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또는 유년의 기억
도서+사은품 또는 도서+사은품+교보Only(교보굿즈)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로그아웃 : '서울시 종로구 종로1' 주소 기준
이달의 꽃과 함께 책을 받아보세요!
1권 구매 시 결제 단계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알림 신청하시면 원하시는 정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알립니다.
- 거래처 품절 상태로 재고수량이 충분치 않아 조기 품절될 수 있으며, 상품 상태가 깨끗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이 책의 총서 (112)
작가정보

저자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비평가, 영화제작자.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나, 노동자 계급 거주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양친은 1920년대 폴란드에서 파리로 이주한 유대인이었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1940년 전사했고, 어머니는 1943년 아우슈비츠에 있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페렉의 생 전체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부모를 잃은 후에는 고모에게 입양되어 자랐다. 1954년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그만두었고, 《누벨 르뷔 프랑세즈》, 《파르티장》 등의 잡지에 기사와 문학비평을 기고했다. 군 복무 후 파리에 있는 국립과학연구소 신경생리학 자료 정리자로 일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1965년 프랑스의 소비사회를 묘사한 데뷔작 『사물들』로 르노도상을 탔다. 페렉은 1967년 실험 문학 그룹 울리포(OuLiPo)에 가입했다. 1960년에 결성된 울리포의 구성원은 주로 작가, 수학자, 화가 등이었으며, 이들의 관심사는 문학의 “형식적 제약”이었다. 형식적 제약이란, 일정한 제약이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여 풍요로운 작품을 낳게 한다는 울리포의 중심 개념이다. 페렉은 울리포의 실험 정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 작품마다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중 알파벳 e가 없는 단어로만 쓴 작품 『실종』(1969)과 모음 e만 사용해 완성한 작품 『돌아온 사람들』(1972)이 대표적이다. 1978년에는『인생 사용법』으로 메디치상을 탔다. 1982년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페렉은 길지 않은 생 동안 『마당 구석의 어떤 크롬 도금 자전거를 말하는 거니?』, 『공간의 종류』, 『W 또는 유년의 기억』, 『알파벳』, 『나는 기억한다』와 사후에 출간된 『생각하기/분류하기』, 『53일』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자서전과 허구적인 모험 이야기가 정교하게 얽혀 있다. 자서전 부분에서 화자는 주로 문자, 숫자, 몸에 남겨진 상처로 과거를 되새기며, 모험소설에서는 유대인 학살의 현장을 비유적으로 묘사한다. 유기적인 듯 단절적인 두 이야기는, 전쟁 때문에 부모를 잃은 작가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전기적 요소와 독특한 형식 때문에 페렉 소설 중에서도 가장 자주 연구되었다.
역자 이재룡은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195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프랑스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꿀벌의 언어』가 있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장의사 강그리옹』, 『해를 본 사람들』, 『오니샤』, 『포옹』, 『외로운 남자』 등을 번역했다.
목차
- W 또는 유년의 기억 · 7
작품해설 / 진실 또는 허구 · 188
출판사 서평
프랑스 문단을 뒤흔든 문학 실험의 주인공, 조르주 페렉의 자전소설 『W 또는 유년의 기억』
나는 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의 자국이 바로 글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그들 죽음의 기억이며 내 삶의 확인이다. ― 본문 중에서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우리 시대의 악몽(전쟁과 학살)을 냉정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러나 에두르지 않고 분명하게 환기한다. ― 아마존 독자 서평 중에서
어떤 기억은 너무 지독해서 떠올리는 것조차 어렵다. 또, 어떤 이야기는 말해져야만 한다. 나치가 일으킨 전쟁으로 부모와 어린 시절을 잃은 작가는, 이 책에서 기억의 두 가지 면면을 때로는 자전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 아마존 독자 서평 중에서
『사물들』, 『인생 사용법』 등으로 유명한 조르주 페렉의 자전소설 『W 또는 유년의 기억』(1975)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배치해, 나치가 저지른 학살과 유년 시절에 대한 불분명한 기억을 되새겨 나간다. 이 작품은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함께 파시즘의 군중심리를 훌륭하게 서술한 문학작품으로 언급되어 왔다.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의 재구성은 가능한가?
