제 살 수 없는 집값을 가늠하며 내쉬는 한숨, 떠나버린 연인에게 매달려 재회를 꿈꾸는 시간들이 뭐 그리 특별하겠는가. 그럼에도 소년은 4부 〈남은 꿈: 우리는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 같은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슬픔의 물속에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기적이라는 것. 상실의 시간을 헤매던 소년은 차오르는 슬픔을 그대로 맞으며, 슬픔을 아는 인간으로서의 특권을 찾아낸다.
인생은 아주 초라하면서 아주 특별한 꿈을 사는 것. 다시라는 단어가 없는 시간 속에서 매일을 시작하는 처음을 가진 그대는 잊지 말기를. 우리는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이라는 걸. - 본문 중에서
“지금부터 우리 사랑할 시간이야”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몰랐던 당신의
소중한 기억을 되살려내는 따스한 에세이
누구나 움켜쥔 사랑을 잃고 비틀거리는 어두운 생의 구간이 있다. 또한 시인에 따르면, 사람의 인생은 결국 영사기가 꺼지면 막을 내리고 마는 흑백 영화일 테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어두운 절망 대신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슬픔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당신은 아직 숨 쉬고 있으니 혼자 엎드려 있지 말라고. 여전히 숨이 남은 날에 해야 할 일은 그저 곁의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우리 사랑할 시간이야”라고 말을 건네는 일뿐이라고. 우리의 영사기가 꺼져도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한 기억들이 여전히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상이라는 거대한 쳇바퀴를 굴리며 우리는 매 순간 사랑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저 사랑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어떤 기억들이 당신을 살아 있게 만드는가. 정현우의 글은 그렇게 우리의 사랑을 되살려낸다.
나는 속삭여봅니다. 사람으로 온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약속이 감히 사랑이었노라고. 그러니 당신은 내 곁에 부디 살아 있어달라고. - 나가며
기본정보
ISBN | 9788901254296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25일 |
쪽수 | 240쪽 |
크기 |
134 * 196
* 21
mm
/ 322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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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분량 만큼이나 빈 공간이 많게 느껴져요.
아마 시인의 에세이란 생각없이 그냥 읽었다면
좋게 느껴졌을수도 있어요.
아무튼 젊은작가상 수상집이나 페소아를 읽는게
더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