자서전 형식에 대한 문학적 소송, 『W 또는 유년의 기억』
소설에는 두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나는 모험소설이다. 주인공 가스파르 뱅클레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웃 가족에게 입양되어 반은 아들처럼 반은 머슴처럼 자란다. 어른이 된 그는 군대 생활 중 작전지로 끌려갔다가 탈영하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숨어 지내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정체를 아는 누군가가 편지를 보낸다. 그는 바다에서 W섬 근처에서 실종된 소년을 찾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실종된 소년의 이름은 가스파르 뱅클레, 그가 빌린 이름의 당사자다. 이름을 빌린 가스파르 뱅클레는 소년을 찾으러 마지못해 W섬으로 떠난다.
다른 하나는 작가의 자전소설이다. 자서전은 유년의 기억이 없다는 말로 시작한다. “나에겐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는 어린 시절 일어난 전쟁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자주 옮겨 다녔지만 경로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또, 어릴 때 자신은 늘 어딘가 아팠다고 기억하지만 정말 그랬던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쩌다 머릿속에 떠오른 일화들은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라 자서전을 쓰기에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자기 생을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기억을 창조해 쓸 수밖에 없다. 그에게 자서전 쓰기는 잃어버린 유년을 위로하는 작업이다. 물론, 자서전을 사실 그 자체의 고백이라고 간주한다면 유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작가는 자서전을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억이란 기억하는 자를 쉽게 기만하기에, 진실 자체를 재구성하는 자서전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하다. 페렉의 글은 통상적인 자서전에 대한 의문, 기억에 대한 의심, 망각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는다.
교차하는 텍스트, 간섭하는 이야기.
각각의 서사는 저마다의 흐름을 타고 흥미롭게 전개되지만, 두 이야기는 기억이라는 코드를 사이에 두고 평행선을 이룬다. 별다른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한 작품으로 묶여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소설은 당시 프랑스 문단에 화제로 떠올랐다. 작가 스스로도 “이 책에는 두 개의 텍스트가 단순하게 교차하며 두 텍스트 사이의 어떤 공통점도 없다.”라고 말해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이야기 같은 두 글은 사실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어서, 따로 존재해서는 그 의미가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하나의 이야기는 멀리서 다른 이야기가 비추는 조명을 받아야만 그 의미가 희미하게 밝혀질 뿐 아니라, 이 작품 전체는 두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두 개의 텍스트는 어떤 공통점도 없지만 풀 수 없을 만큼 뒤엉켜 있다.” 이야기는 서로 간섭하고 끼어들어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때도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곧 작품 이해의 중요한 단서이다. 단절은 전쟁으로 파괴된 페렉의 유년 시절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강제수용소와 올림픽 정신의 유사성?
역사의 악몽, 나치의 강제수용소 기억하기.
전쟁은 페렉의 삶 전체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태어났다. 이 해의 올림픽은 유대인의 참가를 금지하고 유색인종의 승리를 부인했던, 파시즘으로 얼룩졌다. 그리고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는 전쟁터에서 아버지를, 강제수용소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페렉의 머릿속에 올림픽, 전쟁, 수용소는 한 묶음으로 뭉쳐 다녔다. 이 생각 뭉치는 W섬에 대한 발상으로 이어졌다.
가스파르 뱅클레가 찾아간 W섬은 올림픽의 이상이 지배하는 곳이며, 이야기 전체가 파시즘의 알레고리이다. 이곳에서 패자는 늘 극심한 괴롭힘과 고통에 시달리고, 승자는 일시적으로 추앙받는다. W섬에서는 정당한 승패보다 운이 중요하며,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아를 버리고 내내 싸워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다. “화들짝 잠에서 깨면 사라질 것도 아니고, 머리에서 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런 것만 존재할 뿐 다른 것은 없고, 다른 어떤 것이 존재하리라고 믿거나 다른 것이 있다고 믿는 척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여기에서는 스포츠 정신과 (일회적인) 승자만 영광을 누리고, 선수 자체는 경멸받으며, 패자는 때때로 처형당한다. 의지를 빼앗긴 삶, 독자는 이 폭력적 삶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페렉이 ‘홀로코스트’를 해석하는 방식, 올림픽 이상이 지배하는 W섬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뼈 무더기, 잿빛 얼굴, 구부러진 등, 공포에 사로잡힌 눈동자, 곪아 터진 상처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았는지. 어떻게 이렇게 무섭고 불쾌한 ‘경기’가 벌어질 수 있었는지, 심지어 수백만, 수천만 사람들의 응원까지 받으면서. 그리고 이 소름끼치는 경기장. 이는 비단 W섬에만 해당되는 비유는 아닐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01122991 |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06월 27일 | ||
쪽수 | 200쪽 | ||
크기 |
133 * 203
* 20
mm
/ 252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펭귄클래식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W, ou, Le souvenir d'enfance/Perec, Georges |
Klover 리뷰 (7)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사용자 총점
50%의 구매자가
고마워요 라고 응답했어요
고마워요
최고예요
공감돼요
재밌어요
힐링돼요
문장수집 (1)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
반품/교환방법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
반품/교환 불가 사유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은 발견
이 분야의 베스트
이 분야의 신간
-
루공가의 치부10% 16,200 원
-
미니 알퐁스 도데 단편선집10% 6,300 원
-
디 에센셜 키워드: 정의의 사람들10% 17,100 원
-
페스트(초판본)(1947년 오리지널 표지디자인)10% 3,590 원
-
그녀를 지키다10% 19,800 원
그대들에게 기억(記憶)이란 무엇일까 ? 한자어 그대로 풀어보자면 생각한 것을 기록함. 즉, 지난 일이나 그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외워둠 정도로 이해 하고 정의 할 수 있겠는데 이 기억의 사전적 의미를 굳이 보자하면 아래와 같다고 정의하고 있다.
1.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심리>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컴퓨터>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이상 네X버 발췌)
자... 어쨌건 간에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의 정의는 일단 저기의 어디에 반드시 속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가? 저 세가지 정의는 기억에 대해 온전히 말한 것일까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이라는 노래 속에 나오는 저 기억이라는 단어(무형의 사물을 포함한)는 마지막 밤에 대한 기억인지 그 밤에 일어났던 행위(?)인지 -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 아니면 그 작자의 마음인지 나누기가 어렵다. 그때 일어났던 모든 것들의 총합을 기억이라는 것으로 재구성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문제는 그 기억의 총합에 대한 것이 온전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쉽게 오염되고 (되뇌이는 과정속에 윤색되고 일부분은 삭제되며 그랫을꺼야 하는 식으로 실제 일어나지 않았던 부분을 추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정 시간이 꽤 흐른 후의 기억은 사실 온전하게 진실로 생각해서는 (대부분 그렇다는 것이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안될 것이다.
이런 점에선 망각(忘却). 즉, 기억에서 잊혀진 상태는 어찌보면 기억의 또 다른 형태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연한 기회나 잊혀진 것에 대한 연상작용으로 불쑥 - 마치 마르셀 플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마들렌의 한조각 처럼 튀어나오니 말이다.
페렉의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이 기억이란 단어에 대한 가장 불확실한, 유년의 기억과 허구를 병치시켜 현상을 말하고자 한다. 이것은 제목이 암시한 대로 W(순수한 가공속 이야기)와 유년의 기억(작가의 실제적 이야기)를 통해 진실의 재구성을 변주한 듯 보인다. 하지만 작품 해설에서 지적하였듯 서로 다른 두 텍스트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는 제 3의 글이 빠지면서 너무 무책임하게 독자에게 해독을 요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동감한다. 페렉, 그 자체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 혹은, 그 사람에 대해 꽤나 많은 공부를 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 소설은 기억의 부재를(자기 글에 대한 주석의 나열로 끊임없이 보강하려고 하나...) 극한으로 끌여들여 경계 자체를 오히려 그어 버려 별개의 이야기로 진행하되 형식의 표출에 대한 시도를 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페렉 자신이 스스로 새로운 문학의 실험을 즐겨했다는 점에서 차라리 나는 W에 대한 이야기 보다 그 유년의 기억에 나오는 여러 이미지에 대해 좀 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사실W는 좀 뻔한.. SF에서 선 후배 작가들이 너무 우려먹었던 식상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펭귄 클래식의 첫번째 책이며 오래된 고전 중 제목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읽지는 않을 듯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 이 책이 SF의 시발점이 되었다면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 와 이것을 변주해 내놓은 아이크 레스닉의 [키리냐가], 혹은 조지 오웰의 [1984]등등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체적으로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가 주는(실제 이 셋의 내용은 현실에 와서는 유토피아를 빙자한 디스토피아의 이야기일 뿐이다.) 교훈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별다른 감흥을 가지지 못 할 뻔했지만 작가 자신의 개인적 역사에 얽힌 이야기임을 말미에 가서야 알고 - 아.. 그랬구나.. 히틀러의 시대를 빗대었던 거구나 하는... 처음엔 단순히 전체주의 사고방식에 입각한 것으로만 이해했었다. - 다시 한번 의미를 새겨보게 된다.
'지하 깊숙한 데에 매몰되어 있는 곳에서 그가 잊었다고 믿었던 세계의 지하 유적지를 발견할 때까지 오랫동안 걸어야만 할 것이다. 수많은 금니 무더기, 결혼반지, 안경, 수천수만 벌의 옷 뭉치, 먼지 쌓인 서류철, 질 나쁜 비누들의 재고...'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참상,(일부는 사실로 일부는 과장되었다고 하는데 예를 들자면 사람의 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것은 루머로 밝혀졌으나 아직도 그 사실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페렉은 아마 그 루머가 진실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고 - 글을 썼던 당시에 말이다. - 승전국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도 전설도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밝혀졌으나 아직도 진위에 대한 것들로 무성하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기억들을 - 파편들 뿐이지만 - 잊지 말지어다. 어린시절의 전쟁에 관한 기억과 허구의W에 관한 이야기는 이처럼 얽히고 섥히다가 끝내 만나고야 만다.
이처럼 이분(異分)으로 나눠 썼던 글이 하나의 교차점으로 모이는 서술은 1부의 흥미진진했던 모험소설에서 - 이부분에서 페렉은 어떤 생각이었던지 연재를 중단해 버렸다고 하는데 통속적이고 누구나가 쓸 수있는(?) 스타일의 글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난 봅니다. - 2부의 가스페르 벵클레가 실종(?)되어 어디엔가 있었을 근방 천개의 W섬 어느 곳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장황하고도 상세한 묘사를 통해 유년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에 이르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분명 실종이 아닌 스스로의 W란 나라에 대한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여 독자는 당연하게도 도대체 왜 W란 섬이 어떤 나라였기에 가스페르 벵클레란 열 두살 먹은 녀석이 그곳을 선택했으며 이는 선택이 아닌 난파였는데 기억의 왜곡으로 '선택'하였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었는지 알아먹을 방법이 없으니 페렉의 그 당시 그 글을 쓰게 된 연유를 (역시 작품해설에 나와 있는 집필시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거나 한 것들.- 진찰실 쇼파에 누워 자신의 악몽과 유년기를 회고 하듯 어린 시절과 그 시절의 환상을 글로 옮겼으며, 그의 글은 마치 꿈의 이차가공처럼 전치와 압축, 드러내기와 감추기가 정교하게 작동되어 쓰였을 것이다. P 194 中 ) 연구가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듯 하여 일반 독자로서의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렉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에 관한 글은 몇번이고 쓰다듬어 읽어 줄 가치가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아 나름 만족.
이번에도 역시 나는 과연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계속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몸을 감출 것인가, 아니면 들킬 것인가.
25p
과거의 것, 아마도 현재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있어야만 하는
과거의 것들
26p~27p
기억을 망가뜨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확성을 더해 가는 것,
혹은 전혀 있지도 않은 글자의 의미이다.
내가 내 이름의 첫글자라고 굳이 믿고 싶은 '기멜'이란 알파벳이 있기는 하다.
71p
그러나 나는 내 등을 떠미는 힘, 부당함의 명백한 증거를 '느끼며'
내 위에서 부터 시작해서 내게 떨어지는, 타인에 의해 강요된 불균형의 감각은
내 육체에 너무도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
혹시 이 기억이 사실은 정반대의 기억을 감추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빼앗긴 메달이 강요된 노란별의 기억.
72p
존재하기 위해 받침대가 필요하다는 점
참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피해야 할 것은 아니고 진지하게 생각해봄직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특이한 구조로 서술되어 있다.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가지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1>
굵은 글씨로 쓰여진 부분은
1부에서 가스파르 뱅클레라는 탈영병이 다른 이름으로 숨어지내는데 어떤 남자가 그에게 찾아와 실종된 소년을 찾아달라고 합니다. 그 소년은 탈영병이 이름을 빌린 사람이였죠. 그래서 그는 그 소년을 찾기 위해서 W섬을 탐색해나가기로 합니다.
2부에서는W섬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서술해 갑니다.
.
<2>
가는 글씨로 쓰여진 부분은 저자가 어린 시절 전쟁을 피해 겪은 과거사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거는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고. 결국 자신의 과거를 상상과 짐짓 짐작으로 쓰기 시작합니다.
2부에서는 과거에 대한 흐릿한 기억과 함께 여러 가지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억이란 것은 머릿속에 입력된 과거의 사실들이다. 하지만 시간에 의해서, 그 시간의 흐름에서 우리가 겪어온 일들을 통해서 다른 색깔로 덧입혀 진다. 다시 말하면, 기억 속의 사실이 현재의 나에 상황에 의해서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억이란 절대적 진실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년의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들여다 보면 유년의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우고 싶은 상처의 기억이므로 망각하고 싶어한다고 봐야할 것 같다.
'나'는 기억이 없는 유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허구를 더하여 기억을 재조합한다. 그것은 그가 갖고 싶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기억들인 것이다. 실제의 그날들은 그렇지 않았으나 현재 나의 가공으로 재창조된 기억이 되는 것이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가서 구조를 살펴보면,
허구로 W라는 나라를 서술하고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유년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전기적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전기 속에 서술은 사실이 아닌, 저자의 기억 재조합으로써 허구가 섞여있다. 그리고 허구라고 했지만 W는 실상, 당시 시대적 상황인 세계 2차 대전, 나치의 유대인 탄압 등을 가공된 곳을 통하여 고발하고 있다.
내가 생각한 바로는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억이란(여기서는 유년에 대한 기억)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말하고 허구화된 소설(W라는 곳)이 오히려 사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얻기 위하여 서로 다른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서술한 것 같다.
기억은 사실 적 기억이 아닐 수 있고 허구가 가공된 허구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위해서 이러한 교차적 서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W는 굉장히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비상식적인 곳으로써 굉장히 잔학한 곳이다. 다른 어떤 가치도 없고 오로지 승리, 생존만 있는 치열한 공간이다.
책에서도 언급되듯 이곳은 사실 허구화된 가공의 공간은 아니다. 작가의 상황도 그러했거니와 당시 시대적 배경 등을 통하여 그곳은 나치에 의해 억압당했던 유태인의 필사적인 생사의 현장이다.
나는 매우 잔인하고 비상식적인 그곳의 서술을 읽고 세계 2차 대전 당시의 나치에 의한 유태인들의 삶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W의 이야기를 작자는 다음과 같아 마무리 짓는다.
'지하 깊숙한 데에 매몰되어 있는 곳에서 그가 잊었다고 믿었던 세계의 지하 유적지를 발견할 때까지 오랫동안 걸어야만 할 것이다. 수많은 금니 무더기, 결혼반지, 안경, 수천수만 벌의 옷 뭉치, 먼지 쌓인 서류철, 질 나쁜 비누들의 재고...'
이것이 의미 하는 바가 무엇일까.
잊혀진 시대상을 다시 상기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나는 W를 나치에 의해 구타와 고문, 갖가지 실험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유태인 수용소를 형상화 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은 그 시대의 잔혹성을 잊고 살아왔다. 그러나 어머니를 잃어야만 했던 ‘나’는 기억한다. <지하 깊숙한 데> 라고 칭해진 우리의 기억 속을 걸어가면
‘수많은 금니 무더기, 결혼반지, 안경, 수천 수만 벌의 옷 뭉치, 먼지 쌓인 서류철, 질 나쁜 비누들의 재고...'
이라고 상징 되는 당시 유태인들의 고통의 실상을 재확인 하게 하는 문장이 아닐는지.
나아가 유년의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애써 부인하고 싶었던 그 아픈 기억을 함께 기억하고 공유해 주길 바라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또 한편의 다른 이야기, '나'의 유년의 기억은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다.
‘열두살 적에 내가 W섬의 위치를 불의 나라로 선택한 이유를 잊어버렸다. 피노체트의 파시스트들은 나의 환상에 최종적 공명을 불러 일으키는 짓을 했다. 불의 나라에 있는 몇몇 섬들이 오늘날 강제수용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작가는 앞선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열 세 살 때 나는 역사를 꾸며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윤곽을 그렸다. 칠 년 전 어느 날 저녁, 베네치아에서 나는 갑자기 이 역사가 ‘W’라 불리며, 이것이 역사, 아니 적어도 내 유년의 역사임을 기억해 냈다.
…………….
내가 기억해 핸 것은 두 줄로도 충분했다. 불의 나라라는 조그만 섬에서 오로지 스포츠에만 몰두하는 사회 안에서의 삶 .
W라는 곳은 ‘나’가 이미 유년기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써서 생각했던 곳이다. 후에 자신의 유년기 ‘나’가 겪었던 (사실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듯 싶다. 그래서 유년의 기억이 없다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들을 자신이 이미 가공해 두었던 W라는 곳에 투영시켰다는 고백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이것은 각기 다르게 서술된 두 이야기의 연관성을 만들고 그것들을 봉합시키는 구실을 한다고 생각된다.
그림자들이 요동치는 저 미친 안개, 어떻게 환히 밝힐 수 있을까?_레몽 크노 (p.11)
오랫동안 나는 내 이야기의 흔적을 찾아 헤맸고 지도도 찾아가보고 연감이나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도 잃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기에 나는 가끔 내가 꿈을 꾼 것이라고, 단지 악몽을 잊지 못하는 것을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중략) 그것이 무슨 사건이었으며 내가 무슨 일을 했든 간에 나만이 그 세계의 유일한 증인, 살아 있는 유일한 기록, 그 세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글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 p.14
1. 기억을 망가뜨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확성을 더해 가는 것, 혹은 전혀 있지도 않은 글자의 의미이다. - p.26
조르주 페렉을 이해하기 앞서 그의 프로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아버지는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에 1940년에 전사했고, 그의 어머니는 1943년 아우슈비츠에 있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 W는 '2차 세계대전'을 의미하는 것 이다. 그의 부모가 1920년대 폴란드에서 파리로 이주한 유대인이고 두 사람을 공교롭게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에게 있어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를 짊어지게 만드는 사건이니 그의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혹은 지우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모험소설을 쓰는 작가. 처음에는 구분을 짓듯 읽어나갔지만 어느새 두 이야기는 구분할 수 없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나갔다. 동명이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실제의 나와 '잃어버린 기억 속의 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추측과 해석이 난무한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아닌 해석하기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비밀스러움이 묻어난다.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주장한 것처럼 언어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과 오로지 보호막을 높게 세우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허구적 글쓰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갈등을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쓰인 글 자체, 추억을 쓰겠다는 계획과 같은 글쓰기 계획 자체와 연관이 있다. - p.56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란 거을 말하기 위해 쓰는 건 아니며, 아무런 할 말도 없다는 걸 말하기 위해 쓰지도 않는다. 나는 쓴다. 나는 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함께 살았고, 나는 그들 속에 있었으며, 그들 그림자 속의 그림자, 그들 몸 가까이에 있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지울 수 없는 그들의 흔적을 남겼으며 그 흔적의 자국이 바로 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억은 글쓰기에서 죽는다. 글쓰기는 그들의 죽음의 기억이며 내 삶의 확인이다. - p.57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신있게 쓰는 모습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나의 사생활이 까발려지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 말하고 싶지 않았고, 혹은 내면의 이야기를 알아볼 수 사람만 해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라우마의 흔적을 머릿속에 스며드는 미친 안개 속에서 개운하게 가셔버리고 싶은 희망에서 글을 썼으나 조르주 페렉은 그 흔적의 자국을 완전하게 자신의 가슴속에서 지우지 못한채 그 어둑한 안개의 한가운데 서 있다. 내면의 상처. 전쟁으로 단절된 기억과 부모의 부재는 죽음의 기억이며, 떠나보낼 수 없는 주홍글자가 새겨진 것 처럼 어른이 된 소설가 페렉에게 '기록할 의무'들 내 인생에서 도려낼 수 없는 시간의 기록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조르주 페렉의 글쓰기는 처음부터 화려한 팔색조처럼 다양한 글쓰기가 아니라 유년의 기억을 잃어버렸기에 소설가 특유의 장점이 묻어나는 글쓰기가 아니라 다양한, 실험적인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태생적인 트라우마가 주어진 작가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 <W 또는 유년의 기억>을 읽으면서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억의 영원성에 대해 유년의 기억이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물음표어린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오갔다.
담담하면서도, 간결한 문체, 번호를 매기며 쓴 이야기들이 그의 상처에 대한 '애도'와 '연민'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면모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단절없이 있는 그대로 썼다면 다큐멘터리나 일기와 다를바 없는 '진정성'은 주지만 그는 그의 색깔로 드러내는 내면의 상처를 꽁꽁 묶고 싶은, 그러면서도 드러내보이고 싶은 면모를 상충하며 드러낸 목소리였다. 진실된 목소리에서 눈물을 떨궈내지 않게 이야기 전환이 빨랐던 그. 조르주 페렉은 그런점을 염려하며 연민이나 동정어린 시선이 아닌 ' 그 사건의 진실'의 목소리만 내기 위해 일부러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W 또는 유년의 기억>이 까다롭고,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그의 글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그의 진실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멈칫, 눈을 감는다. 그의 팬이라면 지금, 당장, 이시간에 읽으시길! 하고 강력 추천한다면 처음 페렉과 만남을 가지는 독자에게는 가장 나중에! 읽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쉽게 문을 열 수 없었지만 안개의 소용돌이 속에 내가 페렉의 심중에 어디쯤 와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기억은 망각되고, 지워지고, 잊혀지지만 낙인처럼 써내려간 한 소설가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할 뿐.
저번에 리뷰 쓴 <사물들>보다도 더 실험적인 작품 <W 또는 유년의 기억>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고양이와 함께, 조르주 페렉
결코 외모도 평범하진 않으십니다. ^^
이 작품은 호불호가 크게 나뉠 것 같은데요.
소설을 학문적으로 다룬 경험이 있거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어딘가 찝찝함이 남는 그런 분들은 집요하게 달려들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지만
반대로 가을 바람 쐬며 설렁 설렁 읽으려고 했던 분들에게는 힘들 수도 있는, 그런 작품이에요.
<W 또는 유년의 기억>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책은 W와 유년의 기억, 이렇게 독립적인 두 가지 이야기가 챕터를 번갈아가며 나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어둠의 저편> 과 같은 형식이지요.
서로 다른 독립적인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얽히며, 독자에게 읽는 맛을 더해주는 그런 종류의 형식으로,
총합소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읽는 맛을 주는, 그 수준을 뛰어 넘어, 독자에게 아리송한 기분만 잔뜩 남기고
끝내는 답을 주지 않은 채 사라져버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합니다.
W와 유년의 기억이 서로 아주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그 정도는 알겠지만. 그 것외에 더 많은 것을 알려면
우리는 그에 대해, 그 시대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할까요?
이번에도 역시 글쓰기의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과연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계속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몸을 감출 것인가, 아니면 들킬 것인가. p. 18
숨바꼭질 하는 아이(조르주 페렉)를 찾아야하는 독자는
다른 소설에서 해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능동성을 보여야하지만
뭐, 그건 독자 취향 나름이고, 그냥 이상한 작가다, 라고 책을 덮을 수도 있겠지요.
책 뒤에 작품해설에서 보면, 조르주 페렉이 이 작품을 집필하던 시기가 정신 분석 치료를 받던 기간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왜 이 인간이!! 이런 알쏭달쏭한 글을 썼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정신 분석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의식보다도, 무의식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겠지요.
기억을 거슬러 올라, 첫 번째 기억과 만나려는 노력.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연습.
아마 그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 <W 또는 유년의 기억>이지 않나, 싶습니다.
W 이야기 시작 부분에서, 가스파르 뱅클레가
원래 자기 이름의 주인이고 얼마 전에 실종된 아이, 가스파르 뱅클레를 찾으러 가는 부분 역시,
본인의 어렸을 때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서 모임 때, 이 부분에서 저와 같은 생각인 분들이 있었는데,
그 것을 지지하는 근거 하나로 본문에서 이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문득 해양경비대보다 내가 아이를 찾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믿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p.78
해양 경비대도 십오 개월의 수색동안 찾지 못한 아이 가스파르 뱅클레의 시신을
왜 어른 가스파르 뱅클레가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그 의문의 남자는 편지를 보냈을까요?
단순히 동명이인이 아니라, 동일인물이라는 것, 진짜 시신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사라진
유년의 기억을 뜻한다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희미한 유년의 기억에 허구의 색을 입혀 W라는 섬의 묘사를 통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허구를
보여줬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진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유년의 기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끄집어 내려고 합니다.
양쪽을 비교해가며 읽는 맛이
원래는 있어야하는데 말이죠! ㅋㅋㅋ
비교의 잣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구요, 제 유년의 기억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한 작품이었어요.
http://saturngene.tistory.com/35
우리의 존재는 무엇으로 입증되는 것일까? 다양한 것들이 제시될 지도 모른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많은 연쇄적 기억들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매개해 주고 있다는것이다.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다소 자전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페렉이라는 작가에 대해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다. 페렉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아버지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1940년 전사했고,어머니는 1943년 아우슈비츠에 있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어린시절 부모를일찍 여의고 고모의 손에서 자란, 혼돈의 세상 속에서 태어난 페렉에게 유년의 기억은 작은 파편처럼 가볍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은 두가지 이야기가 각각 진행되고 있으며 서로 다른 글씨체로써 구분되어 있다.하나의 이야기는 가스파르 뱅클레라는 아이의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사람에게 그 아이가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뱅클레라는 아이는 다소 자폐적인 성향을 띄는 아이이로,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자로부터 죽은 것이 확인되지 않은 표류된 아이 혹은단서를 찾고자 한다.또 다른 이야기는 페렉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뱅클레가 나오는 소설(허구) 부분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나 줄줄이 나열된 기억의 조각들은 독자로서 읽기는 참 힘든 부분이었다.하지만 작가 자신 즉, 페렉은 이러한 글쓰기를 통하여 많은 부분이 훼손된 퍼즐을 맞춰나갔듯이 자신의 존재의 조각들을 맞춰나간다. 이 둘의 이야기는 얼핏 연관성이 없어보이며 또한 연관되어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드러나있지 않다. 다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소설에 나오는 뱅클레라는 아이와 그 아이의 이름을 빌린 사람이 페렉과 동일 인물임을 암묵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페렉은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존재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이름을 빌린 어른의 뱅클레가 잃어버린 아이 뱅클레를 찾으러 가는 모습에서 자신의 유년을 찾아가는 페렉의 모습과 overlap되어진다. 소설 속 소설의 이야기에 또다른 중요부분은 W라는 섬에 대한 것이다.W라는 섬은 올림픽 정신이라는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라는 표어를 바탕으로 모든 법과질서가 존재하는 곳이다. 이곳의 운동선수에게 승리란 본능적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이며살아남기 위해 바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표면적으론 객관적이고 공평하지만 관리자들에겐상대적으로 큰 영향력과 권력이 주어진다. 아이들은 14살이 될 때까지 특정 공간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다 남자 아이들은 운동선수(초심자)의 생활을 위해 마을로 가게 되며,여자 아이들은 '아틀랑티아드'라는 대회 때를 제외하고는 나올 수 없는 규방에 갖혀 살게 된다.이들은 험난한 세상과 만나고 고통과 좌절을 겪는다. 작가가 표현하는 세상에 해피엔딩은 보이지않는다. W라는 곳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나는 작가 페렉이 바라보는 함축된 세상의 모습을 띄고 있다고 생각해보았다. 태어난여자 아이들 중 20%만을 살려두고, 남자 아이들은 모두 살린다. 한개만 난자가 되고(물론 이경우25%라고 볼 수 있지만), 모든 정세포가 정자가 되는 과정처럼 말이다. 또 '아틀랑티아드'라는 대회는 운동선수(男)들은 가운데 모여있는 여자들을 향해 달려가 먼저 쟁취하는 대회이다. 마치 수억마리의 정자가 난자를 향해 달려가는 발생의 과정처럼 말이다.그러나 이렇게 페렉으로부터 태어난(혹은 페렉이 만난) 세상은 부정과 부조리와 우울한 미래로가득찬 세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W라는 곳의 모습은 흡사 강제 수용소에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이 책의 이야기에서 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우리의 기억은 과거에 존재하고 그것은 우리의 존재를 입증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내가 동일한 인물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우리의 기억은 원시적 진실이 맞을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내가 페렉을 가여워할 입장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